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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5:1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 이 산은 어느 산인가? 혹은 이것이 다보산이 라고  하나
그것은 갈릴리에서  거리가  너무  멀다.  혹은  이것이  갈릴리  호수  가의  컨해틴
(kunhattin)산이라고 한다. 알포드는 이 헤석을 지지한다.

  마 5:2
    입을 열어. - 이것은 그의 교훈의 엄숙성과 중대성을 표시하는 저자의 형용이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여기 "심령"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프뉴마(*
            )라고 하는데 영혼의 근본적 부분이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인격의 골수와 같은 극히 내부적인 영혼 부분에서 영적 궁핍을 느끼는 자들이다. 데오
도레 즈안은 여기 "가난한 자"란 말 프토코이(*            )는 단순히  어떠한  빈핍
상태에 있는 자가 아니고, 그런 가난한 상태에서 견디어 가는 자를  가리킨다고  하였
다. 그러면 이 영적 수난자는 누구냐? 이는 구약에서 말한 "가난한 자"와 같은 자들이
니 (1) 자기의 할 수 없는 처지와 하나님 밖에 도와 줄  자가  없음을  아는  자들(사
61:1)(2)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과 반대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오만한 자들의
박해를 받는 자들(사66:2) (3) 죄를 인하여 상심하며 회개하는 자들이다.(사66:2). 그
러면 이들은 자기의 의가 없는 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고 사죄를 구하는  자들이
다. 이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는 사상이 다른 자들이다.
    복이 있나니. - 이 말씀은 헬라원어로 마카리오이(*                           )
라고 하는데 행복의 최고급을 이름이다. 특히 이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인간
이 지은 것이 아니다. "천국"은 헬라 원어로 헤바실테이아톤 우라논(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영적  통치를  의미한
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
고 하셨으니 이것은 천국이 하나님의 영적 통치를 욧점으로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
이다.이 영적 통치를 천국의 첫째 요소로 잡은 것은 유명한 성경 신학자 겔할더스  보
스 박사도 힘있게 말한 바이다. 천국이 현세에서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참  교회로도
나타났고, 내세에서는 구속이 완성되어 영원히 하나님과같이 있을 곳이다.

 

 마 5:4

   애통하는 자. - 헬라원어로 펜둔테스(*                      )라고  하는데  이는
(1)즈안 박사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밖에 나타난 슬픔을 의미한다. 곧. 이 세상의  것
을 믿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눌린 성도가 가지는 슬픔을 가리킨다. 물론 이  슬
픔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위하여 옳게 살려고 애쓰다가 불의한 자들과 충돌됨에  있
다. 이 해석을 취하는 경우에 있어서 이 귀절의 의미는 사람이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옳게 살아  보려다가
불의와 충돌됨이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덕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벌써 성
별되었으므로 그러한 덕을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게 된 것이다. (2) 대다수의 학자들은
말하기르 이 "애통하는 자"란 말은 자기 자신의죄에 대하여 통회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마 5:5

    온유한 자. - 이는 헬라 원어로 프라에이스(*            )라고 하는  것인데  조
급, 경솔, 단기와같은 모든 아름다운 덕의 소유자를 가리킨다. "온유"는 나약이  아니
고 무엇보다도 지구성이 있고 소화력이 있고 따라서 파수력 있는 것이니 결코  무모한
퇴축이 아니다. 이 덕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지혜에 절대 의뢰하여 처신의 조종하는
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모에 풍기어 남들을 품고 또 소화하는 자니 약자의 도덕이
아니고 강자 또는 이기는 자의 도덕이다.
 그런데 이 도덕이 어떠한 공로가 되어서 소유하는 자에게 그런 소득이 있게 되는것인
가? 이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아름다운 덕이지만 사람의 힘으로 가져 보고 있는 것
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온유하게"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신앙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기업으로 받는다함은 짜녀가 그 아버지에게서 받는
것을 이름이다.(롬8:17). 그러므로 이것은 갚음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
버지로서 주시는 영원한 선물인 것이다. 여기서 땅은 내세에 신자가 있을 곳을 가리킨
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여기 "의"란 말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거저 입혀  주시는
칭의의 의를 가리킨다. 크레머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완전한 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자기 힘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경험이 증명한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 - 여기서 부터 나타나는 네가지 덕은 적극성을 띤다. 먼저  기
록한 네 가지는, 사람이 자기에게 의가 없음을 느끼어 하나님의 높으심을 사모하며 탐
구하는 신앙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제부터 네가지는, 위에 벌써 말한 바와 같이  이미
믿는 자가 남을 위하여 행하는 아름다운 덕을 말하낟. 다시 말하면, 처음  네  가지는
죄인이 반성 통회 신종 득의하는 자신이 구원 받는 계단을 말하고, 다음 네 가지는 그
리스도이 의를 얻은 신자가 남들에게 대하여 가지는 생활에 대한 것이다. 곧,(1) 하나
님의 의를 힘입어 배부른 자가 그 문에서 나설 때에 하나님을 몰는 가련한 자들이  많
이 보이니 공로 없이 의롭다 함을 얻고 있는 그의 마음은 긍휼로 움직일 것이다.(2)그
리고 그는 이미 복음이 말씀으로 깨끗하여졌으나(요15:3), 그 깨끗하게 된 것을  힘써
지키므로 하나님을 더욱 아는 자리로 나가고,(3)그는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여  남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케 하여 영적 평화의 질서를 확립한다.(4)그 뿐 아니라 그는  의
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일에까지 나간다. 그런데 신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덕을  행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상이 따르나 그 살은 보상적 원칙대로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은혜의 법칙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나타난다.  작은 것을 행하여 큰  것을  받는
것이다. 나의 조그마한 긍휼을 행하여 하나님의 긍휼로써 갚음을 얻고(마6:14,15)  땅
위에서 나의 조그마한 마음을 정결케 하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더욱 밝히 아는 지극히
큰 복을 받고  땅위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여 화평을 이루므로 하나님의 자녀의 자
격을 알리고 땅위에서 잠간 동안 그리스4돌 마위하여 핍박을 받으므로 영원한  내세의
큰 상을 얻는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 - 클로스텔만은 이것이 죄에서 완전히 떠나 성결해짐을  의미함
이 아니고 심령 태도의 공정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음과 같이 생
각함이 옳다. 곧, 이것은 하나님에게 대하여 단순한 마음을 가짐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 이중 행위는 그의 앞에 불결한 것이니 그것으로 인하여 암매하여져서 하나님을  보
지 못하게 된다.(마6:21-24)

 

  마 5:9

   화평케 하는 자.- 신자들이 복음을 가직 인간을 하나님에게도 돌아오게 하여  화목
케 하므로 반드시 자기들끼리도 화목하게 된다. (엡2:13-18), 고후 5:18-21참조. 저희
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이 말씀은 그들이 그  화목  행위로
하나님의 아들 된 표를 나타낸다 함이고, 그것으로써 하나님이 아들이 새로 된다는 의
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아들이 특징의 하나는 진리대로
가지는 화목 행위일 것이다. (살후3:16; 고전14:33)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 여기에 "의"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한다.  11절에서
는 "의"란 말 대신에 예수님 자신임을 밝혔다.

 

 마 5:11,12

    이 귀절들은 윗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것이 무엇임을 밝혀준다. 의를  위하
여 핍박을 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곧 바로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음이다. 벧
전4:13-16 참조.
 예수님은 절대 완전하신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를 욕하고 반대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
지 거짓된 말이다. 따라서 그런 말은 모두 다 악한 말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이런  욕
설을 받는자는 살아계신 하나님편에서느 자니 만큼 복되고 그를 핍박하는 자가 도리어
비참스럽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 받는 자들이 기뻐할 이유는 첫째 그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임이요, 둘째는 저희가 추앙하는 선지자들이 그와 같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늘 복을 받
는다.

 

  마 5:13

   본절 부터는 윗귀절들에 있는 8복에 참예한 사람들이 행할 책임이 어떠함을 가르친
다. 우리가 이것을 구원 받는 도리에 대한 직접적 교훈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 구원 받는 도리에 대한 직접적 교훈은 적당한 시기가 오기 전에는 아직  예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구원은 전연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주를 믿음으로  거
저 받는 것이고, 무엇을 행한 값이 아니다. (롬4:4,5), 구원 얻을 공로를 세우려고 무
엇을 행한다는 관념은 영원히 우리의 사랑에서 뽑아 버려야 한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
도의 공로로만 우리가 받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하는 목적은 다른데 있으니 곧,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그것이다.
   너희.- 이것은 위의 8복에 참예할 자들, 곧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이고 누구든지를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아래 모든 금옥같은 교훈들을 지켜 행하
면 유익하다. 이 교훈의 상대자는 특별히 신자들이다.
   세상의 소금.- 소금의 작용은 음식물을 맛있게 하며 또 부패하지 않게 한다.  신자는
이 세상에 있어서 맛 없는 인생의 생활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맛나게 하고  또  인생
사회를 부패하지 않도록 할 직책을 가진것이다. 이것은 그가 무슨 사회 사업의 기관을
차려 놓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 복음을 바로 가르치고 바로 전하므로 되어지
는 것이다. 진정한 복음이 빛나는 곳에는 가정이나 사회도 행복스러워지는 것이다. 막
9:50참조,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그리스도를 믿던 자가 중도에 타락하면 가증스러워지고 악
하여져서 모든 사람에게서 버림이 될만한 것이다. 우리는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을  하
나하나 꼽아 살펴볼때에 이 말씀 그대로의 성취를 발견케 될 것이다. 신자가 타락하면
돼 그렇게 악하여지는가? 그 이유는 그가 그 타락한 때부터 모든 영적 도리와  도덕적
법칙을 확정적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마 5:14

   세상의 빛이라. - "빛"은 인생으로 하여금 길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진리를 나타냄에 대한 비유이다. 기독신자는 진리 곧, 복음을 나타내는  자니  첫째는
그의 실생활로써 하고, 둘째는 그의 말로써 한다.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 여기 산위의 "동네"는 교회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사2:2;갈4:26;히12:22) 교회는 산 위의 동네와 같은 고로 사람들이 쳐다보
는 것이다. 교회에는 작은 과실이 있어도 사람마다 그것을 보고 비방하게 된다.  그러
므로 교회는 그 빛을 흐리지 않도록 힘써야 된다.

 

  마 5:15,16

   예수님께서 이 부분에 가르치신 뜻은 신자가 선을 행할 때에 사람  앞에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하는 것은  그가  어디까지나  금하셨
다.(마6:1).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신자의 생활이 질적으로 빛과 같이 남들로  하
여금 진리를 볼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을 가르치신다. 신자는 복음을 믿는 생활로써 진
리를 밝혀 주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고 또 섬기도록 하여야 된다.

 

  마 5:17

   율법이나 선지자나..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 율법론의 서언으로 먼저 그와  율법
과의 관계와 및 그의 제자들과 그것과의 관계를 보이신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를 낮추사 율법 아래(빌2:6,7)오신 것이니 율법 아래 오셨다고 함은  율법의
제재를 받는 자 곧, 인간이 되셨다 함이다. 인간의 아래 있는 동물도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인간의 위에 계신 영원하신 창조주께서도 율법의 제재 아래 계시지  아니  하신
다. 하나님은 자율자이신 고로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되시는것이다. 그러나 오직 인
간만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 아래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되시어서 율법과의 관계를 가지신 것이다. 율법은 이렇게 그것과
관계있는 자의행위만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요구되는 율법적  의를
주시기 위하여 율법 아래 오셔서 율법적 의를 완전히 행하신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율법 앞에서 우리의 죄 값을 내시고도 남음이 있고 그가 율법의 모든  것
을 지키신 것은 율법 앞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의를 대신하고도 무한히 남는 그
것이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완수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오셨으니 그 의미에서도 역시 율
법과 선지자의 말씀의 성취인 것이다.

 

  마 5:18

   진실로. - 주님의 말씀은 그 어느 말씀이든지 진리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청중을 특별히 주의시키실 때에 이르러서 이 말씀을 쓰신 듯하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 없어지지 아니하고. - 이 말씀은 천지가 없어진 후에 율
법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는 율법과 선지의 진리가 영존한다는 의미
이다. 눅16:17에는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고  하셨으
니 이 말씀도 같은 의미이다. 율법과 선지자의 에언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
성되는때에 끝났으나(고전13:8), 그 윤리적 목적 곧, 사랑은 영존한다. (고전13:13).
   일점 일획. - 여기 일점이란 말은 한 요드란 말인데 요드는 히브리 글에 있어서 가장
작은 글자이다. 그리고 일획이란 말은 케라이다라고 하는데 히브리 글자의 작은  각획
을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문서를 염두에 두신것이 분명하다.  문
서의 어떤 점획을 변경하면 그 부분에서 글뜻이 달라진다. 성경의 만전 영감설을 지지
하는 이들에게 대하여 "약대는 그대로 삼키고 깔따구는 걸러 먹는다"고 비평하는 자들
은 경솔하게 남을 정죄하는 자들이다. 만전 영감설을 믿는 자들은 "약대를 그대로" 삼
키는 외식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극히 주밀하고 주의 깊게 사리를 취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목적과 정신의 옹호를 위하여 그것을 담은 그릇인 문서를  중요시하고  사실로
그것이 만전적으로 영감된 것과 및 그것이 틀림 없음을 믿는다.

 

  마 5:19

   누구든지. - 여깃 그의 제자들 중에 누구든지이다. 이 귀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곧 진정한 신자들에 한하여서는 율법을 지키든지 못지키든지 구원문제에 있어서  직접
관계는 없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받을
영광의 크고 작은 문제에만 직접관계를 가진다.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것 하나라고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 약 2:10,11을 보면 율법의한 부분을 범하면 그 전부를 범한 것과 같다  하였고,  갈
3:10에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있는 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한 값으로 구원을 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여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율법의 일부분을 범한 자라도 천국에  들어가기는
하였다. 그는 다만 천국에서 상급이 적은 것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은  율법을
행함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는 복음적 진리를 포함한다.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 자기 자신이 행하지 않고도 남의 가르
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또한 그 가르침 만은 사람들에게 어떤 정도까지는  유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내세에 더욱 엄한 심판을 받는다.(약3:1). 자신이  하나
님의 율법을 실행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자는 ,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며  내
세에 상을 받는다. (단12:3)

 

  마 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라. - 이 귀절은 산상 보훈에 있어서 중요하니 우리의 심각한 사색을 요하는 깊은  귀
절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윗 귀절까지 법론을 가르치시다가 갑자기 여기서는  행
함으로야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설치하시려는 듯이 말씀하신 까닭이다.  그러나  이
귀절의 말씀은 분명히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란 것은 외식이 그 특색이므로 인본 주의의 가장  하등품에
속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본주의이면서도 외식을 더하였기 때문이다. 인본  주의도
진리가 아니거니와 외식을 더하였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도 진리가  아니거니와  외식은
더욱 가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의는 실질에 있어서 불의요, 죄악인 것이다. 그
런즉 그들의 의보다 좋은 의는 그들의 의와 같은 종류의 의의 연장이나 확대가 아니고
그것의 말살이고 온전히 새 종류의 의이다. 이 새로운 종류의 의는 바리새인의 의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것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거듭난 자의의이다. 그러므로  이
귀절의 말씀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하신 말씀과 같다. 중생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
으로 되어지는 일이다.

 

 마 5:21

   이 귀절부터 7:27까지는 윗절에 말한 거듭난 자의 행할 도덕적 표준을 준다. 그 도
덕적 표준은 인본 주의 , 외모 주의, 외식 주의인 바리새인의 것과 전연 다르고  온전
히 신본 주의인 것이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이것은 헬라원어로 에쿠
사태 호티에레데 토이스 알카이오이스(* )라고 하는데 여기 우리 개역은 적당한 번역이다.
그 의미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유전에 의하여 너희가 모세나 옛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곧, 너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그릇된  
유전대로 모세의 율법을 오해하였다는 의미이다. 즈안 박사도 이렇게 보았고 클로스델말도
그런 뜻으로 해석하였다. 이 어귀와 비슷한 것이 5:27, 33, 8, 43의 모든  귀절에도  있다.
예수님께서 이 어귀로써 율법 그것과 그의 말씀과를 대립시키심이 아니고  바리새인들
이 오전한 율법과 자기의 정통적인 율법관과를 대립시키신 것이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 출20:13; 신5:17에는 이 말이 없고 다만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교훈은 바리새인이 유전으로 부가한 것이다. 그 유전자들은 이
말로써 하나님의 판결을 의미하지 않고 지방 행정청의 판결을 의미하였다.

 

  마 5:22

   모세의 율법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해석이 여기 있는데 그것은, 율법을  외형적
으로만 보시지 않고 특별히 거기 포함된 정신을 보신것이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 신자로서 같이 믿는 형제에게 대하여 증오를 발함이 여깃 큰
죄임을 말한다. 그것은 지방 관청의 판결의 받을 만하다.
   라가. - 이것은 분노가 악담으로 나타난 것이니 보다 큰 죄이다. 이것은 바보란  마
로가 같은데 공회에 붙일만하다고 한다.
   미련한 놈. - 이것은 아주 나쁜 욕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놈이란 내용을 가지는 말이
다. 죄가 이렇게 일층 악화되면 아주 지옥불 가운데 던지울 만하다고 하신다.
 이말씀을 보니 예수님의 율법 표준이 얼마나 엄한 것임을 알수있다.  이렇게  율법의
높은 표준을 알아 보는 자는 다만 중생한 사람 뿐이고, 이 율법을 어느 정도 지킬  자
도 중생한 사람뿐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지능이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
고 오직 성령님의 감화와 힘으로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한 자도  언제나  그것을
완전하게 깨달아 지킬 수는 없고 실수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런 실수에  대하여
해결의 방책을 주셨으니 곧 회개하므로 하나님에게 죄사함을 받음인데 이것은 다음 귀
절들이 밝히 보인다.

 

  마 5:23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 곧 신자가 다른 신도 형제
에게 잘못한 일이 생각나는 그 때를 가리킨다.

 

  마 5:24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 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이 중대하지마는  그것
을 효과있게 드리기 위하여는 준비적으로 살필 일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남들에게 대
하여 잘못한 일을 먼저 사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실에 대한 근본적 용서는 오직  하
나님께서 하신다. 그러나 범과자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기 위한  준비로  피해자에게
사화를 얻는 일을 하여야 한다. 만일 위의 22절에 엄한 율법만 있고  여기  23-26절에
사죄 받는 길이 없다면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이 귀절들을 보고 명심할 것은,
 (1)하나님께 사죄를 받으려면 먼저 형제 앞에서 해결해야 될 것은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고,
 (2)그 문제 해결은 무엇보다 먼저 급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보라! 지금 제물을 드
리려 하다가도 형제에게 용서를 받을 일이 생각나면 즉시 그일을 위하여 가야  된다고
하셨다.
 (3) 그리고 와서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만 두면 인도주의 사죄 곧,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사죄가 될 뿐이다. 사죄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니 먼저 형제에게서
용서를 구함은 , 하나님이 주시는 사죄를 얻기 위한 준비뿐이다.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 이것은 비유의 말씀인데 위에  기록한
말씀 곧, 형제와 화목할 일이 급무라는 뜻이다. 형제에게 범죄하고 그대로 두면  하나
님 앞에 갈 길이 막힌다. 언제든지 그 형제에게서 용서함을 받고야 하나님앞에 열납된
다. 만일 그가 그 형제에게서 용서함을 받지 않으면 그는 그 형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소송을 당한 것과 같다.

 

  마 5:26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이
말씀도 비유인데 범죄자를 빚진 종과 같이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그가 회개하는 것은
곧 빚을 갚는 것과 같다. 회개하지 않고는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원리가 여기에  역
설되었다.


  마 5:27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니. - 곧 바리새인의 유전대로 오전된 율
법관은 몸으로 간음하는 것 만이 간음인 줄로 알고 제 7계를 말한다는 뜻이다.

 

  마 5: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이것은  의지적으
로 음행의 목적을 가지고 이성을 보는 자는 벌써 음행을 범하엿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 이성을 인하여  일어난 정욕도 죄악이지마는 이것은 여기에 가르치신  말
씀과는 별도로 취급될 죄악이다.

 

  마 5:29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 이것은 정신적으로 해석할 문구이
다. 곧, 범죄한 오른 눈을 실제로 뽑을 것은 아니고, 그 눈을 뽑는것과 같이 그  눈을
고계하고 또 마음을 편달하라는 말씀이다.

 

 마 5:30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이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가르치시는 듯하다. 위의 22절도  역시
그렇게 보였으나 그 아래 23-26절에 사죄의 문이 보인 것이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엄한 율법을 말씀하시고 사죄의 길에 대해서는 침목하셨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행
위로 구원 받는 교리를 가지신 것이었다고 우리는 볼수 없다. 전에 사죄의 교리를  말
씀하신 적이 없고 또 여기서도 그렇게 침묵하셨다면 우리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볼수
있다. 그러나 전에 사죄의 원리를 말씀하셨으니 여기서 그것을 다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구원론보다 율법론을  취급하
신다는 것을 받는 것이 그 원리이다. 그러므로 율법론에 있어서는 예수님도 율법의 위
반자가 지옥에 던지움을 받는다고 말씀하실 밖에 없다. "지옥"이란  말은  헬라원어로
게엔나(*            )인데 힌놈이 골짜기란 뜻이다. 이 골짜기는 몰록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아이들을 불에 던지던 곳인데, 후에 요시야왕이 그 골짜기를 훼파하였으며  그
후에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든 불결한 물건들을 던졌다. 이것은 사후의 악도들을  영원
히 벌하는 흉한 것을 가리키는 상징적 명사가 되었다.(greijanus hierdoor werd  deze
plaats zinnebeeldige aanduidding van die eeuwige strafplaats der verloren  lucas
I.p 588)

 

  마 5:31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 이것은 역시 바리새교
유전이니 모세의 율법을 그릇 전한 짧은 귀절이다. 신24:1에는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라고 하였다. 바리새교
유전대로의 그릇된 율법관은 "수치되는 일"이 아내에게 있는 경우에 이혼할 수 있다는
조건부는 뽑아 버렸으니 그것이 잘봇이다. 그러므로 에수님께서 그것을 정정하시고 또
신24:2-4까지의 말씀으로써 증보하셨다.

 

  마 5:32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린 경우에 있어서 그 혼인 관계는 원칙상으로 해소된것
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에 있어서 아내가 다른데 결혼하면 이는 그 여자가  간
음함이 된다. 따라서 그 여자를 취한 남자도 간음함이 된다.

 

  마 5:33

   첫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
나.- 이것도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 곧, 레19:12에 자기들이 편견을 붙여서 꾸민것
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맹세를 너무 천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피하고 하는 맹세는 어떤 맹세든지 안지켜도 허물이 아니라고 한 풍속이 있었다. 그러
므로 이 본문에 있는바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고 한 바리새인의 유전은 위의유
대인의 악한 풍습을 길러준다. 그때의 유대인들에게 대하여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고 하는 예수님의 교훈만이 모세의 율법의 정신에 부합한다.

 

  마 5:34

   하늘로도 말라. - 당시 유대인의 풍속에 하나님이 성호가 직접으로 저촉되지  않는
맹세는 저버려도 큰 허물이 아니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로는 쉽게 맹
세할 수 있는줄 알았다. 그렇게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금하셨다.  하나님의  보좌
666:1 참조.

 

  마 5:35

   하나님의 발등상. - 이것은 땅이 하나님에게 복종하여 속하였다는 뜻이다 .
   큰 임금의 성. - 곧,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으시고 그것에 성전을 두셨으니 만큼 그
의 성이라고 하셨다.(시48:2참조)

 

 마 5:36

   네 머리로도 말라.- 머리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니 누가 그 머리털을  주관하여
회개 할 수 있거나 검개 할 수 있으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관하신다. 그러므
로 인간은 그것을 함부로 맹세에 가져다 붙일 수 없다. 만일 누가, 하늘로 맹세하거나
혹은 땅으로 맹세하거나 자기 머리로 맹세하거나 한다면 ,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 했든
지 하나님과 상관된 것들로 맹세하는 것이니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맹세함과
같다. 그러므로 그러한 맹세를 함부로 하는 것은 세째 계명의 위반인 것이다.

 

  마 5:37

  네 머리로도 말라.- 머리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니 누가 그 머리털을  주관하여
회개 할 수 있거나 검개 할 수 있으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관하신다. 그러므
로 인간은 그것을 함부로 맹세에 가져다 붙일 수 없다. 만일 누가, 하늘로 맹세하거나
혹은 땅으로 맹세하거나 자기 머리로 맹세하거나 한다면 ,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 했든
지 하나님과 상관된 것들로 맹세하는 것이니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맹세함과
같다. 그러므로 그러한 맹세를 함부로 하는 것은 세째 계명의 위반인 것이다.

 

  마 5: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 이것은 모세가 의미한대로(출21:24, 레24:20; 신
19:21)법정 재판의 공정을 위하여 가르친것이다. 후대 유대인의 그릇된 유전은,  이것
을 개인개인 사이의 사적 복수율로 알았다. 바리세인들은 이런 그릇된 유전대로 그 때
의 사람들을 가르쳤다. 예수님은 여기서 그것을 정정하시는 의미에서 모세 원법의  본
의를 설명하신 것이다.

 

  마 5:39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이것은 벌써 나를 해한 자에게 복수적으로 행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이것은 특별히 그 제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니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르 위하여 수난하지 아니치 못할 경우를 만났으 면
일치의 정당방위를 버리고 단 마음으로 고난 당할 각오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수난으
로서의 전도를 가장 열매가 많을 수 있다. 고난을 당하지 아니치 못할 경우를  만났을
때에 고난을 면하려고 하는 자는 진리를 버리고  악에게 굴복하고 만다. 그러므로  예
수님이 교훈은 그런 특수한 경우에는 어디까지든지 고난 당할 각오를  가지라고  하신
다. 매를 하나 맞았으면 둘 맞을 각오를 하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정당 방위를  일률
적으로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지 아니치 못
할 경우에 있어서 전도자가 택할 길이다. 몸의 고난을 면키 위하여 진리를 버리는  것
은 , 황금을 내어주고 모래를 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마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이 말씀
은 원고의 과분한 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복수적으로행하지 말고 도리어 양보의 태도로
처신해야 될 것을 가르치신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채주가 빚진 자의 옷을 전당잡는
일이 가혹하게 생각되었다(출22:26,27). 빚진 자는 이런 가혹한 취급을 당할 때에  반
항하지 말고 도리어 더욱 양보해서 겉옷까지도 줄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에수님은  여
기 말씀하신다. 이것은 기독 신자의 처세 원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하신 예이다.  신자
에게 대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과분한 부담을 지우는 때가 있다. 그런때에 신자는  반
항하지 말고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이라도 지려는 각오를 가져야 된다.

 

  마 5:41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 당시에 어떤 관용 우편 배달을 위하여 관에서  백성
을 강제 징용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 대하여 민간에 불평이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더러 그런 일도 후히 해 주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위의 말씀은
신자들이 악인에게 원수 갚지 말고 너그러이 행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 몇 가지 인
용예이다.

 

 마 5: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레19:18에 있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란 하나님의 말씀에 "네 원수를 미
워하라"는 자기들이 옳지 않은 사상을 붙여 유전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그것을  정
정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레19:17,18의 정신적 내용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사
랑의 본질이다. 사랑이란 것은 상대자에게서 나에게 대한 어떤 향기로운 조건을  발견
하고서 거기에 끌린 것은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상대자가 나에게 대적하는 요소를 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것이니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랑, 곧 원수되는 그 점에 가서는 끊어지는 사랑의 순전하고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가르치심에 있어서 원수를 사랑하는  건을  말씀하심은
사랑의 핵심을 가르치심이다.

 

  마 5:44-47

  이 부분에서는 주님께서 그 제자들더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단지 원
수에게 대한 소극적인 무저항을 가르치시는 정도가 아니고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
라는 말씀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극치이다. 이와같은 지극한 사랑은 하나님이  아
들들에게 요구된것이다. (마5:45). 다시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독특히
요구되는 것이었다. 우리 본문에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
리니"라고 하신 말씀에 있어서 "되리니"라는 것은 그리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이제 그자격을 나타낸다는 의미이
다. 이 말씀이 이렇게 해석되어야 할 이유는 이미 제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입장을 취하고 이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택한 백성이어서 하나님을 아
버지라고 하는 자들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 개인을 가리켜서 그리  하
지는 않았다. 신약 시대에 신인의 부자 관계는 구원의 안전감을 가지는 의식에서 생각
되는 것이다. 신약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이 지금 천국 축복에 참예하며 또한 장차 참예할 관게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천국 운동은 구약을 성취하신 새  언약의  운동이
다. 롬9:8에 이르기를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
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고 하였다.
 일반인들도 그 행동 원리가 커야 된다는 의미에서 종종 철학자들과 문인들은  발표한
다.  그 한 예롯 주자의 팔장부시에 있는 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곧, "봉비 천인
불락속=봉황이는 천길을 날면서 조알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이라고 하였다.
 고전 3:21-23을 보면 거기에 이르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
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게나 생명이나 사랑이나 지금  거서
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여기 이른바 "사망도" 하나님의 아들들의 것이라 함은 ,사망까
지도 그들이 영원한 축복과 영광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관문이 되기 때문이라고 랑게는
말한다. 이렇게도 하나님의 아들들은 큰 소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만큼 그들은  땅
에서 좁은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되며 원수를 용서하여야 된다.
 
  마 5:48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이것은, 사랑을 행함에  있어서 편벽되지 않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육체적 생활의 친구된 자만  사랑하고 친구 아닌 자는 물리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한 혹은 미숙(未熟)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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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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