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5:1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 "때"(* )는 시간 자
체를 의미하고, "시기"(* )는 기회의 성격을 띠는 시기를 가르킨다. 이 두
가지 명칭은 주님의 재림 시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벌써부터
바울의 교훈을 통하여 주님의 재림 시기의 성격은 알고 있었다. 곧, 그 시기가 꼭 어
느 날인지는 알기 어려우니만큼, 그것이 다음 절의 말씀과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도적 같이"이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그 문제에 대하여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살전 5:2
주의 말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 "주의 날"은
'주님의 재림날'을 가리킨다. 그것이 "도적 같이"이른다고 함은, 그것이 불신자들에게
는 (1) 뜻밖에 온다는 의미인 동시에, (2) 멸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마 24:37;눅
17:28 참조.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그날이 이렇게 뜻밖에 이르지는 않는다(4절). 그들
도 그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그 징조들은 미리부터 알고 있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 불신자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생
각함은 자기들의 심령상 불안은 모르고 하는 말이며,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도
내다보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렘 6:14,8:11). 이것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의 무지 몽
매한 말이며 불신앙으로 나타내는 말이다(마 24:37-39).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은 갑자
기 임한다. 이 문구가 보여주는 비유는 두 가지 요점을 가진다. (1) 불신자들에게 주
님의 재림이 뜻밖에 이른다는 것. (2) 그것이 고통 곧, 환란이라는 것이다.
살전 5:4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 곧, 데살로니가신자들은 어두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의 광명에 속하였다는 말이다. 그들은 복음을 믿는 자로서 (1) 그 심령 속에
벌써 내세의 광명을 어느 정도 받아 가지고(요일 4:12-13,17-18)있으므로 주님의 재림
앞에 깜짝 놀랄 필요는 없다. 그뿐 아니라, (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재림
의 징조들을 미리부터 알고 있으니만큼, 그 날짜는 모를지라도 그 일에 대한 마음 준
비는 할 수 있다.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 "빛"은 진리(眞理), 생명(生命), 의
(義)를 상징한다. "빛의 아들"이란 말은 그리스도께 속하여 진리, 생명, 의를 받아 가
진 신자를 가리킨다. "낮의 아들"도 역시 같은 뜻을 가진다. 호 6:5;롬 13:12-13;엡
5:8,11 참조.
살전 5:6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 자는자는 임박한 위험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처럼 영적으로 자는 자는 현재의 죄악이 인생을 멸망시키는 무서운 것인 줄 모르며,
장래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줄도 모른다. 그는 세상에 취하여 거기서 쉬며
잔다. "깬다"고 함(* )은 영적으로 깸이니, 기도함과(벧 4:7), 하나님
나라의 표준으로 행함(롬 13:11-14)을 의미한다. "근신함"(* )은 취함에 반대
되는 것이니, 이 세상 것들에게 미혹된 일이 없음을 말한다. 눅 21:34-36 참조.
살전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 헬라 원문에서 직역하면, 본
절 첫머리에 "왜냐 하면"이란 말(* )이 있다. 그러므로 7-8절은 앞절의 이유를
보여준다. 앞절에서 말한대로 그들이 깨어 근신할 이유는, 그들은 밤에 속하지 않은
까닭이다. "자는 자들"은(곧, 이 세상)에 속한 고로 잔다. 근신하지 못하고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한다.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 5절 해석 참조.
근신하여 - 6절 해석 참조.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 엡 6:14에는 이 말과 다르게 "의(義)의 흉배를 붙
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종종 기독신자를 군인으로 비유하였다(롬 6:13,13:12;고후
10:4;엡 6:11). "믿음과 사랑"을 우리의 "흉배"로 삼으면, 그것 때문에 악한 사상과
유혹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한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깨달을 것은, 믿음은
우리의 두뇌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심장부에 붙어 있어야 된다는 것이
다. 심장부는 사랑과 정열(情熱)이 움직이는 부분이다. 믿음은 냉정한 이지(理智)의
작용만이 아니고 뜨거운 사랑으로 약동하는 생명이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 "투구"는 원수의 화살을 막아내는 것이니, 기독신자
의 구원 소망의 절대 안전을 비유한다. 이 소망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으니(벧 1:3-5)
아무런 위험도 받지 않는다. 신자는 환난 중에서도 머리를 들고(눅 21:27) 바라보는
구원 소망 때문에 잘 참으며 힘써 싸우게 된다. 그의 "구원의 소망"은 그로 하여금 곤
란 중에서도 견인지구(堅忍持久)하게 해주는 능력이 된다. 그것은 화살을 막아내는 투
구와 같다.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 본절의 헬라 원문은 "왜냐 하면"(*
)이란 말로 시작하여 앞절 끝의 "구원의 소망"의 이유를 보여주며 또 확증한다
(Meyer). "우리를 세우심"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독신자들을 통하여 목적하신
바를 가리킨다. "노하심"은 하나님의 취후 심판의 '진노와 정죄'를 의미한다. "얻게
하심"이란 말(* )은 '소유'를 의미한다. 구원은 영구한 소유로
신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기억할 것은, 이 구원이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므로 절대로 완전하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살전 5:10
본절도 윗절에 이어서 구원 소망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 곧, 그리스도 재림시까지 살아 남아 있든지("깨든지"), 혹은 그 때
에 죽어 있든지("자든지")부활의 복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내세에
들어가 살게)한다는 것이다 .본절 초두에 밝힌 대로 우리의 부활과 영생은 오직 예수
님의 공로(功勞)로만 성립된다.
살전 5:11
위에서 말한 대로 기독신자의 받을 구원이 그렇게 확고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신자
들은 서로끼리 위로하며 도와주라고 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 "권면하라"는 말(*
)은 '위로하라'는 뜻이고, "덕을 세운다"는 말(* )은
'건축함'을 의미한다. 곧, 기독신자들이 서로 도와주어서 교회 전체에 유익을 주는 사
랑의 행위를 가리킨다.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 이 권면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 현재 잘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칭찬과 격려를 겸한 지혜 있고 공평한 권면이다. 선량한 지도자는 그 지도
받는 자들의 잘하는 점을 알아 주며 칭찬한다.
살전 5:12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 "구하노니"란 말(* )은 '간구함' 혹
은 '청구함'을 의미한다. 사도는 여기서 겸손을 나타낸다. 그는 교회가 바로 행하기를
권면함에 있어서 겸손하게 청구하는 태도를 취한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
"수고하고...다스리며...권하는"이 세 가지 직무는 교회의 장로나 감독의 하는 일이
다. 유독히 다스린다는 말에는 "주 안에서"라는 말이 붙어 있다. 그 이유는, 교회를
다스림은 주님의 권위와 말씀을 배경하고 성립되기 때문이다. "권하는 자들"이란 말(*
은 그들의 권위를 승인하고 순종하라는 의미이다.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 교회의 치리자들을 귀히
여길 이유로서, 여기서 그들의 사역을 들어 말한다. 교직자의 목적은 그 자신이 대접
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
타(懶惰)한 교직자는 치리회(治理會) 앞에서 책망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교회는
충성되어 역사하는 자들을 가장 귀히 여겨야 된다.
너희끼리 화목하라 - 이 말은 온 교회가 화목하라는 것이다. 교인들이 그 교회의
치리자들을 순종하면 그 결과로 그들이 단합되며 화목하게 된다. 교회의 분쟁은 흔히
치리권을 존중히 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살전 5:14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 "규모 없는 자"란 말(* )은
군인이 그 행렬에서 이탈하여 자기 자리에 바로 서지 않음에 대하여 쓰는 말이다. 교
회는 이 세상과 싸우는 천국 군대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의 옳은 법을 지키지 않는
신자는 징계를 받아야 한다. 교회는 생명 양식(영생의 양식)의 공급기관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중한 몸이니, 거기에 무질서와 불법이 용납될 수 없다(고전 14:33).본절
에서 지적한 "규모 없는 자들"은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교인들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살후 3:6,11).
"마음이 약한 자"란 말(* )은 '심장이 약한 자'
(fainthearted)를 가리킨다. 그는 핍박에 견디기 어려운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로서 쉬
이 질겁하거나 낙심하는 자이다. 이런 사람도 다른 성도들의 위안을 받으면 고난을 참
아 나아갈 수 있다. 성도들이 서로 위로하며 협력하는 것은 특별히 환난 때에 필요하
다. 그 이유는, 그런 일(위로, 협력)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힘이 없는
자들"이란 말(* )은 직역하면 "약한 자들"이란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진리의 말씀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점에 있어서 신앙 사상에 편견이나 무식의 약
점들이 있다(롬 14:1-2;고전 8:7,11-12).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신자가
교회의 단체 생활을 하는 중에 있어서 오래 참아 견디는 덕이 없으면 화목을 이룰 수
없다(고전 13:4;엡 4:2;골 3:12).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
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할 필요는 여러가지일 것
이다. (1) 누가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자신도 같이 악해지는 까닭이며, (2) 공정하게
악을 징계할 심판장은 하나님뿐이신 까닭이다(롬 12:17,19). "피차 대하든지"란 말은
기독신자가 기독신자에게 대함을 염두에 둔 말이고,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란 말은
기독신자만 아니라 일반 불신자들까지 포함시킨 말이다. "항상 선을 좇으라"는 말은 '
선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함'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경주장에서 달음질하듯이 선을
추구함이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 빌 4:4 참조. 믿음의 수준이 높을수록 영적 기쁨이 풍성해진다.
기독신자는 근심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아야 된다. 그는 그 환난 중에도 내세의 소망
을 내다볼 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의 안에 계셔서 인간의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平康)을 주실 줄 믿어야 한다(빌 4:7).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것은 모든 사무를 중지하고 기도만 하라는 의미는 아니
다. 우리에게 맡겨진 여러가지 책임들도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니만큼 우리가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귀절의 의미는, (1) 규칙적으로 시간을 지켜 기도하라는
것이고, (2) 다른 사무를 보는 중에도 기도하는 정신으로 하라는 것이다. 롬 12:12;엡
6:18;골 4:2 참조.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 기독신자는 자기의 어떤 좋은 조건으로 인하여 감사할 뿐 아니
라, 그의 불행한 듯한 사건으로 임해서도 감사한다. 그 이유는, 그에게 불행한 듯한
사건도 필경은 주 안에서 유익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롬 8:28). 그는 자기뿐 아니라,
남이 잘되는 것도 자기의 감사건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남도 나처럼 하나님의 형상
으로 지음 받은 까닭이며, 남의 잘되는 것을 인하여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까닭이며, 나 자신도 기쁜 까닭이며, 무엇으로 인하여든지 참되이 감사하는 자는 하나
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1) 허욕이 많기 때문임. 인간은 허욕 떠문에 큰 은혜도 작게 보며, 참된 것을
헛것으로 여긴다. (2) 자기의 죄 많음을 모르기 때문임.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대로 갚
으셨다면 벌써 무서운 형벌을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안된 줄을 그는
모른다. (3) 인간의 도적 심리 때문임. 사람들은 남의 도움을 거저 받는 것을 당연하
다고 잘못 생각하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이 말씀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모파트
(Moffat)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만 아니라 그 위에 있는 "항상 기뻐함"과, "쉬지 말
고 기도함"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라고 하였다, 반 류웬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
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를 존중히 해야될 것을 가르친다. 그
러나 성령의 일반적 감동에 관하여 신자들을 주의시킨 내용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성령을 소멸한다고 함은, (1) 남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에 귀히 여기지
않는 것. 인간은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습성 때문에 남들이 받은 성령의 감동
을 가볍게 여기는 죄를 범한다. (2) 자기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지
않는 것. 그가 자기의 받은 성령의 감동에 대하여 무지하여 혹은 태만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경을 많이 앎으로 성령의 감동을 잘 분별하며
민첩하게 순종해야 된다.
살전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 "예언"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뿐 아니라, 기타 하나님의 뜻
에 관한 하나님 말씀의 대언(代言)이다(고전 14:5).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 이 귀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
째 해석은 윗절에 말한 바 "예언을 멸시치"않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한다. 곧,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다는 예언을 신중히 취급하여 잘 시험하여 보고 취할 것은 취함이다.
그러므로 윗절에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한 것은 누가 예언한다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살후 2:2;요일 4:1). 둘째 해석은, 이 귀절을 앞절과 관계 없는
독립적 권면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뜻은 기독신자가 모든 일에 잘 살펴서 선
한 것을 취하여 따르라는 말이다. 그러나 "헤아려"란 말의 헬라 원어는(가 '시험해
보라'는 의미이니만큼 첫째 해석이 옳다. 요일 4:1 참조.
살전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 여기 "모양"이란 말의 헬라 원어(* )는
'종류'를 의미하기도 한다. 반 류웬은 이 해석을 취한다. 그렇다면, 이 귀절의 의미는
그때 사람들이 말한다는 예언을 고사(考査)해 본 결과(21절) 악한 종류는 버리라는 것
이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세계의 종말에 모든
것을 귀정(歸正)시키시고 평화의 질서를 가져오실 이는 하나님 뿐이시다. 기독신자의
구원 완성도 이렇게 최후 평화를 가져오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다. "너희로 온
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란 말의 내용은 그 아래에 해설되어 나타난다. 곧, 기독신자의
"영과 혼과 몸이...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함이다. 본절에 있
는 "영", "혼", "몸", 이 세 가지는 인간의 성립요소가 세 부분으로 되었다
(Trichotomy)는 의미를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이 두 부분(영혼과 몸)으로
되었다고 말한다(마 10:28;고전 2:14-15,15:44,46). 여기 나온 "영"과 "혼"은 영혼의
두 방면을 말함이니, "영"은 종교 윤리적 작용을 맡았고, "혼"(* =영혼이란
뜻)은 일반 지각(知覺)의 작용을 맡은 것이라고 한다. 이 해석은 바울이 2부분설
(dichotomy)을 말하였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의 "영과 혼이...흠
없게 보전"되고 우리의 이 "몸"도 죄로 더럽힘 없이 "보전"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평강의 하나님" 곧, 최후 승리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만 되게
하시는 일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으시며 성령으로 끝까지 거룩
하게 하시는 역사로써 이 일을 이루신다(벧전 1:2;요일 1:7,9).
살전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바울은 앞절의 기원이 헛
되지 않을 줄을 확신한다고 부언한다(Meyer).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으니, 그 일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게 구원 운
동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까닭이다(빌 1:6).
살전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 롬 15:30;엡 6:18;골 4:3;살후 3:1 참조. 이
말씀을 보면 사도나 일반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제사장이다(벧전 2:9). 일반신자들도 사도를 위하여 기도할 영권이 있다. 양자(兩者)는 은사의 차이뿐이다(고전 12:28). 오직 예수님만은 특수 제사장 곧, 중보자이시다(딤전 2:5;히 4:14).
살전 5: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 교인들이(남자는 남자와 더불어, 여자는 여자와 더불어)입맞추는 풍속이 초대교회에 있었다. 바울은 그것이 거룩한 형제애로 실행되기를 부탁한 것이다.
살전 5: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 사도
바울이 주님의 권위에 의지하여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고 한 것을 보니, 이 편지는 일반 통신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고전 14:37 참조.
살전 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사도의 축복은 헛된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유효한 귀한 기원(祇願)이다(마 10:12-13). 고후 13:13에 기록된 축
도는 삼위 일체의 권위로 자세하게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