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1:1,2
시드기야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
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
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 이 부분
(部分)에서는, 시드기야왕이 국란(國難)을 당하여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청한다. 그것
은, 벌써 15:11에 예언한대로 성취된 것이니, 거기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
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예레미야를 대적하던 시드
기야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런 기도의 원조를 청하였으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회改)의 태도는 아니었다.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라고 한 말씀(*
)은, 그 국난(國亂)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여하
(如何)를 알아 보려고 한 것 뿐이고 회개의 태도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奇事)로 우리를 도와 행(행)하시면 그가(느부갓네살
이) 우리를 떠나리라"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인(罪人)을 그저 구원(救援)하시는 것보다 먼저 그들의 회개를 원하신다. 그는, 사람
들이 회개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이가 아니다.
악을 떠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일은 없이 육체적(肉體的) 구원만을 받고저 하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의 청원이 들어오자 마
자, 여호와의 거절하시는 말씀이 즉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
에게 사신(使臣)들을 보내어 청원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라고 한 말씀이 이 뜻이다.
렘 21:3,4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
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벧론 왕과 또 너희를 에
운 갈대아인과 싸우는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중에
모아 들이리라. - 유다 나라를 바벧론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원하는 시드기야의 청
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패배(敗北)하도록 하시리라고
한다. 이것은, 시드기야왕이 청원한 것과는 정반대(正反對)의 응답이다.
여기서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사실은, 죄인이 회개는 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와
주심만을 청할 때에, 일은 도리어 정 반대 방향(正反對方向)으로 역전(逆轉)하게 된다
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이 그 택한 백성을 위한 사랑이다. 회개할 줄은 모
르고 육체적 도움만 바라는 그들의 사상은 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됨이 도리어 그들에
게 소망(所望)을 가져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하여 그렇게 처사(處事)하심으
로써, 도리어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4절 초두에, "이스
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하며 말씀하신다.
렘 21:5-7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이 성
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였다 하
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
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
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여기서는,
좀 더 자세하게 시드기야왕의 기대하던 바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 전개(展開)될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정 반대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원인은, 시드기야와 및 유대인들의 회
개치 않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이다(5절). 이 진노(震怒)로 인하여 내리는 형벌
(刑罰)은, (1) 사람이나 짐승이 모두 다 염병에 죽음(6절), (2) 전쟁과 염병으로 인하
여 다 죽고 남은 자들이 원수의 손에 잡힘(7절), (3) 그 잡힌 자들이 또 다시 원수의
칼에 죽게 됨(7절 하반)이다.
이 참혹한 현상은 얼핏 보면 너무 잔인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참혹한 일을 보는
자들은, 그 일의 배후에 있었던 유대 민족의 죄악이 얼마나 악독하였던 것을 볼 줄 알
아야 한다. 그들이 생명이 애호를 받지 못하고 비참스럽게 죽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죄악은 말할 수 없이 악독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당하는 참상은, 실상 그들의
죄악상(罪惡相)을 형용하는 일면(一面)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5-7)에서 "내가"(* =아니)라는 대명사(代名詞)가 그 행동의 주체자(행
動主體者)로 되어 있다. 그 전쟁에 있어서 바벧론이 정복자(征服者)로 나타나 있으나,
실상 그것을 실시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W. Rudolf, Jahwe selbst f hrt
diesen Kamp).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이렇게 전쟁의 태세
로 나타나신다.
렘 21:8,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
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
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것 같이 얻으리라. -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구원이 침략군에
게 "항복하는" 길 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 전쟁
에 있어서 얻어지는 "노략물"(擄掠物)은, 근근이 얻어지는 것이며 위태한 중에서 수획
(收獲)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생명은 위기(危機)에 빠졌으나 그들이 항복
(降伏)할 때 근근이 구원을 얻게 된다.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항복하므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은, 단지 비루한 굴종을 권
장하는 말씀이 아니고, 여기서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행동으로써의 항복을 권장함이다.
본래 유대인들이 애굽과 친하여 바벧론의 침략을 초래하였던 것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유대 민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의
지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반역이기 때문이다. 유다가 애굽에 아부하여 이방
풍속을 가져오며 많은 우상을 섬기게 될 때, 하나님은, 바벧론을 동원시켜 유다에 침
입하도록 하셨다. 그러니 만큼, 유다 민족은 이제 바벧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곧바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순종하는 한 방면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침략하는 바벧
론에 항복하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하나님의 백성
된 신자들이 죄(罪)로 인하여 환난(患難)을 당하는 때도 있다. 그 때에 그는 환난을
받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환난을 면하는 상책(上策)은 아니
다. 그 이유는, 그 환난은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는, 도리어 그 환난 앞에
서 항복하는 식으로 회개하며 그것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
이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원망하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항
하여 싸우는 죄악이다.
렘 21: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고 화
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벧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 ). 이것은 하나님
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결심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제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은 우연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이것을 실행하실 것이니, 유다인들의 항전(抗
戰)은 결국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그 때에 유대인들은 바벧론으
로 더불어 싸우지 말고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바벧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유대
인들에게는 하나의 수치 꺼리와 같이 생각되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원수에
게 항복하는 일도 개의치 않아야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성도(聖徒)들의 유익을 위
해서는 원수를 일으키시는 일도 있으니,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그 원수
에게 굴종하는 일까지라도 감심(甘心)으로 행해야할 경우가 있다.
렘 21:11,12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
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
가 없으리라. - 이 말씀은, 유다 왕가(王家) 곧, 많은 집권자(執權者)들을 상대로 주
신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이란 문구가 두 차례나 나왔으니(11
절 하반, 12절 상반), 이것은 역설체(力說體)이다. 집권자들이 비록 자신들을 높이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는 낮아져야 된다. "다윗의 집"(*
)이란 말은, 그 집권자들의 위치(位置)가 얼마나 신성(神聖)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의 집"은 다윗과 같은 의(義)로운 임금이 세운 기반(基盤)에서 통치(통치)를 행
할 자이다. 이런 지위에서 불의(不義)를 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모순된 일이다. 그러므
로 예레미야는, 여기서 "다윗의 집"이라는 말을 내세우면서 저 집권자들에게 의로운
정치(政治)를 권고(勸告)한다.
"아침마다"(* =라뽀켈). 이 말은 "아침에"란 뜻이니, 특별히 재판장이 재판
집무를 성실히 해야 될 것을 보여준다. 재판권을 맡아서 묵혀 두는 것은 업무(業務)를
태만히 하는 불의한 일이다. 국가를 바로 다스리는 자들은, 백성의 일을 신속히 또는
부지런히 취급하여 준다. 그리고 "공평히 판별함"은, 그 아랫말로 설명되어 있으니,
곧,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줌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
람들에게 공의(公義)를 행함이다. 저렇게 억울함을 당한 자를 돌아보는 집권자는, 모
든 다른 사람에게도 공의를 행하게 되어진다. 탈취 당한 자는 약자(弱者)로되, 사람들
은 흔히 그런 자를 돌보아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한 자에게 아부(阿附)하
기 좋아하며, 혹은 세력 있는 자들의 뇌물을 받고 그들의 일을 성실(誠實)되이 보아
준다. 그러나 약자를 잘 돌보는 자는, 이와 같은 그릇된 행동에 참예하지 않는다. 그
러므로 예레미야는, 공의로운 재판을 가르치기 위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
서 건지라"라는 한 마디로 표현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깨닫는 것이 있다.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은, 단지 종교
적 의식(宗敎的儀式)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의(義)를 행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그 때에 유대인들은 언필칭(言必稱)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며, 성전에서 모든 제사 행위(祭祀行爲)를 실행하는데만 전력(全力)하였다. 그들의
큰 잘못은, 공의를 행하며 하지 않고 그런 제사 행위로써만 스스로 위로 받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원치 아니하시고 자비를 기뻐하신다(마 9:13). 하나님의 이 뜻을
받을어 사람들 상대로 옳게 행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렘 21:13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
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 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
"골짜기와 평원 반석"은 작은 산들로 골짜기를 이루고 또는 평원(平原)을 가지고 있는
유대 땅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 땅을 지리적(地理的)으로 난공 불락(難攻不落)의 반
석 같은 땅으로 알았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지리를 믿고 교만하여졌다. 그들은, 신
약 시대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처지인데, 저렇게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무관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를 의
지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우상 숭배(偶像崇拜)와 같이 미워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말(節末)에 심한 말씀을 하셨으니, 곧, "나는 네 대적이라"라고 하신 말씀이다.
렘 21: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그 행위(行爲)대로 벌(罰)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의 벌 받을 행위는, 윗절에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이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뢰하는 불신앙(不信仰)이었다.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四境, 四方)을 사르리라" 함은, 그가 장차 유다에 바벧론 군대를 보내시어 유다를 침략케 하실 사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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