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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 "여자"는 마리아이다.  막14:5을 보면, 이 기름의 값이 3백 데나리온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보통 수효의 일가족의 10개월 가량의 생활비이다.  그가 이런 큰 재산을 가져다가 예수님에게 봉사하는 의식에 사용하였다.  이렇게 기름을 붓는 것은 정성스러운 존재를 의미한다.

  마 26:8,9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그리스도를 위하여서는 우리가 생명을 드렸다 할지라도 그리 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은 왜 이 여자의 기름 부은 것을 허비로 보았을까?  이 제자들의 분을 일으키도록 주동한 자는 유다니(요12:4), 그는,도적이기 때문에(요12:6), 이런 어둡고 악한 생각을 가졌고, 또 다른 제자들을 선동하였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원수들은 유다와 같이, (1)탐심과 이기주의의 소유자요,(2)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을 신령한 일보다 존중히 여기는 인도주의자들이요, (3)언필칭 가난한 자를 구제한다는 공명심의 소유자들이다.

  마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우리는 예수님을 섬기는 시간과 일이 범상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제정하신대로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너무도 희귀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일에 있어서는 그 의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우리의 향기로운 힘과 정성을 모두 다 부어야 된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와 기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정성 있게 하지 못하고 외식적이고 무의식적이고 기계적인 행동으로 하는 때가 많다.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면서 이렇게 함은, 그에게 향유를 붓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고 악취를 내는 일이다.
  (2)그리스도를 섬기는 시간을 아무리 많이 가지는 사람이라도 그가 자기와 남들을 위하여 쓰는 시간의 양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것이다.  그가 자고 먹고 육신의 사업하고 남들과 교제하는 시간은 많고 길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스도를 섬기며 교제하는 시간은, 그의 일생에 있어서 매일 평균치면 순간 동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시간에는 모든 정성을 다 바쳐야 된다.  특별히 성도가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간은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성령과 은혜로운 진리의 역사 있는 분위기는 만나기 어렵다.  그런 기회를 헛되이 놓치지 말고 붙잡기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들여야 한다.

  마 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기름 붓는 예를 행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영적으로 존귀히 여긴 의식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이다.  그 죽으심의 보배로운 뜻을 모르는 자가 믿는다고 하는 자들 중에도 많은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가신 것은 피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잊어버리고 죄를 없애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씻는다"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율법은 갈보리까지 사람을 쫓아가다가 거기서는 더 쫓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장 향기 있게 존중히 하는 것은 그것을 대속의 죽음으로 바로 보고 전파함이다.  고전2:2에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다.

  마 26:13
   그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의미라고 하셨다.  요 12:7 참조.  그러므로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무의식 중에 예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일은 복음에 중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만큼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어 영구히 전파되며 온 천하에 알려지고 있다.

  마 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 여기 있는 "공회"란 말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의미한다.  그 회는 이 때에 합법적으로 모인 것은 아니다.  그 회가 성전에서 모이지 않고 대제사장의 집에 모인 것도 불법이다.  그 뿐 아니라 그 회는 밤중에 모이는 법이 없는데 그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재판하기 위하여 밤중에 모인 것이다.  그들은 법을 잡은 자들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불법을 행하였다.
  거짓 증걱를 찾으매.- 예수님에게 불의가 없는 사실에 대하여는 예수님의 원수들도 잘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도 예수님을 정죄할 참된 죄목이 없는 줄 알고 오직 거짓 죄목을 꾸며 보려고 한 것 뿐이다.

  마 26: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막 14:56에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고 한 말씀도 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절대적으로 허물이 없는 증거이다.  그의 원수를 이 그에게서 허물을 잡지 못할 뿐 아니라, 거짓되이 죄목을 만들어 그에게 씌워 보려고 하였으나 성공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의 보통 의인에게 대하여는 거짓 증인들이 죄목을 꾸며 씌우는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대하여는 그런 자들이 그 간교한 위증을 가지고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허물을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허물을 만들어 씌우지도 못하였다.  태산을 젓가락으로써 옮겨 볼 자가 있으랴?  의와 성결만 있는 예수님이시고 의와 성결이신 예수님에게 대하여 누가 허물을 잡을 수 있으랴?
  두 사람이 와서.- "두 사람"은 믿을 만한 증인의 수효이다.  저희의 증거가 참이면 힘 있게 믿어질 만한 것이겠지만, 그와 반대로 그들의 증거가 참이 아니라면 힘 있게 불신임이 될 만한 것이다.
  다음 귀절에, 그들의 증거가 완전히 거짓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 "두 증인"은 그들의 증거가 완전히 불법이고 완전히 거짓이라는 사실을 힘있게 말해 줌이 되고 말았다.

  마 26:61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이것은,
  (1)예수님의 말씀을 그릇되이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성전을 청결케 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셨으니, 이 말씀에는 "너희가"란 말이 있다.  그러나 거짓 증인들은 그것을 "내가"라고 그릇되이 옮긴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은, 자기가 성전을 허시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2)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성전을 존중히 여기시는 취지에 있었다.  그러나 거짓 증인들은 이 말씀을 그와 반대로 악용하여 예수님께서 성전을 천하게 또는 경하게 여기신 듯이 생각되게 말을 옮겼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그릇되이 인용함이다.
  (3)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가지시고 자기가 죽임이 되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요 2:21,22).  그러나 거짓 증인들은 이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대한 그들의 인용은 위의 설명과 같이 삼중 오해를 가지고 있다.   

  마 26:62,63
   아무 대답도 없느냐.....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거짓 증인들의 증거에 대하여 예수님은 침묵부답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침묵에 대하여 몇 가지 설명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1)그의 왕적 침묵.  그는, 만왕의 왕이시니 그의 승리는, 한 개의 거짓 증거에 대하여 통쾌한 답변을 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런 용열하고 쇄세한 거짓말에 대답하지 아니하심이, 오히려 우주보다 크신 그의 위엄을 보인다.  높이 날아 다니는 학은 참새의 양식인 조를 먹지 않는다.
  (2)제사적 침묵.  그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속죄를 위하여 희생이 되신다.  그는 죽이기로 작정된 양과 같으셨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2,23)라 하였고,"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행 8:32) 라고 하였다.
  (3)선지적 침묵.  선지자는 말한다.  또 외친다.  그러나 선지자는 역시 침묵하기도한다.  그는 어떤 진리는 때가 이르기까지 가리운다.  그러므로 예언은, 우리에게 알게 해 주는 방면이 있는 동시에 운리가 해석하기 어려운 오묘하고 깊고 비유적이고 시적인 말씀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렇게 수수께끼(삿 14:12)식으로 알기 어려운 숙제로만 주어져 있는 이유는, 그 예언이 성취될 때에 더욱 신통하게 뜨겁게 믿어지게 하려는 까닭이다(요 13: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말씀은, 예언 중에 수수께끼와 같은 예언이다.  이것은 성취된 뒤에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진 맛있는 예언이다.  이것은 그 성취의 때에 독특하게도 자극성 있게 믿음을 주는 예언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해석하시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에 대하여 오해한 자들에게 아직 변증하시지도 않으시고
침묵하신 것이다.  그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이 예언의 뜻을 알게 되었다(요 2:22).  그러므로 여기 예수님의 침묵은, 그 예언의 성질을 그대로 보존시키기 위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여기서 선지적 침묵을 지키신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가야바는 여기서 종교 법정의 정식서약을 하면서(출 22:11), 예수님의 공식적 고백을 청구한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며 그 종교 법정을 인정하시는 뜻으로 그 청구에 응하신다.
  (1)예수님께서 친히 맹세하시는 형식은 취하신 바 없다.  그러나 그는 그 법정의 대표가 맹세하는 의미의 고백을 청구함에 대하여 응하시어 대답하시었다.  그는 맹세의 의식은 취하지 아니하시면서 맹세의 성질을 가지는 진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르렀다.
  (2)맹세 그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너무도 남용하여 낮고 천하고 작은 일들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들어서 맹세하는 악한 풍속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때의 유대인들에게 대하여 산상 설교를 하실 때에 그것을 금지하셨다.  그러나 맹세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원리를 일률적으로 금하신 것은 아니나, 법정에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출 22:11에 규정하셨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가야바가 산헤드린 법정에서 맹세하는 법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님더러 하라고 청구한 것은 너무도 예수님을 무시하는 일이다.  그런 청구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항상 진실히 말씀하시며 행하시는 사실을 무시하는 일이다.  그런 청구는 예수님께서 너무도 큰 고통을 드린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여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실 세상의 구주 곧,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 오시기로 구약에 약속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실 왕이시다.  예수님의 메시야이신 여부에 대하여 그들이 알아 보는 이유는, 그들이 믿으려고 한 까닭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든지 그들은 그의 대답에서 그를 죽일 건과를 찾아 보려고 한 것 뿐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답에 따라 나타난 그들의 악행을 보아서 잘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말하라"는 말은, 그 윗말이 보임과 같이 법정 맹세의 절대적 진실성 있는 솔직한 단언을 요구함이다.  법정에서 맹세하면서 한 말은 의례히 진실해야 되는 법이고, 그 말을 듣는 자는, 그 말을 믿어 줄 의무를 가지는 것이 모세의 법이다(출 22:11).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공법적 증거의 기회에 자기가 메시야이신 사실을 증거하셨다.  이것은, 참으로 법정적 공증의 성질 있는 중대한 증거였으니만큼, 그는 침묵하실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말씀하셨다.

  마 26: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이 답변은 솔직성 있고, 단순성 있는 법정 맹세의 어투이다.  그는 변동될 수 없는 법정 공증의 무서운 단언을 내리신다.  이 중대한 단언에는 천지가 두려워하여 진동할만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어린양의 조용한 희생의 최후 계단이니만큼 그러한 일은 없다.  그는 자기에 대하여 이스라엘 법정에서 공증을 하신 것으로 증거의 최후 계단에 이른다.  이런 중대한 증거를 받지 않는 자들은 끊어진 벼랑 곧, 절벽의 끝에 임하여 실족하는 위험에 떨어짐과 같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 말씀은 무서운 말씀이다.  이것은, 그 윗말씀에 나타난 법정 맹세의 공증으로서 무섭게 끊어 말씀하신 그의 메시야 증언에 따르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자기가 메시야라고 그는 최후적 단언을 하셨으니, 그 자리는 절벽의 끝이다.  그 말을 듣는 자들은, 거기서 하늘로 올라가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무한히 깊은 구렁에 떨어지든지 두 가지 태도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승리의 높은 길에 오르시는고로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부끄러움과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이제 죽으시나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며 또 하늘에서 이땅에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다.  이 귀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단 7:13의 내용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가르치신다.  단 7:13은, 메시야께서 영광과 권능으로 오시어 세상을 귀정하시고 또 다스리실 것을 뜻한다.  "이 후에"란 말은, 헬라 원어 앞 알티(*        )라고 하는데"이제부터"란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의 메시야 영광이 이제부
터 나타난다 함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그러하다.  그가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말미암아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을 세계에 펴시고 다시 오시어 심판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그를 죽이려는 대제사장과 공의회 앞에서 메시야의 영광이 이제부터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당하다.  "인자"는 단 7장에 예언된 메시야를 가리킨다.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최고 은총과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으로 천지 만물을 다스리심을 가리킨다.  이 일을 그가 승천하신 뒤에 실행하시고 계신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일을 가리킨다.  그 때의 대제사장들과 공의회가 주님의 재림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이 귀절의 말씀이 모순되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귀절의 말씀은 인자님의 승리하시는 일들에 대한 시간적 거리를 요점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그가 영화로운 승리자시며 심판자이신 사실을 생각한 것 뿐이다.  그의 죽으심은 그의 부활하심과 관련되었고, 그의 부활하심은 그의 승천하심, 왕 되심, 재림하심의 사실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죽으시는 사실에는, 그의 모든 영광과 승리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마 26:65
  옷을 찢으며.- 이것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외식이다.  그는 그렇게 하므로써, (1)하나님에게 대한 자기의 열성과 경건이 큰 체함.  (2)예수님에게 대한 그의 정죄(참람한 말을 하였다고 정죄함)에 대하여 듣는 자들의 동감을 얻으려고 그는 이렇게 가증하게도 그 옷을 찢으면서 그리스도를 저버린 것이다.  그는 그 법정에서 예수님에게 맹세의 법으로 증거를 요구하고도 예수님의 증거를 불신임한 것이다.  그것은 대제사장으로서 출 22:11을 위반한 것이다.  법정에서 맹세의 법대로 나온 증거는 그것을 청구한 자가 믿어야 되는 법이다.  그러나 가야바는 그것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근거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이 말은 가야바가 불법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하신데 대하여 그는 예수님의 증거를 더 들어 보지도 않고 그저 무조건적으로 참람하다고만 하여 정죄한 까닭이다.  예수님은 참된 그리스도이신데 왜 그렇게 정죄되실 것인가?

  마 26:66
  사형에 해당하니라.- 그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을 받아서 이렇게 불법의 찬동을 한 것이다.

  마 26:67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얼굴에 침 뱉음"은 멸시와 모욕의 극단이고, 얼굴을 "주먹으로 침"은 멸시에 구타의 해를 가하는 무서운 악행이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침"은 잔인한 구타의 해를 더함이다.  이 세가지 악행의 경우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까 두려워서 그 곁에 가까이하여 참아 보지 못할만한 것이다.

  마 26:68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두 가지로 모욕함이다.  곧, (1)그의 선지직을 모욕함.  선지직은 속된 일에 대한 점술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대한 대언의 성직이다.  그러나 이 때의 악인들은 예수님의 선지직을 한개의 술수로 취급하였다.  (2)그들이 예수님을 구타한 것도 그에게 대한 크나 큰 모욕인데, 게다가 그 구타 사실을 가지고 희롱하기까지 하였으니 그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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