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누가복음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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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4:16

   그 때에 유대에 있었던 회당 제도는 유대인이 바벧론에서 돌아온 후에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렇게 각처에 회당이 있었으므로 예수  그리스
도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 이 제도는 실상 오실  메시야의  역사를
위하여 준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이 귀절부터 19절 까지는 사61:1,2말씀의  인용이
다. 복음 전파는 오직 성령님으로 말미암는다.  예수님 자신도 성령을 특수하게  받으
심으로부터 그 역사를 시작하신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가난한 자"라는 말은 , 헬라 원어로  프
토코그(*            )이니 극빈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복음을 비교
적 잘 받는다. 예수님께서 산상 보훈을 말씀하심에 있어서도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음을 선포하셨다.
   기름을 부으시고 - 구약 시대에 왕이나 대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택하여  세울  때에
기름 부은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직을 실행함에 필요한 성령을 주심에 대한 상징
적 행사이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런 상징적 행사는 없어졌고 내용과  실질만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서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  받으
신 것을 가리킨다. 성령을 기름에 비함은 기름이 불빛을 냄과 같이 성령이 교회의  빛
을 나타나게 하시는 까닭이다.
   보내사. - 헬라 원어로 아페스탈켄(*                    )이니 파송의 일반적  의
미가 아니고, 그 파송된 자가 파송한 자의 대신자가 되게까지 하는 뜻을 가진다  그러
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대신자이시다.
   포로된 자, 눈먼 자 , 눌린자. - 이들은 가장 큰 인간고에서  신음하는  자들이다.
여기 말한대로 "포로된 자 , 눈먼 자, 눌린 자 "라는 것은 죄에게 포로된 자 죄롤  인
하여 눈이 어두워진 자, 죄와 사망에게 눌린 자를 말하는 것이다.

 

  눅 4:20

    책을 덮어 그 말은 자에게 주시고. - 여기 "책"이란 말은 유대인이 회당에서 읽는
성경의 일부 곧, 하프다라(Haphthara)를 가리킨다. "그 맡은 자"는 회당에서 이  책을
맡아 그 두는 곳에 가져가기도 하며 가져오기도 하는 일을 하는 집사였다. 그의  직명
을 카잔( chazzan)이라고 한다.

 

 눅 4:21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 이것은 헬라 원어대로 직역할 때에 "예수께서 저
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작하셨다"는 말이다. "시작하셨다"함은 그 긴장한 무리 앞에서
중대하게 발언하시는 주님의장엄한 태도를 암시하는 뜻 있는 말이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 곧, 위에 기록된 사61:1,2 말씀대로  에
시야께서 오셨는데 그가 예수님 자신이시고 그가 친히 하신 말씀을 그들이 친히  듣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눅 4: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 그들이 그 전에 예수님에게 대하여 들은바가 지금보니
참되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에게 대한 진정한 신앙을 가
지고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은혜로운 말. -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응하였느니라"고 하시
말씀을 가리킨 듯하다. 어라다 학자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그보다 더  긴  말씀자마
하셨겠는대 '은혜로운 말'이란 것은 그것을 이름이다"라고한다.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이 "기이히 여김"은 불신
앙의 태도로 그러한 것이다. "이 사람이 요셉이아들이 아니냐"라고 한거은 그들이  에
수님을 메시야로 믿을 수 없고 다만 일개 목수 요셉이 아들로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눅 4:23

   의원아 너를 고치라. - 이것은 남을 돕는다고 하는 이가 먼저 자기 자신을 돕는 것
이 바른 순서라는 의미이다. 다시말하면 , 선지자가 다른 곳에서 보다 먼저 자기 고향
에서 권능을 행함이 옳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나사렛 사람들이 그 때에 예수님에게 대
하여 마음속에 가졌던 생각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마음을 잘 아시었다.

 

 눅 4:24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자가 없느니라. -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을 못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잘 아는 것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고 새것을  구하는
것을 즐겨할 뿐만 아니라 그 잘 안다고 하는 교만에 끌려서 더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
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 성질과 버릇이 육신 생활 하는데 있어서는  탈선
함이 아닐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는 아주 잘못된 취급이다.   복음을  잘
아는 줄로 스스로 추측하여 더 사모하지 않는 자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가 될  것이
다.

 

 눅 4:25,26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오직 시든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도리어 낯선 이방인에게 가서 열매를 맺을  것
을 예언하신 것이다 . 복음 진리는 그것과 낯이 익다고 자처한 자에게는 함께하지  않
고 겸손하게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머무른다.

 

 눅 4:27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 왕하7:3을 보면, 그 때에 문둥이가  많았던
사실을 알 수있다.
   오직 술아 사람 나아만 뿐. -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헤를 오직 그이선택의  주
권에 의하여 줄 자에게 주시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닌 사실을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은헤를 베푸실 때에도 오직 이방인  나아만
만이 병 고침 받는 은혜를 받게 하셨다.(왕하5장)
그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도 하나님의 임의와 주권에 의하여 주
로 이방인들이 받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이 여기 나타났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란 사실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조건은 못되었다. 도리어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었다.

 

 눅 4: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 그들이  이렇게도  격노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1)그들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은혜 받기에 합당하다는
의미의 말씀을 들은 까닭이고, (2)예수님이 자기를 엘리야나 엘리사에게 비해서  말씀
하신 것이 저희의 어두운 마음에 맞지 않은 까닭인 듯하다.
  이것은 그들의 교만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그들이 모르고 그렇게 오해한 것
이다. 그가 하나님이시니 그 주권대로 이방인을 특별 대우하시는 것은 당연하고, 그는
선지자보다 크시니 만큼 자기를 엘리야나 엘리사에 비해서 말씀하시기에 너무도  족한
것이다.

 

 눅 4:29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 까지 끌고 가서. - 나사렛의 동남편에 80여척 또는
300여척 높은 "낭떠러지"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이 낭떠러지에서  밀치
려는 이유는 , 그를 반역자로 몰아서 반역자 취급의 법률에 처치시키려는 까닭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잔인하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눅 4: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여기 "가운데로"란 헬라원어 디아 메수
(*                )란 말은 , 예수님의 이 행동이 기적적인 사실을 보인다.  그는  ,
그들을 피하여 도주하시지 않고 그들 가운대로 태연히 통과하여 가셨으되 그들은 그를
붙잡아 억류시키지 못하였다. 때가 이르기 전에는 누구든지 그를 해하지 못하였던  것
이다.

 

 눅 4: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
에 있어서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므로 이 곳은 복음 전도이 근거지가 될  만하였다.
여기 안식일이란 말이 헬라 원어에서는 복수이지만 단수이 뜻으로도  쓰인다.  그것이  
이 말의 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적보다도 먼저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셔다. 그것이
언제든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다.

 

 눅 4:32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 그의 말씀이 권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1)그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말과 달라서 외식이 없고 언행이 일치한 까닭이며,  (2)
그가 가르치신 율법은 바로 하나님이신 그가 친히 저작하신 까닭이며, (3)그는 하나님
의 보내심을 받으신 자이심을 아시는 까닭이며, (4) 성령님이 그와 함께하시는 까닭이
다.

 

 눅 4:33,34

   이 귀절들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소리 질러서 솔직하게 고백한 것을  기록하였
으니 그것은 예수님에게 아첨하는 말이 아니고 공포심에서 본능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 자기와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다 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바라고 하였다.

 

 눅 4: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  예수님은
자기에게 대하여 마귀가 증거해 주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 이유는, 그는 오직 거룩
한 사람들의 증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마
귀의 하는 일은 사람이 보기에 험악하여 그 놈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멸망시킬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놈은 사람을  침범할 수 있는 한도가 있다. 그 놈은 하나님께서 허
락하시지 않은 영역으로 넘어가지는 못한다. 여기 기록된 바와 같이 마귀가 그 사람을
넘어뜨렸으나 그 사람을 상하지는 못하였다.

 

 눅 4:38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 시몬은 베드로를 의미하는데 그가 결혼
생활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전9:5)."중한 열병"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퓌레토 메갈로
(*                         )라고 하는데 "큰 열병" 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이것은
의학상 술어라고 한다.

 

 눅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 감각이없는  질병까지라
도 꾸짖어 떨어뜨리는 것은 인간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직 말씀으로  만
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만 하실수 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그가 하나님이신  사
실을 나타낸다.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 열병과 같은 중병에서 일어난 자가 곧
봉사 행동에 나서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이다. 그런 중병으로 앓던 자는 육
체의 힘을 다 잃었기 때문에 즉시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다.

 

 눅 4: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 그
들이 해질 적에 예수님께로 찾아온 이유는 그 때는 안식일이 다 지난 때인  까닭이다.
그들은 안식일 을 잘 지킨다는 외식으로 그 날 병고침 받는 일도 피하였다. 그것이 예
수님의 행동 원리와는 다르다. 예수님은 부득이한 때에는 안식일에도 병을 고치셨다.
    예수께서 일일히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 여기 "일일히"란 말을 보니 예
수님께서 이 많은 병자들을 성의있게 고쳐주신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말 한 마디로
도 병을 고치실 수 있고(요4:50-54), 다만  생각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다.(눅7:10,
17:14; 요4:50). 그러나 그가 병자에게 안수하신 목적은 그 병자의 약한 신앙을  돕는
데 있는 줄 안다.

 

 눅 4:41
    이 부분은 막1:29-39을 참조하면 좀 더 명백한 뜻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한적
한 곳"에 가심은 기도하시기 위함이요, 무리가 그에게 찾아간 것은 병 고침 받기 위하여 그리 하였을 것이다. 눅 4:36 참조.
무리들은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찾았을 뿐 아니라 만난 후에도 놓치지  않으려  했으니 그것도 예수님에게 대한 합당한 행동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지방 사람들에게만  붙들리어 계실 분이 아니시다. 그는 다른 곳에 도 꼭 같이 요구되는 구주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인하여 보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셨다. 이말씀은 그가 복음 전도를  어떤일보다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다. 벵겔 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리켜  "  예수님의 신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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