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3:1
바다 - 이것은 세계 각국을 총칭(總稱)하는 상징이다.
짐승 - 계 11:7 해석 참조. "짐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해석이 구구하다. (1) 촬스(Charles)는 이것을 로마 제국이라고 하였으나, 우리 본문은 그것이 전 인류에게 주권(主權)을 가질 자로 말한다. (2) 어떤 학자들(Elliott, Barnes, Guinness)은, 이것이 로마 교회의 상징이라 하나, 자연스럽지 않은 의견이다. (3) 즈안(Zahn)은 이것이 이 세상 말기에 나타날 개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단 7 장에 나타난 네 짐승은 개인이 아니고 국가를 가리켰다. (4) 또 다른 학자들(Alford, Benson, Moris, Auberlen)은, 이것이 역사상 언제나 어디서나 교회를 박해하는 세속적 세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여기서 그저 막연하게 일반적으로 세속적 세력을 의미한 것 같지 않고, 특정(特定)의 기독교 박해를 내어다 보면서 말한 것 같다. (5) 가장이연(犁然)해 보이는 해석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다. 여기 묘사된 "짐승"은, 다니엘서 7 장에 기록된 "네 짐승"의 혼합체(混合體)로서 이 세상 말기(末期)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왕국의 결정이다.
왜 이 괴이(怪異)한 적그리스도 왕국을 짐승으로 상징하는가? 그 이유는, 이 괴이한 왕국이, 짐승처럼 무지하게 인류를 착취하며 세계를 황폐(荒廢)하게 만들겠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 7:3, 8:3에도 묘사되어 있다. 이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이 아래해석을 참조하여라.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 이 짐승과 및 그 열 뿔, 일곱 머리에 대하여는 17:9-13이 해설했다. 그 말씀 가운데,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요한의 시대)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17:8)라고 했는데, 여기 전에 있었다 함은, 안티오코 에피파네(Antiochus Epiphanes)란 인물에게 예표되어 나타났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가 멸망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크레다너스는 해석한다. 그리고 거기 또 말하기를, "열 뿔은 열 왕이니"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요한의 시대) 다른 이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했다(17:9, 10). 그러면, 요한의 시대에 벌써 지나간 다섯 왕국은, 혹설에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라고 한다. 그리고 시방(요한의 시대)있는 것은 로마요 장차 와서 잠깐 동안만 있을 왕국은 로마 이후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이 일곱이 다지나가고 최종(最終)으로 나타날 것은 제 8왕국이다. 그것이, 바로 본장 상반부(上半部)에 묘사된 짐승 곧, 대 적그리스도(大敵基督)이다. 혹설에 그 "다섯"은 요한의 시대 이전에 있은 로마의 5대 정체(五大政體)는 이 세상 국가에 대하여 쓰는 만수(滿數)이다. 이 문구는, 이 큰 적그리스도 나라의 권세가 극도에 달할 것을 가리킨다.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참람"한 주장을 가리킨 말이다.
계 13:2
표범과 비슷하고 - 이것은 얼룩진 것이니(렘 13:23) 무섭게 보임이고, "곰의 발" - 은 무지하게 덮치는 것이며, "사자의 입" - 은 잔인하게 또는 힘차게 삼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종합(綜合)은, 단 7:3-8에 있는 네 짐승의 종합으로서 최후 적그리스도의맹수성(猛獸性)을 역설(力說)한다.
계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 이 "상"했던 머리는 어느 나라인지 모르나, 제 7 왕국(17:10)인 듯하다. 그리고 이 "주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라는 것은, 그 나라가 망할 번하다가 재흥한 것을 이름이다. 그런데, 최후의 적그리스도 나라는, 제 7 왕국이(17:10) 망했다가 재흥(再興)한 것 곧, 제 8 왕국이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 이것은 그것이 망할 번했다가 재흥함에 대한 기이감(奇異感)을 이름이다. 그것이 죽어 가다가(아주 죽은 것이아님) 나아 다시 일어난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위대한 사실에 대한 거짓 모방이다. 과연 이 최종의 적그리스도 나라는 사단으로 말마암아 보냄을 받은 자니, 그것은 죄악이 화육(化肉)한 것 같은 극히 가증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도성인신(道成人身)하사,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되신 사실에 대한 정반대적 대조(對照)이다.
계 13:4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 이 말씀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전쟁에 의하여 권세를 얻는다.
계 13:5
큰 말과 참람된 말 - 단 7:8, 20, 11:36; 살후 2:4 참조. 이것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참람(僭濫)한 태도를 가리킨다. 마흔 두 달 - 이것은 단 9:27에 있는 후반부(後半部)를 가리킨다. 단 9:24-27의 뜻을 참조하여라. 거기 았는 대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장래에 대한 것이다. 어떤 해석가들은 그 귀절들(단 9:24-27)을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설명하였으니 곧, (1) 69주일(7주일과 62주일)은, 고레스왕이 성전 재건이라고 발령(發令)한 해부터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신 때에 이르는 기간이라 하고, 계산은 하루를 한 허의 비유로 알고 푼다. (2) 그리고 7주일과 62주일 후 곧, 69주일 후에는 유대인의 왕통이 끊어져 이방인의 때가 이른다는 의미에서, 본문에 말하기를,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26절)라고 하였다 하고, 이 아무도 없다는 시기에 이방 교회의 왕성시대 곧, 신약 시대의 전폭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여기에 신약 시대의 전폭을 삽입(揷入)시키지 않는다. (3) 또 그리고 마지막 1주간은 "왕(적그리스도)"이 이르러서 모든 악행을 하게 되는데, 계시록 13장은, 그 후반부(3年半)에 적그리스도가 연출할 최악의 사행(事行)을 가리킨다고 한다(단 7:25, 9:27). 그러나 칼빈(Calvin)은, 그 1주간을 가리켜 신약 시대의 전폭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여기 1주일은 영적 의미의 시일이다.
계 13:6
하늘에 거하는 자 - 이는 교회를 의미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멸시하며 교회를 핍박한다.
계 13:7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 11:710 해석 참조.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됨"은, (1) 어린 양 예수님께서 그 녹명(錄名)된 자를 피로 사서 소유로 만드셨다는 의미이고, (2) 예수님께서 그를 지켜 보관하신다는 의미도 된다. 이 녹명이 "창세(創世) 이후"로 되어 있다 함은 무슨 뜻인가? 여기 "창세 이후"란 말은, 헬라 원어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라고 하는데,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부터"라는 뜻이다. 이것은, 택한 백성의 이름이 그 때부터 비로서 오르기 시작 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에(영원 전에) 벌써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세상의 기초를 놓는 때부터 변함 없이 그대로 내려온 것을 가리킨다. 벧전 1:20; 엡 1:4 에는 역시 같은 뜻있는 말이, "창세 전에"(* )라고 씌었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도 이와 같이 해석하였다(Dan wordt gezegd, dat dit boek reeds geschreven was, toen de wereld geschapen werd, dus reeds van eeuwigheid de namen van's Heeren gekochten bevat.-Openbaring, p. 274).
최후 적그리스도의 핍박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錄名)된 자만이 이긴다. 생명책에 녹명된 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택한 백성은, (1)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기도록 도와주시므로 이기고, (2) 그들이 자신의 택함 받은 줄을 알기 때문에 이길만한 든든한 마음을 가지므로 이긴다. 물론 이 든든한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다. 택함 받은 줄 아는자는, * 신인 관계(神人關係)의 따뜻한 성격을 알게 됨. * 용기와 안전 의식(意識)을 가짐. *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하며 자기의 교만을 버린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헬라 원어 대로 자역(字譯)하면, "그를(짐승을) 경배하리라"고 한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여기 "그(* )"라는 말이 목적격 대명사(目的格代名詞)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경배 행위는 단순한 외형으로만의 배례(拜禮)가 아니고, 그 대상을 신(神)으로 여기는 종교적 경배(敬拜)를 의미한다고 하였다(Vele handschriften hebben den datief maar de accusatief zal hier wel oorspronkeijk zijn, en aangeven, dat niet enkel een lichamelijk neerknielen * den antlchrist gemeend wordt, maar een vereeren van hem met Goddelijke aanbidding.-Openbaring, p. 273). 사람이 우상을 신(神)으로 알지 않고 절해도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헬라어 문법에 있어서 일반적 배례(종교적이 아닌 배례) 관계로 절한다는 동사(動詞)를 받는 대명사(혹은 명사)는 여격(與格=Dative)을 가진다.
계 13:9
2:11 해석 참조.
계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성도가 적그리스도로 더불어 폭력전(暴力戰)의 승리를 바라지 못하여도 염려할 것은 없고, 하나님을 신앙할 뿐이다. 그 이유는, 사로잡는 자(적그리스도) 자신이 마침내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울 것이기 때문이다. 계 19:20, 21; 마 26:52 참조.
11-17 - 이 귀절들은, 적그리스도 앞에서 활동하는 거짓 선지자의 종교 운동에 대하여 말한다.
계 13:11
땅에서 올라오니 - "땅"은, 여기서 하늘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죄악 세계를 상징하나니, 이 짐승은, 거기서 나서 사람을 그리로 유인하는 거짓 선지자의 상징이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 이것은 어린 양 예수를 간교히 모방하여서 사람을 속이려는 것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는 법이다(마 7:15). 용처럼 말하더라 - "용"은 사단을 상징한다. 거짓 선지자가 전하는 말은 언제나 사단의 말이다.
계 13:12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 땅에 오신 것처럼,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의 파견을 받아 그 권세를 대신 행한다. 이것은, 사단, 첫째 짐승, 둘째 짐승의 일체적(一體的) 행동에 속한 것으로서 또 다시 하나님의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마귀의 거짓 모방이다. 마귀는 언제나 모방 전술을 쓴다. 마귀는, 사람들 앞에 사이비(似而非)한 것을 내어 놓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르는데만 전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계 13:13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 여기 "사람들 앞에"서란 엇구로써 거짓 선지자의 이적의 성격을 알 수 있으니 곧,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의 눈에 보기에만 이적 같게 나타내는, 거짓 이적이다(살후 2:9).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옴"은 글자 대로의 의미로 보아도 가하지만, 상징적으로 모든 기괴(奇怪)하고 사이비한 큰 능력들을 기리킨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엘리야를 모방함이다(왕상 18:38; 왕하 1:10). 살후 2:9-12 참조.
계 13:14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 1절 해석 참조.
계 13:15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 이것도 진정한 이적이 아니고, 사단의 사술(邪術)로 나오는 거짓 이적을 이름이다. 위의 13절 해석 참조. 혹설에, 여기 "우상에게 생기를" 준다는 말은 곧, 생존(生存)한 우상(인간을 우상화함)을 세움에 대하여 가리킨다고 한다. 세상의 종말에는 인간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의 과학 만능주의(科學萬能主義)는, 곧, 인간의 두뇌(頭腦)를 우상화(偶像化)한 그릇된 사상이다. 옛날 근동 지방에 잡종교들이 요술법에 의하여 우상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Charles). 장래에도 이와 유사한 속이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계 13:16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오른 손"은 일하는 손이고 또 교제하는 손이니, 거기 "표(증명서)"가 필요하게 된 것은, 그 국가가 사람의 모든 활동을 적그리스도의 주의(主義) 아래 통제(統制)하였다는 의미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무슨 사업이나 활동이든지 이 통제의 허가 증표(許可證標)를 가지고서야 하게 된다. "이마"는 사람의 신분(身分)을 상징한다. 그 때에는 적그리스도의 통제법에 부합하는 인격이 아닌 자는, 생존권과 인권을 상실한다.
계 13:17
그 이름의 수라 - 이것은 그 때 적그리스도의 성명 문자(姓名文字)들을 숫자로 푼 수치(數値)란 의미이다. 고대 히브리 풍속과 헬라 풍속에는 그 방언(邦言)의 문자(文字)로 수치를 표시하는 일이 있었다.
계 13:18
그 수는 사람의 수 - 이것은, 천계(天)의 계숫법(計數法) 대로 계산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계산법(計算法) 대로 센 것이라는 의미이다. 육백 육십 육 - 이 숫자를 문자로 환원(還元)시켜 적그리스도의 이름을 알아 보려는 학설은 다음과 같다. (1) 흑이 말하기를, 이것이 헬라어 음 대로의 라타이노스(* - =30, =1, =300, =5, =10, = 50, = 70, =200)이니 만큼, 적그리스도는 로마라 하고, (2) 흑이 또 말하기를, 이것은, 네로 황제란 말을 히브리 어로 전서(轉書)한 것 곧, 네론 카살(* =666)이라 하고, (3)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여기 "육"이란 수를 가리켜 제 7일(안식일) 전(창 2:3)의 피조물 곧,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받기 전의 세계(世界) 곧,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666 곧, 6수의 삼중복(三重複)은, 이 세상 국가 발전(國家發展)의 극단(極端)이라고 하였다(Daarom stelt 666, met zijn drie zessen, de volheid der gansche wereld, in hare hoogste ontwikkeling, volledige samenwerking, uiterste krachtnspanning, voor.-Openbaring, p. 285). 이것은 한 재미로운 해석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짐승"을 로마 교회로 보았고, 바빙크(Bavinck)는 이것을 죄악의 세력으로 보았다(Gereformeerde Dogmatiek, vol. IV.p. 446). 우리는 성경 본문에 의지하여, 이것이 세상의 종말기에 접근하여 일어날 적그리스도 나라를 가리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즈안(Zahn)과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는, 이것을 어떤 개인이라고 생각했으니 일고(一考)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