6:1 여리고.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는 오늘날 ‘텔 에스 술탄’(Tell es Sultan)이란 곳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위치는 사해에서 북쪽으로 12 km, 요단에서 서쪽으로 9 km, 또 예루사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30 km지점이다.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 결과, 당시 여리고 성의 넓이는 대략 8에이커(1에이커 = 약 4 평방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느 므깃도의 14에이커, 라기스의 18에이커, 특히 하솔의 200에이커에 비하면 작지만, 여호수아 시대에는 가나안의 평균 도시 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 성읍 규모에 비하여 여리고 성의 비중은 매우 컸다. 즉 여리고 지역은 좋은 샘들을 가진 ‘오아시스’ 지대인 만큼 일찍부터 개발된 고대 도성으로서 성경은 일명 ‘종려의 성읍’으로 지칭하기도 했다(신 34:3). 그리고 요단 대평원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여리고 성은 그 전략적 위치상 매우 중요한 가나안의 방어 거점으로서 군사 요충지일 뿐 아니라 가나안 중부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따라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남북 연합작전을 미연에 차단하고 가나안 정복의 주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리고 성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직접적인 군사 작전으로서는 거의 공격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천연 요새였다. 즉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여리고 성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 밖으로 3-4m 높이의 석조 장애물을 설치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본 성의 중앙 벽과 약 35도 각도로 경사지에 만들었다고 한다(Kathleen Kenyon, Digging up Jericho, New York : Frederick A. Praeger, 1957). 따라서 그 가파르고 미끄러운 경사지와 여러 방해물 때문에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접근하는 행위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으로써 장기간의 포위 작전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렇게 하자면 오랜 기간이 지체되어 나머지 가나안 족속들이 연합, 반격할 기회만을 줄 뿐 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여리고 성은 성문을 굳게 닫고 마냥 버티는 작전을 구사했던 것이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그러나 여호수아 군대에게는 하늘 만군의 군대 대장 여호와가 함께 하고 계셨다.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닫다’의 히브리어 ‘사가르’는 ‘문을 닫다’, ‘빗장을 질러 잠그다’를 뜻하는 말로서, 원문에서는 이 말이 반복 사용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해 주고 있는데, 영역본인 KJV, NIV, Living Bible과 그리고 공동번역은 모두 ‘굳게 닫다’로 번역하였다. 성문을 굳게 잠그는 것은 전시에 특별한 경계를 펴는 것을 뜻하는 표현으로(Calvin), 이는 여리고 사람들이 전투 태세에 들어갔음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친히 여리고 성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하셨기 때문에(5:13-15, 6:2-5), 그들이 성문을 닫는 일 뿐 아니라 그외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 할지라도 이미 작전에 들어간 하나님의 계획을 취소시킬 수는 없었다. 흐르는 요단 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에게 있어 닫힌 성문을 열게 하는 것 쯤은 더욱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Calvin).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앞에 기록된 ‘굳게 닫혔고’라는 말을 보강하는 말로서, 여기서 ‘출입’은 성 밖으로 ‘나가는’ 행위와 성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표현한 말이다.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성문을 굳게 닫아놓았으므로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Keil). 이와 같이 여리고 사람들이 성문을 굳게 닫고 출입하지 않은 것은 출애굽 사건과 요단 동쪽의 아모리 족속 두 왕의 전멸사건(2:10), 그리고 요단 강 도하 사건 등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간담이 녹았기 때문이다(5:1).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닫다’의 히브리어 ‘사가르’는 ‘문을 닫다’, ‘빗장을 질러 잠그다’를 뜻하는 말로서, 원문에서는 이 말이 반복 사용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해 주고 있는데, 영역본인 KJV, NIV, Living Bible과 그리고 공동번역은 모두 ‘굳게 닫다’로 번역하였다. 성문을 굳게 잠그는 것은 전시에 특별한 경계를 펴는 것을 뜻하는 표현으로(Calvin), 이는 여리고 사람들이 전투 태세에 들어갔음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친히 여리고 성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하셨기 때문에(5:13-15, 6:2-5), 그들이 성문을 닫는 일 뿐 아니라 그외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 할지라도 이미 작전에 들어간 하나님의 계획을 취소시킬 수는 없었다. 흐르는 요단 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에게 있어 닫힌 성문을 열게 하는 것 쯤은 더욱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Calvin).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앞에 기록된 ‘굳게 닫혔고’라는 말을 보강하는 말로서, 여기서 ‘출입’은 성 밖으로 ‘나가는’ 행위와 성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표현한 말이다.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성문을 굳게 닫아놓았으므로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Keil). 이와 같이 여리고 사람들이 성문을 굳게 닫고 출입하지 않은 것은 출애굽 사건과 요단 동쪽의 아모리 족속 두 왕의 전멸사건(2:10), 그리고 요단 강 도하 사건 등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간담이 녹았기 때문이다(5:1).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2-5절의 말씀은 5:14-15의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이다. 따라서 1절은 단순히 괄호와 같은 삽입 구절임을 알 수 있다(Keil, Velde, Vonk, Clarke, Goslinga).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5:14)이라고 볼 수 있다(Keil, Clarke, Lias).
보라. 히브리어 ‘레에’는 주위를 환기시키는 간투사(間投司)로서, 바로 뒤에 상술되어 있듯이,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무너질 운명임을 강조해 주고 있다.
왕과 용사들. 여리고의 왕(2:2)과 용사들이 언급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성이 무너진 후에 군사적인 저항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24:11에서 여리고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다는 기록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Woudstra).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여기서 ‘손에 넘겨주다’란 용어는 군사적 의미로는 ‘권력이나 통치권을 넘겨주다’, ‘어떤 사람에게 승리를 허락하다’를 뜻하는 말이다(Westmann).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왕들을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말하였는데(신 7:24), 본 절은 하나님께서 이미 ‘넘겨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승리가 이미 확정되었음을 선언하는 행위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 표현이다(Woudstra, Maxwell). 곧 그 성취가 아직도 미래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 일이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으므로 이미 성취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Keil). 이같은 표현은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여러 곳(10:8, 12,19, 30, 32, 11:6, 8, 21:44, 24:11, 삿 1:2, 4, 3:10, 28, 4:7, 14, 7:7, 9, 14, 15, 8:3, 7)에서 사용되었다.
보라. 히브리어 ‘레에’는 주위를 환기시키는 간투사(間投司)로서, 바로 뒤에 상술되어 있듯이,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무너질 운명임을 강조해 주고 있다.
왕과 용사들. 여리고의 왕(2:2)과 용사들이 언급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성이 무너진 후에 군사적인 저항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24:11에서 여리고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다는 기록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Woudstra).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여기서 ‘손에 넘겨주다’란 용어는 군사적 의미로는 ‘권력이나 통치권을 넘겨주다’, ‘어떤 사람에게 승리를 허락하다’를 뜻하는 말이다(Westmann).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왕들을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말하였는데(신 7:24), 본 절은 하나님께서 이미 ‘넘겨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승리가 이미 확정되었음을 선언하는 행위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 표현이다(Woudstra, Maxwell). 곧 그 성취가 아직도 미래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 일이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으므로 이미 성취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Keil). 이같은 표현은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여러 곳(10:8, 12,19, 30, 32, 11:6, 8, 21:44, 24:11, 삿 1:2, 4, 3:10, 28, 4:7, 14, 7:7, 9, 14, 15, 8:3, 7)에서 사용되었다.
6:3 성을 둘러 성 주위를 … 돌되. 여기서 ‘두르다’(사히, 바브)와 ‘돌다’ (히, 니카프)는 종종 함께 사용되어 ‘에워싸다’, ‘둘러싸다’를 뜻한다(시 22:16). 따라서 이 말은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행진을 했다기 보다는 성을 빙 둘러싸고 그냥 천천히 도는 행위를 묘사한 것이다(Fisher).
6:4 제사장 일곱 … 일곱 양각 나팔 … 일곱째 날 … 일곱 번. ‘일곱’(히, 쉬브아)이라는 숫자가 4절에만 네 번, 6장 전체에 걸쳐 열네 번이나 언급되었다. 성경이 함축하고 있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상 ‘일곱’(7)이란 숫자는 하나님께 속한 신성한 숫자로서 보통 ‘완성’, ‘완전’, ‘극치’, ‘성별’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적 섭리나 사역과 관련하여 이 단어는 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창 21:28, 30, 출 20:10, 11, 23:15, 25:37, 29:30, 왕하 5:10, 시 119:164, 계 1:20, 10:3). 따라서 우리는 여기 이 숫자를 통해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성전(聖戰)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을 정복케 하되 완전히 정복케 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Campbell). 한편 여기서 ‘양각 나팔’은 ‘나팔’을 뜻하는 ‘요벨’과 ‘뿔’을 뜻하는 ‘쇼파르’의 합성어인데, 특히 ‘요벨’은 보통 전쟁 때 사용하는 은 나팔(민 10:1 이하)과는 달리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킨다. 이 양각 나팔은 회중을 불러 모으거나, 어떤 사람의 출현을 알리기 위한 경우(본 절과 출 19:13)와 희년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경우(레 25:9-10)에 주로 사용되었다(Goslinga, Alexander). 혹자는 여리고 전투에서 이처럼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이것은 ‘이방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승리’를 예표하는 행위로 보기도 한다.
언약궤. 3:3 주석 참조.
언약궤. 3:3 주석 참조.
6:5 길게 불어. 이 말은 원어상 ‘존재한다’는 뜻의 ‘하야’와 ‘뻗치다’, ‘길게 늘어뜨리다’, ‘연장하다’는 뜻의 ‘마샤크’로 이루어진 단어로, 문자적으로는 ‘오랫동안 늘어뜨리다’라는 말이다. 이처럼 침묵 속에서 길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여리고 사람에게는 공포심과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커다란 확신과 격려의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큰 소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루아’는 함성을 뜻하는 말로서 본 절을 포함하여 삼상 4:5, 삼하 6:15 등에서 언약궤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Woudstra). 또한 ‘외쳐 부르다’의 히브리어 ‘루아’는 ‘귀먹게 할 정도로 소리지르다’, ‘개가를 올리다’ 등을 뜻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큰 소리는 이미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그 남아 있는 마지막 전의마저 삼켜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그 소리는 승리를 예고하는 큰 함성이 되었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직역하면 ‘성벽이 평평하게 깔려질 것이다’란 의미로, 곧 여리고 성의 성벽이 그 밑바닥 기초까지 철저히 무너져 내릴 것이란 뜻이다. 한편 가나안의 중요 거점인 여리고 성의 멸망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질 이 세상 심판의 모형이다. 즉 아무리 오랫동안 세상 권세가 그 철옹성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한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그 나라가 일순간에 멸망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적들에게 분명히 입증해 주셨다(Keil & Delitzsch, Vol. II. p. 71).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즉 좌우를 두리번 거리거나 머뭇 거릴 필요 없이 힘차게 곧장 성 안으로 공격해 들어가라는 뜻이다(20절, Keil).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큰 소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루아’는 함성을 뜻하는 말로서 본 절을 포함하여 삼상 4:5, 삼하 6:15 등에서 언약궤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Woudstra). 또한 ‘외쳐 부르다’의 히브리어 ‘루아’는 ‘귀먹게 할 정도로 소리지르다’, ‘개가를 올리다’ 등을 뜻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큰 소리는 이미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그 남아 있는 마지막 전의마저 삼켜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그 소리는 승리를 예고하는 큰 함성이 되었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직역하면 ‘성벽이 평평하게 깔려질 것이다’란 의미로, 곧 여리고 성의 성벽이 그 밑바닥 기초까지 철저히 무너져 내릴 것이란 뜻이다. 한편 가나안의 중요 거점인 여리고 성의 멸망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질 이 세상 심판의 모형이다. 즉 아무리 오랫동안 세상 권세가 그 철옹성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한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그 나라가 일순간에 멸망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적들에게 분명히 입증해 주셨다(Keil & Delitzsch, Vol. II. p. 71).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즉 좌우를 두리번 거리거나 머뭇 거릴 필요 없이 힘차게 곧장 성 안으로 공격해 들어가라는 뜻이다(20절, Keil).
6:6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 여호와의 작전 명령을 받들어 그대로 전달했다. 여호와를 전폭 신뢰하는 여호수아의 신앙이 돋보일 뿐 아니라, 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의 실질적인 총지휘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4절 주석 참조.
6:7 무장한 자들이 …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이 말은 3-5절에는 빠져 있는 내용으로 행군의 순서를 보다 자세히 상술한 말이다(Keil). 그리고 여기서 ‘무장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할루츠’는 ‘전쟁에 대비하다’, ‘싸울 준비를 갖추다’란 뜻을 가진 ‘할라츠’에서 파생하였는데, 혹자들(Kimchi, Rashi)은 이들을 요단 강 동편을 차지한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서 선발된 군인으로 보고 있다(1:12-15, 4:12-13, 민 32장).
6:8 양각 나팔. 4절 주석 참조.
여호와 앞에서. 4, 6, 7, 13절의 ‘여호와의 궤 앞에서’와는 달리 ‘궤’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기 때문에 이 말은 ‘여호와의 궤 앞에서’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4:13, 민 10:35-36, 삼하 6:14, Wodstra).
여호와의 언약궤. 3:3 주석 참조.
여호와 앞에서. 4, 6, 7, 13절의 ‘여호와의 궤 앞에서’와는 달리 ‘궤’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기 때문에 이 말은 ‘여호와의 궤 앞에서’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4:13, 민 10:35-36, 삼하 6:14, Wodstra).
여호와의 언약궤. 3:3 주석 참조.
6:9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여기서 ‘후군’(히, 마아세프)은 본 절과 1절의 ‘무장한 자들’(히, 헤할루츠)과 대조되는 말로, 곧 무장한 자들인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에서 선발된 군인들을 가리킨다(Kimchi, Rashi, Keil). 한편 공동번역은 ‘무장한 자들’을 ‘정예 부대’로, ‘후군’을 ‘후위 부대’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살리고 있다.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여기서 ‘불다’에 해당하는 ‘타카’는 원래 ‘때리다’, ‘손으로 치다’, ‘못을 박다’란 뜻이지만, ‘나팔’이란 말과 함께 사용될 때는(8,13, 16, 20절) 항상 ‘불다’(blow)란 뜻으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계속’, ‘진행’을 뜻하는 ‘할라크’와 같이 사용되어 ‘나팔을 계속하여 불다’를 뜻한다(Keil).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여기서 ‘불다’에 해당하는 ‘타카’는 원래 ‘때리다’, ‘손으로 치다’, ‘못을 박다’란 뜻이지만, ‘나팔’이란 말과 함께 사용될 때는(8,13, 16, 20절) 항상 ‘불다’(blow)란 뜻으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계속’, ‘진행’을 뜻하는 ‘할라크’와 같이 사용되어 ‘나팔을 계속하여 불다’를 뜻한다(Keil).
6:10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이와 같이 성 주위를 돌 동안 완전히 침묵을 지키도록 한 것은(출 14:14, 슥 2:13) 거룩한 나팔 소리를 보다 주의 깊게 듣고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Matthew Henry).
외치라 하는 날. 이 날은 일곱째 날이다. 이 날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면, 그 소리에 맞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도록 되어 있었다(4-5절).
외치라 하는 날. 이 날은 일곱째 날이다. 이 날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면, 그 소리에 맞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도록 되어 있었다(4-5절).
6:11 진영으로 들어와서 … 자니라. 진영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길갈’ 근처임에는 틀림없다(4:19, 5:10, Maxwell). 그리고 여기 ‘자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룬’은 대개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 사용되는 말로, ‘숙박하다’, ‘밤을 지내다’를 뜻한다(창 19:2, 28:11, Kaiser).
6:15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끝까지 순종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 어떠한 행동도 제멋대로 하지 않는 ‘정돈된 열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고 계셨다(Calvin).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4절)라는 명령의 실천을 보여준다. 한편 여기서 ‘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크’는 부사로서 ‘오로지’, ‘확실히’를 뜻하는 말인데, 이에 따라 직역하면 ‘오직 그 날에만 일곱 번 돌았다’라는 의미이다.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4절)라는 명령의 실천을 보여준다. 한편 여기서 ‘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크’는 부사로서 ‘오로지’, ‘확실히’를 뜻하는 말인데, 이에 따라 직역하면 ‘오직 그 날에만 일곱 번 돌았다’라는 의미이다.
6:16 일곱 번째에 … 외치라. 성을 일곱 번 돈 후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 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면 성은 무너질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여리고 성 함락 사건에서는 특히 ‘일곱’(7)이란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 즉 일곱 제사장, 일곱 양각 나팔, 일곱째 날, 일곱 번 등이 그것이다(4절).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숫자의 상징성을 고려 할 때 ‘일곱’(7)은 흔히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리고 성 함락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과 작전에 의해 진행된 하나님의 성전(聖戰)임을 알 수 있다.
너희에게 … 주셨느니랴. 미래에 확실히 일어날 사건을 이미 이루어진 과거처럼 표현한 소위 ‘예언적 완료형’(prophetic perfects)으로서,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2절)란 표현과 같다.
너희에게 … 주셨느니랴. 미래에 확실히 일어날 사건을 이미 이루어진 과거처럼 표현한 소위 ‘예언적 완료형’(prophetic perfects)으로서,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2절)란 표현과 같다.
6:17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여기서 ‘바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람’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이 어떤 물건을 사용하거나 오용하지 못하도록 따로 구분시켜 오로지 하나님께 넘겨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넘겨준다는 것은 (1)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봉헌’의 의미와 (2) 철저히 파멸시키고 저주하는 ‘진멸’의 의미 등 2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편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구분시켜 오직 하나님께 바친다는 이 ‘헤렘’의 개념은 레 27:28-29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그후 이러한 개념은 본 절과 민 18:14, 겔 44:29 등에도 나타나며, 철저한 파멸의 뜻으로는 여호수아의 군대가 진멸한 거의 모든 성읍들에 대해 사용되었다(6:21, 여리고 / 8:26, 아이 / 10:28, 막게다 / 11:11, 하솔). 레 27:28, 신 2:34 주석 참조.
기생 라합과 …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두 정탐꾼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서약(2:14) 때문으로, 가나안 거민 가운데 오직 기생 라합과 그녀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식구들만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기생 라합과 …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두 정탐꾼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서약(2:14) 때문으로, 가나안 거민 가운데 오직 기생 라합과 그녀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식구들만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6:18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이스라엘 진영으로 하여금 파멸을 당하게 하여’의 의미이다(RSV, NIV). 그러므로 개역 성경은 여기서 ‘헤렘’을 ‘바치다’는 뜻으로 해석했으나, KJV의 ‘저주’, 또는 RSV와 NIV 및 공동번역의 ‘파멸’(destruction)이 이해하기 쉬운 뜻이다(17절).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여기서 ‘고통을 당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카르’는 ‘문제를 일으키다’, ‘슬픔의 원인이 되다’, ‘격노케 만들다’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문구는 얼마후 아간의 범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현실화되고 말았다(7:24-26, Maxwell). 원래 한 개인의 죄는 그 자신만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의 유기체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죄는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영향을 미쳤다.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여기서 ‘고통을 당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카르’는 ‘문제를 일으키다’, ‘슬픔의 원인이 되다’, ‘격노케 만들다’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문구는 얼마후 아간의 범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현실화되고 말았다(7:24-26, Maxwell). 원래 한 개인의 죄는 그 자신만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의 유기체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죄는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영향을 미쳤다.
6:19 은금과 동철 기구. 레 27:29의 ‘헤렘’ 규정에 따라 모든 여리고 거민과 가축들은 진멸의 대상이었으며(21절), 성읍 안의 모든 재산도 소각되어야만 했다(24절). 그런데 금, 은, 동, 철 등의 금속만 예외적으로 ‘여호와의 곳간’, 즉 ‘성막’에 보관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민 31장에도 나타나 있는데,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히 금속을 보관한 이유는, 아마 다윗이 전쟁에서 노획한 금속과 쇠붙이를 성막 곳간에 보관했다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 사용한 것으로 보아(삼하 8:11, 왕상 7:51, 대상 29:2), 이 당시에 보관된 금속도 성막용으로 준비된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Matthew Henry).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구별될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거룩하게 하다’, ‘신성한 것으로 구별하다’란 뜻의 ‘카다쉬’에서 유래된 말로, 곧 평범한 것이나 속된 것과는 완전 구별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뜻한다(레 10:10, 겔 22:26).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구별될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거룩하게 하다’, ‘신성한 것으로 구별하다’란 뜻의 ‘카다쉬’에서 유래된 말로, 곧 평범한 것이나 속된 것과는 완전 구별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뜻한다(레 10:10, 겔 22:26).
6:20 이에 백성은 … 크게 소리 질러. 여기서는 5절에서 주어졌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Calvin). 히 11:30에서는, 성이 무너지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Woudstra, Velde).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앞에서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 어구에서는 약속 이행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을 찾아 볼수 있다(Calvin). 실로 여리고 성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에 의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다. 한편, 성서 고고학적으로 파괴된 여리고 성읍에 대한 발굴 작업은 가스탕 교수(prof. John Garstang) 팀의 발굴 작업(1930-1936)과 캐넌 여사(Miss Kathleen Kenyon) 팀의 발굴 작업(1952-1958)으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비록 가스탕 교수가 파괴된 연대를 B.C. 1400년 경으로, 캐넌 여사가 B.C. 1500년 경으로 달리 추정하고는 있으나, 여호수아 시대를 즈음하여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리고 성터에서는 여러 가지 집기류를 비롯하여 무너진 많은 건물 파편들 및 불에 타고 금이 간 많은 벽돌들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성의 몰락 원인도 지진 등으로 인한 큰 진동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이 모든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성경의 사건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해 준다.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앞에서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 어구에서는 약속 이행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을 찾아 볼수 있다(Calvin). 실로 여리고 성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에 의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다. 한편, 성서 고고학적으로 파괴된 여리고 성읍에 대한 발굴 작업은 가스탕 교수(prof. John Garstang) 팀의 발굴 작업(1930-1936)과 캐넌 여사(Miss Kathleen Kenyon) 팀의 발굴 작업(1952-1958)으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비록 가스탕 교수가 파괴된 연대를 B.C. 1400년 경으로, 캐넌 여사가 B.C. 1500년 경으로 달리 추정하고는 있으나, 여호수아 시대를 즈음하여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리고 성터에서는 여러 가지 집기류를 비롯하여 무너진 많은 건물 파편들 및 불에 타고 금이 간 많은 벽돌들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성의 몰락 원인도 지진 등으로 인한 큰 진동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이 모든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성경의 사건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해 준다.
6:21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 칼날로 멸하니라. ‘바치되’의 히브리어 ‘하람’은 ‘철저히 파멸시키다’를 뜻한다(17절). 한편 신 7:2, 20:16-17의 규정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진멸하도록 설정한 대상은 가나안 거민들 뿐이고, 또 실제로 가나안 동편 땅의 시온과 옥의 성읍을 정복할 때에도 그렇게 하였다(8:26-27, 10:28, 신 2:34-35, 3:6-7). 그런데 여리고 성의 정복에서는 거민 뿐 아니라 가축과 노략물까지 모조리 진멸하였는데, 그 이유는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첫 번째 성읍, 곧 가나안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구별되어 바쳐져야 했기 때문이다(Calvin, Keil). 그리고 진멸할 때 칼날로 진멸한 것은 신 13:15의 규례에 의한 것이다.
6:22 맹세한 대로 … 이끌어 내라. 정탐꾼들은 여리고를 탐지할 때 라합에게 은혜를 입은 대가로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를 정복할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살려주기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약속했었다(2:12-21). 이제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정탐 사실이 누설되지 않았으므로(2:14, 20), 자신들의 맹세한 대로 라합과 그 일가 친족들을 구출할 의무가 있었다.
6:23 정탐한 젊은이들. 여기서 ‘젊은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는 ‘어린 남자 아이’, ‘소년’, ‘젊은이’ 등의 뜻을 모두 포함하지만, 두 정탐꾼의 대담한 활약상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은 어린 소년이라기 보다는 분명 20세가 넘는 담대한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70인역(LXX)도 이들을 ‘젊은이’이로 번역하였고 영역본 KJV, RSV, NIV 등도 모두 ‘소년들’(boys)로 번역하지 않고 ‘젊은이들’(young men)로 번역하여 같은 입장을 취했다.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두고. 여기서 ‘밖’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후츠’는 일반적으로 ‘집이 없는 바깥 장소’를 가리킨다. 사실 라합과 그 가족들은 이방인으로서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언약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동안 ‘이스라엘 진영’ 밖에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민 5:3, 신 23:14). 이처럼 기생 라합이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의 세리와 창녀들이 구원받는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에 대한 예표이기도 했다(Pierson).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두고. 여기서 ‘밖’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후츠’는 일반적으로 ‘집이 없는 바깥 장소’를 가리킨다. 사실 라합과 그 가족들은 이방인으로서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언약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동안 ‘이스라엘 진영’ 밖에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민 5:3, 신 23:14). 이처럼 기생 라합이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의 세리와 창녀들이 구원받는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에 대한 예표이기도 했다(Pierson).
6:24 불로 사르고.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라프는 번제(레 4:12), 인신제사(렘 7:31), 처형의 경우(레 20:14, 21:9) 등에 사용되었는데, 본 절에서는 성읍의 파괴에 사용되었다(Harris). 한편 여리고 성을 불사른 것은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사르라’는 신 13:16의 규례에 의한 것이다.
6:25 그가 …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라합 및 그 가족은 얼마 후(7일, 민 32:19)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 특히 라합은 후일 유다 족장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의 조상 보아스를 낳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오르게 된다(마 1:5). 이처럼 비록 그 신분은 이방인이었으나 믿음으로 행동함으로써(히 11:31, 약 2:25), 결국 그녀의 가계는 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복된 계열에 속하게 되었다(마 1:5-6, 16).
오늘까지. 이 말은 여호수아서가 기록될 때까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여호수아서가 여리고 진멸 사건이 있고 오래지 않은 때에 기록되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Velde, Keil), 또한 여호수아서가 기록될 당시에 라합이 아직 생존해 있었음을 보여준다(Goslinga).
오늘까지. 이 말은 여호수아서가 기록될 때까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여호수아서가 여리고 진멸 사건이 있고 오래지 않은 때에 기록되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Velde, Keil), 또한 여호수아서가 기록될 당시에 라합이 아직 생존해 있었음을 보여준다(Goslinga).
6:26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 ‘일어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쿰’은 물론 단순히 일어나는 것도 뜻하지만, 본 장과 같은 군사적 문맥에서는 흔히 전쟁을 위한 준비(삿 7:15)나 전쟁 수행(출 2:17) 등을 뜻한다(Coppes). 그리고 ‘건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나’는 성읍의 요새화 작업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낱말로(왕상 15:17, 대하 11:5, 14:6), 단순히 일반 집을 짓는 것을 뜻하지 않고 성을 요새로 튼튼히 세우는 것을 뜻한다. 이 사실은 뒤이어 나오는 ‘그(성의) 기초를 쌓을 때’, ‘그(성의) 문을 세울 때’라는 어구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Keil & Delizsch, Vol. II. p. 73).
저주를 받을 것이라. 파괴된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되리라는 이 선언은 신 13:16의 규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그 규례에는 불살라 진멸된 성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 기초를 … 맏아들 …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본 절에서 선포된 여호수아의 이 예언적 저주는 후일 아합 왕 때(B.C. 870년 경) 실제로 벧엘 사람 히엘에게서 일어났다. 즉 히엘은 여리고를 견고한 성읍으로 다시 재건하려고 여리고 성의 터를 쌓다가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왕상 16:34, Keil, Maxwell, Velde, Campbell, Woudstra, Fay). 실로 그 사건은 하나님의 뜻에 불복하는 자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Calvin). 한편 여기서 ‘막내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이르’는 ‘가장 적은’, ‘나이가 어린’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상에서 이 ‘차이르’는 창 25:23에서 ‘어린 자’로, 창 48:14에서는 ‘차남’으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실제로 이 예언이 성취된 왕상 16:34에서는 ‘막내 아들’로 번역되었다. 또한 KJV, RSV, NIV, 공동번역 모두 ‘막내 아들’(the youngest son)로 번역하였다. 한편, 혹자들은 여기 여호수아의 저주를 보다 확대 해석하여 장자는 성의 터를 쌓을 때에, 막내 아들은 성의 문을 세울 때 잃을 것이며, 나머지 그 사이의 자식들 역시 그 중간 단계의 작업 진행 중 모두 잃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Masius, Munsterus).
저주를 받을 것이라. 파괴된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되리라는 이 선언은 신 13:16의 규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그 규례에는 불살라 진멸된 성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 기초를 … 맏아들 …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본 절에서 선포된 여호수아의 이 예언적 저주는 후일 아합 왕 때(B.C. 870년 경) 실제로 벧엘 사람 히엘에게서 일어났다. 즉 히엘은 여리고를 견고한 성읍으로 다시 재건하려고 여리고 성의 터를 쌓다가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왕상 16:34, Keil, Maxwell, Velde, Campbell, Woudstra, Fay). 실로 그 사건은 하나님의 뜻에 불복하는 자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Calvin). 한편 여기서 ‘막내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이르’는 ‘가장 적은’, ‘나이가 어린’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상에서 이 ‘차이르’는 창 25:23에서 ‘어린 자’로, 창 48:14에서는 ‘차남’으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실제로 이 예언이 성취된 왕상 16:34에서는 ‘막내 아들’로 번역되었다. 또한 KJV, RSV, NIV, 공동번역 모두 ‘막내 아들’(the youngest son)로 번역하였다. 한편, 혹자들은 여기 여호수아의 저주를 보다 확대 해석하여 장자는 성의 터를 쌓을 때에, 막내 아들은 성의 문을 세울 때 잃을 것이며, 나머지 그 사이의 자식들 역시 그 중간 단계의 작업 진행 중 모두 잃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Masius, Munsterus).
6:27 소문이 … 퍼지니라. ‘여호수아와 함께 하심으로 그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1:5-7)이 성취되고 있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요단 도하(渡河) 사건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에게 높임을 받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면, 여리고 함락 사건은 여호수아를 가나안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스런 존재가 되게 하기에 충분했다(Matthew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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