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예레미야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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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17:1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
거늘. - "금강석 끝 철필로"란 히브리어(*                                )는,  "철
필로 금강석 끝으로"라고 해야 정역(正譯)이다. "죄"가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었
다는 것은, 그것이 지울 수 없이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범죄자 그  자신도
자기 죄를 부인할 수 없도록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것이,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따라서, (1)
그들의 "마음"속 깊이 양심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고, (2) 그들의 "제단 뿔"도 그
들을 정죄하며 또 심판하고 있다. "제단 뿔"은 죄인에게 대하여 사죄를  선고(宣告)하
는 법이지만(출 27:2, 29:12, 30:1-3, 10), 그것이 사람을 정죄하며 또 심판하도록 된
것은, 그 사람이 끝까지 회개치 않기 때문이다(계 9;14, 14:18, 16, 17). 사람이 죄를
끝까지 고치지 못하면 이렇게 위험한 지경에 떨어진다. 곧, 자기 마음 속에서  나오는
정죄 선언 때문에 기쁨이 전연 없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제단까지도 그에게 대하여 정
죄와 심판을 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하지 않는 강퍅한 자는, 자기의 지은 죄악
을 눌러 두므로 무사(無事)할 것 같이 생각해도, 실상은 그런 강퍅 때문에 영혼이  죄
악에게 눌리워 못살게 되는 어두움이다. 어떤 강도가 붙잡히우지 않기 위하여  피하여
다니는 동안에 체험한 바를 고하는 말이, "죄 짓고는 못살겠더라"라고 한 것이다.
   사람이 불행히 범죄한 뒤에는, 곧 회개하므로 죄를 붙잡아 처분해 버려야 된다. 그
리하지 않으면, 그 자신이 그 범한 죄에 붙잡히운다(곧, 그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이 그를 따라잡는다).

 

  렘 17:2

  그들의 자녀가 높은 메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 이 말씀은, "그들"(이스라엘 백성)이 "아세라"(*        ) 우상(바알 神의  女神像)
을 섬겼음으로, 그들의 자손들도 그 우상을 섬기게 된다는 뜻이다(Calvin).  부모들이
짓는 죄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린 자녀들을 물드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범죄는 자기
들 자신도 죽이고 자녀들도 죽임이다. 그것은 무지(無知)요 또 잔인(殘忍)이다.

 

  렘 17:3,4

  여기서는, 예루살렘이 그 백성의 죄로 인하여 당하게 될 바벧론의  침략에  대하여
진술한다. "들에 있는 나의 산"이란 말은, 성전산(聖殿山)이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킨
다.
   3, 4절에 기록된 말씀들은, 죄악이 가져오는 벌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임을 잘 드러낸다. 곧, (1) 그들이, "재산"과 "보물"과 "산당들"을 하나님 대신으로
존중히 하는 것인 만큼, 하나님께서 그것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2) 그들이 하나
님에게서 받은 "기업"(가나안 땅)을 우상 숭배의 여러가지 행위로 더럽혔음으로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이 이상 더 소유하지 못하게("손을 떼게")하시며, (3)  그들이
그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음으로 그의 "노"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원수 바벧론을 섬기게 하리라고 하신다.
   5-8. 이 부분에서는, 신자와 불신자의 받는 결국이 무엇임을 밝혀 준다.

 

  렘 17:5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
를 받을 것이다. - 사람이 사람을 믿는 그 비례로 여호와를 떠나는 법이다.  "혈육"이
란 말(*      =빠사르)은, 영(靈)과 반대로(사 31:3) 인간(또는 땅에 속한 것들)의 헛
되고 없어질 것을 가리킨다. 욥 10:3; 시 56:5 참조. "권력을 삼"는다 함은, 도움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유대 민족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을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에
는 앗수르, 어떤 때에는 애굽을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그들을 경고하여 말하
기를,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馬)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
라"라고 하였다(사 31:3).
   신자가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큰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
기 "사람을 믿는다"(*               =이브타크 빠아담)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  대신
믿는 정도로 의지함을 이름이다. 그 이유는, 우리 본문에, "사람을 믿으며"라고  말할
뿐 아니라, "마음(*    =생명과 사랑이 움직이는 인격의 깊은  자리)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 그 사람"이라고 한 까닭이다.
   (1) 이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마음(*    =레브)에 있어서는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믿는다. 그의 인격의 가장 따거운 속에서는 하나님을  문제시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외식(外飾)하는 종교가의 태도이다. 하나님은 거짓을  가장  미워하신
다.
   (2) 이 사람의 마음 태도는, 실상 하나님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오히려 더 못하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악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하
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구원 문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띠끌, 흙)
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진리(非眞理)를 극도로 높이고  진
리는 극도로 낮추는 극단적인 죄악이며, 피조물을 창조주와 바꾸어  섬기는  극단적인
악행이다.
   (3) 더욱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택하시고 여호와 하나님만 믿도록  구별시키셨
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은 것은, 더욱  큰  죄악이
다. 이것은 사랑을 발로 차는 악행이다. 사랑으로 기른 자식이 그 부모를 배반하는 죄
는,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을 주는 것이다.
   (4) 신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단 하나의  교량(橋梁)인데,  그것이
없는 자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빛이시고,  구원이시고,
생명이신데, 그에게서 끊어진 자는 밑 없는 어두운 구멍(무저갱)으로  영원히  떨어질
뿐이다. 주님을 믿는 것만이 생명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주님은 땅에  계
실 때에 병자들더러, "네 믿음 대로 되라"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고(마  8:13,  9:2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도 종종 말씀하셨다(눅 7:50, 17:19).

 

  렘 17: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 "사막의 떨기나무"(*         =아르
아르)는 열매가 없다. 그것은 무용(無用)한 나무이다. 그것은 생명도 있고,  뿌리까지
있으면서도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나는, 미국에서 큰 사막 지방을  통
과한 적이 있다. 거기는 사람이 쓰지 못할 초목(草木)만 있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1)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함. 곧, 소망이 없고,  (2)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함 곧, 쓸쓸하여 위로와 기쁨이 없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소망이 없다. 시 39:5-7에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라(셀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
께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주님을 소유한 신자는 "이제 죽어도 좋다"는  만족이  있으
나, 세상 것을 많이 소유한 자는 오래 살수록 이 세상에 더 살고  싶어서  불만족으로
허덕인다. 죄를 지었을지라도 이제 그리스도를 믿으면 소망이 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소망 없는 고독(孤獨)을 영원한 분깃으로 가진다.  하나님을
모신 자에게는 고독도 유익하나, 하나님을 떠난 자의 고독은 위로와 기쁨이 없는 무저
갱(無底坑)이다. 소망이 없고 기쁨이 없는 생(生)은 죽음만도 못한 것이다.  이는  마
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아서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
고, 죽고 싶으되 죽음이 저희를 피함과 같은 생(生)일 것이다(계 9:5, 6).

 

  렘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
본절과 다음절은, 시 1:1-3의 말씀과 같은 내용으로 가르친다. 축복 받을  자에  대한
이 말씀은, 바로 위의 저주 받을 자에 대한 말씀과 댓구(對句)가 된다(Artur  Weiser,
Der  Fluchspruch  V.5  und  der  Segespruch  V.7  bilden  ein  zusammengeh riges
Paar.-Der Prophet Jeremiah, p. 145).
   여기 "여호와를 의지하며"라는 말(*                )이 나온 뒤에 또 다시  "여호
와를 의뢰하는"이란 말(*                      )이 나오면서, 같은 뜻이 중복된 이유
가 무엇일까? 그것은 역설체(力說體)이다. 곧, "믿되 참으로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이
다. 사람 중에는 주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참으로 의지하지 않는 일이 많다.

 

  렘 17:9-11

  사람은, 자기의 마음이 거짓됨을 알지 못하는 것인 만큼, 언제나  스스로  속는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사람의 마음의 거짓된 내막을 아시고 바로 판단하시며, 따라서  바
로 인도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며 그에게 순종해야 된
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믿고 마음대로 하는 일은, 모두 다 실패한다. 그것은  자고
새가 낳지 않은 알을 품음과 같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여기
"마음"(*    =레브)이란 말은, 누구의 마음이든지 사람들의 마음 전체를 가리킨다. 사
람의 마음의 거짓된 증표들 가운데 가장 현저한 것은, 그것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
는 선하다"하는 생각을 가짐이다(Laetsch). 그러므로 어거스틴(Augustine)은 기도하기
를, "나를 선한 사람에게서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했으니, 곧, "나"를 스스로 선한 줄
생각하는 "나 자신"의 마음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구한 기도이다. "심히 부패"하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아누쉬(*     )니 사람의 힘으로는 "치료될 수 없다"(incurable)
라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이 이런 줄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말
하기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라고 하였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
니.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만 사람들의 깊은 속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그
분만이 저희의 마음을 고치실 수 있음을 암시한다(히 11:20, 12:3). 잠 4:23에 말하기
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
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을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께 맡겨  지키시게  하자(빌
4:6, 7).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 이 말씀은, 여호야김왕이 그의 "중년", 곧,
36세에 죽은 사실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는 학자가 있다(Artur Weiser,  An  Jojakim,
der mit 36 Jahren in der "in der  Mitte  seines  Lebens"  starb,  hat  sich  die
Wahrheit dieses  Prophetenwortes  vom  Tor  und  dem  Tod  erf llt.-Der  Prophet
Jeremia, p. 146).
   "불의로 치부하는"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1) 남의  것
을 노골적으로 빼앗음. 하나님께 마땅히 바칠 것을 바치지 않는 것도 불의한 행위이다
(말 3:8). (2) 부정직한 사업으로 돈을 모음. 잠 21:6에 말하기를, "속이는 말로 재물
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하였고,  잠  13:11에
는,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하였고,  잠
20:21에는,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하였고,  잠
28:22에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
은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자고새"(*       =코레)는  오늘날  팔레스틴(Palestine)에  많이  산다고  한다
(Delitzsch). 이 비유의 욧점은, 자고새가 다른 새의 알을 품어서 깔지라도 필경은 그
새끼들이 다 달아나고 마는 것과 같이, 불의로 모은 재산은 마침내  없어지고  그것을
모으느라고 노력한 자는 어리석은 자로 드러날 뿐이라는 것이다. 선지자의 이 말씀은,
재물을 불의하게 모으는 것을 예거(例擧)하여 모든 다른 불의한 행동(거짓된 마음으로
행한 것)들도 모두 다 이와 같을 것을 가르친다.

 

  렘 17:12,13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가 유대 나라에  있으여,  그가(여호와께
서) 이스라엘의 소망이신데도 불구하고 외식(外飾)으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노라고 하는
유대인들을 그가 내어 던질 수 있다고 한다.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 이 문구의  히브리
어(*                                                     )는, "원시부터 영화롭고
높은 보좌는 우리의 성소의 처소이며"라고 번역함이 합당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의 영화로운 계시의 장소로서 예루살렘을 택하셨다는 뜻이다. 그만큼, 유다 민족은 하
나님의 특이(特異)한 은총을 입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외형으로는 여호와를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를 내버렸기 때문
에,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내어 버리신다. 고래(古來)의 특이한 계시 은총(啓示恩寵)을
입은 민족이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외식을 불문(不問)에 붙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외식의 죄악 때문에, 그는 그들을 서슴치 않고 버리신다.
   "수치를 당함"(*      =예보슈)은 실패를 당한다는 뜻이고, "흙에 기록이 됨"(*   
              =빠아레츠 익카테부)은, 그들이 하늘의 기업(基業)을 버린 것인만큼(13
절 끝), 땅에 속할 자(구원 받지 못할 자)로 판정을 내리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생명
책에 이름을 기록함과는 정반대의 사실이다(Delitzsch). 생수의 근원(*            ).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비유한 것은, 8 절에도 암시되어 있다.  그는,  인생들의
갈증(전 3:11)을 참되이 만족시켜 주시는 "근원"이시다. 2:13 참조.

 

  렘 17: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만 홀로  구
원자이심을 보여준다. 그를 가리켜 "나의 찬송"(*         =테힐라디)이라고 함은, 모
든 찬송은 그에게만 드려야 될 것이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참된 구원
행위는 하나님께서 홀로 하시기 때문이다. 과연 이 사실을 그 아랫 말씀들이 강조하였
으니, 곧,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라는 말씀도, 우리를 영적으로
치료하여 주실 이가 여호와 뿐이라는 뜻이고,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
을 얻으리이다"라는 말씀도 역시 그 뜻이다. 여기 "그리하시면"이라는  말(*  =웨)이,
하나님의 단독 사역주의(單獨使役主義) 구원 운동을 효력발생(效力發生)의 유일(唯一)
한 조건으로 암시하고 있다.

 

  렘 17:15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기서 자기가 당하고 있는 박해 중 가장 아프게 여기는  조롱
의 말 한 마디를 내어놓는다. 그것은, 그의 육신에 가해(加害)함보다 더 아픈  것이었
겠다. 그 이유는, 그것이 여호와의 영광을 무시하는 조롱이기 때문이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 (*                   =아예 데바르 예호와)라는
조롱이니, 그것은, 그 현재에 말씀하시고 계시는 여호와의 권위(權威)와 선지자의  권
위를 멸시하는 악독한 말이다.

 

  렘 17:16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기의 선지직의 정당성을 먼저 진술한다. 곧, 그가 선
지자 된 것은 그의 탐심에서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직분으로 몰아  넣으심
에 순종함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 이 문구의 히브리 원
문(*                                 )은, "나는 목자의 직분 맡는  데서  물러서지
않고 주를 따라 순종하였나이다"라고 의역(意譯)할 수 있다. 라에취(Laetsch)도 이 문
구를 그렇게 본다.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 그가, 선지자의  직분
을 실행하는 일생은 고통과 핍박을 많이 당할 "재앙의 날"인 줄 알았는데, 그것을  솔
선적으로 탐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탐심으로 그 직분을 취한 것이 아니고  하
나님에게 순종한 것 뿐이다.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 이것은, 그가 주님의 주시는 말씀
을 그대로 모두 다 전했다는 뜻이다. 그는, 선지자의 직분을 받는데도 하나님께  순종
한 것 뿐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무 실행에 있어서도 어디까지나 순종  일
관(順從一貫)하여 다 전했다.

 

  렘 17:19-22

   이 부분에는, 유대인들에게 안식일(安息日)을 거룩히 지키라고 가르치신 말씀이 기
록되어 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이 부분의 권면이 예레미야의 사상에서 나왔을 수 없
다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종교의 의식적 부분(儀式的部分)을  고
조하지 않은 선지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부분의 말씀이 포로 후 시대의 사상 경향
(思想傾向)과 부합한다고 한다(Kuenen, Cornill). 둠(Duhm)도, 이 부분은 본서의 순정
부분(純正部分)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하였고(Das  St ck  is  l ngst  als  unecht
erkannt.-Das Buch Jeremia, p. 149), 바이제르(Artur Weiser)도 말하기를, "이  부분
은 그 사상 내용과 형태로 보아 후대(예레미야의 後代)의 것으로 느껴진다"라고  하였
다(Das St ck...wird meist wegen seiner  From  und  seines  Inhalts  als  sp tere
fremde Zutat angesehen.-Der Prophet jeremia, p. 149).
   그러나 위의 비평가들의 말은 옳지 않다. 예레미야가 종교의 영적  요소(靈的要素)
를 중요시 하지만, 그 의식적 부분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7:4 말씀도  의식적  요소를
무시하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 때에 유대인들이 진실히 여호와를 신뢰(信賴)하지는
않고 성전(이것은 의식적 요소임)만 의뢰하는 잘못을 반대함이다. 예레미야가  종교에
있어서 치우치는 율법주의는 반대하되, 율법을 정당하게 지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장
하였다(Laetsch, Bible Commentary, Jeremiah, p. 167).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21절)은, 그 때 유대인
들 중에는 안식일에도 다른 날과 같이 업무(業務) 관계로 물건들을 운반하는 일이  있
었기 때문이다(Laetsch). (1) 선지자는, 그들의 열조들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아니한 사실을 전감(前鑑)으로 삼아서, 당시 사람들을 경고하기도 한다(23절).  전대(前代)에 잘못한 것을 회고(回顧)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되풀이 할 마음이 적어지는 법이다. (2) 그 때 유다 민족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므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종교  행사들을  평안한  가운데서  거행케  될  것이라고  한다(24-26). 신 28:1-14 참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기를 계속하면,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파멸시키시리라고 경고한다(27절).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다른 계명들을  지킴보다 쉬운 일이다(Calvin). 그 이유는, 그것은 그날에 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 민족이 이런 쉬운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다른 계명들 곧, 이 계명보다 어려운 계명들을 어떻게 지켰으랴? 쉽게 지킬 수 있는 계명을 어기고도 끝까지 회개치  않는  것은, 그 백성이 다른 많은 범죄도 회개치 않는 증표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가 파멸되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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