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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네가 … 인도하여 낸 백성. 32:7과 동일한 말로,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해 파기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당신께서 직접 인도하시기 보다는 마치 인간 지도자 모세가 한 것처럼 말씀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낯설은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분명 본 절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0:2)는 친밀한 말씀과는 대조를 이룬다.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기로 약속된 가나안 땅을 뜻한다(창 12:7, 13:15, 17:8, 28: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손상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므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을 일단 가나안 땅으로는 인도하실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Wycliffe).

올라가라. [히, 알라] 원뜻은 ‘깨어나다’, ‘출발하다’, ‘도약하다’ 혹은 ‘복구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 속에는 전장(前章)의 사건으로 인한 침체 상태에서 깨어나 도약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33: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 쫓아내고. 이 말은 가나안 정복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23:20, 32:34).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과 영적 싸움을 싸우나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싸울 뿐이다(골 1:29). 한편 ‘사자’에 관해서는 23:20 주석을 참조하라.

가나안 사람 … 여부스 사람.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 7족속’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3:8 주석을 참조하라.

 

33:3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여기서 ‘젖’은 우유를 가리키는데, 양과 염소의 젖까지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흐르다’(주브)는 ‘차고’, ‘넘치는’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설명은 3:8 주석을 참조하라.

나는 …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나대로 하게 하라’(32:10), 즉 일종의 관계 단절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백성만 따로 올라가라고 하심으로써 이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1절의 ‘네가 …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애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계약 파기로 인한 불화의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목이 곧은 백성.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백성’이란 뜻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순종하거나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억척스런 고집이나 패역한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종종 쓰이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직역하면 ‘너희를 진멸하지 않도록’이다. ‘진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은 원래 ‘먹다’란 뜻인데 여기서는 지체없이 ‘먹어치우다’, ‘태워버리다’는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하면, 그들이 또다시 범죄할 경우 하나님의 공의가 가차없이 그들을 진멸하고 말 것이니,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일종의 자비의 표현이다.

 

33:4 준엄한 말씀. [히, 하다바르하라] ‘나쁜(라) 말씀(다바르)’ 혹은 ‘슬픈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을 하신 것(3절)은 광야 지대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해야 할 백성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되었음을 뜻한다.

단장하지 아니하니. 직역하면 ‘장신구를 몸에 달지 않았으니’이다. 이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에 대하여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외적으로 나타낸 행위인데(창 37:29, 삼하 1:11, 욘 3:6-8), 애도의 기간에 몸에서 장신구를 떼는 것은 당대의 일반적 관습이었다(Knobel). 한편 백성들은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금고리를 내놓았는데(32:2, 3) 그렇게 하고도 또 다른 장신구가 있었음을 볼때 출애굽시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패물을 받아 나왔음을 알 수 있다(12:35, 36).

 

33:5 목이 곧은 백성. 3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 순간이라도. (눈의) ‘깜박임’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깐 동안이라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는 하나님이 잠깐만이라도 이스라엘과 함께 있으면 이내 그들의 죄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성경의 증거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창 6:5).

장신구를 떼어 내라. 여기서 ‘떼어 내라’로 번역된 동사 ‘야라드’의 의미는 ‘내려가다’인데,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아래로) 던지다’, ‘끌어내리다’란 뜻이 된다. 따라서 이말은 ‘단장품을 내어 던지라’는 의미이다. 한편 장신구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다. 따라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야곱이 옛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땅에 묻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창 35:1-4).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장신구를 애굽사람들로부터 받았는데(12:35, 36), 그것들을 몸에 부착함으로써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상 숭배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결국에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를 과감히 떼어 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처럼 비록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이 죄와 연결될 때에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정확한 표현은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알 것이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알다’(야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알리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결정하리라’(NEB: I will determine what to do to you, NIV: I will decide what to do with you)로 번역하였다.

 

33:6 호렙 산. ‘시내 산’과 동일 지명으로(신 4:10-15, 왕상 8:9)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거주하였던 장소를 가리킨다(19:2).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33:7 장막을 취하여 … 회막이라 이름하니.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는 ‘회집(會集)의 장소’, 즉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란 뜻이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보이는 형상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영향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후 모세는 시내 산상에서 계시받은 성막(25:9)을 짓기 전, 그 성막의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긴급히 느꼈는데, 이에 그는 이스라엘 진 바깥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일컬어 회막이라 명명한 것이다(Rosenmüller). 한편 이 명칭은 후에 세워진 정식 성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30:18, 26, 39:32, 40:2, 34).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회막이 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회막이 진 바깥에 있게 됨에 따라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곳, 즉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진으로부터 나와 회막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33:8 일어나 … 서서. 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다(신 27:12, 13, 느 8:5, 7).

 

33:9 구름 기둥.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보이는 상징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13: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세가 진 밖에 설치한 회막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지시하신 정식 성막(25:1-31:18)이 아니고 금송아지 숭배 사건 후 임시로 지은 것인데. 여기에도 구름 기둥이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지은 회막 가운데라도 임재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장소를 막론하고 찾아와 함께 해주심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33:10 모든 백성이 …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이 구름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앞서가며 인도하던 것이다(13:21, 22). 따라서 백성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그 구름 기둥이 다시 회막 위에 나타난 것올 보았다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여기서 ‘예배하다’의 ‘샤하’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똑같이 사용된 말이다(32:8). 즉 그들은 하나님(4:31)→금송아지→다시 하나님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7절).

 

33:11 친구. [히, 레에] ‘친구로서 대우하다’, ‘우정을 맺다’라는 뜻의 ‘라아’에서 온 말로 특히 ‘남자 친구’, ‘동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동료로 대하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이 ‘친구’로 칭하신 사람으로서는 모세 외에 아브라함이 있으나(대하 20:7, 사 41:8)이때 사용된 ‘벗’(아하브)은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랑스런 친구’, ‘애인’ 등의 의미를 가진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스런 벗으로 대한데 반해, 모세는 동료로서 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환’(히 3:5)이라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면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의 문자적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face to face)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실제로 모세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한 것을 가리키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우림 혹은 선지자를 통해(삼상 28:6)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데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과 같은 손발이나 얼굴 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20절, 딤전 6:16). 따라서 이 말은 그 만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눴다는 뜻이다. 실로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도 누리지 못할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과 누린 자였다(민 12:8).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롤 담당하지 않고 이처럼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며 (1)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32:1-6)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이끈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민 13:8, 16)가 회막을 떠나지 않고 봉사한 일은, 엘리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에브라임 출신의 사무엘이 성소를 떠나지 않은 사실(삼상 1:1, 3:3)과 유사하다. 이처럼 두 사람이 다 같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 이 무렵 여호수아의 나이는 39세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수 14:7). 그런데 ‘젊은 수종자’이라는 말이 굳이 ‘여호수아’를 수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1) 먼저 클라크(Adam Clarke)는 ‘젊은 수종자’이라는 히브리어 ‘나아르’를 ‘독신’ 또는 ‘미혼자’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였다. (2) 이에 반해 안스워스(Answorth)는 ‘청년’을 ‘수종자’에 대한 일반적 호칭(24:5, 창 14:24)으로 보고 있다. (3) 마지막으로 칼뱅 (Calvin)은 나이 많은 장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젊은 여호수아를 회막 관리자로 임명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견해 중 가장 타당한 것은 세 번째인 것 같다.

 

33:12 나와 함께 보낼 자. [히, 아쉐르 티쉘라흐 임미] 여기서 ‘쉘라흐’는 ‘보내다’는 뜻 외에 ‘임명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나와 함께 (당신이) 임명할 자’ 혹은 ‘나에게 (당신이) 보낼 자’의 의미이다. 즉 모세는 출애굽 역사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임명한 동역자였던 아론(4:14-16)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하나님께 새로운 동역자 또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여호수아를 후계자와 동역자로 세워 주셨다(민 27:15-23). 그런데 혹자는 이 말을 하나님이 여러차례 언급하신 ‘사자’(2절, 23:20, 32:34)를 보내달라고 간구한 것으로도 이해하는데, 전후 문맥상 전자(前者)의 견해를 취하는 편이 무난하다.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여기서 ‘지시하다’란 원어 ‘야다’는 ‘대답하다’, ‘알리다’(알게 하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알려주지 아니하시나이다’로 번역하면 원문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다.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직역하면 ‘이름에 의해(이름으로) 너를 안다’이다. 이처럼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전인격적으로 아는 친숙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Keil).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특별한 교제를 나누고 계심을 의미한다. 한편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0:7 주석을 참조하라.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직역하면 ‘너 역시 내 눈에서 은혜를 찾았다’로, 여기서 ‘눈’을 뜻하는 ‘아인’에는 ‘만족하다’, ‘기쁘게 하다’, ‘좋게 생각하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틀 나누며 또한 그분에게서 이러한 ‘은혜’까지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향해 노를 발하셨으면서도(4:14), 친구처럼 대면해서 이야기할 만큼(11절) 큰 은혜를 입었다.

 

33:13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앞 절의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란 말과 같은 뜻이다.

주의 길. 칼뱅(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핏 주석(Pulpit Commentary)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각기 이해하였다.

내게 보이사. ‘내게 알리사’, ‘내게 깨닫게 하사’란 뜻으로 앞 절의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이 족속. [히, 하고이하제] 정확히 번역하면 ‘이(하제) 민족(하고이)’이다. ‘민족’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이’에 정관사(하)가 붙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강조하는데, 특히 방금 전까지 죄를 지었던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를 향해 ‘네 백성’이라고 하여 이스라엘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하나님(32:7)께 모세는 재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여기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고려하다’, ‘숙고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비록 죄를 지어 계약을 파기한 ‘그 민족’(하고이)이지만 다시 고려해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재심 청원(再審請願)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33:14 내가 친히 가리라. 문자적으로는 ‘내 얼굴이 갈 것이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내 존재가 갈 것이다’(My presence will go)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아름답게 서로 어우러져 다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너를 쉬게 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인도해 가심으로써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가나안 입성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33:15 15-16절은 하나님의 약속(14절)에 근거해 모세가 백성들 전체를 확신시킬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표를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33:16 주의 백성을 … 구별하심이. 주의 백성된 자들의 가장 큰 증거는 구별됨이다(롬 1:6, 7).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이며 또한 어둠, 사망,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구별됨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이 가능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어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요 16:33). 즉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이 덧입혀 주시는 권능 때문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33:17 이 일도 …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와 같이 언약 백성(32:13)으로 인정하여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2절 주석 하반부 참조.

 

33:18 주의 영광. 이것은 지금까지 나타난 바 있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영광의 모습(3:2, 24:15, 16)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과 본체의 모든 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영광된 모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단지 그 영광의 잔영만을 보여 주시었다(23절).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성을 감안한 은혜스런 조치였다(20절).

 

33:19 모든 선한 것. [히, 콜투비] 이는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 선포하리라. 여기서 ‘선포하다’란 원어 ‘카라’는’선언하다’, ‘선포(공포)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 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리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성 또는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미이다(34:6, 7).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20:7).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은헤를 베풀다’(be gracious)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난’은 ‘호의를 베풀다’, ‘은혜롭게 대하다’는 뜻으로 윗 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는 아랫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베푸는 은혜’를 의미한다(Wycliffe). 따라처 은혜를 받는 사람보다는 은혜를 베푸는 측에 더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이 동사의 주어가 대부분 하나님으로 나와 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는테 대표적인 것이 ‘요하난’(남자 이름)과 ‘한나’(여자 이름)이다. 그리고 서구의 이름중 ‘죤’(John), ‘요한’(Johann), ‘쟝’(Jean), ‘얀’(Jan), ‘후안’(Jaan) 등은 ‘요하난’으로부터, ‘앤’(Anna), ‘낸시’(Nancy)등은 ‘한나’로부터 파생한 것이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다’, ‘측은히 여기다’란 뜻의 동사 ‘라함’의 기본 의미는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이다. 따라서 선지사 이사야는 젖먹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고(사 49:15),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시 103:13).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고 있는 강한 결속의 개념(시 103:13)과 (2) 본 절과 같이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을 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3:20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죄인된 인간, 즉 타락 후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신(히, 바사르 / 헬, 사륵스)을 덧입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본체적 속성에서 우러나오는 그 거룩하신 영광의 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딤전 6:1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사 6:1-5). 그러므로 성경상 하나님을 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 혹은 그 상징적 형태를 보았다는 뜻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18절)를 보았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3:21 21-23절. 이 부분은 엘리야의 이야기와 유사한 면이 있다(왕상 19:11-18). 두 사람 모두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모세는 하나님이 지나가실 때 반석 틈 사이에 숨어 있었으며, 엘리야는 굴 어귀에서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두 사람은 모두가 이스라엘의 민족적 영웅으로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지만 이처럼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없었다는 사실은 어떤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 앞에서 설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Lange).

반석. [히, 추르] 본래 의미는 ‘절벽’이며 일반적 의미는 ‘바위’인데 상징적으로 ‘피난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를 ‘반석’에 두겠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피난처에 숨기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성경에서 ‘반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신 32:15, 삼상 2:2, 시 89:26),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피난처이자 구원하는 능력이심을 나타낸다.

 

33:22 두고. [히, 사므티카] ‘두다’, ‘놓다’, ‘돌보다’는 뜻의 동사 ‘숨’의 미래형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시겠다는 의미이다.

덮었다가. [히, 사코티] 기본형 ‘사카크’는 ‘울타리를 두르다’, ‘뚜껑을 덮다’(25:20), ‘방어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직접적 현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손수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33:23 거두리니. 이에 해당하는 ‘수르’는 ‘떠나다’, ‘피하다’, ‘물러나다’, ‘제거하다’는 의미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잔재를 볼 수 있도록 특별 보호 조치를 잠시 해제하겠다는 뜻이다.

내 등을 볼 것이요.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18절). 그것은 하나님의 현재적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죄인된 사람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反影)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을 볼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의미인테 이는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 ‘등’(back)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반영(反影)을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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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07장
1132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08장
1131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09장
1130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0장
1129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1장
1128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2장
1127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3장
1126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4장
1125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5장
1124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6장
1123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7장
1122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8장
1121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19장
1120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0장
1119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1장
1118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2장
1117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3장
1116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4장
1115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5장
1114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6장
1113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7장
1112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8장
1111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29장
1110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0장
1109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1장
1108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2장
»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3장
1106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4장
1105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5장
1104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6장
1103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7장
1102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8장
1101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39장
1100 출애굽기 만나 주석, 출애굽기 40장
1099 레위기 만나 주석, 레위기 01장
1098 레위기 만나 주석, 레위기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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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0 레위기 만나 주석, 레위기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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