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1
벳바게. -이것은 히브리 원어(* =미숙한 무화과의 집)의 음역인데(Van Lee-uwen, Markus, p. 195), 그 위치는 알 수 없다. 카스파리(Caspari)는, "벱바게"가 한 촌이 아니고 베다니란 촌에 있는 예루살렘 근처 지대라고 하였다.
막 11:2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 - 이것은 하나님의 소용에 바치기 위한 것이다(삼상 6:7). 그가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심은, 슥 9:9의 예언 성취인 것이다.
막 11:3
여기 있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시하신 것은, 그의 초자연적 지식과 권능에 의하여 앞으로 될 일을 주장하실 것을 생각하고 하신 말씀인 듯하다.
막 11:4-6
그것을 푸니.... .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대로 말한대. - 이 말씀들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절대로 순종하여 그의 지시대로 하였다. 이렇게 그의 지시대로 순종할 때마다 그의 미리 말씀하신대로 착착 일들은 진행되었다.
이에 허락하는지라. - 그 나귀 주인이 그의 나귀를 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1)그는 예수님께서 전부터 아시는 자였기 때문인가? 혹은 (2)예수님의 초자연적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이 감동되어그렇게 나귀를 제공한 것인가? 우리는 여기 둘째번 이유를 주장함이 가합한 듯하다. 그런데 왕되신 예수님께서 왜 말을 타시지 않고 나귀를 타셨는가?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므로 그가 평화의 왕이신 점과 잘 합하기 때문이다.
막 11:7, 8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벤 나무가지. - 여기 "옷"을 깐 것은 왕을 축하함이고(왕하 9:13), 나무가지는, 종려 나무 가지인데 승리의 표호로서 군왕의 입성식에 그것으로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막 11:9
호산나. - 이것은 시 118:25에서 나온 말인데 히브리 원어(* =원컨대 구원하소서)의 음역이다.
막 11:10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 - 이것은 메시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나라를 의미한다. 이것은 물론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소망이다.
높은 곳에서 호산나. - 그리스도는 역시 천상의 왕이시니 거기서도 천사들이 "호산나" 만세를 부를 것이다. 군중은 이 때에 예수님을 왕이라고 "호산나" 만세를 불렀으나며칠이 못되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소리쳤다. 그것을 보면, 우리는 일시적감정으로 요동하는 무리를 신임하기 어렵다.
막 11:11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 보신"이유는, 거기서 실행되는 사람들의 종교적 행위가 어떠한지를 보시고저 함이었다. 그는그 때에 유대인들의 성전 안에서의 행사를 관심 깊이 살피셨다. 그는 저희의 타락한행위들을 용납하시지 않았다(눅 19:45, 46).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 이는, 주님께서 그의 수난이 가까운 때에 고요히 기도하시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막 11:12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무슨 그릇된 행실들이 있지 않은가 하여 살펴보심이다. 천국의 왕은 여기서 대제사장을 겸하신 표적을 나타내신다.
막 11:13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 "무화과나무"는 열매 맺힌 후에야 잎이 무성하는 법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열매 맺기도 전에 잎이 푸르렀다. 그것은 자연계의 기괴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에 접근하시어 열매를 찾으시니 물론 아직 때도 아닌데 잎이 무성했던 터인지라 실과가 없었다. 그것은 외식의 상징이었다. 곧, 그것은, 열매도 없으면서 열매가 있는 듯이 모양을 나타냄이다. 그것은 그 때에 유대인의 외식을 책망하기에 사용될 만한 재료였다. 예수님께서 그나무를 책망하시는 것은, 그 나무가 미워서 그리하신 것이 아니고 유대인을 책망하시기 위한 것이다.
막 11:15
성전에 들어가사. -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왕궁에 오시지 않고 성전에 오시었다. 이것이 메시야 왕의 특질이니 말 3:1-6의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성전안에서 매매하는 자들. - 멀리서 유월절 지키러 오는 자들에게 제물을 살 수 있는 편리를 주기 위하여 처음에는 성전의 한 가에서 매매가 허락되었다. 그것이 점점 타락하여 영리 주의에 흐르고 성전 안까지 장마당이 되었다. 편리 주의는 그만 영리 주의로떨어졌다. 우리다 때로는 편리 주의를 취하지 아니치못할 것이나 그것이 위험한 줄 알고 주의해야 된다.
돈 바꾸는 자들. - 이들은 외국에서 성전 세를 세겔로 못가지고 오는 자들에게 편리를 주기 위하여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들이다. 성전에 바치는 돈은 세겔 곧, 은전이어야 되는 법이었다. 그 때에 돈 바꾸는 자들도 영리 주의에 몰두했던 듯하다.
막 11:17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 - 사 56:6 참조.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를 공공연하게 영업소로 쓰니, 그것은 강도의 행위이다. 뒤에 있는 설교 참조. 이러한 꾸지람은 범인의 것이 아니고, 권위 있는 천국의 왕의 혈기 없는 거룩한 노로 나타난 것이다. 신자들이 성전을 하나님 경배에만 쓰지 않고 세속의 일에 쓰는것은, 예수님의 꾸지람을 당할 그릇된 일이다. 예수님의 성전 청결은 그가 그의 교회를 청결케 하실 것을 표상한 것이고 말라기 3장의 예언 성취이다.
막 11:18
이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이유는 무리가 그를 따르므로 저희가 시기한 까닭이었다.
막 11:19
위의 11절 끝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막 11:20-25
이 몇 귀절은, 응답 받을만한 기도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1)그것은 하나님을 항상 믿는 기도이니, 그 믿음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계속적인 것이다(22, 23). 믿으라. - 이 말의 헬라 원어 에케테 피스틴(* )은, 현재명령사이므로 신앙 행동의 계속을 가리킨다.
(2)의심치 않는 믿음(23절).
여기 "의심"- 한다는 말은, 헬라 원어 디아크리네스다이(* )라고 한 것인데 갈린 마음을 가리킨다. 믿음은 단일성 있는 마음을 그 특질로 한다.
(3)그 구하는 것을 벌써 얻은 줄로 알 것(24절).
여기 있어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받을 줄로 믿는 목적물은 반드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구하여진 것이어야 한다.
(4)남의 혐의를 용서할 것(25절).
효과 있는 기도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랑을 겸한 것이다.
막 11:27
에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 여기 "걸어다니심"은, 헬라 원어로 페리파테인(* )이니 클로스텔만(Klostermann)은 말하기를, "그가 성전을 자기 집처럼 종횡으로 걸으셨다"(Alsof het in zijn eigen huis was)라고 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성전 안에서 그 주인이 자기이심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셨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 이 셋은 산헤드린(Sanhedrin=예루살렘 공의회)의 대표자들이다. 예수님의 권위가 본격적으로 나타남에 따라서 그를 대적하는 자들도 본격적으로 공격하려 한다.
막 11:28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 이 본문에 두 가지 질문이 포함되었다. 이 두 가지 질문 사이에 어떤 사본(* )엔 "혹은"(* )이라고도 했고, 어떤 사본(A. N)엔 "또는"(* )이라고도 하였다. 사본상 증거는 "혹은"이란 말을 더욱 힘있게 지지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질문 가운데 그 첫째는 권세의 성질을 묻고, 그 둘째는 권세의 유래를 묻는다. 권세의 성질로서는 선지자냐 메시야냐 하는 것이겠고, 권세의 유래로서는 하늘에서 주신 것이냐 스스로 취한 것이냐 하는 문제이겠다. 그들의 질문은 매우 자세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고심해 가면서 올무를 놓고 있다.
막 11: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 예수님의 반문식 답변은, 그들이 응답하지 못할 정도로(31, 32) 지혜롭고, 또 그들의 양심을 찌를만한 도덕 엄정한 것이었다.
막 11:31, 32
이 두 귀절을 보면, 그 때에 바리새인들이 거짓 스승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타난다.
(1)그들은 당연히 믿어야 할 진리와 사실을 짐짓 믿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은 거짓 스승의 악한 마음이다. 세례 요한이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아가지고 왔음이 분명하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2)그들은 군중을 무서워하고 군중의 인기를 얻고자 하여 아첨한 것이다.
막 11:33
예수님께서 저희의 질문에 대하여(28절) 대답을 피하신 것은, 저희는 강퍅하여 그의 말씀을 믿지 않는 까닭이었다. 마7: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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