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1-5
갈릴리 사람이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이 된 일이라든지,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면서
열 여덟 사람의 생명이 갑자기 없어진 일이라든지 다 사람의 불회개 문제 때문에 그렇
게 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들과 같이 죄가 많으므로 당장 죽어 마땅하
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동안에 그들은 겨우 살아 있는 줄 알아야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을 위기 일발의 처지에
있는 줄 알고 1초라도 바삐 회개하여야 된다.
눅 13:6-9
하나님은 인간의 회개를기다리시기 위하여 참으시나 그 참으시는 기한이 있다. 그
것은 마치3년 동안 무화과 열매 맺기를 기다리다가. 맺지 아니하므로 찍으려 했으나 1
년을 더 기다려 봄과 같다. 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다리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
리를 위하여 대신 담보자가 되시어 하나님에게 대언하시는 것을 비유한다. 예수님을
대언자로 모시고도 회개의 결실이 없는 자는 다시 용서를 받을 길이 없다.
눅 13:11
십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귀신들려 고생하는 지 18년 동안이었다 하니 난
치병이다. 이런 난치의 병을 고치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께 있음을 증거한
다. 고치기 쉬운 병은 인력으로도 고치는 고로 그것으로는 예수님의 능력, 곧, 하나님
의 능력을 증거하기 어렵다. 주님의 이적이 나타나려면 인력으로할 수 없는 일을 상대
로 하고 나타난다. 우리는 어려운 일 일수록 더욱 신념있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구할
만하다(12,13)
눅 13:12,13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병이 나을터인데 안수까지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과 어떤 물적 접촉을
원하는 약한 신앙을 도와 주시어 그 신앙을 견고하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눅 13:15
외식하는 자들아 - '외식'이란 것은, 외형이나 외모를 지키기 위하여
정신을 희생하기 까지 하는 것을 이름이다. 우리가 외형이나 외모를 무시할
수 없으나, 그것이 중심이 아니고 정신의 표시로서의 가치를 가질 뿐임을
기억해야 된다. 정신을 희생하여서까지 외모를 세우는 것은 참으로 외식 주
의이다. 정신을 세우기 위하여 외모를 어느 정도까지 희생하지 아니치 못할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도 있다. 구약의 안식일
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만물 창조를 기념하기 위하여 안식하는 날이다. 안식
일 지키는 목적은 육체노동을 쉬는 것보다 예배이다. 그렇다면 예배와 관련
된 일의 일부가 자비인만큼(마9:13), 악한 병으로 방금 죽어가는 자를 구급
하지 아니치 못한다. 15,16절의 두 귀절은 이런 의미의 교훈인데, 강이유
논법으로 되었다.
눅 13:16
아브라함의 딸- 이는 윗절에서 말씀하신 소나 나귀보다 사람이 귀하며 사람중에도
특별히 택한 백성이 귀한 것을 가리키심이다.
눅 13:17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중에 두 종류가 있었으니, 하나는 반대자로서 예수님의 말씀
하시는 진리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이요, 다른 하나는, 편견이 없이 주님의
말씀을 받으며 그의 하시는 일을 기뻐하는 자들이었다.
눅 13:23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 질문에대한 예수님에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
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이고 수효의 많고 적은 것은 말씀하시지 않
으셨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그런 수효 문제를 알 필요가 없고다만 구원 얻기를 노력할
뿐이기 때문이다.
눅 13:24
좁은 문.- 구원의 문이 좁은 이유는 (1)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믿지 아니하려 하
는 까닭이며 (2) 그 문으로 가면 세상 욕심을 마음껏 채우지 못하겠는 고로 통행자들
이 비교적 적은 까닭이며 (3) 인간이 그 문으로 통행하려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까
닭이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이 말씀은 그 윗말 '좁은 문으로 들어가
기를 힘쓸' 이유를 보인다. 현재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이좁은 문을 무시하나 내세에
당면할 때엔 이미 그 문으로 못 들어간 것을 한탄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25-27
절이 밝히 설명한다.
눅 13:26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 여
기 이 말을 보니 그들은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른 일이없고 다만 주님의 전도하시는 활
동을 구경하는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과 갚이사귄 일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이자기 백성으로 알아 주신바 되지 못하였다. 구원은, 현세에서벌써 주님이 자기
백성으로 알아 주신바 되지 못하였다. 구원은 현세에서벌써 주님의집안에(천국에)들어
가서 주님과 같이먹고 마시며 천국의즐거움을 맛본 자들이 계속하여 누리는 내세의 영
광인 것이다. 현세에서부터 주님께서 그들과 동거하시지 않고 다만 그들의 먹고 마시
는 곳에 지나가시고 그들의 마당에 지나가시는 정도라면 그들은 아직도 주님과의 참된
사귐에 들지 못한 것이다.
눅 13:27
마 7:23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눅 13:28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들이 슬피울며 이를 가는 이유는
(1) 저희는 천국에들어갈 자인줄로 자신하였는데 그렇게 되지 애은 까닭 (2) 천국에
들어갈 좋은 기회가 이전에 있었으나 그만 기회를 놓쳐서 (3) 이제부터 영벌아래 있어
서 고통이 심하니까.
눅 13: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부터와서 하나님의 나라잔치에 참석하리니.-이것은 이방
인들이 많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이름이다.(마8:11,12)
눅 13:30
본절은 이방 사람들처럼 천국의 외부적 특권을 받지 못한 자들이 도리어 하나님
의 은혜를 받아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는반면에, 유대인처럼 특별히 하나님의 외부적
은전을 받아서 얼마든지 복 받을 생활을 할 수 있는 자로되 교만하여져서 도리어 떨어
지는 일이 있음을 가리킨다.
눅 13:32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의 대담 무쌍 하시고 또동요
없는 생활의 프로그람을 발표하시는 것이다. 그의 생활의 푸로그람은, 추호의 변동도
할 수 없도록 예정되어 있으므로 여우같이 교활한 헤롯의 살해 계획도 무용한 것이다.
여우는 탈무드경에 말한대로 가장 교활한 짐승이라고 한다. 헤롯과 같은 육적 인간을
자극시키기 위하여는 이런 칭호를 쓸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조금도 거리끼는 것 없
이 노골적으로 그의 생활 프로그람을 언명하신 것이다.이런 말씀은 오직 하나님이신
그 분만이 하실 수 있다.그의 생활 프로그람은 다음과 같다.
오늘과 내일과...제삼일.- 이것은 예수님의 성역 기간의 일정 불변성을 형용하시는
말씀이라고 한다. 클로스텔만은, 이것은 그의 역사가 아직 좀더 계속될 것을 이름이라
고 하였으나 첫째 해석이 옳다.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여기 귀신을 내쫓음과 질병을 고침은 메시야 역
사의 외부적 특색이다. (눅7:22) 완전하여지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의미한다.
눅 13:33
예루살렘.- 이것은 히브리식 이름이니 헬라식은 히에로 솔뤼마(* )
이다.(눅2:22) 여기 히브리식은, 지리적으로 보다 종교적으로 특수 한 뜻을 가지고 있
으니(갈 4:25;히12:22) 곧, 거룩하고 평화로운 도시 라는 의미이다. 이런 거룩하고 평
화로운 도시가 선지자를 죽이는 곳이 되고 말았다.
눅 13:34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이것은 예루살렘 종교 도시의 모순된 행위를 지적
하심이다. 돌로써 죽임은, 우상 숭배자나 하나님을 훼방한 자나, 점술자나 거짓 선지
자를 죽이는 방법이다.(신13:6-10,17:2-8; 레24:10-16, 20:27) 그런데 유대인이 참
선지자를 이러한 방법으로 죽인 것은 모순된 행동이다. 그것은 참 선지자를 거짓 선
지자로 혹은 우상숭배자나 하나님 훼방자로 잘못 아는 어두운 행동이다. 참 선지자를
그와 같이 학대 한 일은 유대인의 역사상에 많이 있다.(왕상18:4, 22:24-27; 대하
24:21; 렘26:20-23,37:15; 히 11:36,37)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암탉은 그 새끼를 날개 아래 품는 때가 있다. 그
것은 폭풍우가 일어나는 때나 또는 육식조가 날아올 때이다. 그처럼 예수님께서는, 유
대 민족에게 접근해 오는 심판을 내어다 보시고 그 민족이 그 심판에서 구원되게 하시
려고 복음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복음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닥쳐오는 심판에서
구워얻게 하는 따뜻하고 안전한 피난처이다.
눅 13:35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가리킨다.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이 말씀은, 회개하는 유대인들이 그 때까지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영접하지 못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유대인이 회개한 뒤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보는 것과 같다. 요14:19참조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