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이사야 26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 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
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 "견고한 성읍"은 어떤 곳인가 ? 그 곳은, 바
벧론 포로의 처지에서 놓여서 유대로 돌아오는 유대인들이 들어갈 예루살렘이다. 그것
은 재건(再建)되어야 할 초라한 성읍이다. 거기는 견고한 성곽이 없었다. 그러나 이사
야가 그것을 "견고한 성읍"이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호하시며 그  안전
(安全)을 확보(確保)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제 돌아오는 유대인을  보호하여
주신다. 전에는 그가 저희에게 노하시고 내어쫓았으나 지금은 회복하시며 구원해 주신
다. 회개하는 자에게 대하여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만 하신다.  하나님
은 회개하는 자의 편이 되어 주신다. 깨끗한 교회라고 자처하는 자는 그 시간부터  하
나님에게서 멀어진다. 사람들이 아무리 의(義)를 소유하였을찌라도 자기의 의를  자랑
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것이 역시, 구원은  하나님
께서 홀로 이루어 지시는 증표이다.

 

  사 26:2-4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
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이 귀절들은, 앞  절에서
말한 "견고한 성읍"(이는 천국에 대한 비유도 됨)에 들어갈 자격자에  대하여  설명한
다. 그 자격자는 우리 본문이 말한 바와 같이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이다.  "신을
지킨"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쇼멜 에무님(*                )이다. 이는 곧,  하나
님이 세우신 계약 관계인 신앙을 지킴이다(J.Ridderbos, de  trouw  bewarend...trouw
aan het verbond, die bewaard wordt door een  leven  naar  den  eicsh  ervan,  en
ellereerst door een geloovig vasthouden  aan  zijne  belofte.-Korte  Verklaring,
Jesaja.p.160). 그것은 3,4절이 거듭 말한다. 3절에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라고  했
으니 심지가 견고하게 됨은 역시 여호와를 신앙함에서 성립된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린다.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평안해진 것이 신앙이다. 신앙만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사 26:5

   높은데 거하는 자를 닢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
다 - 하나님은 높은 자 곧, 교만한 자를 닢추신다. 우리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
만한 바벧론을 패망케 하실 것을 가르치지만 누구든지 교만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아
망하게 되는 법이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선지자도 교만한 말 한 마디 때문에 가나안  땅
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의 말은,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
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한 것이었다(민 20:10). 민 20:12,27:12-14;신 32:48-52 참
조.

 

  사 26:6,7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 이것은, "발" 곧,  "빈
궁한 자의 발"이 높은데 거하는 자의 성을 "밟으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빈궁한  자"
나 "곤핍한 자"는 바벧론에 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 중의 신실한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겸손한 자의 대표이다. 하나님을 믿고 겸손히 행하는 자가  승리하는  이유는,
(1)자기를 낮추는 것이 언제나 진리의 행위이며 사실주의에 처하는 정직(正直)이기 때
문이다. (2)사람이 자기를 높일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나 자기를 낮출수록 하나님과  가
까와지는 까닭이다. (3)사람이 자기를 낮추어야 하나님 말씀 이상의 것을 구하지 아니
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교만한 사람은 말씀으로 만
족하려 하지 않는다. 곧, 그는, 하나님 말씀을 지나간 시대의 역사  문구(歷史文句)로
만 알고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에게 주시는 사랑의 말씀인 것을 모르니 이런 자가 어떻
게 축복을 받으랴 ? (4)하늘 나라의 선물과 축복은 사람이 내려가면서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겸손한 자만이 받는다.

 

  사 26:8,9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
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
움이니이다 - 이 두 귀절에 "사모"한다는 의미 있는 말씀이 네번 나온다. 이것을 보면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심판하셔야 공의(公義)가 세워짐을 우리가 볼 수 있다(9  下半).  그렇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옳고 그른 것이 밝혀질 때에 하나님의 살아 계신  사실
이 알려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나 신앙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
더욱 정신 차려 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당하는 난관(심판 받아 당하는 난관)
에서 더욱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 공의의 심판인지 살펴 보고 거기서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느낀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이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될  때에,  고요히
"나"의 죄악을 심사(審査)해 보면, 그 당한 일이 하나님의 심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곧, 주님의 이름  내
용을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자기(주님 자신)를 역사상에 나타내심을 가리킨다.  과거에
도 그렇게 나타내셨으므로 그 이름이 기념되셨으니 지금은 그가 그렇게 나타내시지 못
하시랴 ?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여기서
"밤"은 환난의 때를 비유한다. 사람들은 흔히 환난의 때에 낙심하고 주님을 멀리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성도는 그 밤이 지나가고 낮이 올 것을 내어다 보고 밤  같은  때에
더욱 주님을 사모한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밤 같은  때에
주님 없이 못살 줄 알고 그 때에 더욱 주님을 사모한다. 주를 "간절히"구한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아솨카레카(*           )이니 곧, "내가 일찌기 당신을 찾으리니"라는
뜻인데 이는, 정성되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뜻이다.  루더포드(Rutherford)는,  말하기
를, "몇 지옥(地獄)을 건너서라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리라"고 하였다.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위의  8
절 상반절 해석 참조. 선지자 이사야가 주님의 심판을 사모한 목적은, 개인의  유익만
위한 것이 아니고 세계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곧, 세계의 거민이 하나님의  의(義)의
나타나심을 보고 하나님을 깨닫게 됨을 위한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의(義)의  출현
을 무엇보다도 갈망해야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게 하는 것은,  그
의 심판의 의(義)로 나타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헤롯이 "신"(神)이라고  불러  주는
칭찬을 즐거이 받다가 충(蟲)이 먹어 죽은 것도 하나님의 심판 사건들 중 하나이다(행
12:22,23). 칭찬 받기 좋아하는 자들은 헤롯의 사촌쯤 되나니 그런  자들도  넘어지는
법이다. 하나님의 섭리적 심판(攝理的審判)은 이 세상에서도 날마다 내리고 있다.  사
람들은 이것을 보고 "의"를 배우므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아야 된다.

 

  사 26: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찌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
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 선지자 이사야는 여기서 성도와 반대 되는 악
인들의 실례(實例)를 들어서 성도들의 경계할 바를 삼는다. 성도는 악인들의 하는  짓
을 보는 것으로 동기(動機)를 삼아 더욱 경건하여진다. 그들은 악인들의 무지한  행동
을 보고서 그런 나쁜 행동을 자신들에게서 천리 만리 멀리한다. 악인들의 그릇된 행위
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서도 하나님을 모르며(하나님의 구원하여 주시는
義를 보고도 하나님을 모름), "정직한 땅" 곧, 의로운 사회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할 줄
모름이다.

 

  사 26: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찌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
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 이스라엘  백
성이 바벧론에게 포로되어 간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하신 일이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바벧론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필경 그 백성(이
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구원 운동을 열심으로 하실 때에, 바벧론은  망하게  되었으니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셈이다.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른"다 함은,  주님께서 불 같은
심판으로 바벧론을 메대 바사 앞에서 패배(敗北)시키리라는 뜻이다.

 

  사 26: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
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 바벧론이 패배를 당할 때에(11절 하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임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모든 일을 이루시
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때에 우리에게는 그 이상 되는 안전  보
장은 없다.

 

  사 26:13,14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아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유대 백성)을 대표한 선지자가 그들의 신앙을 대신  고백함이
다. 곧, 그들이 바벧론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많은 임금들("다른 주들")의 지배를  받
았으나 하나님보다도 그들을 두려워하는 불신앙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
들은 그 압제 하에서도 오직 여호와만 두려워하고 신뢰할 것이니 그  이유는,  그들이
보기에 바벧론 임금들이 아무리 무서워 보여도 잠간 후에 죽어 없어질 것이 내어다 보
이는 까닭이다. 참되고 영원하신 왕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시 74:12). 위의 말씀은,
하나의 예언이지만 바벧론에 잡혀 갈 유대인들 중에서 저렇게 신앙을 지킬 자들이  있
을 것을 내어다 본 것이다. 신앙을 지키는 자는 그 눈이 현실에 현혹(眩惑)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생하신 하나님을 붙든다. 따라서 그들은, 그 눈 앞에 무서운 세력가(勢
力家)들까지도 잠간 후에는 죽어 버리고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을 내어다 본다.

 

  사 26:15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 여기 이른바 "이 나라"는  하
나님을 공경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사로잡혀 있는 중에 많이
회개하고, 필경 노여나 돌아온 후에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생활이 부흥되었고  많
은 수효가 주님께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얻으신 것이다("스
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선지자는 이것을 내어다 보고 여기에 예언하였다.

 

  사 26:16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아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 여기 "주를 앙모하였아오며"라는  것은  히브리
원어로, 폐카두햐(*          )이니 곧, "당신님을 방문하였읍니다"라는 뜻이다. 그들
은 환난 중에 주님을 찾았다. 어떤 손해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면 그  손해
는 나에게 도리어 복이다. 사울이 나귀를 잃었으나 그 나귀를 찾으려고 떠났다가 선견
자 사무엘을 만났고,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다(삼상 9:1-10:1).  "간
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차쿤 라카쉬(*                )
이니 "속닥거리는 기도를 부음"이다(poured out whispering prayer). 이것은,  괴로움
에 눌려서 겸손히 토설(吐說)하지 못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계속  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목소리보다 마음 속에서 뜨겁게 움직이는 기도이다. 기도는 심령에서부터 나오
는 것이라야 참되다. 그렇지 못한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
를, "기도 없는 영혼은 그리스도 없는 영혼이고 그리스도 없는 영혼은 망한다"고 하였
다.
   기도는, 신자가 하나님의 참되심을 알고 전력(全力)을 다하여 계속해야 되는  것이
다. 이사야는, 바벧론에 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 중 진실한 자들의 기도가 어떻게 필사
적(必死的)일 것을 여기 보여준다. 그들은 기도하느라고 죽을 지경에  빠질  것이라는
의미에서 19절에는, "주의 죽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사 26:17,18

  그들이 포로된 중에서 구원 얻으려고 힘써 보았지만 그 노력은 헛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도할 뿐이었다. 16절 참조.
   "낳은 것과 바람 같"다 함은, 그들의 노력과 고통의 결과는 무용(無用)하였다는 것
이다.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이 말의 히브리 원어(*               
           )의 뜻은, "세계의 거민들(바벧론  사람들)로  패망하게  못하나이다"이다
(Calvin). 곧, 이스라엘 백성이 자력(自力)으로는 바벧론 사람들을  패하게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별 수 없이 바벧론의 압제 아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을
지경으로 애타는 마음을 토설치도 못하며 기도하게 된다(16절 참조). 인간은 자기  힘
으로 참된 복을 가져올 수 없으니 기도할 것 밖에 없다. 시 127:1,2에 말하기를,  "여
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였다.

 

  사 26:19

  주님께서는 죽은 자 같이 된 백성의 기도(16절)를 들으시고 그들을 바벧론에서  놓
아 주신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심과 같은 기적이다. 죽
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최후 소망이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창 1:1에서도 가질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던 가운데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지 못하시랴 ? 특별히 주님의  은
혜가 죽은 자들을 살리신다. 그 의미에서 여기 말하기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라고 하였다. "빛난 이슬"이란 말은, "빛되신 하나님
에게서 오는 이슬"이라는 뜻이니 곧,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된 은혜라는  것이다.
부활 신앙은 하나님을 믿음에서 성립된다.

 

  사 26:20

   내 백성아 갈찌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
을찌어다 - 이사야는 위에서, 죽은 것 같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벧론에서
놓여날 소망을 보여주었다. 그 소망은 마치, 신약 시대 끝에 있을 성도들의 몸이 부활함과 같다는 의미로, 그는 그것을 진술한다(19절).

  사 26:21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이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한"다 함은, 하나님께서 바벧론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신다는 뜻이다.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낸"다 함은, 바벧론 사람들이 그 침략 정신으로  잔인하게 다른 민족의 피를 흘린 사실이 이제 규명(糾明)되고 하나님 앞에서 판단 될 것을 가리킨다. 천하에 대적할 자 없었던 강한 바벧론도 역사상에 심판 받는 날이 오게  된다. 그 때에는 가리워졌던 죄상(罪相)이 그대로 드러나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