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학개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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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 1:1
  여기서 선지자가 계시를 받은 날짜까지 기록한 것과, 또는 그 계시의 말씀이  전수(傳受)되어야 할 상대 인물들의 이름까지 기록한 사실은, 또 다시 성경의 기록 성격이 어디까지든지 역사성(歷史性) 을 중점으로 한 사실을 보여 준다.  습 1:1 해석 참조.
   여기 이른바 "학개로 말미암아"라는 문자적 의미는, 학개의 손에 의하여 라는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이 계시를 주셔서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에게 전달한 학 것을 보여준다.

  학 1:2,3
   여기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의미의 문구가 두번 나온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일반적으로 고조하는 것이니 곧, 자기들은 여호와의 말씀밖에 다른 것은  전하지 않는데 대하여 역설하는 문투이다.
   선지자 학개의 예언 목적은,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중단하였던 성전건축을 계속 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말한대로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본서의 저술동기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던 도중에 원수들의 방해를 받아 중단하고 하는 말이,  시기상조라고 한 셈이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든지 하다가 난관을 당하면 흔히 이와 같은  핑계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하는것은, 기회주의에 속하는 것으로서 흔히는 무력한자들이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물론 어떤 일이 하나님의 허락이 아닌 경우에 있어서 시기상조라는 말로써 중단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면, 난관이 많아도 시기상조라는 핑계로 중단할 것이 아니고 마땅히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이떤 일의 계속 여부는  난관의 유무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의의 유무에만 달렸다.

  학 1:4,5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  '  판벽한 집'이라는 뜻은 벽에 아로새긴 판을 붙인 화려한 집을 의미한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은 뒤에 두고, 자기들의 생활을 위한 주택들을 화려하게 지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 때에 없어서는 안될 참다운 종교 생활 곧, 성전에서  주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중요시하지 않은 중표이다. 이 말씀을 보아서 신약 시대의 신자들도 자기 사생활의 편리를 도모함보다 먼저 하나님 교회의 발전을 첫째로 해야 할 것이 생각된다.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바벧론에 포로로 있으면서 성전도 없이 종교적으로 처참한 생활을 하였는데, 이제 조국에 귀환 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공경하는 성전을 건축 하였어야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더러, '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고하셨다.

  학 1:6
   그 때에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자기들의 사생활에 분망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다. 그 벌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들의 농작물에  흉년이 들어서 그 수확이 빈핍함이었다. 사람들이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벌로서  흉년이 오는 일은 현저하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합이라는 악왕이 악정을 하였을 때에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사실을 잘 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시는 방침으로서 흉년을 사용하시는 일을 확실히 말하여준다. 동양  춘추전에 보면, 노나라 악한 임금들이 악정을 할 때마다 무서운 한재, 혹은  충재가  많이 있었던 사실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환난을 당할  때에는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학 1:7,8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우리는 또다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이 앞으로도 이 문구가 종종 나온다. 그러므로 다시금 기억하자! 곧, 선지자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전하는 말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있는가! 그들은 이렇게 하여 (1) 자기들의 전하는 말씀이 얼마나 권위의 말씀 곧, 그들로 순종치 않으면 도저히 될 수 없는 사실을 보여 준다. (2) 그들은 이와  같은 신적 권위있는 말씀외에는 털끝만치도 다른 것을 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낟. 선지자 학개는, 이 문구로 시작하여 얼마가지 애아서 또다시 이 문구를 거듭하였다. 그는 하나님 말씀 이외의 어떤 다른 말은, 거기에 끼울 수 없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  찌니라'는  말씀은, 위에 벌써 나온 것인데  여기 또다시 나온 것은 그 때 유대 사람들에게 자기 반성이 너무나도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옛글에 반구제기라는 말이 있는데 , 하나님을 참되이 몰랐던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의하여 이만한 것은 알았다. 하물며 하나님  말씀을 손에 들고 있는 신자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이랴! 사람들은 언제나 잘못되는 일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고질이 있다. 선지자 학개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그 백성들이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야 될 것에 대하여 역설하셨다.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함은 중단 되었던 성정을 재건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외부적 시설에 불과한 성전 건축을 열심으로 권면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때 이스라엘의 종교  운동은, 외부적시설인 성전 건축을 중요시 하였던 것만큼, 무엇보다도 먼저 성전  건축에  치중하는것이 그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정성의발로이다. 그 때 바벧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 자기들의 사생활에 열중하여 성전 건축을 등한히 하였던 것 만큼,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자기 자시늘섬기는데 치중한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이 때에그들은 이와 같은 권면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바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겠다는 의미이다.

  학 1:9
   본 절의 의미는, 성전 건축을 중단한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흉년에 대하여 말하고 그 뒤에 그 원인에 대하여 진술함이다.
   그들이 농작물에서 많은수확을 바랐으나 도리어 수확이 적었고 그수확을 집으로 가져가서도 어떤 재난으로 인하여 그들이 먹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재난을 당한 원인은, 하나님의 전이 황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기 집에만 열중하였기 때문이다. 여기 이른바 '빨랐음이라'함은 열중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화를 받을 원인이 되는 죄과는 다른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들의 사사를 더욱 중요시 함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세계 인류는  모두 다 재앙을 당할 죄과를 면할 수 없다.

 학 1:10,11
  이 귀절들이 역시 위의 9절 상반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흉년에 대하여 자세히 진술한다.

  학 1: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벧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  본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백성이나 모두 다 선지자 학개의 전하는 말씀을 청종하였다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서 백성들만이 그리하고 지도자들은    그리하지 않는 경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이 때에 양자가 다 함께    순종하였으니 이는 만고에 모든 교회의 모본이다. 그들이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한  이유는, 그 말씀이 듣기 쉬운 까닭도 아니었고 자기들의 어떠한 육체적 편리를 가져오는  까닭도 아니고 다만 그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학개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동기는  언
제나 이러해야 한다. 순종하는 동기는, 그 어떠한 이유에도 있지 않고 다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등한히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을 등한히 생각하는 심리는 병적인 것이고 마비된 것이다.

  학 1: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 여기서는 선지자 학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건축할 용기를 주는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저들과 함께 하신다는 복된 말씀이다. 우리가 무슨일을 할 때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그  일이 참으로 즐겁고 쉽고 성과를 가져오게 된다.

  학 1:14,15
  여기 있는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격려(激勵)시켜 성전 건축을 다시 착수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일에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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