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 - 헤브론(Hebron)은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지점에 위치한 요새이며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서 유다 지파 지역의 중심부에 있었다.삼하 2:1 주석 참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시글락에서 이곳으로이주한 직후 유다 장로들에 의해 유다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다(삼하 2:4). 한편,1-3절에 소개된 다윗 왕의 아들들은 삼하 3:2-5에도 소개되어 있다. 그러니 이들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 다윗의 맏아들 암논(Amnon)은 이복 누이동생 다말을 추행한 탓에 훗날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에게 암살된인물이다(삼하 13:14, 28, 29). 그리고 그의 모친 아히노암(Ahinoam)은 다윗이 사울의딸 미갈과 이별한 후 새로이 맞아들인 아내이다(삼상 25:43). 다윗은 블레셋의 땅으로피신할 때 그녀를 함께 데리고 갔었다(삼상 27:3). 한편 아히노암의 고향 이스르엘(Jezreel)은 유다 산지의 성읍(수 15:56)으로서 헤브론 서남쪽 약 9.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잇사갈 지파의 기업에 속하는 이스르엘 골짜기와는 구별된다(수19:17, 18).
둘째는 다니엘이라 갈멜 여인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 다니엘(Daniel)은 삼하 3:3에서 '길르압'(Chileab)으로도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는 조사(早死)한 것으로 추정된다.삼하 3:3 주석 참조. 한편 아비가일(Abigail)은 본래 나발의 아내였으나 나발이 죽게되자 다윗이 아히노암에 앞서 새로이 맞아들인 아내이다(삼상 25:39-43).
=====3:2
세째는 압살롬이라 - 다윗의 맏아들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를 대적하여 난을 일으킨장본인이다(삼하 13:20-18:15). 그는 온 이스라엘 남자 중 가장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자로도 이름높다(삼하 14:25, 26).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 - 그술(Geshur)은 과거 요단강 상류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인들의 독립국이다(수 13:13). 추측컨대 다윗은 정략적으로 이 나라의 공주 마아가(Maacah)와 결혼하였을 것이다. 삼하 3:3 주석 참조.
네째는 아도니야라 - 압살롬 다음으로 외모가 준수(俊秀)한 자로서 솔로몬을 누르고 왕이 되려 하다 훗날 도리어 처형된 인물이다(왕상 1:1-10, 41;2:25).
=====3:3
스바댜 - 스바댜(Shephatiah)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이다. 그러나그의 행적은 뒤에 나오는 이드르암(Ithream)과 더불어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다윗의 아내 에글라 - 에글라(Eglah)의 이름 앞에는 특별히 다윗의 아내라는 호칭이 붙어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금까지 소개된 여인들 중 오직 에글라만 본처이며 다른여인들은 후첩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상 25:42, 43;삼하 12:24에서 아히노암이나 아비가일, 그리고 밧세바 모두 다윗의 아내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칭호는 다만 다윗의 아내들에 대한 소개를 이제 끝맺는다는 의미에서,곧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소개된 여인들이 모두 다윗의 본처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끝내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Lange, Keil). 이에 관해서는 삼하 3:5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3:4
이 여섯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라 - 이는 곧 다윗 왕가의 번영을 강조해 주는 구절이다. 즉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자식이 많은 것은 가세(家勢)의 흥왕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바(창 13:16;시 127:3-5) 본절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이래 계속적으로 번영하였음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치리하였으며 - 다윗의 통치 기간은 모두 40년이며 이는 헤브론과 예루살렘에서의 통치로 각각 양분된다. 즉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지(삼하 2:4) 7년 6개월 만에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하 5:1-3). 그 후 그는 예루살렘을수도(首都)로 삼아 그곳에서 33년 동안 통치하였다.
=====3:5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 - 5-9절까지에 소개된 다윗의 아들은 모두 13명이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삼하 5:14-16에서는 모두 11명의 이름들이 소개되어 잇다. 아마 본문에는 나와 있으나 병행 구절에는 나와 있지 않은 엘리벨렛(6절)과 노가(7절)는 조사(早死)하였을 것이다.
시므아 - '시므아'(* )는 삼하 5:14에서는 '삼무아'(* )로 소개되어 있다. 이는 이름상에 있어서의 약간의 형태 변환일 뿐 동일한 인물이다.
솔로몬 - 그의 이름은 '평강의 사람'이란 뜻이다. 이 솔로몬(Solomon)은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그의 가정을 받으신다는 징표로서 주신 선물이었다(삼하 12:24). 한편 솔로몬은 일명 여디디야(Jedidiah)로도 불리웠는데 그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이다(삼하 12:25). 이 솔로몬은 이후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선택되었다(22:9).
암미엘의 딸 밧수아 - '암미엘'(* )은 삼하 11:3에서는 '엘리암'(* )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엘'(* )과 '암'(* )의 복합어로서 순서가 바뀌어도 의미상의 변화는 없다. 즉 두 이름은 모두 '하나님은 동족이심'이란 의미이다. 삼하 11:3 주석 참조. 한편, '밧수아'(* )는 다른 곳에서는 모두 '밧세바'(* )로 기록되어 있다(삼하 11:3;왕상 1:11, 15). 이 밧수아(Bathshua)는 밧세바(Bathsheba)라는 이름이 연음화(連音化)된 것이다(Keil & De-ltzsch, Vol. III. p. 78). 그런데 이 밧세바는 바로 다윗의 간음죄에 관련된 여인이다(삼하 11:2-5).
=====3:6
엘리벨렛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심'이다. 그런데 그이 형제 중에는 똑같이 엘리벨렛(Eliphalet)으로 불리운 자가 있다(8절). 따라서 양자를 혼동하기 쉽다.그러나 본절에 나오는 엘리벨렛은 일명 '엘벨렛'(Elpalet)으로도 불리웠다(14:5).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1-9절 강해에 수록된 도표를 참조하라.
=====3:7
네벡 - 네벡(Nepheg)이란 이름의 뜻은 '씨' 또는 '발아하다'이다. 레위 사람 고핫자손 중에도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있으니(출 6:21) 다윗의 아들 네벡과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3:8
엘랴다 - 그의 이름은 본래 '브엘랴다'(* )였다(14:7). 그 이름의 뜻은 '주께서(* , 브엘) 아신다(* , 야다)'이다. 그러나 후에 '바알'(* ) 우상이 널리 퍼지면서 그 이름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혐오하게 되었기 때문에 바알을 가리키는 '브엘' 대신 '엘'(* )을 사용하여 '엘랴다'(* )가 된것이다. 그 뜻은 '하나님은 아신다'이다. 한편 이와 같은 현상은 지명(地名)과 관련해서도 나타났던 바이니 이에 대해서는 삼하 5:20 주석을 참조하라.
=====3:9
저희의 누이는 다말이며 - 다말(Tamar)은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유일한 딸이다. 이처럼 딸이 족보에 소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윗 왕가의 큰 불행에 관련된 인물로서 세간(世間)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녀는 다윗의 맏아들 암논에게 추행을 당하고 쫓겨난 불행한 여인으로서 압살롬의 누이였다(삼하 13:1-19).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고 다윗왕릉 대적하게 된다(삼하 13-15장).
=====3:10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의 계보는 바벨론 포로 이전까지의 다윗 왕조의 족보로서 열왕기상.하의 순서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왕권 투쟁이 심했던 북왕국 이스라엘과는 달리 다윗의 후손들이 안정 속에 계속 왕위를 계승한 다윗 왕조의 견고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다윗 왕조의 견고성은 다윗 언약의 성취였다는 의의를 지닌다(삼하 7:16).
르호보암 - 암몬 공주 나아마(Naamah)의 소생인 르호보암(Rehoboam)은 41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17년간 통치하였다(왕상 14:21). 그러나 그는 솔로몬과 달리 악정(惡政)을 일삼았으니 불행히도 그의 때에 이스라엘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졌다(대하10:1-19).
아비야 - 남왕국 유다의 제 2대 왕인 아비야(Abia)는 왕상 14:31;15:1, 7, 8 등에서는 아비얌(Abijam)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3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B.C.913-910). 그런데 그 또한 부친 르호보암의 죄를 답습하였고 여호와 앞에서 온전치 못하였다(왕상 15:3). 그렇지만 그는 한편으로 북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있어서 여호와를의지하는 신앙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전투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가운데 북 이스라엘의 80만 대군을 40만의 소수 병력으로 패퇴시켰다(대하 13:1-22).
아사 - 유다의 3대 왕 아사(Asa, B.C.910-869)는 전임 두 왕과는 달리 우상을 파괴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으며(대하 14:3-5),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다(대하 14:2). 그리하여 그의 통치 초기에는 전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구스군을 무찔렀으며(대하 14:9-15), 북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다메섹과 동맹하여 무찌르기도 하였다(왕상 15:16-22).
여호사밧 - B.C. 871-847년까지 25년을 통치한 여호사밧(Jehoshaphat)은 다윗 왕을본받아 여호와를 힘써 섬겼으며 온 민족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대하 17:3-6;19:3, 4).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역대 왕들이 펼쳐 온 대 이스라엘 적대 정책에서 벗어나 화해 정책을 폈으니 그 일환으로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Ath-aliah)를 자부(子婦)로 맞아 들였다(왕하 8:16-18).
=====3:11
요람 -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남편인 요람(Joram)은 부친과는 정반대로 백성들에게우상을 강요하고 악정(惡政)을 펼쳤다(왕하 8:16-24;대하 21:1-20).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저주로 죽었는데 그의 통치 기간은 8년이었다(B.C.853-841).
아하시야 - 그는 사악한 모친 아달랴의 섭정하에서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 관계를맺었으며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였는데곧 재위 1년여만(B.C.841)에 예후의 손에 죽고 말았다(왕하 8:25-29;대하 22:1-9). 한편, 아하시야(Ahaziah) 사후(死後) 모친 아달랴는 유다 왕가(王家)의 씨를 진멸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살아남아 다윗의 왕위(王位)를계승할 수 있었다(대하 22:10-12). 한편 아달랴의 유다 통치 기간은 6년이었다(B.C.841-835).
요아스 - 7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한 요아스(Joash, B.C.835-796)는 제사장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선정을 했으나(대하 24:4-14),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는 다시금우상 숭배를 고집하고 악정을 펴다가 신하들에 의해 죽임 당했다(대하 24:15-27).
=====3:12
아마샤 -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을 통치한 아마샤(Amaziah, B.C.796-767)는 에돔을 정벌하기도 했으나 훗날 교만해져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를 배척했다(왕하 14:1-22;대하 25:1-28).
아사랴 - 그는 일명 웃시야(Uzziah)라고도 불리운다(대하 26:1-23). 웃시야는 왕의공식적 칭호(throne name)이며 아사랴(Azariah)는 사적인 이름이다(Payne, Myers). 그는 아마샤와 같이 통치 초기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후에 교만해져서월권(越權)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다가 문둥병으로 죽었다(왕하 15:5).
요담 -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한 왕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산당들을 제하지 아니한 탓에 당시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분향하며 제사할 수 있었다(왕하 15:32-38;대하 27:1-9).
=====3:13
아하스 - 그는 한 마디로 광적인 우상 숭배자였다. 즉 아하스(Ahaz)는 바알과 몰렉을 숭배하며 자신의 자녀를 불살라 우상에게 바친 자였다(왕하 16:3). 한편 그의 통치기간 동안(B.C.735-716)에 유다는 아람 왕 르신, 이스라엘 왕 베가, 에돔과 블레셋 등의 침공을 받았다(왕하 16:1-20;대하 28:1-27).
히스기야 - B.C. 728년부터 B.C. 687년까지 통치한 히스기야(Hezekiah)의 이름의뜻은 '여호와께서 힘을 주셨다'이다. 그는 우상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 문을 다시여는 등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체계화했고 십일조 제도도 다시 제정하였다. 이외에 정치, 군사 면에서도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여 앗수르의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왕하 18:1-20:21;대하 29:1-32:33).
므낫세 -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Manasseh)는 히스기야 왕과는 정반대로 부친이파괴한 우상을 다시 건축하며 조부(祖父) 아하스 왕과 같이(대하 28:3) 인신(人身) 제사를 행하였다. 그러나 앗수르가 B.C. 650년 경에 유다를 침공하여 므낫세를 포로로잡아갔을 때 그는 여호와의 징계하심을 깨닫고 회개하였다(왕하 21:1-18;대하 33:1--20). 그의 통치 기간은 B.C. 697-642년이다.
=====3:14
아몬 - 므낫세의 아들인 아몬(Amon) 역시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악을 행하였다. 그러나 므낫세는 회개한 반면,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는 데에 차이점이 있다(왕하21:19-26;대하 33:21-25). 아몬의 통치 기간은 2년이었는데(B.C.642-640) 불행히도 그는 자신의 신하에게 살해되었다(왕하 21:23).
요시야 - 8세에 즉위한 요시야(Josiah)는 즉위한 지 12년과 18년에 우상을 제하고예루살렘 성전을 수축하는 등 일대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왕하 22:1-23:30;대하34:1-35:27). 한편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후원해 주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고치시다'는 뜻이다.
=====3:15
요시야의 아들들...살룸이요 -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기록과는 달리 요시야 왕의 네명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요시야 왕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위한 것이아니라 그 아들의 비정상적인 왕위 계승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즉,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느고에게 살해된 후 여호아하스(살룸)가 백성들 앞에서 왕위를 계승했으나(왕하 23:30-32),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여호야김(Jehoiakim)을 왕위에 앉혔던 것이다(왕하 23:34-36). 이와같이 외세(外勢)에 의해 왕이 선택된 이상 유다는 더이상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한편, 요하난(Johanan)은 요시야의 장남이었으나 왕위를계승하지 못하였고 살룸(Shallum)이 계승하였다. 살룸은 여호아하스의 별명으로(렘22:11) 왕적 호칭이다(Payne). 살룸은 여호야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먼저(B.C. 609년) 왕으로 선택되었다가 바로느고에 의해 여호야김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말았다. 또한 그는 시드기야보다는 형이었으나 시드기야 뒤에 소개되었다(24:18;왕하 23:31). 한편 시드기야(Zedekiah)는 훗날 여호야김의 아들, 곧 조카인 여호야긴(Jehoiachin) 다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왕하 24:17).
=====3:16
여고냐 - 여호야김을 이어 왕이 된자로서 다른 이름은 여호야긴이다(왕하 24장;대하 36장). 그는 또한 고니야(Coniah)라고도 불리웠다(렘 22:24, 28;37:1).
그 아들 시드기야요 - 여기서 시드기야는 여고냐(여호야긴)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으나 사실은 여고냐(Jeconiah)의 삼촌이다. 왜냐하면 본 문맥에서 '아들'(* , 벤)은 왕위 계승자의 의미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드기야가 실제로 여고냐의 아들이었다면 그의 이름은 여고냐의 아들을 소개하고 있는 17절 이하에서 소개되었을 것이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따라서 시드기야는 여고냐에 이어 왕이 된 여고냐의 삼촌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상과 관련, 10절에서부터 본절에까지 나오는 역대유다 왕들을 간략히 도표화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역대 이 름 재위 기간(B.C) 선악
1 르호보암 930-913 다악
2 아 비 사 913-910 다악
3 아 사 910-869 선
4 여호사밧 817-847 선
5 요 람 853-841 악
6 아하시야 841 악
7 아 달 랴 841-835 최악
8 요 아 스 835-796 다선
9 아 마 샤 796-767 다선
10 아 사 랴 791-739 다선
11 요 담 750-731 다선
12 아 하 스 735-716 최악
13 히스기야 728-687 최선
14 므 낫 세 697-642 최악
15 아 몬 642-640 최악
16 요 시 야 640-609 최선
17 살 롬 609 악
18 여호야김 609-598 악
19 여호야긴 598 악
20 시드기야 597-586 악
=====3:17
본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다윗 왕가의 순수한 혈통을 이어 받은 자손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렘 22:30)대로 다윗의 왕통을 잇지는 못하였다. 즉 B.C. 538년 유다 공동체의 회복을 바사로부터 보장받았을때에 그들에게 왕위는 허락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의 가계(家系)가 끊임없이 이어짐으로써 메시야의 출현이 점점 임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유다 왕조는 몰락했지만 다윗의 가계를 통해 출현하신 메시야(눅 1:27)로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17:7-14;삼하 7:8-16)은 완성된다.
스알디엘 - 눅 3:27에서 스알디엘(Shealtiel)은 네리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네리(Neril)는 솔로몬의 형제 나단의 후손이다. 그러나 B.C. 597년 바벨론 의 제 2차 유다 침입시(왕하 24:8-16) 네리가 포로로 잡혀간 직후에 스알디엘은 여고냐의 양자가된 것 같다(Payne).
=====3:18
세낫살 - '세낫살'(* )이란 이름의 뜻은 '신이여 아버지를 지켜 주소서'이다. 그런데 혹자는 세낫살을 스 1:8에 나오는 '세스바살'(* )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Payne). 그는 B.C. 538-537년 바벨론 포로의 귀환 때에 유다의 총독(목백)이었다. 만일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스바살은 그와 마찬가지로 바벧론 포로에서 돌아와 유다 총독이 된 스룹바벧(19절;스 2:2)의 숙부(叔父)가 된다.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을 동일한 인물로 보면서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바벨론식 이름이라고 설명한다(Josephus). 따라서 위의 양 견해 중 어느쪽견해가 보다 더 타당한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3:19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 - 스룹바벨(Zerubbabel)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유다의 총독이 된 인물이다(스 2:2). 그의 이름은 '바벨의 자손'이란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 스룹바벨은 브다야(Pedaiah)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지만 다른 곳(스 3:2, 8;학1:1, 12;마 1:12;눅 3:27)에서는 모두 브다야의 맏형인 스알디엘(17절)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당시의 수혼(搜婚)의 관습에 의해 생긴 것이다. 즉,다시 말해서 히브리 사회에서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을 경우 그의 대(代)를 이어줄 책임이 그의 형제에게 있었던 것이다(신 25:5-10). 이러한 관습에 따라 브다야가 낳은스룹바벨은 자식이 없이 죽은 스알디엘의 법적인 후사가 되었던 것이다(Payne, Lange,Wycliffe Bible Commentary). 한편 '수혼'과 관련해서는 룻 1:6-18 강해, '계대(繼代)결혼의 성경적 의의'를 보다 참조하라.
므술람 - '화목', '친교'라는 뜻이다.
하나냐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다.
슬로밋 - '은혜로이'라는 뜻이다.
=====3:20
하수바 - '숙고'(consideration)라는 뜻이다.
베레갸 -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자'라는 뜻이다.
하사댜 -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다.
유삽헤셋 - '은혜가 회복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스룹바벨의 자녀들의이름들에는 포로 해방을 맞아(대하 36:22, 23;스 1:1-4)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유다 백성들의 기쁨과 소망이 잘 반영되어 있다(Lange).
=====3:21
르바야의 아들...스가냐의 아들들이니 - 여기에 소개된 르바야(Rephaiah), 아르난(Arnan), 오바댜(Obadiah), 스가냐(Shecaniah) 이 네 가정들은 스룹바벨(19절)과 직접적인 혈연 관계가 없는 가정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르바야 앞에는 스룹바벨과의 혈연관계를 보여줄 접속사(* , 와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Vol. III,pp. 82ff). 그러나 이들이 다윗 계열에서 완전히 제외된 가정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왜냐하면 여기에 소개된 스가냐의 자손에 해당하는 핫두스(Hattush, 22절)가 다른 책에 분명히 '다윗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스 8:2). 따라서 이들은 스룹바벨의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의 친척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한편, 이와 달리 혹자(Bertheau)는 이들을 모두 스룹바벨의 직계 후손으로 보고 이에근거 본서의 저작 연대를 B.C. 330년대로 주장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Keil,Lange, Payn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왜냐하면 본서의 내적, 외적 증거에의거할 때 본서의 저작 연대는 B.C. 450년경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본서 서론 '3.기록 연대' 참조.
=====3:22
스마야의 아들들은...여섯 사람이요 - 본절에 나오는 스마야(Shemaiah)의 아들들은여섯이 아니라 모두 다섯 명이다. 추측컨대 이는 필사자(筆寫者)의 착오이거나 아니면그의 실수로 한 사람이 누락된 것인 듯하다(Lange, Payne). 한편, 21b-23절에서 소개된 이름들은 모두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3:23
엘료에내 - 그는 스 8:4에서 '엘여호에내'(* )로 소개되었다. 그이름의 뜻은 '내 눈이 여호와를 바라본다'이다.
=====3:24
호다위야 -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엘리아십 -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다'는 뜻이다.
블라야 -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다'는 뜻이다.
요하난 - '여호와께서 은혜로 오셨다'는 뜻이다.
들라야 - '여호와께서 끌어올리셨다'는 뜻이다. 이상과 같이 이들의 이름들에는 바벨론에서 귀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에 관해서는 본장 17-24절 문단 강해를 보다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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