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2:1
나는 시온의 고으이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 "시온"( )은,
물론 예루살렘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그 때의 유대 민족을 표상(表
象)하나, 장차 올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도 가리킨다. "공의"란 말은, 우대인들을
바벧론에서 구원하실 주님의 의로우신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 교회가
받을 공의로운 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 값으로
속죄의 구원을 받음은, 공의(公醫)로운 것이다(롬 3:26).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실 것을 여기 말
씀한다. 과연 그는 땅에 계실 때에 자바식 잡수실 겨를도 없으실 정도로 그 구원하실
백서응마 위하여 힘쓰셨다. 그가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도 한가하신 것
이 아니고 도리어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하시는 일의 계속이시며 승리자로서의 권세
를 가지시고 온천하에 능력 있는 사역을 펴시는 사역자의 좌정(坐定)이신 것이다. 그
의 능력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일한다. 그가, 땅에 있는 우리에게 어떤 사
명을 주시든지 그 배후에 그의 활동이 없는 것은 없다. 이러헥 유다 지파의 사자(메시
야를 비유함)는 쉬지 않고 일하신다.
사 62:2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 이 말씀은, 장차 올 신약 시대의 교회가 얼마나
눈부시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일에 대하여 보여준다. "네 공의"라는 말에 대하여
는, 앞절에 있는 "시온의 공의" 라는 말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체험하므로 이 세상의 권세 있는 왕들도 양심적으로는 그것을
칭송(稱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역사상에 많은 군왕들이 복음을 믿은 것이 이 말
씀의 성취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보다도 주님 재림시에 받을 영광에 대하여는 그 때
의 세상 왕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 이름"이란 말(
=쉠 카다쉬)은, 미카엘리스(Michaelis)에 의하면, 유다의 무너가 성읍들을, 바벧론에
서 돌아올 유대인들이 재건하고 부르게 될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시대
의 신자들이 장차 하나님에게서 받을 이름이다. 신자들은 양심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한 옛사람이 아니고 새사람인 것 만큼, 하나님의 새로운 판정을 받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부터 되는 일이겠지만 내세(來世)에 들어가서는 그 판정이 완결(完結)된
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영광에 참예할 자는, 이 세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
암아 인격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자들이다.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
여기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아테레드 티
프에레드) 또는 "왕곤"( =체니프)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힘껏
높이시는 사랑의 칭호이다. "왕관"은 왕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는 것인데, 신자들이
하나님의 왕관이라면 그 책임이 중대한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
하여 두려훠 떨어야 한다.
사 62:4,5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따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
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쁑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 이 말씀
은, 비유에 의하여 참다운 기독 교회의 복된 처지를 보여준다. 참다운 교회의 복음 운
동은, 죄악으로 인하여 황폐하여진 인류와 바다유를 새롭게 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완성을 본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으며,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
라 내가 만물을 새로벡 하노라"고 하신다고 하였다(계 22:1,5).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
리켜 "헵시바"( )라고 하시리라고 하니, 곧,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밴어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무조건적 사랑)
에 의하여 되는 것이고 사람의 공로나 의(義)에 의한 겋이 아님을 봉주낟. 호 2:19 참
조.
또 "네 땅"(교회)을 쁑라( )라고 하실 것이라 하니 곧, "결혼한 여자"라는 뜻이
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할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사 최후의 사랑
을 기울여 세우셨으니 만큼, 신부(新婦)로 비유도어 있다(엡 5:25-30; 고후 11:2). 그
러니 만큼, 신약 교회는 참되이 복음을 가지는 한에 있어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게 되며 하나님께서느 그 이상 기뻐하실 것이 없게 된다. 물론 여기 관설된
대로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결혼으로 비유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의미이다. 여기 "네 아들들"이라는 말( =빠나이크)을, 로우드
(Lowth)라는 학자는 건축자( =뽀나이크)라는 뜻으로 읽는다. 그렇게 한다면,
그 뜻은, 황폐된 예루살렘(바벧론으로 말미암아 황폐된)의 재건자 곧,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폐허 되었던 예루살렘 재거능마 가지고 먼 장래에 임할 신약 교회
의 복음 운동을 비유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네 아들들"이란 뜻으로 읽어도 뜻은 잘
통한다. 곧, 예루살렘의 아들들(유대민족)이 거기 돌아와서 거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부부(夫婦)의 관계로 비유한 것은, 신구약에 많이 있다. 이
렇게 비유된 목적은, (1)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을 가장 사랑하신다는 것, (2) 영원
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 (3) 참된 교회와 하나님은 연합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
께 시업을 누린다는 것, (4) 교회는 주님을 위하여 순결하게 정절을 지켜야 된다는
것, (5) 교회는 주님을 섬기는 것을 생명시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사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
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 "성벽 위
에 파숫군"은, 게세니우스(Gesenius)에 의하면, 예루살렘 재건을 위하여 기도하는 경
건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일설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비유한다고 하니, 일고(一考)를 요한다.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라는 말( )은, 하나님
으로 하여금 그 백성을 잊지 안흥시도록 기억시키는 자들 곧, 기도하는 자들을 가리킨
다(Alexander).
사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
시게 하라. - "예루살렘을 세워"라는 말은, 바벧론에게 훼파되었던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을 염두에두었으나, 멀리 신약 교회의 완성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 하나님의 교회
가 완성될 때에 그에게 찬송이 돌아간다. 성도들은 이것을 목표로 하고 기도를 쉬지
아니하여야 한다. 그들이 기도를 쉬지 않을 때에 하나님도 쉬실 사이가 없으시다. "그
(하나님)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말( =알 티테누 도미 로)이 그
뜻이다. 하나님이 "쉬지 못하시"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살전 5:17)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보니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신구약을 통한
기독교의 진리이다. 사물에도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까지 생각하였다(삼상
12: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전연 부패성이 없으시되 기도하시기를 쉬지 않
으셨다. 그는 늘 하나님과 교통하시는 자리에 계셨고, 또한 특별한 기도를 하시기 위
하여 고요한 장소에 가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눅 6:12 참조.
사 62:8,9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
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가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구둔 자가 그것
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 여기 이른바,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
로 맹세하"신다 함은, 이 아래 하실 말씀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참인데 그가 맹세까지 하심은 , 신앙하기 어려워하는 부패한 인생
들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함이다(히 6:16-18). 하나님은 맹세까지 아니하셔도 그 진
실성은 여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그런데 그는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맹세까지 하시면서 진리를 역설(力說)하시는 일이 종종 있다.
그가 이렇게 역설하시는 내용은 이러하니 곧, 앞으로는 유대인들의 곡식을 원수들이
약턍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까지 유대 나라는, 외국 군대의 침해로 인하여
심었던 곡식을 먹지 못하고 빼앗기운 일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확언(確言)하신다. 이것은 여자적(如字的)으로 해석할
말씀이 아니고, 비유로 보아야 한다. 곧,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그 어떠한 환난을 당할
찌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교회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음
주의 구너세5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셨고(마 16:18), 그 뿐 아니라 교회는 환난을 통하
여 도리어 견고하여지는 법이다. 롬 5:3,4에 말씀하기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 12:6을 보면, 하나님의 교회가 광야와 같은 거
치른 환경에서 도리어 양육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 말씀(사 62:8,9)을 비유로 보지 않고 여자적으로 풀면 유대인의 역사에 맞지 않
는다. 유대인들이 바벧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뒤의 역사도 외국 군대의 침략을 받은
일이 많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여자적(如字的)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예언이란것은,
비유적 표현을 많이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못 해석하기 쉬운 것이다. 하나님 말씀
은 깨닫기 어려운 방면도 있기 때문에 보배로운 것이다.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과 사랑
이 없는 자들로서는 깨달을 수 없는 책이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먼저 믿고 그 뒤
에 깨닫는 것이다. 멸망할 자들이 믿음과 사랑이 없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자기들의
어두운 생각으로 그 말씀이 모순되다고 단정하는 자리에까지 떨어진다(벧후 3가
16,17).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되며 그 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맞도록 풀어야 된다. 얼핏
생각하면, 이것은 성경을 옹호하기 위한 무리한 해석 방법이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우
리는 성경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릇됨이 없는 줄을 믿는 신앙으로야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다루게 된다고 생각하나디. 이렇게 성경을 다룰 때에 우리는 그 한 부
분을 다른 부분에 맞도록 해석하게 된다.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순조롭게 그 심은 포도
(포도주)를 거두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성소에서 감사제를 드리며 먹게
된다는 것자리다. 이것도 물론 신약 교회가 영적으로 영원히 안전하여 그 은혜를 원수
(마귀)에게 빼앗기우지 않을 것을 비유한다.
사 62:10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추축하라 들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 이것은, 바벧론에 잡혀 갔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한다. "나아가라"는 말( =이베루=지내어 나아가라)
은은, 그들이 바벧론에서 당당히 나아가 본국르올 돌아가라는 하난미의 명령이다. 여
기 중복 문체(重複文體)로 기록된 것은 그 일을 역설(力說)하기 위함인데, 그들이 거
기거 나가게 될 것은 기연미연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니, 화고부볼자하 다일
이다.
"백서의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백성이 친히 길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왕과 같이 당당하게 그 길을 갈 자의 처지에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
께서 그들 편에서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길을 예비할 자는 달이 마련되어 있
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이것은, 바벧론에 사로잡혀 가서 흩어져있는 유대인들
을 모이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는 학자(Barnes)가 있으나, 그보다도 유대 민족과 기타
모든 이방 민족들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보도록 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행동 곧, 유대인
들의 해방 운동을 비유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온 것은, 세계
만방이 보고 놀랄 만한 기이한 일이다.
사 62:11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
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 "딸 시온"은
약소 민족이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 "구원이 임하느니라". 곧, 바벧론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뜻이다.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이것은, 유대인들을 바벧론에서 놓아주는 것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사건으로서 하
난미이 하시는 일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사로잡혀 가서 겸손히 낮아져
회개하는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응낙(應諾)하여 주시는 동시에, 유대인들을 과
도히 압제한 바벧론에게는 징벌("보응")하시는 것이다.
사 62:12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 위에 말씀한 것과 같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간섭으로 바벧론에서 구원 받아 나온 때에, 사람들은 그들이 거룩한 백성(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백성)임을 깨닫게 되며, 또한 그들을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고 부르게 된다. "구속하신 자"라는 뜻은, 구원할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희생됨을 내용으로 한다(사 43:3,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애굽 군대는 홍해에서 희생되도록 하셨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독생자를 대신자로 희생하셨으니 신자들의 구원은 자기들의 죽을 대신에 다른 분이 희생된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찾은바 된 자"라는 말은,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 사로잡혀 가서 있는 동안 하나님의 택한 백성 구실을 못하였으나, 이제 거기서 해방되므로 도로 찾은바 되는 것이다. 이제는 "버리지 아니함" 예루살렘("성읍")이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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