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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0: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란 말은,  바울
이 특별히 중요한 말씀을 줄 때에 주의 시키는 어투(語套)이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여기 "다" 자(字)는 중요하다. 그들이 다  구
름 기둥의 인도를 받았으나(출 13:21;민 9:15,22,14:14;신 1:33;시 78:14),  모두  다
구원받은 것이 아닌 것을 이글자가 지적한다.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함은, 그들이 홍
해를 건넜다는 뜻이다.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과  바
다에서 세례를 받았다"함은, 그들이 구름이나 바다에서 물의 적심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닷물에 침몰(沈沒)을 당한 자들은 실상 애굽 사람들이었다. "세례"는  여기
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관련하여, 그들을 애굽 사람들에게서 구별시킨  것을  가리킨다
(Lenski). 노아 홍수 때에도 물이 불회개자(不悔改者)들을 침몰시켜 죽였으나  노아의
여덟 식구는 방주를 띄움으로 구원시켰다. 이렇데 물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시켰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와같이 구별시킴을 받아 모세의 지도하에 전적으로 속하였다.
   이와같은 구별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성립하였으니, 이렇게 구별시킴이 된  이
스라엘 백성은, 다 하나님의 특수한 보호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고전 10: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 여기도 "다"자가 있다. 1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
을 참조하여라. "신령한 식물"은 "만나"를 가리킨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여기 이른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이란  말은,
물을 내어 주는 반석이 굴러서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였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저들과 동행하셨다는 뜻이다. 그들이 어디서든지 반석에서  이적적(異蹟
的)으로 물을 얻었는데 그것은 신령한 반석 곧,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되게 하신  까닭
이었다.

 

 고전 10: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
았느니라. - 처음에 애굽에서 떠난 자들 중 다수(多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진리는, (1) 하나님은 그 백성이 잘못 나갈  때
에는 다수라도 버리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수효에 따라가시는 이가 아니
고 자기의 뜻대로 참되이 움직이는 자들과 동행하신다는 것. (2) 은혜를 많이 맛본 자
들이라도 후에 잘못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축복하기를 중단(中斷)하실 수 있다는 것.
신자들은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두려움과 겸손으로 행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고  하였
다. 구원에 대한 확시니은 이렇게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한하여 임하는 것이다.

 

 고전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
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악을 즐겨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애굽
의 향락을 탐한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민 11:4, 5). 기돌자들이 만일  불신시대(不
信時代)의 향락을 취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이런 죄악이다. 죄는 언제나 육체
의 쾌감(快感)을 따르는 것이니만큼, 사람이 그것을 범하노라고 높은 벼랑이라도 기어
올라간다.

 

 고전 10:7

  저희 중에 어떤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
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 이것은 출  32:6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 우상을 섬기면서 제연(祭宴)을 누린 사건을  가
리킨다. 이방 우상종교에는 이런 춤추는 풍속이 있었다.  이때에  고린도에는  비너스
(Venys) 신당(神黨)에서 이런 제연이 집행(執行)되었는데, 고린도 교회의  기독자들이
거기 참예할 위험성이 있었다.

 

 고전 10:8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 이것은, 민 25:1-9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신 바알브올에게 속하는 의미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사실을 이름이다. 우상  종교
는 종종 음행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여기 23,000명이란  수효가  민  25:9에  기록된
24,000명이란 수효와 일치하지 않는다. 혹설에 바울이 말한 수효(23,000명)는  하루동
안에만 죽은 수효를 가리킨다고 한다. 또 다른이는 말하기를, 바울이 말한 수효는  대
략으로 말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수효를 말하는 공인(公認)된 풍속이  얼마
든지 있으니 그것은 과오(過誤)가 아니다.

 

 고전 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 이것은 민 21:4-6에 기록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이다.  이
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여행고(旅行苦)와 "박한 식물"을 싫어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의심과 원망을 포함한다. 이것을 가리켜 바울이
"시험"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흔들어보는 악행이다. 그것이 시험이다.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민 21:6-9 참조.

 

 고전 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 이것은, 민 14장과 16장에 있는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
이다. 원망은, 언제든지 자기의 허물을 자기의 불행의 원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의 통치에 불만을 느끼는 죄악이다.

 

 고전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
니라. - 이스라엘이 당한 사건들이 신약시대의 신자들에게 거울이 된다 함은,  그들이
그것들을 보고 바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말세를 만난 우리"란 말은 바울의 시대관(時代觀)을 보여준다. 이것은 신약시대를
모든 그전 시대들의 절정(絶頂)이요 초점(焦點)으로 보는 것이다. 신약시대 이전의 모
든 세대들은 신약시대를 지향(指向)하고 움직였고 흘렀다. 그렇다면 그시대들을  통하
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啓示)들은 신얀대의 기독자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우리  기
독자들이 그것들(계시들)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그 목적대상(目的對象)을 잃는 셈
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1500년동안이나 잡아가지고 기록된 우리를 위한(나를 위
한) 하나니말씀을 배척하는 큰 죄를 범하는 셈이다. 그렇게 오래 동안 공드려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 나를 위하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왜 그는 이 중대한  사실
을 모르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곧, (1) 그가 자기는 죄인인줄 아직  모르기  때문이
다. 성경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책이며, 자기가 죄인인줄 아는 자만이 깨달을  책
이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깊이 느끼지 못하는 자가  누군가?  그는
소경과 같다. 사람은 모두 다 죄인이다. 자기의 행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자기가 과거와 현재에 행한 것(은밀히 행한 것들까지)을 모두 다
여실(如實)히 사진박아 활동사진(活動寫眞)으로 구경시키는 것을 허락할 사람은 이 세
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가 그런 활동사진을 한편 제작하겠다고 한다면,  그는
한사코 못하게 막을 것이다. 나의 이 말은 요한 헌트(John Hunt)  선교사에게서  들은
것이다. (2) 누구나 오랫동안 공들여 기록된 성경이 자기를 위한 것임을 모르는  이유
또 한 가지는, 그와 그 성경 기록할 때와의 사이에 시간적 거리(時間的 距離)가  멀다
고 생각되어서 그것이 자기와는 직접관계(直接關係)가 없는 줄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러나 생각하여 보자! 장구한 세월은 과연 장구(長久)한 것인가? 시간이 오래다고 생각
하는 것은 참된 사명감(使命感)이 없고 참된 생활의 프로그램이 없는 게으른 사람에게
한(限)하여 그러하다. 하나님에게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와  같다
(벧후 3:8). 사람들중에도 참된 사명에 몰두하여 참된 일을 흥미있게 또는 책임상  두
려움을 느끼면서 일 하는 자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오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에게
는 시간의 길이가 없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실상 과거가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리만
큼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관념이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사람은 실상  자기가  섰다고
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수중(手中)에 있는 동안만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
로 언제나 그는 "넘어질까 조심"하여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 중에는 스스로 선 줄로 알고 교만하게 덤비는 자들이 있었다
(8:1).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런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
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
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여기 이른바 "시험"은, 신자들이 죄악에 빠지
도록 유혹하는 시험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연단시키기  위하여  어려운
환경에 빠지도록 허락하시거나, 혹은 난제(難題)를 만나도록 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
께서는 이런 시험을 당한 자에게 피할 길도 주신다고 하였으니, 신자들은 이런 시험을
소망 중에 당하여야 된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하신 구원을 신자들이 끝까지
받도록 하실 터이다. 그가 어찌 신자들에게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랴? 그가  어찌
시험 당한 신자들에게 피할 길을 주시지 않으랴?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 이것은, 신당에서  지낸
제연(祭宴)에 참예하는 것이 우상숭배와 가까운 행동인 고로 그것에 참예하지  말라는
것이다. "피하라"는 것은 우상 숭배에 접근(接近)하지도 않기 위하여  멀리  피하라는
것이다.

 

 고전 10: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
하라. -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의 판단을 요구한다. 그의 논조(論調)에서  취할
결론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그는 그들로 하여금 판단하여 보라는 것이다. 그 논조
는 이렇다. 곧, 성찬을 먹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예함 같이, 신당에서  우
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귀신과 사귄다는 것이다.

 

 고전 10:16-18

  성찬에 참예하는 자들이 다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들 자체들이 한몸을  이룸
같이, 우상의 제연에 참예하는 자들이 역시 귀신과 사귀어 자기들끼리도 한몸을  이룬
다.

 

 고전 10:19,20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
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
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 바울은 여기서 우상이란 것
이 실재(實在)의 신(神)은 아니고 헛된 것임을 역설(力說)한다(8:4).  그러나  우상의
제물을 신당에서 먹는 것은, 결국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게 만든다고  바울은  다음
귀절에 말한다.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니 만큼 결국 잡신들을 기쁘게 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고전 10:21,22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
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 주님을 위하는 자는 귀신을 위할 수 없고, 귀신을 위하는 자는 주님을 위하지
못한다. 양자(兩者)는 서로 용납하지 않는다.

 

 고전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 바울은 위의 14-22까지 신당 제연 석상(神堂祭宴席上)에서  기
독자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없음에 대하여 엄히 경계하였다. 특별히 21절에  "귀신
의 잔", "귀신의 상"이라는 표현이 설비를 갖춘 제연을 생각하게 한다. 제연 석상으로
말하면 우상 교도들이 저들의 우상을 즐기는 의미에서 연회를 가지는 것인  만큼,  그
자리는 우상 숭배를 찬성하는 자리이다. 그러니만큼 기독자가 거기에 참예할 수  없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바울이 23절에서부터는, 위의 경우(신당에서 제물을 먹지 말 경우)와 다른  경우를
취급한다. 곧, 신자가 우상의 제물을 모르고 먹을 경우에도(25-27절) 양심 문제를  존
중시하여 행동을 조종하여야 될 것을 가르친다. 자기자신의 양심에는  가(可)한  줄로
생각되는 일에 있어서도 그는 그 일 행가기를 거부(拒否)할 경우가 있나니 이런  것을
가리켜 양심 자유의 사항(事項)이라고 한다. 이것을 라틴말로  아디아포라(Adiaphora)
라고 부른다. 아디아포라의 문제에 있어서 기독자 자신은 자유를 사용할 수 있다.  그
러나 언제든지 남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라면 자기로서는 양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본문에 말한 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라는  원
리에 따라서 행동을 조종함이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남들을 유익하게 한다는  뜻으
로서 건립(建立)을 의미한다. 물론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는,  성경에  어떠한
명문(明文; 命令 혹은 禁令)이 없는 건(件)에 대한 사항(事項)에 관계된 것이다. 성경
에 명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이 그것의 실행을 거리껴 하는 경우에  신자
가 그 일에 대한 자기의 행동을 견제(牽制)할 필요는 없다.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여기 구한다는 말은  계
속적으로 탐색(探索)함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나 남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 만치 중요하지는 못하다.

 

 고전 10:25,26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 이 말씀 뜻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곧, 시장에서 파는  음
식물이라면 상품화(商品化)된 것이니 그 물건의 유래(由來)를 물어볼 필요는 없다. 바
울은 여기서 이 말을 할 때에, 우상의 제물 같은 것도 상품화 되어서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는 경우를 염두에 두었다. 우상의 제물이라도 일단 상품화되어 시장에  나왔다
면, 그것을 상품 취급할 뿐이다. 그 이유는, 그 물건이 우상의 제물로 사용된 일이 있
다 할 지라도 물건 자체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
건 그 자체가 윤리성(倫理性)을 띠는 법은 없다. 그 이유는, 물건은 인격이 아니기 때
문이다(윤리 문제는 意志와 자유를 가진 인격에게 한하여 따르는 것임).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좋다고 하셨다(창 1:12, 18, 1, 25, 31).  물질
자체가 악하다는 사상은 이교사상(異敎思想)이다. 특별히 헬라 철학에서 물질을  악시
(惡視)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 말하기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
이니라"라고 하였다. "주의 것"이라 함은, 주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또한 그것들을
보존 시키시며 그것들을 소유하실 권세가 있음을 이름이다.
   여기 이른바 "양심을 위하여"라는 말은, 남들의 양심을 위한다는 의미이다.

 

 고전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바울이 여기서는 우상의 제물관념(祭物
觀念)에서 떠나, 단순한 식탁을 대상(對象)하고 기독자가 취할 태도를 보여준다. 신당
(神堂)이 아니고 보통 사가(私家)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청할 때에는, 손님 접대의 목
적으로 차려 놓은 음식물이라는 관념 밖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그 마음은 헛된 생각에 불과하다. 초청을 받은 그는 청한 자의 친절과 거기 차려
놓은 물질 그 자체를 볼 뿐이다. 물질은 하나님이 지어 내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장
하셔야 마땅한 것이니, 그것을 받는 자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 있어서도 문제가 달라질 경우도 있다. 그것은, 물질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그 장면에 어떤 때에 있을 수 있는 인적 관계(人的關係)이다. 다시 말
하면 다른 사람의 양심문제가 일어날 경우이다.

 

 고전 10: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
라. - 윗절에 관설된 좌석(座席)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거기 차려 놓은 음식물을  제
물이라고 하여 문제시(問題視)할 경우에 기독자의 처신원리는 달라진다.  그  이유는,
그의 양심에 가(可)하다고 생각한 것이, 새삼스러이 일어난 다른 사람의 양심상  거리
껴 하는 생각 앞에서 강행(强行)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그것을 강행하면, 남
에게 유익이 없고 덕을 세우지 못한다(23절). 여기 이른바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이
란 말은, 결국 그 "알게 한 자"의 양심이란 뜻과 같다.

 

 고전 10:29,30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
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
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 일설에, 이 말씀 뜻은 우상의  제물을  단지
물질로만 취급하여(남의 양심에 저촉됨이 없는 한), 먹는 자로서 남들의 비평을  받을
필요는 전연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그렇게 해석 한다면 자기  양심
에 거리낌 없다고 하여 주위에 있는 자들의 비평을 돌보지 않고 강행할 수 있다는  뜻
이 된다. 이런 해석은, 28절 하반절에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라리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먹을 수 있는 자의 자유가 남들의 양심에서 나오는 비평을  무릅쓰고까지  강행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이라고 하여 감사함으로 받
을 뿐이라는 주장이 좋으나, 하필 그 주장을 남에게 유익되지 못하게  실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함이 이 아래 31-33까지의 말씀에도 잘 부합한다.

 

 고전 10:31-3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덕을 세우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궁극적(窮極的) 목절을 이루라는 뜻이다(8:1-3 참조).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는 행동원리(성경에 명백히 밝혀진 진리)는 우리가 남들의 비평을  무릅쓰고
실행하여도 가하다. 그러나 성경에 밝혀지지 아니한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23
절 해석 참조)에 있어서는 우리가 남들의 생각에 잘 조절하여 행하여야 한다.
   "우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이  말씀
뜻은, 기독자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고유(固有)한 사상에 잘 타협하여야 된다는 뜻도
아니고 또는 교회 대중의 사상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라는 의미도 아니다. 이것은, 신자
가 다만 아디아포라의 문제(23절 해석 참조)에 있어서 어떤 행동이 죄되지 않는  한에
는 인류의 그 어떤 풍습에나 혹은 교회의 어떤 사상에든지 조화적(調和的)으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 이 말
씀의 뜻도 역시 위에 나온 원리(31-33절 해석 참조)에 대한 해설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할 때에, 무조건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 말을 아디아포라문제에 국한시켰다. 그는 성경에 제시된 명백한 진리 앞에서는 그대로 강행하였고 사람들의 종이 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갈 1:10에 말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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