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이사야 46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 46:1

  벧은 엎드러졌고 므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
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하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 "벧"(   )은
바벧론의 미신(迷信)대로 주요한 신(神)의 이름인데, 혹설에 바알(    )과 같은  뜻이
라고 한다. 이것은, 로마신 쥬피터(Jupiter)에 해당하는 바 태양신(太陽神)을  가리키
는 것이다. 그것이 "엎드러졌"다 함은, 고레스왕이 바벧론을 정복하므로 그 나라의 주
요한 신상(神像)이 붕괴(崩壞)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미래에 될 일이지만 너무  확
실한 것이므로 과거사(過去詞)로 표현 되었다. 그리고 "느보"(    )는,  벧에게  부종
(附從)하는 신으로서, 서기(書記) 일을 본다고 한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
게 실리웠"다 함은, 바벧론이 고레스에게 패배를 당하였으므로 저회의 우상들도  정복
자(征服者)들로 말미암아 외국으로 끌리워 감을 의미한다(렘 48:7). 그것은 바벧론 사
람들이 여겨 떠메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이제 짐승에게 실리웠으니 그것이 짐승의 신세
를 지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다고 하였다.
  위의 모든 말씀은 우상주의가 얼마나 헛되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것은 그것을  섬기
는 자들을 도와주지 못할 뿐더러 그 자체의 짐도 건사하지 못하여 짐승에게  의뢰하게
된다. 우상 주의는 이렇게 보이는 모양으로만 사람들을 실패케 하는 것 뿐 아니라, 보
이지 아니하는 정신적 형태로도 그렇게 한다. 모든 탐심도 우상 숭배이다(골 3:5).

 

  사 46: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
기도 잡혀 갔느니라. - 여기 "그들"이란 말은 우상들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구부러
졌"다 함은, 그 아랫말 "엎드러졌"다는 의미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한다 함은, 우상 자체의 짐을 스스로 건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니 이것도  우상
을 비웃는 말씀이다. "자기도 잡혀갔"다 함은, 그 우상들이 바벧론을  구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들이 메대 바사 나라로 사로잡혀 감을 의미한다.
  이방 우상들은 참된 신이 아니고 헛된 것이니 만큼, 그 나중은  치소(嗤笑)  거리로
드러나고 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여호와에게 대하여 천대와 멸시를 하는
자는 무서운 벌을 받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살라게신 증거이다. 그 일례를 들면,  불레
셋 사람이 하나니의 법궤(이는 물론 하나님을 가리키는 神像은 아니고 다만 하나님 백
성에 대한 그의 계약의 象徵뿐 이지만)를 옮겨다가 다곤 신다엥 두었을 때에,  다곤이
엎드러졌고, 또한 그  지방  사람들에게  독종(毒種)의  재앙이  내렸던  것이다(삼상
5:1-6).

 

  사 46:3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
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 "야곱 집"이나 "이스라엘  집"은
꼭 같이 유대인을 가리킨다. "남은 모든 자"라는 것은, 바벧론에 잡혀 갈  유대인들을
의미한다. 이 귀절에서 하나님은 유대 민족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애정으로  그들
을 보호하시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한다. 렘 31:9; 말 1:6; 신 32:11; 사 1:2 참조. 하
나님이 그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로되
(시 27:10), 하나님의 사랑을 최소 한도라도 보여줄 수 있는 비유는, 부모의 사랑  밖
에 없는 고로 여기 이 비유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심에 대하여  성경
에 여러가지로 표현되었으니 그의 눈동자 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시 17:8), 암탉이  병
아리를 날개 모음 같이 하신다는 것(마 23:37),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는  것
같이 하신다는 것(신 32:11) 등이다. 사 49:15, 16 참조.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국한된다. 자식도 부모를 믿지 않으면
부모의 모든 사랑이 그에게 바로 이해되지 못하고 도리어 곡해(曲解)된다. 인격과  인
격의 관계는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서만 참되이 성립된다.

 

  사 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
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 하나님은 일시 동안만
그 백성을 사랑하시지 않고 영원토록 그 사랑이 변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너희가 노년
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물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그
들의 사후(死後)에는 돌아보시지 않는 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 17:15; 23:6,  116:15;
욥 19:25, 26; 사 57:1, 2; 눅 16:22 참조. 부모가 자식을 노년에 이르기까지  도와주
는 것은, 그 이상은 할 수 없기 때문이려니와, 하나님의 사랑의 극한(極限)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노년"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도에서 생각되는 극한(極限)으로
서 하나님의 영원을 비유하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는 것은 성경에 많이 있다. 시 136편에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사"라고 매절(26절)에 나와 있다. 그리고 신약에는  이와  같은
말씀이 많이 있는 중 특별히 히 13:8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
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고, 약 1:17에는,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 103:11에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라고 하였다.

 

  사 46:5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우상 섬기는 바벧론 사람들의 일
시 왕성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우상 섬기는 것도 하나님 섬기는 것만 못하지  않
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나온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데나 비길  데가  없으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우상 섬기는 바벧론 사람들이 일시 동안 왕성한다  할찌라
도 그것은 우상의 덕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시  동안  주신  분깃이다(시
17:14). 여호와를 믿는 하나님 백성은 여호와 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
여야 그 믿음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가 이사야를 통하여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비일비재(非一非再)로  역설하신다.  사  44:6,  8,
45:5,6,18,21,22 참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 같이(마 6:24), 사람이  여
호와 밖에 다른 신도 하나님처럼 믿으면 하나님을 노엽게 함이 된다.

 

  사 46:6,7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
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 이 귀절들은 우상주의의 어리석음을 또
다시 지적한다. 우상주의는,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꼭 같이 정죄된 것이다. 그  이
유는, (1) 우상으로 하나님을 대현(代現)할 수 업슨 까닭이요. (2) 우상을 섬기는  자
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물상(物象) 자체를 위하는 데로 기울어지기 때문
이다.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영적으로 믿으며 섬겨야 된다(요 4:2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하나님의 참된 啓示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이시고 우상의 형체
는 아니지만) 하나님과 동등이시므로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할 수  았다(요
14:9). 그러나 그가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시각(視覺)에 의하여  하나님을
보고 섬기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속죄하여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도  친
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떠나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다9요 16:7). 그렇
다면, 우리 육신의 시각(視覺)에 만족을 주는 형체(形體)를 예배의 대상으로 하는  것
은 원칙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상주의를 죄악시 하신다.
  우상주의에 대하여 여기 몇 가지 사실이 기록되었으니, (1) 그들은 우상을 만드는데
열중함(6절). 그들은 돈을 아끼지 않고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또는 "은을 저울
에 달아"주며 우상을 만들도록 함. 사람들이 참된 하나님에 대하여는 이렇게 열중하지
않는다. (2) 그들의 행동이 모순되(6절 하반-7). 그 이유는, 그들이 그 만든 우상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또 그것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까닭이다. 사람이 참으로 경배할만한
것이라면 어찌 어깨에 메고 다닐 것인가? 그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은 물건 뿐이고 그
들을 구원할만한 생명은 없는 것이다(7절 하반).

 

  사 46:8,9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 "패역한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고 이방  우상
에 끌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일을 기억하고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함은, 위에 말
한 것과 같이 우상이 헛된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장부가 되라"함은, 히브리  원어
로 히드오솨슈(          )라고 하는데, 킴키(Kimchi)는 "부끄러움을 당하라"는  뜻이
라 하고, 탈구(Targum)역은  "너희  자신을  견고케  하라"는  뜻으로  보고,  보칼트
(Bochart)는 "남자 다와라"란 뜻으로 보아 고전 16:13과 연락시킨다. 이 해석이  옳으
니 곧, 머뭇머뭇하지 말고(왕상 18:21) 남자 답게 여호와 편에 가담하라는 것이다. 신
앙은 미온(微溫) 상태를 금물(禁物)로 한다. 하나님만 신앙하는데 반대되는 것들을 용
단성 있게 거절할 줄 알아야 된다. 신앙자 모세는, 여호와만 따라가기 위하여 거기 반
대되는 것은 장부 답게 거절하였다(히 11:24-26).
  여호와만 참 하나님으로 믿는데 대하여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과거에 그가  하신
일을 기억함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타내신 권
능은 성경에 많이 기록되었다. 시 74:12-15, 136편 참조. 신자가 과거에 받은  은혜를
기억할 때에 영적으로 새 힘을 얻는다. 과거에 참된 구원을 주신이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사 46:10,11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신 증거가 여기 또 한 가지 진술된다. 그것은, 그가 미래에
될 일을 예언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시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우리 본문에,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라는 말씀은, 장래 일을 미리 알려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능력의 일례(一例)는, 그가 동방 곧, 메대 바사에서 고레스("독수
리"로 비유된)를 불러서 유대인들을 바벧론에서 해방시키시겠다고 미리 말씀하시고(사
44:26-28), 그대로 성취하시겠다는 것이다.
   "독수리" - 는 전쟁 잘 하는 왕을 비유하는데(렘 49:22; 겔 17:3)  여기서는  바사
왕 고레스를 가리킨다.
  장래사(將來事)에 대하여 예언하실 수 있고 그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를 참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특별히  고조하는  말씀이다.  사
43:19, 44:7, 45:19, 21 참조.

 

  사 46:12,13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
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완악한 자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어디까지나 찾으신다. 그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또는 원수 되었
을 때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셨다(롬 5:8-10).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를 힘쓰나 하나님은 그로 더불러 가까와지시기를 원하신다. 그라 "의"를 가지시고 우리에게 "가깝게" 오심은, 필경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다. 이 귀절들이 보여주는 구원 운동에 있어서 몇 가지 사실을 볼 수 있으니, (1)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12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이 이것을  보여준다. (2) 하나님 단독 사역 주의(單獨使役主義).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신다. 그는 우리의 공로 유무(功勞有無)를 보시지 않고 우리 구원의 댓가(代價)가 될 하나니의 의(義)를 친히 가지고 오신다(13절 상반).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내것이라고 하기만 하면 그대로 되어진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은사의 충족성(充足性).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은사는, 그 어느 방면으로든지 그 구원을 받은 자에게 유익을 준다. 그러므로 13절에 이 구원  은사를,  "의",  "구원", "영광"(구원 받은 이스라엘은 영광과 같음)이라고도 하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은사는 그야말로 백과사전식(百科事典式) 은사인 것이다(Maclaren).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