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로마서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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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6:1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 이것은, 5:20의 말씀 "죄가 더한 곳에 은
혜가 더욱 넘쳤나니"에 대한 가상 질문(假想質問)이다.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 이것은 헬라 원어로 메 게노이토(*                      )니,
아주 강한 부정(否定)이다.  은혜는 인간이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구원  운
동에 있어서, 인간이 주체(主體)가 아니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체이시며 인간
은 언제나 객체(客體)이다.  객체인 인간으로서, 주체인 은혜에 대하여 아무런 능동적
행동(能動的行動)을 취하지 못한다.  인간은 객체이니 만큼, 언제나 피동적 위치(被動
的位置)에 있을 뿐이다.  또 은혜는 인간의 예술(藝術)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조
작에 의한 자위주의(自慰主義)는 은혜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위로  받는  주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질적 동일(質的同一)을 가정(假定)하는 그릇된  철학에  불과하다.  
이런 사상을 가진 자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임의로 주관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
러나 진리는 그런 망동(妄動)을 용납하지 않는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
나니"란 성구는 하나님의 긍휼로 되는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언사이고, 은혜를 많게
하는 법칙을 교시(敎示)함이 아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 여기 신자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  함은,  무슨  뜻인가?  
"죽은"이란 말의 헬라 원어(*                       )는, 부정 과거 시상(不定過去詩
想:Aorist)으로서 역사적(歷史的)으로 단번에 된 사건, 곧, 신자가 골고다에서 그리스
도에게 대표되어 죄에 대하여는 죽은 역사적 사건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
한 그릇된 해석들도 있으니, 다음과 같다.  곧, (1) 슈미드(R. Schmidt)는, 여기  "죄
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한  개의  이상
(理想)에서만 그러하다는 뜻이라고 함.  (2) 완전주의(完全主義)에서는, 이것이  신자
의 실제 생활에 있어서 사실화(事實化)한다고 함.  다시 말하면, 신자가 이  세상에서
도 죄에 대하여 죽은 듯이 관계를 끊는다고 한다.  위의 학설들이, 사도 바울의  생각
과 다른 것이다.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참 신자들도 많은 손해를 보면서 혹시 죄에 빠지는 일
이 없지 않다(7:15이하).  그러나 죄를 저항하지도 않고 그냥 죄 가운데  사는  일은,
참 신자로서 하지 않는다.  비유컨대, 신자는 길 가는 사람 같다.  그 길을 가다가 혹
시 넘어지는 때가 있으나, 그 넘어지는 것을 기탄(忌憚)없는  습성(習性)으로  지니고
있지는 않다.

 

 롬 6:3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 여기 "합하여"로 번역된 헬라  원어(*          )는,
"속으로"라고 번역함이 합당하다.  신자가 예수님의 속으로 세례를 받았다 함은, 그가
예수님의 속으로 들어가 연합함을 의미한다.  예수님 속에 들어가 그로 더불어 연합한
자는, 예수님의 것이 되어진 것이다.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그의 소유물이  된  자는,
(1) 예수님을 신뢰하고 염려하지 말 것이며, (2) 자기 본위(本位)로 살지 말고,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서만 살 것이며, (3) 불결한 생활을 용납하지 말고  주님과
같이 거룩하기를 힘쓸 것이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음 - "죽으심과 합하여"란 말은  "죽으심  속으로"란
것이다.  "죽으심 속에 세례 받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1)  믿는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신 공로를 누림에 참여한다는 것이고, (2) 예수님께서 우리 신자들의 죄
로 인하여 죽으셨으니 만큼, 죄와 우리와의 관계도 죽은 것처럼 결국은 단절된다는 뜻
이다.

 

 롬 6:4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장사되었다"함은, 생명이 아주 끊어져 소생할 수  없이
되어 무덤에 묻어 버림이 된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으
니, 그 죽음의 효과는 우리가 죄 값으로 인하여 죽을 죽음을 완전히  죽어  주심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죽음을 완전히 죽어 주셨으니, 우리의  죽
을 죽음이 이제는 장사된 것처럼, 다시 회생할 우려는 전연 없다.  이 죽음은 반생 반
사(半生半死)의 상태가 아니고, 백퍼센트 죽었고 또 매장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 -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표현을 가리키는 말씀이다(요 11:4).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사실은, 우리의 영적 중생(靈的重生)과 나눌  수
없는 관련성을 가진 것이다(벧전 1;3).  먼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
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중생시키신("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하신)것이다(요  16:7).  
구원 사업이 왜 이런 순서를 밟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명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시고 우리는 몸이니, 그의 부활이 있은 후에야 그의 몸된
우리가 부활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
중생을 얻는 것은 장래 몸의 부활을 준비하는 것임 - 8:11)의 전제(前提)요 선봉인 것
이다.

 

 롬 6:5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 - 이 어귀에 있어서 "연합한 자"란 말은 쉼푸토이
(*                   )인데, "접붙인다"는 뜻이다(Sanday).  접붙인다는 것은,  질이
다르던 두 나무가 접합하여 같은 질의 한 나무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와 신
자와의 관계가 이와 같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니, 우리도 그  죽
으심과 연합하였다고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으로 대신 죽으신  때
에, 죄 값을 지불하는 의미의 우리의 죽음은 없어진 까닭이다.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자들(상반절)
은, 장래의 그리스도처럼 다시 살 것이다.  위에 말한 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
다 함은, 우리의 개성적 인격(個性的人格)이 다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그것이 되어  버
렸다 함이 아니고, 개성적 존재는 그대로 있으면서 생명과 영광을 누림에 있어서 그리
스도의 것에 동참한다는 것뿐이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 여기 "알거니와"란 말의 헬라 원어(*                 )는 경험
적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천연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말            
 
(*           )과 다르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도(道)를 생래적(生來的)으로 알 수 없
고, 오직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는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알 수 있다.
   우리 옛 사람 - 이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어 내려온 부패성(腐敗性)을  말
함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 옛 사람을 내포하고 있다.  새 사람과 옛  사람의  구별
은, 오직 참 신자에게만 식별(識別)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 한 사람  속에  인격이
둘이 있다 함이 아니고, 성질이 둘이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신자는, (1) 옛  사람을
식별하여 그 옛 사람의 우매(愚昧), 그 옛 사람의 위험성을 알고 완전히 그 옛 사람을
떠나려 하며, (2) 자기가 그런 옛 사람과 다른, 행복된 새 사람이 된  사실을  인하여
항상 감사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 위의 2절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란 어귀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여라
   죄의 몸 - "몸"이라고 번역된 헬라원어(*           )는, 생리적 신체(生理的身體)
를 가리킨다.  그러면, "죄의 몸"이란 어귀는 인간의 몸(생리적 신체)을 죄시(罪視)하
는 뜻인가?  그렇다면, 몸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본 성구(고전 6:19)의 의미와  충돌될
터이니, 그렇게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어귀의 의미는, 주석가들에 의하여 각각 달
리 해석되었으니, (1)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죄의 몸"이란 것은  그저
생리적 신체를 말함이 아니고, 죄에게 이용을 당하여 지배를 받는 경우의 생리적 신체
를 가리킨다고 하였고, (2) 칼빈(Calvin)은, 여기 "죄의 몸"이란 말은 죄와 부패의 덩
어리(the mass of sin and corruption)를 가리켜 말한 것 뿐이라고 하였다.
   멸하여 - 이것은, 신자에게서 죄로 말미암은 저주의  지배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으니 만큼, 죄로 말미암은  저주
는 우리에게서 지배권(支配權)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것은 멸죄(滅罪)의 객관 방면이
다.  (2) 그리고 우리 구속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고 성령님의  내주(內住)
로 말미암은 새 생활이 성립되었으니(6;11).  이것이 멸죄의 주관적 방면이다.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노예는, (1) 어떤 세력에게 누리어 어쩔  수
없이 거기에 굴종하고, (2) 그 굴종하는 대상과 운명을 같이 한다.  인간이 죄에게 노
예된 한에는 그는 그것에게 굴종하여 범죄하는 자리에 빠지고, 마침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공로를 인하여, 참 신자된
자는, 죄에게 굴종하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그것과 운명을 함께 하지 않는다.

 

 롬 6:7

  이는 - 이 접속사는 앞절의 이유를 보여준다.
   죽은 자 -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어 그 죽으심의 공효를 누리는  자라
는 의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이, 몇  가지  의미의  죽음이  되었는가?  
(1) 율법과의 관계에 있어서 죽은 것(갈 2:19).  이것은, 율법의 성취자 곧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가 만족시킴이 된 것을 의미한다.  (2) 정욕을  향하여  죽은
것(갈 5:24).  곧, 신자가 성령을 받은고로 정욕의 노예에서 벗어나  의를  따름이다.  
(3) 세상을 향하여 죽은 것(갈 6:14).  이것은, 신자가 천국 소망을 유일의  소망으로
가지기 때문에 이 세상을 애착하지 않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
으심을 믿는 자와 세상과의 관계는 아주 끊어졌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 - 4:3 해석 참조.

 

 롬 6:8,9

  이 귀절들은, 그리스도와 신자가 공사 공생(共死共生)의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신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함께 죽었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고로 그들은 믿음으로 그의 죽음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
께 산다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부활과 꼭 같은 부활의 복에  참여함
을 가리킨다.
   이는 - 이 접속사는, 신자가 확실히 부활할 근거를 보여준다.  신자가 확실히 부활
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였으니 만큼,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운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
은, 주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꼭 같은 부활체를 가지게 된다.  빌  3:21
참조.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신자들의 모든 죄 값을  그의
죽으심으로 지불하였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이 우리에게 아무런 범접도 할 수 없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후에도 이따금 죄와 상관하게 되는 때가  없지
않으나, 그것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옛 사람의 성품의 일시적 발작에 불과하다.
   단번에 죽으심 - "단번"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에파팍스(*               )인데 단
한 번을 뜻하는 바 여기서 강세(强勢)를 띠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들이신
만큼, 죄인들을 대속한 그 죽으심의 가치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그러므로 속죄에  있
어서, 그의 한 번 죽으신 것이 영원히 족하다(히 7:27).  그러므로 (1)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여러 번 죽으실 필요가 없으며, (2) 시대의 변천
을 따라서 다시 죽으실 필요도 없다(히 9:25-28).  그의 한 번 죽으신 그  옛  사실을
믿는 그 누구에게든지, 꼭 같은 구원이 임한다(요일 1;3).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사심을  말함이
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가 죽으시기 전에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으셨다는 암시를  포
함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신다.

 

 롬 6:11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
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 "여긴다"는 말(*                     )은, 인간이 그  어
두운 심리(心理)로는 느끼기 어려운 것에 대하여 맹약적(盟約的)으로 태도를 결정하고
간주하는 행위이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는, 인상(印象)이나 감상(感想)을 통하여  관
계를 맺기 어렵고, 오직 신앙에 의하여 "간주"하는 행동으로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관계를 맺은 후에는, 그 사실에 부합되는 모든 영적 열매들이  맺힌다.  
진리는 열매를 맺는 법이다.

 

 롬 6:12,13

  죄로 너의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 "몸"은 장차 넘어질 장막이니,  거기에
는 죄악이 거주한다.  이 몸이 있는 동안 죄악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
전(靈戰)에 의하여, 그것들이 우리의 몸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렇다.  곧, (1) 우리는 이 영전에 있어서  휴전할  날이
없다는 것이며, (2) 우리의 병기는 우리 자신에게 속한 어떤 감정이나 의지가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
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니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이 귀절은, 신자가 모든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 의(義)를 행해야  될  것을  가리킨다.  
신자가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여, 이제는 자유 방종할 수 있는  무율법주의
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가 율법 아래 있지는 않으나 율법을  가지기는  한  자이다.  
그가, 그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 의를 행하되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또는 철저하게  해
야 되는가?  그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란 말이 보여 준다.  이것은
아주 새 사람이 되어 행하라는 의미도 가지지만, 죽었던 것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
혜의 빚을 진 자로서 의를 전적으로 힘쓰라는 의미도 가진다.  이와 같은  윤리  생활
은, 현대인이 흔히 말하는 도덕 무장(道德武裝)정도의 것이 아니다.   도덕  무장이란
것은, 단지 인도주의(人道主義)의 것이고, 이런 하나님 중심의 심각성은 가지지  못한
것이다.
   여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은, 신자들이 죄악으로 더
불어 싸워야 할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죄악을 이기려면, 보통으로만 힘써서는  안된
다.  그는 전쟁하는 것과 같이 결사적으로 힘써야 된다.  그는 피흘리기까지 죄를  대
적해야 된다(히 12:4).

 

 롬 6:14,15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
이니라 - 인간이 율법 아래만 있는 동안은, 정죄 받을 뿐이고 사죄 받지 못하며, 범죄
치 않게 하는 힘도 없다.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 아래로 인도하심은, 멸
죄 처분(滅罪處分)의 최후 방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은혜 아래서도  죄를  범함은,
(1) 무지한 죄요, (2) 사랑을 원수로 갚는 독한 죄이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신자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입은 후 억천만 가지의 모든  다른
노예 생활은 면하였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종만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종이 되
면 비참할 뿐이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면, 이 세상에서는 성도가 되고 영원한  세계에
서는 왕이 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의"자체와 같이 빛나며 복되다(고후 5:21).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 로마의 신자들은, 윗절이 보이는대로, 의(義)의 종이  되
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엔, 그들이 어느 정도 벌써 "의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로 바울의 감사가 나온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인간의 가능성
이 아니고 하나님의 하게 하시는 일이다.  만일 그것이 인간의 가능성이라면,  그것도
율법 실행처럼 무거운 멍에일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그
것을 믿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의를 순종하도록 도와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
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신종(信從)한 로마 사람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
사한 것이다.

 

 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
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
함에 이르라 - 여기 이른 바 "육신이 연약"이란 것은, 신령한 진리를  깨닫기  어려운
지적 연약(知的軟弱)을 가리킨다(Sanday and Headlam.) "사람의 예대로 말함"은, 영적
지각(靈的知覺)이 부족한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완전한 인간 사회의 구
체적인 사리(事理)를 예제(例題)로 들어 설명한다는 뜻이다.  신령한 일을,  구체적인
이 세상 사리로 완전히 보여 주기는 어렵다.  인간의 죄악 관계를 노예 관계로 비유하
는 것은, "사람의 예대로 말함"이다.  "드려"란 말은 헌신을  가리킨다.   불신자로서
범죄하는 것은, 실상 무서운 원수에게 몸을 바치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
도를 믿어 의에게 몸을 바치는 것은, 거룩함과 영생에 이르는(22절) 기쁜 일이다.

 

 롬 6:20,2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 "의에 대하여 자유
하였다"함은, 의를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의에 대하여 자유함은 실상 자유가 아
니고, 진정한 자유에서 이탈하여 무서운 노예 생활에 빠짐이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하나니  이
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 바울은, 여기서 죄악에 노예된 자의 생활의 결과를 지
적한다.  죄악으로 행하는 자는, 그 생활 도중에 그것의 비참한 사실을  느끼지  못한
다.  어두움은 어두움을 식별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가 그 생활의 결과가  드
러날 때에는 그것의 참상(慘相)을 깨닫는다.  특별히 신자는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옮기웠으니 만큼, 그 참상을 깨달을 뿐 아니라, 부끄러워하기까지 한다.   참된  신자
는, 죄악 생활의 참상이 사망에 직통하고 있는 내막까지 내다 본다.

 

 롬 6:22,23

   이 부분에서 주목되는 것은, (1)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그 때부터  그
가 주인 없는 처지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다른 주인 곧,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이며, (2) 하나님의 종이 된 자리는 곧바로 한 계열(系列)로 직통된 거룩과 영생과도 연접(連接)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는 얼마든지 기쁘게 순종할 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이 말씀이 밝히 가르치는 것은, 사망은 인간에게 당연히 와야 할 값(삯)이지만,  영생은 그런 인과 관계(因果關係) 없이 전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主權的恩惠)로  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들은 소망을 가진다.  죄인들이 에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받는다.  이런 은사를 믿는데 방해되는 심리는, (1) 믿음보다  업적(業績)을 앞세움이고, (2) 믿음보다 자기의 결심을 앞세우고, (3) 믿지는 않고 낙심함이고, (4) 자기를 거부하지 않고 교만함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그 무엇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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