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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번성하기 시작할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선 아담의 범죄 이후 모두가 죽을 운명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인간에게 장수(長壽)를 허용하사 많은 자녀를 갖게 하셨다.

딸들.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다’란 말은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6:2 하나님의 아들들. 이 말은 다음의 3 가지 해석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천사들로 보는 견해: 고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어떤 해석자들은 욥 1:6, 2:1, 38:7 등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언급에 기초하여, 이들이 초자연적 존재 곧 타락한 천사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LXX, Josephus, Tertullian, Luther, Baumgarten, Kurtz, Alford).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이어서 나오는 “사람의 딸들”은 이 초자연적 존재들과 성적 관계를 맺어 자손을 낳은 여인들을 말한다. 이들의 자손은 반(半) 초자연적 존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천사들은 결혼하지 않는다는 예수의 말씀과 상충된다(마 22:30).

(2) 폭군들로 보는 견해: 이 이론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러 아내를 원하는대로 취함으로써 일부다처를 행한 폭군들이라고 주장한다(Onkelos, Symmachus, Aben Ezra). 이 견해는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삼는다(삼하 7:14, 대상 28:6). 더욱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도 때때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으로 지칭된다(출 7:1). 그래서 이 해석에서는, “사람의 딸들”은 그러한 폭군들의 후궁으로 취해진 왕족 태생이 아닌 여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자손들이 “용사”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왕들에 대한 언급이 이 구절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이런 견해와 어긋난다. 더욱이 구약에서 때로 왕 개인이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되기는 하지만(시 2:7), 성경이나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일단의 왕들에게 이런 칭호를 붙인 증거는 없다.

(3) 셋의 후예로 보는 견해: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셋”의 자손이었고, “사람의 딸들”은 부패하고 불경스런 가인의 후예였다고 보는 견해이다(Augustin, Calvin, Lange, Keil, Wordsworth).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인간 존재도 가리킬 수 있다. 눅 3:38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시 82:6에서 인간이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본 절에 묘사된 부도덕한 관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불쾌하심이 유발되었다면, 천사들의 죄 때문에 인간이 벌을 받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홍수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의인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지칭하는 관습은 성경의 다른 곳에도 나타난다(신 14:1, 사 43:6, 말 2:10). 이 견해에 따르면, 셋의 자손들은 그들의 영적인 원칙들을 버리고, 가인의 후손들과 결혼하여(아마도 일부다처) 자손을 낳았고, 그들이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이 견해는 천사와의 결혼을 지지하지 않으며 구약 전체의 문맥과 일치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엘렌 지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창 6:2)았다. 셋 자손들이 가인의 후손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들과 통혼함으로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였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 앞에 끊임없이 이르러오는 유혹으로 말미암아 현혹되어 죄에 빠졌다. 그들은 독특하고 거룩한 품성을 잃어버렸다. 타락한 자들과 섞임으로 그들은 정신과 행동에 있어서 그들과 같이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81).

아름다움. [טוֹב 토브]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성격상에 있어서의 사랑스러운 면을 뜻할 수도 있으나 여기선 외견상의 ‘미모’를 의미한다(24:16, 단 1:15).

보고. [רָאָה 라아] 단순히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주목하거나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20:7, 시 31: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씨 등과 같은 응당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면적 아름다움은 외면한 채 인간의 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간에 당시의 모든 사람이 전도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증언해 주는데 이처럼 온 사회가 타락 일변도로 흘러갈 때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 패망일 수밖에 없다(7절).

좋아하는. ‘선택하다’, ‘지정하다’는 뜻.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을 좇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고후 10:7).

아내. [נָשִׁים 나쉼] ‘אִשָּׁה 이샤’(2:24, 3:20, 4:17)와 교체하여 쓸 수 있는 단어로 ‘아내’ ‘부인’(4:19, 삿 8:30)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인’(신 20:14, 느 8:3)을 뜻하기도 한다.

삼는지라. [לָקחַ 라카흐] 4:19에서는 ‘맞이하였으니’로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6:25, 민 12:1).

 

6:3 나의 영이 …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영(רוּחַ 루아흐)은 문자적으로 ‘바람’(8:1), ‘호흡’(7:22), 상징적으로 ‘마음’(26:35), ‘정신’(삿 15:19), ‘영감’(왕하2:9)을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신’(34:9), ‘영’(왕상22:21)을 뜻하기도 하므로 혹자는 ‘나의 영’을 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여기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을 뜻할 수 있는데, 인간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그 인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17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육신(בָּשָׂר 바사르)는 헬라어 ‘사륵스’와 같은 의미로 단순한 ‘몸’(15:4, 고전 6:15)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롬 8:6).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백이십 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벧후 3:9).

 

6:4 네피림. [נְּפִלִים 네필림] 이 말의 기원과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1) 이 말이 ‘비범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팔라’와 연관된다면 이 말은 단순히 ‘비범한 사람’을 가리킨다. (2) 이 말이 ‘떨어지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נָפַל 나팔’에서 나왔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떨어진’(타락한) 사람들 또는 다른 사람들 위에 ‘떨어진’ 사람 곧 침입자나 폭력적인 적(敵)을 의미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Hoffman, Delitzsch)은 (2)번의 뜻에서 유추하여 ‘네피림’을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의 후손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사가 자녀들 낳는다는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마 22:30). 튜크(Tuch)나 크노벨(Knobel) 같은 학자들은 이들을 ‘괴물’(monster) 또는 ‘신동’(神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은 네피림을 ‘장부’(丈夫)란 뜻의 ‘기간테스’로 번역했고, 불가타역(Vulgate)과 제임스왕역(KJV)도 70인역을 따라 ‘용사’, ‘거인’이라고 번역하여,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혈족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그 신체적 특성상 장부나 거인으로 불릴 수 있는 일단의 사람 혹은 족속을 가리키는 말로 보았다.
또한 그 신체적 특징은 도덕적 특성까지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체로 훼방꾼, 무법자, 난폭꾼, 가해자등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노아 당시의 ‘네피림’이란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꾼들’ 또는 ‘침략자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uther, Calvin, Keil, Murphy).

한편 민수기에는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민 13:33)다고 나온다. 이 구절에 의하면, 그들은 거구였고(혹은 거구라고 느껴졌고), 따라서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때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그 땅 족속들의 모습이 마치 홍수 전 노아 시대의 네피림 같이 장대하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말한 것 같다.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예고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전의 타락한 행실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해서는 본 장 2절의 주석을 참고하라.

용사. 문자적 뜻은 ‘강한 자’, ‘힘센 자’, ‘우두머리’ 당시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던 힘세고 강한 영웅이었거나 아니면 많은 하수인을 거느렸던 압제자였음을 의미한다. 즉 이들은 전쟁과 약탈, 방종과 사치 등이 난무하던 홍수 이전 시대 그 타락의 주역들이었다.

고대에. [עוֹלָם 올람] 헬라어 ‘아이온’과 같이 ‘오래 전’, ‘영원’(눅 1: 70, 고전2:7)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3절: 17:7: 왕하 5:27).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노아 홍수는 “고대”의 사건이었다.

명성이 있는. [שֵׁם 솀] 좋은 의미에서는 명예나 명성을 얻는 것을 뜻하지만(신 26, 19, 단9:6) 나쁜 의미에서는 본 절과 같이 악명(惡名)을 날리는 것을 뜻한다.

 

6:5 죄악. [רַע 라] ‘라아’(깨뜨리다, 상하게 하다, 쓸모없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어기거나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를 의미한다(39:9, 사47:10).

가득함. 원어 ‘רַבָּה 라바’는 ‘크다’, ‘충분하다’, ‘너무 많다’는 뜻(대상23:17, 시 130:7). 이는 당시 사람들의 죄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깊이 뿌리를 박은 지속적인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타락한 이후 인류가 지니게 된 보편적 죄성(罪性)을 증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칼뱅(J. Calvin)은 이에 근거하여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영적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설’(Total Depravity)을 주장하였다(롬 3:9-18). 한편 여기서 마음(לֵב 레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17:17). 그리고 생각(마하샤바)은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삼하 14:14, 잠16:3, 렘18:12). 또한 계획(에체르)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을 뜻하며(8:21, 신 31:21) 악하다는 것은 앞에 나온 죄악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일 단어이다.

보시고. [יַּרְא 야르] ‘רָאָה 라아’(바라보다, 주목하다, 발견하다)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소위(所爲)와 그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를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셨음을 의미한다.

 

6:6 지으셨음을. [עָשָׂה 아사] 여기에 ‘בָּרָא 바라’(창조하다) 대신(7절) ‘아사’가 쓰인 것은 자신이 최고의 애정을 기울여 만든 인간을 전멸시켜야 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극한 아픔을 강조키 위함이다(5:1).

한탄하사. [נָחַם 나함] ‘후회하다’는 뜻과 함께 ‘위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5:29). 그런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하신 일에 대해 후회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선 인간이 아닌 전지 전능한 지존자(至尊者)로서 결코 변개치 않으시기 때문이다(삼상 15:29). 다만 이는 인간의 비극적 타락에 대해 갖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측면에서 묘사한 말일 뿐이다. 창 18:21, 삼상 15:11 주석 참조.

마음에 근심하시고. 직역하면 ‘그의 마음에 새기셨다’. 즉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 상황을 보신 하나님께선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극심한 아픔으로 느끼셨다는 뜻이다(시 78:40). 이상에서 우리는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조차 사랑을 쉽게 단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알 수 있는데(눅 15:11-24),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것을 준행함으로 더 이상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는 것이다(롬12:2).

 

6:7 내가 창조한 사람.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가 아니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만일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함께 방종을 일삼는 타락한 천사였다면 하나님께선 본 절에서 ‘내가 창조한 사람과 천사를 멸절시키리라’는 심판을 선고하셨을 것이다(3:14).

쓸어버리되. [מָחָה 마하] 문자적 뜻은 ‘씻다’(왕하 21:13), ‘지워버리다’(출32:32), ‘닦아내다’이다. 하나님께서 물로써 깨끗이 쓸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해 주며 또한 그 심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파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출17:14).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3:17에 이어 다시 한번 인간의 죄책(罪責)과 그 영향이 자연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계까지 확산된 점은 (1) 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주권성과 (2) 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예속성을 보여 준다. 한편 여기서 가축(בְּהֵמָה 베헤마)은 본래 소나 말처럼 몸집이 큰 네 발 짐승을 가리키나 본 절에서 모든 가축을 뜻하는 집합적 의미로 쓰였다(1:24, 7:14). 그리고 기는 것(רֶמֶשׂ 레메스)은 ‘רָמַשׂ 라마스’(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파충류(1:24, 왕상 4:33)와 곤충(합 1:14)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새(עוֹף 오프)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닐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의미하나(레 11:21) 성경에선 대개 ‘새’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1:20, 호 4:3).

 

6:8 여호와께.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에’, 이는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게 된 까닭이 그분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점이 있었기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9절).

은혜. [חֵן 헨] ‘חָנַן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3)와 고생하는 자(시 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자비등을 의미한다(30:27, 출 33:12).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חֵסֵד 헤세드’(렘 9: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단어이다(9절).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나(롬 3: 10-12)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측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 확인할 수 있다(계 3:20).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이 말은 이후 전개될 이야기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노아를 중심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사’에 초점을 맞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의인. 전혀 무죄하거나 흠없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래도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전 7: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노아의 이 같은 노력을 높이 평가하사 ‘의’(義)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당대에. ‘그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라는 뜻이다. 이는 노아가 의롭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 절대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상대적 개념에서 그렇다는 뜻임을 드러내 준다. 이처럼 성도도 본시 불신자와 다름없는 죄된 성품을 지닌 자요 육적 죽음이 예정된 자이긴 하나 그래도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로 경건한 삶을 살아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후 2:15).

완전한 자. 모든 행위가 한 절 티도 없이 완전하다거나 전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잠 28:18).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의인’, ‘완전한 자’로 불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한 가운데서도(11절) 그분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라 그의 말씀과 더불어 동행하는 곧고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토록 분에 넘치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5:22). 그런데 하나님께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내가 온전한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명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딤전 4:12)등,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우리의 삶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딤전 4:15).

 

6:10 5:32과 거의 동일 구절이긴 하나 그 진술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즉 5:32은 구속사의 주역이 될 새로운 족속의 시조(始祖) 출현을 암시하고 있으나 본 절은 노아의 신앙과 경건성이 그의 아들에게도 영향 미쳤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그의 아들 셈의 계보에서 위대한 신앙의 인물 아브라함이 출현한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11:27).

세 형제의 출생 순서는 야벳, 셈, 함 순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창 5:32의 주석을 참고하라.

 

6:11 때에.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온 땅. 직역하면 ‘그 땅’, 당시 지상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2:1)이다.

포악함. ‘포악’, ‘흉악’을 의미한다(삿 9:24, 겔 7:11). 즉 강도, 살인, 약탈, 강간 등과 같은 악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뜻하는데 곧 그러한 온갖 무법 현상이 노아 시대에 횡행하고 있었음을 증언해 준다.

가득한지라. 완료형으로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어 밖으로 흘러 넘칠 정도로 꽉 찬 것을 의미한다(수 3:15). 이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한시도 심판을 지체하실 수 없을 만큼 시대의 타락상이 무르익었음을 보여 준다.

 

6:12 하나님이 보신즉.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영이시다(요 4:24). 그러나 성경은 우주와 인간을 섭리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요 5:17)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이처럼 의인적 표현을 많이 쓴다(출 15:17, 신 11:12, 왕상 8:42, 시 8:6). 그 가운데 본 절과 같은 표현은 (1) 하나님이 인간의 외면과 더불어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므로 인간은 그 앞에서 결코 변명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점과 (2) 그분의 판단은 정확하며 한 치의 오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준다.

행위. 습관적으로 굳어진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겔 20:30).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습속(習俗)이 타락 일변도로 고정되어 있어 갱생시키기 매우 힘든 상태였음을 나타내 준다.

 

6:13 노아에게 이르시되. 후일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 주시는 것처럼(18:17) 하나님이 노아에게 장차 있을 대홍수 심판을 미리 알려주시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계획과 비밀을 계시하여 주시는데(시 25:14) 이는 (1) 환란 가운데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 아니라(요 17:12) (2) 그로 하여금 세상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여 악인이라도 그 경고를 듣고서 돌이켜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겔 33:11).

끝 날. 시간에 있어서의 끝, 즉 ‘멸망의 때’를 가리킨다(욥 6:11, 단 11:40).

내 앞에 이르렀으니. 어떤 사건이나 때가 임박했음을 뜻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삼하 22:6, 시 18:5, 요 7:6)이다.

멸하리라. 11, 12절에서는 ‘부패하다’로 번역된 단어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타락하거나 부패한 자의 결국은 멸망일 수 밖에 없음을 교훈해 준다.

 

6:14 고페르 나무. 개역한글판에는 ‘잣나무’로 번역되어 있다. 선박이나 성문, 관 등과 같이 강한 내구성이 요구되는 구조물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침엽수류의 수지성(樹脂性)나무이다. ‘고페르’란 단어는 성경에서는 이곳밖에 나오지 않는다.

방주. 히브리어로 ‘방주’를 뜻하는 테바(תֵּבָה)라는 단어는 이집트에서 유래한 흔치 않은 외래어로써, 이집트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보존된 모세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었던 “갈대 상자”와 같은 것이다(출 2:3).
또한, 어떤 이들은 방주의 전반적인 구조가 성막에 있던 궤와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한다(출 25:10). 홍수 때의 방주가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출 25:22)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가리킨다.
노아와 모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상자(테바)의 유사성은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구속의 기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일부로 묘사된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행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참조, 히 11:7). 그는 순종을 통해 나타나는 믿음에 대한 좋은 예가 되었는데(약 2:20) 그와 같은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믿음이다.
또한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예비된 방주는 그 기원과 기능에 있어 신약 시대 ‘교회’에 자주 비유된다. 즉, 둘다 그 기원이 ‘신적’이며, 그 기능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칸들을 막고. ‘여러 칸의 방들을 만들라’는 뜻. 둥우리 같은 작은 방들을 말하는데 이러한 방은 노아의 식구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18절) 각종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구분, 유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19, 20절).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정확한 치수와 건축에 관하여 세부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확실한 지시를 주셨다. 인간의 지혜로는 그렇게 강력하고 내구성 있는 큰 건축물을 고안해 낼 수 없었다. 하나님은 설계자이시고 노아는 건축가였다”(엘렌 화잇, 부조와 선지자, 92).

 

6:15 방주는 항해용 배(ship)가 아니라 단순히 물 위에 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큰 형태의 배(ark)였다. 방주의 크기에 대한 설명은 창 7:2의 주석을 참고하라. 의문점은 당시 선박 건조술이 발달치 못하였던 상황에서 그토록 큰 방주를 어떻게 건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1) 배의 구조가 극히 단순하였다는 점 (2) 선박 건조 기간이 120년이었다는 점(3절) (3) 고대에는 인근에서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그 같은 의문은 해소될 수 있다.

 

6:16 창. [צֹהַר 초하르] 원뜻은 ‘빛’이지만 여기서는 채광과 통풍을 위한 ‘창문’을 의미한다. 방주에는 이러한 창이 꼭대기에서부터 45.6cm되는 지점에 빙둘러가면서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이처럼 갑판을 삼층으로 한 까닭은 적재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주에는 노아의 가족 및 각종 짐승들 외에도 그들이 1년여간 사용해야 할(8:14) 식량과 생활용품을 적재하여야 했기 때문이다(21절). 한편 체적(體積)에 따른 용적량 산출법에 의거하면 방주의 최대 선적량은 약 14,000t에 달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6:17 홍수. 직역하면 ‘물의 범람’이다. 홍수의 엄청난 위력을 강조해 준다.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 인간뿐 아니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물고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분명치 않으나 죄로 오염된 땅(3:17)에 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6:18 언약. [בְּרִית 베리트] ‘בָּרָה 바라’(자르다, 끊다, 새기다)에서 파생된 말로 위반시에는 죽음 및 관계 단절이 뒤따르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엄정한 약속, 계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일찍이 아담과도 이러한 언약을 맺으셨는데(2:16, 17, 3:15). 구체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아브라함(15:18, 17:9-14, 22:15). 이삭(26:24), 야곱(28:13, 14) 등과 맺은 언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6:19 하나님께서 노아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그로 인해 가족과 동물까지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담의 타락으로 전인류와 피조계가 함께 저주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3:17) 노아의 의로움이 동물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곧 그분 한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그 공로를 힘입어 속죄함을 받은 것이다(롬 5:17-19).

 

6:20 없음.

 

6:21 없음.

 

6:22 다 준행하였더라. 120년에 걸친 노아의 인내와 믿음과 소망이 응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전력을 기울여 방주를 짓는 그 오랜기간 동안 노아는 당대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희롱을 당하고 또한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하여(약 2:17), 그 결과 자신과 가족, 짐승들을 구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각종 불법과 불경건이 난무하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역시 절실하게 요구되는 자세이다(눅 21:19, 약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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