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7:1
엿새 후 - 눅 9:28을 보면, "팔일쯤 되어"라고 했으니 이 두 문구의 조화는 어떠
한가?
누가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떠나시던 날과 변화산에 도착하시던
날을 계산하였고, 마태는 그 중간 날수만 계산한 듯하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 왜? 다른 제자들은 산 아래 두시고 이
들만 인도하시고 등산하셨는가? 그 이유는, 그 세사람에게 특수훈련을 주시려는 까닭
이다. 그것은 편벽된 사랑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 특수 훈련이 그 사람드르이 사사
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통하여 천국의 공익을 도모하려는 것이기 때문
이다.
마 17:2
변형 - 헬라 원어로 메테몰포-데(* )라고 하는데 단순한 외
형적 변화가 아니고 내부에부터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사단의 변화는 이것과 달라서
외형 뿐으로의 변화를 그 특질로 한다. 예수님의 이 변화는 그가 천계에서 가지실 영
광을 이 세상에서 잠간 동안 참되이 가지시어 제자들에게 그의 재림의 영광을 미리 보
이심이다.
마 17:3
모세와 엘리야 - '모세'는, 땅위에서 육신으로 죽기는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몸을
어디 두셨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게 되었다(유1:9,신34:6). 그리고 '엘리야'는 육신으
로 승천하였다.(왕하 2:11). 이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닥, (눅9:31) 부활하시고 하늘
영광을 얻으실 일을 증거라는 경위에 나타날 만한 인물들이다. 그 뿐아니라 그들은 그
리스도의 증거인들의 대표자들이다. 모세는 율버으로 증거한 자들의 대표자요, 엘리야
는 예언으로 증거한 자들의 대표자이다.
마 17:4
여기에 초막 셋을 짓되- 베드로는 여기서 실언 한 것이다. 왜 실언인가 하며,(1)
천계의 영광을 독점 독락 하려는 까닭이며 (2) 천계의 영광을 땅위에 붙잡아 두려한
까닭이고 (3) 그 영광이 나타난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 아
니고 그것을 보고 경성하여 에수님의 말씀을 순종케 하려는 것인데(5절) 베드로는 거
것을 누리려고만 생각한 까닭이다.
마 17:5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
을 들으라.- 여기 '소리'란 말은, 음성이란 말이니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다. '너희
는 저의 말을 들으리'고 하신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하나님의 아들=그의 기뻐하시는 자)로 세우셨으니 만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만 들어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마 17:6,7
출 20:19; 단 8:18,9:21, 10:10,18 참조
마 17:9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마라 하시
니 - 예수님이 산에서 그렇게 변화하신 목적은, 그의 부활하신 후에 가지실 영광을 예
언하는 것이니 만큼 부활하신 후에야 사람이 그것을 알아서 효과를 낼 것이다. 그의
부활 전에 그것을 듣는 자는 호기심만 기르게 됨에 따라서 오해에 빠지기 쉽다. 그러
므로 주님은, 그의 부활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마 17:10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윗 귀절에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더러 변화산 위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에 대하여 그들은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다. 성경에 있는대
로 (말4:5) 서기관들이 해석하기를 메시야께서오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리라고 하
였는데 그와 같이 변화산 위에 엘리야가 나타났던 일에 대하여 대외적으로 말하지 못
할 이유가 무엇일까고 그들은 여기서 묻는다.
마 17:11-13
이 귀절들은 성경에 오리라고 한 엘리야가 누구임을 설명하였으니 그는 곧, 세례
요한이다. 그가 예어느이 말씀대로 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합당하게 대우하
지 않았고, 그와 같이 사람들은 오신 메시야도 합당하게 영접하지 않는다고 주님은 탄
식하신다.
마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 눅9:38에는 이 아들이 그의 외아들이었다. 그
가 자기 아들에 대하여 예수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그 아들이 외아들인 사실을 만한
이유는, 예수님의 긍휼을 더욱 일어켜 얻으려는 까닭이었겠다
마 17:17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이 말씀은, 그 때의 무리와 그 아이의 부친과 및 예수
님의 제자들을 가리킨 것인데 이들은 모두 다 신앙이 없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에
의뢰하여 순종하는 것이니, 믿음이 없는 세대는 진리에 대하여 '패역한' 곧, 거스리는
세대일 것이다. 아무리 도덕은 아름다워 보이는 시대라도 신앙이 없으면, 그 아름다움
은 모양 뿐이고 생명있는 진정한 선은 아닌것이다.
너희와 함께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패역한 시대와 함께 계시기를 괴로와 하
시는 탄식인가? 혹은 오래지 않아 패역한 새대를 이별하실 것을 가엾게 여기시는 것인
가? 그 아랫말에 있는 대로 그가 그 간질병 들린 아이를 돌아보신 것을 보니 확실히
이 말씀은 그의 긍휼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가 패역한 시대와 함께 계
실 동안이 길지 못할 것을 가엾이 여겨서 한번이라도 더 긍휼을 베푸시는 태도를 보인
다. 패연한 시대를 역스럽게 생각하시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신 것은 긍휼이 많으
신 예수님의 마음이다.
마 17:20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겨자씨'는 지극히 작은 씨이다. 이것은 지극
히 작으나 장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니 이 말은, 작으나 생명있는 신앙을 비유
한다고 한다.(Grodheide) 우리의 믿음이 비록 큰 것 같으나 실상은 겨자씨 보다 작은
것이다. 우리는 불신앙에 흘러 가려는 경향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늘 위험하게 여겨 신앙부족의 병에 걸려 있음을 우려해야 한다.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이것은 비유니 산처럼 무겁
고 큰 근심꺼리도 신앙으로 해결된다는 뜻이다.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는 무제한적으로 무슨 일이든지 다 성취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고 필요한 일의 성취를 이름이다.
마 17:22,23
여기서 다시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자기으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일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그 이유는, 이 사실을 미리 말씀해 두어야 그 일이 이루어 질 때에 제자
들이 너무 놀라지 않게 되고 또 조만간 믿음을 가지게 됴겠기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하
여 그가 이렇게 미리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다고 했으니(막9:32),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므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줄은 아직 알지못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성경을 잘 알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심히 근심하더라.- 제자들이 근심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이유가 무엇인
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께서 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시고 왕국을
세우실 줄 알았다.
마 17:25
관세와 정세 - '관세'는 소유세요, '정세'는 인구세이다.
말 17:26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
은 하나님의 성전세를 면할만하다는 것을 암실하려는 것이다.
마 17:27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남들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려고 당영히 쓸 권
리도 양보할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다.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이것은 물론 이적이다. 이 이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연게의 천태만상과 그 동정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 이신 것이 확실하다. 그는 한 세겔의 돈을 입에 먹은 고기를 아셨다. 또 그 뿐 아니라 그는, 그것을 베드로의 낚시에 첫번에 걸리게 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옛날에 보물이 고기 뱃속에서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헤로도터스(Herodotus)가 말하기를, "폴리크라테스(Polycrates)의 가락지가 고기 뱃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였다.(Herodotus lV. 42) 그러면 고기 입에 한 세겔 돈이 물리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고기를 아신것은 그가 하나님으로서 가지신 전지하신 성품이시고, 그 고기가 베드로의 낚시에 첫째로 잡힐 것을 보장
하신 것은, 고기들도 주관하시는 그의 (예수님)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 말씀에 대하여 몇가지 그릇된 설명을 던진다. (1)파울루스(Paulus)는 이 기록에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27절)이란 말을 억지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곧. 베드로가 그 잡은 고기를가지고 팔기 위하여 이(베드로의 입)을 열어 "사시오! 사시오"하면 그 고기가 팔려서 한 세겔 돈이 수입되리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귀절의 문구를 너무도 무시하는 그릇된 해석이다. "입을 열면'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아노익사스 토 스토마 아우투(* )라고 한다. 이것은 '그것의 입을 열면'이란 말이니 곧, 고기의 입을 열면이란 말이다. 파울루스는, 여기 "그것의 (* )란 말을 억지로 내어버리고 이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2) 스트라우스(Strauss)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고기가 낚시를 물어채기 위하
여 입을 열 때에 그 본래 물고 있던 한세겔 돈은 떨어졌을 터인데, 어떻게 마태의 이 기록은 그 돈이 그 고기 입에 있었다고 하는가? 이것은 모순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기의 생활과 습관을 너무 간단하게 추측한 말이다. 우리는 베드로가 잡은 고기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며 그 입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 돈을 입에 물었던 고기가 낚시를 물 때에는, 그 돈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증할 자 누구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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