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1
다리오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
에게 임하니리 가라 사대 - 여기 "다리오"는 바사 왕(스 4:5, 24)이니, 주전 521-486
년 어간에 다스린 다리오(Darius Hystaspes)이다. "스가랴"라는 히브리 원어(*
)는, 주님의 기념이라는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난 자라는 뜻도 아니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자"라는 뜻이다(Kell). 그가 젊어서 바벧론에서 유대에 돌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하였으니, 그 말씀은 자기의 사
상이 아니고 외래(外來)의 것, 곧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슥 1:2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 '무리'는 스가랴 당시의 이
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선조들에게 노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
족은 바벧론으로 잡혀갔다. 조상들의 죄 값이 자손들에게 까지 미쳤으나 이제 그 자손
들이 회개를 깨끗이 하면 그 받았던 벌을 그대로 연장하여 받지 않을 것이다.
슥 1: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
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본절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한 말이 세 번 나와서
여기 부탁하는 말씀의 중요성을 힘껏 표현한다. 곧, 이스라엘의 회개가 중요하기 짝이
없으니, 그들이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로 돌아가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가 무한하여도, 하나님은 그 무한한 거리도 문제시하시지 않고 삽
시간에 그 회개자들을 만나주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오심은, 그들이 포로 되
었던 데서 본국에 귀환하도록 은혜 베푸심을 가리킬 뿐 아니라,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
모든 다른 축복까지 풍성히받게 됨을 가리킨다(1:17).
슥 1:4-6
이 때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선조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 선조
들이 선지자의 회개 권고를 받았지만 순종치 않다가 필경 그 민족이 바벧론으로 잡혀
간다. 그 선조들과 선지자들은 다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하
나님 말씀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들을 가르쳤던 대로 서위되어 바벧론으로 잡혀 가
고야 말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임하였다는 의미이다. 임하였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힛시구이니 따라잡는다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은 언제든지 살아 남아서 죄인들을 따라
잡는다. 그리고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라는 말은 바벧론에 잡혀가는 그들이 옛 선
지자들의 예언을 회상하며 말한다는 뜻이다. 곧 그들은, 이제야 일찌기 하나님이 말
씀 하신대로 서위되어 민족이 바벧론에 포로된 데 대하여 경탄한다.
슥 1:7
다리오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 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이르시니라 - 마리오왕에 대하여는 1절에 있는 같
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스밧월'은 우리의 1월말 혹은 2월초에 해당한다. 여기서도
선지자가 그 계시 받은 연대와 일자를 말한 것을 보아서, 그가 얼마나 그 계시 받은
사건의 중대성을 생각하여 기록에 상세를 극력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슥 1:8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 이것은 하나의 이상인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시
지않고 겸하여 이상을 보여준 것은 그 계시에 대하여 좀더 확고히 하는 인을 침과 같
은 것이다. 여기 이른바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사람은 이스
라엘 백성을 도와줄 중보자 곧, 그리스도이다. 여기 '골짜기'는 어두운 곳이니 이 때
에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났으되 아직 신약 시대처럼 밝게 나타나지 못함을 암시하여
준다. '화석류나무'는 높지 않고 향기가 있는 나무니 교회 곧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
한다. '홍마와 자마와 백마' 이 셋을 각기 빛으로 그 사명을 보여주는데 홍색을 피 빛
으로서 전쟁을 상징하고 자색은 어떤 번역에는 얼룩진 빛이라 하는데 그 번역이 옳다
면 그것은 사망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석이 없다. 그
리고 흰 빛은 승리를 상징한다. 이 말들을 탄 자가 누구라는 말은 없으나 아마도 천사
들의 심판 사역을 상징한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높이 계시기만 하시어 땅의 일
들을 모르시는 이가 아니고 비유컨대 말과 같이 빠른 사신들을 통하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물론 이것은 비유이다. 하나님께서 하필 그의 천사들을 통하여서만 땅위
의 일을 아신다고할 것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나 하나님의 눈앞에는 숨은 것이 없
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사용하시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가 저들을
사용하심은 무슨 이유인가? 그가 저들 없이 일하시지 못할 것은 없다. 칼빈이 말한 것
과 같이 그가 천사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돕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세력들을 가지고 도와주시는 것시 아니라면 위험한 때에
떨기 쉽고 불신앙으로 떨어지기쉽다. 그러나 천사들이 참된 신자를 둘러싸고 도와준다
고할 때에 우리는 더욱 신앙의 힘을 얻는다.
슥 1: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
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 여기 '내게 말하는 천사'라는 것은 내 속에
서 말하는 천사라는 뜻이니 이는 스가랴에게 계시를 전하여 주는 수종하는 천사를 의
미하는 바, 그가 선지자의 속에서 영음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볼 때
에 선지자들의 영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대화하듯이 영계에
교통하였다.
슥 1: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 위의 9절이 말한 대로 "천사"가 그 이상(8절)의 의미를 스가랴에
게 보여주겠다고 하였는데, 그가 하지 않고 어찌하여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곧"
여호와의 사자" 11,12절 참조)가 대답하여" 주는가 ? 이것은 얼핏 보면 이상스럽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계시의 원칙에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계시의 주체자(主
體者)는 언제나 그리스도이시다. 위의 9절에서 천사가(이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여호
와의 사자와 구분 된) 해답하여 줄 듯이 말한 것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떠한
간접 사역으로 실행되었을 것이고, 실제적으로 계시자는 그리스도의 처지에 속한다.
주석가 오렐리(Orelli)도 말하기를, "말탄 지휘자(指揮者)는 동시에 말씀 지도자이다
"라고 하였다(Der Anfuther der Reiter ist zugleich ihr Wortfuhrer). "여호와께서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사단도 땅에 두루 돌아다니는 자이다. 저놈은 악
을 행하려고 그리하나, 여호와께서 보내신 천사들은 선을 행하기 위하여 그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이렇게 빨리 돌아다니는 천사들을 보내
신다. 특별히 스가랴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그들의 원수 나라
들의 실정을 살펴 보고(報告하도록 하신 것이다.
슥 1: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
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 여기 "그들"이란 것은 홍마와 자마와 백마로 상
징된 천사들을 의미한다. 이들이 땅에 두루 다녀 본 결과를 여호와의 사자에게 보고
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사자가 바로 하나님 백성의 구원자 곧, 그리스도이기 때
문이다. 그들의 보고 대로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이스라
엘 백성의 원수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불안 상태와 반대로 평안하다는 것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가 바벧론에서 돌아왔다 할찌라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자들
이 많고 유대 땅은 아직도 황폐되어 있고, 성전을 재건하는 사업도 사마리아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해를 받고 있었다(느 4:1,2). 이 형편을 이스라엘의 적국들의 안돈 상태에
대조하여 볼 때에 그 얼마나 답답한 일이었겠는가 ? 그러므로 다음 귀절을 보면 여호
와의 사자 곧, 그리스도께서(이스라엘의 구원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도
고 하신다.
슥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 구원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여호와의 사자)께서 천사들의 보고를 받고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도고 하신다. 여기 "언제까지"라는 말은 얼핏 보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불평을 울리는 듯이 생각된다. 그러나 실상은 불평이 아니고 하
나님의 행사의 깊이를 알고자 하는 의미에서 말한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이
스라엘 백성을 긍휼이 여기시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 백성이 벌써 바벧론에서 돌아
오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되어진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은 어려운 과업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잇,라엘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탄원(歎願)하신다. 여기 이른바 "70년"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
당시부터 이 때(천사가 스가랴에게 말하는 때)까지를 가리킨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에게 70년 동안 포로되어 있을 것을 예언하셨고(렘 25:11, 12, 29:10), 또
그대로 이루시고 이제 그들을 바벧론에서 건져내시는 것이다.
슥 1: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
여기'내게말하는 천사'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여호와의 사자가 이니고역시 스가랴에
게 영음으로 말하는 천사이다. 9절의 같은 말 해석 참조.
여기 스가랴의 이 예언의 목적은,이스라엘 백성을 격려 하는데 있었던 것이 드러난
다. 그 때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무리더디다 할 지라도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의 문제
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이 위로이고 다른 하나는, 본절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를 통하여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어려움을 얼른 구조 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그 백성의 인내와 복종을 연단 시
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약속과 말씀을 먼저 주신다. 사람은 거짓된 고로 약속보다 실
행이 먼저 요청될만하다. 그러나 하나님은참되시므로 그 약속의 말씀 곧, 실물과 같은
것이니 우리는 그것으로 족한줄 알아야된다.
슥 1: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
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 여기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라는 말씀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작정으로
열국에 대하여 진노하실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질투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열국
으로 말미암아 불공정한 압박을 받을 때에 일어난다. 그 이유는 택한 백성은 자기의
가장 귀한 소유이기 때문이다.
슥 1:15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
을 더하였음이라 - '안일한 열국'이란 말은, 평안히 있으면서 그 나라들이 이스라엘
을마 과도히 압제하고도 죄감이 없이 지나고 있음을 은근히 꾸짖는 말씀이다.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노하신 정도가 그를 바로
세우기 까지에 적당한 징계를 필요하게 생각하신 것을 의미한다. 그 백성이 아주 망하
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으나 열국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무제한 적인 압제를 가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범과자라 할지
라도 그를 적도의 분량에 지나치게 벌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벌하시다. 이것은 국가들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개인들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슥 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 즉
내 집이 그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의미의 문구가 거듭 나온다. 이렇
게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전하는 말씀이 자기들의 사상이아니고 전혀 하나님 말씀인 것
을 알려준다. 이런 표현으로서 역시 자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외에 다른것은 전할 사
명이없는 순전한 대언자임을 밝혀준다. '예루살렘에 돌아왔다'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
엘 백성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친히그들이 돌아오기 원하는 수도에 내림하신 것을 의미
한다. 하나님께서 비록 그의백성에 대하여 진노하섰을 지라도 그들이 과도한 고난을
받게 된 경우에는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솔선하여 그들이 돌아와야 할자리에 오시
어 대비하신다. 그들이 여호와를 모시기 위하여 힘쓰기 전에 그자신이 그들보다 앞서
오셔서 그들을 기다리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솔
선적인 사랑의 행위로 임하신다. '먹줄이 치어지리라.'이것은 불원한 장래에 이스라엘
백성이 황폐되었던 성전과 예루살렘을 수축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렘
31:39,40참조, 이 예언은 하필 그때에 유대인들이 복구될 것을 가리킨 것 뿐이 아니고
후대에 하나님의 교회가 쇠약하여졌다가도 그의은혜로 다시 정돈되며 왕성하게 될 것
을 의미한다.
슥 1:17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 '넘
치도록'이라는 말 위에 '좋은 것으로'라는 말씀이 나왔어야 할 터인데, 그것을 빼놓고
번역한 것은 유감스럽다. 여기 '좋은것'은 하필 물질적인 필수품을 기리키는데 멎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은혜로운 선물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령한 은혜도 가리
키나니 특별히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풍성히 내리실 성령의 은사를 기리킨다. 구약에
서는 신령한 은혜를 물질적 선물로 비유하는 표현법을 많이 가진다. 이와 같은 하나님
의 이스라엘 회복 운동은, 그 때부터 불원한 장래에 있을 예루살렘의 재건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것은 먼 장래에 있을 천국 운동의 영화로운 발전을 예언한 것이다. 여기
'시온'이라는 말은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하나님 백성을 가리킨다.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고 한 말씀은, 그가 본래 택하였던 것이 취소되었던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 본래 택한 백성을 일시 징계아래 두었다가 때가 이르매
그 본래 택하였던 사실에 부합하는 은조의 재 실시를 의미한다.
슥 1:18,19
내가 눈을 들어 본 즉 네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댜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 -
스가랴는 또다시 이상을 보았다. '뿔'은 권세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하나님 백성을 핍
박하는 국권인바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그 어떠한 나라이든지 교회를 대적하는 나라이
면 다 이 넷이라는 숫자에 포함된다. '넷'은 땅의 사방을 가리는데 사용되는 숫자인데
땅에 속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나라들을 여기서 총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대
표자 격으로 바벧론, 메데바사, 헬라, 로마를 가리킨다. 이 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의 대표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 넷을 들어 말한 것을 보
아도 위의 16,17절의 예언이 바벧론에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은혜만에 국한
된 거시 아님을 재 확인하게 된다.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그 때에 유대 민
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나 그 후에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도 멀리 예표하는 것
이다.
슥 1:20,21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
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 '공장'이라는 것은, 히브리 원어로 카라쉼이니 철공, 석공, 목공을 의미한다. 공장은 뿔보다 더 굳은 철퇴를 가지고 위에 말한 네 뿔들을 파괴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공장을 기술자이니 만큼 하나님이 지적하여 주신 일을 성취하기에 능숙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구출하심에 있어 섭불보다 강한 나라들을 세워서 능숙하게 그 구원 사업을 성취 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퓨세이라는 학자는 공장이라는 말을 여기서 건축자로 해석하고 신약 교회의 영적 건축자인 사도들과 기타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말하였으니 일고를 요한다. 고전3: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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