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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4:1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 - 이것은, 동쪽으로는 엘람과 메
대에서 애굽까지이며,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안 모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렘 25:26, 27:5-6 참조.

  단 4:2,3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3:26의 같은 말 해석 참.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
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것은, 느부갓네살이 그의 체험에 의하여 하나님의 주권(主
權)을 인식하고 한 말이다. 그는,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나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께 달
려 있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여기 말하기를,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하였다. 여기 "그 권병"이란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단 4:4,5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였으되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인하여
번민하였었노라 - 느부갓네살이 평안히 있는 가운데 고민이 될 만한 꿈을 꿈 것은  의
미 심장하다. 사람이 평안한 때에 그 평안만을 즐기고 있는 것은 교만이다. 그는,  평
안한 때에도 의(義)를 위하여 수고해야 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그 평안을 즐겼다.
그가 그렇게 교만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심판은 그의 꿈을 통하여  임하였다.  특별히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란 말은, 우리의 주의(注意)를 끈다. 곧,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폭군의 뇌 속도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  이른바
"이상"(異像)은, 그의 꿈에 나타난 환상을 말함이다.

 

  단 4:6,7

  느부갓네살은 자기 꿈의 뜻을 알기 위하여,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
를 불렀다. 이 사실을 보니, 거듭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본(2:47,3:28) 뒤에
라도 또 다시 미신(迷信)으로 기울어짐을 알수 있다. 느부갓네살은, 일찌기 자기의 꿈
해몽을 위하여 이런 거짓되 자들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2:2). 그러나 그들이  그의
요구를 이루어주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2:11).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사용하기 위하여 또 불렀다.

 

  단 4:8,9

  여기서도 느부갓네살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오지 않고 전에 섬기던 헛된
신(神)을 그대로 위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은, 여기 "내 신의 이름을 좇아"라고  한
문구가 보여준다.
   "박수장"이란 말은, 아람 원어로 라브 칼툼마야(*                 )라고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요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유대인  다니엘이,  미신(迷
信)을 따르는 박수들과 한 무리가 되어 그들의 머리 노릇을 하였을까? 그러나  이것은
다시 생각하면 문제될 것 없다. (1) 다니엘을 가리켜 "박수장"이라고 한 것은, 느부갓
네살이 그렇게 불러 준 것 뿐이고(2:46-49), 다니엘이 박수들과 함께 타협하며 지냈다
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찌기 느부갓네살이 그 꿈으로 인하여 박수들을 불렀을  때
에 다니엘이 거기 한몫 끼었던 일이 없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2:2, 4:6-7).  (2)
그 뿐 아니라, 여기 "장"이란 말 라브(*    )는, 같은 반열에 속하는 머리된 자를  의
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아라비아 말에서 "신"(神)이 란 뜻도 있고 "주"란  뜻도  있
다. 이렇게 해석될 때에, 다니엘은 박수들의 반열에 속하는 주장자란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그가 그들과 다르면서 탁월한 권위자(權威者)임을 가리킨다.  가령  하나님을
가리켜 피조물의 주라고 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을 피조물과 같은 반열에 속하는  이
로 생각함이 아니다. 또 혹은, 주인을 가리켜 종들에게 대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데, 그것은, 그 주인 자신이 역시  종으로서  머리되는  자란  의미가  아니다(R.  D.
Wilson).

 

  단 4:10-12

  느부갓네살은 이상(異象) 가운데 한 나무의 왕성함을 보았다. "나무"는,  22  절에
해석된 것 같이 누부갓네살왕을 비유한다.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는 실례(實例)는 성
경 다른 부분에도 있다(시 1:3, 37:35, 52:8, 92:12; 잠 11:28; 호 14:7). 그런데  느
부갓네살의 정치가, 이 귀절들이 말한 것 같이 왕성한 나무처럼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끼쳤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폭군(暴君)의 통치도 폭도(暴徒)보다도 낫다는  것이다.
폭군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사회 질서 유지(社會秩序維持)의 은총이 있다
(Calvin).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더
라"함은, 그 때의 민족들이 느부갓네살의 치하에서 산 것을 가리킨다.

 

  단 4:13-16

   느부갓네살은 또 이상 중에 한 순찰서를 보았다. "순찰자"(巡察者=파숫군)란  말은
깨어 있어서 파수하는 자 곧, 천사를 의미한다. 천사에 대한 이와 같은 청호는 이사야
서에도 있다(사 62:6).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바벧론 사람들의 사상대로 성좌
신(星座神)으로서 우주를 지키는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이 천사
를 가리켜 이렇게 이교(異敎)의 미신 관념(迷信觀念)으로 명칭을 준  것이다.  이것이
다니엘서가 바벧론에서 기록된 증거요, 다니엘서의 역사성(歷史性)을 나타낸다고 한다
(R.D. Wilson, Studies in the Book of Daniel, 2nd series p. 193).
   우리 본문에, "순찰자"란 말에 이어 "거룩한 자"란 칭호가 붙은 것을 보아서 그 말
로써 확실히 천사를 의미한 것 만은 사실이다(신 33:2; 욥 5:1, 15:15; 시 89:6-7; 슥
14:5).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 이 말씀은,  느
부갓네살왕이 장차 그 다스리는 지위에서 떠나게 될 것을 가리킨다. 25절 참조. 그 뿌
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 여기 이른바 "철과 놋줄로"동인
다 함은, 장차 느부갓네살에게 임할 광증(狂症)이, 그를 여지 없이 견제하게 될  것을
비유한다. 시 107:10-11; 욥 36:8-9 참조.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 곧, 느부갓네살이 장차 "짐승으로  더불
어"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단 4:17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
구에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함이니라 하였
느니라 - 곧, 느부갓네살이 그의 국운(國運)의 발전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줄을 모르
고 자기 힘으로 된 줄 알기 때문에, 14-16절에  선언 된 벌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
런 그릇된 생각이 계속되는 동안, 그 벌은 해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자기의 잘
된 것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 힘으로 된 줄 알면, 그것은 큰 교
만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반드시 벌하신다. 잠 16:5에 말하기를, "무릇 마음
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였고, 잠 16:18에는 말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
잡이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믿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교만이
다. 그것은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멸시하는 죄악이다.

 

 단 4:18,19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 - 느부갓네살왕이 성령을 가리켜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고 한 것은, 바벧론의 다신론 사상(多神論思想)으로 잘못 말한 것이다.
다니엘이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하여 하는지라 - 이 때에  "다니엘이  
번민"한 이유는, 느부갓네살왕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에 왕의 원수들이 기뻐할 것
이기 때문이다. 19절 끝에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란 말씀이, 이 해석을 지지하여 준다. 이  말씀은
실상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한다. 곧,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해당한 것이면 좋겠나이다"라고 해야 된다.

 

  단 4:20-22

  이 귀절들에 대하여는 10-12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단 4:23-26

  이 귀절들은, 느부갓네살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이다.  그  해석은  이러하니,
곧, 그가 장차 미치고 얼마 동안 왕위(王位)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이
와 같은 해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어떻게 한 개
의 이방 나그네로서 폭군에게 대하여 이런 과감한 말을 할 수 있으랴(28-33).

 

  단 4:27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궁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편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  다니엘은
여기서 느부갓네살에게 화벌(禍罰)을 면할 수 있는 충언(忠言)을 전한다. 폭군 앞에서
그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경한 담력(膽力)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가난
한 자를 궁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폭군은 흔히 간신(奸臣)들과 부유층(富裕
層) 사람들을 좋게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뇌물(賂物)을 가지고 그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폭군(暴君)앞에 그림자도 비치지 못하고 고요히 폭군에
게 착취를 당한다. 느부갓네살의 죄악은 이 방면에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므로  다니
엘은 이것을 용감스럽게 지적하였다.

 

  단 4:28-31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엘의 충언을 듣지 않고 끝까지 교만하여 바벧론의  국운(國運)
이 자기 힘으로 되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이것이 그의 벌 받을 죄라는 것은, 31 절이
지적하여 준다. 곧,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누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란 말씀이다.       

 

  단 4:32,33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
이 일곱 때를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
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
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술에 젖고 머리
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 이 귀절들은,  느부갓네살
이 그 꿈과 같이 벌 받을 사실을 말해준다.
   코닐(Crnill)과 기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 의하여 이 기사(記事)
의 진실성을 부인한다.
   (1) "70인역(LXX)은 이 본문의 '일곱 때'(*                 )를 7년으로 번역하였
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발광(發狂)하는 왕을 바벧론 사람들이 어떻게  하야(下野)시키
지 않았으랴"라고 한다. 그러나 "일곱 때"란 것은 일곱정한 시일(時日)을 의미하나니,
7개월을 의미할 수도 있다(R.C. Thomson's Reports of the Magicians and Astrologers
of Nineveh and Babylon, Number 251, Rev 3-6). 그 뿐 아니라, 그런 폭군을 그  때에
바벧론 사람들이 건드릴수 없었던 것이다.
   (2) "사람이 어떻게 짐승의 마음을 가지게 될까"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광인 심
리(狂人心理)로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리칸트로피(Lycantropy)가
저술한 "심리 요법 사전"(心理療法辭典)을 보면, 어떤 사람이 미쳐서 이리 노릇을  한
예를 들었다(p. 752).
   (3) 동시대사(同時代史)에는 느부갓네살의 미쳤던 기사(記事)가 없다고 한다. 그러
나 갈대아(바벧론) 역사가(歷史家) 베로서스(Berosus)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약해여
져서 죽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 나라 군왕의 질병에 대한 부드러운 표현이다. 아비
데누스(Abydenus)란 사가(史家)는 말하기를, "느부갓네살이 지붕에서  어떤  신(神)이 들렸다고, 갈대아 사람을 통하여 전해 내려온다"라고 하였다(R.D. Wilson).

  단 4:34,35
  여기서는, 느부갓네살의 회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 이 말은, 이제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높이어 회개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34절 하반에서 35절에 나타난 그의 구체적인 회개는, 전에는 자기를 높였지만  이제는 하나님만을 높이며 찬양하므로 나타난다. 곧, 그는 하나님을 (1) "지극히 높으신 자"라 하며, (2) "영생하시는 자"라 하며, (3)하나님의  "권세는  영원"하다고  하며, (4) 하나님을 만유(萬有)의 주재자(主宰者)라고 한다.         

 단 4:36,37
  여기서는, 느부갓네살의 정신이 돌아온 것과 및 왕의 지위가 회복된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그 요지(要旨)는, 하나님은 "진실하고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낮추심"이라고 한다. 이 찬양은 물론 하나님의 심판 성격을 깊이 느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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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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