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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 "헤롯"은 에돔 사람인데 그  아버지 안디파데가 로마 황제로 말미암아 유대 감사가 된후부터 유대 나라에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식까지 죽인 잔인한 사람이었고, 로마 연대로 714년에 유대왕이 되었으며, 37년 동안 왕노릇 하다가 750년에 여리고에서 죽었다고 한다. "베들레헴"은 에루살렘 남쪽으로 6마일쯤 나가서 있는데 지금은 작은 공업도시로서 이름을 베이트라큼(beitlachm)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 곳에서 탄생하신 것은 선지자 미가의 예언대로 (미5:2)되었다.

  마 2:2
  유대인의 왕 -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기다리게 된 원인은  무엇인
가? 그것은 아마 그들이 동방 나라의 예언자 발람의 예언을 안 까닭이겠다(민24:17). 예수님은 이 세상의왕이 아니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다스리시는 왕 곧, 메시야이시다(요18:36,37) 경배하러 왔노라 -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는 경건이 부족하였으니 어린  아이인 메시야에게 경배하러 온 유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발람의 예언한 마디를 얻어 드은 이국의 박사들은 멀고 먼 길을 찾아 필경 예수님에게 와서 경배한 것이다.  복음 진리의 보고를 모두 다 소유한 듯이 자처항여 교만한 자는 도리어 진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

  마 2: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 여기 "헤롯 왕"이란 말의 글자가  헬라
원어의 순서에 있어서는 "왕 헤롯"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왕"이란 말이 첫 머리에 있엇 그것을 힘있게 해 준다. 이렇게 그것을 힘있게 해주는 목적은 헤롯이 그의  왕권 때문에 두려워하며 소동하게 되었다는 뜻을 밝히려는데 있는 듯하다. 그는 권세를  탐하는 자인 만큼 유대 왕이 났다고 하는 동방박사들이말로 인하여 두려워 한것이다.  "예루살렘"도 소동하였다고 하니 그 때의 예루살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고 성경 진리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도 않고, 방종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마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헤롯은 유대의 왕이 났다는 말에 대하여는 관심이 켰다. 그리하여 그는  이  문제에 전문 지식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렀다.
  이  때의  대제사장직을  지낸  사람들은  먼저  마티아(mattias)요,  후에  요자루(jozarus)라고 한다.

  마 2:5
  선지자 - 이는 미가를 가리키는데 미5:2이 다음 귀절에 인용된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나실 장소를 성경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오신 사실에 대하여 흥미가 없는 사람들처럼 신앙의  행동은  취한바 없었다.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주에 가장 적지 아니하도다. - 여기  "고을
"이란 말은 헬라원어로 헤게모신(*                )이라고 하는데 다스리는 자들  혹은 방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태가 베들레헴을 비유적으로 사람처럼  부럴서 의인시하는말이다. 그러므로 "고을"이란 번역은 잘된 듯하다. 베들레헴에서  구주님이 나실 것이므로 선지자 미가는 그 고을이 큰 영광을 얻게 되리라고 말한 것이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 이것은 메시야 곧 , 그리스도께서 나실 것을  말한다. 구약의 예언은 이렇게 메시야를 가리켜 "다스리는 자"곧, 임금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임금이신 것을 기억하고 그를 순종할 줄 알아야 된다. 그르  순조아지 아니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제재와 징계가 있을 줄 알아야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다만 선생으로만 또는 친구로만 또는  언제나  위로해주신는 제사장으로만 알면 안된다. 그는 우리를 다스리시는 임금이시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목자"라는 것은 윗말 "다스리는 자"의 다스리는 행동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다스리시되 압계로 하시지 않고 목양의 방식으로  하신다.  그는 목자가 양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듯이 자기를 희생하셔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이분은 사53:1-12의 예언이 가리키는 그리스도이시다.

  마 2:7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 "헤롯"의 이 행동은 그이 음흉함을 나타낸다. 그가 오신 메시야에게선을 행할 것이 있다면 이렇게  비바리 조사를 했을 이유가 무엇이랴? 음흉한 자는, 악한 것을 꾀하기 때문에 언제나 공명 정대하지 못한 법이다.

  마 2:8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헤롯의 이 말은 그의 가면을 나타낸다. 그는  메시야를 경배할 자가 아니고 죽일 자였다.

  마 2: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그들이 별을 보고 기뻐한 이유는 그들의 목적지에 무난히 찾아올수 있게 된 까닭이다. 이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서 별을 보고 기뻐하였으나 , 그 때에 하늘을 쳐다 보지 않은 자들은 그런  기쁨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이따금 진리와 성령의 인도에 부닥칠 때에 그 기쁨은 큰 것이다. 이 기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바라보며 찾는 자들 만이 맛본다.(벧후1:19)

  마 2:11
   집에 들어가 - 누가 복음을 보면, 에수님께서 말 구유에 탄생하셨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집에 대하여 말하니 이상스럽게 생각될 듯하다. 그러나 박사들이 찾아 온 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후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어떤 방법으로 집에 수용되신 후의일이었다.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 이 예물의 수효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박사의 수가 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추측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수가 몇인지 알 수 없다. 이 예물은 왕에게 드리는 선물인데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이방인이 가져온 것이다. (사60:6). 루커는 말하되 "황금"은 왕에게 적합하고  "유황"은 하나님께 적합하고 "몰약"은 죽을 사람이게 적합한 선물이라고 하였으니 생각할  만하다. 예수님은 왕이시고 하나님이시고 또 그의 백성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사람이시다.

  마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꿈을 가지시고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지시하신 일은, 신구약을 통한 구원사  관련으로 많이 나온다. 예컨대 느부갓네살이게 주신 꿈(단2:1), 빌라도의 아내에게 주신 꿈(마27:9)같은 것이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이것은 구원사 곧, 계시사 관련으로  나온 한에 있어서 계시의 권위를 가진다. 그 밖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꾸는 꿈은  그렇지 못하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을 다녀서 헤롯왕에게 가기로 약속한바  있었을  것이다(마2:8). 그러나 그들은 왕에게 약속한 것보다 하나님의 지시를 더욱  두렵게  생각하여, 헤롯에게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그것도 그들이 신앙적  결단이다.

  마 2: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이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모든 일을 다하셔서 성취하시되 사람의  자유를 꺾지 아니하신다. 헤롯은 제 자유대로 아기 에수를 잡아 죽이려고 하되 하나님은 그를 저 할대로 두어두신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성도들이 자유도 꺾지 아니하시고 다만 감동과 인도로써 구원의 길을 가게 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완전히 이루신다. 요셉이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에 피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이룬 것 뿐이었다. 다음에 나오는 15절의 말씀은 그 뜻을 보인다. 그것은  호  11:1에 있는 에언을 가지고 말한다. 호11:1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서 가나안에 돌아오게 한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장래에 애굽에  망명하실  아기 예수를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일을 예언한 것이다. 헤롯이 죽은 후에 아기  예수는 애굽에서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다.
 요셉이 아기 예수와 그 모친을 데리고 갔던 곳은 애굽의 마타레아지방이라고 하나 확실히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실 때에 마리아에게는 꿈으로 하지 아니 하셨으나(눅1:26-28), 요셉에게는 꿈으로 하셨다. 생각컨대 사람들에 따라서 그  자질이  다른 것만큼 그들에게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도 각각 다른 것 같다.

  마 2:14
   요셉이 꿈 가운데 하나님의지시를 받고 "밤에 아기와 그 모친을  대리고  애굽으로 "망명한 것은  신앙적 결단이다. 그는 밤중에 이런 용단을 하였으니 이 같은 것은  믿음이 없고 하나님을 순종함에 게으른 자는 취해지기 어려운 행동이다.
 
  마 2:15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 호11:1참조. 이 뜻은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는  이스
라엘을 하나님께서 부러 내어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몸된 교회처럼 애굽 생활을 하시게 되시고 거기서 나오시게 된 것이다.

  마 2:16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아고 - 이 말을 보면 박사들이 2:8에 헤롯의  부타을
허락하고 약속한 듯하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으니 헤롯의 소원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이 혹시 마귀의 일을 하는 자에게 속아서  약속한 줄을 깨달았으면 그런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그런 약속은 지키는 것이 도리어 죄악이기 때문이다. 실상은 헤롯이 박사들을 속여  말하기를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2:8)고 하였다. 헤롯은 실로 아기를 경배할 마음은 없었고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박사들을 속였다. 것이다. 그러므로 속임의 죄책은  헤롯이  지고 있엇다. 박사들은 그 약속을 안지켰다. 그러나 거짓되고 악한 뜻을 이루기 위한  악마의 계획에 속아서 약속되어진 것은 지켜 주지 않는 것이 진리와 선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다. 헤롯은 자기가 박사들을 속인 것은 조금도 생각 못하고 도리어 박사들이 자기를 속였다고 본다. 악도는 언제나 자기의 죄책까지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법이다.

 마 2:17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여기 말한 "그 모든 지경 안에"란  말은 베들레헴 오변지방이면서 베들레헴 고을에 속하는 곳들을 의미한다. 헤롯이  베들레헴 외변 지방들의 아이들까지 학살한 것은, 자기의 왕권을 보수하려는 데서 일어난  야욕의 극단이요 잔인의 절정이다. "두 살부터 그 아래도 다 죽인"것은 역시 그의  잔인의극단이다. 아기 하나 죽이기 위하여 모든 아이들을 다 죽인 잔인한 일은 인류  역사에 일찌기 없었던 것이다.
   헤롯의 영아 학살 사건이 진정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말하되 , 이런 잔인한 일에 대하여  유대 역사가 요세보가 왜 침묵하였을까?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학설이다. 우리는 요세보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헤롯은 그런 학살을 비밀히 하였을 것이다. 그가 아기 예수이 탄생하신 때를 박사에게 물을 때에도 비밀히 하였으니 유대 사람의 왕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어린아이들을 학살할때에 나타나게 하였을 이유는 만무하다. 이 사건은 그가  유대 사람들이 몰게 행하여 민심을 소동치 않게 하려고 힘셨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때에 두살 아래 되는 아이들의 수효가 작은 고을 베들레헴과 그 변방에 그렇게   많았으리라고 추측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요세보이 역사에 이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여 이 사건의 사실성을 부인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요세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것들이 얼마든지 성경에 바로 기록되었을 수 있다. 예를들면 이사야서에 앗수르 왕 살곤의 이름이 있는데 옛날 앗수르에 살곤왕이 있는 사실은 고고학자들이 고적으로 증명한다.

  마 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 이  귀절은  렘31:15의 인용인데 이것은 예언자가 베냐민 지파의 멸망받은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라헬의 무덤은 베들레헴에 있는데(창35:19), 그가 죽었으나 그 자손의 사망함을 보고 운다고 하는 것은 시적 표현이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베냐민의 비운을 말한 후에  다시  약속을 진술하였으니 그처럼 마태도 베들레헴의 참사를 말하면서 무언 중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내어다 본 것이다.

  마 2:19
   헤롯이 죽은 후 - "헤롯"은 로마 연대로 750년에 그의 생긱기와 창자에 벌레가  먹
어 죽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유대 역사가 요세보 사기에 있다. 그는 37년 간  왕위에 있었고 70세에 죽었다. 그가 죽을 임시에 자살하려고 하였으나 그대로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마 2:20,21
   앞에 있는 14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마 2:22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 헤롯이 죽은  후에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명령대로 헤롯의 세 아들이 그 부친의 나라를 셋으로 나누게 되었다. 아켈라오는 유대 사마리아와 에돔을 가지고,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레아를 가지고 빌립은 이두레와 드라고닛 지방들을 각각 차지하였다. 아켈라오는 그 후 9년을 지나  아구스도의 명령으로 퇴위하고 유대에는 빌라도가 총독으로 오게 되었다.

 마 2:23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 여기 선지자란 말은 헬라원어에서 바로 번역할 때에 선지자들이라고 복수로 되어야 한다 그런즉 이 예언은 선지서의 한 귀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많은  선지자들의 말씀에 들어 있으니 거기 있는 것은 "가지"라는 말이다. 이 "가지"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체막(*      )이라고도 하였지만 (렘23:5, 33:15), 사11:1,14:19,60:21에는 네체르(*      )라고 하였다. 네체르는 나사렛과 같은 뜻을 가진다. 사11:1외에는 "가지"를 체막이라고 하였으나 그 뜻은 네체르와 같으니만큼 마테는 체막을 네체르와  같이 간주하여서 이사야 이외이 선지자들이 예언들도 네체르 예언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을 "가지"라고 한 것은 (1)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나온 가지 곧, 이새의 아들 다윗 왕통을 끊긴 자리에서 다시 왕으로 나신 분을 의미한다.  [2)"가지"는 미천하다는 뜻도 가진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으나 그곳에서 장성하시지 않고  "나사렛"이라는 별로 이름없는 곳에서 미천하게 잘나셨던 것이다. (3)이 "가지"의 하시는 일은  이러하니 곧, 쓴 물을 변화시켜 달게 하고(출15:25) 만국을 소성하게 한다(계22:2),  에수님은 고해같은 이 세상에 감미의 원천이 되시사 모두가 쓰지만 예수님은 쓰지 않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상 표현이니 오직 그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 나무의 이상은 그 가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가지는 계시자의 의미를 가진다. 가지가 나무의 이상의 발휘인것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이상의 표현 곧, "가지"로 성경이 말하였다. (사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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