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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5:1

   벧사살왕 - "벧사살"을 가리켜 바벧론 마지막 왕이라고 생각한 본장의  기사(記事)
를, 세속 역사에서는 확증하지 못한다. 세속 역사는, 나브나이드(Nabunaid)를 그 마지
막 왕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 벧사살이 어떻게 바벧론의 마지막 왕의 지위에  앉게
되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바벧론의 조각문에 의하면 나보나이드의 아들  벧살우
슬(Belscharusur)이 있었다(R.D. Wilson,  Studies  in  the  Book  of  Daniel,  lst
series, p. 101). 이 사람이 바로 벧사살이니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 이유는, 나브나
이드가 고레스왕으로 말미암아 불싶파(Borsippa)에서 패전 당했을 때에, 벧사살이  그
뒤를 이어 국사(國事)를 처리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때에 그가 자기 아버지와
함께 섭정왕(攝政王)으로서 국사에 처하였다.

 

  단 5:2

   벧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 이 말씀을 보면, "느부갓네살"을 벧사살의 "부친"이라고  하였는
데 이것은 난제이다. 바벧론 역사의 왕계(王系)는 다음과 같다. 곧, 느부갓네살은  그
아들 에월므르닥(Evil-Merodach)으로 계승되었고(B.C 561. 왕하 25:27), 에월므로닥은
그의 매부 넬갈 샤르셀(Nergal-Sharezer)로 말미암아 계승되었고(B.C. 559), 넬갈  샤
르셀(Nergal-Sharezer)은 그의 아들 라보로소알코드(Laborosoarchod)로 말미암아 계승
되었고, 그 뒤에는 나브나이드(Nabunaid)가 왕이 되었는데(B.C. 554), 그의 아들이 벧
사살이다(1 절 해석 참조).
   우리는, 성경을 표면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 보아야 된다.  벧사살의
부친은 나브나이드(Nabunaid)이지만,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그 부친"이라고도 할수 있
다. 그것은, (1) 벧사살이 누부갓네살의 손자일 경우에도 느부갓네살을 그 부친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히브리 풍속에 의하여 그러하다. 히브리 풍속에는 조부를 부친으
로 일컫는 일이 있다. (2) 벧사살이 느부갓네살의 국권을 계승하여 받았다는 의미에서
도, 자기를 그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느부갓네살도 자기보다 천 년 전 사람  나람
신(Naramsin)을 자기의 늙은 아버지라고 부렀다(R.D. Wilson). 예후는 아합의 왕가(王
家)를 멸망시키고 그 왕가를 계승한 후 오므리를 자기의 아버지라고 한 일도 있다. 오
므리는 물론 아합 왕가를 성립시킨 조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벧사살의 부친이라고 한 것은, 아무 문제될 것 없다.

 

  단 5:3,4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가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
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 이 귀절들은, 벧사살의 죄악이  어떠함
을 보여준다. 곧,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器皿)들을 가지고 우상 제연의
술을 마셨고, 또 우상을 찬양하였다. 그것이야말로 일면 의식적(意識的)으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낮추는 행동인 동시에, 우상을 높이는 가증된 일이었다. 그것은 극도의 교만
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벌하시기 위하여 성전의 기명들을  바벧론으로  옮겨
가도록 허용하신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전 기명들을 바벧론 군왕들
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기명들을 저희 하고 싶은대로  사용하는
데 왜 범죄가 되는가? 이러한 의문이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날 만도 하다. 그러나  사실
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벌하시기 위하여 성전 기명들을 바벧론 군
왕들의 손에 붙이셨지만, 그들(바벧론 군왕들)도 그 기회에 범죄하면 안된다. 만일 그
들이 그 기회에 성전 기명들을 가지고 악한 일을 행할 때에는, 그것이 역시 범죄가 되
는 것이다(슥 1:15).
   매클라렌(Maclaren)은, 벧사살의 이같은 죄악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영적(靈的)  교
훈을 지적하였다. 곧, "성전 기명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인데, 벧사살
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오락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처럼 신자가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야 할 지시과 감정과 의지를,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만 사용할 때에 역시 하
나님을 모독하는 죄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호롭게
하지 아니하면, 비록 그것을 가지고 특별한 악행을 범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무서운 죄
가 되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라고 하였다. 고전 3:16-17 참조.
   그 뿐 아니라, 벧사살은, 바벧론이 메대 바사의 침략을 당하는 순간에도 저렇게 지
나친 쾌락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잠 29:1 말씀과 같이 된  것이다.
곧,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
라"라고 하였다.

 

  단 5: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촉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 여기 이른바 "분벽"은, 오늘날도 고고학자(考古學者)
들의 발굴로 말미암아 바벧론 왕궁 폐허에서 발견된다. 거기 기록된 글은, 아마도  그
때의 사람들도 알 수 없는 어떤 암호로 된 듯하다. 그 이유는, 그 글을 바벧론 박사들
도 읽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단 5:6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 벧사살이 이 같이 놀란 것은, 하나
님께서 그의 마음을 그렇게 주장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멸
망에 임하였다는 암시를 느꼈다. 그렇게도 지나친 쾌락주의에 빠져서 즐기던 자가  갑
자기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 왕이 쾌락주의에 의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기 때문에 이제 갑자기 그의  기쁨은
빼앗기우고, 정반대로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단 5:7-9

  벧사살왕은, 바벧론의 다른 왕들처럼 난제를 앞에 놓고 "술사와  점장이"와  "박사
들"을 불렀다. 이것을 보아도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이교 국가(異敎國家)들은 사람을
잘 속이는 자들을 지도자로 세운 것이다. 이같이 이교 세계는 흑암에 잠겨 있다. 일찌
기 느부갓네살왕도 술사들과 점장이들의 무능을 지내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벧사
살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시 "술사"들과 "점장이"들을 불렀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별 수 없기 때문에 저렇게  지도  능력이
없는 자들이라도 거듭거듭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단 5:10-12

  여기 이른바 "태후"는 왕의 모친인 듯하다.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란
말은 다니엘을 가리키는데, 이런 명칭은 역시 이 기록의 역사성을 잘 드러낸다.  이런
명칭은 다신론 사상(多神論思想)을 가진 바벧론의 술어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바벧
론 사상을 가진 "태후"가 다니엘을 알아보면서도 아직껏  유일신  사상(唯一神思想)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도 다니엘에게 대하여 "신들의 영이 있는 사
람" 이라고 불러 줄 정도였다. 이것을 보면, 여기 기록된 말씀은, 그 때 바벧론  환경
에서 되어진 일을 그대로 정확히 기록한 것임이 분명하다.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
니 - 이 말을 보고 우리는 혹 잘못 생각하기를,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경건
한 사람 다니엘이, 저런 속이는 무리("박수", "술객", "술사", "점장이")의  "어른"으
로 추대하는 대접을 받고 있었을까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른바 "어른을 삼"았다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일찌기 다니엘을 바벧론의 모든 술사들보다 우수한 자로 여겨  주
었다는 것 뿐이다. 이 말은, 다니엘로 하여금 술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는 의미가 아니다. 이 점에 대하여 4:9에 있는 "박수장 벧드사살"이란 말의 해석을 참
조하여라.

 

  단 5:13-16

  여기서는, 벧사살왕이 태후의 말을 듣고 다니엘을 불러 분벽에 나타난 이상한 글을
일고 해석해 달라고 한다. 그는 다닝레에게 약속하기를, 만일 그 글을 해석해  준다면
"자주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라고 하였다. "자주 옷"은 그 때에 귀족들이 입는 것이며, "금 사슬"역시  상류  계급
(上流階級)에서 사용하였다. 특별히 여기 "세째 치리자"란 말에 대하여는 해석이 여러
가지 있다. 그 가장 신임할 만한 것은, 나브나이드(Nabunaid)=벧사살의 부친)가  첫째
치리자요, 섭정왕 벧사살이 둘째 치리자요, 그 다음으로 벧사살이 세울 치리자가  "세
째 치리자"란 것이다. 과연 바벧론 나라에 이런 치리자들이 있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
이다.

 

  단 5:17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
게 하리이다 - 왕의 말을 들은 후에, 다니엘은 여기서 두 가지로 자기의 덕행을  나타
내었으니 곧, (1) 그의 청렴함과 (2) 그의 관대함이다. 그는, 왕에게서 "예물" 받기를
원치 않고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주라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어쨌든  그는
왕을 위하여 그 글을 해석하여 주겠다고 한다. 다니엘은, 신앙에  굳세면서도  언제나
부드럽게 행한 것이 드러난다. 그는 그렇게 부드러우면서도, 그 암흑 세계에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는 철저히 하였다.

 

  단 5:18-21

  앞절에 나타난 것과 같이, 다니엘은 부드럽고 관대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죄를
지적함에 있어서 보류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벧사살의 죄악을 지적함에 있
어서 그것이 어떻게 크다는 것을 자세히 말하였다. 곧, 벧사살이 그 조상  느부갓네살
의 교만죄 때문에 벌 받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전감(前鑑)으로 하지 않고 그  자신
이 또 다시 교만죄를 범하였다는 것이다. 폭군(暴君)앞에서 이와 같이 담대히 말함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단 5:25-28

  다니엘은 왕궁의 분벽에 나타난 글을 이제 해석한다. 이 글은 "메네 메네 데겔  우
바르신"(*                                )인데 곧, "세어 보고 세어 보고 달아보매
부족하여 가른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바벧론 나라의 모든 죄악을  아시고  그
연대를 정하셨다가 필경 그 나라로 하여금 패망케 하고, 메대와 바사에게  그  나라를
내어 주신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이 문구를 해석함에 있어서 28절에 이르러  "베레스"
(*      )라고 한 것은, 바로 25절 끝에 있는"바르신"(*        )을 단수로 말한 것이
다. 그러므로 그 두 말은 뜻이 동일하다.
   우리는, 여기 이 이상한 문구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든 일을 계수하시다시피 판단하
시며, 저울로 달아보듯이 심판하시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벧사살왕은,  자기  이상(以
上)은 없는 듯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동을 하였다.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 성전 기명
(器皿)으로 술을 마시며 우상을 찬양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같은 행
동을 저울로 달아보듯이 분명히 아시고 심판하셨다. 죄악이 극도에 이르면,  하나님의
초자연적(超自然的) 간섭도 급격한 법이다. 이 급격한 심판이 바로 왕궁 분벽에  나타
났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기 전에 미리부터 우리 자신의 행위와 생활을 반성
하며 저울로 달아보듯이 판단하고 회개해야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평소에도 우리
를 달아보시듯이 살피시기 때문이다. 삼상 2:3에,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리라"하였고, 욥 31:6에는,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린 때 참으로 부족을 느끼게 되나니, 그 때에 회개하며 주님을 전적으로 믿게 될  수  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 125:1).

  단 5:29
  세째 치리자 - 7절에 있는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단 5:30,31
  여기서는, 벧사살왕의 피살(被殺)된 것과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벧론을  점령하게 된 것을 보여준다. 메대 사람 다리오에 대하여는 6:1 해석을 참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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