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적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직면하게 될 사면의 적대 세력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던 당시의 원주민들(16, 17절)을 가리킨다. 이들은 당시 하나님을 거역하며 진노의 죄악을 쌓던 자들로서(창 15:16)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대적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나안 족속은 당연히 정복해야 할 당면의 적대 세력이 아닐 수 없었다.
말과 병거와 백성. 이는 잘 훈련된 군사력과 풍부한 군수 물자, 그리고 조직적인 힘 등을 나타낸다(수 11:1-5). 대적들의 이러한 당당한 조건은 400여 년 간의 애굽 노예 생활, 더욱이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로 인해 힘이 미약해진 이스라엘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9:2). 특히 ‘말과 병거’는 당시 군사력의 상징으로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던 정예 주력 부대였는데, 당시 애굽과 가나안 민족들은 이러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출 14:7, 수 17:16).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그러한 말과 병거가 없었다.
두려워 하지 말라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이 대적들의 군사력 때문에 낙심하지 않아도 될 충분 조건이다. 즉 숱한 이적적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일과 또한 200여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12:37)을 광야의 숱한 역경 중에서도 별다른 희생 없이 가나안 문턱(3:29)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전쟁의 승패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2:33, 출 14:10-31, 민 14:39-45).
말과 병거와 백성. 이는 잘 훈련된 군사력과 풍부한 군수 물자, 그리고 조직적인 힘 등을 나타낸다(수 11:1-5). 대적들의 이러한 당당한 조건은 400여 년 간의 애굽 노예 생활, 더욱이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로 인해 힘이 미약해진 이스라엘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9:2). 특히 ‘말과 병거’는 당시 군사력의 상징으로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던 정예 주력 부대였는데, 당시 애굽과 가나안 민족들은 이러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출 14:7, 수 17:16).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그러한 말과 병거가 없었다.
두려워 하지 말라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이 대적들의 군사력 때문에 낙심하지 않아도 될 충분 조건이다. 즉 숱한 이적적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일과 또한 200여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12:37)을 광야의 숱한 역경 중에서도 별다른 희생 없이 가나안 문턱(3:29)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전쟁의 승패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2:33, 출 14:10-31, 민 14:39-45).
20:2 싸울 곳.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넌 후 가나안 족속들과 교전(交戰)하여야 할 전쟁터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넌 후 최초로 교전한 곳은 여리고였다(수 6장).
제사장. 순수하게 제사직만을 수행하는 일반 제사장과는 달리 비느하스(민 31:6)처럼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참여하는 제사장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군목(軍牧)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유대 랍비들은 이들을 가리켜 특별히 ‘전쟁을 위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메쉬아흐 함밀하마)라고 불렀으며, 대제사장 다음 가는 높은 직위를 주었다고 한다(Talmud, Keil). 이들의 일은 전쟁터에 나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군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3, 4절)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이었다(Pulpit Commentary).
제사장. 순수하게 제사직만을 수행하는 일반 제사장과는 달리 비느하스(민 31:6)처럼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참여하는 제사장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군목(軍牧)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유대 랍비들은 이들을 가리켜 특별히 ‘전쟁을 위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메쉬아흐 함밀하마)라고 불렀으며, 대제사장 다음 가는 높은 직위를 주었다고 한다(Talmud, Keil). 이들의 일은 전쟁터에 나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군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3, 4절)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이었다(Pulpit Commentary).
20:3 겁내지 … 떨지 … 놀라지 말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이스라엘은 어떠한 대적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유사한 말로 거듭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법을 수사학적 용어로는 ‘완전 강조’라 한다. 한편 본 절의 각 단어을 원어에 의거, 보다 정확한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겁내다’에 해당하는 ‘라카크’는 본래 ‘부드럽게 되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어떤 현상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왕하 22:19). 그리고 ‘두려워하다’의 ‘야레’는 어떤 대상에게 압도당하여 그를 숭상할 정도의 큰 두려움을 가리킨다. 또한 ‘떨다’에 해당하는 ‘하파즈’는 갑작스레 나타난 대상을 보고서 갖는 일순간적인 공포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놀라다’의 ‘아라츠’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꺾이는 상태를 가리킨다(NIV).
20:4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영역본 RSV, NIV 그리고 Living Bible은 ‘대적을 격파하고 너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동일한 성격의 말로는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를 들 수 있는데(출 17:15),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이스라엘의 손에만 맡기지 않으시고 직접 대적하여 싸우사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는 분임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동적인 사역은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당신의 약속(출 23:23, 31)에 의거한 것인데,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성격의 약속이 주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요 16:33).
20:5 책임자. [히, 쇼테르] ‘서기관’, ‘감독관’, ‘집행관’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16:18). 70인역(LXX)은 이를 ‘서기관적인 임무를 맡은 자’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혹자는 이를 지파의 기록을 보관하며 모든 숫자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이해하기도 한다(Lange). 그러나 여기서는 본문의 정황에 의거 할 때 각 지파의 두령(1:15)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낙성식. ‘봉헌하다’는 뜻의 ‘하나크’에서 온 말로, 장막이나 일반 가옥 및 성전 등을 완공한 후 이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예식을 의미한다(대하 7:5, 9). 한편 요나단 탈굼(Jonathan Targum)을 인용하여 랍비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낙성식 때 중요한 예식으로 ‘쉐마 본문’(6:4-9)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원통 속에 넣어 그것을 문설주에 달아매는 순서가 있었다고 한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I-iii, p. 401).
집으로 돌아갈지니. 즉 병역 면제에 관한 규정이다. 그런데 유대학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면제 혜택의 경우는 단지 이스라엘이 멀리 떨어진 타성읍을 공격하기 위해서 징집할 경우에만 허용되었고,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투 등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반드시 치러야 할 전쟁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 p. 806). 여하튼 전쟁 수행시 전쟁터에 나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새 집을 건축하고 미처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5절), (2) 포도원을 만들고 미처 그 소산을 먹어 보지 못한 자(6절), (3) 여자와 약혼하고 미처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한 자(7절) 등이다. 그리고 겁이나 두려움이 많은 자들은 아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켰다(8절). 한마디로 이들 모두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여호와의 전쟁을 위해 온전히 쏟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전쟁에서 제외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수효의 다소(多小)에 관계 없이 온전한 자원자들로만 구성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여호와의 공의를 실현하는 여호와의 전쟁에는 몸과 마음이 동참하는 ‘온전한 헌신’이 요청된다는 사실과 둘째,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타인이 … 행할까 하노라. 새 집을 건축한 지 얼마 안 있어 집을 떠나 전쟁에 참전케 된 자는 집 걱정 때문에 마음이 나뉘어 전쟁에 전심전력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타 유사한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6-7절). 한편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런 자들은 1년 동안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24:5).
낙성식. ‘봉헌하다’는 뜻의 ‘하나크’에서 온 말로, 장막이나 일반 가옥 및 성전 등을 완공한 후 이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예식을 의미한다(대하 7:5, 9). 한편 요나단 탈굼(Jonathan Targum)을 인용하여 랍비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낙성식 때 중요한 예식으로 ‘쉐마 본문’(6:4-9)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원통 속에 넣어 그것을 문설주에 달아매는 순서가 있었다고 한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I-iii, p. 401).
집으로 돌아갈지니. 즉 병역 면제에 관한 규정이다. 그런데 유대학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면제 혜택의 경우는 단지 이스라엘이 멀리 떨어진 타성읍을 공격하기 위해서 징집할 경우에만 허용되었고,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투 등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반드시 치러야 할 전쟁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 p. 806). 여하튼 전쟁 수행시 전쟁터에 나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새 집을 건축하고 미처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5절), (2) 포도원을 만들고 미처 그 소산을 먹어 보지 못한 자(6절), (3) 여자와 약혼하고 미처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한 자(7절) 등이다. 그리고 겁이나 두려움이 많은 자들은 아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켰다(8절). 한마디로 이들 모두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여호와의 전쟁을 위해 온전히 쏟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전쟁에서 제외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수효의 다소(多小)에 관계 없이 온전한 자원자들로만 구성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여호와의 공의를 실현하는 여호와의 전쟁에는 몸과 마음이 동참하는 ‘온전한 헌신’이 요청된다는 사실과 둘째,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타인이 … 행할까 하노라. 새 집을 건축한 지 얼마 안 있어 집을 떠나 전쟁에 참전케 된 자는 집 걱정 때문에 마음이 나뉘어 전쟁에 전심전력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타 유사한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6-7절). 한편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런 자들은 1년 동안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24:5).
20:6 포도원을 만들고. 본문에서 주어지고 있는 규례가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실행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시사해 주는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광야에 거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만나로써 연명하였으며(수 5:12), 포도원을 경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포도원’에 해당하는 ‘케렘’은 ‘감람원’(왕하 5:26) 등과 같이 유실수(有實樹)를 재배하는 과수원이면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레 19:10).
먹지. [히, 할랄] 여기서 ‘먹다’의 문자적 뜻은 ‘시작하다’(3:24), ‘파하다’(시 89:31), ‘범하다’이다. 이는 곧 과실의 껍질조차 ‘벗기지’ 못한 상태임을 강조해준다.
먹지. [히, 할랄] 여기서 ‘먹다’의 문자적 뜻은 ‘시작하다’(3:24), ‘파하다’(시 89:31), ‘범하다’이다. 이는 곧 과실의 껍질조차 ‘벗기지’ 못한 상태임을 강조해준다.
20:7 약혼하고 … 결혼하지 못한 자. 보다 정확히 의역하면 ‘여자와 약혼하고 미처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한 자’이다. 유대인들의 약혼은 간음의 연고 외에는 파혼할 수 없는 사실상의 기혼 관계이나,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까지는 절대 동침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다(마 1:18). 그리고 만일 남의 약혼녀를 범하면 그를 반드시 돌로 쳐죽이도록 법규화 되어 있었다(22:23-27). 아무튼 본 절과 같은 조치는 약혼 관계에 있는 자들을 강제적으로 참전케 하기 보다는 자원하는 심정으로 참전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규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한편 24:5의 규례에 의하면, 결혼 후 1년이 채 못된 자들도 병역에서 면제시키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20:8 두려워서 … 허약한 자.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로서(창 3:10),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의 역군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첫째, 죄 문제를 해결하고 둘째, 전능자 여호와를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삼는 것이다(엡 6:10-20). 그리할 때 마음 속에 깃든 모든 두려움과 겁은 사라지고, 참된 하나님의 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형제들의 마음도 … 낙실될까 하노라. 흔히 부정적인 것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면 다른 사람들도 그에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군대 전체의 사기가 저하될 우려가 충분히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려움과 겁에 질린 자들을 사전에 군대 편성에서 제외시켜야 했다.
형제들의 마음도 … 낙실될까 하노라. 흔히 부정적인 것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면 다른 사람들도 그에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군대 전체의 사기가 저하될 우려가 충분히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려움과 겁에 질린 자들을 사전에 군대 편성에서 제외시켜야 했다.
20:9 군대의 지휘관들. 유사시에는 언제라도 군 지휘자나 장관으로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을 가리킨다(출 18:25). 한편 이와 유사한 체제는 신약시대의 로마 군대에서 찾아 볼 수 있다(행 10:1, 23:18, 27:1).
20:10 어떤 성읍. 가나안 족속을 제외한 이민족(異民族)들의 성읍을 가리킨다. 즉 본 절(10절)로부터 14절까지는 가나안 족속이 아닌 일반 타족속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를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전쟁법에 관한 언급이다(15절). (1) 선전 포고를 하기 전 반드시 먼저 화친(和親)을 제의한 다음 평화적으로 항복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10절). (2) 만약 화친 제의가 수락된다면 이스라엘은 조공을 받는 조건하에서 전쟁 대신 서로 평화를 누려야 한다(11절). (3) 만일 화친 제의가 거절된다면 전쟁을 수행하되 그 성읍의 성인 남자는 다 죽여야 한다. 그러나 여자들과 유아 그리고 재물 등은 노예나 전리품으로 취득할 수 있다(12-14절).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어떤 성읍에 대하여 무조건 선전 포고하기에 앞서, 먼저 화친을 제의하여 평화적으로 항복을 받아 내라는 말이다(삿 21:13). 이는 하나님의 섭리하에 수행되는 전쟁에 있어서도 가능한 한 피흘리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지 않고 돌이켜 사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준다(겔 18:23). 오늘날 죄인인 인간이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데,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참된 평화의 사절로 파송하셨다(요 3:16).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어떤 성읍에 대하여 무조건 선전 포고하기에 앞서, 먼저 화친을 제의하여 평화적으로 항복을 받아 내라는 말이다(삿 21:13). 이는 하나님의 섭리하에 수행되는 전쟁에 있어서도 가능한 한 피흘리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지 않고 돌이켜 사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준다(겔 18:23). 오늘날 죄인인 인간이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데,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참된 평화의 사절로 파송하셨다(요 3:16).
20:11 성문을 열거든. 싸울 의사가 전혀 없으며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분명한 표시이다. 이 경우 진정한 평화가 성립되기 위하여서는 이방 성읍 거민들이 할례까지는 강요받지 않았지만, 그들이 행하던 우상 숭배를 포기하고 종주권적(宗主權的) 계약하에 이스라엘에게 공물(貢物)을 바쳐야 했다고 한다(Keil, Matthew Henry).
공. [히, 마스] 원뜻은 사람을 기진 맥진하게 만드는 ‘짐’을 가리키나 점차 ‘강제 노동 형태의 세금’, ‘조공’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즉 이는 정복자가 전쟁에서 취하는 전리품이 아니라, 공식 계약 관계를 통하여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바치던 일정량의 상납품을 가리킨다.
공. [히, 마스] 원뜻은 사람을 기진 맥진하게 만드는 ‘짐’을 가리키나 점차 ‘강제 노동 형태의 세금’, ‘조공’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즉 이는 정복자가 전쟁에서 취하는 전리품이 아니라, 공식 계약 관계를 통하여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바치던 일정량의 상납품을 가리킨다.
20:12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서로 화친(和親)하여 공존 공영할 수 있는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이 경우 그들은 이스라엘에 의하여 격파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쌓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보응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으로도 적용되는데, 곧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는 죄인들은 그들의 죄값으로 결국 멸망당할 수 밖에 없다(마 12:20, 벧전 4:17-18).
20:13 여호와께서 … 넘기시거든. 이스라엘이 장차 수행하여야 할 전투는 영토욕이나 지배욕 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 패역한 족속들을 징계하시며 치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것 뿐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이전에 대적에 대한 독자적인 행동을 개시할 수 없었다. 오직 이스라엘 군대의 진정한 대장 되시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대적의 성읍은 이미 이스라엘 군대의 수중에 넘겨진 것과 다름없을 것이었다.
남자를 다 쳐죽이고. 여기서 ‘남자’는 군대에 나갈 만한 성인(成人)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은 한 가정의 기력(21:17)이자 나라의 힘으로 생각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멸절시키라는 것은 곧 그 족속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의미이다.
남자를 다 쳐죽이고. 여기서 ‘남자’는 군대에 나갈 만한 성인(成人)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은 한 가정의 기력(21:17)이자 나라의 힘으로 생각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멸절시키라는 것은 곧 그 족속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의미이다.
20:14 탈취물. 이에는 육축(2:35, 삼상 14:32, 대하 15:11)과 은금 패물(수 7:21, 삿 8:24-25), 그리고 옷(수 7:21, 삿 5:30, 대하 20:25) 따위 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된다. 그 까닭은 전쟁에서 포로로 취한 여자와 아이들은 당시 국가적, 개인적 노예로 삼을 수 있었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아내로 취할 수도 있었다(21:11-14).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이스라엘이 획득한 전리품(戰利品)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당한 재산으로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당신이 주신 일종의 선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들에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는 말씀을 생각케 해준다.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와 순종하는 자간의 결국은 이와 같이 극명한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이스라엘이 획득한 전리품(戰利品)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당한 재산으로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당신이 주신 일종의 선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들에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는 말씀을 생각케 해준다.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와 순종하는 자간의 결국은 이와 같이 극명한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20:15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가나안 땅에 있지 않은 성읍들, 곧 이스라엘이 장차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 때 교전(交戰)하게 될 사방의 이방 성읍들을 가리킨다.
이 민족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17절, 7:1).
이 민족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17절, 7:1).
20:16 기업. ‘물려받다’는 말의 ‘나할’에서 파생된 말로 ‘유산’, ‘상속물’, ‘점유물’ 등을 뜻한다. 즉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오랜 약속(창 12:7)을 따라 이스라엘에게 무상 증여한 양도물이자 상속물인 것이다.
호흡 있는 자. [히, 네샤마] 원래 의미로는 ‘바람’, ‘생명의 호흡’, ‘영혼’, ‘신적 영감’ 등의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처럼 오직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다른 이방 족속들에게 적용하던 전쟁의 법칙(10-14절)을 적용하지 말도록 금하고 있는 까닭은 다음 몇가지 이유에서이다. (1) 가나안 족속은 갖가지 극심한 죄악으로 인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멸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작정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9:4-5, 창 15:16). (2) 가나안 족속은 특히 가증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남겨 둘 경우,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3) 가나안 땅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우기로 작정한 성별(聖別)된 곳으로서, 그곳에는 그 어떠한 죄악의 요소도 ‘절대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겨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화친을 제의함 없이 가나안 족속들을 모조리 멸절시키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호흡 있는 자. [히, 네샤마] 원래 의미로는 ‘바람’, ‘생명의 호흡’, ‘영혼’, ‘신적 영감’ 등의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처럼 오직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다른 이방 족속들에게 적용하던 전쟁의 법칙(10-14절)을 적용하지 말도록 금하고 있는 까닭은 다음 몇가지 이유에서이다. (1) 가나안 족속은 갖가지 극심한 죄악으로 인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멸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작정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9:4-5, 창 15:16). (2) 가나안 족속은 특히 가증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남겨 둘 경우,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3) 가나안 땅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우기로 작정한 성별(聖別)된 곳으로서, 그곳에는 그 어떠한 죄악의 요소도 ‘절대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겨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화친을 제의함 없이 가나안 족속들을 모조리 멸절시키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20:17 헷 족속 … 여부스 족속. 이 족속들에 기르가스 족속을 더하여 소위 가나안의 후기 일곱 족속이라 한다. 이들은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초기 원주민들을 대신하여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오랫 동안 세력을 떨쳐 왔으나 결국 기원전 14세기 경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하고 만다.
진멸하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열국들을 진멸하는 것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축과 호흡 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남녀노소 모두를 진멸하라고 지시하셨는가?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품성과 조화될 수 있는가?
이 구절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은 공의와 따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공의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아신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죄를 근절해야 할 때가 온다. 하나님의 공의가 홍수 때에 나타났고(창 6-9장), 악인이 파멸될 역사의 마지막(계 21-22장)에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와 신실한 자들을 위한 사랑으로 악을 근절하여 인류가 함께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신다.
이 지시들은 역사에서 일어난 그 사건들의 상황 및 가나안 사람들의 더 광범위한 역사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로부터 야곱이 애굽에 들어갈 때까지 200 년 넘게 부족장들과 그들의 족속들은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나타냈으나 가나안의 거민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의 파멸은 하나님을 거절하기로 한 자신들의 선택과 온갖 종류의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데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들어가 400 년 동안 유배되어 압제를 받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것이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되었다. 그렇게 오래 지체한 이유가 창 15:13-16에 설명되어 있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창 15:16). 가나안 민족들이 자신들의 악한 행실로 멸망의 잔을 서서히 채우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수백 년을 참으셨다.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소위 신성한 매출을 포함한 우상숭배의 행습을 묘사하는 가나안의 문서들을 보면 그들의 타락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낸 것은 이스라엘이 더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신 9:5).
진멸하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열국들을 진멸하는 것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축과 호흡 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남녀노소 모두를 진멸하라고 지시하셨는가?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품성과 조화될 수 있는가?
이 구절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은 공의와 따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공의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아신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죄를 근절해야 할 때가 온다. 하나님의 공의가 홍수 때에 나타났고(창 6-9장), 악인이 파멸될 역사의 마지막(계 21-22장)에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와 신실한 자들을 위한 사랑으로 악을 근절하여 인류가 함께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신다.
이 지시들은 역사에서 일어난 그 사건들의 상황 및 가나안 사람들의 더 광범위한 역사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로부터 야곱이 애굽에 들어갈 때까지 200 년 넘게 부족장들과 그들의 족속들은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나타냈으나 가나안의 거민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의 파멸은 하나님을 거절하기로 한 자신들의 선택과 온갖 종류의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데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들어가 400 년 동안 유배되어 압제를 받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것이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되었다. 그렇게 오래 지체한 이유가 창 15:13-16에 설명되어 있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창 15:16). 가나안 민족들이 자신들의 악한 행실로 멸망의 잔을 서서히 채우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수백 년을 참으셨다.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소위 신성한 매출을 포함한 우상숭배의 행습을 묘사하는 가나안의 문서들을 보면 그들의 타락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낸 것은 이스라엘이 더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신 9:5).
20:18 그 신들. 다신(多神) 사상에 깊이 빠졌던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모든 거짓 신과 우상들을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바알’(왕상 16:31), ‘아스다롯’(삿 2:13, 삼상 12:10), ‘하늘 황후’(렘 7:18), ‘엘’(El) 등이 있다.
가증한 일. 7:26, 레 18:22 주석 참조.
본받게 하여 … 범죄하게 할까.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B.C. 1405-1390) 이후부터 바벨론 포수와 회복기(B.C. 586-400)까지의 구약 전 역사를 통하여 우상 숭배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로부터 징벌을 받기도 하고 축복을 받기도 하였다. 즉 여호와를 섬기느냐 아니면 우상을 섬기느냐 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11:26-25, 왕상 14:9-10). 따라서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서든 미혹되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엄히 경계하여야 했는데, 그 근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택함받은 백성들의 첫째 가는 의무였기 때문이다(출 20:3, 말 2:2).
가증한 일. 7:26, 레 18:22 주석 참조.
본받게 하여 … 범죄하게 할까.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B.C. 1405-1390) 이후부터 바벨론 포수와 회복기(B.C. 586-400)까지의 구약 전 역사를 통하여 우상 숭배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로부터 징벌을 받기도 하고 축복을 받기도 하였다. 즉 여호와를 섬기느냐 아니면 우상을 섬기느냐 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11:26-25, 왕상 14:9-10). 따라서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서든 미혹되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엄히 경계하여야 했는데, 그 근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택함받은 백성들의 첫째 가는 의무였기 때문이다(출 20:3, 말 2:2).
20:19 그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아무리 한 성읍을 진멸시키기 위한 전쟁이라 할지라도 필요 이상의 무모한 파괴 행위를 일삼아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사실 유익한 과목(果木)을 함부로 찍어버리는 행위는 결국 이스라엘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무분별한 파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본 규례는 자연을 보호하시기까지 함으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증거해 준다.
들의 수목. ‘들’에 해당하는 ‘사데’는 ‘들’, ‘거친 땅’, ‘흙’ 등과 같은 의미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본 절을 ‘들에 서 있는 나무’로 번역하였다. 아마 이는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나무를 가리키는 것 같다.
들의 수목. ‘들’에 해당하는 ‘사데’는 ‘들’, ‘거친 땅’, ‘흙’ 등과 같은 의미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본 절을 ‘들에 서 있는 나무’로 번역하였다. 아마 이는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나무를 가리키는 것 같다.
20:20 성읍을 치는 기구. 여기서 ‘치는 기구’(히, 마초르)란 말은 ‘에워싸다’(히, 추르)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곧 성읍을 둘러싸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방벽’(rampart)과 ‘성채’(bulwark), 기타 여러 공성(攻城) 무기를 가리킨다(삿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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