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에스겔 4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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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 43:1,2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
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 "하나님의 영광". 40장에서 42장까지는 성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신약  시
대의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나 성전만으로는 하나님 백성의 구원이 성립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臨在)만이 성전의 가치를 성립시킨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새
성전으로 달아오는 광경이 계시된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                  
                )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임재(臨在)하
신 증표이다. 1:28, 3:12,23, 10:4,18, 11:23 참조.   

 

  겔 43:3-5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  1:28,
3:23,8-11장 (특히 11:22 이하) 참조.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
여 오시는 구주님은, 다른 분이 아니고 바로 구약 시대에 에스겔에게 나타나셨던 하나
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 1:28, 3:23, 9:8, 11:13, 44:4 참조.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 2:2, 8:3 참조.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 이것은 첫째 성전 봉헌식(奉獻式) 때에 된  일
과 마찬가지이다. 출 40:33-34; 왕상 8:11 참조.  

 

  겔 43:6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 이 분은, 아래 나오
는 말씀으로 보아서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형상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가 천사를 통하여 대리적으로  나타나실  때에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인다.  창
18:1-15 참조.

 

  겔 43:7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 이것은, 앞(40-42 장)에서 계시(啓示)로 나타난 성전을 말함인데,  그가  그
백성을 다스리시는 곳이란 뜻이다. "보좌"는 여기서 성전을 의미하고(렘 3:17), "발을
두는 처소"도 성전을 의미한다(대상 28:2; 시 132:7). 이렇게 성전을 두 가지 말로 거
듭 말한 목적은, 거기(성전=참된 교회)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의 확실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G.Ch.Aalders).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 이 문구 중에서 "음란히 행하
며"(*              =삐즈누담)란 말을 개역(改譯)하면, "저희의 음행으로"이다. 여기
이른바 "음행"은 우상 섬김을 가리킨다.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 "죽은  왕
들의 시체로"(*                                      )란 말을 직역(直譯)하면, "저
희의 높은 곳들에서 저희 왕들의 시체들로"이다. 그렇다면, (1) 이 뜻은,  이스라엘의
그 산당(山堂)들에서 "물록"(왕이란 뜻이 있는 우상의 이름)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이
름을 더럽혔다(7절 하반)는 뜻이겠다. 이 해석을 취하는 경우에, "시체"란 것은  우상
의 생명 없음을 가리켰을 것이다. (2) 그러나 70인역(LXX)은 이  문구를  번역하기를,
"그들 중에서 그들의 왕들을 죽이므로"라고 한다. (3) 다른 학자들은, 이 문구를 다음
과 같이 해석한다. 곧, 유다 왕들 중에서 어떤 자들이 죽어서 성전 가까이 묻혔으므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해석 중 첫째나 세째가 옳을 것이다.

 

  겔 43:8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 위(7절)의 첫째 해석을 택할 경우에 이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만든 우상 종교를 여호와의 참 종교와  병립(竝立)시
켰다는 것이다. 곧,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상을 섬긴다
는 뜻이겠다.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 이것은, 위의 첫째 문구의 뜻과  같은  뜻을
가진다.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 혹설에,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이
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도무지 통합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의 7절  하
반의 해석 세 가지 중 그 세째를 택할 경우에,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질 것이
다. 곧, 유다 왕들이 성전 가까이 장사된 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것이다. 그 이
유는, 구약 시대에는 시체를 불결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전  가까이  왕의
시체를 묻었으니, 그야말로 그 문지방을 하나님의 문지방에 둔 것과 일반이며, 하나님
과 그 왕들의 시체 사이에 담 하나를 세운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 - 곧,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범죄 때문에 벌
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바벧론의 침략을 받아 그 국가가 패망한 사실을  가
리킨 것이다.

 

  겔 43:9

   이 귀절에 대하여는 위의 7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겔 43:10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 곧, 선지자가 위(40-42 장)에 말한 이상적 성전(신약 시대에  나타날
기독 교회)을 그 백성에게 보여주시므로, 그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라는 말씀이다.  사
람이 하나님의 축복 약속을 받음으로 자기의 부족과 죄악을 깨닫는 수도 있다.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 학자들 중에서, 이 문
구의 지시하는 일이 이스라엘로서 실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문구의  순정성(純正
性)을 의심하는 자가 있다(Van Den Born). 70인역(LXX)은 이 문구를 우리 한역과 같이
번역하지 않고, "그 모양과 그 배열(을 보여주라)"라고 하였다. 이 번역이 보다  정확
한 본문에 근거하였을 것이라는 학자들도 있다(Sckinner, G.Ch.Aalders). 그러나 오렐
리(Von Orelli)란 학자는 우리 한역과 같은 번역을 채용하고, 다만 그 뜻은 "주의  깊
이 관찰하라"(die sorgf ltige, sinnede Betrachtung)란 의미라고 하였다.

 

  겔 43:11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 곧, 이스라엘이 그 죄를 회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그 새  성전의
더욱 자세한 "규례와...법도와...율례를" 그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는, 성물(聖物)을 개에게 주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마 7:6)

 

  겔 43:12

  전의 법 - 곧, 새 성전의 법(신약 시대의 기독 교회로 나타낼 구원 제도)을 말함이
다.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 곧, 에스겔이 계시(啓示)에  의하여
보게 된 새 성전은 "산 꼭대기"에 있었는데(40:2), 그 성전의 지대가 "지극히 거룩하"
다는 뜻이다. 그 성전이 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것은, 바로 그것이  세상에서  탁월(卓
越)히 성별(聖別)된 사실을 무언중(無言中)에 보여준다.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 자신의 성결이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이다. 이것이, 새 성전  계시에  의하여
예언적을 상징되었다.
   전의 법은이러하니라 - 이와 꼭 같은 문구가 이 귀절 초두에 나왔는데, 여기  절말
(節末)에 또 나온다. 이것은, 서사자(書寫者)가 잘못하여 거듭 쓴 것 뿐이라는 학자가
있다(Toy). 이 문구가 70인역(LXX)에는 전연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원본
에도 그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문구가 거듭 나온 것은 역설체(力說
體)이다(G.Ch.Aalders).

 

  겔 43:13

   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 - 에스겔에게 계시된 성전의 다른 내부 시설에 관해서는
별로 진술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단"에 대하여는 길게 진술되어 있다. 성전에는 제단
이 중심이다. 그 이유는, 죄인 구원에는 속죄(贖罪)가 그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 교회가 속죄자이신 그리스도를 중심한 사실을 예표한다.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 이것은,
여기서 사용된 한 자(一尺)의 길이를 밝혀준다. 40:5 참조.
   제단 밑받침의 고가 일척이요 그 사면 가장자리의 광이 일척이며 그  가으로  둘린
턱의 광이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 델리취(Delitzsch)는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곧, "밑받침의 고가 한 자요 광이 한 자여 또한 사면 가장자리가 한
뼘이니 이것이 제단 밑받침이요"라고 하였다.

 

  겔 43:14-17

  제단의 구조에 대하여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1) 몇 가지  "층계"로  되었음.
이것은 협력과 화합의 의미를 가진다. 곧, 아래서 위의 무게를 받쳐주는 구조를  보여
준다. (2) "뿔"이 있음(15절 하반). "뿔"은 권세 혹은 권능을 비유한다. (3)  "번제하
는 바닥의 장...광이 십 이척이니 네모 반듯"함(16절 하반). 이것은, 견고성, 안전성,
지구성(持久性)을 의미한다.
   위의 세 가지 성격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속죄의 성격을 예언한다. 그것은, 하나
님과 사람이 화목하도록 돕는 것이며, 죄인을 구원하는 권세와 능력이 있고, 그  효과
가 안전하며 영구하다.    

 

  겔 43:18-25

  이 귀절들은,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시행하기 전에 먼저 "제단"자체를  정결케
하기 위한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한다. 제단 자체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는 "속
죄 제물"을 드리는 곳이니, 그곳이 불결하면 안된다. 그러므로  그곳에  정결(淨潔)을
완전 보장하는 의미에서 먼저 "칠일 동안" 그것 자체를 "정결케"하는 제사를  드린다.
이 제사는 다음과 같이 거행되었다.
   (1) "사독의 자손"들이 이 제사를 집행함(19절). "사독"은 아론의 후손인데,  아론
의 다른 자손들(이다말의 후손들)이 범죄하였으므로 솔로몬이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세
웠다(왕상 1:7-8, 2:26-27).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
(義)를 얻어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자격을 가진다.
   (2) "칠일 동안은 매일"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림(25절). 여기 "칠인"이란 것은  완
전한 날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속죄제를 계속해 드림은 제사를 많이 드린
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단번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대속제(代贖祭)
의 모형이다. 그는 단 한 번의 속죄제로  무궁한  회수(回數)의  제사를  이루셨다(히
9:23-28). 그리스도는 신약 시대에 교회를 위한 제단과 같다.
   (3) 제물에 "소금"을 침(24절). "소금"은 신인 계약(神人 契約)에 관련되어  있다.
제물에 소금을 치는 것(레 2:13)은 계약을 의미한다(민 18:19; 대하 13:5).  물론  이
계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대하여 그 솔선적 태도로 맺으신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 제물을 바칠 자는 먼저 신앙에 의하여 이 계약에 참여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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