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혀어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 여기 "주목하여"라는 말(* )은 힘있
게 쳐다봄을 의미하는데,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자 외에는 회중을 그렇게 쳐다보기가
어렵다. 설교자가 이렇게 회중을 힘있게 쳐다볼 수 있어야 그들의 양심에 부딛치도록
힘있게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회중을 주목함은, (1)그가 부끄러움 없는 일군으로서
담대하기 때문이고(딤후 2:15), (2)그가 회중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그들의 영혼
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이다(유 1:22-23).
"양심을 따라"란 말(* )은 "선한 양심대로"라고
개역해야 된다. "선한 양심"이란 것은 거듭난 자의 양심이니(딤전 1:5,19,3:9), 하나
님의 말씀대로 행하려는 진실한 양심을 가리킨다. 선한 양심은 무엇이나 사실대로 취
급하는 진실성을 특징으로 가진다. 그러므로 이런 가심의 소유자는 범죄하고도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여 즉시 회개하게 된다. 그의 이와 같은 양심 작용이 역시 "선한" 것이
다. 이런 양심으로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딤후 1:3 참조.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우리 인간의 양심을 상대로 하고 두 가지로 꾸짖는다. 곧, (1)"왜 너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가?" 함과 (2)"왜 너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가?" 함이다. 우리가 이 두가지 꾸짖
음에 대하여 사실대로 답하여 진실히 회개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된다.
그것이 선한 양심의 작용이다.
행 23: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 여기 "아
나니아"는 헤롯 아그립바의 동생(촬키스의 헤롯이라고 함)의 후원으로 대제사장직을
받아 가지고(주후 47년) 11년 동안 그 직에 있었다. 그는 친 로마파였으므로 유대주의
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왔다. 그는 주후 66년 반로마 전쟁 때에 하수도 속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죽임이 되었다.
아나니아가 바울의 설교를 중단시키려고 사람을 시켜 "그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으
니, 이것은 성직자로서는 물론 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일반 인간으로서도 할 일이 아
니다. 사람은 영력(靈力)을 소유해야 참으로 힘있는 자인데, 아나니아는 폭력에 의하
여 바울의 영력을 제지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짐승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함과 마
찬가지이다. 언제나 교권(敎權)을 탐하는 자들은 모두 다 이런 과오를 범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진정한 진리 지식과 영력이 없는 까닭이다.
행 23: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
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 "회칠한 담"은 표면만 희고 그
속은 흙이니 표리 부동한 사실을 비유한다. 아니니아를 회칠한 담이라고 한 것은, (1)
그 자신은 극히 악하고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대제사장 직위의 영광을 입었으니
그것이 표리부동한 것이고, (2) 그 자신이 율법대로(공의로) 사람을 취급할 지위를 차
지하고서 도리어 불공정하게 무죄한 바울을 "치라"고 하였으니, 그것도 표리 부동한
행동이다.
바울이 여기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꾸짖은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변호라기 보다
저 악한 교권자를 공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의로운 발언이다. 권세 있는 악
인을 꾸짖으려면 사실상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아야 할 수 있다. 많은 지도자들이 연
약하고 권세 없는 자들을 잘 책망하면서도 권세가 지위 있는 자에게는 아첨한다. 그러
나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헤롯을 "여우"라고 하셨고
(눅 13:32), 그 시대의 악한 교권자드리었던 바리새인들을 꾸짖어 "화 있을진저 외식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하셨다(마 23:13,15,16,23,25,27,29). 세례 요
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였다(마 3:3).
행 23:5
바울이 가로되...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 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
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 어떤 학설에는 이것은 바울의 사과하는
말이라고 한다. 곧, 그가 아나니아를 대제사장인줄 모르고 "회칠한 담"이라고 꾸짖었
음을 사과한 말이나, 그가 자기 잘못을 그만큼 인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칼빈
(Calvin)은 바울의 말이 하나의 풍자(諷刺)라고 하였다. 곧, 바울이 아나니아의 폭력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를 대제사장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에 그를 꾸짖은 것이라고 한
다. 바울은 분명히 말하기를, 자기로서는 "관원(대제사장도 지도자이므로 일종의 관원
이다. 그러나 그 때의 타락한 대제사장은 참된 관원이 아님)을 비방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출 22:28)을 명심한다고 하였다. 그의 이 말은 그가 타락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꾸짖은 것이 이 성경 말씀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인
사도(使徒)이니 구약 시대의 선지자(先知者)의 신분과 같다. 그러므로 그는 보통 사람
들이 하지 못할 꾸지람을 지위 있는 자들에게도(불의한 자들이라면) 할 수 있다.
행 23: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
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것은 바울이 그 두 당파를 분열시키려고 꾀를 부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진리에서 멀지 않은 일파(一派), 곧 바리새인들을
자기의 주장하는 부활 진리로 이끌려는 방침 뿐이었다.
바울은 자기가 법정에서 심문 받는 것이 기독 신자의 부활 소망을 전한 것 대문이
라고 하였다. 그가 이렇게 고난 받음이 귀한 부활 신앙 때문이었다. 그가 주장한 부활
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고, 현실 세계에서 생사 문제를 내걸고 전파할 역사적 그리스도
사건이다.
행 23:7-10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
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훤
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가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
는 것은 언제나 그의 메시지(message)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믿는다
는 바리새인들의 동정을 받은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애는
사두개인들과 충돌하면서까지 어느 정도 바울을 동정하는 것 같이 나온다. 일이 이렇
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역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1)사두개파는 그 당시 유대인 당파들 중 하나로서 소수당이었다. 그 당원들은 지
성인으로서 부유하고 지위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 당파는 다윗 시대의 대제사
장이었던 사독(Zadok)의 뒤를 이어 내려온 것이었다. 그 당파에 속하는 자들의 교리는
이렇다. 곧, (1)그들이 구약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각기 자유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음(Josephus, Antiq, XVIII,1,4). (2)그들은 부활과 내세와 영혼을 부
인하였음. (3)그들은 점점 타락하여 파사와 헬라 시대에는 정치를 종교보다 높이 평가
하였음. 안디오코 에피파네(Antiochus Epiphanes, 175-163 B.C.)의 침략시에는 이 당
파에서 나온 많은 제사장들이 헬라 문화와 풍속을 기탄없이 채용하고 마침내 정치 방
면으로 기울어졌다. 로마 시대에도 역시 이들은 정권과 타협하였다.
(2)바리새 당파는 매코비 전쟁(Maccabaean War)때에 헬라화 운동을 막기 위해 일어
난 종교인들로 구성된 것인데, 점차 탈선하여 율법주의로 기울어진 당파이다. "바리
새"(* )란 이름은 대제사장 하이카너스(John Hycanus)시대(주전
135-105)에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하이카너스는 바리새인이었다가 후에 사두개파로 넘
어갔고, 그의 아들 야나우스(Janaeus)는 바리새파를 진멸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Alexandra)가 바리새 운동을 후원했으므로 이 당파는 유대
종교에 큰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당파의 교리는 사두개파와 반대로 부활, 내세,
영혼의 존재를 믿어왔다.
우리 본문(7-8)에 기록된 바 위의 두 당파의 분쟁은 부활과 천사와 영(사람과 영
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로 생겼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
의의 분쟁이다(Grosheide). 바울을 박해하는 데 단합해 오던 이 두 파가 이 시점에 이
르러 서로 갈라져 분쟁함은 하나님의 간섭이었다. 이 두 파가 교리상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복음을 핍박하는 데 합작해 왔던 것이다. 4:2-3참조. 그러나 이
때에는 이 두 파가 서로 심히 다투었다. 그들이 바울을 사이에 두고 난투를 벌였으므
로 천부장은 그들 사이에 끼어 위태해진 바울을 "빼앗아" 군영(軍營)으로 옮기라고 명
령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다. 바울이 그
때에 박해자들의 틈바구니에 빠진 것도 결국은 구호자(천부장)의 수중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오묘한 방법이다.
행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더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 "바울 곁에 서서(*
) 이르신" 것은 음성만으로 그렇게 느께지도록 하신 것도 아니고, 환
상으로 그렇게 보여주신 것도 아니다. 이것은 꿈 가운데 보여준 것을 가리킨다
(Jacquier). 성도에게 임한 위험이 극도에 달하면 주님께서 그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특별히 나타나시는 법이다. 사람이 느끼는 위험이란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가 바울로 하여금 마침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실 것인 만큼
앞으로도 당할 위험들을 모두 다 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다(Bengel). 주님의 이
계시(啓示)는 난관을 당한 바울에게 큰 힘을 주었다. 바울이 주님의 임재를 느낀 것만
으로도 큰 힘을 얻었을 터인데, 하물며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도록 인도해 주시
겠다는 약속까지 받았으니 더 말할 것이 무엇이랴!
행 23:12-15
유대인들이 서로 맹세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동맹하였다고 한다(12절).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을 로마에까지 보내시겠다고 하셨는데(11절), 유대
인들은 주님과 싸우듯이 바울을 죽이려고 동맹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자들은 실패하는 법이다. (1)그들이 헛되이 "맹세"한 것을 보니, 그드른 진
리를 떠나버린 부패한 무리들이다(마 5:33-37). (2)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권위로써 바울을 군영에서 데려오도록 하여 도중에서 그를 암살하려고 모의했다. 그들
이 이렇게 유대교권을 통하지 않고는 천부장에게서 바울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므
로 그들의 이와 같은 공작은 그들의 간교한 수단이다.
행 23:16-22
바울을 암살하려던 유대인들의 음모(陰謨)가 천부장에게 알려진 것은, 바울의 "생
질"인 한 청년의 역할로 말미암아 되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간단한 방법으로 되었
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큰 일을 하심에 있어서 언제나 이적을 사용하시지는 않는
다. 그는 자연스럽고 간단한 보통 방법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큰 일을 하신다. 성도들
이 남을 해하는 음모는 꾸미지 않으나 정당 방어를 위해 악한 원수의 계획을 좌절 시
키는 데는 적극적으로 힘쓴다. 이 일에 있어서 그들은 정보(情報)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때에 백부장이나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에 전력하였는데(17-19,22), 일이 이렇
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 간섭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행 23:23-30
바울을 구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천부장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470명의 군대와
짐승들(말이나 노새나 나귀)을 동원케 하셨으며, 엄중한 호위 아래 바울을 벧릭스 총
독에게로 보내게 하셨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바울을 도와준 천부장의 업적을 기억할 만하다. (1)그는 사
회 질서 유지를 위하여 성실하였고 책임 이행에 신속하였음(21:32). (2)그는 소동할
만한 기회를 군중에게 주지 않았음(21:34-36,23:24). (3)그는 준법 정신이 강하였음
(22:29). (4)그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려고 많은 군사를 동원시켰음(23:10). (5)
그는 겸손하고 친절하였음(23:19). (6)그는 무죄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는 최선을
다한 의로운 군인이었음(23:22-30). 그가 470명의 많은 군인을 동원하여 바울을 호송
하였으니, 그의 치밀한 계획은 놀랄 만하다.
천부장이 벧릭스 총독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아도 그는 어디까지나 감심으로 바
울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그는 바울의 변호인 격으로 말하였으니, (1)바울은 로마 시
민권 소유자라고 하면서 그에게 대한 특별 취급을 암시하였고(27절), (2)그에게 대한
고소건이 사형 받을 성질은 없다고 해명하였고(29절), (3)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계획을 좋지 않게 판정하였다(30절).
행 23: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 "명을 받았다"
함은 23-24절의 지령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안디바드리"란 곳은 대헤롯이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부른 별장의 소재지였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가는
도중에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35마일쯤 되고, 거기서 가이사랴까지는 27마일쯤 된다.
행 23:32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가니라 - 곧, 보병들은 바울
을 안디바드리까지만 호송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군영으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안디바
드리에서부터는 유대인들의 위험이 적기 때문에 보병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로마 군대가 바울을 이렇게까지 보호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행 23: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 그 때
에 로마의 영지(領地)는 둘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로마 황제의 직할 아래 있었고, 다른 하나는 수리아 총독의 관할 아래 있었다. "길리기아"는 황제의 관할 하에 있었다.
행 23:35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 "헤롯궁"은 대헤롯이 지은 궁전인데 후에 로마총독이 이 궁전을 점령하고 거기서 살았다. 바울은 그 집 어느 부속실에 감금되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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