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행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
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서도 아직 유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유대인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이런 거짓  교훈을
가르쳤다. 그들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음을  인
정하지 않고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쳤으니, 이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할례의 제도는 그 목적을 성취하고 끝났는데(롬 10:4; 빌 3:3),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 것이다. 언제든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완
성하신 구원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인간의 어떤 공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더
해야만 구원을 얻을 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
로에 무슨 인간적 공로를 더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죄악이다.
   스투와드(A.H.Stewart)는 얼마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만 믿어 구원  얻는
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아서 무슨 선을 행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루
는 그가 눅 8:12에서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진리는 마귀도 알고 방해한다는 것을 깨닫
고 회개하였다. 그 귀절은,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그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란  말
씀이다(Harry Ironside on Acts, p.352).

 

 행 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
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만 구원 얻는다는 진리
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일치하였다.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은 구원  얻을  조건으로
할례도 주장한 것만큼, 이들 사이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 교회가 이 문제  때문
에 대표자들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 것은 일종의 총회 성격을 띤 회의를 도모한 것이
다.

 

 행 15: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 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
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 여기 "전송을 받았다"는 말(*   
                     )는 그 여행 중에 필요한 비용도 받고 파송됨을 의미한다. 그들
이 이방의 모든 교회들을 심방한 목적은 그 교회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졌을 것이다. 곧, 이방인들이 할례
받음 없이도 복음을 믿어 구원 받은 사실을 교회들에게 알리고, 그 사실에 대한 그 교
회들의 이해를 얻고자 함이었다. 동일한 성령으로 구원에 이른 모든 교회들의  이해는
진리 증거에 대한 적잖은 지원(支援)을 준다.

 

 행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 여기 이른바 "말하매"란 말(*                  )은
"선포함"을 가리키다. 이 때에 바울은 하나의 이론을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역설(力說)하며 전파한 것이다. 그의 증거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 자체가  말함
과 같은 것이다."(F.W.Grosheide). 그것이야 말로 그의 확실의 발표이다.
   교리 문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게 될 때에 먼저 필요한 것은 그 교리를 취급할 자들
이 그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짐이다.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이방인들이  할례  받은
일 없이도 그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을 통하여 이 일 행하신 것을 확신하였다. 그들은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쓰신 종들
이었다. 교역자마다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  체험이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벴겔
(Bengel)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여! 하나님께서 너를  사용하여
하신 일이 무엇이었는가? 무엇이든지 한가지  말할  수  있는가?"라고  하셨다(Gnomon
II,p.643).

 

 행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
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바리새파"에 속한 신자들은 예수  믿은
후에도 율법주의의 근성을 버리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세운 것이다. 그들은  율법주의
로 교만하여져서 이 중대 회의에서 사도들의 말씀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발언하였다.

 

 행 15:6,7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 "많은 변론이  있은  후."
이것을 보니 이 때의 회의가 일률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고,  보통
신자들의 지혜대로 진행되다가 마침내 사도적 지도로 마감되었다. 베드로는  이  때에
사도적 권위로 나섰다. 이것이 사도 행전에서의 그의 최후적 출현이다(Bengel).  그는
주로 유대인들을 위한 사도였으나(갈 2:8), 역시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서도 이 회의
석상에서 선두에 섰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자기를 가리켜 이방인을 위해서도  세움이
된 자라고 말하였다. 10:9-11:18 참조.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고 복음만 믿어 구원 얻는 사실에 대하여 베드로는 인간의
추측이나 지혜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 일(이방인 구원하시는 일)을 위하여 자기를
택하신 확실한 사실로 논증한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누가 하나님을 항거하랴! 이방인이 할례 받을 필요 없이 다만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는다는 것을 의심하는 자는 하나님을 항거하는 어리석은 자이다. 또 혹은 예수 그리
스도의 피 이외에 다른 무엇을 구원 얻는 조건으로 내세우는 자가 있다면  그도  역시
하나님을 항거하는 자이다.

 

 행 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고 그 속에 있는 것
을 다 아시는 만큼 사람을 아심에 실수 없으신 주님이시다. 그는 이런 밝음으로  유대
인이나 이방인이나 꼭 마찬가지 죄인으로 보신다. "성령을 주어 증거" 하셨다는  말씀
은 그가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성령을 주심으로 그들에게도 "우리"(유대인)와 다름  없
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사실을 확증하셨다는 뜻이다.

 

 행 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  이것
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둘째 역사이다(첫째는 성령을 부어주신 일).  그
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고로 믿음으로만 그것(마음)이 개끗해질 줄 아셨다.  믿음으
로 깨끗해진다고 함은, (1)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때에  그리스도게서
사람의 의(義)가 되어주시미과 (2)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역사하심으로
그의 성결한 생활이 실현되어 가도록 하심을 가리킨다.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함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
별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이 말씀대로, 구원은 철두철미 인간 자신의 어떤 선(善)이
나 의(義)에 달린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구원 문제에 있어서  누
구든지 자기의 의를 믿거나 자랑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구원
공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이런 자는 경건의 모양을  나타내지만  실상은
가장 불경건한 자요 주님의 보혈을 무시하는 자이다.

 

 행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
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 "하나님을 시험"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이것
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기독 신자도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이 율법을 지켜야  구
원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도록 하신 하나님을  거스림
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은혜의 구원 계획을 문제시 하여 의심함이
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기 위함인데(마 11:28), 예수
믿는 자에게 여전히 율법의 짐을 지우는 것은 모순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누가 율법의 짐을 감당할 수 있었는가? 옛날 사람들("조상")도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
였고, 현재 우리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아셨기에 그리스도를 이 세
상에 보내셔서 이 짐을 대신 담당하시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언약을 아시는 이(8절)의 지혜로우신 처사이다. 시 103:13-16 참조.

 

 행 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우리"
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저희"는 이방인을 가리킨다. 헬라 원문에는 "주 예수의  은혜
로"라는 문구(*                                                         )가 이 귀
절 초두에 있어서 역설체(力說體)를 지니고 있다.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성립되고 인종이나 민족이나 개인의 육체적 자격의 어떤 조건에 의해서 취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다. 롬 3:21-22; 골  3:10-11
참조.

 

 행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
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 이 때에 바나바와 바울도 저희가  이방
선교에서 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役事)를 보고하였다. 이 보고의  내용도  이방인이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사실에 대한 그들의 체험담이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
어." 여기 이른바 "가만히 있어"란 말(*               )은 그들이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와 그 의견에 찬동하는 의미였다. 그 아랫말 "듣더니"란 것(*           )은 오랫
동안 듣는 중에 있음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그들의 청종(聽從)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회중의 의견도 중요시된 것이 확실하다. 그 회의는 성격상  독재
정치를 배제(排除)했다.

 

 행 15:13,14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
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
이 고하였으니. -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인지, 혹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인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예수
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생각됨이 적합하다. 갈 1;19 참조.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여기 "권고하신"이란 말(*        
          )은 방문하신 것(불쌍히 여겨 찾아 봄)을 의미하므로 "권고하신"(돌아보신)
보다 "찾아 오신"(visitde)이라고 번역함이 좋다. "고하였으니." 이 말(*           
    )은 듣는 자들을 설득시키려고 해명함을 의미한다. 시몬 베드로가 해명한  말씀의
내용은 7-11절에 나와있다.

 

 행 15:15-18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
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 이 말씀은 암 9:11-12의 인
용이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폐지된 다윗 왕가를
재건하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때부터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눅 1:32-33 참조. "그 남은 사람들"이란 말(*                         
                     )은 사람들 중에 그 남은 자들이란 뜻이니, 하나님께서  인류들
중에서 택한 자들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유대주의의 편협한 사상과 반대로 세계 인류
를 상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가지고
계시다. 계 5:9-10 참조. 이 말씀은, 그 아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
인들"이란 문구로 다시 설명된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민(子民)들의 반렬에
참여하게 될 것은 오래 전에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인 만큼 이제 때가  이르러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 것이니, 이 사실을 누가 반대할 수
있으랴?

 

 행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
여기 "괴롭게 말라"는 헬라어(*                          )는 짐 지우지 말라는 뜻이
다(Grosheide, De Boor). 곧, 구원 얻는 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조건
을 부담시키지 말라는 의미이다. 만일 이방인들에게 다른 것을 더 부담시킨다면  그것
은 그들을 괴롭게 함이라.

 

 행 15:20

  다만 우상의 더루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
이 가하니. - "우상의 더러운 것"은 우상 앞에 바쳤던 제물인데 그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계 2:14; 고전 10:14-22에도 있다. 그리고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은  신약에
많이 있으니 여기 논할 필요도 없다. "피를 멀리하라"는 말씀은 살인하지 말라는 뜻으
로도 본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 그대로 취하는 해석도 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구약의 사상이다. "피"는 생명의 표상이니 생명을 귀중히 하는 의미에서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초대 교회의 유대인 기독자들은 아직도 구약의 규례에 의하여 피를 먹
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인 신자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양자(兩者)의  화합을
위하여 이방인들도 당분간 피를 먹지 않는 규례를 지킴이 필요하다.

 

 행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 이 말씀은 앞절의 이유이다. 20절의 금령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내어 지키게 하는 이유는 유대인 기독 신자들이 그 금령과 같은 의식(儀式)의  인습
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이와 같은 모세의 글(규례)을  읽는
다.

 

 행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
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 이방 교회에 보낼 대표자를 택한 것이 한 두 사람의 임명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온 교
회의 결정으로 되었으니, 이것은 후대 교회의 모본이다. 그리고 이 때에 선택된 "유다
와 실라"는 "인도자"의 자격을 지닌 자들이다. 현대 교회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는
자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도리어 잘못되게 하는 실례가  많
다.

 

 행 15:24

  들은 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 유대주의에서 완전히 떠날 줄 모르는 유대
인 기독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을 배경하고 안디옥에서 거짓 교훈을  퍼뜨렸을
것이다(갈 2:4-6). 그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 사도들은 그들
을 냉정히 끊으며 그들의 배경이 되어 주지 않는다. 진리에 입각한 치리(治理)는 이렇
게 공정하다.

 

 행 15:25,26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
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
이 말씀 중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
의 사랑하는"이란 문구는 우리의 주의를 끈다.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들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사랑해  주
는 자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생활은 그만큼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귀한가!

 

 행 15: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
한 줄 알았노니. -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 교회에 보내는 결정 내용이 성령의 뜻인  줄
확신하였다. 그 결정 내용은 구원 문제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단지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과의 조화를 위한 행정 문제에 속한다. "아무 짐도... 지우지 아니한다"
는 말씀은 역시 구원 조건으로는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내용
이다.

 

 행 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 이 말씀에 대하여는
앞에 20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행 15:30-35

  이방 교회에 보냄 받은 사절단은, 그 사명대로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이방  교회
들에게 전하였다.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31절). -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
을 읽고 기뻐하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들이 벌써 사도와 장로들의  권위(權
威)를 인정한 증거요, 그 결정을 성령의 것으로 받은 증거이기도 하다. 28절 상반  참
조.
   가르치며 전파하니라(35절 끝). -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하되 그것을 가르치면서 전
하였다. 전도하는 자는 상대방이 그 전도를 받을 마음이 나도록 그것을  진리대로  잘
해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행 15:36-39

  바울과 바나바가 제 2 차 선교 여행을 떠남에 있어서 마가(요한)를 데리고 가는 여
부에 대하여 서로 다투고 갈라진 행적이 이 부분에 기록되었다. 그들의  주장이  각각
일리가 있으나 두 사람이 다 양보하지 않으니 어찌 합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 두  사
람이 나뉘어서도 서로 원수시 하지 않고 서로 방해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갈라짐이 문
제될 것은 없다. 과연 그 후에도 바울은 바나바를 칭찬하였으며, 마가를 역시 좋게 여
겼다(골 4:10). 오늘날 교파들이 다 같이 복음주의에 속했다면 서로 원수시  할  것이
무엇인가? 서로 도와주며 사랑함이 주님의 뜻이다.
   위대한 두 지도자가 작은 문제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다투다가 갈라진 사건은 유감
스러운 일이다. 이 사건은 후대 교회들에 전감(前鑑)이 되어서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
하게 한다. 마가는 예루살렘 원사도들과 바울이 갈리지 않도록 화목 운동에 전력한 좋
은 일군이었다. 그는 제 1 차 선교 여행에 바울과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같이 전하였으
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큰 은혜였고 또 큰 영광이었다. 그런데 그가 밤빌
리아에서 바울을 따르지 않고 전도 여행을 중단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
다. 바울이 바나바와 의견이 충돌될 때에 양보해서 안될 일도 없었을 것 같은데  어찌
하여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었는지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다. 칼빈(Cavin)은 이  사건을
전감으로 삼아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우리는 제일 중요한 일에 있어서도 우리
의 열심을 잘 조절하기를 배워야 된다. 우리의 열심이 통솔되지 못할 정도로 탈선되면 안된다."고 하였다(The Acts of the Apostles Vol.II, 1965, p.62).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28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1장
27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2장
26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3장
25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4장
24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5장
23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6장
22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7장
21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8장
20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09장
19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0장
18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1장
17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2장
16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3장
15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4장
»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5장
13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6장
12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7장
11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8장
10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9장
9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0장
8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1장
7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2장
6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3장
5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4장
4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5장
3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6장
2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7장
1 사도행전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28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