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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9:1,2

   이 두 귀절에 있어서 선지자가, 유대 민족이 당할 환난을 생각하고 슬픔을 금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그들의 심히 악한 사실을 인하여 탄식한다. 멸망의  고통
을 당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그만한 죄악이 동반되고 있다. 비록 많이  범죄한  자라도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것은 기뻐할 일이요 행복한 일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대 민족이 당할 전화(戰禍)를 생각하고 슬픔이 북바쳐  실컷
울기를 원하는 의미에서, "머리는 물이 되고", "눈은 눈물 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민족의 죄악을 생각할 대 견딜 수 없어서 그들의 사회를  떠나
광야로 가기를 원할 정도였다. 그들의 죄악은 특별히 불신실(不信實)로 진술된다. 2절
하반에,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라고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에게 대한 불신실을 비유
하는 말씀이다. "패역한 자의 무리"(*                    )라고 했으니, 이는,  사람
에게 대하여 불신실한 자들의 회합(會合)이라는 뜻이다(Delitzsch). 언제든지  타락한
시대는 거짓된 것으로 팽창하여지는 법이다(시 12:1-4). 아래 3-6절까지 계속하여  그
들의 불신실에 대하여 진술한다.

 

  렘 9:3-6

  이 부분에, "거짓"(*         =쉐케르), "진실하지 아니"함(*                   =
로 레에무나), "궤홀"(*            =미르마), 또 이같은 말이 여덟 차례 나온다.  그
때 유대인들에게 많은 다른 죄악도 있었지만, "거짓"은 그들의 모든  죄악의  원천(源
泉)이며, 방법이며, 결과였으니 만큼, 여기서 특별히 그것을 주로 진술한다. "활을 당
김 같이 그 혀를 놀려"라 함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되 조금도 서슴치  않고  강력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들이...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란 말(*                    
            =로 레에무나 까베루)은, 실상, "그들이 진리를 위하여 용감하지  아니하
고"라고 번역해야 된다(Calvin, King James Version). 타락한 인생들은, 악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데는 담대하고 오래 참으면서도, 진리를 위하여는 조금도 힘쓰지 않는다.
   진리를 위하여 용감한 자는, (1) 진리를 고백하는데 용감하며, (2) 진리를  권장하
는데 용감하며, (3) 진리를 실행하는데 용감하다. 물론 이 용감은 혈기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온유함과 오래 참음과 견디어 나가는 것으로 성립되나니 그것은 성령님의  인
도와 감화의 은혜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와 반대로 죄악을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그러므로 3절 하반에 말하기를, "악에서 악으로 진행"한다고  하
였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는 흑암으로 떨어진 것이다. "온전히  속이
며"라는 말(*                     = 야곱 야곱)은, 아주 힘있게 남을 속여  넘어뜨림
을 의미한다.
   "다니며 비방함"(*                     )은, 거짓말 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하
고, "악을 행하기에 수고"한다(*                   )함은, 악을 행하기에 너무  열중
하다가 피곤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요
3:19, 20 참조.

 

  렘 9:7-9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극단적인 타락에 대처(對處)하실 것을 말씀한다.
대처 방법은 그들을 징벌하심이니, 곧,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란 말씀이 그 뜻이
다. 그가 그들을 그렇게 처분하실 이유로써는, 그들이 "거짓"됨을 인함이라고  여기서
재설(再設)한다(8절). 그는, 그들의 극도로 거짓된 것을 벌하는 것이 당연함에 대해서
도 말씀하신다(9절). 하나님에게서 벌을 받은 자들이 자기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모르
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인간의 죄악을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
님 앞에서는 만번 당연하다.

 

  렘 9:10,11

  인간의 죄악 때문에 인간 자신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까지도 비참스러워지는 법이다. 선지자는 이 일을 생각해서도 슬퍼한다.

 

  렘 9:12-14

  여기서는, "이 일" 곧, 장차 유대 민족의 받을 환난의 원인(*        =조드)이  무
엇임을 문답식으로 밝힌다. 지혜 있는 자가 아니면 이 원을 깨달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지혜 있는 자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공포하는  자이다(12절).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는 것은 사실상 무지(無知)이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원인이 되어 유대인들이 환난을 받을 것인가? 그것이  여기서
문답식으로 밝혀졌으니, 곧,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청종치 아니"함과, "바
알들을 좇아"간 그 죄악이 환난을 초래(招來)한다는 것이다.
   12절의 "타서"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니체타(*          )니 70인역(LXX)과  윌겟
역(Vulgate)에 의하여 그렇게 번역된 것이다. 그러나 탈굼(Targum)과 수리아역과 아라
비아역은 "황폐하여져서"라고 번역하였다.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
음이라. "바알"(*            )은, 가나안과 빠니게의 미신에서 온  남신(男神)으로서
풍년이 들게 하는 신이라고 하며, 흔히 그 여신(女神) 아스다롯과 함께  숭배되어  왔
다. 그리고 이 종파(宗派)는 사람들이 음행할 수 있는 제도까지  가지고  있었다(왕상
14:24).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선조 때부터 이 미신(迷信)을 받아 들인  일이  있었
다. 사사 시대엔 팔레스틴에 바알 신당이 있었고(삿 2:13, 6:28-32),  아합  시대에는
그의 아내 이세벧로 말미암아 이 미신이 성행되었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  제
사장들을 죽이기가지 했고(왕상 16:31,32, 18:17-40), 그 후 다시 이  미신이  성행된
것을 예후가 그 종파를 파괴시켰다(왕하 10:23:4,5;  대하  17:3,21:6,22:2,28:2;  호
2:8). 이렇게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바알 종파를 가진 때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일
이 비일비재(非一非再)였다.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은, 선조 때부터 해독을 끼치는
이 종파를 또 다시 좇아 갔으니 그 죄책(罪責)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조상때부터
그렇게 해독을 끼쳐온 종파를, 후손들로서 어떻게 또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
로 이해할 수 없는 깊은 타락이다.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이란 말은, "그 열조가
저희에게(유대인들에게)가르친"이라고 번역해야
된다.

 

  렘 9:15,16

  여기서는, 회개치 않는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크게 벌하실 것을 말한다. "내가 말
하노라"란 문구에 있어서, "내가"라는 말이 히브리 원문에는 없다. "쑥을 먹으며 독한
물을 마시"운다 함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내리실  것을  비유한다.
애 3:19; 렘 23:15 참조.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함은, 베벧론으로 잡혀 간 유대닝들을 칼로 진멸하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바벧론 침략 시기에 바벧론 군대가 그 모든 도망하는  자들을
어디서나 진멸하기 위하여 따라감을 의미한다.

 

  렘 9:17-19

  이 부분에서는 장차 유대 민족이 당할 패망 때문에, 그들이 그 사실을 내어다 보고
반응(反應)이 있어야 할 것을 재촉한다. 그러므로 전 7:14에 말하기를, "곤고한  날에
는 생각하라"고 하였다.
   우리 본문에 두 가지로 권면하였으니, (1) "너희는 잘 생각하"라(*              
= 히드뽀네누)고 함(17절 상반). (2) 비애를 느끼도록 하라고 함. 그 방법은, "지혜로
운 부녀"(마땅히 울어야 될 대에 쉽게 우는 것은 지혜인 고로 그 부녀를 "지혜로운 부
녀"라고 함)들의 울음을 통하여 모든 다른 사람들을 울음 가운데로 인도함이다.  이것
이 18절이 가르친 말씀이니, 곧,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
게 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마땅히 울어야 될 때에는 울어야 하나니, 우는 것은  실상
심령이 부드러워진 증표이다. 다윗은 울음을 귀히 여기는 의미에서  말하기를,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하였다(시 56:8). 누구든지 자기에서 있어야 할 눈물
이 없을 때엔 용이하게 울 수 있는 자들의 울음을 통하여서라도 울음 가운데로 인도함
이 되어야 한다. 우리 본문은 특별히 이 방면에 있어서 부녀들을 지도자로  내세운다.
그 때에 유대의 남자들은, 장차 전쟁의 환난이 임하리라는, 선지자의 눈물 겨운  경고
(1절)를 들으면서도 울지 못하는 병통에 걸려 있었다.
   사람이 마땅히 울어야 할 때에 울지 못하는 것은, (1) 교만한 까닭이며, (2)  강퍅
한 까닭이며, (3) 자기 밖에 다른 것은 모르는 이기주의(利己主義)의  철면피(鐵面皮)
때문이다.

 

  렘 9:20

  본절은 17,18절에 있는 뜻을 역설하는 의미에서 재설(再設)함이다. 곧, 이스라엘에
게 닥아오는 비극을 생각하는 의미에서, 그 백성은 마땅히 반성해야 될 터인데,  그들
은 너무 강퍅하기 때문에 비교적 심령이 부드러운 "부녀들"더러 슬픔의 본을 보이라고
한다. 마땅히 슬퍼해야 할 대에 슬퍼하는 자들은 복은 있다(눅 6:21). 슬러해야 될 대
에 마음이 굳어져서 녹아지지 않는 자의 앞에는 멸망 밖에 없다. 그런  자를  가리켜,
사 48:4에 말하기를,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고 하였다. 슥 7:12 참조. 이런 경우에, 여자들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그들이
용이하게 울 수 있고 남들까지 우는 자리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렘 9:21,22

  이 두 귀절은, 위에 말한 슬픔의 이유를 또 다시 말한다. 21절에 "대저"라는 말(*
     =키)은 이유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슬픔의 이유는 사망(死亡)의 침입(侵入)
이다.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유대인들은 환난 때에 창문을 든든히 잠그고  있
으면 안전한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문제시 하시지 않고, 환난을  가
지고 그리로 들어오실 수 있나니, 그들이 피할 수 없다. 우리 중실에  들어오며.  곧,
든든히 방위되어 있는 "궁실"에도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때에 사망은, 그들
의 어린 "자녀"도 사정 없이 죽이며, 힘 있는 "청년들"(*               =빠쿠림=가장
强壯한 자들)도 멸절시킨다. 그만큼 무서운 환난이 온다는 것이다. "시체가 분토 같이
들에 떨어"진다 함은, 그들의 시체(屍體)가 천(賤)하게 또는 들에 많이  넘어져  있을
것을 가리키고,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베어 놓은  곡식  무데
기)같이 되리라" 함은, 그들의 시체가 내어 버림이 되어 아무도 그것을 주의해 보지도
않을 것을 가리킨다.

 

  렘 9:23

  본절과 다음절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교만을  지적하여  회개하라고  하심이다.
곧, 그들이 하나님 밖에 다른 것을 의지하며 자랑하는 죄악에서 떠나기를, 그는  요구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도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렘 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당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9:25,26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장차 바벧론 침략군을 보내어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국가들도 징벌하실 것을 또 다시 말씀한다.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                 )은, 아라비아 족속들을  가리킨다고 하였다(Delitz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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