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에스더 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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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왕이...하만의 집을...에스더에게 주니라 -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 범죄자의 모든소유는 당연히 왕에게 귀속되었다(왕상 21:7-16). 따라서 범죄자 하만의 모든 소유는왕의 것이 되었으며, 왕은 그것을 하만의 음모를 드러내는 일에 공로가 큰 에스더에게넘겨주었던 것이다(Baldwin). '하만의 집'은 그의 가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하만'에 의해 소유됐던 재산 일체를 가리킨다(창 39:4;왕상 13:8;욥 8:15).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고한 고로 - 에스더가 모르드개를 자신의 사촌 오빠이자 양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임을(2:7) 왕에게 말했음을 가리킨다. 사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자신의 관계를 진작 밝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유대인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고발하는 도중 자신이 유대인임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7:3, 4), 이제 더 이상 모르드개와의 관계를 감출 필요는 없게 되었다.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 모르드개가 왕과 면대(面對)할 수 있는(1:10,14;7:9). 고위직의 관리로 승진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Paton, Rawlinson). 그러나 모르드개의 이 같은 승진을 반드시 에스더의 후광(後光) 때문으로 봐서는 안된다. 모르드개는 이미 왕을 모살할 계획을 꾸몄던 두 내시를 적발하였고(2:21, 22), 또한 금번에는 왕과 왕후에게 손해를 끼치려한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는 데 그 공로가 컸었기 때문에, 왕의 중신으로 등용될 수 있는 자격의 소유자였다.

=====8:2
왕이...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 '왕이 반지를 빼어' 신하에게 주는 것은, 그 신하에게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가시적 행위였다(3:10). 이로써 모르드개는 바사 제국의 제2인자인 총리 대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그는 '왕에게가까이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들 중 한 사람이된 셈이다(1:14).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 이것은 에스더가 '하만의 집'에 대한 소유권을 물론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르드개'에게 양도한 것을 의미한다(Rawlinson). 사실 에스더가 하만의 엄청난 재산(3:9)을 직접 관리하기에는 힘이 부쳤을것이다. 결국 하만의 부귀와 지위 및 권세는 그의 원수였던 모르드개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8:3
에스더가...왕의 발 아래 엎드려...울며 구하니 - 이러한 에스더의 탄원은,비록 그때 하만은 이미 처형되고 없었지만(7:10) 유대인 학살에 관한 왕의 조서(3:13)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발 아래 엎드리는 것'은 높은 사람에게 간절히 탄원할 때 취하는 일반적인 자세(삼상 25:24;왕하 4:27)이다.

=====8:4
왕이...금홀(金笏)을 내어미는지라 - 이것은 에스더가 왕의 호출없이 왕에게 나아갔다가 왕으로부터 용납된(4:11) 것을 의미치 않는다. 왕이 금홀을 에스더에게 내어민것은 에스더의 탄원이 있은 직후의 일이었으므로, 에스더의 청원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봐야 한다.

=====8:5
본절에서 에스더는, 간청을 하기에 앞서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상투적어구(1:19;3:9)를 무려 네 번 반복 사용한다.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며 자신과 자신의민족의 구원을 간청할 때는 두 번 반복 사용했었다(7:3). 에스더는 여기서 이같이 함으로써, 왕이 자신의 간청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시하고 있다. 조서를 내리사...하만이...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는 변개되거나 취소될 수 없었다(Huey). 만일 왕의 조서가 쉽게 변개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면그만큼 왕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에스더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던것 같으며, 다만 왕의 조서를 취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청원하기에 앞서 무려 네차례나 상투적인 어구를반복하여 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했으며 또한 그 앞서 왕의 발 아래 엎드려 눈물의 탄원을 했던 것이다(3절).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 이것은 이전의 조서가, 하만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목적으로 해서 조작된 것이어서 마땅히 폐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의문구이다(Paton).

=====8:6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보리이까 - 같은 동사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에스더는 동족의 환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위나 부귀에 있어 부러울 것이 없었던 에스더가 자신의 동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에게 닥친 곤경을 제거하기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신앙의 힘에 근거한 이타적인 정신을엿보게 된다(Baldwin). 한편, '친척'(* , 몰라드티)은 '출생지', '본토'혹은 '근본'의 뜻(창 11:28;31:13;겔 16:3)으로서 앞의 '민족'보다 더 근원적 측면을강조하는 단어이다.

=====8:7
본절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이 이미 (1)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몄던 하만을 처형했으며(7:10), (2) 그의 집을 몰수하여 에스더에게 주었던 것(1절) 등 두 가지의 호의를 유대인들에게 베풀었음을 말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보다 더한 호의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8:8
너희는...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 이 같은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은, 이미하달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던 페르시아 법과 잘 부합된다. 즉, 아하수에로 왕은자신의 도장까지 찍어서 반포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와 동일한 효과를 얻을수 있는 또 다른 조서를 반포케 함으로써 유대인들로 하여금 필요 적절한 방어 조처(9:1)를 취할 수 있게끔 했다. 왕의 이름을 쓰고...인친 조서는...취소할 수 없음이니라 - 원문에는 본 문구의 초두에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 '키'(* )가 있어서, 본 문구가 앞부분의 이유에 해당됨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앞 부분 어떤 내용의 이유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1) 왕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대적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서를내리라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명령한 것이라는 견해(Paton). (2) 왕이 새로운 조서에 왕의 이름을 쓰고 반지로 인을 치라고 명령한 것이라는 견해(Schultz) 등이 있다.그러나 왕의 조서가 취소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서, 대적들의 학살 행위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반격할 수 있게끔 조서를 내리게 했다는 내용이 본문맥의 핵심인 점을 감안한다면,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함을 알 수 있다.

=====8: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 삼 일 - 하만이 유대인 학살을 위한 조서를 반포한 것은 '정월 십 삼 일'이었다(3:12). 그리고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폭로한 것은정월 십 육일이었을 것이다(5:1;7:1). 그렇다고 한다면 본절의 조서가 유대인들에게반포된 것은, 하만의 음모가 폭로된 지 약 두 달 열흘 후의 일인셈이다.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 '서기관들'은 왕의 조서 원본을 작성하고 그것을 필사하여 여러개로 만들거나, 페르시아어로 기록됐을 원본을 제국 내에서 사용됐던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이다(Baldwin).
모르드개의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 왕은 자신의 이전 조서(3:12-14)를 취소치않고 유대인들을 학살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끔 하는 조서를 임의로 작성하라고 '모르드개'에게 명령한 바 있다(8절). 이제 '모르드개'는 그 같은 대원칙 아래서 유대인을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서 작성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백 이십 칠 도 유다인과 대신과 관원에게 전할새 - 여기서는 조서 반포의 두 가지 대상이 언급되고 있다. 하만에 의해서 반포된 조서는 그 대상이 후자 뿐이었다(3:12). 그런데 조서의 반포 대상으로서 유대인이 지정된 것은, 그들이 자위권(自衛權) 행사의 정당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였다. 반면에'대신과...관원'이 조서 반포의 대상이 된 은 지극히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만일 모르드개에 의해 작성된 새로운 조서가 그들에게 반포되지 않는다면, '대신과...관원'은하만에 의해 반포된 이전의 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학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대신과...관원'은 새로운 조서에 라 유대인 학살을 돕는 입장에서 떠나 완전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되게끔 되었다.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 앞의 '각 도의 문자...방언'이 '관원'등을위한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의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은 말할 나위 없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살고있던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8:10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 이에 대해서는 3:13 주석을 참조하라.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 본 문구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 , 하아하쉬테라님 베네이 하라마킴)중 '하아하쉬테라님'은 '왕국'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크샤트라'(Khshatra)에서 유래한 페르시아 기원의 외래어로서 '왕의 종마'(種馬)의 뜻(Paton, Keil)이며 '베네이'는 '새끼' 혹은 '양육'의뜻이다. 그리고 '하라마킴'은 '암말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히브리 원문에충실하게 '왕을 위해 양육되는 종마'(NIV, fast horse especially bred for the king)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이는 다음에 나오는 '준마'와 동격(同格)으로 보면 된다.그런데 혹자는 '하아하쉬테라님'을 현대 페르시아어 '에스타르'(estar)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그것이 '종마'가 아닌 '노새'를 뜻한다고 주장한다(Rawlinson, 박윤선). 그러나 헤로도투스와 크세노폰의 기록에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공문서의 전달을 위해 오직 말만 사옹된 사실이 나타나 있음을 볼 때, '하아하쉬테라님'이 '노새'를 뜻한다는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 이는 왕의 조서가 신속하게 전국에 반포될 수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준마'(* , 레케쉬)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왕이 타는 말'(왕상 4:28) 혹은 '병거를 끄는데 사용되는 말'(미 1:13)로도 언급된다.

=====8:11
본절은 모르드개에 의해서 작성된 왕의 조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요약적으로 밝히고 있다.
저희로 함께 모여 - 이는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대적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비결이었다(4:16;전 4:12). 거대한 제국에서 미미한 존재였던 소수 민족, 그것도 전국에 흩어져 살았던(3:8) 그들은 모이지 아니할경우 수많은 대적들의 공격에 속수 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 비록 유대인에게 자위권(自衛權)을 보장해준 새로운 조서가 왕의 명의로 반포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만이 내린 왕의 조서는 취소될 수 없었기때문에 여전히 유효하였으므로(8절), 유대인을 미워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에 대해서합법적인 살인을 감행할 수 있었다. 세력을 가지고...치려 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 여기서 '치려 하는 자'란 이방인들 중 마치 하만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신앙적인 이유로 자신들과 같은 삶의 방식을 추종하지 않는 데 대하여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항상 혐오감을 갖고 있다가 하만의 조서가 내려지자 그것을 빌미로 하여 유대인을 학살할 계획을 하고, 무장을 한 연후 조서에 정해진 유대인 학살날짜(3:13, 14)만을 기다리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무리들은 대개 유대인들의유일신 신앙을 혐오 하는 우상 숭배자들이 많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이 유대인들의 대적 중에는 타민족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중앙 정부의 정책에 호응했던 페르시아 사람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3:15 주석 참조). 추측컨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아하수에로 왕은 유대인들에 의한 제국민(帝國民)의 부분적학살을 승인했던것 같다. 한편, 대적들의 '처자'까지 진멸하게끔 했다는 사실을 놓고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1) 하만과 그 일당이먼저 유대인의 어린아이나 부녀까지 살륙하려 했다는 점에서, (2) 더구나 자신들에게군사적 적대 행위를 시도하는 자들과 그 가족만을 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서 내용은 정당한 것이었다. 아마도 모르드개는 조서를 작성할 때(9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동해(同害) 복수법을 염두에 두고, 하만이 유대인을 해하려고 한 범위만큼 그 하수인들을 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Baldwin).

=====8:12
아달월...십 삼 일 하루 동안에 하게하였고 - '아달월...십 삼 일'은 원래 대인대학살을 자행하도록 결정된 날이었다(3:7, 13). 그러나 이제 이 날은 바로 유대인들이 그 대적들을 진멸할 날로 결정되었다. 모르드개가 바로 이 날을 대적들을 진멸할날로 결정한 것은 대적들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게끔 하기 위해서였으며 또한 이날이 되어야 유대인들도 누가 자신들의 대적인지를 보다 분명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8:13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 '조서초본'은 모르드개의 주도 아래 서기관들이작성한 조서 원본을 그대로 베끼거나 혹은 다른 언어로 번역한 것을 가리킨다(9절 주석 참조). 한편, '각 도에 전하고'는 페르시아 제국 전체 일백 이십 칠 도의 '대신과방백과 관원'에게와 유대인들에게 보내진 것을 뜻한다(9절).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 여기의 '예비하였다가'(* , 아티우딤)는 유대인들의 대적들에게 사용된 '준비하게 하라'와 동일한 단어(3:14)이다. 아무튼 유대인들에게는 대적들을 진멸할 준비 기간이 거의 9개월씩이나 주어졌다(9절).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 '원수를 갚게'(* , 나캄)라는 단어는 상대로부터 심각한 해를 입은 후에 그에 상응하는 가해 행위로 상대에게 보복하는 것(삼상24:12;왕하 9:7;겔 25:12)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문구는 유대인들이 아무에게나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가해행위를 하라는 뜻이 아니며 다만 군사적 적대행위를 하는 상대에 대해서만 반격하라는 것을 의미한다(11절).

=====8:14
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 '역졸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라고 표현된 하만의 조서 당시(3:15)에 비하여, 유대인의 대적을 진멸하라는 금번의 조서에 대해서는시급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8:15
푸르고 흰 조복 - '푸르고 흰'색은 왕실에서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즐겨 사용했던 제왕색(帝王色)이었다(1:6). '조복'은 문자적으로 '왕의 옷'이다. 그러나 이것은왕이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기 위하여 일시 하사했던(6:11) '왕복'이 아니며 다만 왕이상으로 내린 별도의 의복일 것이다(Rawlinson).
큰 금면류관 - 여기의 '면류관'(* , 아테레트)은 왕이 쓰는 것 보다는 크기나 질에 있어서 열등한 관(冠)이다(Rawlinson). 그러나 크고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신하들의 것보다는 탁월했을것이 분명하다.
자색 가는 베 겉옷 - '자색 가는 베'는 왕이 베푼 야외 잔치 때에 그 곳을 아름답게 하는 데 사용된 재료였다(1:6). 따라서 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겉옷은 왕으로부터 하사된 것임이 분명하다.
왕의 앞에서 나오니 - 하만이 그랬듯이 모르드개에게도 왕의 호출없이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을 것이다(3:8).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 '수산 성'은 그 도시에 사는 거민들을 뜻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라는 조서가 내려졌을 때는 슬퍼했었지만(3:15). 그 반대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또한 의로운 사람이 총리에 오름에 따라이처럼 좋아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은 하만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까닭없는 양민 학살 계획에 대해 혐오해 오고 있었던 것 같다(Rawlinson). 한편, '즐거이부르며'(* , 차할)는 '마음이 기쁘고 흡족하여 크게 소리치는 것'을 가리킨다(사12:6;렘 31:7). 그리고 '기뻐하고'(* , 사마흐)는 어떤 이유로 '특별히 즐거워하는 것'을 뜻한다(느 12:43).

=====8:16
앞 절에서는 수산에 사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의 반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광(* , 오라) - 원래는 '빛'의 뜻(시 139:12;사 26:19)이며 상징적으로'번영'을 의미한다(Paton, Keil).
즐거움(* , 시므하) - 15절의 '기뻐하고'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기쁨(* .
사숀) - 이것은 앞의 '즐거움'과 거의 같은 뜻으로서,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사 22:13;35:10).
존귀함(* , 예카르) - '명예를 획득하는것'을 가리킨다(Paton, Keil). 그러나하만이 총리로 있었던 시절의 유대인들은 극히 미미한 존재였을 뿐이다.

=====8:17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 중 피고용자의 입장에 있던 자의경우에는 이방인 고용주들이 유대인이 구원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던 나머지그들이 즐길수 있는 하루의 시간 여유를 자발적으로 허락했을 것이다(Baldwin). 본토 백성이...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 이것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가능하였다(스 6:21).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개종자를 (1) 절대 권력자 하만(3:1)의 돌연한 몰락과 유대인들의 승귀(昇貴)를 목도한 결과, 여호와가 유일한 참신임을 깨달음으로써 유대 종교를 신봉하기로 결단한 자, (2) 모르드개가 총리에 오르고유대인들이 승리한 것을 목도한 결과 유대인이 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유대교에 입교한 자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유형중 (2)의 경우는 콘스탄틴 대제(306-337년)가 기독교로 개종한후 기독교를 공인하자수많은 이교도들이 참된 회심없이 교회로 몰려들어 왔던것과 대단히 유사하다.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 문자적으로는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위에 떨어졌다'의 뜻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특별한 섭리 혹은 간섭의 한 형태로 볼 수있다(창 35:5;출 15:16;신 11:25;시105:38).

 

 

 

   본장은 유대인들과 모르드개의 지위가 반전(反轉)되어 높아진  장면을  중점적으로 다룬 부분이다(15-17절). 즉, 앞장에서 유대인들의 원수 하만이 에스더의 활약으로 처형 당한 사실을 언급한 데 이어 본장에서는 에스더가 자신의 동족(同族)을 적대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왕에게 자위권(自衛權)을 받아내는 기사를 그 핵으로 해서 기술하고 있다(11절).
   이러한 본장을 사건의 전개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1)에스더가 왕에게  유대인의 구원을 간청하는 장면(1-6절), (2)왕의 명의(名義)로 내려진 조서의  내용과  전달 과정(7-14절), (3)유대인들의 기쁨과 백성들의 반응(15-17절) 등으로 구분된다.  이는 결국 본장의 강조점이 (1)하만이 죽었지만 유대인 학살 명령(3:7)은 여전히  유효하였다는 사실(5절)과, (2)이 일을 직시한 에스더가 왕으로 하여금 유대인을 위한  새로운 조서를 내리도록 했다는 사실에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당시의 페르시아 상황은 유대인을 진멸하라는 하만의 조서가 제국 전체에 반포되어 그에 대해서 많은 무리들이 기뻐 날뛰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결코 유대인들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은 자들이 아니었다. 다만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모든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무언가 구별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데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쉽게 동화하지 않는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중 하만의 조서를 보게  되자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달 월 1일(3:13) 하루 동안 주어진 합법적 기회를 이용하여 그동안 자신들에게 눈의 가시와도 같았던 유대인들을 몰살시킬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와같이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준비하던 자들에게 있어서 하만의 죽음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과 관계없이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왕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하만의 조서에 왕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기 때문에(3:12) 결코 취소될 수 없음도 알고 있었다(8절; 1:19).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더욱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기도(企圖)를 방관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의 위기를 모른 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여종 에스더를 움직이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학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셨다. 만약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적 역사가 아니었다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창칼에 무참히 학살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유대인들이 원수들을 진멸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에 일말의 착오도 없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내용의 본장을 통하여 (1)하나님께서는 이방 원수의 목전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주심으로써 결국 이방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게 하시며(시 37:20; 사 25:9), (2)이런 사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세상의 횡포에 고통하고 신음하지만 종국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다(요16:33)는 것을 깨닫게 된다.

                    1.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에스더의 간청(8:1-6)
   본문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고자 했던 나무에 달려 죽은 후(7:10) 모르드개가  하만의 지위에 오르게 된 사실과(2절)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에스더가 간청하는  장면을 기록한 부분이다. 즉, 이미 내려진 하마늬 조서를 취하(取下)하기 위한 에스더의 노력을 언급한 본문은 (1)총리 대신의 지위에 오른 모르드개(1, 2절),  (2)유대인을  위해 하만이 내린 조서의 취소를 구하는 에스더(3-6절) 등의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하만이 유대인을 도륙하기 위해 왕에게 간청하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3:8,9) 본장의 에스더의 간청은 더 애절하고 호소력 있는 애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3,  6절). 이는 에스더의 신앙과 애국심을 강조하여 드러내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로 사료된다.
   한편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 처형됨으로써 모든 상황이 끝았다고 보았을  것이다.
 
또한 사실 그는 유다 민족을 생각할 만한 도량 있는 군주가 아니었기에 모든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처형한 가장 큰 이유도 왕비 에스더의 간청과 아울러 그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려고 함으로써 왕에게 무엇인가 손실을 입히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7:4). 그러므로 왕은 하만이 유다민족을 몰살시키려고 했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를 처형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처형과 함께 자신에게 손해될 일은 모두 제거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왕에게 유대인들이 여전히 학살의 위험 아래 있다는 사실은  물론  생각밖의 일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을 모해하려던 무리를 적발했던 모르드개(2;21,  22)를 높음 자리에 앉히고, 하만의 재산을 에스더에게 넘겨줌으로써,  모르드개와  에스더에 대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본문에 나타난 간청은 유대인의 구원을 호소하는 에스더의  간절한 심정과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간청의 방법에서 드러난 에스더의 심정이다. 왕후 에스더는 다른 획기적  조치가 없을 경우 자기 동족이 원수들에 의해 대량 학살되리라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실 에스더가 안일한 자였다면 하만의 처형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사실 에스더가 안일한 자였다면 하만의 처형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왕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부르심으 받은 사실을 분명히 안식했기 때문에(4:14-16)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완수를  위하여 왕에게 간청한 것이다. 이처럼 에스더는 수고스럽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백성의 중보자가 되어 눈물로써 백성들의 구원을 왕에게 간구하였다(3절).
   이러한 에스더의 심정에는 자신이 유대인들과 같은 신앙을 가진 공동체라는 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신국(神國) 백성의 예표이기 때문에 에스더가 갖고 있던 동포애나 애국심은 하나의 신앙 공동체에서 발휘되는 당연한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소명 의식과 신앙적 용기가 에드서의 심정에 서려 있었고 결국에는 조서를  취하하도록 간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에스더가 구한 간청의 내용이다. 그녀는 하만이 내린 조서가(3:12, 13) 여전히 효력이 있음과 또 그 왕이 인친 조서는 누구도 최소할 수 없음을 알았던  듯하다(8절). 그래서 왕이 조서를 내려 이전 조서를 취소시켜 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5절). 그뿐만 아니라 당시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던 땅에 유대인을 미워하는 자들이 하만 외에도 많이 있었고 유대인들은 공격의 위기 앞에 직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에스더는  다시 민족의 생명을 위해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1)성도들은 같은 신앙의 공동체인 형제들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며(마 22:39), (2)에스더가 간절함으로 왕에게 간청한  것과 같이 우리도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최선을  다해  요청해야  한다(눅18;1-8)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최선을 다하는 삶.   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는  보편적 원리를 믿는 한편, 대개의 경우는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를 알지 못해  근심하는 나머지 일의 추진을 게을리한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될 경우 자신에게 막대한 손실이 온다고 한다면 그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교의 행동 원리는 그 결과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우리 신자들에게 당위성 중심의 행동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즉,  만일 내가 '갑'(甲)이라는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있다고 한다면, 그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반드시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이다. 또한 '갑'이라는 일이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 아무리 멋진 결과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투철함으로 그 일을 숭행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거나 또한 자신에게 손해가 필연적으로  있을지라고 도직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절대적 영역이요, 하나님께서는 그 경우 결과를  결코  중요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고전3: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만 당신의 자녀가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는지(고전 4:2)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들은 결과야 어찌되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기쁨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여야 한다. 만일 결과에 대해서 염려한다면, 그것은 불신앙인 것이다.

                    2.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조서 하달(8:7-14)
   에스더의 조서 취소를 위한 간청의 내용을 언급한 전 단락(1-6절)에  이어  본문은  왕의 허락으로 모르드개가 유대인을 위해 조서를 내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즉,  분문은 왕의 명의(名義)로 유대인에게 내려질 조서의 내용과 그 조서의 공포 과정을기록한 부분으로 내용상 (1)에스더의 간처에 대한 왕의 허락(7, 8절), (2)모르따개에 의해 작성되고 인쳐진 조서의 내용(9-12절), 그리고 (3)각 민족에게 반포되는 조서(13,  14절)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본문을 기록할 때 하만의  조서가  전달되는  과정을  묘사했던  부분(3:10-15)과 같은 표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기사를 비교해 보면 본문의 조서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1)본문의 조서는  특별히 유대인의 문자와 방언으로도 기록되었다(9절; 3: 12). 이는 모르드개의 조서가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내려진 것으로 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기된 사실을  보여  준다. (2)하만의 조서에는 대적들이 명시된 날에(3:13) 유대인들을 죽일 수 있도록 명하고 있으나, 본문의 조서에는 오히려 유대인이 그 날에 예비하였다가 대적에게  복수하도록 명하였다. 이러한 사실 역시 본문의 조서가 하만의 계획과 의도를 그대로 유대인에게 허락하여 복수하도록 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에스더는 왕에게 유대인을 학살해도 좋다는 내용의 조서(3:13)를  무효화시켜 달라고 간청하였지만(5절),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국법(國法)이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는 결코 취소되거나 변개(變改)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8절; 1:19; 단 6: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왕이 자신이  내린 조서를 무효화시키거나 취소한다면 그 왕은 당대와 후대 사람들에게 나쁜 왕, 혹은 어리석은 왕 등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었다. 뿐망 아니라 조서를 무효화시키거나 변개하는 그 과정에 있어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였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동족을 구해 달라는 에스더의  눈물어린  간청으로 인하여 심히 난감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난처한 처지에 놓인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나 유다 민족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중요시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켰다. 그럴 경우 유다 민족은 할 수 없이 진멸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섭리의  손길을 멈추지 않으시고, 결국 아하수에로 왕에게 지헤를 주셔서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할 한 계책을 알게끔 하셨다. 그것은 곧 12월 13일에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도록 유대인들에게 자위권을 허락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면 왕은 첫 번의 조서(3:13)를 무효화하거나 변개하지 않으면서도 에스더의 간청대로 유대인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진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에게 까닭없이 아무나 죽일 권한이 부여됴 것은  아니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아하수에로의 강팍한 마음까지도 감동시키심으로써 그가 유대인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지혜로운 조처를 시행할 수 있게끔 하신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이 원수들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위험을 방관치 않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당신의 놀라운 섭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세상의 그  어더한 상황이나 형편에도 얽매이는 분이 아니시며(마 19:23-30), (2)신자는 자신의  인간적인 시각에 따라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의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막 9:23), (3)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믿음을 갖고 담대히 나아가야 함(수 1:6, 7;히 11:30)을 깨닫게 된다.

   *페르시아 왕들의 임의적(任意的) 성품. 사실 아하수에로 왕이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위권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린 것은 합법을 가장한 일종의  편법(便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호 모순되는 두개의 법령이 어떻게 동시에  효력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이미 아하수에로 왕은 내려진 조서(3:13)를 취소할 수 없다는 법칙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하만의 조사와 모순되는 또 다른  조서를  하당하였던 거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이의(異意)를 제기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이 국법(國法)에 얽매여 있었던 것은 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신들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초법적(超法的)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서 실증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 중 캄비세스에게는 여러 명의 친누이가 있었는데, 그는 그중 한  명을 사랑하여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국법은  캄비세스의  소망을 이루어 줄 수 없었다. 즉, 페르시아의 법은 왕이 자신의 누이를 왕후로 맞이하는 일을 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캄비세스는 자신의 이러한 소원을 버리지 못함으로 자기의 휘하에 있던  모사(模士)들에게 누이와 결혼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이 없겠는지를 질문하였다. 그러자 모사들은 왕에게 아첨하기 위하여 국법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사들은 왕이 자신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음을 규정하는 법이 있지만 왕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법률에 따라 누이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이 이미 자신이 하달했던 조서와 모순되는 다른 조서를  또다시 공포했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세속 국가의 불의(不義)를 밝히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오직 공의와 평강이 있을 뿐이다(히 7:2).

                    3. 조소로 인한 반응(8:15-17)
   본문은 유대인에게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자위권이 주어진 사실(11절)과 모르드개가 지극히 높은 자로 승격한 사실(2, 15절)로 인하여 페르시아 제국 백성들이  각기 다른 세 가지 반응을 보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 나타나는 반응은 호의적인 반응들만을 포함한다. 그러나 분명히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새로운 조서로 인하여 낙심하며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 나타나는 유대인의 반응과 하만의 조서에 의한 유대인의 반응은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3:15-4;3). 당시 하만이 조서를 내리자 수산 성이  어수선하였고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며 애통하였으나 본문에서는 모르드개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등장하여(15절) 수산 성과 유대인들은 즐거워하고 본토  백성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16, 17절). 이는 결국 자자가 본문을 유대인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증거로서 유대인들을 통해 이방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섭히하심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사료된다.
   이러한 내용에서 볼 때 본문에 나타난 반응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산 성의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었다(15절). 수산 성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들의 경건하고 성실한  태도를 직접 목도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함께  가슴 아파했으며(3:15).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자 이제 다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유대인들 또한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었다(16, 17절). 그들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을 고비에서 벗어난 그들이 크게  즐거워하며 잔치를 베풀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찬송하며 이웃과 교제를  나누는  일은 필요 적적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극도의 해방감과 자유함을  맛보며,  친히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하여 더욱 기뻐하였을 것이다.

   셋째, 반면에 본토 백성들은 구려워하게 되었다(17절).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부리하던 상황이 갑자기 역전되자 유대인들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고 경외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유대인으로 개종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론 그들의 개종이 참된 것이엇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대인들의 지위가 높아진 것만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본서 저자는 조서에 대한 세 가지의 반응을 본문에 기술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닌들이 이방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화제의 주인공이자 또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참신 그리고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들로 인정받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가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께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였던 것이다(4:3). 죽,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겠다던 약속(시 81:7)을 굳게 믿고 그대로 한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연단을 주셨음(잠 17:3)도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시련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신자들은 하늘 나라 시민의 의무뿐만 아니라세상 나라 시민의 의무에도 충실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며(마 5:16), (2)현세적 기쁨보다 영원한 기쁨을 더 사모하는 신자들은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도 긍정적 시야를 갖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롬 12:1, 2)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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