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 "허물"이란 말의 헬라 원어(* )는 '침법'이라지 뜻을 가진다. 이 말은 하나님의 법을 침법한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죄" 란 말(* )은 '과녁을 맞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죽었다" 함은 영적(靈的)사망을 의미한다. 영적사망이란 것은 영혼이 하나님을 떠났고 또 떠난 상태이다.(Calvin).그것은 영혼이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적 죽음은 허물과 죄의 결과이다.
엡 2:2
그 가운데서 행하여 - 곧, 위에 말한 "허물과 죄" 가운데서 상습적으로 행하고 있음을 말한다. "행하여"란 말(* )은 일시적으로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행함을 의미한다. 웨스트(Wuest)는 그들의 행위는 모두 다 죄라느 의미를 이 말자에서 생각하였다(Ephesian and Colossians in the Gerrk Testament, pp.60-61)
이 세상 풍속을 좇고 - "세상 풍속"은 여기서 이 세상의죄악을 가리킴이고 사회적 풍습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중의 권세 잡은자 - 이것은 공중의 집권자인 사단을 의미한다. "공중"이란 것은 하늘 아래(천국 밖)를 가리킨다. 사단은 본래 선한 천사였으나 범죄 후 하늘에서 그 아래로 쫓겨났다(계 12:7-10). 크리소스톰(Chrysostom)도 여기 공중을 가리켜 '하늘 아래의 처소'라고 하였다. 웨스크는"공중"이란 말이 저공계(低空界)곧, 인간이 살고 있는 경역을 가리킨다. 하였고 반 류엔(Van Leeuwen)도 그렇게 생각하였다(욥 1:7)
불순종의 아들들 -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의 도(道)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엡 2:3
우리도 - 이것은 유대인 신자들 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 신자들도 가리킨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현재 생활 상태에 옛날의 죄악 생활을 대조하여 감사하게 한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 "육체"(* )는 부패한 인간성을 가리킨 것이고 생리적 신체(* )를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의 원하는 것 - 이것은 악한 생각들의 충동을 말한다.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동기를 말해준다. 곧, 그의 구원 행위는 우리에게 대한 그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상으로 진노의 자녀였음에도 불구하고(3절 하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실 사랑을 가지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 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엄위로우신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롬 5:8 참조. 그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기억하신다(합 3:2). 시 136:1-26 참조. 하나님의 사랑이 그때에도(진노 중에도) 숨은 사랑 (마음속의 사랑)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행하신("우리를 사랑하신"이란 말씀의 뜻) 사랑이었다.
엡 2:5,6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이 부분에 구원 운동의 세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렌스키(Lenski)는 이 세 가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신 몸이 무덤 속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받게 되신 결과 그의 몸된 우리 신자들이 중생의 생명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일으키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일어나신 결과 우리 신자들이 죄를 떠나 새 생명으로 행하겨 된 것을 가리킨다고 하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결과 신자들은 현림 천국(참된 교회)에서 은혜 생활을 하게 됨을 가리킨다고 한다(The Interpretation of St. Paul's Epistles to the Galatians, to the Ephesians and to the Philippians, 1961, pp. 415-420).
칼빈(Calvin)은 위의 세가지 사실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실현되었으니만큼 그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과 내세의 영광에 이미 참여한 것과 같이 간주된다는 의미로 말하였다(Calvin's Commentaries, Galatians, Ephesians, 1948, p.225).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여기 "함께 살리셨고"란 동사( )는 영적 중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장래의 몸의 부활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중생케 되었다고 함은 베드로도 가르친 것이다(벧전 1:3). 예수님께서 만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승천하시지 않으셨다면 중생케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지 않았을 터이니(요 16:7), 우리가 어떻게 중생할 수 있었으랴?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 문구는 위에 언급된 중생의 성격을 말한다. 우리가 중생한 것은 (1)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고 우리의 무슨 공로로 된 것이 아니다. (2) 그리고 그것은 '벌써 구원을 얻었음'과 마찬가지의 가치를 가진 것이다. "구원을 얻은"이란 말( )은 현재 완료동사이다. 곧, 그 현재에 벌써 구원 얻은 사실을 보여준다. 요 3:36, 5:24 참조. 함께 일으키사. - 이 말씀은 과거동사로서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와 그 신자의 일체성(一體性)을 의미한다(1:23).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은 개인 행동이 아니고 우리의 머리되신 관계를 가지시고 그리하신 것이다. 머리가 부활했으면 몸도 벌써 부활한 것 같이 확실성을 띤다(시간상 차이는 있지만).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이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승천과 "함께" 우리도 승천하였다는 말인 바 이상스러운 느낌이 있다. 우리는 아직 땅에 있는데 왜 하늘 위에 앉았다고 했는가? 그것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머리와 몸과의 일체성을 근거로 하고 한 말이다.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으니, 우리는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길 수 있다. 위의 세가지 사실은 신자의 법적 위치와 그의 생활 상태에 대하여 변동을 가져왔다. 법적 위치로 말하면, 신자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이 되었으니만큼(그것은 살았다는 것과 같음, 롬 8:10 하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권리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생활 상태로 말하면 그가 현세에서부터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받으며 또 사모하는 마음과 기도로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엡 2:7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 -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시는 이유는, 그가 내세(주님의 재림 후의 來世)에 무궁토록("오는 여러 세대") 우리에게 지극히 큰 은혜를 주시려 함이다. 월프(Wolf)는 "오는 여러 세대"란 말이 바울 시대부터 주님의 재림까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타내려 하심"이란 말( )은 가정 과거시상(假定過去時相)으로 나타내는 단번 행동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강림하셔서 나타내실 천국의 영광은 점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단번에 완성될 것이다.
엡 2:8
이 귀절은 위에 말한 은혜의 지극히 큼에 대하여 논증한다. 우선 그들이 받은 구원도 그 자신들의 행실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하나님의 선물인 신앙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다.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이 말씀은 인간이 구원 받을 방편의 두 가지 요소를 가리킨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주신 것이고, "믿음"은 인간 편에서 가질 태도이다. 그러나 이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사실을 아래 말씀이 밝힌다. 이 점에 있어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란 말은 믿음 그것이 무슨 공로라는 의미가 아닌 사실이다. 믿음은 받는 태도 뿐이고 공로(功勞)나 의(義)가 아니다. 인간이 구원 받는데 있어서 공로나 의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마 5:10-11).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이것"이란 말이 믿음을 가리키지 않고 신자가 받는 구원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Wuest). 이렇게 해석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란 말(* )은 중성 대명사(中性代名詞)인데 어떻게 여성 명사인 "믿음"이란 말을 가리킬 것인가 한다. 그러나 반 류웬(Van
Leeuwen)은 "이것"이란 중성 대명사가 여성 명사나 남성 명사를 가리키는 실례가 고전(古典) 헬라어에 많다고 하면서 이말(* )이 여기서는 "믿음"을 가리킨다고 하였다(Kommentaaraan Efeze, Colosse, Filemon, en Thessalonika, p.56).
하나님의 선물. - 이 문구의 헬라어(* )에 "하나님의"란 말(* )이 첫머리에 있어 강세(强勢)를 띤다. 그것은 믿음이 인간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인 사실을 역설하는 문투이다.
엡 2:9
본절은 윗절의 계속이다. 신자가 받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것이고, 인간의 행실에 따르는 상급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된 이유는, 구원 받은 자로 교만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인간은 구원 받은 결과로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할 뿐이다(롬 3:27).
엡 2:10
그의 만드신 바라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 헬라 원문에는 이 귀절 초두에 이유 접속사( )가 있어서 이 귀절이 앞절의 "자랑치 못하게 함"에 대한 이유를 나타내다. 왜 자랑할 수 없는가? 그 이유는, (1)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선(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로 지으셨기 때문이고, (2) 선한 일거리나 환경이나 동기나 능력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앞서 예비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기 이른 바 "전에 예비하사"란 말( )은 예정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한 일거리나 환경을 준비해 주심과 또는 때를 따라 선을 행하도록 은혜와 능력을 먼저 주심을 가리킨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행하는 선이란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겸손으로 일관해야 한다. 칼빈(Calvin)은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이 자기 힘으로 구원 받을 만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안(Pelagian) 학파의 그릇된 학설을 공격하였다. 인간은 결코 자력으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고 다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 1-10 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 얻는 길을 이방인에게도 주셨다. 그러므로 에베소 사람들도 그 구원에 참여하였으니만큼 이제 현재의 행복과 과거의 불행을 대조하면서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 이것은 영적 할례(靈的割禮) 곧, 중생을 받은 사람과 반대되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바울은 신약 시대에도 육체적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의 교만을 비웃는다. 손으로 행한 할례에 대하여는 창 17:11,14을 참조하라.
엡 2:12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이 말씀의 뜻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 불신 시대에는 메시야를 바라보는 소망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여기 "이스라엘 나라"는 육적 의미가 아니고 신정 국가(神政國家), 곧 구약 시대 하나님 백성의 나라를 가리킨다. 약속의 언약들. 곧, 메시아 약속을 중심한 언약들이란 뜻이다.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언약과 또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이다. 창 22:18; 행13:23; 갈13:18 참조.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 여기 "소망"은 영생의 소망을 가리키는데 에베소 교회 신자들이 불신 시대에는 그 소망이 없었다. 이제 그들은 그 소망의 영광을 인식하고 감사해야 된다. 1:17-19 참조.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한것은 그들이 과거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헬라 원어에서는 "세상에서"란 말이 뒤에 있어서 그들의 비참했던 처지를 나타낸다. 이 세상은 악한데 거기서 사는 자가 소망도 없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그 비참하고 위태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엡 2:13
멀리 있던 너희가. - 에베소 교인들이 불신 시대에는 하나님을 "멀리"떠나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 졌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음은 그리스도를 믿어 그로 더불어 연합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가까와진다.
엡 2:14,15
둘로 하나를 만드사. -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합시켰다는 말이다. 15절 초두의 원수란 말 엑드라는 "적대감", "싫어하는 감정"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원수된 것을 화홧시키신 방법은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그의 보혈로써 폐하심으로 하셨다. 그런데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찌하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서로 원수되게 하였던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요구를 가지고 온 계명의 율법"(the law of the Commandments with its re-quirements)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Hendriksen). 그러나 그보다는 "규정을 가지고 오는 계명의 율법"(the law of the Commandments in decrees)이라고 번역함이 좋다. "규정"이란 것은 주로 모세 율법의 의식적 부분(절기, 할례, 특정의 음식물 등에 대한 제도)을 가리킨다. 유대인은 이것을 소유하고 주장하나 이방인은 그것이 없다. 따라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원수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런
외부적 규정의 요구는 성취되어 해데되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 같이 죄인인 처지가 드러났다. 그들이 서로 같은 처지인 사실이 드러나고 보니 그들은 서로 차별감을 가지지 못하고 형제시(兄弟視)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없어지고 하나의 새 사람이 되어진 것이다.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의 지어. -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속하시어서 하나의 새로운 인류(new humanity)를 지으셨다는 뜻이다.
엡 2:16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 이것은 위에 말한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로써 폐하신 둘째 목적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한결 같이 한 몸처럼 구속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하려 하심이다.
엡 2:17
오셔서 평안을 전하고. - 여기 "오셔서"란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신 것을 가리킨다(요 14:18). "평안"은 심령에 화평을 주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심으로) 복음을 의미한다(고후 5:18-21).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이 평화의 복음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먼 데 있는 너희는 이방인들을 가리키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엡 2:18
신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함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한 성령을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혜를 얻는다. 우리 둘이란 말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고, 나아감은 접근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과 다시 사신 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원수되었던 장벽을 헐었고(롬 5:10; 골 2:13-15),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자녀의 권세와 의식(意識)까지 주셨다(요 1:12; 롬 8:1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접근하여 사귈 수 있다.
엡 2:19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 이방인들이 구약시대에는 신정 국가의 혜택에서 제외되었었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믿음으로 천국 시민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복된 천국에 대하여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시민"이다. "성도"란 말은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데 유대인 신자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총칭한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 "선지자들"은 신약시대의 대언자들을 가리킨다고도 하며(Van Leeuwen), 혹은 구약의 예언자들까지 포함한다고 하는데, 첫째 의견이 옳다.3:5, 4:11; 고전 14장 참조. 신약시대의 예언자들 중 주요한 예언자들은 사도들 자신이었다. 그들로 말미암아 신약 성경이 거록되었다(고전 12:28,14:1). "사도"는 '보탬을 받은 자'란 뜻인데 예수님이 친히 불러 세우시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내보내신 자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는 데 기초적 사역을 하였으니만큼 우리 본문에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란 말씀이 나와 있다. 곧,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그리스도는 교회의 터임) 위에 "너희" 곧, 교회(성도들의 단체)가 설립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된 것이다. 곧,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하신 말씀이다. 여기 "이 반석"은 베드로 개인을 의미하지 않고 사도로서 고백(혹은 전파)하는 복음 진리를 가리킨다.
모퉁이 돌. - 이 말의 헬라 원어는 히브리 원어 핀나에 해당하는데(사 28:16), 이 돌의 작용은 두 벽을 결합시키는 힘받이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와 교회를 결합시키는 그리스도를 비유하기에 적합하다.
엡 2:21
건물마다. - 이것은 지교회(支敎會)를 비유한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 이 말은 다음과 같이 개역된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지성소로 자라나고." 이 말은 세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1) 교회들은 서로 화합해야 된다는 것. (2) 교회(성도들의 단체)는 구약 시대의 지성소처럼 신자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단체라는 것(출 25:22). 구약 시대의 지성소는 장소였으나 신약 시대의 지성소는 신자들의 인격이다. (3) 교회는 자라나야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신앙과 성결에 있어서 자라나야 된다. 4:13-14 참조
엡 2:22
너희도. - 이 말은 에베소교회의 교인들을 가리킨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 성령님이 계시는 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만큼 여기서 이렇게 표현된다.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것은 에베소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건설되어 간다는 뜻이다. 여기 이른바 "함께 지어져"란 말의 헬라 원어는 가옥의 건축됨을 생각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 건축 곧, 교회라는 공동체의 성립을 가리킨다. 여기 "함께"란 말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그 영적 건축에 합심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마 18:19-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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