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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절
이 일 후 - 야곱이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요셉에게 사후의 일을 부탁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47:29)를 가리킨다.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 한글 개역 성경 및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비인칭주어'를 사용하여 '어떤 사람'이 야곱의 위독함을 요셉에게 알렸다고 말한다. 당시요셉은 애굽 왕실의 제2인자로서 큰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야곱의 병세가 위독했으므로 특별한 사자(使者)를 아버지 곁에 고정 배치하여 놓았던 것 같다. Rashi같은 학자는 이 사자가 '에브라임'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 야곱이 극도로 쇠약해졌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Living Bible은 '그의 아버지가 급속도로 쇠약해 지고 있다'(His fatherwasfailing rapidly)라고 묘사함으로써 그의 병세가 매우 위급한 지경으로 치닫고있음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 요셉이 두아들을 동행한 이유는할아버지 야곱을 문병케함과 아울러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곧 두아들이 애굽 여인의 소생이었으므로(41:50-52) 언약의 족장인 부친을 통해 그들 역시'이스라엘 가족의 일원'이라는 보증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Aalders).

====48:2절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 병들어 힘은 없었으나 족장으로서 마지막 사명을 수행하려고 힘을 낸 야곱에 대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강조하는 이름인 '이스라엘'이 사용되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병들어 누워 있는 자는 '야곱'이지만 힘을 내어 앉아 있는 자는 '이스라엘'인 것이다.

===48:3절
가나안 땅 루스 - 벧엘의 원래 명칭이다(28:19). 전능한 하나님 - 지금까지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셨다 (28:10-15;35:9-15). 그는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 오랫동안 이방에서 생활할 그의 후손에게도 큰 힘이 되어 주실 것을 믿으며 이 말을 하고 있다.

===48:4절
내가 너로...하셨느니라 - 야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약속의 땅 가나안과 후손의 번영에 대한 벧엘 언약(28:12-15;35:9-13)을 요셉에게 계승시켜 주기 위한 회고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표론적으로 땅과 후손은 그리스도의 통치권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이다<막 1장, 하나님 나라>.

====48:5절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 Living Bible은 이를 '나는 그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은 나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아마요셉은 애굽인의 피가 섞인 두 아들이 야곱 가계(家系)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있을런지 심히 우려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내 것이라'는 말로써 이러한의구심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즉 야곱은 그들의 출생 상태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적 견지에서 그들을 이스라엘 가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훗날 가나안 땅의 분할시에도 이스라엘 지파의 일원으로 인정되어 땅을 분할 받을 수 있었다(민 1:1-16; 신 34:2).

====48:6절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 요셉에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외에도 다른 아들들이 있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그들은 두 형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이스라엘 내에서 각각의 독립된 지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두 형의 지파 속에 포함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훗날 제시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족보에는 요셉의 다른 아들들의 후손들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민 26:28-37; 대상 7:14-29).

====48:7절
라헬이 나를 따른 노중 - 야곱이 왜 이 부분에서 라헬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였는지는 정확한 동기를 밝히기 힘들다. 그런데 TEV는 '너의 어머니 라헬로 인하여내가 이와 같이 하였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라헬의 죽음과 요셉의 두 아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간의 인과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즉 라헬은 야곱의 가장 사랑 받는 아내였고 그를 따라 메소포타미아로 부터 가나안으로 오는 도중 곧 야곱이 겪는 어려움에 동참하는 도중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소생인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다는 것이다. 격한곳(* , 키베라트 에레츠) - '조금 떨어진 곳'이란 뜻이다.풀핏 주석은 이 거리가 말이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당도할 수 있는 거리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35:16).

===48:8절
이들은 누구냐 - 노환으로 시력이 어두운 야곱은 이제서야 자신이 요셉과 단둘이 있지 않음을 감지한 것 같다(10절).

===48:9절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 단순히 '내 아들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여기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들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에 유의해야 한다. 즉 요셉은 자신이 종노릇했던 애굽 땅에서도 자기를 지켜 주셨으며, 자식을 선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 않은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 여기서 야곱이 하려는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에의해 시행된 제사장적 권위를 가진 축복이다<47:7>. 특히 야곱은 자신이 아버지이삭으로부터 받았던 축복을 그의 후손에게 전승시키고 있는 것이다(27:27).

===48:10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 이삭도 야곱에게 축복하기전에 아들의 입을맞추었다(27:26, 27). 이것은 단순한 부성애(父性愛)의 표현 이상의 뜻이 있다. 즉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내포된 것이다(삼상10:1)===48:11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 야곱은 한 때 요셉을 잃은 슬픔으로 인하여 괴로워하였다(37:33-35). 즉 그는 요셉을 다시 못 볼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예기치 않은 기회를 맞아 성공한 요셉과 대면하게 되었을(45:27, 28;46:29, 30)뿐만 아니라 요셉의 아들들까지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야곱은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며 이 모든 일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48:12절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 이 말이 요셉의 두 아들이 야곱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음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20대의 두 젊은이가 연로한 조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사이에서'로 번역된 '메임'(* )은 '곁에'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요셉이두 아들을 야곱의 무릎 곁에서 물리게 한 것은 엎드려 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48:13절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 신구약 성경에서 오른쪽 또는 오른손은 특별한 의미를 상징하며(욥 40:14; 시 45:4; 눅 6:6; 행 3:7), 또한 축복받은 자들의 공동체가 위치한 방향을 의미하기도 하였다(출 29:20; 겔 21:22; 마 25:33;27:29; 계 1:16,17).그밖에도 오른손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출 15:6-12; 신 33:2; 시17:7;18:35; 89:13; 139:10)및 창조의 권능을 표현하는 데도 사용되었다(사 48:13). 요셉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와 같이 큰 의미를 지니는 오른손의 축복을 장자인 므낫세에게 돌리려는 생각을 가졌다. 이것은 당시 유대의 풍습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장자에게 많은 특권을 부여하며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장자는 자기 동생들에 대한 감독 권리와 아버지 뒤를 이어 가장(家長)으로 축복받는특권(27:1-4, 35-37)및 다른 자손들보다 기업 상속을 두 배나 더 받는 권리를 가졌다(신 21:17). 요셉은 이러한 유대의 전통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상식적인 요셉의 판단과는 달랐다(19절).

====48:14절
이스라엘이...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 안수(* )가 축복을 위하여 시행된최초의 경우이다. 본래 안수란 자신의 가진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데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러한 안수는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초자연적인 은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는 상징적 행위로 자주 시행되었다(48:13; 민 27:18; 신 34:9). 또한 직분자를 세울 때에도 안수를 하였는데이는 안수하는 자가 지닌 권위나 능력 등을 안수 받는 자에게 전가하여 그로 하여금사역을 감당케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행 6:6;8:17; 딤전 4:14; 딤후 1:6). 이외에도 안수는 여러가지 목적에서 시행되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출 29장, '안수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번역상의 이견이 있다. 한글개역 성경은 70인역과 벌게이트역 같이 '팔을 어긋맞겨 얹었다'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NTV, RSV도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여 '그의 팔을 교차하였다'로 번역하였다.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이 구절을 다르게 번역한다. KJV, ModernLanguage Bible 및 TEV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KJV는 '그의 손을 의도적으로 펼쳤다'(guidinghis hands witting)라고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칼빈(Calvin), 카일(Keil), 칼리쉬(Kalisch), 그리고 머피(Murphy)등 많은 주석가들의 동조를 받고있다. 이와같은 번역상의 난제는 히브리어 '사칼'(* )이 '교차하다'라는 뜻과'신중하게 얹다'라는 2중적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의미를 종합하여의도적으로 신중하게 팔을 교차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48:15절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 야곱은 요셉을 축복함에 있어서 특히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다. 따라서 이 하나님이 장차 그들의 후손인 요셉과 그 아들들을 보호하시며 그를 통하여 언약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야곱은 믿은 것이다.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 야곱은 하나님을 그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죽기 직전인 당시의 그 시점까지 자신을 보호하고 양육했던 목자로서의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사실은 그가 축복하는 요셉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리라는 보증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부른 첫 구절로 볼 수도 있다(시 23:1;28:29).

====48:16절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사자 - 야곱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에서를 피하여(27:42-44) 하란으로 갔으나 거기서도 라반 밑에서 20년간 고생스러운생활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라반으로부터 도망하여(31장) 가나안으로 왔으나 그의딸 디나가 히위 족속에게 강간당한 사건으로 대살륙에 휘말려 들었다(34:2). 또한그는 아들로부터 속임을 당하였고, 요셉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을 겼었다(37:33).그 후에도 흉년으로 인하여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순간 순간 하나님이 건져 주시는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할 수있었다. 특히 여기서 처음 사용된 '건지다'에 해당하는 '고엘'(* )은 다양한 용법을 지닌 말이다. 이 단어는 '속죄하다', '성별하다'는 뜻을 지니며 특별히 인간을속죄하는 하나님의 사역과 더불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포로된 상태에서 석방되는 이스라엘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출 6:6; 사 43:1). 이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바로뒤에 나오는 '사자'라는 말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에대하여 많은 주석가들이 동조하고 있다(Aalders, Delizsch, Lange, Pulpit). 즉 '사자'에 해당하는 '말라크'(* )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할 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32:23-29) 곧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번식되게(* , 다가) - '물고기'를 뜻하는 '다그'에서 파생된 말로 떼지은 바다의 물고기처럼 큰 무리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48:17절
기뻐 아니하여(* , 예라 베에나우). 직역하면 '그것은 그의 목전에 악하였다'이다. 자기 아버지보다 영적 지각이 약했던 요셉은 장자권이 당연히 장남에게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따라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오른손을 얹는 야곱의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48:19절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 '허락지 아니하여'에 해당하는 '우람'(* )은강한 거부의 뜻을 갖고 있다. 즉 이는 단호히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야곱은육체적으로 쇠약하였지만 영적으로는 밝히 깨어 있었으므로 이와 같이 강한 거부의말을 할 수 있었다. 즉 그는 평소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있었던 것이다. 나도 안다 - 단순히 인간적인 지혜로 깨닫는 것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인 지각력으로 깨달음을 뜻한다. 인간적인 생각으론 장자가 축복의 계승자가 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생각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섭리보다 우선될 수 없다. 성경에는 장자가 아닐지라도 축복의 계승자가 된 실례가 많다. 이스마엘보다 이삭이, 에서보다 야곱이 축복의 우선권 혹은 선택을 받았던것이다(롬 9:10-23). 그 아우가...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 모세 시대의 첫번째 인구 조사에서 에브라임 지파는 40,500명의 남자를 가진 반면, 므낫세 지파는 32,200명을 가졌다. 두번째인구 조사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32,500명, 므낫세 지파가 52,700명으로 나타났다(민 1:33-35;26:28-37). 그러나 그 후 왕국분열 시대에 이르러 에브라임 지파는다시 북왕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사 7:2; 호4:17;13:1).따라서 야곱의 예언은 역사적으로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48:20절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를 축복하기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번영을 예로 들어 축복의 말을 교환하리라는 예언이다. 이는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축복받은 자에 대한 실례가 될 정도로 큰 축복을 받을 것임을 시사해 준다. 한편 오늘날 이 말은 그대로 히브리 사회에서 '축복'을 표현할 때 피차 사용하는 격언이 되었다.

====48:21절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 야곱은 가나안 땅의 회복에 대한 언약(28:15)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는 전능한 하나님을 믿으므로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신앙을 가졌다. 야곱은 특히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상을 강조하였다. 천지를 창조한 전능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고 힘이 되신다는 사상은 이방 땅에서 고난을 당하게 될 그의 후손에게 큰 힘이 될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확인한 하나님의 언약을 그이 후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46:3, 4).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후손들을 교육하고 있다.

===48:22절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마치 과거 사실인 양 표현하고 있는 귀절이다. 훗날 가나안 땅 분배시, 이스라엘 12지파가 기업을 차지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기 한 지파로 인정되어 기업을 차지하였다(신 3:13; 수 13:29-33;16:1-17:18). 따라서 요셉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의 형제들보다 두 배의 몫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내 칼과 활로...빼앗은 것이니라 - 이 역시 장차 이루어질 가나안 정복의 사업을 마치 자기의 손으로 이미 행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여기서 '내가'라는 말은 그의 후손을 자신과 동일시해서 묘사한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아모리' 족속이란 말도 가나안을 먼저 차지하고 있는 모든 민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본절은 이스라엘의 후예들이 이들 족속과 교전하여 가나안 땅을 확보하리라는 예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를 찾아 주는 작업이기도 한 창세기 역사 기술은 이제 거의 그 끝을 맺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족장사(族長史)에서 그 기원을 가진다. 야곱을 정점으로 이스라엘은 큰 족속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는데, 본장은
특별히 야곱 가문에 들어오게 된 요셉의 두 아들에 관한 상속권 인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1-7절은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이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전수해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8-22절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함으로써 그들 역시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 삼는 부분이다.
 야곱은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행한 아들임을 알고 있었으며, 열조(列祖)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26:4;28:14,15)이 그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야곱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왔음을 알고 두 아들과 함께 찾아온 요셉에게 이스라엘의 장래를 부탁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요셉은 진정 하나님의 사역(事役)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섬겼던 봉사자로서, 그는 몇몇 백년이 흘러야 오실 구세주를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을 믿음으로 인도한 영적 지도자였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의 신앙 자세를 본받은 이스라엘 후손들만이 당신의 전적인 은총을 받을 적격자로 알아 신앙의 계승자로 삼은 것이다.
 아뭏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축복하기에 앞서 요셉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여 축복을 베풀었다. 그리고 이제 야곱 개인의 족장사는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이러한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계속 계승되게 되었다.

   1. 언약을 전수하는 야곱(48:1-7)
 본문은 전장에서부터 죽음을 예견해 온 야곱(47:29)이 이제 임종을 앞두고 가나안 땅과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46:3,4)을 요셉에게 전수시켜 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중 1,2절은 야곱의 위독 소식을 들은 요셉이 두 아들과 함께 야곱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3,4절은 야곱이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이를 전수해 주는 장면이다. 이어 5,6절은 요셉이 그의 두 아들을 통하여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기업을 얻게 되리라는 축복이며, 마지막으로 7절은 야곱이 죽기전에 자신의 아내이자 요셉의 어미인 라헬을 추억하는 장면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야곱의 전생애를 돌이켜볼 때, 그는 인간적으로는 흠이 많은 자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야곱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비열한 인간 술수를 보면서, 비난받아야 할 대표적 인물로 선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비록 간교하고 그의 시대와 그의 주변 상황이 그를 기회주의자로 만들만큼 험악했다 하더라도, 그의 내면에 깃든 여호와 신앙의 확신마저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만큼 현실과 신앙의 괴리(乖離)를 겪던 야곱의 아픔은 얼마나 컸었겠는가? 이러한 가운데 천사와 씨름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그토록 간구한 신앙 자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32:22-32). 이처럼 야곱은 생의 괴로움을 이겨 나갈 때마다 함께 동행하시며 넉넉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그가 체험한 신앙이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이 후손에게 남겨주는 말은 죽음 앞에서나 진실해지려는 감정에 치우친 증언이 결코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셨다는 일생의 체험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후손에게 들려 줄 보배로운 여호와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이것이 바로 야곱을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으로, 믿음의 선조로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 인생의 전환점에 대한 기억. 야곱의 인생 속에 뚜렷이 자리잡은 두 가지 사건을 꼽는다면, 그것은 곧 불안 가운데 떨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벧엘(루스)의 꿈 사건과(3절) 또 하나는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죽음이다(7절). 그의 인생은 이 두 사건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임종전 야곱은 이 두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믿음이 부족한 술수가였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벧엘의 체험은 그의 일생에 큰 획을 그어 주는 긍정적 요소였다. 또한 가족을 떠나 홀로 떠돌던 자에게 사랑하는 여인 라헬의 위안은 그에게 푸근한 인생을 느끼게 해준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한 여인의 사랑, 이 두 사랑은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또한 야곱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은 한 여인에 대한 지나친 애욕(愛慾)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 선조가 될 야곱이 한 여인에 대하여 고정된 시각을 지니므로 말미암아, 자칫 잘못하면 전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형성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사적 관점에서 볼 때 라헬에 대한 야곱의 유별난 사랑은 제거되었어야 마땅했었다. 그런대도 라헬의 사망은 야곱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열두 아들에 대한 야곱의 사랑이 어느 정도나마 공평해질 수 있었고, 야곱을 통한 언약의 성취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벧엘 체험이 야곱에게는 있었기에 라헬 사후에도 야곱은 그의 나머지 인생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생 중에 닥치게 되는 최고의 기쁨과 최악의 슬픔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고의 기쁨이 최악의 슬픔을 감싸 줄 수 없는 미약한 것이라면, 그의 인생은 좌절과 낙담에 빠지는 실패한 인생으로 전락되기 쉽다. 그러나 야곱의 경우처럼, 최악의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신앙'뿐이다. 실로 체험을 통해 얻어진 신앙만이 모든 인생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되는 것이다. 후일 우리도 인생을 추억할 때 반드시 이러한 신앙의 체험이 깃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2.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한 야곱의 축복(48:8-22)
 본문은 야곱의 손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당당하게 야곱의 아들들과 동등한 반열에 올라서게 된 과정을 보여 주는 단락이다. 그중 8-11절은 야곱이 요셉과 함께 자기를 방문한 두 손자를 보고서는 기쁨에 젖는 부분이다. 그리고 12-16절은 야곱이 두 손자를 축복하되 차자 에브라임을 장자 므낫세보다 더 높이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17-22절은 요셉의 불만족스러움이 있었기는 하나,이로써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기존 야곱의 열두명의 아들이 그대로 야곱의 상속권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후일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지고 요셉의 두 아들이 합류하게 됨으로써 그 모양을 달리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즉 요셉의 큰 역할 분담에 따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축복이 임한 것이다. 그 후 이 두 아들의 후손들은 큰 지파를 이루어 이스라엘 민족의 기둥이 되었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놀라운 축복으로 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본래 역사의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한 백성이 아니었다(갈 4:8;엡 2:3).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거하는 자면 누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변화받았다. 이처럼 성경은 이방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를 알려 준다.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이끌고 나가 축복받게 하시고 영적 이스라엘 백성 삼으신 예수의 크신 은총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히 12:2;13:12).

 * 야곱의 선택과 하나님의 언약. 요셉은 야곱의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두 아들들을 그 앞에 앉혔는데 장자 므낫세는 오른쪽에, 차자 에브라임은 왼쪽에 자리잡도록 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오른쪽'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오른손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며(출 15:6,12;신 33:2;시 118:15,16;행 3:7), 오른쪽은 귀한 자들이 차지하는 자리(왕상 2:19;마 25:33)였다. 따라서 요셉은 히브리 전통에 따라 장자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이끌었다. 야곱은 시력이 극히 약하여 두 손자를 구분할 수 없었기에, 요셉의 소원대로라면 그대로의 위치에 축복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X(엑스)자형으로 어긋맞겨 축복을 내렸다. 장자인 므낫세가 큰 축복을 받기 원하는 요셉의 기대와는 달리 야곱은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를 영안(靈眼)으로 밝히 보고 차자 에브라임에게 더 큰 축복을 기원한 것이다.
 이처럼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차자 선택의 상족(즉, 가인 대신 아벧, 에서 대신 야곱)은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거(依據)할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롬 9:10-33). 나아가 인간의 합리적 생각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현재의 나를 왜, 어떻게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속자로 선정하셨는가를 도저히 알 수 없다. 시공간적(時空間的)으로 전혀 관계없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 나에게까지 전파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 은총을 찬양할 따름이다.이다. 다윗도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하였다(왕상 1:47-48).).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를 찾아 주는 작업이기도 한 창세기 역사 기술은 이제 거의 그 끝을 맺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족장사(族長史)에서 그 기원을 가진다. 야곱을 정점으로 이스라엘은 큰 족속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는데, 본장은
특별히 야곱 가문에 들어오게 된 요셉의 두 아들에 관한 상속권 인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1-7절은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이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전수해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8-22절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함으로써 그들 역시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 삼는 부분이다.
 야곱은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행한 아들임을 알고 있었으며, 열조(列祖)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26:4;28:14,15)이 그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야곱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왔음을 알고 두 아들과 함께 찾아온 요셉에게 이스라엘의 장래를 부탁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요셉은 진정 하나님의 사역(事役)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섬겼던 봉사자로서, 그는 몇몇 백년이 흘러야 오실 구세주를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을 믿음으로 인도한 영적 지도자였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의 신앙 자세를 본받은 이스라엘 후손들만이 당신의 전적인 은총을 받을 적격자로 알아 신앙의 계승자로 삼은 것이다.
 아뭏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축복하기에 앞서 요셉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여 축복을 베풀었다. 그리고 이제 야곱 개인의 족장사는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이러한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계속 계승되게 되었다.

   1. 언약을 전수하는 야곱(48:1-7)
 본문은 전장에서부터 죽음을 예견해 온 야곱(47:29)이 이제 임종을 앞두고 가나안 땅과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46:3,4)을 요셉에게 전수시켜 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중 1,2절은 야곱의 위독 소식을 들은 요셉이 두 아들과 함께 야곱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3,4절은 야곱이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이를 전수해 주는 장면이다. 이어 5,6절은 요셉이 그의 두 아들을 통하여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기업을 얻게 되리라는 축복이며, 마지막으로 7절은 야곱이 죽기전에 자신의 아내이자 요셉의 어미인 라헬을 추억하는 장면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야곱의 전생애를 돌이켜볼 때, 그는 인간적으로는 흠이 많은 자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야곱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비열한 인간 술수를 보면서, 비난받아야 할 대표적 인물로 선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비록 간교하고 그의 시대와 그의 주변 상황이 그를 기회주의자로 만들만큼 험악했다 하더라도, 그의 내면에 깃든 여호와 신앙의 확신마저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만큼 현실과 신앙의 괴리(乖離)를 겪던 야곱의 아픔은 얼마나 컸었겠는가? 이러한 가운데 천사와 씨름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그토록 간구한 신앙 자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32:22-32). 이처럼 야곱은 생의 괴로움을 이겨 나갈 때마다 함께 동행하시며 넉넉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그가 체험한 신앙이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이 후손에게 남겨주는 말은 죽음 앞에서나 진실해지려는 감정에 치우친 증언이 결코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셨다는 일생의 체험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후손에게 들려 줄 보배로운 여호와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이것이 바로 야곱을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으로, 믿음의 선조로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 인생의 전환점에 대한 기억. 야곱의 인생 속에 뚜렷이 자리잡은 두 가지 사건을 꼽는다면, 그것은 곧 불안 가운데 떨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벧엘(루스)의 꿈 사건과(3절) 또 하나는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죽음이다(7절). 그의 인생은 이 두 사건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임종전 야곱은 이 두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믿음이 부족한 술수가였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벧엘의 체험은 그의 일생에 큰 획을 그어 주는 긍정적 요소였다. 또한 가족을 떠나 홀로 떠돌던 자에게 사랑하는 여인 라헬의 위안은 그에게 푸근한 인생을 느끼게 해준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한 여인의 사랑, 이 두 사랑은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또한 야곱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은 한 여인에 대한 지나친 애욕(愛慾)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 선조가 될 야곱이 한 여인에 대하여 고정된 시각을 지니므로 말미암아, 자칫 잘못하면 전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형성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사적 관점에서 볼 때 라헬에 대한 야곱의 유별난 사랑은 제거되었어야 마땅했었다. 그런대도 라헬의 사망은 야곱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열두 아들에 대한 야곱의 사랑이 어느 정도나마 공평해질 수 있었고, 야곱을 통한 언약의 성취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벧엘 체험이 야곱에게는 있었기에 라헬 사후에도 야곱은 그의 나머지 인생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생 중에 닥치게 되는 최고의 기쁨과 최악의 슬픔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고의 기쁨이 최악의 슬픔을 감싸 줄 수 없는 미약한 것이라면, 그의 인생은 좌절과 낙담에 빠지는 실패한 인생으로 전락되기 쉽다. 그러나 야곱의 경우처럼, 최악의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신앙'뿐이다. 실로 체험을 통해 얻어진 신앙만이 모든 인생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되는 것이다. 후일 우리도 인생을 추억할 때 반드시 이러한 신앙의 체험이 깃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2.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한 야곱의 축복(48:8-22)
 본문은 야곱의 손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당당하게 야곱의 아들들과 동등한 반열에 올라서게 된 과정을 보여 주는 단락이다. 그중 8-11절은 야곱이 요셉과 함께 자기를 방문한 두 손자를 보고서는 기쁨에 젖는 부분이다. 그리고 12-16절은 야곱이 두 손자를 축복하되 차자 에브라임을 장자 므낫세보다 더 높이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17-22절은 요셉의 불만족스러움이 있었기는 하나,이로써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기존 야곱의 열두명의 아들이 그대로 야곱의 상속권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후일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지고 요셉의 두 아들이 합류하게 됨으로써 그 모양을 달리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즉 요셉의 큰 역할 분담에 따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축복이 임한 것이다. 그 후 이 두 아들의 후손들은 큰 지파를 이루어 이스라엘 민족의 기둥이 되었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놀라운 축복으로 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본래 역사의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한 백성이 아니었다(갈 4:8;엡 2:3).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거하는 자면 누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변화받았다. 이처럼 성경은 이방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를 알려 준다.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이끌고 나가 축복받게 하시고 영적 이스라엘 백성 삼으신 예수의 크신 은총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히 12:2;13:12).

 * 야곱의 선택과 하나님의 언약. 요셉은 야곱의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두 아들들을 그 앞에 앉혔는데 장자 므낫세는 오른쪽에, 차자 에브라임은 왼쪽에 자리잡도록 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오른쪽'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오른손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며(출 15:6,12;신 33:2;시 118:15,16;행 3:7), 오른쪽은 귀한 자들이 차지하는 자리(왕상 2:19;마 25:33)였다. 따라서 요셉은 히브리 전통에 따라 장자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이끌었다. 야곱은 시력이 극히 약하여 두 손자를 구분할 수 없었기에, 요셉의 소원대로라면 그대로의 위치에 축복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X(엑스)자형으로 어긋맞겨 축복을 내렸다. 장자인 므낫세가 큰 축복을 받기 원하는 요셉의 기대와는 달리 야곱은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를 영안(靈眼)으로 밝히 보고 차자 에브라임에게 더 큰 축복을 기원한 것이다.
 이처럼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차자 선택의 상족(즉, 가인 대신 아벧, 에서 대신 야곱)은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거(依據)할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롬 9:10-33). 나아가 인간의 합리적 생각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현재의 나를 왜, 어떻게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속자로 선정하셨는가를 도저히 알 수 없다. 시공간적(時空間的)으로 전혀 관계없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 나에게까지 전파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 은총을 찬양할 따름이다.이다. 다윗도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하였다(왕상 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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