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원 율법대로는 대속일만 금식하는 법인데(행27:9), 후에 유대인들이 매주 둘째날과 다섯째 날에 금식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과 그 밖에 금식 곧,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법을 지킨 것이다. (눅18:12). 본래 하나님의 율법이 가르치는 금식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는 그들의 견해와 일치할 수 없었다.
막 2:19
혼인 집 손님들.- 이들은 신랑과 가까운 친구들이니 반드시 그 후행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키고 "신랑"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비유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는 기쁜 때인 고로 금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막 2:20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될 앞날의 사실을 예언하신 것인데 사53:8에 근거한 것이다.
막 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것은 율법을 오해하여 가르치던 유대 주의와 예수님의 교훈이 서로 부합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구약과 예수님과의 불합치를 의미한다는 의견은 오착이다.
그러면 "낡은 옷"은 구약을 오해한 유대 주의요, "생베 조각"은 구약의 성취요 전개인 그리스도의 교훈이다. 랑게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교훈은 너무 좋아서 그것을 유대주의의 보충으로 삼기에는 아깝다"고 하였다. 눅5:3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문구가 있느니 곧,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이 귀절의 의미는 바리새 식으로 생각하는 자는 복음에 전황하기를 원하지 않는 고루한 생각을 가진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유대 주의에 오래 젖어 있던 자들의 비루한 고집을 탄식하심이다.
막 2:24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남의 밀 밭에서 낫으로 베지는 못하나 손으로 이삭을 따는 것은 율법이 허락한 것이다.(신23:25)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일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관념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그 행동이 안식일에 추수하는 알을 하였다는 것이다. 정식 추수는 안식일에 하지 못하는 법이다.(출34:21) 기아를 면키 위하여 손으로 즈금 따서 비비어 먹는 것이 무슨 안식일 법의 위반이랴?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같이 외모를 편중시하여 율법을 잡아 늘여서 사람을 속박한 것이다.유대의 랍비들이 안식일 법에 대하여 29조의 세목을 붙엿는데 그중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곧,
(1)안식일에 부녀자가 댕기와같은 것을 머리게 드리는 것 밖에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것.
(2)누구든지 안식일에 두글자 이상을 쓰지 못할 것,
(3)옷 만드는 자는 그 바늘을 가지고 금요일 저녁에 어디 가지 말것이니 혹 잊어버리고 돌아왔다가 그것을 찾아 오면 안식일에 운반하는 일을 함이 됨이다.
(4)안식일에 인명을 구하지 말것이다.
클로니모스라는 랍비는 어떤 아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은때에 그 누명을 벗으려고 죽은 아이의 입에 종이 조각을 물렸는데, 그가 그것을 안식일에 했다고 해서 임종시에 유언하기를, 자기의 사후 백년 동안 그의 무덤 앞으로 지나는 자마다 돌을 그 무덤에 던져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막 2:26
예수님은 여기 삼상21:6의 사실을 인용하여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임을 지적하셨으니 그것은 긍휼에 속하는 일이다. 불쌍히 여겨서 행하는 일은 안식일에도 허용된다.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삼상21장에는, 다윗이 놉 땅에 갔을 때에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니고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 있었다. 그러면 마가의 이 기록은 오착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삼하8:17에 보면, 아히멜렉의 아버지는 아비아달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아히멜렉 자신도 그 아버지와 같은 성인 아비아달이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이 말씀으로 가르치신 요점은 비록 거룩한 물건이라도 아주 부득이한 경우에는 긍휼의 목적으로 전용됨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신다.(마9:13)
막 2:27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축복하시기 위한 것이다. (출31:13). 이것은 영원한 내세의 안식에 대한 표로서의 현세적 축복이다. 이 날이 축복이 되게 하는 것은 인생의 최대 행복이요 또 안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원칙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만 허용된다. 이밖에 특례로 허용되는 일은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는 일과 비상성을 띤 부득이한 일이다. 이 특례가 허용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안식일은 인간을 속박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방식대로 인간을 축복하시기 위해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막 2:28
인자.- 이 말씀은 인류의 대표이신 그리스도라는 내용을 가진다. 이 말의 헬라 원어는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라고 한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아람 말로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람 바라로는 이 말이 빨에네쉬( )이다. 에수님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실 때에 단순히 사람
이란 뜻으로 하신 것이고 메시야라는 뜻으로 쓰신 것이 아닐 것이라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그들은 이 이유를 말하되, 빨에네쉬가 아람 말의 관용적 의미로서는 그저 "사람"혹은 "그 어떤이 "라는 뜻인 까닭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만과 피빅은 아람 말의 권위자로서 말하기를 빨에네쉬가 단순히 "사람"이나 혹은 "그"를 의미할 뿐아니라 어떤 특별한 칭호로서도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단7:13에 있는 "인자"란 말을 생각하시고 자기에게 그 칭호로 붙였을 수 있다. 주전 1세기에 기록된에녹
서31-32절의 기록을 보건대 인자란 말을 메시야의 칭호로 사용한 실례가 적지 않다. 그것을 보아도 인자란 말은 일반에게 메시야의 칭호로 인식된 듯하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도 이 인자란 말을 사용하실 때에 단순히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고 뜻 깊은 메시야의 내용을 가지는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 곧, 메시야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이 인간을 위하여 있는 고로 인간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실 듯한데 그렇게 하시지는 않고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로되 사람이 그것을 주관하여 그의악한 마음으로 안식일에 대한 견해나 태도를 스스로 작정하면 안식일이 사람에게 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주관하셔야 사람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에게 가장 행복도니 날인 안식일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할 방면이 있다.
첫째로 , 구약 시대의 안식은 계명 대로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마지막 날 제 7일에 안식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가 이르자 이 원리는 반대로 되었다. 곧 7일 중 첫날에 먼저 안식하고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뜻 없이 된 일이 아니다. 주님께서 먼저 구약 시대의 안식의 원리에 따라 모든 율법을 지키시고 죽으시기까지 힘써 일을 하신 열매로 우리는 그 공로를 힘입어 7일중 첫날에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 구약 시대의 이 안식일의 원리가 신약 시대에 이르러 7일 중 첫날로 바꾸어진 것은 초대 교회의 어떠한 교중의 회의로 가결되어 실행된 것이 아니고 , 에수님의 부활하신 일에서 초대 교회가 우주의 새 창조를 느끼게 되어 그것을 기념하려는데서 그렇게 된 것이다. 새 창조의 기념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