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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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날이 밝아 오자 그 즉시 대제사장의 인도에 따라 예수를 정죄하고 로마의 판결을 얻기 위해 예수를 로마 법정으로 끌고 갔다. 비록 산세드린 공회가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었으나 사형 집행은 직접 할 수 없었다. 판결을 받은 죄수는 로마 정부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되어야 했다. 로마 정부는 공회의 사형 판결을 재가할 수도 있고 기각할 수도 있었다.

======15:1하
산헤드린은 예수를 결박하여 가야바의 집으로 갔다가 다시 거기서 나와 헤록 궁궐로 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사형 판결을 얻어내기 위하여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유대를 통치하였다. 그는 유대인을 멸시한 다소 거친 총독이었다.

=========15:2
빌라도는 로마 정부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산헤드린이 내린 사형 선고를 확정 시켜 주는 대신 빌라도는 이 사건을 좀더 상세히 듣고 싶었다. 예수가 자기를 왕 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로마 황제에 대한 엄청난 반역이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빌라도에게 여겨졌을 것이다.

======15:3 - 5
예수의 답변으로 볼 때 사형 선고의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 빌라도는 다른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 예수를 고소한 사람에게로 갔다. 대제사장들은 그 사이 예수를 고소할 전략과 근거를 더 많이 찾아 놓고 있었다.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빌라도는 이 귀찮은 재판을 피하기 위해 역시 그 때 예루살렘에 와 있던 갈릴리의 영주 헤롯 안티파스에게 예수를 보냈다. 그러나 헤롯은 그를 곧 빌라도에게 다시 보냈는데 오직 누가만이 중간에 있었던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5:6
유월절이 되면 해마다 백성들이 환심을 얻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백성들이 선택하는 죄수 한 명을 석방시켜 주는 관습이 있었다. 빌라도는 백성들이 예수의 석방을 요청하리라 예상하고 예수를 풀어 주는 대신 유월절 사면 관례를 이용해 예수를 놓아주려 하였다.

=======15:7
바라바는 민중 선동가였고 강도며 살인자로 기록돼 있다. 아마 그는 로마에 대해 혁명을 일으킨 민족주의자인 열심당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체포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15:8 - 11
많은 무리들이 재판 장소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관례대로 죄수 한 명을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6절 참조) 이마 그 중의 상당수가 바라바의 추종자였을 것이다. 군중들은 예수 대신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충동질하였다.

========15:12 - 14
빌라도는 예수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박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마침내 십자가 형을 선언하게 되었다.

=====15:15
빌라도는 군중의 요구에 이끌려 결국 정의보다는 정치적인 이익을 선택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는 처형되기 전에 잔혹한 매질을 먼저 당하는 것이 당시 로마의 관례였다. 죄수는 벌거 벗기워지고 때로는 나무에 묶인 채로 날카로운 금속이나 뼈 조각을 박은 짧은 가죽 채찍을 든 로마 병사들에게 사정없이 등에 매질을 당하여야 했다.

======15:16
예수를 매질 한 후 로마 군병들은 예수를 데리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뜰 안에서 모든 군대를 모았다(약2, 300명).

=========15:17 - 19
예수를 조롱하는 행위는 단순히 예수 한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들의 왕을 기다려 온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15:20
조롱을 다한 후 백부장의 휘하에 있는 4명으로 된 사형 집행조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서 성밖으로 끌고 나갔다.

=====15:21 - 22
정죄 받은 죄수는 자기 십자가의 파티불룸 즉 150파운드 정도의 십자가의 가로 목을 직접 지고 시내를 거쳐 처형 장소까지 가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군병들은 예수를 성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골고다로 끌고 갔다. 골고다는 해골의 장소라는 아람어에 해당한는 헬라어 음역이다. 골고다는 사람의 두 개골을 연상시키는 둥근 바위 언덕이었다.

========15:23 - 24
마가는 아주 단순하게 그리고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 라고만 기록하였다. 로마에 있는 그이 독자들은 상세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것도 제기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먼저 극도의 피로와 고통과 갈증이 엄습해 왔고 2, 3일 후에 천천히 죽었다. 때로는 희생자의 두 다리를 부러뜨림으로 죽음이 빨리 찾아오게 하기도 하였다.

=======15:25
해뜰 때부터 계산하는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을 사용하면서 오직 마가만이 예수의 십자가형이 제 3시 즉 아침 9시경에 이루어 졌다고 기록하였다. 이는 요한 복음 19:14의 제 육시 라는 말과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요한의 시간 계산을 로마 식으로 한다면 요한이 말한 시간은 오전 6시가 된다.

=========15:26
죄인의 이름과 그의 죄목을 판에 써서 조인의 머리 위에 매다는 것은 당시 로마의 관례였다. 복음서에서 죄패의 내용이 조금씩 다른 것은 죄패가 세 가지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인 듯하다. 빌라도가 이 말을 쓰게 한 것은 유대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모독하기 위한 것이었다.

==========15:27 - 28
예수와 함께 처형을 당한 두 명의 강도는 예수의 죄목을 잘 아는 것으로 보아 예수와 함께 재판을 받은 것 같다. 빌라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사야서 53:12의 예언을 성취시키게 되었다.

========15:29 - 30
군중들은 예수를 다시 모욕하였다. 성전을 사흘만에 지을 엄청난 능력이 있다면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먼저 그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고 예수를 비웃었다.

======15:31 - 32
유대인의 지도자들도 군중들과 함께 예수를 조롱하였다. 그들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 진 것이다.

=====15:33
예수는 낮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제6시에 완전한 어둠이 온 땅에 내려 덮혀 제9시까지 계속 되었다. 이 어둠은 예수 위에 내려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우주적 표상이다.

========15:34
마가는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일곱 마디 말씀 중 오직 한 마디 말씀만 기록해 놓았다. 이 외침은 예수가 단순히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도 아니다. 예수의 부르짖음은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법적인 의미에서 버림을 받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15:35 - 36
곁에 섰던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의 부르짖음을 엘리야를 부르는 것으로 잘못 들었거나 조롱하기 위하여 잘못 해석하였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의로운 수난자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예수는 땅에 2 - 3피트 떨어져 매달려 있었다. 구경꾼 중의 하나가 그 예수께 신 포도주를 갖다 주어 마시게 하였다.

========15:37
그가 그때 십자가에 달린 일반 죄인들과 똑같이 죽었음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큰 소리로 외쳤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 직전에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의 죽음은 자발적인 것이었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이 빌리도의 놀람에 대한 설명이다.

========15:38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성전의 휘장이 갈라졌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그 행위가 하나님의 행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순간 유대 저녁 봉헌을 드리고 있던 제사장들에 의해 관찰되고 보고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15:39
예수의 곁에 서서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을 관찰했던 백부장은 사형 집행관의 일을 맡았던 이방 로마 관리였다. 그래서 그는 빌라도에게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었다. (44절 참조)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백부장이 고백은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려는 것 중 핵심 부분이다. 이것은 비웃는 자들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15:40 - 41
헌신적인 여인들 몇몇은 멀리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있을 때 이 세 여인들이 이곳 저곳으로 예수를 따라 다니면서 그의 물질적 욕구를 돌보곤 하였다. 예수를 정기적으로 따르지 않았던 여인들도 거기에 있었다.

========15:42 - 43
예수의 매장 당하심은 그가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확증하여 주는 것이며 초대 교회의 선포 내용 중 중요한 것이었다.

=======15:44 - 45
예수가 벌써 죽었다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놀랐다. 그는 백부장을 불러 예수가 정말 죽었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39절) 이 백부장은 십자가 처형을 책임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예수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빌라도는 요셉에게 시신을 내 주었다. 요셉의 요구에 빌라도가 선뜻 응한 것은 예외적이었다.

=======15:46 - 47
요셉은 틀림없이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해지기 전 약 두어 시간 동안에 장례를 마쳤을 것이다. 요셉과 같이 산헤드린 회원이었던 니고데모 역시 장례식을 거들었다. (요19:39 - 40) 그리고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었다. 무덤의 입구는 산 위에서 굴러 온 둥글고 평평한 돌로 막아 침입자들로부터 예수의 시신을 보호하였다.


이 본장은 14장에 이어 예수의 본격적 수난사를 보여 주며, 수난받는 종의 기사 중 절정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빌라도의 심문(1-15절), 로마 군병들의 희롱(33-47절) 등으로 이어지는 본장의 내용은 수난 주간 중 금요일 새벽부터 오후까지의 시간 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다. 십자가 수난의 시각은 24절의 주제 강해에서 그리고 주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는 21-32절의 주제 강해와 마 27:27-66의 주제 강해에서 각각 상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한편 본서에서 마가는 우리의 영육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심 초사(勞心焦思)하시는 겸손한 종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에다 초점을 맞추었으며, 본장에는 바로 그 종의 수난과 겸비의 절정이 묘사되어 있는 바, 여기서 우리는 금요일 하루 동안 주께서 당하신 엄청난 고난을 상고해 보기로 하자.
(1) 수치와 조롱. 예수께서 좌. 우편의 두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27절), 당신이 극악한 범죄자 중 하나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한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극악 무도(極惡無道)한 흉악범으로 간주된 것은 다시 없는 모욕에 다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끌고갔던 군병들(16-20절), 십자가 주위를 지나가는 자들(29, 30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31절) 그리고 심지어는 함께 못박히는 강도마저(32절) 예수를 조롱하였다. 그들로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신 분이 그렇듯 참담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는 승리감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만왕의 왕이요, 또한 인류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셨다.
(2) 육체적 고통.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호된 채찍질을 당하셨다. 당시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채찍은 몇 갈래의 가죽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끝에는 날카로운 뼈 조각이나 납덩이가 달려 있었다. 따라서 이 채찍으로 매질을 당하면 살이 이미 초죽음 상태에까지 이르셨으며, 그 머리에 씌워진 가시 면류관으로 인해 계속 피를 흘리셨다(마 27:29). 이처럼 예수께서 찔리고 상하신 것은 오직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함이었으며,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을 수 있는 것도 다 주께서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신 때문이다(사 53:5).
(3) 고독. 예수를 죽이기 위해 애초부터 음모를 꾸며왔던 자들은 물론이고, 한때 예수를 환호하며 추종했던 무리들마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르짖었다(13절).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은 일시적이나마 하나님 아버지로부터까지 버림받으신 것이었다(34절). 예수는 혈혈 단신(孑孑單身)으로 사면 초가(四面楚歌)와도 같은 절대 고독의 상황에서 그 엄청난 영육간의 시련들을 묵묵히 감당해 내셨던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마 27장 강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1. 빌라도의 심문(15:1-15)
신성 모독(blasphemy)이라는 죄명으로 예수 사형건을 확정시킨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제 예수를 로마 총독인 빌라도(Pilate)에게 넘겼다. 그러나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이 유대법상으로는 사형에 해당하였지만, 당시 로마 정부로서는 굳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불필요한 잡음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따라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께 정치적인 누명(陋名)을 뒤집어 씌워 빌라도에게 넘겼는데 그 죄목이 눅 23:2에 의하면 세 가지였다.
첫째로는, 예수께서 유대인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예수를 추종했던 무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정치적이며 지상적인 메시야로 오해하여, 로마의 압제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登極)하실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따라서 이 죄목은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혁명 선동가로 보기에는 예수의 이미지가 너무도 평화적이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이 죄목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10절).
두번째는, 예수께서 로마 황제에게 납세를 거부한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께 정치적 혐의를 씌우기 위해 납세 문제로 예수를 시험하였다가 예수의 지혜로우신 답변에 묵묵 부답(默默不答)하고 말았던 사건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두번째 죄목 또한 대적들의 억지 주장일 뿐이었다.
세번째로는, 예수께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다는 죄목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예수께서도 긍정하셨지만,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상반된 견해(예수께서는 순전히 종교. 언약적 측면에서, 이에 반해 유대인들은 정치. 반란적 측면에서 각각 이 말을 생각하고 있음)를 갖고 있었다.
한편 빌라도의 심문은 두 차례에 걸쳐 시행되었다. 산헤드린으로부터 예수 고소건을 인계 받은 빌라도는 한 차례 간략한 심문을 거친 후에 이를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에게 넘겼다(눅 23:8-12). 왜냐하면 빌라도로서는 유대인들의 종교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고, 또한 예수의 출신지가 갈릴리(Galilee)였음으로 당시 갈릴리 분봉왕(分封王)이었던 헤롯에게 이 사건을 떠맡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우같은 헤롯은 다시 예수를 빌라도에게 보내었고, 빌라도는 두번째 심문을 통해 정확한 죄명도 밝혀내지 못한 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명령하고 말았다. 이러한 심문 과정을 통해 드런난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수의 침묵. 예수께서는 당신을 고소하는 무리들의 온갖 거짓 증거와 비방에 대해 침묵으로 답하셨다. 이 침묵은 단순한 재판상의 묵비권과 같은 차원에서가 아니라 신학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침묵 속에는 인류 구속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시려고 하는 굳건한 결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는 겟세마네(Gethesmane)에서 피땀흘려 기도를 드리시면서 이 모든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으셨다. 이는 첫 사람 아담의 구차한 자기 변명과 현저하게 대조된다. 아담은 분명히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던 반면에, 예수는 전적으로 무죄하면서도 수많은 거짓고소들에 대해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침묵하셨다(사 53:7).
(2) 빌라도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함. 빌라도는 예수의 결백성을 나름대로 인지하였던 것으로 보이며(10절), 잠시 동안이나마 주님을 무죄 방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눅 2:13=16). 그러나 결국 그는 유대 군중들의 끈덕진 요구에 굴복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 주는 엄청난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이는 재판장으로서의 객관적인 판단 기준에 따르지 않고 일신상의 득실에 따라 공의를 거스리는 기회주의적인 처신이었다.
결국에 예수는 성경의 예언과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셨지만 빌라도는 그의 기회주의적이고 우유부단한 처신으로 말미암아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입술을 통해 예수 살해의 일차적 범인으로 항상 정죄당하는 지경에 처하고 만 것이다.
(3) 유대 군중들의 완악함.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거의 광적으로 부르짖는 군중들 중 대다수는 한 때 예수를 흠모하며 좇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상상 속에 기대했던 메시야와 메시야 왕국게 대한 기대가 허물어지자 도리어 큰 실망과 분노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혹은 그들은 예수를 결박하여 재판정에 세운 로마 제국의 위세등등한 창검 앞에 기가 질려, 예수와의 관계를 강력히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기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충돌질까지 가세하여 그들은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기 위해 입을 모아 외쳤던 것이다. 이 광경은, 주인의 종들과 심지어는 그 아들까지 죽여버렸던 포도원 농부에 관한 예수의 비유를 연상시킨다(12:1-11).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소유한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던 조상들의 죄악에 동참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나서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남용하고 또한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Gentile)을 포함한 만민에게 전달되는 획기적인 전기(轉機)가 마련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편 예수께서 당신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넘겨 준 바로 이 무리들을 위해 고통을 당하셨다고 하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당신의 측량할 길 없는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롬 5:8).

2. 십자가에 못박히심(15:16-32)
본문에는 예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끌려가 골고다(Golgotha)언덕에서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당시 로마인들에게 집행되었던 가장 극심한 형벌은 주로 칼로 목을 베는 참형(斬刑)이었으며, 십자가형은 거의 식민지인들에게 집행된 극형(capital punishment)이었다. 결국 예수는 당시의 가장 수치스럽고도 고통스러운 형벌을 당하신 셈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신 사실 자체가 큰 중요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물론 모세 당시 장대 위에 매단 놋뱀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상징하고는 있지만(민 21:9)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점은 예수께서 당하신 형벌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 자체에 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께서 유대교에 도전한 이단자 내지는 로마에 대한 반란을 모의한 주동자로서 극형에 처해진 것으로 보였겠지만, 예수의 죽음은 그러한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학적인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모의하고 결박하여 로마인들에게 넘겨 주었던 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었고 예수를 직접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로마군병들이었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즉 하나님은 무죄하신 당신의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써 인류의 죄에 대한 공의로우신 형벌을 시행하셨으며, 그 결과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새 생명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베푸셨다.
따라서 예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 곧 희생 제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의 의의에 관한 보다 상세한 사항은 마 27:27-66의 강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 십자가형과 그 의미. 왜 하필이면 예수에 대한 형 집행이 십자가형이었는지에 관한 의문점을 풀기 위해 유대 사회에서의 십자가형의 유래와 시행 과정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자.
(1) 십자가형의 유래.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사형 집행 방법은 돌로 치는 것(레 20:2-5;민 15:32-36;신 22:22-24), 칼로 치는것(신 13:12-15;애 2:21), 화형(레 20:14;21:9) 등에 의존하였으며, 십자가형은 동방에서 유래하였다. 이 십자가형은 원래 앗수르(Asshur), 페니키아(Phoenicia), 애굽(Egypt) 등지에서 시행되었으며, 애굽인과 카르타고인에 의해 그리스돠 로마에 전해졌다고 한다. 예수 당시에 십자가형은 로마에서 시행되던 사형 집행법 중에서도 가장 극형에 해당하는 방법이었다.
한편, 예수 당시에는 두 종류의 십자가 곧 T자형 십자가와 +자형 십자가가 있었으며, X자형 십자가는 후대의 것이다. 예수의 머리 위애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명패를 부착시킨 것으로 보아(눅 23:38) 예수는 +자형 십자가에 달리신 것 같다.
(2) 십자가형의 시행 과정. 죄수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그 죄수는 여러 단계의 참혹한 형 집행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까) 십자가형에 언도된 죄수를 빈사 상태에 이를 정도로 채찍질한다(막 15:15).
(다) 다음에 죄수는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운반한다(마 29:31, 32).
(따) 형장에서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패를 목에 건다(마 27:37).
(마) 십자가에 못박는다.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들은 대개 사흘 정도 버텼으나 일주일을 버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형수를 십자가에서 내리기 전에는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뼈를 꺾기도 했다.
(3) 십가의 의미(상징). 로마임들이 십자가형을 가장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형벌로 혐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전 1:23;갈 3:13).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신 21:22, 23).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류에게 및 저주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으며, 이 점에 관해서는 모세가 장대 위에 매단 '놋뱀'(bronze snake)을 통해 예표된 바 있다(민 21:9). 정통 유대인에게 있어 예수의 십자가는 분명 거침돌이며 수치의 대상이었을 것이다(갈 5:11).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다(고전 1:18).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작에 달리심으로 성도들의 모든 죄가 사함받게 되었기 때문이다(골 1:20).
따라서 바울은 유일한 자랑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고백한 바 있다(갈 6:14). 예수의 십자가가 성도의 구원과 모든 소망의 근거라는 사실은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길 없는 역설(Paradox)이며(고전 1:17, 18), 오직 성령의 계시로써만 깨달을 수 있는 비밀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세례를 받은 성도가 신앙을 저버리는 생활을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 보이는' 격이 되고 만다(히 6:6). 한편 이 십자가는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뒤를 좇으려는 모든 성도가 감당해야 할 고난을 상징한다(8:34;마 10:38;16:24;눅 14:27).

* 십자가 수난의 시각(時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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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간 | 사 건 | 성 경 구 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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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삼시 | 십자가에 못박히심 | 막 27:35;막 15:25;눅 23:33;요 19:18 |
|(오전 9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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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인들의 모욕 | 마 27:39,40;막 15:2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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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제사장들의 희롱 | 마 27:41-43;막 1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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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병들의 희롱 | 눅 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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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편 강도의 비방 | 마 27:44;막 15:32;눅 2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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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편 강도의 회개 | 눅 23:4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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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개한 강도에게 구원을 약속| 눅 23:43 |
| | 하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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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심 | 요 19:2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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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육시 |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함 | 마 27:45;막 15:33;눅 23:44 |
| (정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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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마 27:46;막 15:34 |
|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 +----------------------------+--------------------------------------+
| | "내가 목마르다" | 요 1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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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이루었다" | 요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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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구시 | 운명하심 | 마 27:50;막 15:37;눅 23:46 |
|(오후 3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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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형틀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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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류 | 모 양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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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수의 머리 위에 죄패가 붙어 있었던 점으로 |
| 라틴 십자가 | | 보아 예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가 바로 이 형 |
| (Latin cross) | | 태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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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 십자가| | 비교적 후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수직 기둥과 |
| (Greek cross) | | 수평 기둥의 길이가 똑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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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드레 | |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아가야에서 이러한 |
| 십자가 (St. A-| | 형틀에서 달려 순교했다는 전설로 말미암아 붙 |
| ndew's cross) | | 여진 명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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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토니우스 | | 유명한 은둔자인 안토니우스가 평소 짚고 다니 |
| 십자가 (St. A-| | 던 목발이 이와 같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
| ntonius' cro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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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명하심과 장사되심(15:33-47)
예수는 금요일 오전 9시(제 삼 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제 구 시)에 운명하셨다(도표 '십자가 수난의 시각' 참조). 본문에는 예수께서 마침내 운명하시는 장면과 무덤에 장사되는 장면이 중점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바 이를 순서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1) 예수의 운명하심.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극한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부터 버림받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다(34절). 이러한 고통은 예수의 인성(人性)을 여실히 보여 주는 증거인 바 예수는 한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을 체험하셨던 것이다.
반면 가상 칠언(架上七言) 중 여섯번째에 해당하는 '다이루었다'("It is finished", NIV)는 말씀은(요 19 : 30)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그 사명을 완수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한편 우리는 예수의 운명(運命)을 전후하여 발생한 두 가지 표적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정오(제 육 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였다는 사실이다. 이 흑암은 구세주를 죽이기까지한 유대인들의 사악한 심령 상태를 시사함과 아울러, 완악한 불신자들에게 예비된 캄캄한 흑암의 장소를 암시한다. 아울러 이 어두움은 예수를 이토록 엄청난 고난에 처하게까지 만들었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두번째로 주목할 사실은 예수께서 운명하시자마자 성소 휘장(揮帳)이 둘로 찢어졌다는 점이다(38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의 의식적 율법(ritualistic law)이 종결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 예법에 따라 대제사장의 중재(仲裁)로써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지만, 이제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았던 죄의 장벽에 예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2) 장사되심. 금요일 저녁의 해가 지면 바로 안식일(Sabbath)이 시작되므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기를 꺼려하며 빌라도에게 치워주도록 부탁했다. 그래서 빌라도는 군병들을 시켜 두 강도와 예수의 죽음을 확인토록 했다. 군병들은 두 강도의 무릎을 꺾어 절명(絶命)시켰으며,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것을 보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요 19 : 31-37).
그리고 이어서 간소한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데 우리는 예수를 장사지내는 일에 앞장섰던 자가 베드로를 위시한 열 두 제자들이 아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Joseph of Arimathea)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는 부자요(마 27 : 57),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43절) 이 위기의 현장에 감연(敢然)히 나서서 예수를 장사하고자 하였다. 그토록 예수께 충성을 맹세했던 베드로마저 종적(踪迹)을 감춘 무시무시한 형장에, 예수께 걸었던 세상적 기대가 깡그리 무너지고만 좌절 형장에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사회적 명망과 부귀와 심지어 목숨마저 다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를 장사하겠노라고 나섰던 것이다. 그가 예수의 메시야 사역의 본질을 바로 알았는지 혹은 그분의 부활 예고를 그대로 믿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가 예수의 위대하신 인격에 압도당하였고 공생애 기간 동안 베푸신 예수의 여러 말씀들에 내포된 소망을 버리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한편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되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장사지내시기 위함이었다(롬 6:4; 골 2: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악과 허물로 가득한 옛 사람을 장사지내고 의와 생명으로 가득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에 진실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무덤 속에 장사지낸 바 된 시체와 같은 옛사람에게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예수의 가상 칠언(架上七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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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 | 말 씀 | 대 상 | 의 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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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 | 원수마저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극치를|
| | 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 | 보여준다.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
| 1 | 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성 부 |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
| | 이다(눅 23:34) | |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
| | | | 롬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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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 | 인간의 선행이나 공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 | 노니 오늘 네가 나와 | 한 편 |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써만 구|
| 2 |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강 도 | 원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엡 2:9).|
| | (눅 23:43) | | 아울러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
| | | | 손길을 느끼게 한다(마 16: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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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 모 친 | 예수는 인간의 도리를 존중하셨다. 또한 |
| 3 | 니이다..보라 네 어머 |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결속된 영적 공 |
| | 니라(요 19:26,27) | 사 도 | 동체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셨다 (고전 |
| | | 요 한 | 12:27) |
+------+----------------------+--------+---------------------------------------+
| | 나의 하나님, 나의 하 | | 인류의 죄를 홀로 대신 감당하기 위해 성|
| 4 | 나님,어찌하여 나를 버| 성 부 | 부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시는|
| | 리셨나이까(마27:46) | | 모습이다(갈 3:13) |
+------+----------------------+--------+---------------------------------------+
| | | | 우리와 동일한 육체와 성정(性情)을 지니|
| 5 | 내가 목마르다(요 19: | 자 신 | 신 십자가상의 극한적 고통을 남김 없이 |
| | 28) | | 담당하셨다.당신의 지독한 갈증으로 말미|
| | | | 암아 우리는 생수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
| | | | 사단의 모든 궤계와 능력을 파하시고 인 |
| 6 | 다 이루었다(요19:30) | 자 신 | 류의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해내는 구속 |
| | | | 업을 완성시키셨다는 뜻(롬 5:19,21; 히 |
| | | | 10:14) |
+------+----------------------+--------+---------------------------------------+
| | 아버지여, 내 영혼을 | |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일생은|
| 7 |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 | 성 부 | 성부 하나님께 대한 전적 의탁, 전적 순 |
| | 이다(눅 23:46) | | 종 그 자체였다(히 5: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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