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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
다. - 여기 "일군"이란 말은 하인(下人)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별히 하급 노예(下級
奴隸)를 가리킨다. "비밀"이란 말은 바울의 사상에 있어선 "전에 감추었던 것이 이제는  
계시(啓示)된  것"  곧,  복음을  의미한아(Grosheide). 핀드레(Findlay)는, 이것이
일반 헬라 이교(異敎)에서 사용된  비밀이란 말 뜻과 같다고 한다. 이교에서는 밤중에
비밀의 의식(儀式)을 거행하면서 거기  참여하는 자들에게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비밀
을 숨겨두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 나오는 "비밀"이란 뜻은, 이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계시하시고 그것을 받은 자들더러 그것을 비밀로 지키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널리 전파하라고 하신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맡은 자들"이란 말은 집의 일을 맡
아 수종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구할 것은"이란 말은,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이란 뜻
이다. "충성이니라"는 문구는 정역(正譯)하면, "충성된 자로 발견됨이니라"고  번역
하여야 된다. 그것은, 그 일군이 하나님 눈 앞에서 충성된 자로  나타남을  이름이다.
"충성"은, 일군이 그 주이니에게서 일을 맡은 대로(그 지시한 대로) 어김  없이  봉행
(奉行)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실, 전심, 전력, 정조(貞操)를 특성으로  하
는 덕행이다.


 고전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 하노니. - 이것은, 바울이 주니미의 일군으로서 주님의 판단  앞에서만
자기를 안다는 것이다. 남드가은 그에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든디, 그는  개의(介意)
치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자기에게 대한 자기 자신의 판단도 표준 삼지 않았다.  그는
주님의 판단만 믿으며 두려워하였다. 아첨하는 자의 칭찬하는 말이 "나"를 더 좋은 사
람으로 만들지 못하며, 원수들의 까닭없는 훼방이 나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
다(Politian). 우드르프가 순교자 로저스(Rogers)를 이단자라고 할 때에, 로저는 대답
하기를 "그것은 심판날에야 알 것이라"고 하였다. 세베루스(Severus)황제는 자기의 할
일에만 관심을 두었고, 자기에게 대하여 무슨 비평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무관심하였
다.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 요일 3:20; 잠 21:2 참조. 여기 "내가"란  말은
바울 자신만 가리킨 것이 아니고 모든 인류의 표본으로 사용되었다. 곧, 누구든지  스
스로 옳다고 해도 실상은 그와 반대일 수 있다. 어떤 때엔, 사람이 스스로 속아  옳은
줄 알게 되나 주님의 판단 앞에서는 불의한 자이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
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
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때가 이르기 전에...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이것
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칭찬 받기 원하는 마음을 제지(制止) 시키는 말씀이다.  인간
의 큰 병통은, 심판 때가 오기 전에 이 세상에서 칭찬과 상급을 다 받으려는  경향(傾
向)이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인간은 나타난 것은 볼 줄  아나,  숨은
것들은 모른다. 그러므로 그는 남을 아주 판단하지 못한다. 숨은 것들을 나타내실  이
는, 오직 재림하시는 주님 밖에 없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
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 여기 "이 일"이란 말은,  당파를  만들지
말라는 교훈을 염두에 둔 말이다. "본"이란 말은 표본이란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과 아볼로를 가지고  각각  당파를  형성(形成)함이  잘못이라는  바울의  경고는
(1:12), 그 밖에도 많은 당파들의 폐단을 막으려는 표본적 경고였다. 고린도 교회에는
유대주의자들의 당파도 있었다.
   "긺한 말씀"은 구약의 말씀이니, 곧 교만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구약에 있는 이런 교훈에서 이탈(離脫)하지 말 것을 배워야 한다. 곧, 그들은, 인물을
자랑하는 의미에서 교만하게 작당하면 안 된다.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
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란 말은,
"누가 너를 남보다 우수하다고 차별하더냐"란 뜻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자긍
(自矜)을 꾸짖는 말씀이다. 그 내막은 이렇다. 곧, 그들은 각각 인물을 중심하고 자랑
하며 당을 지었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누가 준 것인가 하고, 바울은  책망한다.  그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모든  다른  좋은
것들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랑할만 한 근거를 하나도 가지지 못
하였다. 실상 우리 인생은 본래 없던 가운데서 창조되었으니 만큼, 자기 자신의  밑천
이란 것은 전연 없었고 공(空)에 지나지 못하였다.

 

 고전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에 대하여 풍자적(諷刺的)으로 꾸짖는다. 짜들은, 그리스도의 구
속적 은혜를 최후적 완성의 단계에서 누리는 듯이 높아졌다. 저들은 영교(靈驕)를  가
지고 모두 다 왕 노릇 하였다. 저들은 사도들을 멀리 떨어 버린 듯이 그들과는 아무런
접촉도 없이 저희들끼리 높이 놀고 있었다. 그러나 저들의 이런 행동(사도들을 제외하
고 높아진 행동)은 헛되다. 그 이유는, 저들이 진정하게 영적(靈的)으로 왕  노릇하려
면 사도들과 함께 왕 노릇하여야 되겠기 때문이다. 바울은 저들이 참되이 왕 노릇하기
를 원한다. "왕 노릇"한다 함은, 진정한 의미에선, 구원의 최후적 완성의 영광을 누림
이다. 이것은 사도들을 제외시키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영적교만(靈的驕慢)을 가지고 자기들을 벌써 다 된 듯이 자처하는  자
들은, 실상 사도들 없이 저희끼리 왕 노릇하는 자들이다. 사도들은, 신자들의  구원이
이 세상에서  벌써  완성되었다고  가르치지  않았고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다(빌
3:12-14). 그들은, 다만, 신자들이 이 세상에선 연약으로 더불어 동행하며 미천한자리
에 있음이 당연한 것임을 가르쳤다(고후 12:5, 9; 빌 3:21). 이 세상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는 신자들은 사도 없이 왕 노릇 하는 자들이니, 곧, 구원의 정로(正路)인  사도적
노선(使徒的路線)에서 이탈(離脫)된 자들이다.

 

 고전 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 본절은, 헬라 원어 까르(*
   )를 초두(初頭)에 가지어, 윗 말씀의 이유임을 밝히고 있다. 곧, 바울이 저렇게 고
린도 교인들에게까지 멸시를 당한 이유는 궁극적(窮極的)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9절). "하나님"이란 말이, 원어의 어순상(語順上)  앞서
나와 역설(力說)되어 있어서, 바울의 미천(微賤)하게 된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는 사실
을 힘있게 지적한다. 복음의 사역자가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는 목적은, 결국  하나님
의 백성에게 생명의 은혜가 나타나기 위함이다(고후 4:10-12).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다"함은, 그 때에 사형 죄수(死刑罪囚)를 사
자들과 싸움 붙여 죽도록 한 것을 염두에두고 한 말씀이다. 이렇게 죽이는 날 먼저 그
죄수를 모든 백성 앞에 구경시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런 죄수  같이  미말
(尾末)에 두셨다 함은, 바울에게  대한  대우(待遇)가  가장  낮고  천함을  가리킨다
(Grosheide).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도 낙심 절망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가 낙심 절망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그의 모든 천대 받는 원인을 하나님의 섭리에 돌려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서 그에게 대하여 그렇게 하실 때에 무의미(無意味)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바울의) 당한 멸시와 천대로 인하여 나타났다(고후 12:9).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됨"은 영계(靈界)에나 인간계에 구경거리됨을 가리킨
다. 이는 가장 자극성(刺戟性) 있는 구경거리인 만큼, 영계에까지 흥미를 가진다.  영
계의 천사들은, 신자들이 복음을 믿어 구원 받는 일에 대하여 보기를 원한다. 그 이유
는 그들이 이 일을 가장 놀랍게 여기는 까닭이다(벧전 1:12).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하
여 천대와 멸시를 받으매 천사들은 흠모하는 뜻으로 구경하거니와, 사람들은 단지  멸
시하는 호기심으로 구경하였다. 그는 천사들의 흠모하는 태도 때문에  능히  사람들의
멸시하는 구경이 주는 모욕(侮辱)을 이길 수 있었겠다. 어쨌든 그는 여지 없이 하나의
관광(觀光)의 대상으로 취급 받았으니 그것을 보아 그는 (1) 자기 개인의  영예(榮譽)
를 위한 의미에선 아무런 변호나 주장이 없었고 (2) 전적으로 자기를  하나님과  교회
앞에 제공(提供)한 실생활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바울이 이런 말씀을 하게 된 이면(裏面)엔, 고린도 교회에 당파전(黨派戰)으로  인
하여 생긴 폐단이 얼마나 컸던 것이 내포(內包)되었다. 당파 싸움이 있는  곳에는  이
당파가 모해(謀害)하여 서로 반목질시(反目嫉視)한다. 거기에는 서로 천대하며 멸시하
는 일도 있다. 바울은, 그를 배척하는 당파의 사람들에게서 많은 천대를 당하였던  듯
하다. 기독신자들도 당파 운동 때문에 편견(偏見)을 가지게 되면 의인을 박대하게  되
는 병에 걸린다.

 

 고전 4: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
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살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것인 만큼, 자기의 처신(處身)문제에 있어선 무슨 술책을  사용하
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솔직하고 진실하였을 뿐이다. 이런 처세는, 세상 사람이 보기
에 미련하였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 때에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진리를  알고
그것을 자기들이 지어낸 듯이 교만하였다. 그들은 마땅히자신은 미련한 줄 알고  겸손
했어야 될 자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처신법(處身法)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위할 뿐인 것만큼 이  세상
사람처럼 반대자를 대항하기보다 도리어 그들에게서 해를 받았다. 그것은 약하여 보이
는 처세이다. "너희는 강하다"함은, 위에 말한 바울의 처신법과 정반대(正反對)된  처
신 원리이다. 그들은 스스로 약한 자로 자처(自處)하지 않고 잘난 체하며 강한 체하였
다.
   또 그리고 그들(고린도 교인들)은 높은 대접(존귀) 받기  원하는  영웅주의(英雄主
義)를 가지나, 사도 바울은 오히려 낮아진 데서(비천한데서) 만족을 느낀 것이다.

 

 고전 4: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  이것
은, 주님의 복음을 위한 바울의 수고가 어떻게 컸던 사실을 말해 준다.  이렇게  그의
생활은, 고린도 교인들의 안일(安逸)한 생활과 반대로 비천하였다. 그가 여기서  이런
말을 하게 된 주요 동기는, (1) 그런 수고의 영적가치(靈的價値)를 지적하려는 것보다
그 생활의 비천한 면(面)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곧, 고린도 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육적(肉的)으로 잘 살지만, 자기는 미천(微賤)하다는 뜻이다. (2) 그리고  그가  이런
말을 할 때에 원망이나 불평을 울림이 아니고,그가 그런 미천한 생활을  오히려  달게
여기며 은혜 받는 길로 아는 의식(意識)은 그냥 가지고 있었다(고후 12:9,  10).  (3)
그리고 그는 그의 이와 같은 미천한 생활과 반대된 고린도 교인들의  생활을  풍자(諷
刺)한다.

 

 고전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 그가 손으로 일을 하였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노동을 천시(賤視)하는  의미가  아니
다. 그는 노동을 존귀하게 여겼다(살전 3:8-10). 그가 여기서 자기의 하는 노동에  대
하여까지 관설(關設)한 것은, 자기 수고의 여러가지 각도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후
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축복한다 함은 흔히  복음을  전함으로  실행된다(Grosheide,
Tegenover laster stelt Paulus zegen, we denken niet bepaald aan  het  uitspreken
een zegen, maar aan het brengen van een  zegen  in  het  algemeen,  doordat  aan
lasteraars  het  evangelie  gepredikt,  wordt,  1  pet,  3:9.-Eerste  Bridf  aan
Korinthe, p. 163).
   "핍박을 당한즉 참고." 바울은 인내(忍耐)의 사람이었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란 교부(敎父)는 바울을 소개하면서 그를 "인내의 사람"이라 하고,  그  말을
맺을 때에도 역시 같은 말을 하였다.

 

 고전 4:13

  비방을 당한 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 "권면한다"함은 좋게 말한다는 뜻이다(speaking kindly). 이것은  예수님
을 모본한 행위이다(벧전 2:23). 칼빈과 루터가 후에 교리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에, 칼빈은 말하기를 "루터가 나를 마귀라고 하여도 나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높
이리라"고 하였다.
   "더러운 것"은 씻어 내는 오예(汚穢)요. "찌끼"는 긁어 내는 쓰레기를 이름이다.바
울은, 그가 세상 사람에게 천대 받는 사람이었으니 만큼, 자기를 이렇게 형용한  것이
다. "더러운 것"(*                         )이란 말과 "찌끼"(*                )란
것은 옛날 아덴에서 가장 하등 죄수(下等罪囚)를 가리킨 별명(別名)이었다. 그 죄수들
은, 그 나라의 재앙이 해제(解除)되기 위하여 바다에 빠쳐 죽임이  되었다  한다(J.B.
Lightfoot, Notes on the Epistles of St. Paul, P. 201).

 

 고전 4:14

   내가 너희를 부그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 바울은, 목회자(牧會者)로서 그 양떼와 자기와의 사
이에 하등(何等)의 간격이 없었다. 그는 솔직하게 그 양떼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
다. 그러나 그는 사랑으로 권면하여 그들로 회개케 하려는 것이었다. 단지 그들의  잘
못을 폭로(暴露)시켜 그들을 부끄럽게 함에서 통쾌감(痛快感)을 가지려는  것이  그의
권면의 목적이 아니었다.
   이렇게 양떼를 자녀 같이 대할 수 있음은, 양 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떠함을  알
려준다. 이 사랑은 물론 그가 주님을 사랑함에서 지니게 된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는 주님의 피로 사신 양 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요 21:15-17;  요일  5:1
참조.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 여기 "스승"이란 말은 헬라원어로  파이다고구
스(*                     )이니 몽학선생(蒙學先生)이란 뜻이다. 이와 같은  선생은,
주인 집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내왕(來往)하는 종(奴)의 일을 하였다. 이와 같
은 선생은 보통으로 엄하였다고 한다(Grosheide).
   바울은 자기가 아비와 같은 선생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복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여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란 말은 중요하다. 복음의 내
용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결단코 자기의 힘으로 그들을 나았다는 것을 생각하
지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우리를 거듭(重生)나게 하신다.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버지 격이니, 그들은 그를 본 받을 만하다. 그들은 특별히 9-13절에  있
는 그이 실생활을 본 받아야 한다고, 여기 지시되었다. "나를 본 받"으란 말은,  여간
한 사제관계(師弟關係)에선 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말은 부자간(父子間)과 같은  사
랑으로 통한 관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
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
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모본하도록 되기 위하여, 그
는 자기를 저들에게 이해 시킬 디모데를 보냈다고 한다. 이것도 바울의 솔직한 언사이
다. 여기는 정치성(政治性)이 전연 없다. 그는, 자기를 저들에게 이해 시킬 중개적 인
물(仲介的 人物)을 보냄에 있어서 은근하게 하지 않고 그 보내는 취지를 표명(表明)하
면서 하였다. 이런 솔직한 정치성 없는 처사는, 사랑으로 통하는  사이에서만  취급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가는 사신으로 택한 이유는, 그가 디모데를 사랑한
까닭만 아니었다. 디모데는 진실한(충성된) 종이었으니 무엇보다도 그것(진실성)이 그
때에 교회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고전 4:2). 디모데의 사명은, 고린도 교인들에
게 가서 바울의 "행사 곧... 가르치는 것을" 기억시켜 본 받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
"행사"란 말을 "가르치는 것"이란 말로 바꾼 이유는, 그의 행위와 교훈이  서로  일치
(一致)하여 일체(一體)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히 교회 일 관계로 공적성격(公的性
格)을 띤 그의 주장(교훈)과 행사의 일치를 보여준다. 바울은 행사와 교훈이 일치하지
못하다는 비방을 받은 적도 있었으니(고후 1:17-20; 갈 5:11), 이 때에 디모데의 중개
적 역할은 필요하였다.


 고전 4: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  졌으나.  -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비평하여 말하기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오기
를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교만하게 바울을 무시하였다.

 

 고전 4: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 바울이 이때까지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는 그 원수들을 대하기 두려운 까닭이 아니었다. 그는 주님의  허락만  기다렸다.
그의 행동 원리는 주님의 뜻의 여하(如何)로만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가 사람을 알 때에 그 사람의 말보다 능력을 표준 삼았다.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계(統治圈界)를 이름이다. 그런데 복음 운
동이 그 통치의 사역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Calvin).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지 아
니"하다 함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하는 말씀의 가치(價値)를 무시함이 아니다.  이
것은, 사람들의 모든 자랑하는 말이 천국 운동에 소용없다는 뜻이다.
   "능력"이란 말에 대하여, 하지(Hodge)는 말하기를, 그것은 진상(眞相)을  의미한다
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꾸짖어 하는 말이, 이  사람
들의 말하는 바를 시험해 볼 필요 없고 다만 그들의 신앙 실력(신앙의  진상)을  알아
보겠다고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 "능력"이란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것이
다. 그는 천지 만물을 없던 가운데서 창조하신 것보다 더 큰 능력으로 죄인을  의인으
로 간주하시며 의인으로 만들며 자녀로 삼으신다(롬 1:16). 이 능력은 오늘날도  역사
하신다. 이 능력을 받지 않고 구원 운동을 할 자는 없다.

 고전 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교회를 다스릴 권위를 가졌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한다. 그가 저들을 다스리는 방침의 강약여부(强弱與否)는 저들의 회개여부(悔改與否)에 달렸다. 저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매"(곧, 권징을 비유함)를 가지고  저들에게 임할 것이다. 만일 저들이 회개하면 그는 사랑과 온유로 저들을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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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1장
116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2장
115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3장
114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4장
113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5장
112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6장
111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1장
110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2장
109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3장
108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4장
107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5장
106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6장
105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7장
104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8장
103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9장
102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10장
101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11장
100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12장
99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13장
98 갈라디아서 박윤선 주석, 갈라디아서 01장
97 갈라디아서 박윤선 주석, 갈라디아서 02장
96 갈라디아서 박윤선 주석, 갈라디아서 03장
95 갈라디아서 박윤선 주석, 갈라디아서 04장
94 갈라디아서 박윤선 주석, 갈라디아서 05장
93 갈라디아서 박윤선 주석, 갈라디아서 06장
92 에베소서 박윤선 주석, 에베소서 01장
91 에베소서 박윤선 주석, 에베소서 02장
90 에베소서 박윤선 주석, 에베소서 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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