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이 1: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 여기 진리 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 곧, 복음이니만큼 그것을 받는 자들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영접함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실 때에도 이런 의미의 말씀을 주셨다. 요8:31-36참조. 이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어서(계14:6), 택함 받은 자의 심령에 한 번 들어오기만 하면 영원토록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그 동일한 복음을 믿는 다른 사람을 귀히 여기고 또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1) 혈통적 인연에 끌린 사랑이 아니고, 영적 인연에 끌린 까닭이고, (2) 더우기 그에게(신자에게)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적어도 그의 심령 속에서는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를 계속하시기 때문이다(엡4:3).
요이 1: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 여기 아버지의 예수 그리스도란 문구는 예수 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이시고 또 그리스도 이신 사실을 강조한다. 헬라 원문에는 아들 이란 말 위에 그 라는 관사(* )가 있어서 독일무이하신 아들이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문구는 예수님의 신성을 밝히 표현하였으니, 이는 그때에 있었던 이단(하나님이 인간 성품을 취하실 수 없다는 노시스 이단)을 인식하고 경계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7절 참조. 은혜 는 신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호의요, 긍휼 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심정이고, 평강은 위의 은혜 와 긍휼 에 의하여 성립된 신인 화목의 평안을 가리킨다. 진리와 사랑은 본서의 두가지 근본 요소인데, 최고의 지식(복음)과 및 그 지식의 행동적 표형(사랑)을 말한다. 위의 복(은혜,긍휼,평강)은 이 두가지를 겸비한 생활(복음 진리를 믿고 하나님과 그 자녀를 사랑하는 생활)의 권내에만 있다.
요이 1: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 여기 너의 자녀 (* )란 문구는 교회의 일반 신자들을 의미하고, 어떤 개인의 육적 자녀를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이 사도 요한의 어투이다. 요일2:12참조. 이것을 보아도 본서가 개인을 산대한 것이 아니고 교회에 보낸 공적 서한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께 받은 계명 예수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순종했으니만큼, 거기에 따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의 요구도 받았다(요일2:7-8).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 ). 이 말씀은 내가 알게 되어 심히 기뻐하였다 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헬라어대로 이것은 과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곧 사도는 신고들이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된 진리의 복음을 믿고, 또 그대로 행함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생긴 것은 그들에게 대한 사도 요한의 방문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전한 소식에 의한 것이다. 요삼1:3 참조. 전도자의 최대의 기쁨은 그에게서 복음을 받은 자들의 신앙 생활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볼때에 생가는 것이다. 바울의 기쁨도 그런 것이었다(빌2:16-17).
요이 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 부녀 란 말에 대하여는 1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이 말이 여기서 개인을 가리키지 않고 교회 를 의미한 좋은 증거가 본절에도 나와 있다. 그것은 본 절의 화제가 계명 이라는 사실이다. 요한이 그의 첫 서신에서도 역시 이 화재를 가지고 교회 상대로 논한 바있다(요2:7-9,3:11,4:7) 오직 처음부커 우리가 가진 것이라 믿는 형제들이 서로 사랑 하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아니할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믿는 시초부터 영원히 변치 아니할 진리이다.그러므로 그들이 믿는 시초부터 그것에 대한 계명을 받은대로 지금도 지켜야 된다. 요일2:7-8참조. 사랑은 불변의 진리이니만큼 그것을 지키는 자도 실패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고전13:8-13참조. 현재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의 철학 교수인 유재신 박사가 일찌기 18세 때에 공산당에 의해 사형 언도를 형장으로 끌려가던 중 그를 감시하던 군인이 어떤 상처로 인해 쓰려졌다. 이 때에 그는 그 군인을 업고 6킬로미터를 걸어서 병원으로 갔다. 그 때에 그 군인은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처음 배웠다고 하면서 그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 후 남한으로 넘어와서 도미하여 목사와 대학 교수가 되었다(그의 간증에 의함 1985.8.4).
요이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행하는 것이요.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믿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은 신수의 계명들을 지킨는 행위이다. 여기 나온 그 계명 ( )이란 것은 그 계명들 이라고 개역함이 옳은데, 그것은 계명을 각개의 조문으로 본 말이다.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계명 이란 말(* )이 단수명사인데, 이것은 모든 계명들의 정신을 단일시 하여 말한 것인바 , 그것은 사랑이다. 이 사랑 에 대하여는 그들이 복음을 받는 시초부터 행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만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요일 4:3 해석참조. 본절은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을 부인하는 노시스이단을 경계함이다. 육체로 임하심 이 문구의 헬라 원어(* )에 임한다 는 말이 현재분사(* )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사건이 왜 사도 요한의 입장에서 현재 사건으로 관설되었을까? 그에게는 그것이 과거사가 아니었겠는가? 바이스의 이론은, 여기 그리스도의 화육이란 것이 무시간성으 지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크레다너스는 이 현재분사가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초림만 아니고, 육신으로 다시 오실 그의 재림까지 포함하여 말한다고 한다.즉, 그리스도의 화육(요1:14;요일2:22,4:2)을 부이하는 자는 결국 그의 육신 재림도 부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노시스 이단은 신자의 몸에만 죄가 있고 속사람은 죄가 없다고 하며, 속사람이 몸을 떠날 때에는 몸은 땅에서 멸망하고 만다고 한다. 그러니만큼 그리스도께서 초림시에 화육 하실 필요도 없고 재림시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요이 1: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 너희를 삼가 란 것은 너희 자신(* )을 삼가라 란 뜻이다. 이것은 복음을 전한 사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그들은 이단을 삼가 멀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면, 그 복음이 약속한 모든 상급을 받을 것이다.
요이 1: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 지내쳐 란 말(* )지도자로 앞서가는 것을 의미하는 데, 여기서는 자칭 지도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훈보다 자기들이 더 앞선 듯이 생각한 자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화육을 부인하는 영지의 거짓 스승들이었다. 그리스도 교훈 이란 말씀이란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시고 또 그 사도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구원의 진리를 말한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 한다 함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사귀어 동거하는 생활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요일2:23)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여기 교훈 안에 란 말(* )은 직역하면 그 교훈 안에 라고 한다. 이것은 위에 나온 그리스도 교훈 을 가리킨다.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그리스도의 계명(혹은 교훈)을 지키는 자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모시는 자가 아버지 하나님도 모신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늘 고조하는 사상이다. 요일2:23-24,4:8-12참조.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요이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이 교훈 이란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교훈을 가리킨다. 7절 해석 첨조. 빈디쉬는 이 점에 대하여, 요한이 형제 사랑은 알았으나 원수 사랑은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본절의 참 뜻을 모른 오착이다. 크레다너스에 의하면 본절의 뜻은, (1) 개인의 원수에 대한 냉대를 지시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는 하나님의 원수와 불타협을 훈시함이며, (2) 이단자에게라도 그들의 요구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는 정도는 용납하나, 그를 스승으로 받는 의미의 인사는 일체 금함이다(같은 책p573).
요이 1: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아간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 거짓 스승을 교회에 영접해 들이는 의미에서 안사하는 것은 그의 그릇된 교훈과 타협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의 악에 참예한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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