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9:1
"경고"라는 말(* =맛사)의 뜻은, 무거운 짐을 의미하는데 환난을 당하여 난관
에 빠질 것을 예고한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라는 말씀에 있어서, "임하신"다는 말(* =바)은 온다는 뜻이니 이것은, 장차 그 나
라에 임할 외국 군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위하여 보냄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오신다 함은 이런 심판의 위엄을 상징하는 성경적 술어이다. 땅 위에 일
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불신자들은 우연한 것으로 보아버리고 만다. 그러나 성경은, 이
런 일들 특별히 국가의 흥망(興亡)을 좌우하는 전쟁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적 심
판인 것을 언제나 말하고 있다.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은 우상을 많이 섬
기는데 있어서 모든 민족 중에 으뜸이다. 애굽 민족은 고양이와 황소와 악어와 심지어
파와 또는 모든 식물들을 섬겼으며, 땅위의 어떤 물건에 대하여든지 그들의 신(神)으
로 알아 주지 않은 것이 없다. 그와 같이 우상 숭배의 죄악이 드러난 민족인 것만큼,
그들의 우상은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지 못하고 헛된 것임을 여기 부언(附言)하게 되
었다. 이 말씀은 사실상 애굽인의 우상 숭배죄에 대하여 살깊이 찌르는 목적으로 나온
말씀이다.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여기 "그속"(* =그 복
판에)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한 복판을 말하는데 그곳은 가장 안전한 지대이다. 그러
나 그들이 안전 지대에서도 두려워 떠는(마음이 녹음)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마음을 질겁하도록 벌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으로써 모든 안전지대에 있
어서 담대히 지내는 자들을 은근히 경고하신다. 아무리 안전 지대에세 담대히 살 수
있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에는 별 수 없이 질겁 상태에 빠진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신다.
사 19:2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
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애굽인들로 하여금 서로 공격하는 내란(內亂)을 일으키게 하신다는 것이다. "격동하
사"라는 히브리어(* =일으킴)를 보면, 하나님은 인심(人心)을 주장하시어
(잠 21:1) 이렇게도 되게 하시며 저렇게도 되게 하실 수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
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중에도 특별히 인심을 주장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
금 그에게 대한 신뢰심을 더하게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
하신다면 모든 다른 것에 대한 그의 주장(主掌)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명백하
다.
애굽인들이 서로 서로 친다고 하였으니 곧, 골육 상쟁(骨肉相爭)이다. 이것은, 사
람이 자기의 피를 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괴이(怪異)하기 짝이 없다.
애굽 민족이 이런 극도의 불행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무서운 벌이다. "나라
가 나라를 친"다 함은, 차라리 지방(地方)이 지방을 친다고 번역할 것이다(Calvin).
마 12:25,26에 말씀하기를,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희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라고 하셨다. 그러면 애굽 나라에 이
와 같이 내란(內亂)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그 나라가 멸망할 징조이다. 나라가 흥하는
것도 하나님께 있고 망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 일에 대하여 인류는 경험상으로도 깨닫
는다. 춘추전(春秋傳)에 말하기를, "나라가 일어날 때에 신(神)께서 내려오시고 나라
가 망할 때에도 신께서 내려오신다"(國之將興 神降之 國之將亡 神又降之)라고 하였다.
시 127:1 참조. 외적(外敵)이 오는 것은 잠간이고 내란(內亂)은 계속하며 살깊이 병들
게 만든다. 그러므로 내란에 관련된 사람들은 불행 중에 불행을 당하는 줄 알고 즉각
적으로 그 내란 행위를 저지(沮止)시켜야 된다. 그러나 애굽은 하나님의 벌로 이런 불
행 가운데 빠졌으니 피하려 하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예언은 느부갓네살이 애
굽을 칠 때에 국내에 일어났던 내란을 가리킨다고 하나,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애굽
12 왕조(王朝) 시대에 그 왕들이 분쟁할 것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사 19: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바가 되리니 그들
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 여기 이른바, "정신이 쇠
약"(* =나베카 루아크=靈이 파괴됨)해진다는 것은, 지혜가 어두워질 것
을 가리킨다(Calvin).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미신이란 것은 몇 만 가지를 해 보아도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신을 가지는
자는 한 가지만 가지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미신을 증가시킨다. 전난(戰亂)을 당한 애
굽 사람들이, 국난(國難)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상에게 물어보나 만족할 수 없어서 마
술사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만족할 수 없어서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고 또 다시 만족지
않으므로 요술객에게 물어보리라고, 선지자는 말한다. 이렇게 미신을 숭상하는 자들은
미신을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괴로움을 당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
16:4에 말하기를,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롬이 더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은, 참 하나님을 찾도록 하여 주기 때문에 그것
을 믿는 자는 확신을 얻으며 그것을 경험하는 자는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믿는 자는 그 밖에 다른 것을 원치 않는다. 혹시 신자들이 시험에 빠져
세상의 그릇된 사상들을 받은 경우에라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만 먹으면 고쳐지고 다시
만족을 얻을 것이다. 이는 마치 양을 치는 목자가 꿀병을 가지고 다니다가 양들이 독
초(毒草)를 먹은 경우에 그 양들에게 꿀을 먹이므로 해독(解毒)되게 하여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Soltau). 하나님 말씀은 꿀과 같다(계 10:10). 시 19:10 참조.
사 19:4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여기 "잔인한 군주(* =아도님=주장자들)...포
학한 왕"은 해석가들에 따라 여러가지로 말한다. 혹은 세도스(Sethos)라 하고, 혹은
프싸메티쿠스(Psammetichus)라 하고(이들은 애굽 왕임), 또 혹은 느부갓네살, 캄삐세
스(Cambyses), 오쿠스(Ochus)라고 한다(이들은 외국에서 온 征服者임). 애굽은 이런
폭군을 많이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히 12왕 중의 하나로서 필경 애굽을 통일시킨
(B.C. 670sus) 프싸메티쿠스는 대단히 포학한 군주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 느고(Necho
B.C.616-597)도 포학하여 많은 백성들을 잡아다가 혹독하게 담부지역(擔負之役)을 시
켰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생들이, 하나님을 모든 사람의 왕으로 생각지 않고 그 대신
사람을 숭배하는 그릇된 사상으로써 지도자를 세우면 그들은 결국 그 벌로 화를 받나
니 곧, 폭군(暴君)의 압제를 받는 화(禍)이다. 사무엘은, 백성이 하나님 대신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 원한 것을 죄악시 하였다(삼상 12:17,19). 그리고 그 죄악에 대한 벌로
서 왕의 압제 받을 것을 명시(明示)하여 주었다(삼상 8:10-18). 우리 본문의 말씀이
애굽을 정복한 다른 나라 왕을 가리킨 경우에 외국에서 온 정복자(征服者)가 압제하는
것도 애굽의 죄악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될 일이다. 다른 나라의 압제를 받게
되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랴 ? 다른 나라의 압제를 받는 민족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
님 말씀을 자기들이 순종할 왕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해야 그 받는 징계가 해제(解除)
될 것이다.
사 19:5-10
여기서는 애굽 사람들이 자랑하는 나일강과 바다와 및 그 풍부한 물산(物産)도 하
나님의 징벌로 인하여 파멸될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무엇에든지 자랑하며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랑거리를 파멸시키신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인하여 산물(産
物)이 풍부한 것을 자랑하며 교만하여졌다. "바닷 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
겠고". 애굽 사람들은 그 나라가 "바닷물"과 "강"으로 잘 방위(防衛)되어 있다고 생각
하고 교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와 같은 자랑거리를 없이 하시겠다는
의미로 우리 본문과 같이 비유로 말씀하신다. 바닷물이나 나일강을 문제시 하지 않고
장차 이방 군대가 침략할 것을 여기 암시한다. "바닷물"이라는 말(* )
은, 라빈손에 의하면,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바닷물"이라고 불렀다 한다(사
18:2,27:1;나 3:8).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강에 물이 마르니 썩은 냄새가 날
것이다. "달과 같이 시들겠으며"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카네 와숲 카멜루(*
)라고 하는데, 파피루스 갈대(The reed and ruch)가 시들겠다는
뜻이다. "달"은 여러해 살이 풀인데 잎은 갈대와 같고 꽃은 띠(茅)와 같다. 애굽은 나
일강변에서 많이 나는 파피루스로 유명하다. 그것은 중요한 섬유(纖維) 원료이니 배
(船)를 제조하며 종이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그들이 이와 같은 귀한 물산을 인하여 교
만하여졌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파멸시키리라고 하신다. "어부들은 탄식하며 무
릇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는 슬퍼하며 물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어
산물(漁産物)도 역시 애굽의 중요한 물산이다. 하나님의 벌로 인하여 애굽에는 어산물
도 핍절하여질 것이라고 한다. "기둥이 부숴지고"(* )
라는 말씀은 지도층의 인물들이 멸망한다는 뜻이다(Gesenius). 어떤 해석가들은, 이것
이 직조(織造)하는 장소라고도 하고 혹은 직조하는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또 혹은 그
물이라고도 한다. 칼빈은 이것이 물을 모아두는 못이라고 한다. 그 못은 물론 고기를
잡아다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 19:11
"소안의 백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모략은 우준하여
졌으니". "소안"(* =초안)은, 민 13:22에 나와 있는데 애굽의 타니스(Tannis)라
는 도시로서 나일강 위에 있었는데 싸메티쿠스왕 때까지 이르렀다. 시 78:12;사
19:13,30:4;겔 30:14 참조. 현재에는 산(Sa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폐허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에는 왕과 방백들이 거하던 곳이었으니만큼, 그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가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 지도자들의 지혜와 모략이
우준하여진다고 하신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을찌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
면 형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글에도 말하기를,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
다"(謨事在人 成事在天)고 하였다. 지혜가 성사하지 못할 때에는 결국 우준하다는 명
칭을 받을 것 밖에 없다. 인간중에 누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맞설 수 있으랴 ? 하나님
께서 이제 애굽을 심판하시는 마당에서는 애굽 지도자들의 지혜가 어리석은 것으로 드
러날 것 밖에 없다. 고전 1:19-25 참조.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
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이것은 바로에게 아첨하
는 신하들을 상대하고 하는 말씀이다. "바로"라는 뜻은 큰 집이라는 것이니 곧, 왕궁
을 의미한 것으로서 나중에는 왕의 명칭이 되었다. 바로에게 아첨하는 신하들은 자기
들의 지혜가 그 출생 문벌에 달린 듯이 자랑한다. 곧, 옛날부터 내려오는 왕들의 "후
예"(자손)라는 것을 자랑하고 그 출생 관계에 지혜의 근원을 붙인다. 그것은,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문벌(門伐)을 의지하는 교만이다. 진정한 지혜는
문벌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온다.
사 19:12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고할 것
이니라". 이것은 곧, 그들더러(바로에게 아첨하는 신하들더러)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을 말해 보라고 하라(* )알아 보라고 하라(* )"고 번역함이
옳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적(挑戰的)인 언사(言辭)이다. 바로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이
제 장차 애굽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는 알지도 못하고 공연히 지혜로운 자처
럼 자처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내일 일을 모르는 것만큼, 오직 무지한 죄인으로 정직
하게 자처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신앙할 뿐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 왔던 마술사(摩術
師=체팔로라는 사람)는, 60년 동안 사람을 속이는 마술을 근일까지 자랑했으나 갑자기
병에 걸려 한국에서 죽었다(1963년). 사람의 지혜는 속이는 것 뿐이요 구원을 주지 못
한다.
사 19:13
본절은 다시 소안의 방백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실상 하나님 앞에서는 어리석
은 자들임을 재차 지적한다. 이런 중복체(重複體)의 어법(語法)은 진리를 역설(力說)
하기 위함이다. "놉"은 멤피스(Memphis)라는 도시를 가리킨다. 멤피스는 현재의 탈레
미(Ptolemis) 왕조 이전까지 애굽 고대왕들의 도읍처였다. 그것도 역시 나일강 가에
있는 도시이다.
사 19:14
"그 가운데 사특한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사특한 마음"(* )은 혼
동된 마음을 의미한다. 곧, 참된 지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와 반대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마음이 바로 움직이면 비록 어려운 일이라도 문
제 없이 극복하며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그릇되이 움직이면 평안한 가운데서
도 무력한 사람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우리
마음과의 관계를 참되이 가지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마음을 지켜주실 이는 하나
님 밖에 없다.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어려운 마음 지키는 일을 사람이 어찌 감당하랴
(잠 16:32) ?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자들이 첫째로 받는 벌은 그들의 마음이 진리를
찾지 못하고 혼란하여짐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모든 일을 잘못되게 한다.
사 19: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가지나 갈대나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 여기 이
른바 "머리"와 "종려나무가지"는 지도자를 가리키고, "꼬리"와 "갈대"는 일반 백성을
가리킨다. 9:14 참조. "아무 할 일이 없"다 함은, 애굽이 당한 전화(戰禍)에 대하여
애굽의 상하 인민(上下人民)이 어찌 해볼도리 없음을 의미한다.
사 19:16,17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은 이방 군대를 끌어 오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가리킨
다. 이것은 장차 앗수르 군대가 애굽에 올 것을 가리킨다. 20장 참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것은, 앗수르 군대가 유다에 오므로 결국 애굽에도 오게
될 것이니 애굽 사람들로서는 앗수르 군대가 내침(來侵)한 유다의 땅을 향하여 공포심
을 가지게 됨을 가리킨다. 애굽이 그렇게 두려워할 이유는,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 곧, 앗수르로 하여금 애굽을 침략하도록 작정하신 까닭이다.
사 19:18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 - 여기 "그 날"이란 말은 애굽
이, 앗수르의 침략을 위시하여 바사나 헬라나 로마의 침략을 당하여 국권(國權)이 유
린(蹂躪)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이 세상 나라들은 국권이 떨어질 때에 신령한 은혜를
받는다. 이 세상 물질이나, 권세의 혜택보다 신령한 은혜는 말할 수 없이 더 큰 축복
인 고로 이사야는 그리스도 오시기 800여년 전에도 간간이 신약 시대의 신령한 은혜에
대하여 예언한다. 이런 엇법(語法)은 얼핏 보면 엉뚱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이사야는
신령한 은혜가 너무 귀하기 때문에 그 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내어다보게 한다.
"가나안 방언을 말"한다 함은, 여기서 유대인의 방언을 가리키는 바 곧, 예수 그리스
도에 대하여 전도하는 말씀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여기서 단순히 언어상(言語上) 교통
을 가리키지 않고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의 융통을 가리킨다. 사실상 애굽인들은 외국
침략으로 말미암아 떨어진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복음 운동 초기). "다섯 성
읍"은 애굽의 많은 성읍들에 비하여 소수라고 할 수 있으나, 그만한 숫자의 성읍이 복
음을 받게 된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한다 함은, 복음
을 받지 않은 다른 성읍이 망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섯 성읍 중의
한 성은 가장 악하여 저주 받을만한 성읍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악한 성도 복
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뜻이다. 일설에 여기 "장망성"이라는 것을, 태양성(태양신 숭배
하는 성)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히애로폴리스(Hieropolis)성이겠다.
사 19: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 "애굽 땅 중앙에...제단"이 있다 함은, 그 나라에도 복
음 운동이 유력하게 전개될 것을 예언하는 것이고, "그 변경에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
이 있"다 함은 변경에서도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리라는 뜻이다. "제단"이
라는 말과 "기둥"이라는 말은, 함께 구약식 표현이니, 신약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신령한 제도를 가리키는데 있어서 구약 시대의 예언자인 이사야는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할것 밖에 없다. 선지자가 아무리 여러 백년 후에 있을 새 시대의 일에 대하여 예
언한다 할찌라도 그것을 말하는 표현들까지 여러 백년 후의 시대적 성격을 띌 수는 없
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신약 시대의 종교적 제도를 구약식으로 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기둥"이라는 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나타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과 같
은 것이다(창 28:18). 이것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 공경하는 신령한 일에 대하여 비유
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 19:20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라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라는 뜻이
다. 애굽 사람들은 열국의 압박을 받은 후에 복음을 받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겸손한
처지에 이르게 되리라고 한다. 복음 운동은 먼저 사람들의 마음이 낮아진 뒤에 잘 실
시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어떤 민족이든지 전쟁의 화를 당하는 중에 복음 신앙으로 돌
아온 일이 많다. 특별히 구라파 모든 민족들이 복음을 믿게 된 것은 전쟁으로 인하여
된 것이 많다. 혹 포로들이 그 믿는 복음을 전한 일이 있고, 혹은 군인들이 그 점령지
대에서 복음을 전한 일도 많다. 인류는 세상을 의지하고 교만하여졌기 때문에 복음을
받지 않는다. 이런 전쟁으로 인하여 저희의 의지하던 것이 붕괴(崩壞)될 때에는 복음
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많다. "한 구원자, 보호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를 가리킨다.
사 19: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 "여호와께
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서 자기
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셔야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된다는 것은 계시 종교의 특징을 또
다시 드러낸다. 세상 사람들은, 수모(誰謨)를 물론하고 자기들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계시하여 주신 복음을 전파
함인데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여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기뻐하신다(고
전 1:21). 신약 시대에 이르러 애굽 사람들도 하나님을 공경하게 될터인데 그것을 가
리켜 여기 말하기를,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고 하였다. 이것도 구약식 표현이면서 신약 종교의 내용을 가리킨다.
사 19: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
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 - 하나님께서는, 고
집스러운 인간을 회개케 하기 위하여 전쟁과 같은 것으로 그들을 타도(打倒)하시는 일
이 많은데 그것은 인류를 겸손케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이 겸손하여지기 전에는
복음으로 고침 받을 자가 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말하기를, "치시고
는 고치실 것"이라고 말한다. 교만하고 강한 자라도 타도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
들을 고치실 힘이 없으시랴 ! 미 7:8,9은 말하기를,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
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
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라고 하였다. 애 3:19-33;히 12:10,11 참조.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 애굽 사람들이
바벧론이나 바사나 헬라나 로마의 침략을 당하여 곤경에 빠졌을 때에(여호와의 치시는
매를 맞은 때에) 겸손하여져서 여호와께로 돌아와 간구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
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 그들의 영혼을 고쳐주시리라는 것이
이 문구의 뜻이다.
사 19:23
본절은, 역시, 이사야 때부터 800여년 후에 있을 신약시대의 복음 운동이 민족과
민족 사이의 장벽을 헐어버릴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앗수르와 애굽은 서로 원수이지
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 잘 통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한 가지 의
문될 듯한 것이 생각난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국가와 국가도 서로 전쟁하며 장벽을
막는 일이 있으며, 신자와 신자 사이에도 국가 문제나 기타 육적인 문제를 초월하지
못하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일이 역사적 현실의 대부분인 점이다. 그러나 이 점은
사실상 문제될 것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거기 순종하는 신자들이라
면 서로끼리 육적인 문제들 때문에 장벽을 가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에 순종치 않기 때문에 신자들이면서도 육적인 문제로 인하여 서로 전쟁도 하고
장벽을 막는 것이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복음 성격을 가지고 예언하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민족 차별이나 기타 개인 개인 사이의 육체
적 장벽을 다 철폐(徹廢)할만한 다이나마이트(能力)인 것을, 이사야는 내어다 보았다.
인류의 죄악으로 인하여 역사적 현실이 어떤 점에 있어서 복음대로 되지 않은 것은 이
예언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여기서도 선지자 이사야는, 신약 시대에 대하여 예언할
때에 자기 시대의 표현(애굽 앗수르)을 가지고 진술한다. 그리고 그는, 신약 시대의
큰 특징(서로 원수된 앗수르와 애굽도 복음으로 화목함)을 하나 들어 말하고 그 상세
한 내용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예언의 일반적 경향이다. 그러므로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는 말하기를, "예언은, 예언자가 자기의 환경과 지식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전지(全知)의 자세한 내막을 발표함이 그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거
기는 표현에 있어서 제한 있는 성격을 띤다. 그러나 해석자는 그것을 풍유화
(Allegory)하지 말찌며 역사화(歷史化)하지도 말고 예언적 의미(豫言的意味)를 취해야
된다"라고 하였다(De Komst Van Het Koninkrijk,p.445-446).
사 19:24,25
여기서는, 앗수르와 애굽이 복음으로 서로 화목하는 것이(23절),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에 참예하므로 성립될 것을 밝혀준다. 그 때문에 여기 "이스라엘"이 위에 관설된
양국(애굽과 앗수르)에 참가되어 함께 복을 누릴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위에
관설된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의 구원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메시야의 구원 축복을 누릴 것이라는 말이다.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라는 말에 있어서 메시야의 구원 축복을 누릴 자들이 하필 "셋"으로만 국한되리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이방 민족들끼리 서로 원수된 것(예를 들면, 애굽과 앗수르의 서로 원수된 것)과 및 이방 민족과 이스라엘이 서로 원수된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을 예언한다. 엡 2:11-18 참조. 이 모든 민족들이 다 함계(불택자를 除外하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25절에서는, "나의 백성 애굽...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나의 산업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란 말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이고,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라는 말도 역시 그런 의미를 포함한다. 창 1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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