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마가복음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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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5:1-5
 손 씻는 예는 위생을 위함이 아니고 종교적 의미로 제정한 것이니, 그것은 성경의 교훈이 아니고 힐렐(Hillel)이나 솰마이(Shammai)같은 랍비들이 조작한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보는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기재되지 않은 많은 규칙들을 유전하였다고 말하였다. (Jos. Antiq. Xlll. 10:6) 바리새교 랍비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손 씻지 않고 먹는 자는 이단자와 같다 라고 하였다. (Klostermann)

막 5:22
 회당장- 이것은 회당의 관리자니 작은 회당에는 한 사람이 있으나 큰 회당에는 몇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막 5:23
 야이로는 , 그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므로 예수님을 접촉하게 되었고 또 그에게 간구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그의 받은 축복이다. 사랑하는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이 구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렇게 가족이나 친척을 사랑하는 인연 때문에 끌려서 복음에 참예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

 막 5:25
 혈루증. - 이것은 매우 고치기 어려운 병인데 당시에 유대의 의술들도 이 병에 관하여 많은 치료법들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 무효하고 거의 전부가 속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토빠서에 말하기를 "제일 간다고 하는 의사는 지옥에 감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막 5:26
 그 여자의 질병은 인력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인생들은 죄악에서 구원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실 수 있다.

 막 5:27
 뒤로 와서. - 이렇게 그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은밀히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여자가 남자의 옷에 닿기만해도 수치로 여겼으니 그 풍속을 아는 그 여자는 , 감히 예수님의 앞으로 와서 그 옷깃을 만질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가 그렇게 예수님의 뒤로 온 것은 불의한 기만심의 행위라 하기보다 무사기한 은휘니 죄라고 말하기 어렵다.

 막 5:28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 그 여자가 잃게 생각한 것이 진정한 신앙인가? 미신인가? 이것은 결코 미신이 아니다. 그 여자가 예수님의 옷깃 그것에 치료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그 옷깃만 만져도 권능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어난 넘치는 신앙이다.

 막 5:30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르시고 묻는 말씀이 아니라 아시고도 선하신 뜻으로 그 여자의 신앙을 시험하시려고 물으신 것이다. 그 여자의 신앙이 그 열렬한 것은 좋으나 이제 더 나타나야 할 것은 그 순진한 방면이다. 그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은밀히 온 것이 불의한 속임이 아니고, 무사기한 숨김이었지만 그런 무사기한 숨김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점점 속임의 방면으로 전개될 수도 있고, 혹은 순진하고 진실한 방향으로 끝까지 나갈 수도 있다.

 막 5:31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면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 곧,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접촉하다 시피 둘러 싸고 미는데 물으시는 말씀이 무슨 의미이신가 함이다.

 막 5:33
 이 귀절의 말씀에 의하면 그 여자는 그 무사기하게 가졌던 숨김의 행위를 자백하고 명랑하게 진실한 태도를 가진다. 여기서 그 여자의 신앙은 더욱 아름답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여자의 신앙을 칭찬하셨다.

 막 5:34
 본절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은 세가지로 위로를 주신다.
 (1)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이 말씀은 그 여자가 자기의 공로나 의를 의지할 것 없으나 다만 예수님을 의지하여 질병에서 구원함이 되었다는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공로나 의를 의지하여 되려고 하면 언제나 불안을 느낄 것이다. (2) 평안히 가라. - 예수님께서 그의 하나님 아들이신 권위를 가지시고 이와같은말씀을 하셨으니 그것은 말뿐이 아니다. 그것은 그 여자에게 진정한 평안을 확고하여 주심이다. (3)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이것 역시 말 뿐이 아니다. 그것은 그 여자에게 이제부터 건강을 영구히 보존시키시는 약속이다.

 막 5:36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 이 말씀을 보면 회당장은 그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받고 그 믿음에 염려와 공포를 기지게 된 듯하다. 신앙과 염려 혹은 두려움은 서로 용납되지 못한다. 믿는 자가 염려하기 시작하면 신앙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공포와 함께 있을 수 없으니 그것이 홀로 우리의 심령을 점령해야 한다.

 막 5:37
 베드로. . . 야고보. . 요한. - 이 세 제자는 모든 제자들 중에 그 신앙과 경전에 있어서 첫 머리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의 특수한 일에 견학하였다. 예컨대 산상 변화의 때에 , 또 겟세마네 기도의 때에 그들은 동참한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특별한 기회를 주신 이유는 다음과같다. 곧(1) 중대한 일일수록 정예 분자들만이 간참함이 그 일에 도움이 되는 까닭이고 (2) 주님께서 그 복음을 중거하심에 있어서 특별히 가까이 하는 제자들을 두신 까닭이다. 이것은 결코 편벽된 것이 아니고 계단적으로
사랑을 널리 행하는 방법이다. 그가 저희에게 특수 훈련을 주셨다.

 막 5:38
 "훤화"함은 피리 부는 것 같은 것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막9;23) "울며 심히 통곡"함은 그 때 유대인들이 상사를 당하면 우는 것을 힘섰는데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서까지 울게 한 풍속도 있다.

 막 5:39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 이 말씀의 의미는 실로 그 아이가 죽지 아니했다 함이 아니고, 이제 부활하겠으니 만큼 자는 것과 마찬가지란 의미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한번 죽음이 한번 잠과 같다.

 막 5:40
 그들이 비웃는 이유는 윗절에 있는 것과 같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신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뜻은 그 아이가 실제로 죽지 않앗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깨닫고 비웃는 일이 많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그 집안에서 내어 보내시고 그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셨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중대한 일을 하실 때마다 분위기를 혼잡하지 않게 하고 단순하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막 5:41
 일어나라. - 이 말씀은 기도가 아니고 명령이다. 죽은 사람을 명하여 일어나게 하심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막 5:43
 이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 - 이렇게 말씀하심은 그 때 유대인들의 메시야 관념이 이 세상 생활을 잘 되게 하는 구주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면 저희는 예수님을 저희의 관념에 맞는 메시야로 간주하고 덤빌 것이다.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 이는 그 소녀의 부활을 확증하시려는 것이다가. 다시 말하면, 죽었다가 살아난 그 소녀는 어떤 이상스러운 영이 아니고 참된 육신으로 먹으며 마실 수 있는 사람인 것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