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골로새서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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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 본절은 앞장 끝에 계속하여 "상전들"

노예들을 취급하는데 관한 도덕적 책임("의와 공평")을 진술한다. "의와 공평"은 도덕

적 총괄적 명사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악행의 실례를 들면, (1)그들에게 필수(必修)

생활비를 적당히 주지 않는 잔인한 행위(5:4), (2) 그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

것 같은 비인도적(非人道的)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이런 죄는 그 때에 위에 있는 자가

아래 있는 자에게 대하여 흔히 범하는 것이었다.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 이 문구는 종의 주인들이 그 노비를

천대하지 말고 의와 공평으로 대우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주인들도 장차 그들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인즉, 어찌 그 노예 취급에 있어서 의와 공

평을 무시할 수 있으라? 12:46-48; 고전 7:22 참조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 18:1;12:12;6:18; 살전5:17;벧전 4:7참조. "항상"

도하라 함은, (1)어떤 특정(特定)의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심령으로 부단히 기

(祈求)하는 동시에, (2)일정한 기간을 내어 그 소원이 간절하기만 하면 이와 같이

힘쓰게 될 것이다. 기도의 주요 목적이 사고(事故)를 만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

구함이라면, 사고가 생긴 그 대에만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주요 목적은 그것

이 아니다. 기도는 영적 생명력을 섭취하는 방편(方便)의 하나로서 잠시라도 정지하면

안되는 것이니, 마치 우리 육신의 호흡을 일시라도 정지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성경 읽는 것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호흡에 비유할 수 있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이 문구는 위에 훈시된 항상 기도함에 관한 두

가지 긴요한 주의건(注意建)을 말한다.

(1)항상 기도을 힘쓰는 자는 간구에만 몰두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기 쉽다. 미래의

축복을 갈망하는 것만이 기도의 목적이 아니고, 과거에 받은 축복을 기억하여 가사하

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때에도 우리는 역시 감사

해야 된다. 아버지의 잠잠하심도 자식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2) 항상 기도함에 있어서의 또 한가지 주의건은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항상 기

도해도 응답이 없을 대에 신자들도 낙심하거나 피곤을 느끼는 시험에 빠질 우려가 있

.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신자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기도자의 유익을

위하여 응답의 시기를 먼 장래의 어느 때로 정하신 까닭이겠고, 혹은 그런 기도의

응답은 그 기도자에게 무익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밖에 다른 선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오묘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혹시 기도 응답을 못받

는 때에도 실망이나 영적 피곤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도리어 전보다 더 하나님의 뜻

에 합당하게 기도하기를 시작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번 더 각성한 태도로 기

도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즉 이상의 논조(論調)로 보아서 항상 감사함으로 각성하는

자라야 기도를 계속 실행할 수 있다.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 사도 바울은 여러번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

고 신자들에게 부탁하였다(15:30; 고후1:11;6:19;살전 5:25;살후3:1-2). 이러므

로 오늘날 신자들이 서로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사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 사도가 그 교회에 자기를 위해 기도하

라고 부탁하는 목적은, 자기의 이 세상 생활의 안락이나 형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은 복음 전파를 위

한 것이다. 여기 "전도할 문"이란 말은 헬라 원어에서 직역하면 한역의 각주와 같이

"말씀의 문"이다. 주석가들 중에서는 이것이 엡 6:19의 의미와 같이 말 할 수 있는

""을 가리킨다다고 하나, 전도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가리킨다는 학설이 더욱 유

력하다(고전 16:9;고후 2:12).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 1:26해석 참조. 사도 바울은 오랫동

안 감취었던("비밀"의 뜻)그 진리 곧, 복음을 참으로 알았다. 몰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진리를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깨달은 그는(1:15-16), 구원을 알지도 못하고 멸

망으로 달음질하는 뭇 영혼들을 불쌍히 여겼다. 이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어지

그 심령에 불타지 않았으랴? 더우기 그는 하나님에게서 모든 사람들을 구언해 내는 복

음 전도의 큰 사명감 밑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할 기회만 찾았다(1:14;고전

9:16).그가 옥중에서도 바라는 것은 어서 석방되어 자유로운 생활을 좀 누려보자는 것

이 아니고, 오직 복음 전도의 기회만을 갈망하고(2:24)있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28:30-31).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음이 달음질하듯이

속히 온 세계에 전파되기를 희망하는 때도 있었다(살후 3:1).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 바울이 로마옥에 갇힌 것은 복음을 위한

것이다.

 

 

 

4: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 이것은 앞절에서 바울이

고로새교회에 부탁한 기도의 결과를 말해준다. 그의 부탁대로 골로새신자들이 그를 위

하여 기도해 준다면 그의 선교는 잘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마땅히 할 말"'복음'

이다. 복음은 바울이 마땅히 말해야만 될 것이다.그 이유는, (1) 하나님께서 바울을

붙잡아 그것을 전파하게 하신 까닭이다(고전 9:16), 28:19-20;5:32참조. (2)

음은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말씀으로서 천상천하에 유일한 진리이므로 이것을 아는

인간은 누구나 그 진리를 전파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복음 이외에 구원의

길이 절대로 없는 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남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비밀"(* )은 역시 복음을 가리킨다(1:26 해석 참조). 그런데 이

복음을 나타내는 방도는 사람의 지혜와 수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의 말과 같이

(고전 2:1-2,4-5)성령의 계시와 능력에 있는 것이다. 11:25 참조. 그러므로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의뢰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의 기도 원조를 요

청한 것이다.

 

 

 

4:5

 

사도는 교회의 할 바 책임으로서 기도를 권장하는 중, 특히 불신자들에게 사도의

전도할 기회가 있기를 기도하라 하고(2-4), 본절과 다음절에서는, 골로새교인들에게

불신자들 앞에서 지혜 있게 행하여 전도에 도움이 있기를 희망한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 여기 "외인"이란 말(* )은 불신

잘들을 가리킨다(고전 5:12-13;살전4:12;딤전 3:7). 신자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5:12-13; 살전 4:12;딤전 3:7). 신자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전 5:12-13;살전

4:12;딤전 3:7). 신자가 불신자들 중에서 가질 행동 원리는 무엇보다 머저 "지혜"

것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에, 성경을 연구하는 정당한 순서를 밟지 않고

먼저 신자들의 행동과 신분(身分)을 살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 행동과 처신에 있

어서 성경 진리(지혜)를 실현해야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그렇게 교훈하시

면서 순결의 덕을 부가하여 훈시하셨으니,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맴이 이리 가운에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

하셨다. 칼빈은 이 점에 있어서 불신자들 중에서 지혜로 행해야 될 이유 세 가지를 제

시하였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신자가 불신자들 앞에서 여간 실수하면, 그것으

로 인하여 그들이 더욱 그리스도의 종교를 멀리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된

. 그러므로 그런 실수는 작은 것 같으나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은 것"(19:14)

마찬가지이다. (2) 그런 실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에 비방을 돌린다. (3) 또 한가

지 유의해야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신자가 불신자들 중애서 조시하지 아니하면 그만

그들과 융화되어 믿음에 손해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Calvin's Commentaries;

Colossians, 1974, Eerdmans, p. 358).

세월을 아끼라 - 이 문구(* )

개역하면, "기회를 사서 가지라"란 말이다. , 빨리 흘러가고 마는 기회를 나 자신이

선한 노력과 희생의 댓가를 냄으로 속구(贖救)하여 내 것을 만들라는 말이다. 신자들

은 불신자를 상대하는 시간을 의미 없이 흘러 보내지 말고 그 시간에 지혜롭게 행하

, 무언 중에라도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매수(買收)해 둔 시

간은 내세에 이르러 영원한 행복을 가져온다(14:13-14,16:9).5:16해석 참조.

 

 

 

4:6

 

본절은 신자가 불신자를 대할 때에 말을 선미(善美)하게 하기 위하여, 우선 교회

안에서부터 신자들끼리 언사를 선미하게 하는 습관을 배양해야 될 것을 말한다.

4:29 참조.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 여기 "은혜 가운데

"란 말(* )"은혜롭게"라고 개역함이 가하니, 신자는 언사를

'친절하게' 혹은 '인자하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소금으로 고루게 함"은 무슨 뜻인

? 이것은 부패하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로서(4:29), 소금을

방부제(防腐劑)로 보는 해석이다(5:13; 9:49-50; 14:34-35).

그리하면 - , 교회 안에서 신자들끼리 언사를 친절하게 하면, 대외적으로도 그렇

게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벧전 3:15을 보면, 기독교에 관한 불신

자의 질문에 대한 신자의 답변 태도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자

기가 하나님 앞에 증인으로서 중대한 위치에 섰다는 것을 의식하는 태도이다. 이런 신

중한 태도가 있는 자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다.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라니 - "두기고"는 소아시아 사람인데 사

도의 조사(助事)로서 많이 수고한 사람이다(20:4;6:21;3:12). 두기고가 골로

새에 가게 된것은, 그가 본 서신을 전달하는 동시에 사도 바울의 정황(情況)을 교회에

보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 여기 "신실한"이란 말은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란 명칭에까지 언급하는 것이다. , 두기고는 "일군"의 자격으로도 신

실하고,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의 자격으로도 신실하다는 의미이다. 신실은 "하나님

의 비밀", 복음을 맡은 사역자의 유일한 자격이다. 그러므로 고전 4:1-2은 말하기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

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신실)이니라"고 하였다. 주님의 일군의 신실

, (1) 복음에 신실함이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加減)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함이고(고후 2:17), (2)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고

(고후 1:18-20), (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다가 고통과 난관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진실이다(6:24).

그런데 여기 "일군"이란 말과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란 말의 분별은 무엇인가?

전자는 특히 교역자의 사역을 염두에 둔 명칭이고, 후자는 그 교역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언급하는 명칭이다. "일군"이란 말(* )은 어원적(語源的)으로

보자면 티끌 가운데로 통과 하는 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음질하는 자를 의미하나

(Trench), 그것은 노역(勞役)의 정황을 묘사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바울이 두기고를

가리켜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종된 자라고 한 것은, 두기고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고 절대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였음을 가리킨다.

 

 

 

4:8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로 보낸 것은 - 여기 "특별히"란 말이 헬라 원문에는 없

는데 한역에는 그것을 보역(補譯)했다.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 이 문구는 어떤 사본들의 사구(砂丘)대로 (*

)보아서는 "나로 너희 사정을 알게 하고"이니, 그것은 시

내산사본(* )의 제 삼 교정본을 위시하여 기타 몇 사본들(C, K, L)의 사구(寫句)

. 그러나 그 보다 권위 있는 사본들(A,B)에 의거한 한역(韓譯)은 이 부분의 문맥에

적합하니, (1)두기고가 골로새에 가는 것이 바울의 사정을 골로새신자들에게 알려주려

는 것이었음은 7절 초두에 밝히 말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2) 9절 하반을 보더라

도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Lightfoot, Van Leeuwen).그리스도의 충

성된 종의 내정과 사생활은 다른 신자들에게 알려질 때에 유익을 끼친다. 그 이유는,

주님의 충성된 종의 이면(裡面)에는, 그 외부에 나타난 것 이상으로 모본할 만한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에 갇힌 생활의 이면은 모든 교회

에 큰 감동과 격려(激勵)를 줄 것이다.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사도의 실정을 알고

자 갈망하던 골로새교회가 두기고에게서 그의 모든 정황을 청취(聽取)할 때에, 큰 위

(신앙을 격려하는 위로이고 단지 근심에서의 안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두기고를 통하여 그들을 위하는 바울의 관심이 얼마나

간절한 것을 알게 되는 까닭이다.

 

 

 

4:9

 

본절을 두기고의 동반자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천거를 포함한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 7절 하반 해석 참조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 그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로마로 도피해 있던 중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고 주님께 돌아온 자이다.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1:10)라고 하였으니, 그를 귀중히 여기

는 바울의 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오네시모"(* )는 헬라어의 뜻으로

'유익한'이란 의미이다. 방울이 이 형제를 사랑하여 빌레몬에게 부탁하면서 그 이

름의 뜻을 음미해 말하기를,"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

므로"(1:11)라고 하였다. 1:10-18 참조.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 , 골로새사람이란 말이다. "저희"는 위의 두 사

,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가리킨다.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 바울과 "함께 갇힌 이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 거주

하던 유대인으로서 (20:4), 바울과 함께 에베소의 소요(騷擾)를 겪은 후(

19:29), 같이 여행하고(20-14), 로마로 잡혀 가는 바울과 동행하는 자로 나타났다

(27:2). 이것을 보면, 그가 바울이 받는 환난에 동참한 때가 적지 않게 있었던 것이

. 평시의 동사(同事)도 막역(莫逆)의 친분을 의미하지만, 난시(亂視)의 동고(同苦)

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바나바의 생질 마가 - "생질"이라는 말은 남동생의 아들, 혹은 여동새의 아들을 가

리키는데, 마가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친 자매였다. "마가""요한"이라고도 하는데

경건한 모친 슬하에서 생장하였고(12:12), 바나바와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행에 수

종들다가(13:5), 중도에 돌아왔으나(13:13), 후년에 베드로의 조사로 근무하기

도 하고(벧전 5:13), 또한 바울의 조사로도 근무하였다(딤후 4:11). 사도행전 (

13:13, 15:37-40)을 보면,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참된 교역자가 그 사역 초두에 혹시

실패할지라도 그것이 그에게 영원히 치료되지 못할 상처가 될 것은 아니다. 바울이 과

거에는 불만족하게 여기던 마가를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그를 추

천한다. 그 이유는, 재 출발한 마가의 신앙생활이 장족 진보하여 성역에 충성하기 때

문이다.

(이 막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여기 ""은 마

가를 특별히 존대하라는 사도 바울의 지령인데, 이 서신을 가지고 골로새로 가는 두기

고와 오네시모 편으로 그 지령이 전달된 듯하다.

 

 

 

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 "유스도"는 로마의 이름으로서 '의인'

(義人)을 의미하는바, 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성경에 두 번 더 나타난다(

1:23,18:7). "유스도 예수"는 히브리 이름 "예수"에다가 "유스도"라는 로마 이름을 덧

붙인 것이다.

저희는 할례당이라 - , 위의 세사람, "라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

"는 모두 다 순 유대인(할례 받은 자)들이란 말이다.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나 - 할례를 자랑하는 유대인

중 대다수는 반기독자(反基督者)들이고,또 그들 중에 약간의 신자들이 있어도 그들은

유대주의 에 강하기 때문에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를 등한히 하였다. 로마의 큰 도성에

유대인들이 많았으나, 복음을 위하여 옥고(獄苦)를 당하는 바울을 동정하는 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위의 세 사람만이 바울을 도와 함께 역사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복음을 반대하고 또 몰이해(沒理解)하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위의 세 사람과 같은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희귀한 일

이었다. 이렇게 희귀한 일은 바울에게 특별한 위로를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막에서

진주를 줍는 것 같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 - "에바브라"는 그리스도 예수께 절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만을 기쁘게 함을 본무(本務)로 하는 (1:10) 충성된 종이다.

그런데 그는 골로새에서 온 사람이다. 1:7 해석 참조.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 에바브라가 골로새교

회를 극히 사랑한 증거는 그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되 "항상"하였고, "애써"한 것으

로 나타났다. 기도할 "항상"한다 함은, 그 기구하는 제목이 일향(一向)떠나지 않고 그

중심에 있어, (1)무언 중에도 기구가 계속될 뿐 아니라, (2) 일정한 규례를 따라 밀실

혹은 집회석에서 기구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애써 기도"한다.함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 기도에 노력함이다. 예수

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그 모범이다. 그의 겟세마네기도를 보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5:7),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도록 애써 간구하셨고(

22:44), 같은 기도를 중복하셨다(26:36-44).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계시하신 모든 교훈이다.

골로새신자들은 그것을 완전히 또는 확신 있게 알아야 견고하게 설 수 있다. "완전"

란 말의 헬라 원어(* )를 직역하면 '성숙'(成熟)을 의미한다. 이 말은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해주신 모든 교훈들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양적으로 또는 질적

으로 성숙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아랫말 "확신"(*

)은 성숙한 지식의 결과일 것이다. 진리 지식이 성숙한 신자는 필연적으로

그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서기를" 이란 말(* )은 견

고히 선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진리를 아는 지식이 성숙한 자는 확신을 소유하게 되

, 확신이 있는 자는 견고히 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확신 있는 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교훈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동요하지도 않는다. 골로새교회는 이단이

유행하는 위기(危機)에 있었으므로(2:4-23), 그 교회의 사역자인 에바브라(1:7)는 으

례 이런 기도를 주님께 드렸을 것이다.

 

 

 

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 2:1 해석 참조,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은 수고하느 것. "히에라볼리"라는 도시는 골

로새의 동편에 있는 곳이다. "많이 수고함"은 에바브라가 그들을 위하요 가지는 영적

노력을 가리킨다.

내가 증거하노라 - 바울은 자기와 동역하는 자들을 높이 추천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었다(1:7;고후 8:16-23; 2:20-22, 25-26).

 

 

 

4: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누가"는 사도 바울에

게 가장 귀한 조사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의 대부분을 동반(同伴)한 자로

, 특히 옥중에서 바울의 임종시(臨終時)까지 시종한 사람이다. 딤후 4:11에는, "

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씌어 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의 특별한 사라을 받는 제자

가 되었던 것과 같이, 누가는 바울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데마"는 누가와 같이 나중까지 바울과 동고(同苦)하지는 못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

여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다(딤후 4:10). 우리가 그를 가리켜 배교한 사람이라고까지

는 하기 어려우나, 그의 신앙이 후년에 이르러 약해졌다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다.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 -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 가까운 곳이니만큼, 두 교회

사이의 우교(友交)는 친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통하여 라오디

게아신자들에게 문안을 보낸다.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 어떤 사본들(A, C, * )에 의하면,

"눔바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다. "눔바"라는 인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수 없다. "그들"은 눔바란 사람의 가족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웨스트코트와 홀트

두 사람은 한역이 취한 사본(B)의 사구(寫句)를 채택하였다. 그러면, 위의 "라오디게

"에 있는 형제들"은 눔바의 집에 모이는 교회와는 다른 교회일 것인가? 이 난제에

관하여 두 학설이 있다. (1) 동일한 교회라는 학설, 양자(兩者)가 실질에 있어서 같은

라오디게아교회를 가리키나니, 전자(前者)는 라오디게아의 신자들을 개별적으로 상대

한 것이고, 후자(後者)는 그들을 하나의 회중으로 상대한 것이라고 한다. (2) 각기 다

른 교회라는 학설. 전자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키고, 후자는 라오디게아 혹은 그

부근에 있는 작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한다.

"집에 있는 교회"는 어떤 신실한 신자의 집을 예배 장소로 정하고 그곳에 모이는

신자들의 단체이다. 12:12; 16:5; 고전 1:19; 1:2 참조. 이런 교회들 사이에

는 경쟁이 없었을 것이며, 신자들은 외부적 시설보다 신앙의 장성을 위주하였을 것이

.

 

 

 

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

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 바울은 본절에서 자기의 서신들을 각 교회가

윤독(輪讀)할 것을 권한다. 이것을 보면, 사도 서신들이 개교회에 국한된 사서(私書)

가 아니고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위하여 정경적 문서(政經的文書)인 것이 분명하

. "이 편지"란 것은 물론 골로새서를 가리킨다.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 이문구에 대하여는 해석이 여러가지 있다. (1) 라오

디게아교회가 바울에게 보냈던 편지라는 학설, 다시 말하면, 바울에게 보낸 라오디게

아교회의 서신을 두기고와 오네시모편으로 골로새교회에 전송(傳送)하면서 부탁한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설인 것 같다. (2) 바울이 라오기게아를 심방하고 거기

서 골로새에 발신(發信)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2:1 참조.

(3) 방울이 옥중에서 라오디엑아교회에 발송한 서신이라는 학설. 그렇다면, 현존의 신

약성경에 "라오디게아서"란 서신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4)에베소서가 바로 라오디게

아서라는 학설. 이추측도 할 만하다. 그 이유는, 첫째, 에베소서는 실로 에베소교회만

상대로 해서 발송된 것이 아니고,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들을 상대로 한 까닭이다.

1:1"에베소에 있는"이란 말은 주요한 고대 사본들(* ,B)에는 없기 때문에, 그 서

신은 어떤 개교회에 지정됨이 없는 윤독 서신(輪讀書信)으로 볼 수 있다. 이 윤독 서

신은 조만간 소아시아 교회들 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교회를 경유해서 골로새교회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윤독 서신을 염두에 두고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한 것 같다. 둘째, 이 윤독 선신(에베소서)이 골로새서

와 동일한 시기에 저작되어 동일한 인편에 송달(送達)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겠

. 세째, 말시온(Marcion)2세기 중엽에 에베소서의 제호(題號)"라오디게아서"

라고 했으니(Tertullian, Against Marcion 5:11,17), 그의 말도 어떤 신임할 만한 고

대의 유전에 의종(依從)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 "아킵보"는 골

로새교회에서 주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1:2 참조. 바울은 여기서 골로

새교회에 아킵보를 결려하라고 부탁한다. 사도가 직접 아킵보를 격려함보다 교회를 통

하여 간접으로 권고하는 것을 보면, 사역자는 교회의 권위 아래 지배를 받는 자이고

교회를 지배하는 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은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감독하시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으로서, '거룩한 직분'이란 뜻이다. 그것을 맡은 자는 자행 자지(自行自止)

할 수 없고 "삼가 이루"어야 한다. 교직자는 그 직무가 인간을 상대한 것이 아니고 하

나님을 상대한 것이니만큼, 성실히 그것을 수행해야 된다. "이루라"는 말은 그 맡은

책임들 중 하나라도 빼놓지 말고 원만하게 실행하라는 말이다(김후 4:5).

 

 

 

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 사도는 앞절까지 대서자(代書者)를 통하여 본서를

쓰다가 끝에 와서는 자필(自筆)로써 기록한다(살후 3:17).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 사도는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중에 수금된 사실

이 골로새신들에게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그가 골로새신자들에게 자기 개인에

대한 도움을 구하는 사욕이 아니다. 그들이 복음을 위하여 갇힌 바울의 고난을 기억함

으로 모든 이단자들을 막을 마음이 강해질 것이다. 복음을 인하여 수난(受難)하는 자

를 기억하는 신자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더욱 충성할 동기를 얻게 된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이렇게 짧은 축도는 딤전6:21;딤후 4:22; 3:15

도 있고, 길게 구비한 축도는 고흐 13:13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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