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11:1-4
여기 "이십 오인" - 이란 수는, 제사장 24반열의 대표자들 수효에 대제사장을 가산
(加算)한 수라고 한다. 어쨌든 이들은, 그 때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대인의 지도
층인 것만은 사실이다. 본장은, 유대인의 최후적 패망이 주로 그 지도자들의 그릇된
지도로 말미암은 것을 지적한다. 그들 중에도 특별히 야아사냐와 블라댜가 두목(頭目)
으로 꼽히운 듯하다. 사람이 명성을 얻은 것은 이렇게 위태한 일도 된다(약 3:1).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
가 된다. - 이 말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반대된 사상이다. 예레미야는, 바벧론에 잡혀
간 유대인더러 "집을 짓고 거기 거하"라고 하였는데(렘 29:5),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
로서 외국에서 집을 건축할 때는 멀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유다 나라가 아주 패망
할 때는 멀었으니 안심하고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의미한 바는, 유다 나라가 아주 패망하였으니 바벧론에 포로된 자들은 거기서 집을 짓
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예루살렘 성읍을 가리켜 "가마"라고
한 것은 역시 예레미야의 예언에 있다(렘 1:13). 그것은, 북에서부터 오는 전화(戰禍)
가 불길 같이 임할 때에 예루살렘은 가마와 같이 끓게 됨을 의미한다. 곧, 예루살렘
성읍이 전쟁으로 인하여 물끓듯이 불안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은 백
성의 악한 지도자들은 이 말씀을 의곡하여 전연 다른 사상을 만들었다. 곧, "예루살렘
성읍은 가마와 같이 보호하는 자요 자기들은 그 가운데 담겨 있는 고기처럼(고기가 불
에 아주 타지는 않도록 가마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사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루살렘을 믿는 것이니, 그것이 그들의 타락
한 사상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고 하셨다.
겔 11:5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생
각을 보시고 그들의 인격을 판정하신다. 그들의 생각은 곧바로 그들의 말이었다. 잠
16:2에 말하기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
찰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겔 11:6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살륙하여 그 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 - 여기 이른바 "너
희가...많이 살륙하"였다는 것은, 학자들에 따라 그 해석이 갈린다. (1)슈미드트
(Hans Schmidt)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세움이 된 그다랴총독을 위시하여 많은 사
람이 죽도록 되어진 사실을 가리킨다고 하였고, (2) 힛지키(Hitzig)와 지글러
(Ziegler)는, 이 말씀이 바벧론 군대에게 많은 사람들이 피살된 것을 가리킨다 하였
고, (3) 칼빈(Cakvub)은, 이것이 위에 말한 악한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
이 압박 받은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겔 11:7-9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 - 이 말씀의 뜻은, 악한 유대인 지도자들의 손에 죽은 사람들이 도리어 가마
안의 고기처럼 보호를 받은 셈이고, 그들 자신(악한 지도자들)은 더욱 불행하게 그 성읍
에서 쫓겨나서 칼에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안전하게 거할 줄로 생각
하였으나,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자들만도 못하게 성읍에서 끌려 나가서 그들이 두려
워하는 칼에 죽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Calvin)
. 슘프(Schumpp)는 해석하기를, 거룩한 성읍에서 죽임이 된 자들의 시체는 부활을 기대하
게 된다는 의미에서, 가마 안의 고기와 같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알델스(G.Ch.Aalders)
는 이것을 억해(臆解)라고 하였다. 저 악한 지도자들은, 자기들만은 하나님의 축복과
특전을 받은 자들이요 예루살렘에서 보호를 받을 자라고 자신(自信)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께서는 그와 정반대로, 그들은 가치 있는 고기가 아니고 가치 없는 자들로서 성 밖으로
끌려감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G.Ch.Aalders). 하나님의 이와 같은 경고는, 저 불의한 지도
자들의 악한 말(3절)을 심판
겔 11:10,11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국문하리니 너희가 나
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
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 여기서는, 또 다시 8절에
있는대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난 곧, 칼에 맞아 "엎드러질 것"을 재
설(再說)하여, 그들이 기대하던 바와는 정반대로 될 것을 예언한다. 이런 방식의 처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극도로 반대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흔히 쓰시는 것이다. 높아지기
원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낮추신다. 그가 이렇게 악인들의 사상을 반대하는 표를,
명백히 그의 벌로써 보여주신다. 저 거짓된 지도자들도 생각하기를, 예루살렘은 가마와 같
이 보호자가 되고 자기들은 고기와 같이 불에 아주 타지지 않도록 보호 받을 줄로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루살렘 성읍을 믿으며 저렇게 헛된 안전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어코라도 예루살렘 성읍에서 끌어내어 벌하실 것이라
고 하신다.
겔 11:12
여기 이른바,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라고 한 것은, 그들이 벌을 받고야 전에
예언자들의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이 때에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의미의 말씀은 아닌 듯하다. 이것은 다만 선지
자를 통한 예언이 어디까지나 참된 것이고 여호와의 권위를 가졌다는 것이, 필경 심판 후에라
도 드러나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들이 심판을 받은 뒤에야 여호와의 권위를 알아 보는 것은,
너무 늦어진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 곧, 유대인들이 사방 이방인들이 알
아볼 정도로 이방인의 풍습을 따랐으며 이방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방 이방인들
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범죄하였으니 만큼, 그만한 형벌을 받게 된다. 곧, 이방인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형벌을 받게 된다. 그들이 이방에 포로로 잡혀 간 것과 이방인들의 칼에
피살 된 것은, 이방 세계에도 잘 알려질 정도의 벌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심판 원리는,
"이는 이로" 갚는 원리에 속한다(출 21:23-25)
겔 11:13
이에 내가 예언할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 에
스겔이 예언할 때에 "블라댜가 죽"은 것은, 위(1 절)에 관설된 25인 중에서 한 사람이 죽음
으로 그들의 받을 벌이 벌써 실시되기 시작한다. 이런 예언을 듣는 자들은, 그 시간에 당장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어야 할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대적하던 블라댜가 죽을 때
에도 이를 기뻐하지 않고 예루살렘의 남은 백성의 장래(將來)를 근심하였다.
겔 11:14-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14:2 해석을 참조하고, 또 2:1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이, 자기들보다 먼저 사로잡혀 가는 동포들을
향하여 하는 말이,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 (예루살렘에서 떠나가라 우리는 여
기서 평안히 살겠다는 의미)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강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보다 먼저 사로잡혀 간 백성을 돌보시고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
신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을 가리켜 나쁜 무화과라 하고, 그들보다
먼저 사로잡혀 간 자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비유한 것과 마찬가지이다(렘 24:1-10).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자기들이 아직 그 성읍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을 황송하게 생각하고 회개했어
야 될터인데, 도리어 저렇게까지 무지하게 교만하여진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먼저 사로잡혀간 자들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으로 말씀하시기
를,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聖所)가 되리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도 있지만,
겔 11:17-20
이 부분 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바벧론에 포로된 유대인들을 유다 본토로 귀환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들여
다 볼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이 바벧론에서 유다 본토로 돌아가는 운동의 욧점도 단지 육체
적 행복을 회복함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느 영적 광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벌을 주시든지 복을 주시든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시는 것
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만이, 그들에게 있어서 절정적인 축복인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모든 인류에게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귀절들(17-20)의
말씀으로써 실상 더 멀리 신약 시대에 있을 메시야의 구원 운동을 표지(標指)한다. 구약의
모든 구원 운동은, 육적 구원을 그 궁극적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신약 운동의 영적 구
원을 궁극적으로 표지하는 것이다. 특별히 19절에 있는 대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운동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본 것이다.
겔 11:21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위에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포로되었던 유대인들을 유다 땅에 귀환 시키실 것이라는 예언은, 겸하여 신약 시대의 구원 운동을 내다 본 것이다. 신약 시대의 구원 운동에 있어서도 우상을 섬기는 행위는 벌하실 것이라고, 여기 21절에 부언(附言)한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란 말이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죄악을 판정(判定)하는 영적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신약 시대에는,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 숭배의 행위이다. 신약 시대에는 특별히 마음의 형편을 따라서 죄를 정한다.
겔 11:22-25
이 부분에서는, 선지자 에스겔이 이상(異象) 중에서 갈대아에 돌아간 사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