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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16절은 운문체로 기록된 한편의 시이다. 그 내용은 우상들에 대한 통렬한 공격과풍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직 창조주만이 만민으로부터 경배받을 자격이 있음을 명시하는 내용이다(Thompson). 한편 이 시는 여호야김 통치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전달된것으로 짐작된다(Dr. Dahler).

=====10:2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 여기서 '길'이란 것은 그들의 풍습 또는 종교적 관습을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J.Bright). 또한 '배우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틸마두'(* )는 '제자가 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근동 종교들의 주요한양상들 중의 하나는 해, 달, 별 등의 천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이런 관행에 대한 유다의 답습 행위는 이미 당시로부터 1세기 전의 아모스 선지자도 지적한바 있다(암5:25,26). 또한 이것은 므낫세 당시(B.C.697-642년)에 유행했었던 것(왕하21:5,6)이며 요시야는 특히 이런 제사 관행을 타파하는 데 주력하였다(왕하23:5,11,12). 아마 열방들은 이러한 천체 현상들을 두려워하여 경외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혜성이나 일식, 월식과 같은 비정상적인 천체 현상에 대해 무서워하였던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천체 현상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나타나는 것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이런 형상들을 경외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인것이다(Thompson).

=====10:3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 '규례'에 해당하는 원어 '후코트'(* )는'판결하다', '기록하다'란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헤크'(*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일종의 재판상의 판결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Calvin). 한편 이 '규례'는 그들이 '믿는 것'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우상이나 종교적 가르침 등을 뜻할 수도 있다(J.Bright).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우상 숭배에 대한 예레미야의 지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절 후반부는 '삼림에서 벤 나무요...도끼로 만든 것'으로 우상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써 전반부의 '규례'를 '우상'으로 볼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우상에 대한 본절의 묘사는 구약의 여러 다른 부분에 묘사되어 있는것과 유사한 형태를 따르고 있다(시115:4; 사2:20; 44:9-20). 또한 본절에는 우상들이생명없는 무익한 것임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던 수세기에 걸쳐 사용된 격언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주석가들은 본절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본서에는 포로 후기의내용이 많이 삽입되었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희박하다.

=====10:4
은과 금으로...못과 장도리로...요동치 않게 하나니 - 우상이란 사람의손으로 만든동상으로, 금이나 은과 같이 귀한 것으로 장식하였다고 하나, 고꾸라지는 것을 막기위해 못이나 망치 등으로 고정시켜야 하는 그런 물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삼상5:1-4 참조).

=====10:5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두려워 말라 - '갈린 기둥 같다'는 말은 종려나무처럼꼿꼿이 서 있다는 뜻이다(Clarke). 그러나 이것들은 말도 못하며, 스스로 움직이지도못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재앙을 내리거나 복을 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을두려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레미야는 지금 이런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들은그들의 존재 자체도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도역시 사람에게 의존되어 있는 무기력한 존재인 것이다.

=====10:6
주는...크시니이다 - 예레미야는 우상의 무능함을 지적한 뒤 이제 하나님을 소개한다. 그가 여기서 이렇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한, 우상을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교육만이 우상과 미신을타파하고 추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Calvin). 구약은 여호와를 다른 것과감히 비길 수 없다는 점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우상들이 인간에게 의존하는 존재이며 그것들의 위상과 권위를 인생에게서 이끌어 내는 것과는 정반대로, 여호와께서는그 자신으로부터 그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신다(Thompson).

=====10:7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 '누가 감히 만유의 창조자이시요 수여자이신 당신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나이까?'란 뜻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것이 참 종교의 근본 실체인 것이다(A. Clarke). 이는...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 - 예레미야는 여기서 여호와의 유일하심과 위대하심을 강조하기 위해 열방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나 또한 가장 높은 자라 할지라도여호와와는 비길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왕권 사상을 진하게드러내 놓고 있긴 하지만, 이처럼 여호와를 왕으로 직접 묘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Thompson).

=====10: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 여기서 예레미야는 다시 우상에 대한 묘사로 들어간다. 이 내용은 3-5절의 우상에 대한 서술임을 더욱 확대시킨 것이다. 스스로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에 의해 생산해 낸 그것을 그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또한 왕권을 가진 자들 역시 생명없는 인간의 작품을 그들의 종교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들의 생산품만큼이나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다. 이 구절은해석하기에 좀 난해한 두 동사를 내포하고 있는데, 먼저 '무지하고'는 우상을 경배하는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는 말로 또 '어리석은'이라는 동사는 그 다음의 어구와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본절 후반부를 다시 해석해보면, '없는 것들(우상들)의 도(종교)는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의 연결 여부를 별개로 하더라도 그 의미는 분명한데, 우상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이란 우상그 자체 만큼이나 무가치하다는 점이다(Thompson). 한편 블레이니 박사(Dr. Blayney)는 본절 후반부를 '나무 그 자체가 헛된 것들의 비난자이다'라고 번역한다. 신으로 추앙되고 있는 것이 나무란 사실은 우상 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증명하고 있다는뜻이다.

=====10:9
다시스에서 가져 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 온 금 - 어떤 이들은 '다시스'를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로 보고 있는데, 그 당시 페니키아인들은 여기서 많은 은을 수입했다(Clarke). 아마 고대인들은 이곳을 서쪽 세계의 끝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한편, 최근에이 '다시스'란 말을 지명으로 보기보다는 '제련된'(혹은 제련소)이란 뜻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바스'는 위치가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이곳을 비손 강(Clarke) 혹은 인도나 아라비아 등지로 본다(Nicholson). 청색 자색 감으로 - 이는 고대 당시에는 극히 귀한 염료로서 대단히 값비싸고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10:10
오직 여호와는...왕이시라 - 여호와께 대한 세 가지 선언이 담겨 있는데 이들 각각은 우상들에 대한 단언들과 대조되고 있다. 즉, 그것들은 거짓 신이고, 생명이 없는신이며, 단 한순간도 신으로 존재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 그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자연 현상들을 들자면 폭풍, 지진, 천둥, 벼락 등을 꼽을 수 있다. 여호와의 진노의 표로 상징되는 이런 것들이 덮칠 때 열방들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것이다.

=====10:11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망하리라 - 이 구절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본서의 저작 연대를 후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당시 아람어는 서방 아시아와 이스라엘 변방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었다. 아무튼 이 구절은 거짓 신들과 또 이를 숭배하는자들 모두가 결국에는 망하고 말 것임을 지적한다. 창조주가 아닌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들 우상들은 그들의 만든 사람들과 같이 멸망하고 말 것이다.

=====10:12
여호와께서는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 이곳에는 여호와의 권능과 지혜와 명철이 언급되고 있는데 우상들의 무능, 어리석음, 무지와 대조되고 있다. 특히 본절과13절은 열방들의 생명없는 우상들에 대한 비난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위치를 높이 찬양하고 있다(Nicholson). 한편 12-16절의 내용은 51:15-19에서 나타난다.

=====10:13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하나님이 창고 속에 바람을 넣어두고 계시다가 임의적으로 내어 보내시는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곧 자연의 기상마저 주관하시는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사한다. 또 바람뿐만 아니라 눈과 우박도 이러한 비유로 다루어진 바 있다(욥38:22,23; 시135:7).

=====10:14
금 장색마다...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 본절에는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언급된다. 이곳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지식이없는 자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다(벧후2:1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메시야 때에 가서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 예언하였다(31:34).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우상에 매달려 있는 자들은 그 우상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10:15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멸망 할 것 - 우상에 대한 간결한 묘사가 세 가지로 압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무가치하고 공허한 것(* , 헤벨)이다. 둘째, 그것은 망령되이 만든 것으로서, 착각의 소산 또는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될만한 것을 뜻한다. 셋째는 징벌하실 때에 멸망하고 말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바, 인간스스로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어찌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Calvin).

=====10:16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 여기서 예레미야는 본시(1-16절)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호와는 우상들과는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분깃'(* ,헬레크)이란 어떤 사람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왕하9:10)이나 또는 전쟁 후의 전리품에 대한 몫(창14:24; 사53:12)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산업의 지파란 것은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셨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는 이처럼 끊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이었기에 하나님의 그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보호하심은 극진하였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감사는 바로 이런관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바, 그들이 다른 신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여기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야훼 체바오트)임을 다시 밝히고 있는데, 이 칭호는 원래 별들과 천체 위에 지배하고계시는 여호와의 주권을 염두에 둔 칭호로서, 이방인들의 해, 달, 별 등의 천체 숭배와 극명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10:17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수습하라 - 어떤 주석가들은 17-25절의 내용이9:17-22에 이어졌던 것이란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런 견해는 대단히 임의로운 주장일 뿐이다.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극명한 대조에 이어 오랫동안 예언되어 왔던 참변이 이제 예루살렘 성문 앞에 이르렀음을 나타내고 있다. 본절은 아마예루살렘이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적들의 침입에 직면하여 피난 보따리를 꾸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습하라'(* , 아사프)란 말은 9:22에서 수확물을 '거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앗수르인의 고분 벽화를 보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의 장면이 보인다(thompson).

=====10:18
이 땅에 거하는 자를...내어던질 것이라 -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다(Nicholsosn). '내어던지다'의 원어 '칼라'(* )는 원래 투석기에 돌을 담아 내어던지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대단히 생동감 있는 내용을 전달한다. 그런데이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셨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심판의 시간인 것이며, 눈물과 호소의 때는 지나간 것이다.

=====10:19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의 고통스러운 역할을 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심판과 파멸을 예언해야 했으며, 이와 동시에 그는 그들의 운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한탄은 그 민족의 한탄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그의 고뇌는 그 민족의 질병이 이제 치유될 수 없는 상태란 점에 있었다.

=====10:20
내 장막이 훼파되고...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 예레미야는 유목민들이 이주하기위해 그들의 장막을 철수하는 것을 예화로 사용하여 그의 슬픔을 표현한다. 여기서'장막'이란 유다인들이 거주하던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말이며, 그 자녀는 예루살렘 거민을 말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서 다시 장막을 치지 못하고 말것이다.

=====10:21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 이제는 목자와 그들이 치는 양떼를비유로 하여 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목자'는 흔히 지도자들을 상징하는말이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킨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준한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야수나 다름 없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탁받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임의대로 처신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번영이나 형통함이 있을 수 없었고 이에 대한 결과가 결국 백성들에게까지 돌아가고 만 것이다.

=====10:22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風聲)이 오니 - 이것은 북쪽 적들이 큰 함성을 지르면서 밀려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유다 성읍들을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짐승들의거처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이 예언은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성취되었는데, 전국토가 거의 초토가 되고 말았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6세기 초에 많은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그 후 대다수가 복구되지 못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thompson).

=====10:23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 이는 인간의 운명이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통제하에 있다는 내용이다(Nicholson). 유다의 형편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예레미야의 관심은 계속해서 자기 동포의 운명에 쏠려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다. 그의 탄원의 요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이 점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연약하여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죄악에 빠지기 쉬운 도덕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탄원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친다한들, 결국 그것은 인간의 한계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임할 재앙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10:24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 백성들 편에 서서 드리는 예레미야의 중보기도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유다 백성이 징벌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있었지만, 견딜 수 없는 처벌을 받아 결국 완전히 파산되어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빠지지 않기만을 탄원하는 것이다(C.L. Feinberg). 한편, '징계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동사 '이사르'(* )는 구약의 여러 다른 용례들을 보면 교육적 의미에서 징벌을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0:25
주를 알지 못하는...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적들에게는 엄격한 공의의 심판을 적용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언약 외부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오직 정복을 위한 정복, 살육을 위한 살육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황폐케 하였나이다 - 적들의 잘못된 행위를 열거함으로써 에레미야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호소를 더욱 뒷받침한다(Thompson). 이러한 예레미야의 기도는 갈대아인들에게서 그대로 성취된다. 느부갓네살은 훗날 미쳐버리고, 그의 아들은 반역자들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종종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불경건한 족속들에대한 저주문으로 인용되어 왔다.



본장은 심판에 관하 9가지의 일반적 예언을 언급하고 있는 2-20장까지의 설명 중
세번째 진술(7-10장)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유다를 멸망케 한 죄악의 근본적 뿌리, 곧
우상숭배의 실상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
던 선지자는 이제 그 예언대로 이루어질 고난을 미리 맛보고 체험하는 또 다른 고통과
절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임박한 심판에 대처할 어떤 대책
도 강구할 수 없음을 통감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우상 숭배의 무익성을 지적하고 있는 전반부(1-16절)와 (2) 임
박한 멸망에 대한 선지자의 고통을 다루고 있는 중반부(17-22절), 그리고 (3) 예레미
야의 중보기도를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23-25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 내재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간파함으로
써 우상 숭배의 무익성을 논증하는 동시에 유다에 임할 환난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임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본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전반부(1-16절)에서는 우상들에 대해 통렬하면서도
풍자적(諷刺的)인 공격이 지배하고 있으며, 후반부(17-25절)에서는 다가오는 추방에
대한 선지자의 비탄과 중재의 비가(悲歌)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
면 다음과 같다.

+-----------------------------------------------------------------------+
|(1) 서론적 도입 단편(1절) |
|(2) 우상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2-5절;레 18:3; 사 45:20) |
|(3) 하나님의 지고(superemacy)하심(6, 7절;출 15:11;시 89:6;계 15:4) |
|(4) 우상의 무익함(8, 9절;사 40:19;합 2:18) |
|(5) 하나님의 실체와 창조적 능력(10-13절;욥 9:8;시 10:16;96:5) |
|(6) 우상과 심판받아 마땅한 제조자들(14, 15절) |
|(7) 하나님의 지고하심에 관한 마지막 인정(16절;신 32:9) |
|(8) 멸망에 대한 선포(17, 18절) |
|(9) 엄숙한 독백과 애가(19-22절;2:8;4:20;31:15) |
|(10) 예레미야의 기도(23-25절;시 79:6, 7;잠 16:1;20:24) |
+-----------------------------------------------------------------------+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설명함에 있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표현 양식을 사
용하고 있다. 즉, 설명적 진술(1-5, 17-22절), 묘사적 진술(6-10절), 선언적 진술
(11-16절), 선지자의 기도(23-25절) 등이다.
또한, 문맥상으로 볼 때 본장은 전장(9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이루고 있다. 즉, 유
다의 심판에 대한 애가를 표현하고 있는 17-25절의 내용은 전장의 파국에 대한 최종적
인 선언(9:17-22)과 논리적인 연결성을 맺고 있다. 그런데 17-25절을 기록하기에 앞서
1-16절의 '우상 숭배'에 관한 시(詩)를 삽입해둠으로써 유다 파멸의 직접적인 원인이
다름 아닌 우상 숭배에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언약 파기=우상 숭배'임을 거
듭 강조하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장에 나타난 내용상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상 숭배의 무익성이 강조되고 있다(1-16절). 지금까지 심판의 원인으로서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지적은 주로 그 현장을 추적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본장에 들
어와서는 주로 우상 숭배가 가져다 주는 결과적인 측면을 소개함으로써 언약 백성으로
서의 유다와 하나님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 물론 예레미야가 이러
한 논점을 제사한 것은 행여라도 그 백성들이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서 비롯된다. 이제 저자가 제시하는 우상 숭배의 무익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언약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자' 곧 만물의 근원이신 창조주이시지
만, 우상은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재피조물(再被造物)에 지나지 않는
다(3절). (나)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 화복(生死 譁福)의 근원이시나 우상은 그러한 것
들을 창출치 못하고 오히려 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4, 5절). (다) 창조주이신 하
나님은 만물의 능력의 근원이신데 반하여 우상들은 아무런 능력도 소유하지 못했다
(12, 14절).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탁월성과 우상의 무력성을 단
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언약 백성인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함
으로써 얻게 된 것은 극도의 허무감뿐이다.
(2) 유다의 범죄 상황과 관련하여 예레미야 선지자 자신의 애가와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17-25절). 여기에는 유다인으로서 동족의 죄악의 실상을 철저히 드러내야 하는
선지자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유다의 현재 범죄 상황과 그 결과로서의 재앙을 내다본
예레미야는 앞서 8:18-9:2에 이어 다시 한번 일인칭 용어를 사용한 독백 형식의 애가
를 부르고 있다. 이 애가는 자기 민족을 사랑한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들을 하나의 인
격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자신을 그 백성의 대표적 자격으로 인식하여 백성들이 당
하게 될 고난을 마치 자신만이 당하게 되는 것처럼 표현한 노래이다. 아울러 저자는
단지 슬픔에만 함몰되어 있지 않고 유다 백성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
는 백성들은 물론 통치자 들까지도 자신이 선포한 심판에 대하가 무감각하며, 범죄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나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안타까
워하며 하나님께 부르짓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사역자로서의 예레미야의 자세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는 철저한 배도와 입박한 징계의 확실성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다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1. 우상 숭배의 무익성(10:1-16)
본 단락은 언약 백성인 유다가 신봉하고 있는 우상의 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실례
를 들어 참신이나 하나님과 대조적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저자는 우상 자체의 무익성
을 강조함으로써 유다의 우상 숭배가 갖는 허무함을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
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우상의 피조성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햐을
논하고 있는 전반부(1-5절), (2) 참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에 대비되는 우상에대해 서
술하는 중반부(6-10절), 그리고 (3)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려과 우상의 무능력
을 대조하고 있는 후반부(11-16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언약 백
성의 하나님은 온 우주에 유일 무이(唯一 無二)하신 참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시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본 단락은 대단히 힘이 있고 풍자적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이사야서의 후반부(40-66장)에 나오는 여러 구절들과 그 형태 면에서 매
유사하다(사 40:18-20;41:7;44:9-20;46:5-7). 그래서 종종 이 시는 본서에 덧붙여진
포로기 이후의 작품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본서 자체 내에도 이와 유사한 서
술 형태가 소개되어 있음(51:15-190을 그거로 본 단락은 예레미야 당시으 진술로 단정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단락의 구조를 정리해 보자면, 단편적으로 네 부분이 '우상에 대한 고발-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진술'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
| 단편1. (1) 우상들의 연약함(2-5절) |
| (2) 하나님의 능력(6, 7절) |
| 단편2. (1) 죽어 있는 우상들(8, 9절) |
| (2) 살아 계신 하나님(10절) |
| 단편3. (1) 피조물인 우상들(11절) |
| (2) 만물의 총조자이신 하나님(14, 15절) |
| 단편4. (1) 우상들에 대한 잘못된 숭배(14, 15절) |
| (2)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16절) |
+-------------------------------------------------------+

이와 같이 우상과 하나님을 대비하여 서술하는 형식은 본서의 곳곳에서 자주 사용
되는데, 유다의 우매하믈 아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2:8-13;
26:28;3:1-5;5:20-25).
또한, 본단락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다른 모든 경배의 대상물들을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 유일성(6절),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7절), 하나님의 실제성(10절),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
님(12절), 하나님의 우주간섭(13절), 언약의 하나님(16절) 등과 같은 사실들을 강조함
으로써 언약 백성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당
시 유다의 수많은 종교 행사가 가나안 종교의 악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려할 때 언약의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도록 요구하는 간절한 호소이며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요적 특성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1-5절). 유다에 있어서 우상 숭배의
관행은 이미 1세기 이전의 아모스가 주의를 기울이던 것으로(암 5:25, 26) 예레미야
당대에 이르러서는 요시야 개혁 운동의 표적들 중에 하나였다(왕하 23:5, 11, 12). 이
와 같이 당시 우상 숭배는 이미 어느 정도 보편화, 실체화 되어서 일반 대중들의 심리
속에 하나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자는 우상에 대
한 백성들의 심리적 안정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상에
대한 묘사는 구약의 다른 곳에서의 지적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주로 우상 숭배의 무가
카삼에 대한 묘사이다(시 115:4;135:15;사 2:20;31:7;40:18-20;46:6, 7;합 2:19). 거
짓 우상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자들을 해칠 만한 힘도, 추종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힘과 능력도 가지지 못한 인간의 조각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거짓 우상들과는 대조적인 언약의 하나님의 실체를 광범위하게 설명하고 있다
(6-16절).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지구르르 창조하시고 손을 뻗쳐 하늘을 지으셨다
(51:15, 16). 또한 구름, 번개, 비, 바람을 동반한 천둥 등의 자연 현상을 통해 당신
의 지속적인 능력을 계시하고 있다(욥 38:22;시 33:7). 이처럼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
를 통하여 특별한 관계를 맺고 유지시켜 오신 하나님은 만물 위에 탁월하신 유일신이
다. 그러므로 유다의 거짓 우상들에 대한 숭배는 단순히 헛된 것을 추종한다는 의미에
서 그치지 않고 언약의 하나님을 우상만도 못한 위치로 끌어 내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과 신적 지혜의 탁월함을 묘사함으
로써 이스라엘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단순히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이
아니라 참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질 인간적 가치나 헛된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궁
극적인 소망을 두어야 한다.

2. 임박한 멸망의 고통(10:17-22)
본 단락은 다가온 유다의 파멸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참상을 생생
하게 소개하고 있다. 전 단락(1-16절)에서 우상 숭배의 실상을 소개하던 선지자는 유
다의 멸망을 예언하며 임박한 고난을 미리 체험하는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심판으로 인한 유배를 선언하고 있는 전반부(17, 18절), (2)
훼파되는 유다의 참상을 슬픈 마음으로 진언(眞言)하고 있는 후반부(19-22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언약 파기에 따른 그 땅으로부터
의 추방과 그 땅 자체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예고하고 있다.
한편, 문맥상으로 볼 때 본 단락은 9:17-22과 긴밀한 논리적 연결을 맺고 있다. 오
랫동안 예언되어 왔던 심판으로 인한 참변이 이제 예루살렘 성문 앞에 이르렀으며, 유
다는 머지 않은 장래에 멸망과 파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본 단락의 구조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A. 서론(피할 수 없는 심판, 17절;6:1) |
| B. 유배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18절;삼상 25:29) |
| C. 선지자의 고통(19절;미 7:9) |
| B'. 이 땅의 심판으로서의 하나님의 계획(20, 21절;2:8) |
| A'. 결론(전유다의 황폐, 22절;5:15) |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라그이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결단의 행동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17, 18절).
저자는 닥쳐올 재앙의 현실적인 위기를 증폭시켜 묘사하면서 '꾸러미', '내어던지다'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꾸러미'는 여행을 위해 들고 다닐 수 있는 약간의 소
지품을 담은 보따리를 말하는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예비 행동을 드러내 준다.
또한 18절의 첫 번째 동사(원문상으로)에 해당되는 '내어던지다'는 투석기에 돌을 담
아 던질 때 사용되는 말로서 하나님의 의도를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의 인내를 중단하고 이제 유다 백성들을 언약의 땅
에서 내쫓기로 작정하셨음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2) 예레이야의 불안과 고통의 외침을 엿보게 한다(19-21절). 선지자는 유다 백성
들과 일체감을 깊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당면한 민족적 고난을 미리 보면서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우둔하여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참조하지 않고 임의대로 처신하는
교만한 유다인들은 결국 약속의 땅에서추방되어 그 '흩어진 양떼'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겔 34장). 그러므로 저자는 고뇌에 찬 음성으로 슬픈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 우리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징계에 대해 알 수 있
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순결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언제나 죄
를 미워하고 의를 즐거워하는 삶의 태도를 지속해야 한다.

3. 선지자의 기도(10:23-25)
예레미야 선지자의 타원 형식으로 기록된 본 단락은 유다 심판의 원인이 하나님의
진노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심에 입각한 것임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문맥상으로는 전단락(17-22절)과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는데, 전 단락이 심판
자체의 위급성과 그 참변의 형태를 서술하고 있는 반면 본 단락은 그 재앙에 대한 예
레미야의 간절한 중보 기도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예레미야의 인간 이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23절).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을
위한 탄원의 기도를 하면서 인간이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핍되
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곧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
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23절)라는 고백을 통하여 인간들이 악에 대해 항
구적으로 저항할 능력이 없으며,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제나 고결하게 행할 수 없는 도
덕적 취약성의 소유자임을 밝히고 있다(17:9). 이 사실은 '길'과 '걸음'의 언급을 통
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러한 표현을 지혜 문학에서 잘 사용된 용어로서(시 37:23;잠
16:9;20:24) 참된, 지혜로운 삼의 추구는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 속에만 존재한다는 점
을 부각시킨다. 결국 저자는 진정한 인간 이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고 있
는 것이다.
(2) 열방으로 인한 유다의 심판을 언약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24, 25절). 사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열방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특별하게 작용되고 있는 언약의 외부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
년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고 약탈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하
나님의 거룩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다(2:3). 그러나현재 유다는 하나
님의 이름을 거역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은 자들에게 심판이 할당된다고 하면 유다 백성들 역시 열방과 함
께 동일한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비
록 그의 심정은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하고 싶었을지라도 논리적으로 유다에 대한 심판
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암 5:18-20). 유다 역시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배도하였으며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에 대해 거부하였으므로 비극적인 결말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언약 관계 속에서 특권을 소유하고 있을 지라도 죄와 반역에 따른 비극적이 결말에서 면제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나 공의로우신 분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외적인 제도와 형식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만족해서는 곤란하며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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