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주의 제자들을 - 사울이 핍박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명칭으로 언급된 '주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이다. 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표현을 '그 도를 쫓는 사람들'(2절), '제자'(10절), '성도들'(13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14절), '형제'(17절) 또는 '형제들'(30절) 등으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 기독교인에 대한 사울의 잔혹한 행위를 심리적으로 묘사이다. '위협'으로 번역된 '아페일레'(* )는 '경고'라는 말로도 해석되는데여기서는 당장이라도 '살해'를 할 것 같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같은 바울의 심리 상태를 '등등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동적(動的)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숨을 쉰다'(breathe)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사울의 호흡이 살기와 위협의 숨소리로 들릴만큼 박해가 잔인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울의 행위가 얼마나 능동적인 행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사울 자신은 박해 행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대제사장에게 가서 -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간 것은 기독교인에 대한 체포권을 부여받기 위함이다(2절).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한 사울이(26:5) 예수를 죽이기로 음모하고 이를 실행했던 대제사장, 바리새인들(눅19:47;20:19;22:52;23:10)과 같은 노선에 있었음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당시 대제사장은 칠십 인으로 구성된 의회 '산헤드린'의 의장으로서 로마로부터 인정받은 권한 곧사법권과 행정권을 팔레스틴 내.외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행사할 수 있었다.당시 대제사장이 '가야바'(A.D. 18-37)였는지 그 후임자 '데오빌로'(A.D. 37-38)였는지 알 수 없으나 사울의 회심(回心)을 A.D 35년경으로 본다면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Lenski).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자는 '데오빌로'로 추정한다(alford, Levin). 그러나 사울의 회심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견해모두 가설에 불과하다.
=====9:2
다메섹 여러 회당 - 사울의 행선지로 언급된 다메섹은 예루살렘 동북쪽 약 230km정도 거리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서 삼 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해발 671m의 고원 지대이다. 이곳은 아브라함때 부터(창 14:15;15:2) 다윗 시대(삼하 8:6)와 솔로몬 시대에(왕상 11:24) 걸쳐 계속언급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73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B.C.64년부터로마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다메섹에 거주했던 유대인의 수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A.D. 66년 네로 박해 때 약 10,500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요세푸스(Josephus)의 보고가 이를 뒷바침한다.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있어서 중심 기구라고 할 수 있는 회당도 상당수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에있는 기독교인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박해 때(8:1-3) 예루살렘으로부터 피신해 간 유대기독교인들과 그들에 의해 개종된 유대인들로 추정된다. 그 도를 좇는 사람 - 여기서 언급된 '그 도'란 기독교를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중의하나다. 누가는 단순하게 '도'(道)로만 언급하기도 하며(19:9, 23;22:4;24:14, 22)'주의 도'(18:25)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용어로 '도'란 말을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 예수를 '생명의 길'로 교회가 인식하고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 사울이 이방 지역에서 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묘사하고 있는 본 구절은 당시 대제사장이 이방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 본 구절은 예루살렘이 교회 탄압의 중심이며 유대인들에대한 행정의 중심지도 됨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대제사장이 이방 지역의 유대인에게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마카비1서 15:15-21에 따르면루기오(Lucius)총독은 유대에서 도망한 자들을 대제사장이 유대법에 따라 처벌할 수있도록 프톨레미에게 요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 글라우디오 황제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헤롯아그립바 1세가 분봉왕(分封王)으로 유대를 다스렸으므로 대제사장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을 것이다.
=====9:3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 본 구절은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초자연적 개입이 일어난 것에 대한 묘사이지만 그 지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편 '빛'이 22:6에서는 '큰 빛'이라고 언급되고 26:13에서는 '해보다 더 밝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하늘로부터 온 빛에 대해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함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나타나는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한 저자의 배려로 이해한다(Haenchen). 그러나 오히려바울이, 둘러 비친 그 빛에 대해 묘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간증할 때 조금씩달리 표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에게 둘러 비친 '빛'의 성격은 그빛에 대해언급된 세 곳의 묘사를 종합해 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 26:13에서는 같은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서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고 하였다. 이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모색할수 있다. 즉 본절에서는 오직 사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26:13에서는 사울 자신의 회심 사건에 있어 현장 목격자들도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행들에게도 동일한 빛이 비추었다는 진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22:9의 기록은 본절과 26:13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무튼 사울과 함께 다메섹으로 가던 일행들도 사울이 경험한 그 빛을 목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9:4
땅에 엎드러져 - 본 구절은 갑자기 내려 비취는 빛에 의해 나타난 사울의 반사적 행동에 대한 묘사다. 여기서 '엎드러져'라는 단어 '페손'(* )은 '떨어진다', '넘어진다'의 뜻으로 쓰러지듯 엎드린 사울의 행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반사적이면서 두려움에 휩싸인 즉각적 반응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이 말을 타고 갔다면 말에서 떨어지다시피하여 땅 위에 엎드렸을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 혹자는 구약 시대에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 격식을 갖추는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Longenecker). 그러나 사울에게 들려진 예수의 음성은 분명히 애정어린 음성으로 이해된다. 본절 외에 성경에서 이름을 두 번씩 불렀던경우는 아브라함(창 22:11), 모세(출 3:4), 사무엘(삼상 3:10), 시몬(눅 22:31)을 들수 있다. 이는 부르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낸다.
=====9:5
주여 뉘시오니이까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알지 못하는 음성에 대하여 사울은 '주여'(* , 퀴리에)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호칭은 자기를 부르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인식했음이 아니다. 이는 사울이 곧이어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자신을 부른 자의 정체를 묻고있다는 점에서 알수 있다. 아마도 초자연적 어떤 힘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나온 호칭으로서 짐작된다. 나는...예수라 - 본절의 헬라어 본문에는 복음서에서 예수의 자기 선언의 한 양태인 '에고 에이미'(* )가 언급되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언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를 70인역(LXX)이 '에고 에이미'의 문장으로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예수는 '에고 에이미'를 사용하심으로써 구약에서모세가 만난 그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기 선언을 하신 것이다. 구약 시대의선지자들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란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선포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밝힌 반면 예수는 스스로의 신적권위를 나타내신 것이다. 본절에서도 역시 예수는사울에게 하나님으로서 자기를 선언하심으로써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와 동일한 언어습관을 나타내셨다.
=====9:6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 자신의 정체를 밝힌 예수께서 곧이어 사울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셨던 것은 다음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사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미 예수께서 그를자신의 제자로 지명하여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2) 사울이 예수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없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활한 예수의 초자연적인능력을 암시한다. 이 두가지 의미를 종합해 보면 사울의 소명 의식이 부활한 예수의강권적인 능력의 부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예수가 사울을 아시기 위해 이미 예정된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26:16과 본절은 내용 전개상 약간의 모순이 있다. 즉 26장에서는 아나니아와 사울에 만남에 대해서 생략되어 있으며 사울의 소명이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주어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은 사울의 소명이 그가 다메섹성에 들어간 후에 주어질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같은 불일치는 26장이 사울 자신의 체험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것이므로 그 체험에 담긴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은 아나니아를 통해 받았던 소명을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것처럼 묘사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접속사 '알라'(* ,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으나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있지 않았다. 여기서 혹자는 앞절과 연관지어 '나는 네가 행한 일에 대해서 더 이상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알라'를문자적으로 해석한다(Lenski). 그러나 혹자는 '알라'를 감탄사 정도로 생각하여 '자'로 번역했다(Haenchen). 여기서 어느 해석을 취해도 앞절과 본절의 연결은 자연스럽지못하다. 그래서 어떤 영역 성경 중에는 '그는 떨면서 놀라움에 사로잡혀 주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는 구절을 첨가시켰다(KJV, MLB). 이는 22:10과 조화시키기 위한 첨가로 짐작된다. 아마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는 자들이 섬기던 예수를 만나자 놀라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9:7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 사울과 함께 동행하였던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시각적으로 아무것도감지하고 있지 못함을 언급하고 있으나 22:9과 26:14에서는 각각 조금씩 달리 설명했다. 22:9에서는 일행이 소리는 못들었어도 빛은 보았다고 진술하여 본절과 정반대의상황을 나타내었다. 반면 26:14에서는 사울과 그 일행 모두가 엎드려졌다고 한점으로보아 모두가 초자연적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울의 세 가지 진술이 모두 서로 일치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소리'는 음성을 뜻하는 것으로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명령한 음성이 예수의 음성인지 아니면 사울의 음성(5절)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 또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 하늘로부터 온 빛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러한 의문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 두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게된다. (1) 일행들은 '주여 누시오니이까?'라는 사울의 외침만 들었을 것이다(Chrysostom, Bruce). (2) 그들이 무슨 소리를 듣기는 들었으나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Bengel). 여기서 강조된 분명한 사실은 사울이 환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 경험을 하였고 그 사건을 목격한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사울이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는 피상적이거나 부분적인 이해만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22:9과 26:14의 기록과 본절의 기록이 지닌 차이는 모순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사울뿐임을 강조하는 기능을 갖는다. 말을 못하고 섰더라 - 본 구절은 사울의 일행들이 무엇인가를 경험하면서도 아무말을 못하고 있음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말을 못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오이'(* )에 대해 혹자는 '공포로 인하여 말을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A.C. Hervey).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서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고 다만 70인역(LXX)의 사 56:10에서 짖지 못하는 개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56:10에서는 이 단어가 공포와는 관계없이 어떤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無知)와연관되어 사용되었다. 아마 누가는, 사울의 일행이 자신들과 사울에게 일어난 사건에대해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9:8
일어나 눈은 떳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 사울이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있었던 모습은 땅에 엎드러진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보지 못했다'라는 말은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사울이 보고자 했으나 볼 수 없었던 상태, 즉 빛을 경험한 순간부터 일어서는 시점까지 보이지 않고 있는 사태를 암
시한다. 따라서 사울이 경험한 소명 사건은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었다기 보다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의 음성을 들었던사실은 내면적인 사건으로 돌릴 수 없다. 사울이 빛으로 인해 예수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음성은 그에게 실제로 들려왔다. 한편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에 대해 몇몇 학자들은 사울이 회심하기 전까지의 영적 무지에대한 상징으로 생각한다(Calvin, De Wette).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그러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그 생각은 별로 타당성이 없다(Meyer). 오히려 이 사건은 사울에게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였다.
=====9:9
사흘 동안을 보지도 못하고 심음을 전폐하니라 - 여기서는 강조점은 보지 못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흘 동안 식음(食飮)을 전폐한사실이다. 즉 사흘 동안에 걸쳐 사울에게 내면적인 어떤 큰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암시한다. 아마도 사울 자신이 지금까지 배웠고 자랑스럽게 고수했던 사상 체계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한 예수의 음성을 연관지어 깊은 고뇌나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특히 '사흘'(* , 엔 헤메라스 트레이스)이라는 숫자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낸 요나의 이야기(마 12:40)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예수의 부활처럼 사건의 대전환을 예고한다. 이와 같이 사울의 회심은 자기 자신의 엄청난 내면적 고통을 통한 결단이었다. 이 사흘 동안 사울은 다메섹 도상의 경험을 구약적 차원에서 재해석해야 했으므로 그의 신학적 체계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에신중을 가했다.
=====9:10
그 때에 - 헬라어 본문에는 특정한 시간을 지시하는 접속사가 없고 이야기의 진행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접속사 '데'(* , '그러나')만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데'를 생략하든지 아니면 '한편'이란 접속사로 연결시키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 - '제자'로 언급되는 '아나니아'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흔한이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5:1;23:2). 이 이름의 히브리적 본래 의미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 이름의 뜻에 걸맞게 아나니아는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경건한 자였다(22:12). 그런데 그가 어데게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한편 '제자'는 기독교인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다(1절주석 참조). 22:12을 볼때 아나니아가 다메섹에 오랫동안 거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루살렘 박해 때 피신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오순절 때 기독교인이 되었거나(2:5-11) 아니면 그 이전 예수의 활동 당시 예수를 따랐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으로 짐작된다. 환상(幻像)중에 불러 - 본 구절은 아나니아의 구약적인 계시 경험(삼상 3:1-9)에대한 진술이다. 이 언급은 사실적 묘사라기 보다 신적 계시에 대한 문학적 묘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서 계시 전달자에게 실제적으로 일어난다. 본절에서 아나니아가 본 환상은 (1) 사울을 택하기 위한 주의 치밀한 섭리를 강조하며, (2) 아직도 의구심에 사로 잡혀 있을 사울에게 증거가 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예수의 부름에 대한 아나니아의 대답은 구약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창 22:1;삼상 3:4). 따라서 본절에서 사울의 소명 사건을 구약 시대의소명 사건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9:11
직가라...가서 - 예수가 가라고 지시한 거리 '직가'(直街)는 동서로 곧게 뻗은 거리로서(Vincent)현재는 '다르발 무스타킴'(Darbal Mustaqim)이라고 불리어진다.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 9절에서 언급된 사울의 금식 행위를 예수는 기도하는 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울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함께 절박한 기도를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9절 주석 참조)=====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보았느니라 - 본 구절은 아나니아가 자신에게 와서 안수를 통해 자신의 눈을 뜨게 하여 줄 것이라는 사실을 바울이 환상으로 이미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사울에게 아나니아의 일을 보여주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사울은 두번째 환상을 본 셈이된다. 이같이 치밀한 과정을 통해 사울의 회심시키는 사실을 볼 때 사울에 대한 예수의 깊은 애착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의 철저한 유대교적 사상과 기독교를 탄압하였던 광신적 열정만큼이나 사울의 회심은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가 겪고있는 깊은 고뇌와 예수의 집요한 노력이 사울의 회심을 가능케 하였다.
=====9:13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 본 구절은 아나니아가 사울을 직접적으로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또한 본 구절은 아나니아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 많은 교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나니아는 이미 이전에부터 있어 왔던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간과될 수 없는 사실은 사울의 악명이 이방 지역에까지알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잔악하고 반(反) 기독교적인 사울의 행위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나니아에게 있어서 악명 높은 사울에게 안수하라는예수의 지시는 충격적인 사실로 이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사울의 회심이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임을 강조하는 효과를 지닌다. 주의 성도 - 이말은 기독교인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 하나로 '구별된 거룩한 자'를 의미한다. 32절과 41절에서는 단순히 '성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본문에서 '주'라고 번역된 '당신'(* , 수)이라는 표현은 성도와 예수와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는 성도에 대한 박해가 예수에 대한 핍박이며(5절) 따라서 사울이 예수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예수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9:14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 - 기독교인에 대한 또 다른 명칭이다. 명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절 주석을 참조하라. 누가는 기독교인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통해서 이야기의 지루함을 피할 분 더러기독교인에 대한 당시의 다양한 이해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것은 그가 구원받았음을 의미한다(몸 10:13). 그렇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성도를 의미한다.
=====9:15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 13, 14절에서 아나니아의 입을 통해 사울의 반 기독교적 행위가 언급된 후 예수로부터 사울의 소명(召命)이 극적으로 선포되고 있다. 사울의 선교 대상이 크게 세 가지로 언급되었다. (1) 이방인, 여기서 예수는 유대 이외의 모든 나라에 대한 선교를 첫번째 관심사로 언급하고 있다. 사울이 이방인에 대해 배타적이며 광신적인 유대인이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소명은 사울의 회심에 걸맞는 매우 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2) 임금. 이는 세속적인 권력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그립바 왕(26장), 가이사(딤후 4:16, 17)등 집권자들 앞에서 증언하였던 사울의 선교 활동을 통해서 이 소명이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이스라엘 자손들. 사울은 자기 민족에대한 깊은 애정을 지녔으며 회심 후에도 그 애정을 잃지 않았다(롬 9:1, 2). 그렇기때문에 그는 자기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사울은 모든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다. 다만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유대인을상대로 전도 활동을 했으므로 사울 자신은 이방인을 상대로 그 사역을 감당했다(갈2:8). 택한 나의 그릇 - 선택된 그릇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법으로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렘 22:28;51:34). 사울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서 하나님께 선택된자임을 의미한다(롬 1:1;갈 1:15).
=====9:16
그가...받아야 할 것 - 본 구절은 복음전파를 위한 소명과 함께 사울이 겪어야 할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서그 고난이 필연적인 것으로서 언급된다. 이 같은 예고는 13절에서 언급된 아나니아의말과 사응하는 표현으로 사울이 기독교인들에게 해를 입혔던 것처럼 자신도 해를 받게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해'(害)는 고난의 의미로서 보복의 차원이 아니다. 즉 기독교인이 당하게 될 의로운 고난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따라서 바울은 예수를 따르려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예수의명령을(마 16:24;막 8:34;눅 9:23;14:26, 27) 실천해야 했다.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 '보이리라'로 번역된 '휘포데잎소'(* )는'지시하다', '증거하다'의 의미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사울에게 보이시겠다는 것은 환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겪어나갈 실제적인 고난을 말한다. 즉 사울은 환상을통해서 자신이 예수를 위해 어떠한 고난을 얼마나 당하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기보다는 실제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것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9:17
형제 사울아 - 아나니아는 예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방문하여 안수하고는 '형제'라는 호칭으로사울을 부르고 있다. 특히 '형제'(* , 아델포스)라는 칭호가 암시하는바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왜냐하면 이미 아나니아는 사울의 반 기독교적인 행위로 인해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13, 14절). 따라서 여기서 '형제'라는 호칭은 사울의 모든 악한 과거가 용서되고 사울을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선언하는 것이라고보아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 아나니아의 이 말은 사울의 선교 활동이 성령의 인도에 따른 것임과 사울에게도 사도적 능력이 부여됨 그리고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안수는 성령이 임하는 방편으로 이해된다(8:17). 본절에서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는 말을 했으나 사울이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사울의 눈이 치료되어 세례받은 사실과 이 후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아 이때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것으로짐작된다.
=====9:18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 사울이 다시 보게 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가 보지 못하게 된 원인이 제거됨을 묘사하고 있늠 본문은 의학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Lumby, Haenchen, Hervey). 혹자는이 기적을 사울이 경험한 주관적 느낌이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한다(Weiss, Barnes).그러나 이 사건은 물리적으로 나타난 사실적 현상이다(alford, Bengel, Knowling). 왜냐하면 상징적 의미만을 전달하려 했다면 단순히 '눈을 뜨게 되었다'는 표현만을 사용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누가는 사울의 눈이 치유된 기적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며그 사건을 사울의 부름받음에 대한 증거로 기록했던 것이다 세례를 받고 - 기독교인 됨에 대한 의식으로서 사울은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게되는데 이 세례가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베풀었던 것과(8:36-38)같은 형식을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다메섹에 침례할만한 강이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침례가 행해질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현대에 행해지는 형식의간단한 예식을 치렀을 것이라(Lenski)고 말한다. 또한 어떤 학자는 다메섹에 있는 유다의 목욕탕에서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Earn). 그러나 이러한 추정들은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본절에서 누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은 사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믿음의 공동체에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9:19
강건하여지니라 - 사울이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졌다는 본문은 9절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사울의 금식이 끝났다는 단순한 의미 외에 사울의 내적 갈등과 고뇌의 종결을 의미한다. 뿐만아니라 본 구절은 사울의 변화된 새로운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강건하여지니라'라는 단어는 사울의 변화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난 것임을 암시한다.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 사울이 다메섹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과 함께 지냈다는 사실은 그가 기독교인으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하며 또한 그가 다메섹의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회심과선교시작 사이에 나타난 며칠간의 공백 기간에 대한 갈 1:16, 17과의 차이점이다. 즉본절과 20절에는 사울이 회심한 후 곧바로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했으며 여러 날 후에루살렘으로 간 것으로 묘사된 반면 갈 1:16, 17에서는 그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진술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견해가다르다. 혹자는 회심 직후 아라비아를 다녀와서 다메섹에서 머물렀다고 주장한다(Pearson).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어떤 학자들은 사울이 23절에 언급된 '여러 날' 이후에 아라비아로 갔을 것으로 추정한다(Neander, Meyer). 그 외에 올스하우젠(Olshausen) 같은 학자는 25절 사건 이후에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을 것으로추정한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과 바울 자신의 진술을 문자적으로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 누가는 사울이 회심 후부터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까지의 일을 간략하게 기록한 반면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함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햇수를 밝힐 필요가 있었기때문이다. 따라서 본절 이후부터 26절 사이에는 3년이란 기간이 걸렸으며 사울은 이동안에도 복음 전파를 했을 것이다.
=====9:20
즉시로 각 회당(會堂)에서 - 사울의 첫 복음 전파의 장소가 회당으로 소개되어 2절에 언급된 회당과 대조되고있다. 즉 사울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장소였던 회당이 복음을 전파하는 장소로 뒤바뀜으로써 그의 회심이 극적으로 강조되었다. 한편 '각 회당'이란 표현은 사울의 설교가 여러 회당에 걸쳐 계속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보아 사울이 큰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이가 예수이심을 확신했기에 그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을 서로 연관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예수를 따라 다녔던 자가 아니었기에 자기가 만난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을 연관지을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을 신학적으로 깊게 연결한 혼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 여기서 누가는 사울의 설교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사울의 과거를 언급함으로 사울의 회심을 강조하고 있다. 본 구절에 언급된 청중은 회당에 모인 비기독교적 유대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을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칭하여그들이 제 삼자적 입장에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중들의 놀람은 사울의회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반응, 즉 사울에 대한 반감이라고볼 수 있다(Haenchen). 특히 23절의 언급은 유대인들이 사울을 배교자, 배신자로 여겼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 본 구절은 청중들의 반감에 상응(相應)하여 표현된 반응으로서 청중들의 반감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 기세를 높여 증거하는 사울을 부각시킨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영적인 힘이 증가되고 점점 담대해지는 사울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證明)하여 - 본절에서의 설교는 20절에서의 설교와 표현만다를 뿐 그 내용은 같다. 이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이 사울의 일관된 메시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고전 1:23). 한편 여기서 언급된 '증명하다'로 번역된 '쉼비바조(* )는 본래 '연결시키다'는 뜻과 함께 '논증하다', '가르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울의 설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여러가지의 자료들을 모아 논증적으로 예수의 그리스도됨을 가르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케오'(* )는 '혼란케하다', '섞다'의 뜻을 지니므로 사울의 설교 내용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혼란에빠져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갑작스런 사울의 회심과 그의 설교 내용은 유대인들을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공동 번역은 이러한 의미로 번역했으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이 의미로 번역했다(KJV, RSV, MB).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다음절에 언급되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따라서 개역성경의 번역은 정확하다고볼 수 없다.
=====9:23
여러 날이 지나매 - 이 표현은 사울의 선교가 시작된 후 유대인들의 살인 공모가 있게 된 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의 경과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여러 날' 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라이 히카나이'(* )는 19절의 '며칠'(* ,헤메라스 티나스)과는 달리 상당히 긴 시간의 간격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간적 간격에대해 많은 주석가들은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간 기간이 삼 년으로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간 기간을 삼년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갈 1:18의 삼 년은 바울의 회심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울은 자신이 아라비아에서 얼마동안 머물렀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날'에 대한 시간적 규명은어렵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사울이 회심 이후 약 삼 년여에 걸쳐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고 다메섹에서 사울의 선교 활동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진행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울에 의한 파문은 유대인 공동체에 있어서 충격적인 도전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울의 지속적으로 예수를 전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사울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9:24
저희가...선문까지 지키거늘 - 고후 11:32에 의하면 '아레다 왕의 방백'이 성을 지킨것으로 사울은 언급했다. 여기서 역사적 고증(考證)에 따른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다메섹은 나발인들이소유하여 그들이 성을 지켰다는 설(H. Schlier)이 있는가 하면 나바티안족들이 다스렸다는 설도 있다(Loisy, Lake). 당시에는 유브라데스 강에서 홍해까지 뻗쳐있는 나바티안 아랍 왕국이 있었으며 이곳의 통치자는 아레다 4세(B.C. 9-A.D. 40)였다. 유대인들이 나바티안 족의 방백을 매수해서 사울을 잡고자 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두번째견해가 더 타당하다. 이처럼 사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은 과격한 것이었다.
=====9:25
그의 제자들이 - 누가는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사울을 탈출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그의 제자들'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여기서는 문맥상 '사울의 제자들'이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칭 대명사 '그의'(* , 아우투)는 앞절에서 언급된사울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에 대해서 다음 세 가지로 해석될 수있다. (1) 이들은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예루살렘에서부터 따라간 동행인이었을 것이다. (2) 다메섹에서 행한 사울의 설교에 감동되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일것이다. (3) 이전부터 있었던 기독교인들로 사울을 따르며 그를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2)의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상당 기간 전도 활동을했으므로 그곳에 상당한 추종자들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광주리 - 이 말의 헬라어 '스퓌리스'(* )는 예수가 4,000명을 먹이신기적때 언급되었던(마 15:37;막 8:8)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사울이 고후11:33에서 직접 언급할 때에는 본문에서 언급한 갈대 광주리와 구별되는 끈으로 만든바구니 '사르가네'(* )가 언급되었다. 사람을 달아내리는 데는 사울이직접 언급한 '사르가네'가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만 '스퓌리스'와 '사르가네'가 본절과 고후 11:33에서 구별없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광주리에 담겨져 탈출한 것은 그 당시의 위기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회심으로 인해 겪게 되는사울의 첫번째 수난이라는 점에서 16절에서 예수가 아나니아에게 예언한 그의 고난이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9:26
예루살렘에 가서 - 갈 1:18에 의하면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삼 년만에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15일 동안 체류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오게 된 동기는 베드로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을 사귀고자 -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이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를 가리킬수도 있고 일반 기독교인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갈 1:19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 외에 다른 한 사도도 만나지 못했음을 진술했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된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성도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다 두려워 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 본문은 사울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반응으로 교회가 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고 경계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사울의제자됨은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인지 아니면 소문으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는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아마 소문으로도 이미 알려져 있었을 것이고 자신 또한 직접 제자됨을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이 거리상 많이 떨어져있었으므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사울에 대한 신회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도들은 사울에게서 직접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것도 역시 사울의 회심이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을 만큼 예기치 못한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여기서 '제자됨'이 사도성(使徒性)을 뜻하는말인지 단순히 '기독교인이 됨'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사도됨을 진술하려고 의도했다면 누가는 일반 성도의 의미인 '제자'란 용어 대신 '사도'란 용어를사용했을 것이다.
=====9:27
바나바 -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냉대를 당할 때 사울을 사도들 앞에서 보증해 준 바나바는 구브로(Cyprus)섬 출신으로서 레위인이며 본명은 요셉이었다.그에게 설교하는 능력과 위로하는 능력이 인정되어 바나바라는 이름이 사도들에 의해주어졌다(4:36).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쳤으며(4:37) 안디옥 교회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울과 동역자가 되어 활동하기도 했다(11:24-30;13:2-4). 이러한 그의 경력으로 보아 사울이 예루살렘에 갔을 당시 바나바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그가 어떻게 사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는 본문 가운데 전혀 언급이 없다. 아마도 그는 사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전적으로 신뢰하였을 것이다. 결국 사울은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도들을 만나게 되는데 갈 1:19에 따르면 야고보만 만났다고 사울은말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가 언급한 '사도들에게'란 표현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본서 가운데서 '사도'란 표현은 열두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14:4, 5,14). 따라서 본절의 '사도들'은 당시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서 사역을 하던 자들로 짐작된다.
=====9: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말은 예루살렘 교회로 부터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었다'라는뜻이 된다. 즉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말이며 기독교인들로부터 경계받거나 배척받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9:29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울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울의 설교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사울이 선교 활동에 어떻게 임했는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특히 '담대히 말하고'라고 해석된 헬라어 '파르레시아조마이'(*)는 '숨김없이 자유롭게 말하는'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사울의 설교 내용보다 사울이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인정되었으며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누가가 바울의 사도성을 나타내기 위한 구체적인 첫 진술로도 이해될 수 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변론하니 - 여기서 언급된 변론자들은 유대에 거주하는 유대인이면서 헬라적 문화와 철학의 영향을 받아 논쟁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로 보인다.이들이 기독교도였는지 아니면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인 유대인들이었는지는 분명하지않다. 다만 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에 배타적인 감정을 지닌 유대인들로 짐작된다. 당시 유대 사상가 필로(Philo)가 헬라 철학을 이용해 성경을해석할 정도였으므로 유대인들에게 헬라 철학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헬라 철학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헬라 철학은 교부들에 의해 신앙을 변증(辨證)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처럼 헬라 사상은 초대 교회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울도 헬레니즘의 중심지인 다소 출신이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9:30
형제들 - 이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가이사랴...다소 - '다소'가 사울의 고향이었다는 점에서(11:25;21:39;22:3) 안전한 곳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울이 다소로 가기 위해 거쳐 갔던 곳이 '가이사랴'이다. 이곳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이사랴를 의미한다(Alford, Alexander, Bruce). 다메섹에서 당한 살해 위협(23절)에 이어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또다시 살해당할 위협을 받고 탈출하게 되는데 이 같은 그의 수난은 선교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16절에서 언급된 예수의 예언처럼 사울이 당해야 하는 고난이며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져야하는 십자가였다.
=====9:31
그리하여 - 이 접속사는 다음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 사울이 다소로 피신한 것과 본절이 깊이 연관되었음을 보여 준다. (2) 주제를 전환시키기 위해 단순히 별 의미 없이사용되었다. 여기서는 (1)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누가는 바울이 다소로 피신함으로써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마찰이 해소되었음을 전해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 이방 지역에도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가팔레스틴 지역만을 언급한 것은 이 지역 교회가 이방 교회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아니다. 누가는 사울에 의해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틴 지역이 신학적인 문제로 소동이 벌어졌으나 그 문제가 잠잠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지역에서의 교회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교회가 평안하여 - 이 말은 교회에 대한 외부의 박해가 없었다는 의미와 함께 교회가 성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울에 의해 예루살렘의 소동 외에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따른 박해도 잠잠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 A.D.37-41)가 자신의 동상을 성전에 세우려 하여 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고 41년 1월 24일에 칼리굴라가 피살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상대적으로 감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든든히 서 가고 - 이 말은 당시 건축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는 교회 성장에대한 묘사다. 바울은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각 성도가 연결되어 지어져 가는 것으로 묘사한적이 있다(엡 2:21).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 누가는 초기 교회의 성장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있다. 여기서 언급된 '위로'라는 단어 '파라클레시스'(* )는 '격려', '권면'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보혜사(* , 파라클레토스)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9:32
때에 - 특정한 시간을 지시하는 언급은 원문에 없고 다만 '그러나' 또는 '그리고'를 뜻하는 접속사 '데'(* )만 언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에서는 '때에'라는 표현을 통해 베드로의 룻다 방문이 교회가 평화롭게 성장하고 있는 시기(31절)임을암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어느 시점을 지칭하기보다 주제의 전환을 위해 '데'가 사용되었으므로 '한편'으로 번역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 룻다에 오기 전 이미 베드로는 여러 지역을 거쳐 왔음을밝히고 있는데 선교를 위한 여행이었는지 이방 지역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를 방문하는시찰(視察) 여행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8:14에서 처럼 이방 기독교인들을 시찰하면서 동시에 전도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룻다 - 오늘날 이름은 '룻'(Ludd)이며 예루살렘 북서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서 해안도시 욥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17-18km에 위치한 비옥한 땅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9:33
애니아 - '칭찬받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이름으로서 그가 기독교인이었는지 아니면기독교와 상관없는 유대인이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32절에 언급된 '성도들'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팔 년 동안 중풍병을 앓아온 환자인데 본절에는 그의 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팔 년 동안을 직역하면 8살부터 중풍병을 앓아온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번역 성경들은 애니아가 8년 동안 그병을 앓아온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릴 때에 중풍병에 걸린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기때문이다. 또한 누가는 병의 햇수를 밝힘으로써(3:2;4:22;14:8;눅 13:11) 환자의 병이이웃으로부터 확인되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환자가 상(床)에 누워서 팔 년을 지냈다는 표현은 거동을 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이 병의 깊이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치유 능력에 대한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9:34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 '낫게 하시니'란 표현은 누가의 상투어라고 볼수 있다(10:38;28:8;눅5:17;6:19;9:2, 11, 42;14:4;22:51). 이는 예수가 그 불치병을 고쳐주신다는 베드로의확신을 전달해 주는 용어다. 나아가서 베드로의 치유 기적과 예수 그리스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예수의 치유 기적을 상기시키고 부활한 예수께서 지금도 치료자로서 성도와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자리를 정돈하라 - 환자에 대한 베드로의 지시는 중풍환자를 고치며 명령했던 예수의 지시와 비슷한 어투다(마 9:6;막 2:19). 이는 치유의 즉각성을 강조하고 예수의 능력이 현존함을 암시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이 예수의 보낸 자임도 시사한다.
=====9:35
사론에 사는 사람들 - 일반적으로 '사론'은 '평야'를 의미하며 남쪽 욥바와 북쪽 갈멜산 사이에 위치한평야 지역을 가리킨다. 이 평야는 길이가 약 80km, 폭이 약 9-19km로 북부는 수목이많은 평이며(사 35:2) 남부는 비옥한 농토가 펼쳐지고 있다(사 65:10). 신약 성경에서는 이 지명이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본절과 38절을 종향해 볼 때 여기서의 '사론'은길게 뻗쳐 있는 평야 전체를 의미하지 않고 룻다와 욥바 근처의 한 성읍을 지칭하는것으로 이해된다(아 2:1;대상 27:29;사 33:9). 주께로 돌아가니라 - 이 말은 룻다와 사론 사람들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는 의미다(Bengel, Knowling). 그런데 그 지역 사람 모두가 개종하였다는 표현은 과장된 것으로 짐작되며(Haenchen) 치유 기적이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치유 기적은 예수의 사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의 확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8:5-7).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에제자 -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서 현재는 '야파'(Jaffa)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이 욥바와 애니아를 만났던 '룻다'와의 거리는 약 18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는 수리아의 통치 아래 있었다. 어떤 까닭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여기서 언급된 다비다가 이미 기독교인임을 '제자'라는 말로서 알 수 있다. '제자'의 여성형은 여기서 처음 사용되고있다(신약성경에서). '다비다'라는 히브리 이름으로 보아 그녀는 유대인임에 틀림없으며 그 이름은 헬라식으로 '도르가'(* ,도르카스)로 번역되어 사용되었다.본절의 내용으로 보아 다비다는 그 도시에서 잘 알려진 여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앞장 선 것으로 보아 그녀는 부자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39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녀가 과부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9:37
시체를 씻어 다랍에 뉘우니라 - 병들어 죽은 '다비다'를 유대인의 장례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Bruce).헬라인들에게도 이러한 절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Knowling). 저자의 의도는장례 절차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비다가 완전히 죽어서 이미 장례 절차의 일부를밟은 후였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40절에서 언급되는 다비다의 소생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는데 있다. 한편 시체를 다락에 뉘었다는 사실은 왕상 17:17-24과 왕하 4:32-37의영향을 받아 다비다를 다시 소생(蘇生)시키고자 하는 기대에서 나온 발상으로 판단할수 있으며 시체에 향유를 바르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여 준다(Haenchen). 38절에서 언급되듯이 즉시 베드로를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은 그들이 다비다를 다시 살려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다비다가 선행을 많이 하여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위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살려보려고 애썼을 것이다.
=====9:38
제자들이...두 사람을 보내어 - '제자 들'은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누가의 상투적 용어이며(1절 주석참조) 그들이보낸 두 사람도 기독교인일 가능성이 높다. 36절의 '여제자'란 말로 볼 때 욥바에 이미 기두교인이 있었음을 알수 있는데 어떤 경로로 욥바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8:40에 건급된 빌립의 전도 여행의 영향이거나 2:1-11에서 언급된바처럼오순절 사건을 목격했던 사람들일 가능성도 있다. 지체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 그들의 간청이 다비다를 살아나게 해 달라는 것인지아니면 죽었으니 와서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해달라는 것인지 또 무조건 와 달라고간청한 것인지 전혀 언급이 없다. 살려달라는 언급이 없다는 것에 대해 혹자는 이야기를 더욱 섬세하게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준다고 설명한다(Haenchen). 그러나 앞에서 다비다가 죽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므로 누가는 간청의 말에 그 표현을 굳이 반복할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9:39
모든 과부 - 이들은 다비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베드로 곁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로서 평소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과부들로서 평소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과부들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다비다도 과부였다는 가정과 함께 평소에 함께 지냈던 친구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다만 문맥상 구제한 일이 강조되었다는 점에서(36절) 그리고당시 과부들이 구제의 대상에 속했다는 점에서(6:1) 여기에 언급된 과부들은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로 이해된다. 저회와 함께 있을 때 지은 속옷과 겉옷 - 렌스키(Lenski)는 다비다가 구제 활동을위해 봉제 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며 프로이쉔(Preuschen)은 다비다의 부유함을 말하기 위해 과부들의 그의 옷을 보여준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는 다비다가 생전에 입던 옷을 보며 그를 추모(追慕)하고 울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부들이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라고 믿는다면 평소에 다비다가 그 과부들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주며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울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적절하다.
=====9:40
베드로가...다비다야 일어나라 - 본절에서 베드로의 치유 방법은 예수의 행위를 모방했다고 할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 사람을 다 내보내는 행위는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막 5:40). 아마도 베드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릴 당시 예수에게서 배운 대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다비다야 일어나라'라는 말을 아람어로 번역할 경우 야이로의 딸에게 예수가 했던 말인 '달리다굼'과 거의 일치한다(Haenchen). 또한 여기서는 34절에서 베드로가 애니아를 고칠 때 언급한 '예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도 예수의 행위를 그대로 모방하였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한편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사실은 예수의 행위와 닮지 않았고 오히려 왕하 4:33에서 언급된 엘리사의 행위와 비슷하다. 따라서 누가의 서술은 예수를 모방하여 행동했던 베드로의 모습과 엘리사의 사건이(왕하 4장) 결부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9:41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 베드로가 깨어난 다비다를 일으키는 모습 역시 막 5:41에서 보여준 예수의 행위와흡사하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과 권위로 병을 고치면서 자신의 행위속에서 예수의능력이 함께 함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베드로의 행위에 부활한 예수가 사도들을 통해 세상에 계실 때와 같이 일을 하고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그의 산 것을 보이니 - 본 구절에 나타난 베드로의 행위는 막 5:43에서 묘사된 예수의 행위와 정반대이다. 아마도 42절의 내용으로 보아 전도하기 위한 베드로의 의도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9:42
주를 많이 믿더라 - 다비다의 회생(回生)의 결과는 룻다에서 애니아를 치료했던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이 치병(治病)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의 확장이 치유 기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선교 때에 의료 선교가 공헌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9:43
시몬이라 하는 피장(皮匠)의 집 - 누가는 '시몬'이란 사람의 직업을 명시함으로써 베드로와 구별하고 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직업으로서 오늘날의 피혁 제조업자로 이해될 수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피혁 제조업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기피했다(Edersheim, Bruce, H.Marshall, Hervey).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람과 교제를 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눌 19:5-10). 이 사실은 또한 초기 기독교에서 신분과직업에 대한 계급적 의식을 무시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베드로가 천한 신분인 시몬의 집에 머물렀음은 다음에 나오는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즉 이 사건은 당시 선민 의식으로 인한 유대인들의 배타적 우월감을 깨뜨리고 천민과이방인에게도 평등하게 주의 은총을 선포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본장은 기독교 선교 역사상 획기적 전기를 맞게 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교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사역이 바야흐로 전성기에 달하고 있음과 동
시에 앞으로 이방 선교의 주역이 될 사울의 회심 사건이 본장에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
다. 특히 사울의 회심 사건이 갖는 의의는 본장 이후로 부터 본서의 마지막 부분까지
나오는 내용과 본서 이후에 연결되는 신약성경의 삼분의 일 가량을 점하는 바울 서신
들의 존재가 바로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한 사건에 근거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듯
기독교 신앙 및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본장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선교의 주역. 본장에는 두 명의 인물과 그들에게 관계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울의 회심(1-31절)과 사마리아 지방을 순방한 베드로의 사역
(32-43절)이 그것인데 이 두 인물은 각각의 영역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적극적으로 감
당한 선교의 주역들이었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해서, 사울은 이방인을 위해서 복음
을 증거한 것이다.
물론 본장에 부각된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비교하면 바울보다는 베드로의 사역 활
동이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즉 베드로는 그의 사역 초기에 산헤드린 공회의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였고(4:1-31;5:17-32) 지금은 전성기에 접어 들어 사마리아 지역
에 흩어져 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병든 자와 죽은 자도 살리
는 위대한 이적적 권능을 행하였다(32-43절).
이에 비할 때 사울은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을 무수히 핍박하였으므로 그가 예수를 증
거한다 할지라도 많은 불신과 의심의 반응을 받는, 아직 보잘것없는 전도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본장을 통해 선교의 주역이 베드로에게서 바울로 전환되는 양
상을 암시받을 수 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지상 대업으로 당부하신 과업이 세계 선교였다는 사실(1:8)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감지
되는 사항이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요 헬라인, 더 나아가 전세계의 인류에게로
그 대생이 확대되어야 했으므로, 이를 위해서는 세계 선교를 적극적으로 감당할 수 있
는 커다란 그릇이 필요했다. 바로 이 그릇에 해당하는 자가 사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이었지만(7:58;8:1-4) 그를 당신의 사
역자로 선택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좇아 예수의 증인이 된 사울의
변화는 장차 기독교를 세계 만방에 퍼뜨리는 놀라운 사역을 수행함으로써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하겠다.
(2) 복음의 확장. 본장 전체에서 부각되어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확
장'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울과 베드로의 사역 활동은 총체적으로 그리스도 교회가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29,35,42절). 본장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확장은 초
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으면서도 계속적으로 성장한 사실과 궤를 같이 함은 물
론이다.
사울은 자신의 개종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인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베
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지도자로서 유대교 지도자들의 지속적 제거 대상
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장에 나타나는 교회의 확장은 성격상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본장에는 예루살렘 교회 이외에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역의 교회가 확고한 신앙의 터를 잡아가고 있으며 수적(數的)으로도 부흥케 된 사실
이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노정(露呈)에 있어서 중간 과정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아
울러 10장 이후부터 전개되는 이방 선교의 성취가 가까왔음을 예시한다고 하겠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31절)은 사울의 회심에
관한 내용이며 둘째 단락(32-43절)은 사마리아 지역을 순방한 베드로의 사역 활동에
관한 내용이다.
이중에서 첫째 단락은 다시 다섯 개의 소단락으로 세분된다. 1-9절은 사울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현황을, 10-19a절은 사울이 아나니아에게 세례받은 사실을 그리고 19b-25
절은 사울의 다메섹 전도를 다루었다. 그리고 26-30절은 다메섹에서 핍박을 받은 사울
이 예루살렘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예수를 증거한 내용이며, 31절은 본장 전체의 핵
심 구절로서 핍박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더욱 부흥해 가고 있음을 증거한다.
여기서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은 외면상 서로 관련 되지 않는 내용이 병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장 전체의 문맥적 흐름에 유의하면 양(兩) 단락이 긴밀한 연
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첫째 단락에서는 사울의 회심과 전도를 통해서 복음
사역이 확장되고 있음을, 둘째 단락에서는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서 복음 전도의 열매
가 날로 더해감을 살펴볼 수 있다.
1. 사울의 회심과 초기 활동(9:1-31)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개 기사인 사울의 회심 장면과 그의 초기 활동
을 담고 있다. 교회 박해의 살기 등등한 발걸음을 재촉했던 사울이 복음의 위대한 수
호자요 변증자로 급전(急轉)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을 대변하는 실로 극적인 사
건이었다.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라면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았다(갈
1:1,16).
한편 본서에는 바울의 회심에 관한 사건이 세 차례 언급되었는데(26:1-23 주제 강해
'바울의 회심 기사 비교 연구'참조). 누가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기재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명으로 남겨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실로 교
회사상 바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심히 막대하다. 왜냐하면 바울의 확약으로 인해 비로
소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만일 바울이 유대인을 전도하는
정도에만 그쳤더라면, 기독교가 로마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울을 스스로의 계획하에 이방인의 사도로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
리로 말미암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방 선교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바울만큼 이방인의 사도로서 적합했던 인물도 드물다. 그는 길리기아의 고도
(古都) 다소 출신인데, 다소는 주전 1세기경 헬라 철학의 본고장이었으며 동서양의 합
류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헬라 철학과 로마적 세계관이 동방의 신비주의(mysticism)
와 혼합되어 그 도시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다소에서 성장한 바울도 이러
한 환경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가 헬라 교육을 받은 흔적들로서는 그의 서신
들에서 나타나는 정교한 반어법(고전 1-4장), 명확한 논리 체계 등을 들 수 있다. 그
리고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히브리식 교육을 받았으며, 유대인으로서 로
마 시민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22:25). 따라서 바울의 극적 회심
은 이방 선교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쓰실 사람을 얼마나 주도 면밀하게 준비,
훈련 시키는가를 깨닫게 된다. 이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문 주제 강
해 '바울의 사상적 배경'을 참조하기로 하자.
본문에 수록된 내용들을 상고하기 위해 사울의 회심 동기와 회심 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얻게 된 사울의 확신 및 그의 초기 활동 상황 등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1) 회심 동기(悔心動機). 사울이 회심한 동기는 양면적이라 할 수 있다. 외적으로
는 다메섹도상에서 발생한 '그리스도의 현현'(Christophany) 사건과, 내적으로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된 사울 개인의 영적 고민(苦悶)이 그것이다. 물론 사울이 교회 핍박
을 위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다메섹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지만 예수의
현현 사건을 폭발적으로 부딪힌 순간 그의 존재가 산산 조각나버린 것은 틀림없다. 그
가 핍박했던 예수께서 그에게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이제까지 부정한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회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정의감(正義感)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고 그 자신의 핍박 행위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울은 교회를 핍
박해야 한다는 그의 의무감을 철저히 이행하면 할수록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롬 7:24,25). 마음에 공허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더욱 그리스도인
들을 핍박할 때에 그는 살벌한 핍박의 순간에서조차 영광의 빛과 평안을 잃지 않는 성
도의 모습을 발견하였다(6:15;7:55,56). 다시금 그리스인들을 핍박하려는 사울에게
놀라운 영광의 빛과 예수의 음성이 들려왔을 때 그는 완전히 파쇄(破碎)되고 말았다
(1-9절). 결국 사울의 자아(自我)가 깨어진 동기는 현실과 그의 마음간의 차이에 기인
하는 내면적 괴리감이라는 심리적 요인과 예수의 현현이라는 외적 요인에 있었다 하겠
다.
(2) 회심한 사울이 갖게 된 확신. 개선 장군과 같이 다메섹으로 들어가려던 오만 방
자한 사울은 예수를 만남으로 완전히 부서지고 낮아져서 겸손을 알게 되었다. 사울은
당시 예수를 대면했을 때의 심정을 후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
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8)고 고백한 바 있다.
여기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에 바울이 갖게 된 확신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확신은 장차 이방 선교의 주역으로 활약할 바울의 생애에 있어 땅속 깊이 자
리잡은 뿌리와 같이 그의 마음을 견고케 하는 중요한 사인들이라 하겠다.
첫째로, 사울이 그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의 유대교 생활
과 활동은 하나님의 힐책을 받았다(4절). 요컨대, 사울은 모세 율법이 진정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서 율법을 준행함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율법이
온전한 구원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해 주는 몽학 선생으로 제시
되었음을 깨닫지는 못했다(갈 3:19-24).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복음
메시지가 이 땅에 선포된 이상, 율법이 증거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은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갈 4:9)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둘째로, 사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하나님과 동일하시
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확신은 사울로 하여금 평소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가졌던 그의 전체적인 판단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예수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율법을 파기시키는 기만자가 아니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
신 분이시며 구약성경에 계시된 메시야 예언의 성취를 이루신 분이시다.? 결정적으로
사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으로 인해 그와 같은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였을
때 고대해 왔던 언약의 성취를 피부로 체험하며 그분과의 친교에서 참 기쁨과 구원의
감격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로, 사울은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주님의
메시지를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화합시키는 사도로서
임명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15절;롬 11:13;갈 1:11-16;엡 3:8). 이러한 확신은
그가 예수께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5,6절) 결코 흔들림이 없는 확고 부동
한 것이었다(갈 1:1,11,12;엡 3:2,3).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등하며 그
렇기에 자신의 생명과 온정열을 바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울의 선교적 생애는
사도로 부름받은 그의 소명 의식(召命意識)이 얼마나 철두 철미했는가를 보여준다
(20:24).
(3) 사울의 초기 활동. 사울이 회심한 이후부터 11장에 서술된 바,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행하기까지의 어간에 활동한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본문에
기록된 내용 외의 사실이 그의 초기 활동에 연루되어 있거니와 기독교 선교사상 위대
한 공헌을 한 사울의 선교적 생애를 고찰함에 있어 그의 초기 활동 내역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의 초기 활동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
으로 일관하고 있는 바, 이방 선교에 전념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
면 유대인들에 대한 사역에 중점을 둔 사울의 초기 활동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
을 전하는 사역으로 일고나하고 있는 바, 이방 선교에 전념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에 대한 사역에 중점을 둔 사울의 초기 활동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울의 회심 이후 3년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보냈다(갈 1:15-18). 이 시기에 사
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했으나(20,22절), 유대인들과
심한 대립의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그와 다른 유대인들과의 대립 관계는 두 가지 성
격을 띤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복음을 증거한 사실을 듣
거나 목격한 유대교의 사람들의 그에 대해 가진 배교(背敎)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요(23,29절) 다른 하나는, 이제까지 사울의 핍박을 받은 기독교 신자들이 획기적인 그
의 변화를 불신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21,26절).
구체적으로 그는 유대교 사람들의 살해 음모에서 벗아나기 위해 다메섹에서 예루살
렘으로 피신하였으며(23-25절)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도 핍박을 받았고 믿는 형제들 중
많은 무리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다(26-29절). 특히 그는 예루살렘에서 헬라계 유대인들
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회가 소홀히 해온 사역이었다. 헬라계 유대
인들이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지만 이들은 이방적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로
히브리계 유대인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바울은 헬라계 유대인들에게 전도를 하였으나 그도 역시 스데반이 처한 위급
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1:18-20의 증언으로 보아 예루살렘에서의 사울
의 활동은 15일에 걸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사울은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사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를 거쳐 다소로 피신시킨 예루살렘 교
회의 조치는 아마도 이 사도들이 힘쓴 행동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울이 예루살렘
에서 피신하게 된 행동의 이면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교회의 측면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 직후 커다란 박해로 인해
상처를 입은 시점에서 다시 그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으로 말미암아 각 처로 흩어졌거니와(8:1)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그들의 사명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사울을 예루살렘에서 도피하게끔 도와준 것이다(30절).
둘째는, 사울 개인의 측면이다. 안팎으로 다른 유대인들과 적대 관계에 놓인 사실은
사울에게 다소 좌절감을 느끼게 할 만했으나 그가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하나님께 근
거한 신앙적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받은 환상을
통해 이방인 선교의 임무를 띤 사도로서의 그의 존재를 확임함과 동시에 그 당위로서
예루살렘에서 속히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22:17-21). 예루살렘에서 피신한
사울은 가이사랴에 흩어진 유대인들과 그의 고향 다소의 유대인들에게 계속 예수를 증
거한 것으로 보인다(갈 1:21-24).
결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집중된 사울의 초기 활동은 인간적으로 볼 때 실패인 것처
럼 보이나 이방 선교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하겠다.
복음을 위한 사울의 열정은 바나바라는 믿음의 인물과 더불어 안디옥 교회를 세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고(11:25,26) 거기서 이방인 선교를 위한 전도 여행을 출
발하게 한 사실(13:1)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사울의 그리스도인 핍박 이유.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사도가 되기 전에 교
회와 성도들을 핍박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신
자들을 투옥한 일과 안전을 위해 팔레스틴을 벗어난 신자들을 귀환시키는 일 등에 있
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그의 이력(履歷)은 교회 박해자로서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1,2절;7:58-8:3;고전 15:9;빌 3:6).
혹자는 격란(激難)의 와중에서 중용의 본보기가 되는 말을 한 관대한 성품의 가말리
엘 1세(5:34-39) 밑에서 교육을 받은 사울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은 그의 제자답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사항은 적어도 바리새적 안목으로 볼 때, 노
학자인 가말리엘이 직면한 상황과 젊은 랍비 사울이 직면한 상황은 매우 달랐다는 사
실이다(5:17-42 주제 강해 '가말리엘 인물 연구' 참조). 가말리엘의 조언이 있기 전에
교회는 예수의 주되심, 메시야되심, 죽음과 승리의 부활, 그리고 영광을 입으신 구속
자되심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증언은 사울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전통적
메시야관(요 6:1-15, 주제 강해 '유대인의 메시야 대망 사상의 성격적 근거' 참조)을
혼란스럽게 하였고 나아가 그들의 권위와도 충돌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성
도들은 신앙적 확신에 기초한 완벽한 교리 체계를 갖추고 그에 따라 진리를 해설하기
보다는 다만 예수의 증언으로서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사울
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유를 고찰함으로써 초대 교회가 유대교들로부터 모질게
배척을 받은 사실을 이해하기로 하자. 한편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그
토록 열을 올렸던 이유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사울의 심리 변화이다. 즉 사울은 스데반을 비롯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으면서 전혀 동요되지 않고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모습을 누차 목격하고 깊
은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는 당시 유대교의 형식주의나 기타
여러 부패성을 보고 유대교에 대해 회의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이와같은 여러 심리적 갈등이 있는 데다가 만일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할 경우에는
이제껏 쌓아온 자신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복잡한 여
러 심리적 요인들로 인해 의혹과 갈등이 발광(發狂)에 가까운 핍박의 형태로 표출되었
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울은 구약성경이나 조상의 유전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즉 기독교에 대해 전혀 문외한(門外漢)이었던 사울로서는 열정적 그리스도인
들을 위험한 분열주의자들로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열심과 끈기
등을 목격한 바 있었으므로 사울을 아예 뿌리째로 뽑아버린 듯이 단호한 태도를 취했
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유대교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이유와
긴밀한 연관을 맺는다. 즉 조상의 전통을 사수하는 유대인들의 안목에 예수를 믿는 유
대인들은 이단자 내지는 배교자의 범주에 들어갔다. 예컨대, 유대인의 불신앙을 꼬집
은 스데반 집사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대교의 전체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배교자의 외침과 같았고 종파 분열을 획책하는 자의 범죄 행위로 보였다(7:54). 게다
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장본인은 유대인들이라고 고발한 기독교
인의 설교(52절;2:36)는 유대인의 메시야 대망 사상(大望思想)을 정면으로 와해시키는
것이었기에 유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배교자로 간주하고 더욱 더 핍박하였다.
이런 배경하에서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타파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
로 여겼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소위 유대 민족
을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웠던
'성전'(Holy War)의 맥락과 동일하게 여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울이 비록 하나님
의 뜻을 수행하려는 욕망과 의지에 의해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하더라도, 나중
에 깨닫게 된 바와 같이 그의 행위는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한 채'(딤전 1:13) 하
나님께 저항한 행위와 같았다.
이상에서 사울이 교회를 핍박한 두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전자(前者)는 심리적
해석 방법이요 후자(後者)는 역사적 해석 방법이거니와 후자의 견해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사울의 교회 핍박 이유는 두 견해 중 양자 택일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두 견해가 다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 바울의 사상적 배경. 사울이 회심하여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되기까지는 결코 단
순하지 않은 그의 과거 생애와 그 주변 환경 요인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신약성경의 절반 가량은 점하는 13개의 서신을 기록한 그의 신학적 사상
을 가리켜 '바울 사상' 혹은 '바울 신학'(Pauline thelogy)이라고 부르거니와 그의 사
상적 배경에 관해 간략하게 고찰하기로 하자.
(1) 다소(Tasus).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태어나서 자란 고향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
품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도
시의 문화에 길들여지게 마련이며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연 환경의 순수함과 아름
다움에 동화되게 마련인 것이다. 예컨대, 세례 요한은 유대 산간 지방의 작은 마을에
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눅 1:39) 예수는 나사렛이라는 한 촌에서 유년 시절을 지냈다.
한편 사울은 당시 시리아 주(州)의 하나인 길리기아의 가장 큰 도시 다소에서 자랐
으므로 자연이나 시골 풍경 같은 요소를 반영하지 않고 인간의 사상에 대한 깊은 연구
가 있었다. 다소는 당시 시계 문명의 주류였던 그리이스 로마 문명이 꽃피운 전형적
도시로서, 동양과 서양의 합류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철학과 교육, 문학, 법학, 의
학 등 다방면의 학문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수준에 달하고 있었다. 특히 아카데미, 에
피쿠로스,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 다소의 사상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사울은 복합적 문
명이 함께 어우러진 이러한 도시에서 성장함으로써 그 시대를 주도하는 사회, 문화,
정치, 도덕에 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그 세계에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
(2) 헬레니즘(Hellenism).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울은 당대의 모든 학문에 대한 수
학(修學)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당대 학문의 조류는 헬레니즘이었다. 사울
은 헬레니즘 문화가 성행한 다소에서 헬라 특유의 성격인 민첩성, 환경 적응성, 학문
적 정열 등의 특성을 몸에 익힐 수 있었고 특히 당시 세계의 표준어인 코이네(Koine)
헬라어를 자유 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記者)를 제외하고는 바울만큼
헬라어를 사용한 이가 없다는 점은 그와 같은 사실을 능히 짐작케 해준다.
무엇보다도 당시 세계 문명과 문화의 주류인 헬레니즘 사상 가운데서도 사울에게 가
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스토아 사상이었다. 신(神)의 내재(內在), 지혜, 자유, 보편
주의적 형제애(兄弟愛) 등 네 개의 사항이 골자를 이루었던 스토아 사상은 편협한 히
브리인의 세계에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울에게 있어 헬레
니즘은 전통적 유대교의 사상에 비견할 때 종속적이며 부차적이었다 하더라도 매우 현
실적인 것이었다 하겠다. 따라서 사울이 훗날 기독교 철학자로서 진정한 위치를 점하
게 된 데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3) 밀의종교(密議宗敎). 사울이 밀의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밀
의종교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이 예수를 일종의 신으로 신격화하고 이방 신화의 요소를
도입했다는 생각은 그릇된 관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활약한 A.D.1세기경에는
유대교 외에 어떤 다른 종교의 영향을 기독교에 결부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밀의종교
(密議宗敎)는 2세기가 되어서야 로마 제국에 널리 퍼졌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인간의 역사 속에 일어난 현실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울이 '지혜'와 '신비'등 밀의종교에서 사용하는 요어들을 채택하여 자신의 의
도에 따라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다(빌 4:12). 하지만 이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
상, 사울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밀의종교(mystery religions)의 영향은 매우 빈약한 것
이라 하겠다.
(4) 유대교. 사울이 무엇보다도 유대인이었다는 점은 그의 사상의 저변에 유대교가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후에도 자신이 유대
인임을 잊지 않았고(롬 2:9) 때로는 유대인인 사실을 떳떳하게 자랑했다(고후
11:16-22;빌 3:4-6). 만일 그가 헬라의 문화와 로마적 세계관에 접하지 아니하였다면,
그는 이방 선교를 위한 그릇이 되지 못했을 정도로 자신이 순수한 유대인임을 마음속
에 새겼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이 회심하여 기독교 사상의 중추적 인물이 된 데에는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유대교의 영향이 가장 지대했음을 반영해 준다. 사울은 유대인의 여러 종
파(막 5:35-43, 주제 강해 '예수 당시의 주요 사회 계층 및 종교 계층' 참조) 가운데
교리상 기독교와 가장 근접한 바리새파에 속했다(23:6). 하지만 바리새파는 다른 종파
와 달리 여러 면에서 엄격하였다. 사울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빌 3:5)이었다고
자증(自證)한 사실은 그러한 점을 상기시켜 준다. 하지만 사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이었
으나 그가 속한 학파인 힐렐(Hillel)파는 이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샴마이(Shammai)
파와는 달리 온건했다(5:17-42 주제 강해 '가말리엘 인물 연구' 참조).
사울의 스승 가말리엘이 사도 베드로를 위하여 변호했던 사실(5:33-42)은 중용적 성
격을 띤 힐렐 학파의 면모를 대변해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사울은 바리새주의
를 빛낸 대표적 청년이었거니와 그의 서신서들을 살펴볼 때 70인역 성경뿐만 아니라
히브리 구약성경과 외경, 그리고 유대 묵시 문학(默示文學)에 대해서까지 그가 정통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에게 전한 바울의 사상적 배경에는
유대교의 영향이 가장 지대했다고 하겠다.
* 바울의 인간적 특성. 기독교 역사상 바울이 남긴 업적의 위대함은 신약성경에 나
오는 13개의 서신서들이 증언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서는 인간 바울의 특성을 그
의 외모와 자질 면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외모(外貌). 바울의 외모를 가장 소상하게 알려주는 [바울과 데글라 행전]에 의
하면, 그는 대머리에 안짱다리, 자그마한 몸집에 눈썹은 맞붙어 있고, 다소 큰 코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바울이 비록 활동적 기질을 갖고 있었지만 신체적으로 다
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졌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고린도 후서 10:10에 '그의 편지들을
증후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다'라고 바울의 대적들이 비평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짐작케 해준다. 또한 바울은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는 모르나 신체적
지병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후 11:23-26;12:7-10).
결론적으로 바울은 그의 사상이나 자질 면에 있어서 탁월했다 할지라도 신체적으로
는 매우 빈약하고 보잘것없었던 인물이었다. 이렇듯 육체적 모습이 초라한 자에게 하
나님께서는 이방 선교라는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다(15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외모
보다 그 중심을 보시며(삼상 16:7)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다. 이러므로 우리의 외모가 초라하더라도 낙심하지 말 것이며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
라보면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하루하루 감당해 나가야 하겠다.
(2) 자질(資質). 바울은 신체적 면에 있어서는 다소 열등하나 그의 자질 면에 있어
서는 매우 뛰어난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즉 탁월한 변론 능력과 종교적 영감,
날카로운 지성과 지칠 줄 모르는 정열, 성실과 용기, 조직 능력과 따뜻한 인간성 등이
그의 천부적 자질이다. 이와 같은 자질은 바울을 바리새인 중 전도 유망(前途有望)한
청년이 되게 하였고 나아가 기독교 교회의 전무 후무한 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한 마
디로 말해서 바울에게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과 자질들을 두루 지녔거니와, 이
러한 자질은 바울로 하여금 기독교의 세계적인 확산과 기독교 신학의 건립에 획기적
공헌을 할 수 있게 하였다.
2. 베드로의 순회 전도(9:32-43)
앞 문단에서 이방인의 사도가 될 사울의 회심과 초기 활동을 다루었거니와 본 문단
에서는 베드로가 팔레스틴 서부 지역에서 순회전도 사역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앞 문단과 본 문단은 표면상 상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장의 전후 문
맥적 흐름에 유의하면 '이방인 선교의 기초 작업'이라는 주제하에 자연스럽게 양 문단
이 하나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즉 앞 문단에서는 교회 핍박자 사울이 복음 전도자
바울로 변모되는 과정을 다루었고 본문에서는 유대 지경을 넘어 팔레스틴의 해안 광야
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베드로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 수록된
베드로의 순회 전도 사역은 장차 바울을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갈
사실을 모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한편 베드로는 핍박을 받아 흩어진 유대인들을 찾아다니며 증거하고 권고하였다. 여
기서는 당시 베드로의 사역 중 대표적인 두 경우가 소개되어 있는데, 중풍병으로 누운
애니아를 회복시킨 것(32-35절)과 병들어 죽은 다비다를 소생시킨 사건(36-43절)이 그
것이다. 본문에 수록된 베드로의 사역이 갖는 전반적 의미에 대해서는 장 강해에서 다
루었으므로 여기서는 본문에 부각되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베드로 사역의 절정을 보여 줌. 본문에 수록된 이적 기사는 베드로의 복음 사역
이 절정에 달하였음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병자를 이적적으로 치유한 일이 더러 있었
으며(3:1-10;5:12-16),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사형 선고(死刑宣告)를 내려 죽게 한
적도 있었다(5:1-11). 하지만 그때까지 베드로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베드로는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의 능력을 뚜렷이 기억하
고 있었을 것이다(막 5:41,42;요 11:43,44). 따라서 베드로는 오직 예수의 능력에 의
지하고자 주의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꿇어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예수께서 다비다를 소생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고 또한 믿음으로 선포하여 다
비다를 다시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 실로 그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구체적 삶
속에서 구현시켰던 것이다.
(2) 베드로의 고넬료 전도에 대한 전조(前兆). 본문의 내용은 10장에 수록된 고넬료
가(家)의 성령 강림 사건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서론적 역할을 한다. 베드로가 환상
을 보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방 선교의 획기
적 전환을 맞이하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며 더불어 본문에는 이방 선교가 성취될 것이
라는 전조가 보인다. 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유대인의 장례 풍습이다. 어떠한 시체도 하루를 넘길 수 없었던 것이 유대
인의 장례 풍습이다(신 21:22,23).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을 때에 그 날로 즉시 장례를 치른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해 준다
(5:1-11). 반면 예루살렘 밖에서는 시체를 3일 동안 놓아둘 수 있었다. 여제자 다비다
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고 사람들이 베드로를 불러온 것은 예루살렘 바깥인 욥바
에서 일어난 일이었다(36,37절). 또한 시체를 가까이 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있어 불결
하고 부정(不淨)한 행위로서 금지된 일이었다(레 2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다비다의 시체를 가까이 하고 그 여인을 살린 것은 유대인의 관례를 깨뜨린 파격적 행
위였다. 이러한 사실은 유대인이 이방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금기시한 것과 비
등한 행위로서 다비다를 소생시킨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접견하게 될 것에 대한
복선(伏線)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둘째는, 욥바의 피장(皮匠) 시몬의 집에 베드로가 머문 사실이다(43절). '피장'이란
죽은 짐승의 가죽을 가공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직업
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천하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부정한 일로 취급되었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피장의 집에서 여러 날 동안 머무른
사실은 유대적 편견을 개의치 않는 베드로의 태도를 보여준다. 물론 그의 관념 속에서
완전히 유대교의 잔재가 없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중생한
베드로는 바울에게 선교의 깃발을 넘겨주고 이방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다리의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피장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환상을 보고 급기야 고넬료를 접견한 베드
로의 행동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거니와, 베드로의 피장의 집 체류는 다음 장
에 이어 나오는 베드로의 고넬로 가(家) 전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알려주는 서론적
언급이라 하겠다.
한편 우리는 본문을 통해 본서의 저자인 누가가 역사가로서 탁월한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누가복음 강해에서도 수차례 언급한 바거니와 누가는 사건을 비교적 순서적으로 기록하였고 여러 개의 주제들을 일관성있고 체계있게 서술하였다. 예컨대, 누가는 본장에 사울의 회심을 수록하기 전에 그의 과거 생활을 넌지시 암시하였고(7:58;8:1) 또한 10장의 고넬료 전도 기사를 위한 준비로서 본문을 기록한 것이다.
주의 제자들을 - 사울이 핍박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명칭으로 언급된 '주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이다. 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표현을 '그 도를 쫓는 사람들'(2절), '제자'(10절), '성도들'(13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14절), '형제'(17절) 또는 '형제들'(30절) 등으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 기독교인에 대한 사울의 잔혹한 행위를 심리적으로 묘사이다. '위협'으로 번역된 '아페일레'(* )는 '경고'라는 말로도 해석되는데여기서는 당장이라도 '살해'를 할 것 같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같은 바울의 심리 상태를 '등등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동적(動的)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숨을 쉰다'(breathe)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사울의 호흡이 살기와 위협의 숨소리로 들릴만큼 박해가 잔인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울의 행위가 얼마나 능동적인 행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사울 자신은 박해 행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대제사장에게 가서 -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간 것은 기독교인에 대한 체포권을 부여받기 위함이다(2절).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한 사울이(26:5) 예수를 죽이기로 음모하고 이를 실행했던 대제사장, 바리새인들(눅19:47;20:19;22:52;23:10)과 같은 노선에 있었음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당시 대제사장은 칠십 인으로 구성된 의회 '산헤드린'의 의장으로서 로마로부터 인정받은 권한 곧사법권과 행정권을 팔레스틴 내.외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행사할 수 있었다.당시 대제사장이 '가야바'(A.D. 18-37)였는지 그 후임자 '데오빌로'(A.D. 37-38)였는지 알 수 없으나 사울의 회심(回心)을 A.D 35년경으로 본다면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Lenski).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자는 '데오빌로'로 추정한다(alford, Levin). 그러나 사울의 회심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견해모두 가설에 불과하다.
=====9:2
다메섹 여러 회당 - 사울의 행선지로 언급된 다메섹은 예루살렘 동북쪽 약 230km정도 거리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서 삼 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해발 671m의 고원 지대이다. 이곳은 아브라함때 부터(창 14:15;15:2) 다윗 시대(삼하 8:6)와 솔로몬 시대에(왕상 11:24) 걸쳐 계속언급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73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B.C.64년부터로마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다메섹에 거주했던 유대인의 수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A.D. 66년 네로 박해 때 약 10,500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요세푸스(Josephus)의 보고가 이를 뒷바침한다.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있어서 중심 기구라고 할 수 있는 회당도 상당수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에있는 기독교인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박해 때(8:1-3) 예루살렘으로부터 피신해 간 유대기독교인들과 그들에 의해 개종된 유대인들로 추정된다. 그 도를 좇는 사람 - 여기서 언급된 '그 도'란 기독교를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중의하나다. 누가는 단순하게 '도'(道)로만 언급하기도 하며(19:9, 23;22:4;24:14, 22)'주의 도'(18:25)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용어로 '도'란 말을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 예수를 '생명의 길'로 교회가 인식하고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 사울이 이방 지역에서 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묘사하고 있는 본 구절은 당시 대제사장이 이방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 본 구절은 예루살렘이 교회 탄압의 중심이며 유대인들에대한 행정의 중심지도 됨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대제사장이 이방 지역의 유대인에게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마카비1서 15:15-21에 따르면루기오(Lucius)총독은 유대에서 도망한 자들을 대제사장이 유대법에 따라 처벌할 수있도록 프톨레미에게 요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 글라우디오 황제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헤롯아그립바 1세가 분봉왕(分封王)으로 유대를 다스렸으므로 대제사장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을 것이다.
=====9:3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 본 구절은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초자연적 개입이 일어난 것에 대한 묘사이지만 그 지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편 '빛'이 22:6에서는 '큰 빛'이라고 언급되고 26:13에서는 '해보다 더 밝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하늘로부터 온 빛에 대해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함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나타나는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한 저자의 배려로 이해한다(Haenchen). 그러나 오히려바울이, 둘러 비친 그 빛에 대해 묘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간증할 때 조금씩달리 표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에게 둘러 비친 '빛'의 성격은 그빛에 대해언급된 세 곳의 묘사를 종합해 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 26:13에서는 같은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서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고 하였다. 이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모색할수 있다. 즉 본절에서는 오직 사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26:13에서는 사울 자신의 회심 사건에 있어 현장 목격자들도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행들에게도 동일한 빛이 비추었다는 진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22:9의 기록은 본절과 26:13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무튼 사울과 함께 다메섹으로 가던 일행들도 사울이 경험한 그 빛을 목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9:4
땅에 엎드러져 - 본 구절은 갑자기 내려 비취는 빛에 의해 나타난 사울의 반사적 행동에 대한 묘사다. 여기서 '엎드러져'라는 단어 '페손'(* )은 '떨어진다', '넘어진다'의 뜻으로 쓰러지듯 엎드린 사울의 행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반사적이면서 두려움에 휩싸인 즉각적 반응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이 말을 타고 갔다면 말에서 떨어지다시피하여 땅 위에 엎드렸을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 혹자는 구약 시대에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 격식을 갖추는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Longenecker). 그러나 사울에게 들려진 예수의 음성은 분명히 애정어린 음성으로 이해된다. 본절 외에 성경에서 이름을 두 번씩 불렀던경우는 아브라함(창 22:11), 모세(출 3:4), 사무엘(삼상 3:10), 시몬(눅 22:31)을 들수 있다. 이는 부르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낸다.
=====9:5
주여 뉘시오니이까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알지 못하는 음성에 대하여 사울은 '주여'(* , 퀴리에)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호칭은 자기를 부르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인식했음이 아니다. 이는 사울이 곧이어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자신을 부른 자의 정체를 묻고있다는 점에서 알수 있다. 아마도 초자연적 어떤 힘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나온 호칭으로서 짐작된다. 나는...예수라 - 본절의 헬라어 본문에는 복음서에서 예수의 자기 선언의 한 양태인 '에고 에이미'(* )가 언급되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언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를 70인역(LXX)이 '에고 에이미'의 문장으로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예수는 '에고 에이미'를 사용하심으로써 구약에서모세가 만난 그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기 선언을 하신 것이다. 구약 시대의선지자들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란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선포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밝힌 반면 예수는 스스로의 신적권위를 나타내신 것이다. 본절에서도 역시 예수는사울에게 하나님으로서 자기를 선언하심으로써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와 동일한 언어습관을 나타내셨다.
=====9:6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 자신의 정체를 밝힌 예수께서 곧이어 사울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셨던 것은 다음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사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미 예수께서 그를자신의 제자로 지명하여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2) 사울이 예수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없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활한 예수의 초자연적인능력을 암시한다. 이 두가지 의미를 종합해 보면 사울의 소명 의식이 부활한 예수의강권적인 능력의 부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예수가 사울을 아시기 위해 이미 예정된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26:16과 본절은 내용 전개상 약간의 모순이 있다. 즉 26장에서는 아나니아와 사울에 만남에 대해서 생략되어 있으며 사울의 소명이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주어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은 사울의 소명이 그가 다메섹성에 들어간 후에 주어질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같은 불일치는 26장이 사울 자신의 체험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것이므로 그 체험에 담긴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은 아나니아를 통해 받았던 소명을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것처럼 묘사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접속사 '알라'(* ,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으나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있지 않았다. 여기서 혹자는 앞절과 연관지어 '나는 네가 행한 일에 대해서 더 이상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알라'를문자적으로 해석한다(Lenski). 그러나 혹자는 '알라'를 감탄사 정도로 생각하여 '자'로 번역했다(Haenchen). 여기서 어느 해석을 취해도 앞절과 본절의 연결은 자연스럽지못하다. 그래서 어떤 영역 성경 중에는 '그는 떨면서 놀라움에 사로잡혀 주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는 구절을 첨가시켰다(KJV, MLB). 이는 22:10과 조화시키기 위한 첨가로 짐작된다. 아마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는 자들이 섬기던 예수를 만나자 놀라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9:7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 사울과 함께 동행하였던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시각적으로 아무것도감지하고 있지 못함을 언급하고 있으나 22:9과 26:14에서는 각각 조금씩 달리 설명했다. 22:9에서는 일행이 소리는 못들었어도 빛은 보았다고 진술하여 본절과 정반대의상황을 나타내었다. 반면 26:14에서는 사울과 그 일행 모두가 엎드려졌다고 한점으로보아 모두가 초자연적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울의 세 가지 진술이 모두 서로 일치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소리'는 음성을 뜻하는 것으로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명령한 음성이 예수의 음성인지 아니면 사울의 음성(5절)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 또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 하늘로부터 온 빛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러한 의문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 두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게된다. (1) 일행들은 '주여 누시오니이까?'라는 사울의 외침만 들었을 것이다(Chrysostom, Bruce). (2) 그들이 무슨 소리를 듣기는 들었으나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Bengel). 여기서 강조된 분명한 사실은 사울이 환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 경험을 하였고 그 사건을 목격한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사울이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는 피상적이거나 부분적인 이해만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22:9과 26:14의 기록과 본절의 기록이 지닌 차이는 모순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사울뿐임을 강조하는 기능을 갖는다. 말을 못하고 섰더라 - 본 구절은 사울의 일행들이 무엇인가를 경험하면서도 아무말을 못하고 있음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말을 못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오이'(* )에 대해 혹자는 '공포로 인하여 말을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A.C. Hervey).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서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고 다만 70인역(LXX)의 사 56:10에서 짖지 못하는 개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56:10에서는 이 단어가 공포와는 관계없이 어떤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無知)와연관되어 사용되었다. 아마 누가는, 사울의 일행이 자신들과 사울에게 일어난 사건에대해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9:8
일어나 눈은 떳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 사울이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있었던 모습은 땅에 엎드러진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보지 못했다'라는 말은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사울이 보고자 했으나 볼 수 없었던 상태, 즉 빛을 경험한 순간부터 일어서는 시점까지 보이지 않고 있는 사태를 암
시한다. 따라서 사울이 경험한 소명 사건은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었다기 보다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의 음성을 들었던사실은 내면적인 사건으로 돌릴 수 없다. 사울이 빛으로 인해 예수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음성은 그에게 실제로 들려왔다. 한편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에 대해 몇몇 학자들은 사울이 회심하기 전까지의 영적 무지에대한 상징으로 생각한다(Calvin, De Wette).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그러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그 생각은 별로 타당성이 없다(Meyer). 오히려 이 사건은 사울에게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였다.
=====9:9
사흘 동안을 보지도 못하고 심음을 전폐하니라 - 여기서는 강조점은 보지 못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흘 동안 식음(食飮)을 전폐한사실이다. 즉 사흘 동안에 걸쳐 사울에게 내면적인 어떤 큰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암시한다. 아마도 사울 자신이 지금까지 배웠고 자랑스럽게 고수했던 사상 체계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한 예수의 음성을 연관지어 깊은 고뇌나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특히 '사흘'(* , 엔 헤메라스 트레이스)이라는 숫자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낸 요나의 이야기(마 12:40)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예수의 부활처럼 사건의 대전환을 예고한다. 이와 같이 사울의 회심은 자기 자신의 엄청난 내면적 고통을 통한 결단이었다. 이 사흘 동안 사울은 다메섹 도상의 경험을 구약적 차원에서 재해석해야 했으므로 그의 신학적 체계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에신중을 가했다.
=====9:10
그 때에 - 헬라어 본문에는 특정한 시간을 지시하는 접속사가 없고 이야기의 진행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접속사 '데'(* , '그러나')만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데'를 생략하든지 아니면 '한편'이란 접속사로 연결시키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 - '제자'로 언급되는 '아나니아'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흔한이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5:1;23:2). 이 이름의 히브리적 본래 의미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 이름의 뜻에 걸맞게 아나니아는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경건한 자였다(22:12). 그런데 그가 어데게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한편 '제자'는 기독교인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다(1절주석 참조). 22:12을 볼때 아나니아가 다메섹에 오랫동안 거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루살렘 박해 때 피신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오순절 때 기독교인이 되었거나(2:5-11) 아니면 그 이전 예수의 활동 당시 예수를 따랐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으로 짐작된다. 환상(幻像)중에 불러 - 본 구절은 아나니아의 구약적인 계시 경험(삼상 3:1-9)에대한 진술이다. 이 언급은 사실적 묘사라기 보다 신적 계시에 대한 문학적 묘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서 계시 전달자에게 실제적으로 일어난다. 본절에서 아나니아가 본 환상은 (1) 사울을 택하기 위한 주의 치밀한 섭리를 강조하며, (2) 아직도 의구심에 사로 잡혀 있을 사울에게 증거가 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예수의 부름에 대한 아나니아의 대답은 구약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창 22:1;삼상 3:4). 따라서 본절에서 사울의 소명 사건을 구약 시대의소명 사건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9:11
직가라...가서 - 예수가 가라고 지시한 거리 '직가'(直街)는 동서로 곧게 뻗은 거리로서(Vincent)현재는 '다르발 무스타킴'(Darbal Mustaqim)이라고 불리어진다.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 9절에서 언급된 사울의 금식 행위를 예수는 기도하는 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울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함께 절박한 기도를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9절 주석 참조)=====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보았느니라 - 본 구절은 아나니아가 자신에게 와서 안수를 통해 자신의 눈을 뜨게 하여 줄 것이라는 사실을 바울이 환상으로 이미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사울에게 아나니아의 일을 보여주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사울은 두번째 환상을 본 셈이된다. 이같이 치밀한 과정을 통해 사울의 회심시키는 사실을 볼 때 사울에 대한 예수의 깊은 애착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의 철저한 유대교적 사상과 기독교를 탄압하였던 광신적 열정만큼이나 사울의 회심은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가 겪고있는 깊은 고뇌와 예수의 집요한 노력이 사울의 회심을 가능케 하였다.
=====9:13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 본 구절은 아나니아가 사울을 직접적으로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또한 본 구절은 아나니아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 많은 교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나니아는 이미 이전에부터 있어 왔던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간과될 수 없는 사실은 사울의 악명이 이방 지역에까지알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잔악하고 반(反) 기독교적인 사울의 행위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나니아에게 있어서 악명 높은 사울에게 안수하라는예수의 지시는 충격적인 사실로 이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사울의 회심이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임을 강조하는 효과를 지닌다. 주의 성도 - 이말은 기독교인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 하나로 '구별된 거룩한 자'를 의미한다. 32절과 41절에서는 단순히 '성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본문에서 '주'라고 번역된 '당신'(* , 수)이라는 표현은 성도와 예수와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는 성도에 대한 박해가 예수에 대한 핍박이며(5절) 따라서 사울이 예수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예수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9:14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 - 기독교인에 대한 또 다른 명칭이다. 명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절 주석을 참조하라. 누가는 기독교인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통해서 이야기의 지루함을 피할 분 더러기독교인에 대한 당시의 다양한 이해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것은 그가 구원받았음을 의미한다(몸 10:13). 그렇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성도를 의미한다.
=====9:15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 13, 14절에서 아나니아의 입을 통해 사울의 반 기독교적 행위가 언급된 후 예수로부터 사울의 소명(召命)이 극적으로 선포되고 있다. 사울의 선교 대상이 크게 세 가지로 언급되었다. (1) 이방인, 여기서 예수는 유대 이외의 모든 나라에 대한 선교를 첫번째 관심사로 언급하고 있다. 사울이 이방인에 대해 배타적이며 광신적인 유대인이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소명은 사울의 회심에 걸맞는 매우 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2) 임금. 이는 세속적인 권력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그립바 왕(26장), 가이사(딤후 4:16, 17)등 집권자들 앞에서 증언하였던 사울의 선교 활동을 통해서 이 소명이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이스라엘 자손들. 사울은 자기 민족에대한 깊은 애정을 지녔으며 회심 후에도 그 애정을 잃지 않았다(롬 9:1, 2). 그렇기때문에 그는 자기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사울은 모든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다. 다만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유대인을상대로 전도 활동을 했으므로 사울 자신은 이방인을 상대로 그 사역을 감당했다(갈2:8). 택한 나의 그릇 - 선택된 그릇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법으로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렘 22:28;51:34). 사울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서 하나님께 선택된자임을 의미한다(롬 1:1;갈 1:15).
=====9:16
그가...받아야 할 것 - 본 구절은 복음전파를 위한 소명과 함께 사울이 겪어야 할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서그 고난이 필연적인 것으로서 언급된다. 이 같은 예고는 13절에서 언급된 아나니아의말과 사응하는 표현으로 사울이 기독교인들에게 해를 입혔던 것처럼 자신도 해를 받게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해'(害)는 고난의 의미로서 보복의 차원이 아니다. 즉 기독교인이 당하게 될 의로운 고난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따라서 바울은 예수를 따르려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예수의명령을(마 16:24;막 8:34;눅 9:23;14:26, 27) 실천해야 했다.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 '보이리라'로 번역된 '휘포데잎소'(* )는'지시하다', '증거하다'의 의미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사울에게 보이시겠다는 것은 환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겪어나갈 실제적인 고난을 말한다. 즉 사울은 환상을통해서 자신이 예수를 위해 어떠한 고난을 얼마나 당하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기보다는 실제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것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9:17
형제 사울아 - 아나니아는 예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방문하여 안수하고는 '형제'라는 호칭으로사울을 부르고 있다. 특히 '형제'(* , 아델포스)라는 칭호가 암시하는바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왜냐하면 이미 아나니아는 사울의 반 기독교적인 행위로 인해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13, 14절). 따라서 여기서 '형제'라는 호칭은 사울의 모든 악한 과거가 용서되고 사울을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선언하는 것이라고보아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 아나니아의 이 말은 사울의 선교 활동이 성령의 인도에 따른 것임과 사울에게도 사도적 능력이 부여됨 그리고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안수는 성령이 임하는 방편으로 이해된다(8:17). 본절에서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는 말을 했으나 사울이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사울의 눈이 치료되어 세례받은 사실과 이 후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아 이때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것으로짐작된다.
=====9:18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 사울이 다시 보게 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가 보지 못하게 된 원인이 제거됨을 묘사하고 있늠 본문은 의학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Lumby, Haenchen, Hervey). 혹자는이 기적을 사울이 경험한 주관적 느낌이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한다(Weiss, Barnes).그러나 이 사건은 물리적으로 나타난 사실적 현상이다(alford, Bengel, Knowling). 왜냐하면 상징적 의미만을 전달하려 했다면 단순히 '눈을 뜨게 되었다'는 표현만을 사용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누가는 사울의 눈이 치유된 기적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며그 사건을 사울의 부름받음에 대한 증거로 기록했던 것이다 세례를 받고 - 기독교인 됨에 대한 의식으로서 사울은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게되는데 이 세례가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베풀었던 것과(8:36-38)같은 형식을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다메섹에 침례할만한 강이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침례가 행해질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현대에 행해지는 형식의간단한 예식을 치렀을 것이라(Lenski)고 말한다. 또한 어떤 학자는 다메섹에 있는 유다의 목욕탕에서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Earn). 그러나 이러한 추정들은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본절에서 누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은 사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믿음의 공동체에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9:19
강건하여지니라 - 사울이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졌다는 본문은 9절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사울의 금식이 끝났다는 단순한 의미 외에 사울의 내적 갈등과 고뇌의 종결을 의미한다. 뿐만아니라 본 구절은 사울의 변화된 새로운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강건하여지니라'라는 단어는 사울의 변화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난 것임을 암시한다.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 사울이 다메섹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과 함께 지냈다는 사실은 그가 기독교인으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하며 또한 그가 다메섹의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회심과선교시작 사이에 나타난 며칠간의 공백 기간에 대한 갈 1:16, 17과의 차이점이다. 즉본절과 20절에는 사울이 회심한 후 곧바로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했으며 여러 날 후에루살렘으로 간 것으로 묘사된 반면 갈 1:16, 17에서는 그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진술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견해가다르다. 혹자는 회심 직후 아라비아를 다녀와서 다메섹에서 머물렀다고 주장한다(Pearson).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어떤 학자들은 사울이 23절에 언급된 '여러 날' 이후에 아라비아로 갔을 것으로 추정한다(Neander, Meyer). 그 외에 올스하우젠(Olshausen) 같은 학자는 25절 사건 이후에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을 것으로추정한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과 바울 자신의 진술을 문자적으로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 누가는 사울이 회심 후부터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까지의 일을 간략하게 기록한 반면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함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햇수를 밝힐 필요가 있었기때문이다. 따라서 본절 이후부터 26절 사이에는 3년이란 기간이 걸렸으며 사울은 이동안에도 복음 전파를 했을 것이다.
=====9:20
즉시로 각 회당(會堂)에서 - 사울의 첫 복음 전파의 장소가 회당으로 소개되어 2절에 언급된 회당과 대조되고있다. 즉 사울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장소였던 회당이 복음을 전파하는 장소로 뒤바뀜으로써 그의 회심이 극적으로 강조되었다. 한편 '각 회당'이란 표현은 사울의 설교가 여러 회당에 걸쳐 계속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보아 사울이 큰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이가 예수이심을 확신했기에 그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을 서로 연관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예수를 따라 다녔던 자가 아니었기에 자기가 만난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을 연관지을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을 신학적으로 깊게 연결한 혼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 여기서 누가는 사울의 설교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사울의 과거를 언급함으로 사울의 회심을 강조하고 있다. 본 구절에 언급된 청중은 회당에 모인 비기독교적 유대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을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칭하여그들이 제 삼자적 입장에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중들의 놀람은 사울의회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반응, 즉 사울에 대한 반감이라고볼 수 있다(Haenchen). 특히 23절의 언급은 유대인들이 사울을 배교자, 배신자로 여겼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 본 구절은 청중들의 반감에 상응(相應)하여 표현된 반응으로서 청중들의 반감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 기세를 높여 증거하는 사울을 부각시킨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영적인 힘이 증가되고 점점 담대해지는 사울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證明)하여 - 본절에서의 설교는 20절에서의 설교와 표현만다를 뿐 그 내용은 같다. 이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이 사울의 일관된 메시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고전 1:23). 한편 여기서 언급된 '증명하다'로 번역된 '쉼비바조(* )는 본래 '연결시키다'는 뜻과 함께 '논증하다', '가르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울의 설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여러가지의 자료들을 모아 논증적으로 예수의 그리스도됨을 가르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케오'(* )는 '혼란케하다', '섞다'의 뜻을 지니므로 사울의 설교 내용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혼란에빠져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갑작스런 사울의 회심과 그의 설교 내용은 유대인들을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공동 번역은 이러한 의미로 번역했으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이 의미로 번역했다(KJV, RSV, MB).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다음절에 언급되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따라서 개역성경의 번역은 정확하다고볼 수 없다.
=====9:23
여러 날이 지나매 - 이 표현은 사울의 선교가 시작된 후 유대인들의 살인 공모가 있게 된 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의 경과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여러 날' 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라이 히카나이'(* )는 19절의 '며칠'(* ,헤메라스 티나스)과는 달리 상당히 긴 시간의 간격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간적 간격에대해 많은 주석가들은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간 기간이 삼 년으로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간 기간을 삼년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갈 1:18의 삼 년은 바울의 회심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울은 자신이 아라비아에서 얼마동안 머물렀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날'에 대한 시간적 규명은어렵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사울이 회심 이후 약 삼 년여에 걸쳐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고 다메섹에서 사울의 선교 활동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진행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울에 의한 파문은 유대인 공동체에 있어서 충격적인 도전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울의 지속적으로 예수를 전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사울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9:24
저희가...선문까지 지키거늘 - 고후 11:32에 의하면 '아레다 왕의 방백'이 성을 지킨것으로 사울은 언급했다. 여기서 역사적 고증(考證)에 따른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다메섹은 나발인들이소유하여 그들이 성을 지켰다는 설(H. Schlier)이 있는가 하면 나바티안족들이 다스렸다는 설도 있다(Loisy, Lake). 당시에는 유브라데스 강에서 홍해까지 뻗쳐있는 나바티안 아랍 왕국이 있었으며 이곳의 통치자는 아레다 4세(B.C. 9-A.D. 40)였다. 유대인들이 나바티안 족의 방백을 매수해서 사울을 잡고자 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두번째견해가 더 타당하다. 이처럼 사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은 과격한 것이었다.
=====9:25
그의 제자들이 - 누가는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사울을 탈출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그의 제자들'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여기서는 문맥상 '사울의 제자들'이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칭 대명사 '그의'(* , 아우투)는 앞절에서 언급된사울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에 대해서 다음 세 가지로 해석될 수있다. (1) 이들은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예루살렘에서부터 따라간 동행인이었을 것이다. (2) 다메섹에서 행한 사울의 설교에 감동되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일것이다. (3) 이전부터 있었던 기독교인들로 사울을 따르며 그를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2)의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상당 기간 전도 활동을했으므로 그곳에 상당한 추종자들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광주리 - 이 말의 헬라어 '스퓌리스'(* )는 예수가 4,000명을 먹이신기적때 언급되었던(마 15:37;막 8:8)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사울이 고후11:33에서 직접 언급할 때에는 본문에서 언급한 갈대 광주리와 구별되는 끈으로 만든바구니 '사르가네'(* )가 언급되었다. 사람을 달아내리는 데는 사울이직접 언급한 '사르가네'가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만 '스퓌리스'와 '사르가네'가 본절과 고후 11:33에서 구별없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광주리에 담겨져 탈출한 것은 그 당시의 위기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회심으로 인해 겪게 되는사울의 첫번째 수난이라는 점에서 16절에서 예수가 아나니아에게 예언한 그의 고난이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9:26
예루살렘에 가서 - 갈 1:18에 의하면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삼 년만에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15일 동안 체류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오게 된 동기는 베드로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을 사귀고자 -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이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를 가리킬수도 있고 일반 기독교인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갈 1:19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 외에 다른 한 사도도 만나지 못했음을 진술했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된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성도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다 두려워 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 본문은 사울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반응으로 교회가 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고 경계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사울의제자됨은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인지 아니면 소문으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는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아마 소문으로도 이미 알려져 있었을 것이고 자신 또한 직접 제자됨을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이 거리상 많이 떨어져있었으므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사울에 대한 신회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도들은 사울에게서 직접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것도 역시 사울의 회심이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을 만큼 예기치 못한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여기서 '제자됨'이 사도성(使徒性)을 뜻하는말인지 단순히 '기독교인이 됨'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사도됨을 진술하려고 의도했다면 누가는 일반 성도의 의미인 '제자'란 용어 대신 '사도'란 용어를사용했을 것이다.
=====9:27
바나바 -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냉대를 당할 때 사울을 사도들 앞에서 보증해 준 바나바는 구브로(Cyprus)섬 출신으로서 레위인이며 본명은 요셉이었다.그에게 설교하는 능력과 위로하는 능력이 인정되어 바나바라는 이름이 사도들에 의해주어졌다(4:36).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쳤으며(4:37) 안디옥 교회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울과 동역자가 되어 활동하기도 했다(11:24-30;13:2-4). 이러한 그의 경력으로 보아 사울이 예루살렘에 갔을 당시 바나바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그가 어떻게 사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는 본문 가운데 전혀 언급이 없다. 아마도 그는 사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전적으로 신뢰하였을 것이다. 결국 사울은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도들을 만나게 되는데 갈 1:19에 따르면 야고보만 만났다고 사울은말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가 언급한 '사도들에게'란 표현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본서 가운데서 '사도'란 표현은 열두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14:4, 5,14). 따라서 본절의 '사도들'은 당시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서 사역을 하던 자들로 짐작된다.
=====9: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말은 예루살렘 교회로 부터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었다'라는뜻이 된다. 즉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말이며 기독교인들로부터 경계받거나 배척받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9:29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울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울의 설교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사울이 선교 활동에 어떻게 임했는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특히 '담대히 말하고'라고 해석된 헬라어 '파르레시아조마이'(*)는 '숨김없이 자유롭게 말하는'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사울의 설교 내용보다 사울이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인정되었으며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누가가 바울의 사도성을 나타내기 위한 구체적인 첫 진술로도 이해될 수 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변론하니 - 여기서 언급된 변론자들은 유대에 거주하는 유대인이면서 헬라적 문화와 철학의 영향을 받아 논쟁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로 보인다.이들이 기독교도였는지 아니면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인 유대인들이었는지는 분명하지않다. 다만 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에 배타적인 감정을 지닌 유대인들로 짐작된다. 당시 유대 사상가 필로(Philo)가 헬라 철학을 이용해 성경을해석할 정도였으므로 유대인들에게 헬라 철학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헬라 철학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헬라 철학은 교부들에 의해 신앙을 변증(辨證)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처럼 헬라 사상은 초대 교회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울도 헬레니즘의 중심지인 다소 출신이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9:30
형제들 - 이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가이사랴...다소 - '다소'가 사울의 고향이었다는 점에서(11:25;21:39;22:3) 안전한 곳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울이 다소로 가기 위해 거쳐 갔던 곳이 '가이사랴'이다. 이곳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이사랴를 의미한다(Alford, Alexander, Bruce). 다메섹에서 당한 살해 위협(23절)에 이어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또다시 살해당할 위협을 받고 탈출하게 되는데 이 같은 그의 수난은 선교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16절에서 언급된 예수의 예언처럼 사울이 당해야 하는 고난이며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져야하는 십자가였다.
=====9:31
그리하여 - 이 접속사는 다음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 사울이 다소로 피신한 것과 본절이 깊이 연관되었음을 보여 준다. (2) 주제를 전환시키기 위해 단순히 별 의미 없이사용되었다. 여기서는 (1)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누가는 바울이 다소로 피신함으로써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마찰이 해소되었음을 전해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 이방 지역에도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가팔레스틴 지역만을 언급한 것은 이 지역 교회가 이방 교회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아니다. 누가는 사울에 의해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틴 지역이 신학적인 문제로 소동이 벌어졌으나 그 문제가 잠잠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지역에서의 교회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교회가 평안하여 - 이 말은 교회에 대한 외부의 박해가 없었다는 의미와 함께 교회가 성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울에 의해 예루살렘의 소동 외에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따른 박해도 잠잠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 A.D.37-41)가 자신의 동상을 성전에 세우려 하여 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고 41년 1월 24일에 칼리굴라가 피살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상대적으로 감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든든히 서 가고 - 이 말은 당시 건축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는 교회 성장에대한 묘사다. 바울은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각 성도가 연결되어 지어져 가는 것으로 묘사한적이 있다(엡 2:21).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 누가는 초기 교회의 성장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있다. 여기서 언급된 '위로'라는 단어 '파라클레시스'(* )는 '격려', '권면'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보혜사(* , 파라클레토스)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9:32
때에 - 특정한 시간을 지시하는 언급은 원문에 없고 다만 '그러나' 또는 '그리고'를 뜻하는 접속사 '데'(* )만 언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에서는 '때에'라는 표현을 통해 베드로의 룻다 방문이 교회가 평화롭게 성장하고 있는 시기(31절)임을암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어느 시점을 지칭하기보다 주제의 전환을 위해 '데'가 사용되었으므로 '한편'으로 번역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 룻다에 오기 전 이미 베드로는 여러 지역을 거쳐 왔음을밝히고 있는데 선교를 위한 여행이었는지 이방 지역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를 방문하는시찰(視察) 여행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8:14에서 처럼 이방 기독교인들을 시찰하면서 동시에 전도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룻다 - 오늘날 이름은 '룻'(Ludd)이며 예루살렘 북서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서 해안도시 욥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17-18km에 위치한 비옥한 땅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9:33
애니아 - '칭찬받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이름으로서 그가 기독교인이었는지 아니면기독교와 상관없는 유대인이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32절에 언급된 '성도들'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팔 년 동안 중풍병을 앓아온 환자인데 본절에는 그의 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팔 년 동안을 직역하면 8살부터 중풍병을 앓아온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번역 성경들은 애니아가 8년 동안 그병을 앓아온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릴 때에 중풍병에 걸린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기때문이다. 또한 누가는 병의 햇수를 밝힘으로써(3:2;4:22;14:8;눅 13:11) 환자의 병이이웃으로부터 확인되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환자가 상(床)에 누워서 팔 년을 지냈다는 표현은 거동을 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이 병의 깊이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치유 능력에 대한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9:34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 '낫게 하시니'란 표현은 누가의 상투어라고 볼수 있다(10:38;28:8;눅5:17;6:19;9:2, 11, 42;14:4;22:51). 이는 예수가 그 불치병을 고쳐주신다는 베드로의확신을 전달해 주는 용어다. 나아가서 베드로의 치유 기적과 예수 그리스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예수의 치유 기적을 상기시키고 부활한 예수께서 지금도 치료자로서 성도와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자리를 정돈하라 - 환자에 대한 베드로의 지시는 중풍환자를 고치며 명령했던 예수의 지시와 비슷한 어투다(마 9:6;막 2:19). 이는 치유의 즉각성을 강조하고 예수의 능력이 현존함을 암시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이 예수의 보낸 자임도 시사한다.
=====9:35
사론에 사는 사람들 - 일반적으로 '사론'은 '평야'를 의미하며 남쪽 욥바와 북쪽 갈멜산 사이에 위치한평야 지역을 가리킨다. 이 평야는 길이가 약 80km, 폭이 약 9-19km로 북부는 수목이많은 평이며(사 35:2) 남부는 비옥한 농토가 펼쳐지고 있다(사 65:10). 신약 성경에서는 이 지명이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본절과 38절을 종향해 볼 때 여기서의 '사론'은길게 뻗쳐 있는 평야 전체를 의미하지 않고 룻다와 욥바 근처의 한 성읍을 지칭하는것으로 이해된다(아 2:1;대상 27:29;사 33:9). 주께로 돌아가니라 - 이 말은 룻다와 사론 사람들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는 의미다(Bengel, Knowling). 그런데 그 지역 사람 모두가 개종하였다는 표현은 과장된 것으로 짐작되며(Haenchen) 치유 기적이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치유 기적은 예수의 사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의 확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8:5-7).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에제자 -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서 현재는 '야파'(Jaffa)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이 욥바와 애니아를 만났던 '룻다'와의 거리는 약 18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는 수리아의 통치 아래 있었다. 어떤 까닭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여기서 언급된 다비다가 이미 기독교인임을 '제자'라는 말로서 알 수 있다. '제자'의 여성형은 여기서 처음 사용되고있다(신약성경에서). '다비다'라는 히브리 이름으로 보아 그녀는 유대인임에 틀림없으며 그 이름은 헬라식으로 '도르가'(* ,도르카스)로 번역되어 사용되었다.본절의 내용으로 보아 다비다는 그 도시에서 잘 알려진 여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앞장 선 것으로 보아 그녀는 부자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39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녀가 과부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9:37
시체를 씻어 다랍에 뉘우니라 - 병들어 죽은 '다비다'를 유대인의 장례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Bruce).헬라인들에게도 이러한 절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Knowling). 저자의 의도는장례 절차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비다가 완전히 죽어서 이미 장례 절차의 일부를밟은 후였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40절에서 언급되는 다비다의 소생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는데 있다. 한편 시체를 다락에 뉘었다는 사실은 왕상 17:17-24과 왕하 4:32-37의영향을 받아 다비다를 다시 소생(蘇生)시키고자 하는 기대에서 나온 발상으로 판단할수 있으며 시체에 향유를 바르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여 준다(Haenchen). 38절에서 언급되듯이 즉시 베드로를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은 그들이 다비다를 다시 살려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다비다가 선행을 많이 하여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위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살려보려고 애썼을 것이다.
=====9:38
제자들이...두 사람을 보내어 - '제자 들'은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누가의 상투적 용어이며(1절 주석참조) 그들이보낸 두 사람도 기독교인일 가능성이 높다. 36절의 '여제자'란 말로 볼 때 욥바에 이미 기두교인이 있었음을 알수 있는데 어떤 경로로 욥바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8:40에 건급된 빌립의 전도 여행의 영향이거나 2:1-11에서 언급된바처럼오순절 사건을 목격했던 사람들일 가능성도 있다. 지체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 그들의 간청이 다비다를 살아나게 해 달라는 것인지아니면 죽었으니 와서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해달라는 것인지 또 무조건 와 달라고간청한 것인지 전혀 언급이 없다. 살려달라는 언급이 없다는 것에 대해 혹자는 이야기를 더욱 섬세하게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준다고 설명한다(Haenchen). 그러나 앞에서 다비다가 죽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므로 누가는 간청의 말에 그 표현을 굳이 반복할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9:39
모든 과부 - 이들은 다비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베드로 곁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로서 평소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과부들로서 평소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과부들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다비다도 과부였다는 가정과 함께 평소에 함께 지냈던 친구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다만 문맥상 구제한 일이 강조되었다는 점에서(36절) 그리고당시 과부들이 구제의 대상에 속했다는 점에서(6:1) 여기에 언급된 과부들은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로 이해된다. 저회와 함께 있을 때 지은 속옷과 겉옷 - 렌스키(Lenski)는 다비다가 구제 활동을위해 봉제 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며 프로이쉔(Preuschen)은 다비다의 부유함을 말하기 위해 과부들의 그의 옷을 보여준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는 다비다가 생전에 입던 옷을 보며 그를 추모(追慕)하고 울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부들이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라고 믿는다면 평소에 다비다가 그 과부들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주며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울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적절하다.
=====9:40
베드로가...다비다야 일어나라 - 본절에서 베드로의 치유 방법은 예수의 행위를 모방했다고 할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 사람을 다 내보내는 행위는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막 5:40). 아마도 베드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릴 당시 예수에게서 배운 대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다비다야 일어나라'라는 말을 아람어로 번역할 경우 야이로의 딸에게 예수가 했던 말인 '달리다굼'과 거의 일치한다(Haenchen). 또한 여기서는 34절에서 베드로가 애니아를 고칠 때 언급한 '예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도 예수의 행위를 그대로 모방하였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한편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사실은 예수의 행위와 닮지 않았고 오히려 왕하 4:33에서 언급된 엘리사의 행위와 비슷하다. 따라서 누가의 서술은 예수를 모방하여 행동했던 베드로의 모습과 엘리사의 사건이(왕하 4장) 결부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9:41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 베드로가 깨어난 다비다를 일으키는 모습 역시 막 5:41에서 보여준 예수의 행위와흡사하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과 권위로 병을 고치면서 자신의 행위속에서 예수의능력이 함께 함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베드로의 행위에 부활한 예수가 사도들을 통해 세상에 계실 때와 같이 일을 하고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그의 산 것을 보이니 - 본 구절에 나타난 베드로의 행위는 막 5:43에서 묘사된 예수의 행위와 정반대이다. 아마도 42절의 내용으로 보아 전도하기 위한 베드로의 의도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9:42
주를 많이 믿더라 - 다비다의 회생(回生)의 결과는 룻다에서 애니아를 치료했던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이 치병(治病)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의 확장이 치유 기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선교 때에 의료 선교가 공헌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9:43
시몬이라 하는 피장(皮匠)의 집 - 누가는 '시몬'이란 사람의 직업을 명시함으로써 베드로와 구별하고 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직업으로서 오늘날의 피혁 제조업자로 이해될 수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피혁 제조업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기피했다(Edersheim, Bruce, H.Marshall, Hervey).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람과 교제를 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눌 19:5-10). 이 사실은 또한 초기 기독교에서 신분과직업에 대한 계급적 의식을 무시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베드로가 천한 신분인 시몬의 집에 머물렀음은 다음에 나오는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즉 이 사건은 당시 선민 의식으로 인한 유대인들의 배타적 우월감을 깨뜨리고 천민과이방인에게도 평등하게 주의 은총을 선포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본장은 기독교 선교 역사상 획기적 전기를 맞게 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교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사역이 바야흐로 전성기에 달하고 있음과 동
시에 앞으로 이방 선교의 주역이 될 사울의 회심 사건이 본장에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
다. 특히 사울의 회심 사건이 갖는 의의는 본장 이후로 부터 본서의 마지막 부분까지
나오는 내용과 본서 이후에 연결되는 신약성경의 삼분의 일 가량을 점하는 바울 서신
들의 존재가 바로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한 사건에 근거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듯
기독교 신앙 및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본장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선교의 주역. 본장에는 두 명의 인물과 그들에게 관계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울의 회심(1-31절)과 사마리아 지방을 순방한 베드로의 사역
(32-43절)이 그것인데 이 두 인물은 각각의 영역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적극적으로 감
당한 선교의 주역들이었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해서, 사울은 이방인을 위해서 복음
을 증거한 것이다.
물론 본장에 부각된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비교하면 바울보다는 베드로의 사역 활
동이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즉 베드로는 그의 사역 초기에 산헤드린 공회의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였고(4:1-31;5:17-32) 지금은 전성기에 접어 들어 사마리아 지역
에 흩어져 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병든 자와 죽은 자도 살리
는 위대한 이적적 권능을 행하였다(32-43절).
이에 비할 때 사울은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을 무수히 핍박하였으므로 그가 예수를 증
거한다 할지라도 많은 불신과 의심의 반응을 받는, 아직 보잘것없는 전도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본장을 통해 선교의 주역이 베드로에게서 바울로 전환되는 양
상을 암시받을 수 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지상 대업으로 당부하신 과업이 세계 선교였다는 사실(1:8)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감지
되는 사항이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요 헬라인, 더 나아가 전세계의 인류에게로
그 대생이 확대되어야 했으므로, 이를 위해서는 세계 선교를 적극적으로 감당할 수 있
는 커다란 그릇이 필요했다. 바로 이 그릇에 해당하는 자가 사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이었지만(7:58;8:1-4) 그를 당신의 사
역자로 선택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좇아 예수의 증인이 된 사울의
변화는 장차 기독교를 세계 만방에 퍼뜨리는 놀라운 사역을 수행함으로써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하겠다.
(2) 복음의 확장. 본장 전체에서 부각되어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확
장'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울과 베드로의 사역 활동은 총체적으로 그리스도 교회가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29,35,42절). 본장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확장은 초
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으면서도 계속적으로 성장한 사실과 궤를 같이 함은 물
론이다.
사울은 자신의 개종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인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베
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지도자로서 유대교 지도자들의 지속적 제거 대상
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장에 나타나는 교회의 확장은 성격상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본장에는 예루살렘 교회 이외에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역의 교회가 확고한 신앙의 터를 잡아가고 있으며 수적(數的)으로도 부흥케 된 사실
이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노정(露呈)에 있어서 중간 과정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아
울러 10장 이후부터 전개되는 이방 선교의 성취가 가까왔음을 예시한다고 하겠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31절)은 사울의 회심에
관한 내용이며 둘째 단락(32-43절)은 사마리아 지역을 순방한 베드로의 사역 활동에
관한 내용이다.
이중에서 첫째 단락은 다시 다섯 개의 소단락으로 세분된다. 1-9절은 사울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현황을, 10-19a절은 사울이 아나니아에게 세례받은 사실을 그리고 19b-25
절은 사울의 다메섹 전도를 다루었다. 그리고 26-30절은 다메섹에서 핍박을 받은 사울
이 예루살렘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예수를 증거한 내용이며, 31절은 본장 전체의 핵
심 구절로서 핍박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더욱 부흥해 가고 있음을 증거한다.
여기서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은 외면상 서로 관련 되지 않는 내용이 병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장 전체의 문맥적 흐름에 유의하면 양(兩) 단락이 긴밀한 연
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첫째 단락에서는 사울의 회심과 전도를 통해서 복음
사역이 확장되고 있음을, 둘째 단락에서는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서 복음 전도의 열매
가 날로 더해감을 살펴볼 수 있다.
1. 사울의 회심과 초기 활동(9:1-31)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개 기사인 사울의 회심 장면과 그의 초기 활동
을 담고 있다. 교회 박해의 살기 등등한 발걸음을 재촉했던 사울이 복음의 위대한 수
호자요 변증자로 급전(急轉)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을 대변하는 실로 극적인 사
건이었다.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라면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았다(갈
1:1,16).
한편 본서에는 바울의 회심에 관한 사건이 세 차례 언급되었는데(26:1-23 주제 강해
'바울의 회심 기사 비교 연구'참조). 누가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기재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명으로 남겨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실로 교
회사상 바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심히 막대하다. 왜냐하면 바울의 확약으로 인해 비로
소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만일 바울이 유대인을 전도하는
정도에만 그쳤더라면, 기독교가 로마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울을 스스로의 계획하에 이방인의 사도로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
리로 말미암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방 선교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바울만큼 이방인의 사도로서 적합했던 인물도 드물다. 그는 길리기아의 고도
(古都) 다소 출신인데, 다소는 주전 1세기경 헬라 철학의 본고장이었으며 동서양의 합
류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헬라 철학과 로마적 세계관이 동방의 신비주의(mysticism)
와 혼합되어 그 도시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다소에서 성장한 바울도 이러
한 환경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가 헬라 교육을 받은 흔적들로서는 그의 서신
들에서 나타나는 정교한 반어법(고전 1-4장), 명확한 논리 체계 등을 들 수 있다. 그
리고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히브리식 교육을 받았으며, 유대인으로서 로
마 시민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22:25). 따라서 바울의 극적 회심
은 이방 선교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쓰실 사람을 얼마나 주도 면밀하게 준비,
훈련 시키는가를 깨닫게 된다. 이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문 주제 강
해 '바울의 사상적 배경'을 참조하기로 하자.
본문에 수록된 내용들을 상고하기 위해 사울의 회심 동기와 회심 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얻게 된 사울의 확신 및 그의 초기 활동 상황 등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1) 회심 동기(悔心動機). 사울이 회심한 동기는 양면적이라 할 수 있다. 외적으로
는 다메섹도상에서 발생한 '그리스도의 현현'(Christophany) 사건과, 내적으로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된 사울 개인의 영적 고민(苦悶)이 그것이다. 물론 사울이 교회 핍박
을 위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다메섹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지만 예수의
현현 사건을 폭발적으로 부딪힌 순간 그의 존재가 산산 조각나버린 것은 틀림없다. 그
가 핍박했던 예수께서 그에게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이제까지 부정한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회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정의감(正義感)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고 그 자신의 핍박 행위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울은 교회를 핍
박해야 한다는 그의 의무감을 철저히 이행하면 할수록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롬 7:24,25). 마음에 공허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더욱 그리스도인
들을 핍박할 때에 그는 살벌한 핍박의 순간에서조차 영광의 빛과 평안을 잃지 않는 성
도의 모습을 발견하였다(6:15;7:55,56). 다시금 그리스인들을 핍박하려는 사울에게
놀라운 영광의 빛과 예수의 음성이 들려왔을 때 그는 완전히 파쇄(破碎)되고 말았다
(1-9절). 결국 사울의 자아(自我)가 깨어진 동기는 현실과 그의 마음간의 차이에 기인
하는 내면적 괴리감이라는 심리적 요인과 예수의 현현이라는 외적 요인에 있었다 하겠
다.
(2) 회심한 사울이 갖게 된 확신. 개선 장군과 같이 다메섹으로 들어가려던 오만 방
자한 사울은 예수를 만남으로 완전히 부서지고 낮아져서 겸손을 알게 되었다. 사울은
당시 예수를 대면했을 때의 심정을 후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
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8)고 고백한 바 있다.
여기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에 바울이 갖게 된 확신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확신은 장차 이방 선교의 주역으로 활약할 바울의 생애에 있어 땅속 깊이 자
리잡은 뿌리와 같이 그의 마음을 견고케 하는 중요한 사인들이라 하겠다.
첫째로, 사울이 그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의 유대교 생활
과 활동은 하나님의 힐책을 받았다(4절). 요컨대, 사울은 모세 율법이 진정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서 율법을 준행함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율법이
온전한 구원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해 주는 몽학 선생으로 제시
되었음을 깨닫지는 못했다(갈 3:19-24).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복음
메시지가 이 땅에 선포된 이상, 율법이 증거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은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갈 4:9)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둘째로, 사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하나님과 동일하시
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확신은 사울로 하여금 평소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가졌던 그의 전체적인 판단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예수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율법을 파기시키는 기만자가 아니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
신 분이시며 구약성경에 계시된 메시야 예언의 성취를 이루신 분이시다.? 결정적으로
사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으로 인해 그와 같은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였을
때 고대해 왔던 언약의 성취를 피부로 체험하며 그분과의 친교에서 참 기쁨과 구원의
감격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로, 사울은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주님의
메시지를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화합시키는 사도로서
임명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15절;롬 11:13;갈 1:11-16;엡 3:8). 이러한 확신은
그가 예수께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5,6절) 결코 흔들림이 없는 확고 부동
한 것이었다(갈 1:1,11,12;엡 3:2,3).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등하며 그
렇기에 자신의 생명과 온정열을 바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울의 선교적 생애는
사도로 부름받은 그의 소명 의식(召命意識)이 얼마나 철두 철미했는가를 보여준다
(20:24).
(3) 사울의 초기 활동. 사울이 회심한 이후부터 11장에 서술된 바,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행하기까지의 어간에 활동한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본문에
기록된 내용 외의 사실이 그의 초기 활동에 연루되어 있거니와 기독교 선교사상 위대
한 공헌을 한 사울의 선교적 생애를 고찰함에 있어 그의 초기 활동 내역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의 초기 활동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
으로 일관하고 있는 바, 이방 선교에 전념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
면 유대인들에 대한 사역에 중점을 둔 사울의 초기 활동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
을 전하는 사역으로 일고나하고 있는 바, 이방 선교에 전념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에 대한 사역에 중점을 둔 사울의 초기 활동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울의 회심 이후 3년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보냈다(갈 1:15-18). 이 시기에 사
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했으나(20,22절), 유대인들과
심한 대립의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그와 다른 유대인들과의 대립 관계는 두 가지 성
격을 띤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복음을 증거한 사실을 듣
거나 목격한 유대교의 사람들의 그에 대해 가진 배교(背敎)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요(23,29절) 다른 하나는, 이제까지 사울의 핍박을 받은 기독교 신자들이 획기적인 그
의 변화를 불신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21,26절).
구체적으로 그는 유대교 사람들의 살해 음모에서 벗아나기 위해 다메섹에서 예루살
렘으로 피신하였으며(23-25절)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도 핍박을 받았고 믿는 형제들 중
많은 무리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다(26-29절). 특히 그는 예루살렘에서 헬라계 유대인들
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회가 소홀히 해온 사역이었다. 헬라계 유대
인들이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지만 이들은 이방적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로
히브리계 유대인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바울은 헬라계 유대인들에게 전도를 하였으나 그도 역시 스데반이 처한 위급
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1:18-20의 증언으로 보아 예루살렘에서의 사울
의 활동은 15일에 걸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사울은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사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를 거쳐 다소로 피신시킨 예루살렘 교
회의 조치는 아마도 이 사도들이 힘쓴 행동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울이 예루살렘
에서 피신하게 된 행동의 이면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교회의 측면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 직후 커다란 박해로 인해
상처를 입은 시점에서 다시 그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으로 말미암아 각 처로 흩어졌거니와(8:1)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그들의 사명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사울을 예루살렘에서 도피하게끔 도와준 것이다(30절).
둘째는, 사울 개인의 측면이다. 안팎으로 다른 유대인들과 적대 관계에 놓인 사실은
사울에게 다소 좌절감을 느끼게 할 만했으나 그가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하나님께 근
거한 신앙적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받은 환상을
통해 이방인 선교의 임무를 띤 사도로서의 그의 존재를 확임함과 동시에 그 당위로서
예루살렘에서 속히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22:17-21). 예루살렘에서 피신한
사울은 가이사랴에 흩어진 유대인들과 그의 고향 다소의 유대인들에게 계속 예수를 증
거한 것으로 보인다(갈 1:21-24).
결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집중된 사울의 초기 활동은 인간적으로 볼 때 실패인 것처
럼 보이나 이방 선교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하겠다.
복음을 위한 사울의 열정은 바나바라는 믿음의 인물과 더불어 안디옥 교회를 세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고(11:25,26) 거기서 이방인 선교를 위한 전도 여행을 출
발하게 한 사실(13:1)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사울의 그리스도인 핍박 이유.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사도가 되기 전에 교
회와 성도들을 핍박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신
자들을 투옥한 일과 안전을 위해 팔레스틴을 벗어난 신자들을 귀환시키는 일 등에 있
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그의 이력(履歷)은 교회 박해자로서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1,2절;7:58-8:3;고전 15:9;빌 3:6).
혹자는 격란(激難)의 와중에서 중용의 본보기가 되는 말을 한 관대한 성품의 가말리
엘 1세(5:34-39) 밑에서 교육을 받은 사울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은 그의 제자답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사항은 적어도 바리새적 안목으로 볼 때, 노
학자인 가말리엘이 직면한 상황과 젊은 랍비 사울이 직면한 상황은 매우 달랐다는 사
실이다(5:17-42 주제 강해 '가말리엘 인물 연구' 참조). 가말리엘의 조언이 있기 전에
교회는 예수의 주되심, 메시야되심, 죽음과 승리의 부활, 그리고 영광을 입으신 구속
자되심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증언은 사울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전통적
메시야관(요 6:1-15, 주제 강해 '유대인의 메시야 대망 사상의 성격적 근거' 참조)을
혼란스럽게 하였고 나아가 그들의 권위와도 충돌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성
도들은 신앙적 확신에 기초한 완벽한 교리 체계를 갖추고 그에 따라 진리를 해설하기
보다는 다만 예수의 증언으로서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사울
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유를 고찰함으로써 초대 교회가 유대교들로부터 모질게
배척을 받은 사실을 이해하기로 하자. 한편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그
토록 열을 올렸던 이유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사울의 심리 변화이다. 즉 사울은 스데반을 비롯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으면서 전혀 동요되지 않고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모습을 누차 목격하고 깊
은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는 당시 유대교의 형식주의나 기타
여러 부패성을 보고 유대교에 대해 회의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이와같은 여러 심리적 갈등이 있는 데다가 만일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할 경우에는
이제껏 쌓아온 자신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복잡한 여
러 심리적 요인들로 인해 의혹과 갈등이 발광(發狂)에 가까운 핍박의 형태로 표출되었
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울은 구약성경이나 조상의 유전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즉 기독교에 대해 전혀 문외한(門外漢)이었던 사울로서는 열정적 그리스도인
들을 위험한 분열주의자들로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열심과 끈기
등을 목격한 바 있었으므로 사울을 아예 뿌리째로 뽑아버린 듯이 단호한 태도를 취했
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유대교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이유와
긴밀한 연관을 맺는다. 즉 조상의 전통을 사수하는 유대인들의 안목에 예수를 믿는 유
대인들은 이단자 내지는 배교자의 범주에 들어갔다. 예컨대, 유대인의 불신앙을 꼬집
은 스데반 집사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대교의 전체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배교자의 외침과 같았고 종파 분열을 획책하는 자의 범죄 행위로 보였다(7:54). 게다
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장본인은 유대인들이라고 고발한 기독교
인의 설교(52절;2:36)는 유대인의 메시야 대망 사상(大望思想)을 정면으로 와해시키는
것이었기에 유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배교자로 간주하고 더욱 더 핍박하였다.
이런 배경하에서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타파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
로 여겼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소위 유대 민족
을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웠던
'성전'(Holy War)의 맥락과 동일하게 여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울이 비록 하나님
의 뜻을 수행하려는 욕망과 의지에 의해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하더라도, 나중
에 깨닫게 된 바와 같이 그의 행위는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한 채'(딤전 1:13) 하
나님께 저항한 행위와 같았다.
이상에서 사울이 교회를 핍박한 두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전자(前者)는 심리적
해석 방법이요 후자(後者)는 역사적 해석 방법이거니와 후자의 견해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사울의 교회 핍박 이유는 두 견해 중 양자 택일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두 견해가 다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 바울의 사상적 배경. 사울이 회심하여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되기까지는 결코 단
순하지 않은 그의 과거 생애와 그 주변 환경 요인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신약성경의 절반 가량은 점하는 13개의 서신을 기록한 그의 신학적 사상
을 가리켜 '바울 사상' 혹은 '바울 신학'(Pauline thelogy)이라고 부르거니와 그의 사
상적 배경에 관해 간략하게 고찰하기로 하자.
(1) 다소(Tasus).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태어나서 자란 고향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
품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도
시의 문화에 길들여지게 마련이며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연 환경의 순수함과 아름
다움에 동화되게 마련인 것이다. 예컨대, 세례 요한은 유대 산간 지방의 작은 마을에
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눅 1:39) 예수는 나사렛이라는 한 촌에서 유년 시절을 지냈다.
한편 사울은 당시 시리아 주(州)의 하나인 길리기아의 가장 큰 도시 다소에서 자랐
으므로 자연이나 시골 풍경 같은 요소를 반영하지 않고 인간의 사상에 대한 깊은 연구
가 있었다. 다소는 당시 시계 문명의 주류였던 그리이스 로마 문명이 꽃피운 전형적
도시로서, 동양과 서양의 합류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철학과 교육, 문학, 법학, 의
학 등 다방면의 학문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수준에 달하고 있었다. 특히 아카데미, 에
피쿠로스,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 다소의 사상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사울은 복합적 문
명이 함께 어우러진 이러한 도시에서 성장함으로써 그 시대를 주도하는 사회, 문화,
정치, 도덕에 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그 세계에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
(2) 헬레니즘(Hellenism).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울은 당대의 모든 학문에 대한 수
학(修學)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당대 학문의 조류는 헬레니즘이었다. 사울
은 헬레니즘 문화가 성행한 다소에서 헬라 특유의 성격인 민첩성, 환경 적응성, 학문
적 정열 등의 특성을 몸에 익힐 수 있었고 특히 당시 세계의 표준어인 코이네(Koine)
헬라어를 자유 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記者)를 제외하고는 바울만큼
헬라어를 사용한 이가 없다는 점은 그와 같은 사실을 능히 짐작케 해준다.
무엇보다도 당시 세계 문명과 문화의 주류인 헬레니즘 사상 가운데서도 사울에게 가
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스토아 사상이었다. 신(神)의 내재(內在), 지혜, 자유, 보편
주의적 형제애(兄弟愛) 등 네 개의 사항이 골자를 이루었던 스토아 사상은 편협한 히
브리인의 세계에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울에게 있어 헬레
니즘은 전통적 유대교의 사상에 비견할 때 종속적이며 부차적이었다 하더라도 매우 현
실적인 것이었다 하겠다. 따라서 사울이 훗날 기독교 철학자로서 진정한 위치를 점하
게 된 데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3) 밀의종교(密議宗敎). 사울이 밀의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밀
의종교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이 예수를 일종의 신으로 신격화하고 이방 신화의 요소를
도입했다는 생각은 그릇된 관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활약한 A.D.1세기경에는
유대교 외에 어떤 다른 종교의 영향을 기독교에 결부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밀의종교
(密議宗敎)는 2세기가 되어서야 로마 제국에 널리 퍼졌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인간의 역사 속에 일어난 현실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울이 '지혜'와 '신비'등 밀의종교에서 사용하는 요어들을 채택하여 자신의 의
도에 따라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다(빌 4:12). 하지만 이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
상, 사울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밀의종교(mystery religions)의 영향은 매우 빈약한 것
이라 하겠다.
(4) 유대교. 사울이 무엇보다도 유대인이었다는 점은 그의 사상의 저변에 유대교가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후에도 자신이 유대
인임을 잊지 않았고(롬 2:9) 때로는 유대인인 사실을 떳떳하게 자랑했다(고후
11:16-22;빌 3:4-6). 만일 그가 헬라의 문화와 로마적 세계관에 접하지 아니하였다면,
그는 이방 선교를 위한 그릇이 되지 못했을 정도로 자신이 순수한 유대인임을 마음속
에 새겼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이 회심하여 기독교 사상의 중추적 인물이 된 데에는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유대교의 영향이 가장 지대했음을 반영해 준다. 사울은 유대인의 여러 종
파(막 5:35-43, 주제 강해 '예수 당시의 주요 사회 계층 및 종교 계층' 참조) 가운데
교리상 기독교와 가장 근접한 바리새파에 속했다(23:6). 하지만 바리새파는 다른 종파
와 달리 여러 면에서 엄격하였다. 사울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빌 3:5)이었다고
자증(自證)한 사실은 그러한 점을 상기시켜 준다. 하지만 사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이었
으나 그가 속한 학파인 힐렐(Hillel)파는 이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샴마이(Shammai)
파와는 달리 온건했다(5:17-42 주제 강해 '가말리엘 인물 연구' 참조).
사울의 스승 가말리엘이 사도 베드로를 위하여 변호했던 사실(5:33-42)은 중용적 성
격을 띤 힐렐 학파의 면모를 대변해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사울은 바리새주의
를 빛낸 대표적 청년이었거니와 그의 서신서들을 살펴볼 때 70인역 성경뿐만 아니라
히브리 구약성경과 외경, 그리고 유대 묵시 문학(默示文學)에 대해서까지 그가 정통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에게 전한 바울의 사상적 배경에는
유대교의 영향이 가장 지대했다고 하겠다.
* 바울의 인간적 특성. 기독교 역사상 바울이 남긴 업적의 위대함은 신약성경에 나
오는 13개의 서신서들이 증언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서는 인간 바울의 특성을 그
의 외모와 자질 면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외모(外貌). 바울의 외모를 가장 소상하게 알려주는 [바울과 데글라 행전]에 의
하면, 그는 대머리에 안짱다리, 자그마한 몸집에 눈썹은 맞붙어 있고, 다소 큰 코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바울이 비록 활동적 기질을 갖고 있었지만 신체적으로 다
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졌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고린도 후서 10:10에 '그의 편지들을
증후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다'라고 바울의 대적들이 비평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짐작케 해준다. 또한 바울은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는 모르나 신체적
지병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후 11:23-26;12:7-10).
결론적으로 바울은 그의 사상이나 자질 면에 있어서 탁월했다 할지라도 신체적으로
는 매우 빈약하고 보잘것없었던 인물이었다. 이렇듯 육체적 모습이 초라한 자에게 하
나님께서는 이방 선교라는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다(15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외모
보다 그 중심을 보시며(삼상 16:7)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다. 이러므로 우리의 외모가 초라하더라도 낙심하지 말 것이며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
라보면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하루하루 감당해 나가야 하겠다.
(2) 자질(資質). 바울은 신체적 면에 있어서는 다소 열등하나 그의 자질 면에 있어
서는 매우 뛰어난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즉 탁월한 변론 능력과 종교적 영감,
날카로운 지성과 지칠 줄 모르는 정열, 성실과 용기, 조직 능력과 따뜻한 인간성 등이
그의 천부적 자질이다. 이와 같은 자질은 바울을 바리새인 중 전도 유망(前途有望)한
청년이 되게 하였고 나아가 기독교 교회의 전무 후무한 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한 마
디로 말해서 바울에게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과 자질들을 두루 지녔거니와, 이
러한 자질은 바울로 하여금 기독교의 세계적인 확산과 기독교 신학의 건립에 획기적
공헌을 할 수 있게 하였다.
2. 베드로의 순회 전도(9:32-43)
앞 문단에서 이방인의 사도가 될 사울의 회심과 초기 활동을 다루었거니와 본 문단
에서는 베드로가 팔레스틴 서부 지역에서 순회전도 사역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앞 문단과 본 문단은 표면상 상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장의 전후 문
맥적 흐름에 유의하면 '이방인 선교의 기초 작업'이라는 주제하에 자연스럽게 양 문단
이 하나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즉 앞 문단에서는 교회 핍박자 사울이 복음 전도자
바울로 변모되는 과정을 다루었고 본문에서는 유대 지경을 넘어 팔레스틴의 해안 광야
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베드로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 수록된
베드로의 순회 전도 사역은 장차 바울을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갈
사실을 모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한편 베드로는 핍박을 받아 흩어진 유대인들을 찾아다니며 증거하고 권고하였다. 여
기서는 당시 베드로의 사역 중 대표적인 두 경우가 소개되어 있는데, 중풍병으로 누운
애니아를 회복시킨 것(32-35절)과 병들어 죽은 다비다를 소생시킨 사건(36-43절)이 그
것이다. 본문에 수록된 베드로의 사역이 갖는 전반적 의미에 대해서는 장 강해에서 다
루었으므로 여기서는 본문에 부각되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베드로 사역의 절정을 보여 줌. 본문에 수록된 이적 기사는 베드로의 복음 사역
이 절정에 달하였음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병자를 이적적으로 치유한 일이 더러 있었
으며(3:1-10;5:12-16),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사형 선고(死刑宣告)를 내려 죽게 한
적도 있었다(5:1-11). 하지만 그때까지 베드로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베드로는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의 능력을 뚜렷이 기억하
고 있었을 것이다(막 5:41,42;요 11:43,44). 따라서 베드로는 오직 예수의 능력에 의
지하고자 주의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꿇어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예수께서 다비다를 소생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고 또한 믿음으로 선포하여 다
비다를 다시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 실로 그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구체적 삶
속에서 구현시켰던 것이다.
(2) 베드로의 고넬료 전도에 대한 전조(前兆). 본문의 내용은 10장에 수록된 고넬료
가(家)의 성령 강림 사건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서론적 역할을 한다. 베드로가 환상
을 보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방 선교의 획기
적 전환을 맞이하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며 더불어 본문에는 이방 선교가 성취될 것이
라는 전조가 보인다. 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유대인의 장례 풍습이다. 어떠한 시체도 하루를 넘길 수 없었던 것이 유대
인의 장례 풍습이다(신 21:22,23).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을 때에 그 날로 즉시 장례를 치른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해 준다
(5:1-11). 반면 예루살렘 밖에서는 시체를 3일 동안 놓아둘 수 있었다. 여제자 다비다
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고 사람들이 베드로를 불러온 것은 예루살렘 바깥인 욥바
에서 일어난 일이었다(36,37절). 또한 시체를 가까이 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있어 불결
하고 부정(不淨)한 행위로서 금지된 일이었다(레 2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다비다의 시체를 가까이 하고 그 여인을 살린 것은 유대인의 관례를 깨뜨린 파격적 행
위였다. 이러한 사실은 유대인이 이방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금기시한 것과 비
등한 행위로서 다비다를 소생시킨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접견하게 될 것에 대한
복선(伏線)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둘째는, 욥바의 피장(皮匠) 시몬의 집에 베드로가 머문 사실이다(43절). '피장'이란
죽은 짐승의 가죽을 가공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직업
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천하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부정한 일로 취급되었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피장의 집에서 여러 날 동안 머무른
사실은 유대적 편견을 개의치 않는 베드로의 태도를 보여준다. 물론 그의 관념 속에서
완전히 유대교의 잔재가 없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중생한
베드로는 바울에게 선교의 깃발을 넘겨주고 이방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다리의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피장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환상을 보고 급기야 고넬료를 접견한 베드
로의 행동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거니와, 베드로의 피장의 집 체류는 다음 장
에 이어 나오는 베드로의 고넬로 가(家) 전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알려주는 서론적
언급이라 하겠다.
한편 우리는 본문을 통해 본서의 저자인 누가가 역사가로서 탁월한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누가복음 강해에서도 수차례 언급한 바거니와 누가는 사건을 비교적 순서적으로 기록하였고 여러 개의 주제들을 일관성있고 체계있게 서술하였다. 예컨대, 누가는 본장에 사울의 회심을 수록하기 전에 그의 과거 생활을 넌지시 암시하였고(7:58;8:1) 또한 10장의 고넬료 전도 기사를 위한 준비로서 본문을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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