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아모스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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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4:1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 "바산"은 목초(牧草)가 많고 기름진 곳으로서(시 22:12 ; 신 32:14 ; 겔 39:18), 요단 동쪽 산지(山地)의 극북(極北)에 있다.  사 2:13 ; 겔 27:6 ; 슥 11:2 ; 미 7:14 ; 나 1:4 ; 렘 50:19 참조.
 "바산의 암소"는 여기서 사치하고 게으른 이스라엘의 여자들을 비유한다.   이사야도 이런 여자들을 책망한 일이 있다(사 3:16-4:1, 32:9-12).
 이 여자들은, (1) 가난한 자에게서 착취하여 술을 마시며 연락하였다.   (2)  저들은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남편(家長)을 시켜서 "술을 가져"오라고 한다.

  암 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찌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신다 함은, 이스라엘 나라의 악독한 죄를 그대로 둘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서 보시는대로, 이스라엘 여자들의 저런 죄악을 벌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갈고리로......끌어" 감은, 장차 앗수르의 군대가 할 짓이었다.  앗수르의 옛  비석(碑石)에도 포로(捕虜)들의 입을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가는  광경이  있다고  한다(Pusey).  하나님이 주신 벌로 인하여 가스라엘 사람들이 갈고리에 꿰여  끌려  감은, 참으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사(慘事)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받는 벌의  참혹함을 볼 때에 그 지은 죄악이 그보다도 혹독하였다는 것을 영안(靈眼)으로 볼 줄 알아야 된다.

  암 4:3
  너희가 성 무너진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전쟁으로 인하여 성은 다 무너지고, 사람들은 원수에게  잡혀 포로로 간다는 뜻이다.  "하르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되어 가다가 내버리운 어떤 지방 이름인데 어디인지 알기 어렵다.

  암 4:4,5
   이 귀절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죄를 풍자적(諷刺的)으로 지적한다.   벧엘과 길갈은, 본래 이스라엘의 옛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김과  관계된  성지(聖地)였지만 후에는 우상 숭배의 처소가 되었다(호 4:15, 9:15, 12:11).  이것이 역시 무언중(無言中)에 통탄할 사실로 여기 암시된다.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 민 28:3, 4 참조.   여기  "삼일"이라는 말(*                  )은 칼빈(Calvin)에 의하면 "삼년"으로  번역  되었다.  헨더손(Henderson)도,  아모스가  여기서  삼년만에  십일조를  드리는  규례(신 26:12)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지자가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섬기는 의식을 조롱함이니, 곧, "삼년만에 드리는 십일조를 삼일만에  드리기로 열성을 내어 보라!  그래도 그것은 죄를 짓는것 뿐이다!" 라는 뜻이다(Harper).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 레 7:12-14 참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 레 22:18 ; 신 12:6 참조.   "소리내어  광포하"라 함은, 열심을 내어 이런 제사 행위를 하라는 풍자적 언사이다.  그런 것은 아무리 힘껏 해 보아도 소용 없다.  그것은 도리어 범죄하는 것 뿐이다.

  암 4:6-11
  이 귀절들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다섯번이나 재앙을 내리셨지만 그들이 끝내 회개치 않는다고 탄식한다.  그 다섯 가지 재앙은,
 (1) 이(齒牙)를  한가하게 함(6절).  곧,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으니 치아가 한가하게  되었다.  
 (2) 비가 오지 아니하여 음료수가 부족하게 되었다(7, 8).
 (3) 풍재, 깜부기 재앙,  팟종이의 재앙(9절).
 (4) 염병과 전쟁의 재앙(10절)(왕하 8:12, 13:3, 7).  
 (5)  성읍을 무너뜨림(11절).  이것은 전쟁의 결과이다(왕하 13:4, 7).

 6-1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다섯 번이나 재앙을 만났어도 회개하지 않았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한 말씀이 다섯 번 나온다(6,  8,  9, 10, 11).  이 말씀 중에 "내게로"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아다이(*       )이니 "나에게까지"라고 번역되어야 한다(Van Gelderen).  그들이 재앙을 만나므로 어떤 종류의 후회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에게까지 돌아가지는 못하였다.  무엇이나 반도이폐(半途而廢)는 소용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다  이루지  못한 그대로 세월을 보내면 안된다.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회색분자(灰色分子)는 도리어 마귀의 기계가 되나니, 자기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길을 막는 자이다.

  암 4: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 여기 이른바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혹은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에가 행하실 심판인 듯 한데 밝혀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  심판이 저들의 사후(死後)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여도 무방하다.
 아모스는 저렇게 하나님을 만나기에 모자라는(6-11해석 참조)이스라엘 백성더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지  준비  없이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는 잘못하고도 몇 날 동안, 몇 해 동안 살았으나, 내세에서는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는 최후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 예비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심판을 받기 전에 내가 나자신을 심판함이다.  고전 11:31에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않으려니와"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나를  판단하시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줄 알진대, 나 자신이 나를 사정 없이 판단함이 상책(上策)이다.  그것이 가능(可能)하기 때문에 성경이 그렇게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의 앎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거리가 멀어진 것은, 분명히 죄 때문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거리가 멀어졌으니 어떻게  내가 내세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을 잘 만날 수 있으랴?  내 영혼에 무슨 죄악이 들어 있는지 깊이 살펴야 된다.  잠 16:2에 말하기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였다.  심령의 죄를 취급하기는  곤란하다.  그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 그것을 어찌 단속할 수 있으랴?  그 뿐 아니라 그것은 심령계에서 출몰(出沒)하기 때문에 육신으로 사는 내가 취급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 속에 모시는 것만이이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을 모시는 비결은, 회개하고 믿음이다.  사 59:1, 2에 말하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촬스 피니(Charles Finny)가 법률 공부를 하다가 하루는 자기를  반성할 일이 있었다.  주님의 음성은 그에게 왔다.  그와 주님과의 사이에 대화가  이러하였다.  "너는 법률 공부를 해서 무엇하려하느냐?" "돈 벌지요." "돈을 벌어서는  무엇하려느냐?" "노퇴(老退)하여 평안히 살지요."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죽지요." "그 다음에는?" "심판을 받지요."라고 하였다.  그는 이 마지막  대답을  벌벌 떨면서 하였다.  그는 그 뒤로 수풀 속에 들어가 기도하며 결심하기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워 놓은 마음으로 생각할 때에 자기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려는 죄악을 깨달았다.  그는 필경 주님을 위하여 한 평생을 바칠 결심으로 그 수풀에서 걸어  나왔다.  그 때에 그는 큰 능력을 받아 가지고 그 후  50년 동안 주님의 일로 많은 열매를 맺았다.

  암 4:13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 우리가 만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는 무소불능하신 창조자 이시다.  그는 보이는  산도  지으셨고, 보이지 않는 영(靈)도 지으셨다("바람"은 "영"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      라는 말의 번역이다.  바람이라고 번역한 경우에 바람의 창조자도 역시 하나님이시고 또 그다 보이지 않는 영도 창조하신 것을 알려준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그 수중에 주장하시지 못하시랴? 그뿐  아니라, 그는 전지(全知)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신다 함은 (*   ), 사람에게 그의(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음을 지적하시는 자라는 뜻이다.  "아침을 어둡게 하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야(晝夜)를 변동시키는 것을 이름이다.  "땅의 높은데를 밟는 자"라는 뜻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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