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36:1,2
"산헤립" - 은 살곤(혹은 살만에 셀)의 아들이며, 여기 관설된 그의 원정(遠征)은
제 3차의 것이다(Delitzsch).
"라기스" - 는, 현재 움 라키스(Umm Lakies)라는 따으로서 불레셋 접경에 있고 애
굽으로 가는 도중이며 예루살렘 서남쪽에 있다. "산헤힙"은 이 때에 그곳을 점령하였
던 것이다(대하 32:9). 그가 거기서 예상 밖에 더 지체하게 되어 랍사게로 하여금 군
대의 일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도록 한 것이다.
"세탁업자의 터의 대로 윗못 수도구 곁에". - 이것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지점이
다. 이 지점은, 7:3에도 기록되었는데 이사야가 아하스를 만나 권고하던 곳이다. 그
권고는 드른 것이 아니었고 아하스더러 사마리아와 아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만 믿
으라는 것이었다. 사 7:3-9 참조. 그러나 그 때에 아하스는 이사야의 권고를 듣지 않
고 앗수르를 의지하려고 한 것이다(대하 28:16). 아하스가 유다 나라의 대표자로서 저
렇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앗수르를 의지 하려고 이사야의 말을 거역한(사 7:12) 곳은
이제 앗수르의 도움이 아니라 앗수르의 침략이 와서 떨어지는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장소의 이름이 특기(特記)된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법리에 대한 하나
님의 징벌이 반드시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 36:3
대하 18:17,18 참조. 사 22:15-19을 보면,
"셉나" - 는 거짓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국가의 위기에 외교관으
로 섞여 다녔으니 선한 왕 히스기야에게 의로운 신하들이 많지 못한 사실이 알려진다.
그러나 히스기야왕 자신이 이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만큼, 국가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여 주시는 은헤를 받는데 있어서 별로 큰 지장은 없었다.
사 36:4,5
랍사게는 여기서 히스기야에게 보내는 말 중에, (1) 앗수르 왕을 대왕이라 하며 지
극히 높인다.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앗수르 왕이 하나님과 같은 듯이 외람되이 말하
면서 유다의 대표자들과(3절) 히스기야를 위협한다. (2) 그는, 히스기야의 의뢰하는
바를 꾸짖는다. 이 부분에,
"의뢰"( ) - 라는 말이 세번 나온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말이 6절에도 있다. 이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말이지만 애굽는 의뢰하던 유다 민중으로 하여금(31:1-3)
양심상 가책을 받도록 한다. 종종 불신자들의 말이 신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많
다. 요나도 배 밑에서 잘 때에 풍랑이 일어나매 선장(船長)이 그를 부끄럽게 하였다.
선장은 그에게 말하기를,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
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였다(욘 1:6).
사 36:6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 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 애굽을 "갈대"라고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 이유는, 애굽에는 갈대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겔 29:6; 사 19:6 참조. 히스기야는 실상 애굽을 의지하지 않았
다. 그러나 그 백성이 그리하였던 것이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던 백성은(사 28:9, 10 참조), 이게 랍 사게의 경고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하
나님의 원수에게서 오는 경고는, 신자를 부끄럽게 할 뿐이고 회개케 하지는 못한다.
그경고는 조롱하는 경고이다. 사랑의 경고를 받지 않는 자는 필경 이런 소망 없는 무
서운 경고를 받게 된다.
사 36:8-10
여기서는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정면으로 수모(受侮)하는 말을 노한다. (1) 유다 나
라에는 말 탈 사람조차 없다는 것. (2) 유다에는 앗수르의 장관 중 지극히 작은 한 사
람도 물리칠 자가 없다는 것. (3) 랍사게가 침략하여 온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는 것이
다. 이 말은, 그가 유대인이 두려워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기 편으로만 이용하는 오
만한 것이다.
사 36:11,12
여기서는 유다의 대표자들이 랍사게에게 아람말을 사용해 주도록 청원하였으나, 랍사
게는 더 한층 유다 방언으로 말하여 일반 민중에게까지 깨닫게 하려고 한다. 유다의
대표자들은 그 사태를 고요히 수습하고 민중에게까지 랍사게의 선동(煽動)이 미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유대인들이 모르는 아람 방언으로 말해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랍사게는 이 점에 있어서도 모욕적(侮辱的) 언사(言辭)를 쓴다. 곧,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이게
도" - 말하리라고 한다. 이 말은,전쟁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유다 민족이 모두
다 "대변"과 "소변"을 먹으리 만큼, 비참하여지리라는 것이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
은 산헤립과 전쟁하기 위하여 나선 모든 민중을 가리킨다.
사 36:13-16
여기서는 랍사게가, 유다 민중들더러 히스기야의 종교적 권면도 듣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유다 민족의 유일한 구원의 길을 끊으려는 사단의 모략인 것이다. 랍사게는 이
렇게 유다 민중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믿는 대신에 앗수르 왕을 믿으라는 의미로 16,17
절에 말하고 있다. 곧, 앗수르 왕이 유다 민중으로 하여금 잘 살게 하여 준다는 것이
다.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
이요" - 라는 것은 평안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가". - 이것은 유대인들을 좋은 땅으로 이민(移民)시켜 준다는 뜻이다.
사 36:18-20
여기서는 랍사게가, 유다의 대표자들과 민중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훼방한다. 곧, 유다 민족이 섬기는 하나님께서도 그 민
족을 앗수르의 침략에서 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은 말을, 모든 다른 나
라 신들이나유다의 하나님(여호와)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짓된 이론에 의하여 장담한다.
여호와 하나님과 모든 다른 신을 혼동하는 암매한 생각은 모든 불신자들에게 있는 그
릇된 사상이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대한 이와 같은 사상이나 언사(言辭)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확신을 가질 때에 비로소 참
된 신앙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하맛" - 과
"아르밧" - 은 수리아 북방에 있고,
"스발와임" - 은 메소보다미아 남단(南端)에 있다. 앗수르가 일찌기 이 지방들을
침략할 때에 그 지방 신들이 그 지방 사람들을 돕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지방
신들이 참신이 아니었으니만큼,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이시니 난관에 빠진 유다 나라를 앗수르의 침해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사 37:36
참조.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 곧, 이방신들이 사마리아를 앗수르의
침략에서 건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 36:21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하여
대답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 이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침략을 당한 때
여호와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부드러운 정책(政策)을 취한 것이 드러난다. 그는 그 백
성들더러 앗수르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하여 대항하지 않도록 다짐하여 두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무모(無謀)한 약자(弱者)의 굴복이라고 하기보다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해결이 있는 줄 알고 하나님만을 바라본 지혜로운 처사였다. 이는 마치 사무엘이 불레셋의 침략 시절에 그 백성들더러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한 것 같이 취하여진 행동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미스바에서 기도하는 동안 불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일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므로 저희는 패전(敗戰)을 당하였다.
사 36:22
여기 기록된대로 랍사게를 만나기 위하여 왔던 유다의 대표 세 사람이 옷을 찢은 것은, 국난(國難)을 당한 그들의 슬픔을 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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