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5:1-3
베스도가 도임한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 바울에게 대한 유
대인들의 음모를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지 오래였음이 알려진다. 그들은 옳은 사
람을 죄목 없이 죽이려 하고, 암살까지 하려고 하였다. "베스도"는 벧릭스의 후임으로
와서 만 2년도 못되어 죽었다(주후 60-62년).
이 때에 "대제사장"은 아그립바가 세운 이스마엘이란 사람이었다. "높은 사람들"이
란 장로들을 가리켰다. 베스도의 "호의"란 말(* )은 베스도의 은혜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이 때까지 법망(法網)으로써는 도저히 바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베스도 개인의 은혜에 의하여 바울을 잡으려고 하였으니, 그것이야말로
불의한 방법으로 의인을 해치고자 함이다. 이 때에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동원된
것만 보아도 베스도를 접촉하는 그들의 방법이 공정한 법보다 사람들의 권력을 배경한
것이었다.
행 25:4,5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 갈 것을 말
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
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청원에 응하지 않고 끝내
그들에게 가이사랴로 내려와서 송사하도록 권고하였다. 하나님을 모르는 베스도도 끝
내 바울을 보호하가 방향으로 처사한 것이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
하신 섭리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이번 걸음으로 로마까지 가도록 모든 일
을 주장해 주신다.
헬라 원문에는 4절 초두에 "그러나"란 말(* )이 있어서 베스도의 의견이 유대
인들의 청원에 반대됨을 진술한다. 그는 관리로서 의리(義理)와 준법 정신을 굳게 지
닌 점에 있어서 모본이다. 그는 무언 중에 그 때의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듯하였다. 하
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도 부패한 때에는 이 세상에 속한 자에게서 부끄러움을 당할
정도로 비열하다.
"옳지 아니한 일." 이 말은 헬라어 "무엇"이란 말(* )을 의역(意譯)한 것이다.
차라리 헬라 원문 그대로 "무엇"이라고 번역해야 좋을 것이다.
행 25:6,7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였으나 그들이 그를 정죄한 죄목들에 대하여 믿을 만한
증거를 진술하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은 행동은 언제나 악인들이 의인을 해하려 할 때
에 취하는 것이다. "팔일 혹 십일." 여기 "십일"은 그의 떠나던 날과 도착하던 날을
포함시켜 계산한 날수이고, "팔일"은 예루살렘에 체류한 완전한 날수만 계산한 것이
다.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 베스도는 재판 사건 처리에 성실히 노력하는 의미로 가
이사랴에 돌아온 그 다음 날 법정에 앉았다. 이 점에 있어서 베스도는 직무에 태만했
던 벧릭스와 대조된다. 벧릭스는 부패한 관리였기 때문에 억울함을 당한 바울을 동정
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일도 지연시켰던 것이다. 24:22-27참조. 이제
그가 떠나고 베스도가 그의 후임으로 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신 일이 아닐 수
없다.
행 25:8-11
"변명"할 기회를 얻은 바울은 자기의 무죄함을 강력히 변증하는 동시에, 예루살렘
에 가서 심문 받을 필요 없고, 황제 가이사에게 호소하겠다고 한다. 이 때에 그가 상
소하겠다고 한 것은 법정 소송에 대한 기독 신자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신
자이지만 그가 상대한 유대인들은 신자가 아닌 고로 억울함을 당한 그가 소송을 제기
할 수 있다. 고전 6:1-7의 말씀은, 신자가 신자를 상대로 하여 불신 법정에서 소송하
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때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일을 빙자하여 잘못 생각하고 '바울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유대인들을 걸어 가이사에게 고소하였으니, 기독 신자가 믿는 형제
를 걸어 불신 법관 앞에서 소송할 수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한다. 이 때에 유대인들
은 바울과 같이 믿는 형제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였으니 예수
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도리어 기독신자들을 박해하였으니, 그들을 하니님 공경하
는 자로 간주하지 못한다. 바울을 박해하는 그들은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원
수들이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함에 의하여 피소(被訴)된 자리에서 어디까지나 복음만 위하
는 자기의 신분을 변호하려고 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의 손에서 고난을 자취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캄벧 몰간(C.Morgan)은 말하기를, "일부러 순교를 찾아 구하여 순교하
는 것은 참 순교가 아니다. 일부러 고난 구덩이에 자기 자신을 빠뜨리는 사람은 실상
고난의 진리를 모르는 자이다."고 하였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
할 목적으로 상소한 것이었고, 결코 자기 민족을 고소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28:19 참
조.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8절) - 바울이 "율법"을 무시한 적은 전연 없었고, 도리어 율법이 그리스도 신앙에
의하여 완성된다고 말할 뿐이었다(롬 3:31). 그는 "성전"을 무시한 적도 없었고, 그가
그 안에 들어가서 결례를 행한 바 있었다(21:26). 그의 이와 같은 행사는 성전을 종중
히 여긴 증표이다. 또 그는 "가이사"에게 대하여 거스리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도리
어 신자들로서는 그에게 순종해야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롬 13:1). 그런데 그가 가이
사를 반대하는 소요를 일으킨다고 한 것은 유대인들의 거짓된 선전에 불과하였다
(24:5). 사실상 소요 사건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반대하기 위해 일으켰던 것이다
(21:26-28).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불의(不義)에 대한 기독자의 처세 원리이다. 곧, 기독자
는 그를 해하려고 공격해 오는 불의한 훼방에 대하여 항변(抗辨)할 수도 있다는 것이
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을 증거함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바울이 만일 위의 세 가지
(율법, 성전, 가이사)에 대하여 범죄한 자로 판정되었다면 복음 전하는 그의 신분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졌을 것이다. 그러허게 되었다면, 그것은 복음에 상처를 주었을 것
이다. 전도자는 그 신분까지도 복음을 그대로 순수하게 보여주는 복음의 가치가 되어
야 한다.
내가 가이사의 짜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10절 상
반) - 바울은 여기서 어디까지나 법질서에 호소하였다. 그는 정당 방어를 위하여 사률
상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그가 지금 베스도 앞에 선 그것은 가이사의 대표자 앞
에 선 것이니(6절), 그는 거기서(베스도 앞에서) 재판 받음을 옳게 여긴다. 그가 이렇
게 함으로써만 저 강퍅한 유대인들이 계략이 실패를 당할 것이고, 그들이 실패해야만
그들의 교만이 꺾이운다. 그들의 교만이 꺾이우기 전에는 그들은 회개할 소망이 없었
다. 그러므로 바울의 주장은 결국 저 유대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유익을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행 25:12
"배석자"란 말(* )는 재판을 돕는 합의부원(合議部員)들의 회
합을 가리킨다.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는(10절) 바울의 소원이 배석 판사들의 회의에
서까지 통과되었으니, 이제는 그가 그의 원수들(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는 유대인
들)의 손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에
의한 것이다.
행 25:13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 "아그립
바왕"은 아그립바 2세인에 대헤롯의 손자이며, 사도 야고보(세배대의 아들)를 죽인 아
그립바 1세(헤롯)의 아들이다. "버니게"는 그의 누이인데(Morgan)아그립바가 자기 누
이로 더불어 불륜(不倫)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버니게는 이렇게 자기 오라비와 결혼
생활을 하였고, 그 밖에도 그녀에게는 불륜의 생활이 많았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에
갈키스의 왕자, 곧 그녀의 삼촌 헤롯과 결혼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바울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도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준다. 곧, 이런 어두운 사람들까지
도 바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는데(26:30-32), 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
면서 바울을 죽일 죄인이라고(21:31,22:22,23:15,25:15) 한 것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는 자들(눅 18:9)은 저렇게 어두워진다. 잠 26:12에 말하기를,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혹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
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하셨다(마 21:31하반).
행 25:15,16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
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 베스도 총독은
이 때에 아그립바와 버니게에게 바울을 변호해 주듯이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
디까지나 로마의 법 질서에 근거하였다. 그러니만큼 이 점에 있어서 그가 바울을 고소
하는 유대인들의 맹점(盲點)을 지적한 것이다.
행 25:18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이란 것은 황제 가이사에게 대한 반역 행위를 의미하였다. 베
스도는 이렇게 로마의 법률에 의하여 바울을 보호하는 판결을 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이었다. 곧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집
권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이 세상 정치와의 구분을 알리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 구분을 알려주되 어떤 문서나 말로 함보다 재판사건을 통하여 함으로 더
욱 현실적이고 실감있게 알리게 된 것이다. (1)그 때에 이 구분이 유대 사회에 명백하
게 드러나게 된 것은 복음 전파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2)그리고 집권
자들이 복음을 이해할 기회도 된 것이다. 바울을 세우신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렇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그 때에 복음으로 그들(집권자들)과 접촉할 길은 이런 방법(재
판건)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죄 없는 죄수로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지혜로우시다(B.Wielenga, Van
Jerusalem Naar Rome, Derde Deel, 1928,p.313).
행 25: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 뿐이라 -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주장하면서
바울의 새로운 종교적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고, 또 과거에는 충성하기까지 하였다(빌
3:5). 그런데 그가 이제 개종하고 기독교로 넘어오니, 유대인들의 박해가 그에게 왔
다. 이와 같은 때에는 그가 그 가진 새 종교에 확신 없이는 이렇게 굳게 서서 천신만
고(千辛萬苦)를 겪어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때에 그에게 확신이 없었다면,
그의 마음에 그의 옛종교가 옳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 종교에 대한 바울의 확신은 너무도 컸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 한 가지를 그 전도의 총요점으로 하였다(고전 2:2). 그것은 불신
자 아그립바까지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베스도의 말에 "예수라 하는 이"(* )라고 한 것은 그가 어
느 정도 업신여김으로, 혹은 무관심주의에서 사용한 말투였다. 그가 하나의 법관으로
서 공정하기는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후에 바울의 긴 설교를 듣고 바울을 미쳤다고 하였다(26:24). 다만 그가 재판석
에서 잘 한 것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 바울은 처벌 받을 정치범이 아니라고 밝힌
그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간접적인 복음 증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B.Wielenga).
행 25:20,21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
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재켜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 베스도는
바울의 사건이 정치범과는 관계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18절). 그런 고로 종교적
문제(19절)에 대하여는 자기의 무식을 인정하고 그 사건을 예루살렘으로 이송시켜 처
리하려고도 했다. 일이 그렇게 실행되었더라면 바울을 죽이려던 유대인들의 음모(3절)
가 실현될 번하였다. 그러나 베스도의 마음이 그 방향으로 굳어지지 않고 가이사의 판
결을 받겠다는 바울의 청원(21절)을 들어주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간섭
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잠 21:1 참조.
행 25: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과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
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 아그립바왕의 이
와 같은 태도는 자기의 허영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의복이나 외모의 찬란함과 위엄
스럽게 꾸민 것으로 위신을 세워보려고 한 것이다. 여기 "위의"란 말(*
)은 내용 없는 장식을 가리킨다. 그는 그의 부친이 그렇게 허식으로 위엄을 나타
내며 신(神)인 듯이 자기를 높이다가 천벌을 받아 죽은 사실(12:21-23)도 기억하지 못
하고 같은 죄를 범하고 있다. 세속주의로 어두워진 자들은 이렇게 죄의 전철(前轍)을
밟으며 멸망으로 달리고 있다.
행 25:24,25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주장과 자기의 주장을 대립시킬 정도로 확신과 담력을 가진
것이다. 바울을 대하여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기를,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
(24절)고 주장하였으나, 베스도는 그 주장을 반대하여 말하기를,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25절)고 하였다. 여기 "나는"이라는 말(* )이 앞에 나
와서 역설체(力說體)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의 주장을 강력히 내세우는 말투이다.
행 25:26,27
베스도가 바울의 사건을 가이사 앞에 상정키로 작정했으나 상소할 재료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이제 그는 바울로 하여금 아그립바왕의 재판을 받게 함으로 상소할 재료가 생길까 하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처사로 말미암아 아그립바왕과 베스도와 많은 고위층 인물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처사를 이용하셔서도 그의 선(善)을 이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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