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
"신령한 것"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신 모든  은혜들을
이름이다. 그것들 중 어느것들은 그들의 자연적 재능(自然的才能)에 근거한 것이고 어
떤 것들은 순전히 초자연적 근거에서 나타난 것이다(Lenski).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 말씀은 바울의 문투 중(文套中) 하나
이다. 이것은 이론의 강세(强勢)를 위하여 사용된다. 살전 4:13;롬 1:13;고전  10:1참
조.

 

 고전 12:2,3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
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
라 할 수 없느니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믿기 전 생활 상태와 믿은  후
의 그것을 비교해 보기 원한다. 그들이 이 비교를 통하여, 신령한 은혜란 것이 무엇임
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믿기 전에는 우상으로 끌려다녔다. 그들은, 말 못하는  우상에
게서 생명 있는 역사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믿은 후에 그들의  생활은  아주
달라졌으니, 곧, 성령의 역사로 은혜를 받아서 예수님을 "주"라고 하게 되었다.  이것
이 신령한 은혜 중에도 근본되는 것이다. 다른 은혜는 없다 하여도 이것만으로도 신자
에겐 족하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라고 함이 성령의 은혜 중에도 근본이니만큼, 다른 모든 은사들
도 이 근본되는 은혜를 중심하고 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여, 주님 중심하고  역
사하는 것은 무엇이나 참된 은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중심하는 여부(與否)가 모
든 다른 은사들의 진가(眞價)를 결정하는 것이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은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 이 말씀은,  신
령한 은사들이 결국 동일하신 삼위 일체 신(三位一體神)에게서 온 선물인 것을 지적한
다. 그리고 각기 은사는, 무슨 은사든지 선물(은사) 자체로 보면 성령이고 그  은사의
직분면으로 보면 주께서 지도하시는 것이며 주를 위한 것이다(계 1:13,16,2:1.3:1; 고
전 4:1,8:6; 롬 12:11,14:4-9; 마 25:40). 그리고 그 은사의 역사 면으로 보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은혜가 다 동일한 삼위  일체
에게 속한 것이라고 하여, 그 모든 은사들의 소유자들은 서로 한 몸된 사랑으로  봉사
하여야 될것을 고조(高潮)한다. 이 사랑의 봉사에 대하여 다음 귀절이 밝히 결론한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이란 말씀은, 위의 제 4절에 "은사"란 말을 해설(解說)한 것이다. "유익"이란 말
은 헬라 원어로 쉼페론(*                )인데  공동  유익(共同有益)을  의미하나니
곧, 교회의 유익을 가리킨다(Wendland,Alle diese Geistesgaben soiien der  Gemeinde
dienen.-Die Brief an die korinther p.94).


 고전 12:8-10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
시나니. - "지혜의 말씀"이란 것은, 하나님의 계시하신 지혜, 곧 복음에 대한 영적 이
해(성령으로 말미암은 이해)를 표현함이니, 이것이 최고의 은사이다. 이는 그  소유자
자신과 남들을 살리는 영적 지혜에 속하는 말씀이다. 이와 같은 지혜는 이 세상  지혜
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고전 1:20,2:5,6,13,3:19; 고후 1:12;약 3:15).
   "지식의 말씀"이란 것은, 역시 복음을 취급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역사적 방면(歷史
的方面) 재료들을 다루는데 활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을 변증, 해설하는데 있어서
없지 못할 귀한 요소이다. 이것과 관계하여 "같은 성령을 따라"란 말이  우리  본문에
쓰여 있다. "따라"란 말(*        )은 표준울 가리킨 것이다. 기독자는 복음을 말함에
있어서 일반 지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복음의 원리를 어기는 지식 방법이나 지식
재료를 채용하지 않는다. 이런 지식은 성령의 인도로만 이루어진다.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여기  "믿음"이란  것은  구원받게  하는  믿음(fides
salvifica)을 의미하지 않고 권능을 행하게 하는 믿음(fides miraculosa)을  가리킨다
(마 17:20,21:21; 고전 13:2). 이런 믿음은, 구원 받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자
들도 가지는 실례(實例)가 있다(마 7:22).
   "병 고치는 은사". 이는 특별히 사도 시대 특징으로 있던 은사라고 할 것이나,  그
뒤에 교회 시대에는 전연 없다고 단언할 것인가? 개혁파 신학자들은 그렇게  단언하면
서 다만 "특별 섭리" 혹은 "보통 이적"이라고 할  만한 신유(神愉)의 권능은 오늘날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신앙이 있는 자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즉시 완쾌(完快)되지는 않아도 의외(意外)에도 병세가 덜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
고 한다.
   렌스키(Lenski)는 요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사도 시대에 병  고치는  이들이
병 고친 것은, 성령의 지시가 있을 때에만 실행한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언
제나 병자를 만나는 때마다 그 권능을 자의(自意)대로 나타낸 것은 아니고, 다만 성령
의 지시에 따라서만 그 권능이 나타나도록 행동하였다"고 한다(Interpretation  of  I
and II Corinthians,p.502). 이 학설은 참고할만 하다.
   "능력 행함". 여기 "능력"이란 말은 어려운 일을 감당하게 하는 것,  또는  비상한
고난을 겪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바울의 생활에서 이런 것
을 많이 볼 수 있다(고후 11:23).
   "예언함". 신약 시대의 대언자들의 예언은 구약 시대의 그것과 성질상  다른  점이
있다. 신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온 교회에 근본적 중요성(根本的重要性)을  띈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원시 교회로 하여금 특수한 환경에서 알아야 할  것,  또는
행하여야 할 것을 단편적(斷片的)으로 알게 한 것 뿐이다. 그들이 예언으로써  신약에
기록된 건수(件數)가 많지 않다. 행 11:28, 21:11 참조.
   "영들 분별함". 요일 4:1 참조. 악령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예언도 시키고  이
적도 행하게 한다(행 19:13). 그러므로 악령들을 하나님의  영에게서  식별(識別)하기
용이한 것은 아니다. 고후 11:14; 마 24:23 참조.
   "각종 방언 말함". 신자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막 16:17에 기
록되었는데, 그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시에 성취되었고(행 2장)  역시  가이사랴에서도
그 현상이 나타났다(행 10:44-46).
    각종  방언에  대하여  말함에   대하여   (1)   그레머(Cremer)는   그의   저서
(Biblschtheologisches Woerterbuch der Neutestament Graezitaet)에 말하기를,  원시
교회 신자들이 각종 방언을 하였다는 것은, 실상 여러 나라의 말을 하였다는 것이  아
니다. 그것은 실상 새 세계의 말(die sprache der neuen  Welt,  der  Erloesten  und
seligen)을 한 것 뿐이라고 한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것이 이적적(異蹟的)인
영적 방언이라고 하였으니(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pp.222-289), 위의 크레머씨의 해석과  유사하
다. (2) 렌스키(lenski)는, 이것이 문자 그대로 여러나라 말함을 가리켰다고 한다. 그
러나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한 사람들의 방언은, 다른 사람들은 모를 영적  방언이었다
고 14:2이 지적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한  개의  영적  방언을  "각종  방언"이라고
(12:10)하였을까?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대답하기를, 단개(單個)의 영적 방언도 여
러가지 성격으로 나타난 것인 만큼 "각종"이라고 했다고 하였다(같은 책 p.289)
   "방언 통역함" 14:5, 13,26-28 참조.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 여
기 이 말씀 중에 모든 은사를 (1) "같은 한 성령"이 주셨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이
모든 은사의 소유자들이 서로 하나되며 서로 존중히 여기며 서로 도와 주어야 될 것을
암시하고 (2) "그 뜻대로"(성령의 기쁘신 뜻대로) 나눠주셨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이
런 은사를 주는 일은 전혀 성령님의 주권(主權)에 달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측에서는 이런 은사를 받거나 못 받거나 함에 있어서 불평이나 시기나 자랑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은사를 나눠 주는 권이 전혀 성령님에게 있음은, 우리 인간들에게  막대한
축복이다(Lenski).
   12,13. 이 귀절들에 있어서 바울은 교회 구조(構造)가 단일성(單一性)과 다양성(多
樣性)으로 성립되었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몸의  구조로  비유한다.
교회를 몸에 비유한 것은 바울의 신학 특징의 하나이다.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 바울은, 이 한 귀절에서 교회의 단일성과 그 안에 각 은사의  다양성을
역설하기 위하여  동일한 이치를 반복하여 말한다.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란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그러하다는 뜻이다.  교
회는 모든 지체들이 사랑으로 통하는 단일성을 가진 것인 만큼, 인체 외(人體外)에 다
른 것으로 비유하기 어렵다. 교회의 단일성은 모래 무더기와 같은 것에 비유할 수  없
다. 모래 무더기는 모든 모래알로 쌓여 있는 단일체(單一體)이면서도 그 모든 모래 알
들이 서로 참되이 결부(結付)되지는 않았다. 조금만 바람이 불면 저마다 날아나서  흩
어진다. 교회는 결단코 사람 무더기가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단일성 있는 교회
를 어떤 기계에 비교할 수도 없다. 기계는 여러가지 부분품(部分品)들이 정미롭게  조
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유와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인체(人體)
처럼 기독 교회를 비유하기에 적합한 것은 없다.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이 말씀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교회
가 한몸된 내막을 알려준다. 그 안에 모든 지체들이 하나된 원인(原因)은, 그들이  다
함께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실에 있다. 그러니, 이 연합은, 영적으로 된  긴밀성(緊密
性)으로 성립되었으며 자유와 생명 있는 연합이다.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진정한 세례에는 성령의 역사가  동반(同伴)하시나
니,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요 3:5).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성령의 은혜가 "생수"로 비유된
(요 4:14, 7:37-38) 말씀에 비추어 잘 이해된다. 신령한 은혜의 섭취를  식음(食飮)에
에 비유한 것은, 역시 예수님의 교훈에 근거한다(요 6:53-56). 이것은, 사람이 믿음에
의하여 신령한 은혜를 살 깊이 받은 자들은, 자동적(自動的)으로 서로 뭉쳐  한  몸과
같이 될 것은 확실하다.

 

 고전 12: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 기독 교회는, 위의 제 13절에 말한 바와 같이,
긴밀히 모든 지체들이 한 몸 같이 연합되어 이룬 단일체(單一體)이다. 그러나  기독자
들은, 언제나 이 단일체가 동시에 다양성(多樣性)있는 여러 지체들로 성립되었다는 것
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울이 이부분에서 교회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단일성을  말할
때엔 그 다양성 있는 지체들의 존재를 기억시키며, 또한 그 지체들의 다양성에 대하여
말할 때엔 그것들이 서로 협조(協調)하여 이루어야 할 교회의 단일성으로  되돌아가서
역설한다. 그가 이런 어법(語法)을 취하게 된 이유는, 교회의 단일성과 다양성은 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살려 유지하지 못하는 단일성도 진정한 교회에 마
땅치 않고, 단일성을 잃은 다양성도 그렇다. 각 지체들은 몸의 단일성을 잃지 않기 위
하여 다른 지체를 존중시 하여야 된다. 이 일에 대하여 15-27에 자세히 말한다.

 

 고전 12:15,16

  각 지체는 다른 지체와 다르다고 하여 그것과 한 몸된 원리를 부인 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몸에서 떼어내는 잘못이다. 바울은 여기서 발과 손, 귀와 눈의 관계를  들어서
이 진리를 밝힌다. "나"는 남과 다르다고 하여 남들과 함께 관련성을  가진  공동체에
대한 협력을 거부할 수 없다. 그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어리석음이다.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 이 말씀이 15-16절에 각각 나와서
두드러지게 진리를 보여준다. 곧, "나"는 몸에 붙지 않았다고 스스로 선언한다 할지라
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전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
뇨. - 이 말씀은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를 들어 다른 지체들의 절대 필요성을  말한다.
그것은 몸이 한 가지 지체만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 12:18-20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
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 많은
지체가  한 몸을 구성한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이다(18절). 몸의 각 지체들은  서로
협력하도록 지어졌다. 이 원리는 그리스도 교회의 단합을 가르치는  것이니  신자들은
하나님의 이 원리대로 순종해야 된다. 자체들의 기능이 각각 다르게 지어진 것은 그것
들이 서로 분리되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리어 다른 지체의 도움을 요구하며  또
다른 지체를 도와주도록 된 것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눈은 손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머리는 발의 도움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처럼 신자들은 그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른데
그것은 서로 협력하며 잘 화합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도록 된 것이다.

 

 고전 12:22-24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
다운 것을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
게 존귀를 더하사. - 이 부분에서는 우리의 몸에 있어서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  덜
귀히 여기는 그것, 아름답지 못한 지체, 아름다운 지체"가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이것
은 그 지체들의 기능을 말함이 아니고 그것들의 모양을 가리킨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께서는 한몸에 여러 모양의 지체들을 지으시고 그것들의 필요에 따라  보호하며  감싸
주도록 하여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하신 것이다.

 

 고전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
몸의 지체들이 서로 연대책임제로 돕기 때문에 분쟁이 없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그 원리대로 장성해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분쟁"이란 말은 교회의 분열에 관한
용어이다. 그리고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한다는 말은 교회 연합을 위한 중요한
작업을 생각케  한다.                                                                      

 

 고전 12:26,27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
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
라.- 교회의 참된 회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들이니만큼  그것들이  서로
동고동락하게 된 원리 아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회원들은 다른 회원들의 고락에 동참
하기를 힘써야 된다.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교만함과 사랑이 부족한 탓
이다. 롬 12:15-16에 말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
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
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하였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
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
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 이 귀절은 8-11절의 말씀을 좀 더 다른 형식으로 재설한 것
이다. "사도"와 "선지자"는 지혜의 말씀(8절 상반), 곧 복음(2:6-10)의 기본 사역자들
을 가리키고, "교사"는 지식의 말씀, 곧 복음을 지식적으로 해설하는 사역자이고, "능
력"은 믿음(능력을 행하는 믿음-9절 상반)에 해당되고, "병 고치는 은사"는 9절  끝에
도 나와 있다. "서로 돕는 것"은 신자가 남을 대신하여  짐을 져준다는 뜻이다(F. Godet).
이것을 보면 신자들의 물질적 구제 사업도 그 받은 은사로만 참되이 실행될 수 있다.
그리고 "다스리는 것"은 교회의 외부적 사무 처리 같은 것을 가리킨다.

 

 고전 12:29,30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 여기서는  신자들의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른 것을 강조한다. 신자들이 다 같은 은사를 받는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성립될 수 없다. 몸된 교회는 여러가지 다른 은사를 받은 자들의 협력체이다.

 고전 12:31
   여기 "제일 좋은 길"이란 것은 13장의 "사랑"의 내용을 가리킨다. 위에 열거된  여
러 은사들(*   12:8-10,28-30 참조)의 사역의 목표는 사랑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은사들이 사랑을 이루는데 사용되지 못한다면 존재의 의의(意義)가 없는 것이다(13:1-3).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16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1장
15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2장
14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3장
13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4장
12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5장
11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6장
10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7장
9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8장
8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09장
7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0장
6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1장
»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2장
4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3장
3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4장
2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5장
1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6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