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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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1:1

  "고스"는 밀레도에서 약 40마일쯤 되는 섬인데 술(酒)로 유명하다.
  "로도"는 고스에서 50마일 쯤 더 가서 있는 섬이고, 거기서 다시 40마일 쯤 가면 해
안도시 "바다랴"가 있다. 이같이 상세히 지리적 상황을 기록한 이는 바울의  동행자였
음이 분명하다. 그 뿐 아니라 이 기록의 상세한 것을 보아 이 기사에서 보여주는 여행
이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었음이 명백하다.
   "두로"는 이 때에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대로(겔 26:1-28:19) 성취되어 적막하게 된
곳이었다.

 

 행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
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 "제자들"이란 말(*              )은 신자들을 가리
킨다. 이 명칭을 가진 자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것을 그 자격으로  지녀야  한
다.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면서 그  전도로
생길 새 신자들을 가리키셨는데(마 28:19-20). 그 말씀에 근거하여 그 후에도 초대 교
회에서 신자들을 "제자"라고 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기독 신자들은  계속적으로
복음 진리를 배우는 책임을 져야 된다. "찾아"란 말(*                  )은  수탐(搜
探)하여 만나게 됨(found by searching)을 의미한다. 이 말은 두로에 있었던 신자들이
소수였던 사실을 알려준다. 바울은 이렇게 소수의 신자들이라도 참으로 반갑게 여겨서
그들을 찾아가 만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다. 두로에 복음이 들어간 때는  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신자들이 베니게 지방으로 가서 전한 복음
이 두로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11:19, 15:3 참조.
   그 때에 그곳 교회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신자들은 질적으로 높아서 성령
의 감동으로 예언까지 하였다. 그들이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이
유는 그가 거기서 위험한 일을 당할 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에 대한 그들
의 예감은 성령의 역사였지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바울을 만류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인간적 동정심이었다. 22-24절 참조.

 

 행 21: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
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
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 이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 생활이 얼마나  사랑  깊은
것이었음이 알려진다. 두로의 신자들이 "처자"들을 다 데리고 바울을 전송하는 데  나
간 것은 교역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보통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그 뿐 아니라 그
들이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한 것을 보면, 그들의 사랑은 혈육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어서 하나님 중심이었다. 서로가 하나님께 그 장대를 부탁함을  가
장 견고하게 친구의 잘 됨을 확보시키는 비결이다.

 

 행 21:7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 "돌레마이"는 두로에서 30마일 쯤 되는 곳인데  거기에  빌립이
교회를 세웠다고 생각된다.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는 것은 하나의 형식적 인사가  아
니고 이 때 초대 교회에서 신자들끼리 끓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 문안 한 마디가 상
대방에게 위안과 용기와 소망을 줄 수 있었다.

 

 행 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서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서 유하니라 -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는 30마일 내지 40마일 거리가 된다. 빌
립이 "가이사랴"에 온 것은 8:40에 기록되었다. 그를 "전도자"(*                   )
라고 한 것은 그가 사도 빌립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동시에 그의 전도 업적을 알려준다
(8:5-13, 26-40). 6:5 참조.


 행 21:9-11

  그에게...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
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 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
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
늘 - "아가보"는 전에도 흉년을 예언한 바 있었다(11:28). 그가 띠를 가지고 형용하며
예언한 것은 하나의 행동 예언이다. 왕상 22:11;사 20:2;렘 13:1-7;겔  4:1-17  참조.
성령께서 이렇게 예언자를 통하여 바울의 앞길에 찾아올 환란에 대하여 예고하신 목적
은 그 예언이 성취되어 환란이 임할 때에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실성과 하나님이 그
와 동행하시는 사실을 확신케 하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발걸음마다 하나님이  모르시
는 바 없음을 확신하고, 그 환란 중에서도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다.

 

 행 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상
하게 한다"는 말(*                          )은 깨뜨린다는 뜻이다. 그러면  마음을
깨뜨린다는 것은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Knowling). "각오하였다"는  말
(*                     )은 준비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는 친구들의 권고에 대하여 바울은 이처럼 탄식하였다.
바울은 그 어떠한 환란을 만날지라도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이미 확
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여 그 성취의 과정이 언제나 평탄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여 일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안다.

 

 행 21: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
이 점에 대하여 캄벧 몰간(Campbell Morga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는 권면은 진실한 맛이 있는 권면이고, 그 권면을 듣지 않는
것은(주님의 뜻을 순종하려고) 장엄한 맛이 있는 거절이다. 그러나 이 두 편이 다  주
님의 뜻을 찾는 데 있어서는 일치한 보조를  취한  것이다."고  하였다(Acts  of  the
Apostles, p.482).

 

 행 21:17-22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 때에 이방에서 된 바울의복음 사역에
대하여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것을 보면 그드리 생각이 바울의 복음
내용과 같았던 것이 명백하다. 바울은 그들에게서 배운 바 없었고, 다만 계시(啓示)에
의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알게 되었는데(갈 1:16), 그것이 그들의  복음과  일치하였다
(갈 2:6-8). 놀라운 사실은 원사도들(예루살렘 사도들), 곧 본래부터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에게 역사하신 성령이 역시 바울에게 역사하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줌이다. 따라
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는 진리는 하나 뿐인 사실도 우리에게 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울에게 하나의 근심거리를 알려  주
었다. 그것은 유대인 기독자들이 바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고(21절)  있다는  것이
다. 곧,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주장을 오해한 그릇된 선전이다. 여기에 대하여 예
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그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였다(23절).

 

 행 21: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 "서원"이란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하여, 혹은 은혜를 감사하는 뜻으로 기간을  정하
고 그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으며, 주검을 만지지 아니하며, 머리를  깍지  않음이다.
이것은 민 6:1-21에 기준한 규례이다. 이 서원의 기간이 다 할 때엔 머리털을 깎아 제
단 위에서 태웠다. 그런데 머리 깎는 비용을 담당하는 자도 그 서원자들의 서원  행위
를 찬성하는 자로 인정되었다. 요세보(Josephus) 사기(史記)에 의하면,  아그립바왕이
이런 서원자들의 머리 깎는 비용을 도와준 일이 있다고 한다(Ant. 19:1,6).

 

 행 21: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은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
는 줄로 알 것이라 - 그 때에 예루살렘 교회는 흉년으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핍절
하였기 때문에 서원자들의 머리 깎는 비용을 도와줄 필요가 있었다. 바울이 그들을 이
모양으로 도와주면, 그도 모세 율법의 의식(儀式) 부분을 무시하지 않는 자로  일반에
게 인정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곧, 바울이 율법을 무시한다는 헛소문이 교정될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행 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 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
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 "이방인" 기독자들에게 대하여는 15장에  기
록된 공의회의 결정(20,29)을 지키도록 기대할 뿐이라는 뜻이다. 15:29에  대한  해석
참조.

 

 행 21: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저너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 "결례"는 사람
이 머리털을 깎지 않고 "나시르" 서원을 하는 기간 동안 주검을 다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민 6:6 참조. 바울이 이런 의식을 지킨 것은, 얼른 보면 외식 같지만  실상은
(1) 겸손이고, (2)화평을 힘쓰는 행위이고, (3)될 수 있는 대로 죄 안되는 행사에  동
참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적응성이다(고전 9:19-23).

 

 행 21:27-30

  여기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박해한 장면을  보여준다.  박해자들의
행동 습성이 이 때도 나타났다. (1)"무리를 충동"시킴(27절). (2)거짓 선전을  간교하
게 구밈(28-29). (3)바울의 행사를 오해하였음(29절). (4)폭력을 사용함(30절). (5)죽
이려고 함(31절 상반) 등이다. 이 박해자들은 불신 유대인들(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
들)이었다(27절).

 

 행 21:31-36

  바울이 백성에게 에워싸여 매를 맞고 있을 대에(32절) 로마 군대가 개입하였으므로
그가 도리어 보호를 받은 오묘한 사실은, 그의 생명을 해치려는 유대  백성을  막으신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이었다. 이 대에 (1) 바울을 치던 유대인들이 군대 동원을  보고
두려워서 구타 행위를 정지했으며(32절), (2)바울이 군인에게 잡힘으로  폭도(暴徒)의
해를 면하였고(33절), (3)군인들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 갔으므로 그는 보호를 받
았다(34-36).

 

 행 21: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
니냐 - 여기 언급된 "애굽인"은 로마  정부를  전복하려고  일어났던  자로서  벧릭스
(Felix)총독에게  패배를  당한  자이다.  이  사건이  요세보  사기에도   있다(Ant.
XX,8,5-8, Wars II, 13,5,6).

 

 행 21: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자기 변호를 아끼지  않았
다. 그는 자기가 로마를 반역하던 그 애굽인으로 인정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정치
적 반역자로 고난 받음을 면하려고 이런 변호를 하였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이고 자
랑스러운 "다소 성의 시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전한 복음을 위하여는
고난과 죽음도 무릅쓰고 전진하며 후퇴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폭도들에게
도 복음 전하기를 중심으로 소원하였다. 19:30 참조.

 행 21: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 바울이 로마 군대에게 체포된 것이 그에게  복음 전할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므로 벴겔(Bengel)은 이 점에 대하여 말하기를, "바울이 잡힌 그것이 얼마나 그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지 ! 바로 그 잡힌 초기부터!"라고 하였다(Gnomon II,p.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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