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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23:1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찌어다 두로가 황무하
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
이니라  -  "두로"는,  베니기아의  도시로서  흔히   시돈과   함께   관설되는데(마
11:21,22,15:21;막 3:8,7:24,31;눅 10:13,14), 그것은 지중해안에 있고 시돈의 남쪽으
로 20 마일쯤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그 토민(土
民)들을 내어 쫓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 땅은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이 주장하고  있었
으며, 지중해를 통하여 많은 해변 나라들로 더불어  통상(通商)하였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함락 전 해(607년)에 두로를 공략(攻略)했는데, 그 때에 이토발(Ittobaal) 3
세가 느부갓네살을 13년 동안 대항하였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한것은,  위에
관설된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받은 전화(戰禍)를 가리켰다. 여기 "다시스"는 서바
나의 탈테서스(Tartessus)를 가리킨 듯하다. 여기서 "다시스"에 대하여  관설한  이유
는, 그곳과 두로 사이에 무역이 왕성하였기 때문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
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것은 두로가 느부갓네살의 침략을 당할 뿐 아니라 후에  헬라
알렉산더 대왕의 침해를 받아 아주 망할 것까지 내어다 본 말씀이다. 두로는 과연  이
예언과 같이 되었다. 로빈슨(Robinson)은 그곳에  여행하고  와서(1830년)  말하기를,
"거기는 작은 배들을 들여다 댈 장소도 없고 고기 잡는 어선들도 두로섬의 서쪽에  있
는 바위들을 의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필경 그 문자대로  성
취되고야 만다.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다 함은, 구브로 섬에서부터  두로의  멸망이
알려졌다는 것이다. 구브로 섬은 두로를 중심한 베니게 민족의 무역에 있어서 요로(要
路)에 있는 것이다.

 

  사 23:2,3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거민들아  잠잠하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운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었도다 - "시
돈"은, 베니게의 가장 오랜 도시로서 두로의 모체(母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
돈 상고는 베니게의 상인(商人)들을 대표하나니 그들이 다른 나라들과 무역한  관계로
다른 나라들은 부요하게 되었다. 그 일례를 들면, 애굽은 곡식을 두로에 수출하여  큰
이익을 보았던 것이다. "시홀"은 나일강의 별명이다. 렘 2:18 참조.
   선지자 이사야가 시돈 상고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해변  거민더러  "잠잠하라"함
은, 두로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이제는 이익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
에 속한 자들은 배(腹)로 하나님을 삼고 지내므로 물질이 없어질 때에 절망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물질이 있을 때에 웃다가 물질과 함게 망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물질이 없어질 때에 가슴치며 운다. 계 18:9-19 참조.

 

  사 23:4

  여기서도 두로의 모체(母體)가 될 수 있는 "시돈"을 거론(擧論)한다.  "바다의  보
장"은 바다의 힘 혹은 바다의 요새지를 이름인데 이것은 두로를  가리킨다.  선지자는
두로를 인격(人格)에 비유하여 그 땅의 형편을 말하게 한다. "나는 구로하지 못하였으
며"라고 하였으니 이는 생산하는 고통을 맛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두로가
망하여 이제부터는 식민지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  남
자들을 양육하지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고 한  말씀도
역시 같은 뜻이다. 두로가 전에는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하였으니,  예컨대  칼테지
(Carthage) 같은 곳을 세워서 조공(朝貢)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정복력(征服力)이
있던 두로가 이제는 그런 힘을 상실하였으니 비유컨대 자녀를 양육하지 못하는 과부와
같이 되었다(4절 下半). 강한 자가 이렇게 돌연히 무력해지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
는 징계를 받은 까닭이다.
   위에 두로가 당할 미래의 일을, 선지자 이사야는 과거사로 표시하였으니 그것은 그
확실성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사 23:5

  애굽인들도 두로의 망한 소식을 듣고 슬피 우는("통도"로 번역된 히브리 원어 *  
       는 아파함을 의미한다) 이유는, 그들의 무역 대상(貿易對象)이 없어진  까닭이
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물질을 얻을 길이 없을 때 슬퍼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는 이 세상 밖에 소망이 없는 까닭이다.

 

  사 23:6

  선지자는 여기서 두로 사람들더러 "다시스로 건너"가라고 하였으니 그 이유는,  두
로는 이제부터 상인들이 유익을 볼 수 있는 곳이 못되기 때문이다. "해변 거민"은  두
로를 상대로 하고 무역하는 모든 해변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슬퍼할 이유도,  그
들의 무역 대상인 두로가 망하였기 때문이다.

 

  사 23:7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 - 여기 "이것"이란 말은 두로를 가리킨다. 두로가 "고대에 건설"되었다
고 하였으니 얼마나 견고한 성임을 알 수 있고, "희락의 성"이라고  하였으니  얼마나
잘 사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그곳 백성이 먼 지방에까지 가서  유숙하며
식민지를 만들었으니 그 곳 세력이 얼마나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견고하며 잘
살며 세력이 강한 두로도 장차 망할 것이라고 선지자는 말한다. 그것이 멸망하는 원인
은, 거기에 하나님이 손을 대시는 까닭이다. 하나님이 손을 대시는 때에는 강한  나라
도 별수 없이 망한다는 것이 이 귀절의 교훈이다. 이것은 아래 귀절들 곧, 8,9절이 밝
혀 준다.

 

  사 23:8,9

  "면류관을 씌우던 자"라는 말은, 두로가 모든 식민지들을 만들고 주장자들을  세워
권세를 맡긴다는 뜻이다.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라는 말은, 두로에 대하여  무역하던
자들은 실상 다른 해변의 식민지의 주장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 무역자들은  세상의
존귀한 자". 윗말 해석 참조.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곧, 저렇게 세계적으로 강한 두로를 멸망시키기로  작
정할 자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말을 함축(含蓄)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강자
(强者)가 문제될 것 없다. 두로가 자랑하던 영광은 욕이 되고 그 존귀한 자는  멸시를
당하게 되리라고 한다.

 

  사 23:10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찌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
"다시스"는 두로가 지배하던 사바나의 항구이다. 이제 두로가 망하는  때부터  다시스
는, 그 지배를 벗어나서 나일강 같이 퍼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이  세
상 국가의 흥망 성쇠가 여호와 하나님의 수중에 달려 있다. 다음 귀절이 이 사실을 알
려 준다.

 

  사 23: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
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 여호와께서 두로를 패망케 하시므로  두로
와 관계하던 모든 나라들이 흔들리게 된다. 그 이유는, 두로는 그 때에 모든 해변  민
족들의 무역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렸"다 함은, 가나안 땅의 베니게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을
가리킨다. 베니게는 물론 여기서 두로를 중심한 지대이다. "그 견고한 성"이라는 것은
두로를 의미한다.


  사 23:12

  가라사대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
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이란 말은, 느부갓네살의 압제 하에서 고생할 두로의  백성을  가리킨다.  "처녀
딸"이라 함은 두로의 가련한 정상을 가리키기 위한 비유이다. 그 백성은 다시 "희락이
없으리라"하고, "깃딤(모든 해안 나라들)으로 건너가"도 평안이 없으리라고 한다.  이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벌 아래 있을 때에는 어디를 가든지 평안을 누릴 수 없다는  진
리의 말씀이다. 암 5:19,20;시 139:7-12 참조.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에게는 만물
이 다 그의 원수이니 그가 어디를 가든지 평안이 없다.

 

  사 23: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 - 이  말씀
은 두로를 패망케 할 민족이 갈대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민족은 본래 그 땅
에 없었던 것이나 하나님의 섭리로 앗수르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그 땅에  식민(植民)
되었다. 곧, 갈대아 사람은, 앗수르가 평원(平原-들짐승의 거하는 곳)을 준비하고  식
민하여 주기 전에는 백성 구실을 못하였다. 그러나 앗수르가 저희에게 그렇게 하여 준
후 그들이 바벧론에 망대를 세우고, 두로의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을 없게도 하시고 있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사 40:15에 말하기
를,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
오르는 먼지 같으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본래 민족 구실을 못하
던 갈대아 사람(곧, 바벧론 사람)을 왕성하게 하시고 그들의 손으로 두로를  파괴하도
록 하신다.

 

  사 23:14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 두
로와 같이 견고한 성이 패망함으로 그 곳과 무역하던 다시스(서바나의 항구)의 배들은
비관할 수 밖에 없다.

 

  사 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 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
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 "한 왕의 년한"이란 말은  한  왕조
(王朝)의 기간을 가리키는바 곧, 바벧론이 앗수르를 치고 들어서서 메대 바사에게  패
망할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켰을 것이다. 이 아래 "칠십 년"이란 말은 그 기간이다. 이
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바벧론 왕조가 70 년간 계속될 것까지  자세히
예언한다. 그동안 "두로"는 패망한 그대로 세상에게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끝난
후에 다시 일어나리라고 한다.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함은, 두로의  상업을
가리키는 말인데 상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두로의 상술(商術)에는 거짓이  많았
기 때문에 그것을 "기생 노래의 뜻과 같"다고 하였다.

 

  사 23:16

   두로는 그 상술에 있어서 거짓이 많으므로 많은 사람에게 아첨하는 기생과  같다고
선지자는 말한다.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역시 거짓을 가지고 여
러 나라를 꾀어 상리(商利)를 거두려고 할 것을 가리킨다.

 

  사 23:17

  "칠십년"이란 말에 대하여는 15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신다는 것은, 그가 두로를 다시 일으키리라는 뜻이다. "지면에 있는 열
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이것은 두로가 열방을 꾀어 상리를 거두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주의로 흘러 가며, 다른 민족들까지도 그렇게 타락시킴을 가리킨다.  금전을
탐하는 상업주의는, 세상 사람들을 꾀어 돈을 모으는데만 열중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
나게 되므로 그것이 우상 숭배요(골 3:5), 하나님 앞에서 음행이다(약 4:4).

  사 23: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 이 말씀은, 두로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될 것을 예언함인데 위의 말과는 너무도  돌연한 대조(對照)로 나온다. 위의 17절에서는 두로의 죄악을 지적하였는데(17절 下半), 여기서는 갑자기 두로 사람의 경건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죄가 더한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한다(롬 5:20). 복음은, 죄인에게 소망이 있음을 말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는 복음에게  배척을  당한다. 그러므로 마 19:30에 말씀하기를,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였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이것은 두로 사람이 복음을  믿고 재물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가리킨다.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곧, 주님을 믿는 두로 사람들이 사리 사복을 위하여 축재(畜財)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재물을 주님께 바쳐 주님의 종들이 사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선지자 이사야는 말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어떤 사람들을 소망 없는 죄인으로 정하면  안된다.  누구든지 남들에게 대하여 소망 없는 죄인이라고 판정하면 그 자신이 영적으로 손해를 본다. 그 이유는, 그가 진리를 거스리며 교만하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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