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 이 말
은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리에게 대하여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에 한번도 그를 본 적이 없는 골로새신자들에게 바울이 그의 사도적 신분을
알리는 말이다. 본서가 개인이 서신이 아니고 사도도 권위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사실이 성립된다. 롬 15:32; 고전 1:1; 고후 1:1,8:5;엡 1:1;딤후 1:1 참조
"사도"(* )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인데 엄밀한 의미로서는
열 두 사도만을 가리키고, 일반적 의미로는 바나바(행 14:14), 에바브로디도(빌 2:25)
도 사도라고 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보고 증거하는 자
인데(행 1:22), 교회의 보통 사역자들과 달라서 교회 설립의 초석이 된 자들이다.(엡
2:20;계12:14). 그가 사도의 반열(班列)에 참예한 사실은 그 자신이 변증한 바이다(고
전 9:1 참조).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
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 "골로새"는 소아시아의
루커스 강(Lucus River)상류에 위치했으며, 산으로 둘리운 도시였다. 후에 지진으로
인하여 그 도시가 크게 무너졌는데(Orosis, Historiae adversum paganos, 7.7.12),지
금은 "골로새"란 이름을 가진 도시가 없다. 이곳에 바울이 친히 선교한 일이 없었으나
에베소나 기타 지방의 신자들이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서게 되었을 것이다.
"성도"란 의미는 '구별해 놓음을 받은 자'니, 곧, '하나님께 속한 자'란 의미이다. 그
뿐 아니라, 성도는 정결하게 생활하여 더럽힘을 받지 않는 자란 뜻도 가지는데, 앞의
것의 원인이다. "신실한 형제"란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
은 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형제들이다. 계
1:9 참조.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란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 대하여 영원한
성자(聖子)이심을 알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함은 오직 예수님
께만 국환되어 있다(고후 1:3, 11:31). 우리 기독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공로에
의지하여 양자가 된 것뿐이다(롬 8:15).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니 만큼 우
리 신자들의 아버지이시라는 것. 우리는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되었으므로 그의 것
은 모두 다 우리의 것이다(고전 3:21-23). (2) 참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라
는 것(Calvin).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가 참 하나님이시다. 마11:27; 요
2\3:33, 14:6; 요일 2:22 참조
골 1:4
본절과 다음절과 바울이 감사하는 (3절) 이유 세 가지(골로세신들의 믿음, 사랑,
소망)에 대하여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 이것은 이지적(理智的)으로 승인하는
정도와는 달라서 내주적 신뢰(內主的信賴)를 가리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아주 들어가 피한 깊은 신앙을 말하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 위에서 말한 내주적 믿음은 사랑을 산출한다.
믿음을 나무의 뿌리에 비유한다면, 사랑은 그 나무이며, 다음 절에 언급된 소망은 그
나무이며, 다음 절에 언급된 소망은 그 나무의 과실과 같다. 믿음,사랑, 소망, 이 셋
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전 13:13).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라 - 이것은 바울의 감사하는 세째 이
유이다. 그것은 하늘에 간직된 "소망"이다. 그것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파상시키거나 없이하지 못한다. 벧전 1:3-4 참조.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 이 문구의 헬라 원문을 개역하
면 다음과 같다. "그것음"이란 것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
(롬 1:2-4)를 전하는 말씀이니, 모든 참된 것 중에도 참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宇宙)와 그의 계시는 구속(球束)운동 그것을 목표하고 모두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우주의 참(眞)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복음
은 우주적 진리이다. 이 진리는 한쪽 구석에만 묻혀 있을 것이 아니고 온 세계에 널리
는 미치는 운동 성격을 가진 것이다.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
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 "열매를 맺어"
란 것은 복음의 능력의 강력한 내적 활동을 가리키고, "자라남"을 그것의 외적 확장을
가리킨다. 이는 복음의 영적 운동을 생명 있는 나무에 비유하는 표현이다. "온 천하에
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복음의 세계적 결실은 일면 그것의 진리 성격을 증명
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때에 복음이 핍박을 받아서 신자들의 수효가 줄고 그들의 보
음적 활동이 외축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핍박을 받을 수록 더 멀리, 더 널리 전파
되어 "온 천하에서"그 열매를 맺고 있다.
골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 이 귀절은, 골로새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소망에
대하여 들은 것과 은혜를 깨달은 것이 에바브라의 전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힌다.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옥중에 있었고(몬 1:23), 그는 옥중에서도 골로새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골 4:12). 은밀한 기도자는 진실한 사랑의 소유자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다.
골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 골로새교인들이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 행한 사랑에 대하여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말한 바 있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동정심의 표현이 아니고 성령님의 초자연적 영향력이므로 그들이 사람을 사랑한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발생한 것이고, 그것은 거짓이 없느 사랑이다. 롬 12:9; 고
후 6:6 참조.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 이는 바울이 에바브라에게서 골로새교회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던 그 날부터라는 의미이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 여기 "기도"한다는 말과
"구"한다는 말은 각각 내용을 달리한다. "기도함"(* )은 기구
(祈求)이외에 송영, 감사, 서원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내용을 말한다. "구함"(*
)은 '기구'의 뜻만을 가진다. 그런데 사도가 골로새사람들을 위하여 기
구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지혜가 충만한 데 이르기를 구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보다 먼저 기구할 만한 중요한 선물은 신령한 지혜 곧, 성령님께서 밝히
비춰주시는 지혜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이다. 구약시대의 성
도들은 이 지혜를 가장 귀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잠언에 말하기를, "여호와를 겨외하
는 것이 지식의 근본"(1:7)이라고 하였고,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3:14)고 하였다. 욥은 말하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욥 28:28)라고 하였다. 성경은 기도자가 무엇보다 먼저 이 지혜를 구해야 할 것
을 강조한다(빌 1:9-10; 약 1-5)
너희로 하여금 모든 성령한 지혜와 총명에 - 여기 "모든 신령한"이란 말은 그 아래
의 "지혜"란 말뿐 아니라, "총명"이란 말까지를 수식(修飾)한다. "모든"은 '각종'(各
種)이란 뜻으로서 "지혜"의 다양성(多樣性)을 의미한다. "신령한"이란 뜻으로서 "지
혜"의 다양성(多樣性)을 의미한다. "신령한"이란 말(* )은 성령적
(聖靈的)이라고 번역됨이 합당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이라면 성령을 받은 참된 시
낮(고전 2:15)이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은 성령적 지혜와 총명, 곧, 성령님으로 말
미암아 생긴 지혜와 총명이다. 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으되(고전 2:10,13-14,16),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할 수 없다(고전 1:22,
2:5-6,13). "지혜와 총명"과의 분별은 다음과 같다. "지혜"(* )는 사물(事
物)의 이치를 살필 때에 그것들의 관계와 목적을 잘 이해하는 통찰력을 가리키고, "총
명"(* )은 단편적 사리를 바로 아는 판별력(判別力)을 가리킨다. 즉,
"지혜"는 일과 물건의 이치와 보편적 원리를 통달하는 것이요, "총명"은 그것들을 개
별적으로 알아 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 "하나님의 뜻"은 10-12절의 설명과 같
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을 말한다(살전 4:3). 신자들의 모든 학문은 오직 하
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찾는 것을 목적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 그들의 생활의 제
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란
말은 일과 물건의 근본까지 관철(貫徹)하는 정확하고도 깊은 지식을 의미하는데, 그런
지식은 실행할 수 있는 동력(動力)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골 1:10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고자 하는(9절) 목적은 그것을 순종하여 행하려는 것이
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 신자들은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의 자격을
나타내어 할지니, 그것은 "주께 합당히 행함"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은 여러
가지 있으니, "성도들의 합당한"(롬 16:2), "부름에 합당하게"(엡 4:1), "복음에 합당
하게"(빌 1:27), "하나님께 합당히"(살전 2:12; 요삼 1:6)등의 말씀이다.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 이 말은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그러면, "범사에 기쁘시게"한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쁘시게" 한다는 말(*
)은 고전적(古典的)헬라 원어에서는 비굴(卑屈)곧, 늘 자기의 의지(意志)는
굽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만 굴종(屈從)하는 습성을 의미한다. 대인(對人)관계에 있
어서는 이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 이유는, (1)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고 아름답
기 때문이요(빌 1:6), (2) 우리는 피조물이고, 또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벧전 2:9).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어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이 문구
는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선한 일에 열매를 맺음." 이것은 알려진 하나님
의 뜻에 대한 순종을 가리킨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범사에(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구체적 방법이 밝혀준다. 실과나무가 실과를 맺으면 과수원 주인이 기뻐함 같이, 하나
님께서는 그의 자녀되는 우리들이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보시면 기뻐하신다(요
15: 8).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남." 이것은 위에서 말한 순종("열매 맺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행함으로 진리를 더 깨닫게 된다(요 7:17). 눅
19:26 참조.
참된 신자에게는 언제나 위의 두 가지가 서로 따른다. 곧, 밖으로는 진리 지식(하
나님을 아는 지식)대로 선한 행위의 과실을 맺음에 따라, 안으로는 그 지식이 더 명
확해짐이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지식(에피그노시스=* )은 반드시
선행을 산출(産出)하고, 그 선행이 실현됨에 따라서 영적 지식은 자라난다. 그것은 마
치 생수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낼수록 더욱 고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
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8)고 하셨고, 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하셨다.
골 1:11
본절은 앞절의 "범사에 기쁘시게"하는 구체적 행동을 또 한 가지 말한다(Meyer,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Colossians, p.266).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
어 고난을 달게 받아 선히 견디어 참는 것이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 여기 "영광"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능력과 은혜
를 가리킨다(요 1:14, 2:11;고후 3:18; 엡1:6,12,17; 골 1:27). 그리고 "그 영광의 힘
을 좇아"한 말은 하나나님이 주시는 그 능력의 양(量)에 비례함을 가리킨다.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시 62:11). 그러므로 우
리는 위에서 주시는 분량대로만 그것을 소유한다.
모든 능력으로 - 우리는 이 부분(9-11)에서 "모든"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본
다."모든 신령한 지혜"(9절), "모든 선한 일"(10절), "모든 능력"(11 절), "모든 견딤
과 오래 참음"(11절)등이다. 우리의 생활은 단순치 않고 언제나 여러가지 형편을 당면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로운 돌보심을 요구한다. 우리에
게 닥쳐오는 곤란들이 여러가지 모양이니 만큼, 우리는 그것들에 대처할 만한 여러가
지 능력들이 필요하다.
능하게 하시며 - 환난 중에서 기뻐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다(고후
8:1-3;살전 1:6). "견딤과 오래 참음"은 의미상으로 서로 다르다. "견딤"(*
)은 사람이 환난 중에서 인내할 뿐 아니라. 소마을 가지고 백절 불굴(白折不屈)
의 지조(志操)로 매진하는 적극적 태도이다. 그리고 "오래 참음"(*
)은 원수를 갚지도 아니하며(잠 25:21-22), 은혜를 배반하는 자에 대하여 끝까지
자비를 베푸는 태도이다(출 34:6; 약 5:7-11).
골 1:12
이 귀절은 위에서 거듭거듭 말해온 기도의 목적이다. 기독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구(祈求)하는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기 위함이다(고후 4:15,
9:11-15). 이것을 보면,기독교가 얼마나 철두철미 하나님 중심한 참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상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 하나나
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업(企業)을 준비하여 두신 일만 생각해도 우리의 감사가 넘치
거든, 하물며 그가 우리에게 그 준비하여 두신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한 자격까지 그비
시켜 주심에 대해서야 말할 것이 무었이랴! 그리스도께서 하늘 위에서는 우리를 위하
여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아래서는 성령으로 우리 자신의 자격을 조성(造成)하시니,
이것은 실로 우리를 위한 이중 축복이다(벧전 1:3-5).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
분"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이 "아버지 나라"에 입참(入參)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거기서 그들이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다(마 13:43).딤전 6:15-16 참조.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이유
는, 위에서 말한 천국 기업의 은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성애(父性愛)에서 주신 것
이고, 우리의 무슨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 1:13
본절은 앞절에서 말한 "성도의 기업"이 어떠한 것인가를 밝히 말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 이것은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내
심을 가리키는바, "흑암"은 비진리, 죄악, 사망을 상징한다. 이 권세는 하나님의 오묘
하신 허용적 예정(許容的豫定)밑에서 잠간 동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마 4:16;
눅 22:53; 행 26:18; 롬 13:11-12;엡2:1-3, 5:8, 6:12).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 여기 "사랑의 아들"이란 말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
라는 말일 수도 있고(마 3:17,12:18,17:5), 혹은 그가 인간을 사랑하시므로 보내신 아
들( 요일 4:8,16)이란 말일 수도 있는데, 라이트푸트는 이 둘째 해석을 지지한다.
옮기셨으니 - 이 말(* )은 한 나라의 정부에서 그 백성을 다른
지방으로 이민(移民)시킴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죄악
과 사망의 세계에서 의(義)와 생명의 세계로 옮겨 놓으신 것이다. 동(東)이 서(西)에
서 먼 것 같이. 우리가 내세(來世)에 있을 곳은 죄악과 사망에서 먼 곳이다.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이 귀절은 그리스도께서 우
리의 구속자이심을 말한다. "구속"이란 말(* )은 '매수(買收)하
여 구출(救出)함'을 의미한다. 남의 종된 자를 자유자(自由者)로 복권(復權)시키려면
그 중인에게 죄의 종된 인간들(요 8:34)을 해방시키기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저희의 죄값을 지불하셨다(마 20:28; 막 10:45;롬 3:24; 엡 1:7; 딤전 2:6 히 9:15;
벧전 1:19). 따라서 그들의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영벌(永罰)에
서 영생(永生)으로 구출되었다.(Warfield, Biblical Doctrines, pp. 370,37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贖)하신 그 값이 얼마나 고가(高價)인 것을 생
각해 볼 때에,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큰 것임을 알수 있다.베드로의 중거에 의하면,
이 속죄는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것"(벧전 1:18-19)이다. 이 속죄의 효과는 "단번에 자기
를"영원사신 제물로 드리신 데서 나는 것(히 7:27)이니, 신자의 구원은 그 만큼 영원
하고 또 안전한 것이다.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구속"으로 말미암아 얻는 사죄(赦罪)는 신자가 받
을 모든 은혜와 복의 기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댓가를 담당하시
기 위해서 못 박혀 죽으셨으므로 우리의 죄는 사해지고 성령님은 갈림하셨다. 사죄된
일이 없었더면 우리의 죄는 사해지고 성령님께서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요 16:8), 행
13:38,26:18참조.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 "하나님"은 인간이 감각(感覺)할 수
없는 영적 존재이시다(요 4:24).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딤전 6:15; 히11:27)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형사"이시다. "형상"이란 말
(* )은 원형(原形)을 대신 나타내는 실살(實像)을 의미한다. 성자(聖子)예수
님께서 성부(聖父)하나님을 그렇게 완전하고 흠없게 나타나셨으니만큼,그리스도 밖에
서 하나님을 알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된 수고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1)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이 감각과 지성(知性)으로 깨달
을 수 없는 까닭이고, (2) 누가 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동질 동체(同質同體)
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가능하시기 때문이다(요 1:14-18). 그러므로
칼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에세서 하나님의 의, 선, 지혜, 권능, 곧, 하나님 전체가
나타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의 다른 데서 하나님을 찾으러 하지 않도록 주의 해야
된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을 묘사(描寫)한 것은 모두 다 우상이다"
라고 하였다(Calvin's Commentaries :Colossians, 1972, p.308).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 여기 "먼저 나신 자"란 말의 헬라원어(*
)는 '장자'(長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가리켜 장자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장자"란 말은 주재자를 가리키는 것인테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였으므
로 만물을 주재자하시는 것만큼(시 89:27),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장자라고 불리운 것
이다. 그가 어떤 의미에서 신 창조(創造) 곧, 인류의 부활을 주재하신다는 의미에서도
"먼저 나신 자"이시다. 계 1:5 참조.
골 1:16
이 귀절은 앞절 끝에 있는 "모든 창조물보다 머저 나신 자"란 이름의 이유를 밝힌
다. 왜 그리스도를 가리쿄 "먼저 나신 자"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천상 천하에 있는
만물을 그가 창조하셨고 또 주재하시는 까닭이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여기 "그에세"란 말(* )의 여자적(如子的)
번역은 "그 안에서 "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만물 창조의 방편이 되시는 정도만이
아니라, 그 창조를 성립시키시는 배경 원인이심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만물 창조
는 그리스도의 초월적 선재(超越的善在)를 배경으로 하고 성립된 것이다.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 이것은 볼 수
있는 물질과 볼 수 없는 영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좌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서 가까이 봉사하는 그룹들(대상 28:18; 시 18:10; 겔 9:3,10:1,11:22)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학설에는, 이것이 천계(天界)에 잇는 24장로들의 보좌들을 가리킨
다고 한다(계 4:4,11:16,19:4).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 이들은 모두 천사들을 가리킨다(엡 6:12; 골
2:15). 천사들은 하나님의 우주 통치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수종들고 있으므로 이런
여러 가지 직명을 가지고 있다. 마18:10; 계16:5 참조. 이 점에 관하여 핫지(Hodge)의
에베소서 주석 1:21에 대한 해석을 참고하라 .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이것은 본졸 초두의 "만물이 그에게(그
안에서) 창조되되"란 말에 대한 해석이다. "그로 말미암고"란 말은 그리스도의 전능하
신 창조 행위로 말미암아 만물 창조가 실현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를 위하여"란 말은
만물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만물은 그들 자체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케
된 것이 아니거,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골 1:17
앞절은 그리스도를 우주 만물의 주재(먼저 나신 자)라고 하기에(15절 해석 참조)합
당한 첫째 이유로서 그의 만물 창조를 들어 말하고, 이 귀절은 그 둘째 이유로서 그의
만물 통일을 말한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 15절 끝의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는
말의 해석을 참조하라. 이 문구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초월적 선재성(超越的先在性)을
의미하는바 그가 만물의 창조하시고 그 만물의 발다, 통일,보존을 섭리하시는 주재자
(主宰者)이심을 가리킨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곧, 그리스도의 선재성이 만물에 미치는 결과를
말한다. 만물이 "함께 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초월적으로 먼저 계셨기 때문에 만
물이 통일되고 또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 1:1-3; 히 1:2-3 참조
골 1:18
15-16절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주재자이심을 말하고,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역시
교회의 머리되심을 말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
인가?
(1) 우리가 우리의 몸을 애호(愛護)하듯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지극히 사랑
하시기 때문이고(엡 5:29),
(2) 진실한 교회의 회원들은 한 몸에 있는 지체(肢體)들이 서로 애호함과 같이 화
합하여 상부상조하기 때문이고(고존 12:26; 엡 4:16,5:30).
(3) 한 사람의 몸은 하나인 것처럼 진정한 교회는 하나요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엡
4:13). 땅 위에서는 기독교회 안에 여러가지 파별(派別)이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있
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다 같이 한몸을 구성(構成)하는 것
임에 틀림이 없다. 한 가정에서 여러 형제들이 동거할 수도 있으나, 분가(分家)함이로
서로 조화(調和)있는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때에 진정한 하나님
의 자녀들끼리의 외형적 분리는 본질적 의미에서 분리가 아니고, 도리어 그것을 통하
여 상호간에 조화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있어서는 일
차(一次)한 신자들이 불행하게도 어떤 지엽적 신조의 차이로 인해 서로 분립(分立)하
는 것은, 결코 교회(그리스도의 몸)의 복수(複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서
로의 알력(軋轢)을 피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4)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동고동락(同苦同樂)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이라
고 하는 것이다.(딤후 2:11-12; 계1-9,3:21).
또한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교회의 머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1)그리스도는
신자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롬 5:15-17). 머리는 우리의 인격을 대표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신다. (2)그리
스도는 우리신자들의 선도자요 또 지휘자이시기 때문이며(히 6:20,12:2), (3)그리스도
는 교회를 받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까닭이다(요 1:16;엡 4:7-8).
그가 근본이요 - 이는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의 "근본"(皮造的原因者곧, 創造者)이심
(계3:14)에 병행하여 역시 신창조물 곧, 교회의 근본이시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아
니면 우주 창조가 성립될 수 없음과 같이, 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교회의 근본이
되시는지 그 이법(理法)을 잘 밝혀준다. "먼저 나신 자"란 말은 '주재자'를 의미하는
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오직 홀로 죽음을 이기셨으며, 사망과
음부의열쇠를 가지시고(계 1:18), 신자들을 죽음에서 해방시켜 부활케 하신다(요
5:28-29; 계20:11-15). 이런 의미에서 그는 부활의 주재자이시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이다. (1)그
가 처음 창조의 근본이 되셨고(15-16). 또 제 2창조(신창조) 곧, 교회의 근본이 되시
기가지 하셨으니, 그의 관할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문맥상 부자연스럽다. (2) 그리스도께서 선봉적(先鋒的)으로 부활하심에 따라
그의 백성을 위한 구속 사업이 이루어져서, 모든 성도들이 마침내 부활하게 되고, 이
사건의 수반 현상(隋伴現象)으로서 모든 피조물들도 함께 주님께 복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전 15:25-28의 내용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 헬라 원문에는 이 귀절 초
두에 "왜냐하면"을 의미하는 말(* )이 있어서, 본절의 앞절 하반의 이유문(理由
文)임을 밝힌다. 무슨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으뜸"이 되셨는가 하면, 성부(聖
父)께서 그리스도 안에 신성(神性)의 총량(總量)이 있도록 하시어 그리스도의 속죄로
천지 만물이 자기와 화목케 됨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충만"이란 것은 성부의
것과 동일한 것이므로 성자를 본 자른 곧 성부를 본것과 같다.(요 14:9). "예수 안에
거하게" 여기 "거한다"는 말(* )은 한때의 우거(寓居)를 의미하느
것이 아니고, 영원히 계심을 의미한다. 이 신성의 충만은 어느 시기부터 시작된 것인
가? 성자께서 이 "충만"을 결여(缺如)하셨던 때가 있었던가? 성자께서는 이 "충만"을
영원적으로 소유하셨으니 만큼,이 충만의 시기적 시작이 있었을 것은 아니가. 그러나
이 규절에 있어서 성자의 화육 시기(化肉時期)를 염두에 둔 바울은, 이 충만의 역사적
경계(歷史的境界)를 생각하는 것 같은 표현을 적용한다. 과연, 그리스도의 인성 편(人
性便)을 염두에 두는 견지에서는 성자의 화육 시기를 바로 그이 신성 충만의 시기로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성자 자신은 언제나 이 충만을 가지고 계시지만, 나사렛
예수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견지에서는 그의 도성 인신(都城人身)이 실현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요 1:14).이 점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말하였다. 곧,그리스
도께 이 충만(절대적 충만)이 있는 것을 보아서 우리가 도 한가지 알것이 있으미, 그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서는 구원의 은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충만"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하는 은혜가 전혀 없다는 말과 같다
(Calvin's Commentaries:Colossians, 1972, p.311).
골 1:20
이 귀절은 그리스도 하여금 만물의 으뜸이 되시게 한(18절 끝) 방도를 말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寶血)의 효능이다. 이 보혈이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
과 화목케 하여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함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신다. 행 5:30,10:39,13:29;갈3:13;벧전 2:24 참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신약 전자(新約著者)들에게 있어서 "저주의 죽음"(신 21:22-23)과 마찬가지의 치
욕적 사형(恥辱的死刑)이었다. 특히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뜻을 밝혔으니,"그리스
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
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고 하였다.
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음이여! 그 피
를 믿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되지 않을 수 없고, 그 피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따를 수 밖에 없다(요 3:36)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 인간은 모드 그리스도 밖에 있는 동안에는 하
나님과 원수된 상태이고(엡 2:16), 또한 하나님의 정죄와 진노 아래(요 3:19-36)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에게는 이 정죄가 말소(抹消)되어(롬 8:1), 그 진노
에서 구원된다(롬 5:9; 엡 2:3-8).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된 관계(롬 5:10)를 화목케
하실 이는 신성(神聖)으로서 인성(人性)을 겸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1)그는
신인 겸전(神人兼全)하셨으므로 신인 양편에 원만한 접촉이 가능하시고, (2)그는 인성
으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값을 담당하시기에 가능하셨다.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가와 화목케 되
기를 기뻐하심이라 - 이 귀절의 뜻을 알기 위하여 먼저 "화목케 한다"는 말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의 헬라 원어 아포카탈락시이(* )의 접두
어(接頭語) 아포(* )는 여기서 '재귀'(再歸)혹은 '복귀'(復歸)의 의미이고, 카탈
락사이(* )는 변환(變換), '화해'(和解)등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
므로 아포와 카탈락사이와의 합성어는 ,'원상'(原狀)으로 회복' 곧, 하나님께서 분정
(分定)하신 위치 혹은 목적에서 이탈되어 있던 것을 다시 원상으로 회복함을 의미한다
(lightfoot). 행 3:19-21 참조.
"화목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고려할 만한 것 몇가지가 있으니,(1) 이
화목의 필요는 하나님께서는 영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아주 내버리셔도 하등의 부
당(不當)하심도 없고 손실도 없으시다. 그러나 인간은 그가 본래 화합하였던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지 못하면, 영원한 사망을 면치 못한다. (2)화목이 하나님께서보다도 사람
에게 긴급히 요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화목"을 성립시키시기 위하여 그 댓가
(그리스도의 보혈)를 지불하시고 솔선적으로 화목을 요청하시는 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
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0,19). 이 화목
을 하나님 편에서 성립시키셨기 때문에 그것은 실현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진다. 인간
은 자의(自意)로 또는 자력(自力)으로 이것을 성립시킬 수 없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
게서 성립시키신 것이기 때문에 참된 화목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화목"의 요청
자,성취자, 실현자이시니 인간은 피동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이 요청에 응할 뿐이다.
고후 5:18-19 참조(Robertson, Word Pictures in New Testamaent, Vol. , p.232).
"땅에 있는것들"은 땅 위의 만물(인간과 기타 생물들과 무생물)을 가리킨다. 인간이
타락함을 따라 땅 위의 만물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함(타락되었던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여 원상에 회복됨)에 다라서 그 만물도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들"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다. 이 점에 대하여 주석가들은 서로 견해를 달
리한다.
(1)이들은 별세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간 신자들을 가리킨다는 학설이 있다.그러난
그것은 본문의 문법상으로 보아 적합한 해석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하늘에
있는 것들"이란 말(* )의 "것들"은 헬라 원어로 중
성복수(中性複數)이기 때문이다(Van Leeuwen). 중성복수는 천계(天界)의 존재 전부(성
도들과 천사들)를 총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들은 천사들을 가리킨다 학설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를 지지하기에는 난제
가 따른다. 천사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교리는 성경에 없다.
천사들 중에 본래 선한 그대로 있는 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순종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새삼스럽게 화목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그들 중에
악한 자들 곧, 영벌을 받기로 되어 있는 자들(마 25:41;벧후 2:4;유1:6)에게는 이런
"화목"의 은혜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이 난해구에 대한 바른 해석은 다음 몇 가지이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천사들도 역시 치조물이나 타락할 만한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義)에 더욱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
다. 이 의미에서 그들 역시 어느 정도 "하나님과 화목"을 필요로한다고 하였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천사들은 성도들을 봉사한는 자들이니(마 18:10;히 1:14),
성도들의 구원 완성을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한다(계 5:12).그러므로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화목은 그 봉사자로 천사들에게도 동일한 의의(意義)를 가진다고 볼 수 있
다. 그러므로 인간의 원상 회복(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함)은, 아래로 땅 위의 만물들과
위로 천상(天上)의 천사들에게까지 연대적(連帶的)효과를 일으킨다(롬 8:19-22;엡
1:7-10)고 한다.
죄가 천사의 타락으로 인하여 기원되고(벧후 2:4;유 1:6), 세상에 들어왔으며
(창 3:6; 롬 5:12;고후 2:11),온 우주는 혼동하여지고, 하나님을 멀리 배반하게 되었
다. 그런대 하나님께서 이 호란해진 우주 만물(인간, 처사, 기타 피조물)을 원상에 회
복시키시는 것은 곧, 천사세계, 인간세계, 물질세계를 정화 (淨化) 정리함이다,
골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 - 이귀절에 있어서 한역
은 원문대로의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헬라 원문을 직역하면, "마음으로 는 악한 행
실로 멀리 떠나 원수되었던 너희"라
고 번역함이 적합하다. 이 번역이 보여준 대로, 인간은 먼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반
역하고(엡 4:18), 또 그 반역 심리는 "악한 행실"로 나타난다. "마음"은 이 반역의 근
거지요, "악한 행실"은 그것의 외부적 표현에 불과하다(Van Leeuwen, Colosse 1:21).
언제나 악한 행실들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마음을 먼저 깨끗이 하고 지키기
전에는 선행을 기대할 구 없다(마 7:16-19,15:19). 그러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고(렘 17:9). "성을 쳐서 빼앗는"것보다 통제(統制)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니 (잠 16:32),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까 아니면 아 악한 마음의 포로(浦
盧)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제 마음을 깨끗케 하거나 지킬 수 없으
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중생(重生)시켜 새 마음을 소유케 하시는 것이다(렘 24:7; 겔
36:26; 요 1:13, 3:3; 롬 7:6 고후 5: 16-17; 벧전 1:3).
"멀리 떠나"란 말은, 엡 2:12의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는 문구의 "밖의 사
람"이란 말과 같은 말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천국의 문외한(門外漢)곧,
천국에 들어갈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된 이유는, 오직
인간 편에서 범죄한 것을 유일의 원인으로 하는 바, 이 "원수"된 형편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은 첫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에(롬 5:12), 아주
부패하여(롬 3:10-18),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다(엡 2:2-3).(2)이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이 세상주의를 가지니,이것
이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약 4:4).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주의할 것은,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努)와 인간의
분노(粉怒)가 서로 다른점이다. 인간의 분노는 주로 사악(師惡)한 성품의 발작일 수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공의(公義)의 나타남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
만 미워하고 그 영혼은 구원하시기 원하신다. 사 59:1-2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
니"라고 하였다. 이 귀절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동시
에,그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고대하시는 그의 사랑도 보여준다.
골 1:23
상반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엣
흔들리지 아나하면 그리하리라 - 이 문구를 개역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터가 있고
견고하고 또 복음의 소망에서 변동하지 아니함으로 믿음에 거하면 그리하리라." 이 번
역은 믿음에 거하는것이 어떠힌 것임을 세 단계로 말하였으니, 하나는 "터"(基地)를
소유함이요, 다음은 "견고히"선는 것이요, 그다음은 "복음의 소망에서 변동하지 아니
함"이다. 이것을 나무에 비하면, 제 1 단은 뿌리요, 제 2 단은 줄기요, 제 3단은 과실
이다. 뿌리가 있기 때문에 과실이 있게 된 것이요. "터"는 그리스도니(고전 3:11), 그
위에 의뢰하기만 하면 반석 위에 선 건물과 같이(마 7:24-25), 든든한 신자가 되는 것
이다. 이런 신자는 보음이 밤히 가르치는 소망의 생활에서 변동하지 않는다. 엡 2:21,
3:7;벧전2:5,5:10 참조.
"그리하리라"라는 말이 헬라 원문에는 없다. 한역은 본절과 앞절과의 연학을 밝히
기 위하여 이 말을 보역(補譯)한 것이다. 골로새신자들이 터 위에 굳게 서서 소망이
흔들리지 않는 다면, 그것은 믿음에 거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기만 하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서게 되리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위한 바울의 노력
하반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 여기 "천하 만민에게"란 말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피조물"이란 말의 범위
는 어디까지 미치는가? 라이트푸트는 그것이 무생물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Colossians, p.101),그러나 스웨터(Swete)는 이 말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
전부(생물, 무생물)를 가킨다고 하였다. 이 학설은, 복음전도의 직접 대상은 인간이지
만, 간접적으로는 그 영향이 인간 이외의 만물에게 미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된다고
한다(The Gospel According to Mark, p.405).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 "일군 "이란 말에 대하여는 17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골 1:24
내가 이제 - 이 말은 바울이 로마옥에 갇힌 그 당시를 가리킨다.고 한다(Eadie).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 바울의 옥고(獄苦)는 골로새인들을 포함
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이니
만큼, 그 수난(受難)을 기쁘게 여길 수 밖에 없었다. 그 기쁨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말해 (1) 그 수난으로 인하여 복음은 매이는 것이 아니고(딤후 2:9), 도리어 그것이
전파되기 때문이며, (2) 그가 내세에 그리스도와 함께영광 얻을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
이다(롬 8:18;딤후 2:11-13; 벧전 4:13-16).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여기 "그
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말의 의미는 이러하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머리와
몸의 관계이니만큼, 일체적 관계이다. 몸이 받은 고통을 머리가 받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교회의 수난은 원리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인 것이다. 마10:39,25:40;요
15:18; 행 9:5 참조.물론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간주될 만한 교회의 수난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에 국한한다(벧전 4:14). 그런데, (1)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된 교회의
수난을 통하여 받으시는 간접적 수난은, 그의 직접 수난 곧, 십자가 위의 수난처럼 대
속적(代贖的)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수난은 교회가 그 목표를 향하여 완
성되어 가는 도중에서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것이고(계1:9),또 통과해야 할 것이
다(행 14:22). 이는 곧, 교회의 성장, 완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몸된 교회"란
말에 대하여는 18절 해석을 참조하라 "채운다"는 말(* )의 의미
는 다음과 같다. 곧,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당하실 고난은 십자가에서 완필되었다. 그
러나 그가 그의 몸된 교회에서 간접적으로 당하실 수난은 아직도 남아 있다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자들을 통하여 당하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천국이 완성되기까지 계속될
일정한 분량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아 있는 수난은 신자들이 충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제정하셨다. 이 해석은 문맥에 적합할 분 아니라 어학상으로나 신학상으로
도 합당하다.
골 1:25
내가 교회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 사도 바울은 귀한 복음(20-30 절에서 보여주는 귀중한 내용
이 있는 복음)의 "일군"이므로(23하반), 그 보음을 위하여 의미에서 수난(受難)을 기
뻐하고, 또 그 수난을 채우는 데 목표를 둔다. 그가 이런 수난을 통하여 복음의 일군
(교회의 일군,25절 초두)으로서 일하게 된 동기는,그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의
소명(召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군"이란 말에 대하여는 17 절 끝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할. "경륜"이란 말의 헬라 원어(* )는 경륜을 의미하는
동시에, '청지기의 직분'을 의미한다(눅 12:42;벧전 4:10). 여기서는 이 말을 "직분"
이라고 함이 합당할 것이다. 청지기의 직분을 받은 자는, 그 주인의 수하(手下)에 있
는 자로서 주인이 그에게 맡긴 대호 일 할 자이다. 기독교의 목사나 감독직이 사도가
아니고 사도의 수종자이지만, 그 직분의 성질도 자격 있게 참되이 감당하는 자들에 한
하여 주님의 수하에서 구원의 은혜를 분배하는 "청지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
맡은 교회에 대하여 주권적 행사를 할 지배자가 안고, 다만 사도적 복음과 성경 말씀
을 분배해 주는 봉사자가 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룬"다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 전도의 사
명을 완수함을 가리킨다. 롬 15:19 참조.
골 1:26
이 비밀은 안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
타났고 - 본절은 복음의 내용을 밝히 설명한다. "비밀"이란 말(* )
은 복음의 은익성(隱匿性)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啓
示)밖에서는 알수 없는 것임을 가리킨다. (1)하나님이 그 독생자를 보내시는 특별한
계사가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누구나 확실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2) 이 특
별한 계시가 있는 신약시대에도 개인에 따라 이 복음을 아는 자가 있고 모르는 자가
있다. 그 이유는, 어떤 자에게는 그 복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려졌고, 어떤 자에게
는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라는 헬라 원문(*
)은 다음과 같이 의역(意譯)함이 좋다. 곧, "만세 전부터
대대토록"이라고, 이것은 창세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의 초림시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구원의 오묘한 경륜(비밀)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아는 자는 (1)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케 되고, (2) 이 복음의 사건 곧, 그
리스도 사건은 마침내 전 세계 내지 전 우주를 새롭게 할 재창조 사건의 의미를 가진
다고 믿는다. 엡 3:9에 말하기를,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고후 5:17; 골
1:19-20;계21:5 참조. (3) 하나님께 무한한 기쁨과 찬송을 드려야 한다. 딤전 1:17 참
조.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곧, 하나님께서 신약시대 전
에는 의식적(儀式的)인 제도나 외부적인 비유로 그의 백성을 지도해 오셨고 복음을 드
러내시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바울의 시대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을 구원
하시는 진리가 광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 의하여 된 것이다.
"그의 성도들"은 신약시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가리킨다는 학설이 있다. 그러나
"성도"란 말로써 사도나 선지자만을 의미한 바울의 어투는 신약 성경에서 찾아복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일반 신자들'을 가리킨다(Van Leeuwen). 어떤 학설에, 이
들은 유대인 기독신자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억해(臆解)이다.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 "비밀"이란 말의 의미에 대하여는 앞
절 초두의 해석을 참조하라. "영광"은 비취는 "빛"을 의미한다(눅2:9; 행 22:11; 고전
15:40 ;고후 3:7). 시은소(施恩所)에 나타났던 쉐키나 빛이 그 선민(選民)을 돌아보시
는 하나님의 현림 표적이었던 것과 같이(사 60:2),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나타나신 사실을 "영광"이라고 하였다(요 1:14, 2:11;롬 9:23; 고후 4:4; 엡
1:18,3:16;골 1:11).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여기 "이 비밀의 영광"이란 말의 의
미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몇가지 학설이 있다. (1)"비밀"은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복음의 그 계시(啓示)되기 이전 형태를 가리키는 바, 그것의 "영광"이란 말은 그것
의 계시를 의미할 것이라는 견해, (2) "이 비밀의 영광"은 복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새
로운 인간 성격의 여광 곧, 복음을 받은 이방인들이 참가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
(롬 8:17)이라고 보는 견해, (3) "이 비밀의 영광"은 복음이 이방세계에 구원을 베풀
게 됨으로 그 자체가 받는 영광이라는 견해이다.이 세가지 해석 중 세째 해석이 타당
하다.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풍성"이란 말에 대하여
는 롬 10:12;엡 3:8을 참조하라. 이 말은 혹 "부요"(富饒)라고 번역할 수 있으미(롬
11:33;계 3:18), 이것은 유대인이 복음을 배척한 후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은혜가 풍성
해진 것을 가리킨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 이 문구의 뜻은
'복음은 곧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우리안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 것은, 내세에 우
리가 영광의 부활을 받을 소망의 증거라는 것이다(롬 8:10-11;고후 3:17-18).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을 각 사람
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바울이 사람들을 권면하며 교훈하는
목적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한 자"(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에 성숙한 자 곧, 신앙에 성숙한 자)가 되어 하나님 앞
에 서게하려 함이다. "각 사람"이란 말이 본절에 세 번이나 있으니 이렇게 그것이 중
복체로 역설된 이유는 무엇인가? (1)어떤 학설에, 그것은 복음의 보편성을 고조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복음은 어떤 인종이나 민족,혹은 어떤 특수 계급의 개인들에게 국한된
축복이 아니고, 모든 인종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각 사람에게
주시는 특전이다. (2) 다른 학자들에 의하면,바울의 전도와 목회 방법은 각 개인을 상
대로 하여 각근한 접촉과 상담에 역점(力點)을 둔다는 것이다. 전도자가 영혼 구원운
동에 있었서 대중 상대로 그들을 지도함은 물론이려니와 각 "개인의 영혼을 위하여 경
성하기를 자기가 회계(會計)할 자인 것 같이"해야 된다(히 13:17; 행 20:20). 이둘째
해석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권하고." 이것은 사람의 의지(意志)의 방향을 전환시키
기 위한 경고와 훈계를 의미하고, "가르침"은 사람에게 지식을 주기 위한 교수(敎授)
를 의미한다. "지혜" 1:9 해석참조. "완전"이란 말(* )은 성년(成年)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데(Plato legg., ,p.629), 이 말은 영적으로도 장성한 신아을
가리킨다. 이것은 결코 절대적 완전 곧, 더 장성할 필요가 없는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
는다 (Trench, New Testament Synonyms, pp. 75-76)."세우려 함."어떤 학설에, 이것은
하나님의 검열과 판정을 받기 위하여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혹은 그리스도)의 소유인 신자들을 그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봉헌
(奉獻)함을 의미한다. 이 봉헌에는 두가지가 있으니, 첫째, 그들이 이 세상에 있을 동
안에 전적으로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여 삶이고(롬 14:7-8),둘째, 주님의 재림 때에는
그들이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됨이다. 눅21:36; 계
19:7,21:2-4 참조.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이를 위하여"란 말은 앞절 끝에서 말한 것과 같이, 성도들을 완성시켜
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려는 목적을 가리킨다. "나도"란 말은"나도 또한"으로 번역함이
가하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역시 그 전도와 함께 많은 수고를 하
는 사실을 가리킨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바울은 자
율적이고 임의적(任意的)인 거짓 교역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의 분
량에 비례하여 피동적으로 사역한 거룩한 사도였다(고후 6:1 상반; 갈1:1). "힘을 다
하여 수고하노라."의 "힘을 다하여"라는 말은 "애써"라고 번역할 수 있는바,경주자가
달음질하는 것같이 애쓰는 정형을 의미한다. 바울이 자기의 성역을 경주에 비유하여
말한 실례는 성경에 또 있다(고전 9:25-26; 빌 2:16). "수고하노라." 이 말은 피곤해
지기까지 노력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경성(警醒)은 과연 극도에 달하
였던 것이다(고전 4:12;고후 11: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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