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
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 여기 "아비의 아내"란 말은, 그 범
죄자의 생모(生母)를 이름이 아니고 그 계모(繼母)를 가리킨 듯하다(레 18:8). 일설
(一說)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 이런 죄악이 생긴 원인은, 부패한 유대 랍비들이 가
르친 대로, 유대교의 개종(改宗)한 자는 그 아비나 어머니로부터 친자관계(親者關係)
가 해소(解消)된다는 교훈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지(Hodge)는 이런 사실의 가능성
을 의심하였다.
초대의 이방인 기독교에 저런 범죄 사건이 있음을 볼 때에, 우리는 인간성의부패가
어디든지 공작(工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디서든지 누구에게서든지 성령의 감화
하시는 역사로만 인간성은 성화(聖化)될 수 있다.
고전 5:2
그리 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 교회 안에 범죄 사건이 있음에도 불
구하고 교회가 통한(痛恨)히 여기지 아니함은, 그 교회 자체가 죄감(罪感)이 둔하여진
증표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어긴 것을 문제시(問題視)하지 않는 교만이다.
교회가 범죄자를 징계하는 것은, 그것이 사랑으로 실시(實施)된 한(限), 하나님의 말
씀 권위를 옹호하는 경건에 속한다. 갈 6:1,2 참조
고전 5:3,4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 바울이 저 가증한 범죄자를 처리함에 있어서, (1) 주 예수님의
이름(곧, 권위)의 능력으로만 하도록 생각하였으며, (2) 교중(敎衆)과 함께 그 권징
(勸懲)을 실시하도록 생각하였다. 이것이 교회의 일반적 권징 원리이다. 그러나 다음
귀절은 사도적 권징(使徒的勸懲)의 특성도 부가(附加)한다. 다음 귀절 해석을 참조하
라.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함이라. - "사단에게 내어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질병과 고통에
걸리게 됨을 의미한 듯하다. 이런 권능 있는 권징은 사도들만이 할 수 있다(행
5:1-11, 13:9-11; 고후 10:8, 13:10). 딤전 1:20 참조. "육신은 멸하고"란 말씀은, 신
체가 망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죄악성과부패성이 멸하게 됨을 이름이다. "주 예수의
날"은, 주님의 재림날을 가리킨다.
이 귀절을 보면, 교회의 권징은 범과자(犯過者)의 구원을 목적하고 영구(永久)한
유기(遺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것을 예배 행위(禮拜行爲)로만
실시한다. 증오(憎惡)와 심판의 동기로 행하는 근대 교회의 권징은 실상 교회에 해독
만 까친다. 갈 6:1, 2 참조.
고전 5:6
너희를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여기 "자랑"이란 것은, 고린도 교회가 그 큰 범죄자를 용납해 두고 잘한
듯이 교만함을 이름이다(5:2). "적은 누룩"이란 것은, 비유니 위에 말한 것과같은 "자
랑"의 죄악을 가리켰든지 혹은 범죄자 자신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죄악은 누룩과 같아
서 은근히 퍼진다. 곧, 사람이 모르는 가운데 퍼진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러하고 단
체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적은 죄악이 개인의 생활에 퍼지는 것을 들어 말하자면, (1)
그 은밀한 죄가 양심을 부패케 하며 (2)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
어지게 하면, (3) 그것이 모든 다른 죄악의 세력들을 강화(强化)싸키며, (4)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받을 방편(예를 들면 기도하는 것)을 등한히 여기게 하여 은
혜 받는 방편의 효능(效能)을 파괴시킨다(Hodge).
아일란드(Ireland)의 바다에서 한 번 배가 파선한 일이 있었다. 그 배를 운전하는
사공은 주의(注意) 깊은 사람이었고 그때의 기후(氣候)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파
선의 원인은 이것이었다. 곧, 그날 선원(船員)중 한 사람이 배의 나침판을 소제하느라
고 소도(小刀)를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 칼날의 조금 떨어진쇠 조각이 나침반 함(函)
에 떨어졌다. 그 쇠조각 때문에 지남침이 끌려서 배의 방향을 달리 가리키게 되었다.
그래서 배는 방향을 잘 못 가다가 저렇게 파선하였다. 조그마한 쇠 조각의 영향이 그
배의 전체를 잘못되게 하였다.
한 가지 실수와 과오(過誤)가 그 범과자의 전 생명을 망치는 실례(實例)는 많다.
또 한가지 실례를 들자면, 캘리포니아 주에서 한 번은 큰 구경거리가 있었다. 곧 인승
(人蠅=사람 파리)이란 칭호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높은 건물의 벽을 기어 오르
기 잘하는 기술로 유명하였다. 그가 한 번은 관중(觀衆)이 구름 같이 모인 중에서 몇
십층 높은 건물의 벽을 기어오르게 되었다. 파리가 벽을 기어오르 듯이 그는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다가 거의 다 올라가서는 손으로 붙잡을 것이 없어 두루 살펴 보니 벽
돌장 같은 두드러진 것이 있었다. 그가 그것을 붙잡고 오르려 하다가 떨어져서 가루가
되었다 한다. 그가 붙잡았던 벽돌장 같은 것은 실상 거미줄이 뭉치어 건물에 붙어있었
던 것이다.한번 실수는 이렇게 무섭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
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여기서 "누룩"은 죄악을 비유한
다. 기독자는 원칙에 있어서 누룩(죄) 없는 자이다. 요일 5:18에도 말하기를 "하나님
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요일 3:9 참조. 이 말씀 뜻
은 기독자가 습관적(習慣的)으로 범죄를 계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Ross, "He can
notgo on sinning." 1Jn.3:9). 신자가 범죄하는 것은 하나의 사고(事故)요 원칙은 아
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으니 우리가 어찌 범죄하리요! 누구든지 범
죄를 예사로이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대신하여 죽지 않았다는 거짓된 고
백과 같다. 중국의 왕 목사가 어렸을 때에 한 번은 좋지 못한 장난을 하였다. 그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붙 잡아 벌 세우려 했으나 그는 도망쳐 버렸다. 그 어머니는 기어
이 그를 붙잡아 놓고 하는 말이, "내가 낳아서기른 아이가 잘못한 일 때문에 내가 벌
세우려 한다고 달아나니 나는 이런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 부끄럽다. 나는 나를 벌 세
울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자기 종아리를 때려 상하게 하였다. 그때에 그는 어머니에
게 안기면서, "나를 벌하여 주시고 어머니 자신을 때리지 마십시요"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그는 좋은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Knight's Master Book of new Illustrations,
pp.142-144).
이것은, 대신으로 벌 받은 한 가지 실례(實例)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 때문에 받을 영원한 멸망을 대신 담당한 것 같은, 무궁한 가치 있는 하나님
아들의 속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은 우리
밖에 있는 객관적 사실(客觀的事實)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월절 양을 먹은
것과같은, 먹고 마심과 같이 우리 신자들의 심령속에 화합되어지는 것이다. 화합은 성
령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믿음으로만 성립된다.(4:2)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새 덩어리"는 새사람의 단체
를 이름이니 곧, 거듭난 신자들의 단체이다. "묵은 누룩"은 죄악을 가리키는 비유이
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을 먹는 저녁부터 7일동안 무교병을 먹은 사
실에서 나온 것이다(출 12장). 그것은 기독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
은 이후 원칙상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한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유월
절 양에 비유한 말씀이다. 물론 유월절 양은 예수님 탄생하시기 1500여년 전 모세때에
그리스도 예수를 예표(豫表)하도록 제정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처럼 희
생된 때문에, 기독 신자들은 거듭 나서 누룩 없는(속죄 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
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 여기 "명절"이란 것은, 유월절 양을
먹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주간(一週間) 지킨 것이니 기독자의 한 평생에 해당하는 비유
였다. 기독자는 비유컨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은(믿음을 비유함-요 6:55) 사
실을 배경하고, 한 평생을 거룩되이 하나님께 바친 절기 처럼 생활하여야 한다. 여기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란 말은, 그 윗말 "묵은 누룩"이란 말에 대한 설명이다.
"순전함과 진실함". "순전함"이란 말(* )은, 본 바탕에 인연
(因緣) 없는 요소를 조금도 섞지 않은 순수성을 의미하고 "진실함"은 하나님 뜻의 진
상(眞相)에 부합하는 도덕 생활을 의미한다(Hodge, Lenski).
위의 두 가지는, 어디까지든지 신앙 생활에 있어서 불순수(不純粹)한 것과 가면(假
面)에 속한 요소를 금하는 말씀이다. 신앙 생활은 일심 전력(一心專力)으로라야 성립
된다.
고전 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 여기 "너희에
게 쓴 것"이란 말은, 본서(고린도 전서)보다 일찌기 기록된 서신이었다(Grosheide).
"음행하는 자들"이란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 아는, 그때의 음행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저히 드러난 범과자(犯過者)들을 고립(孤立)시키는 것은 그들을 회개하기까
지 부끄럽게 하는데 필요하다. "사귀지 말라"는 절교(絶交) 권면은, 주로 신령한 교제
를 끊음에 대한 것이다. 일반 사회 생활면(社會生活面)에 관한 절교는 불가능한 일이
며(10절 下半) 성경이 그런 절교를 장려하지도 않는다.
고전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
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
가야 할 것이라. - 여기 "이 세상"이란 말은, 교회 밖의 세계를 이름이다. "토색하는
자"는 자기에게 정당히 속하지 않는 재물을 취하는 자이다.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교회 밖에 세상 죄인들과의 교제를 신자로서 아주 끊을 수는 없다. 그
들에게 대한 신자의 교제는 영적(靈的)인 것이 아니고, 사회생활 또는 국민생활 관계
의 것이니 이를 피할 수는 없다.
고전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 "형제"는 기독신자를 이름이다. 신자가 범죄할 때엔, 교회는 그를 고립(孤立)시킨다. 그렇게 하여야, (1) 그 범죄자가 고독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낙관(樂觀)하지 못하며 깊이 반석하게 된다. (2) 기독교회의 도덕적 순결성을 보존할 수 있다. 이같은 절교는 그 범과자로 하여금 회개케 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절교는 교회의 위신과 순결을 보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페루(Peru)의 하수(河水)들은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되 염수(鹽水)와 섞이지 않고 그대로 흐른다고 한다. 그리고 헝가리 도시 벧그라드(Belgrade)에서 다늅강과 사바(Sava)강이 만난다. 그러나 그 두 강의 물은 서로 혼합되지 않기를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음과 같다고 한다(Trapp).
고전 5:12
외인들을 판단하는 데 내가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 여기 "외인"이란 말은 불신자들을 이름이다. 교회는 불신자의 범죄 건을 징계할 처지에 있지 않다. 그러나 교인의 범행에 대하여 교회가 처리해야 한다.
고전 5: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 롬 2:5; 벧전 4:17 참조.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 신 3:6, 17:7, 19:19, 22:24, 24: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